시인의 피

글/시 2021. 7. 15. 23:03 |

시인의 피


꽃나무가 어떤 꽃을 피우는가는
주로 육신에 도는 수액에 달려있다

개나리는 저대로 개나리꽃을 피우고
장미나무는 싫어도 장미꽃을 피우고
양귀비는 저가 양귀비인 줄 몰라도
눈 따가운 빨간 꽃봉오리를 피운다

제복들이 곳곳의 둔덕을 드나들었다
정원사처럼 무장하고 제초제를 들었다
개천은 제 갈 길만 몇 번이나 겹쳐 흘렀고
하늘은 파랗게 무심하여 가끔 흰구름이나 지어주었다

어찌 되었건 유월에는 각혈만큼 새빨간 꽃잎에
햇빛이 방울져 떨어졌다

북인도의 고속도로 위에서 사흘을 지내고
흙먼지뿐인 휴게소에는 멀대 같은 양귀비
찢어지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입술 하나를 씹었다

덜컹대며 뼈마디 부딪는 버스 의자에서
아픔도 권태도 죄도 없이
나는 어린 날의 시인들에 대해
내가 삼켜온 핏빛 위안에 대해 생각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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