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에 해당되는 글 308건

  1. 2019.12.03 첫눈 1
  2. 2019.12.02 몇 가지 겨울
  3. 2019.11.27 나의 어리석음과
  4. 2019.11.25 도심, 초겨울
  5. 2019.11.21 알코올의 밤
  6. 2019.11.17 늑대의 시
  7. 2019.11.14 가을의 울음소리
  8. 2019.11.14 연초에 걸렸던 결핵
  9. 2019.11.11 짐승의 노래
  10. 2019.11.06 수인囚人의 고백
  11. 2019.11.06 새벽꿈
  12. 2019.11.05 바람 일 때 1
  13. 2019.11.05 밤을 그리는 새벽 1
  14. 2019.11.04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1
  15. 2019.11.04 십대 시절 1
  16. 2019.11.02 사슴의 노래
  17. 2019.11.01 도시의 노래
  18. 2019.11.01 달떴다고 할 것도 없는 밤
  19. 2019.10.31 나날은 죽어가고
  20. 2019.10.30 애가
  21. 2019.10.30 결백하지 못한 슬픔에 2
  22. 2019.10.29 21세기 정신분열증환자
  23. 2019.10.16 (완결미정)분노대리인의 수기
  24. 2019.07.12 비명
  25. 2019.06.23 오늘도 마치 어제와 같은 날
  26. 2019.05.19
  27. 2019.05.16 스무 개짜리 관觀
  28. 2019.05.11 객관화
  29. 2019.05.11 분노의 끝
  30. 2019.05.09 제 1 정리

첫눈

글/시 2019. 12. 3. 19:44 |

첫눈


눈 내리면 소리가 사라진다고들 하지
사실 그저 하늘과 대지가
눈 내리는 소리에 뒤덮일 뿐이야

자세히 들어보면 참도 소란스럽지
부스럭 차르륵 사방을 치며
눈이란 놈은 그렇게도 주장을 해

눈 내린다고 소리들이 어디로 가지도 않지
그저 푸르고 거뭇거뭇하던 색깔들이
하얀 소음으로 마구 칠해질 뿐이야

모두가 잠을 잔다는 계절에
소란스럽기도 하지, 마치
세상이 곧 자신 되기라도 하듯
이름도 없는 색깔들 떨어지지

눈이 그치면 밤이 내리고
그러나 구름들은 물러나지도 않아
달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비행기 소리에 올려다본 하늘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달을 보다가
담뱃갑에 손을 베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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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겨울

글/시 2019. 12. 2. 13:10 |

몇 가지 겨울

 

 

빛이 쏟아져 내리는 우박 되는 계절에

나 마른 잎들을 밟으며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네

그러나 희망도 없이

 

노란 나비들 날던 때는 가고

이젠 밥 먹을 때조차 벌벌 떠는

파리들이 끊임없이 들러붙어 오듯이

망념은 계속, 어디서 떠올라 오나

 

어디선가 빛이 깜빡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전신주 위에서 겨울이 빛나는 소리인가

그러나 나 쳐다보지도 않고

하얀 입김에 기뻐하며 그 소리 들었네

 

어느새 겨울

굳이 풍광을 언어화할 필요는 없다

시인들의 일이란 진절머리 나는 것이지

 

진절머리 내면서 한 겨울에 나비를 찾고

그러니 그런 것들은 증오되고……

하지만 달리 고백할 것도 없다

 

희망 놓고, 기대 놓고, 이러이러 하리라는 마음도 놓고

그 사람 눈동자는 성자 같았지

어디선가 보았던 한 여름의 활엽수림 같았지

 

나 활엽수림 앞에서 계곡에 거꾸러지고, 옷이 젖지 않길 기도하며

끝내 놓지 않던 담배꽁초 연기가 내 눈에 스며들었지

이 눈이 다시 밝아지는 때는 언제? 언제냔 말이야?

 

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앙드레 지드는

어떻게 죽었나? 그의 말대로

지상의 양식 다 취하고 희망 없이 죽었나?성자가 될 수 있었나?

 

나 한번 죽었으나 완전히 죽지 못했다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 몇 번이고 다 읽었어도

정혜쌍수를 쥐지 못했다, 세월은 막히지도 않고 흘러가고!

 

그래, 지금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겨울 무렵이면 사방이 깜깜했고

어머니는 이불을 덮고 있었지…… 나는

 

나는 반짝거리는 어둔 공기 속

뭔지도 모를 불안에 멀뚱히 서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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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리석음과

글/시 2019. 11. 27. 09:33 |

나의 어리석음과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의 어리석음은
만일 내게 밝은 본성이 있다면
달을 뒤덮은 구름 같은 것이지

나의 어리석음은
구름 낀 야밤 파도 속에서
달을 건지려고 철벅거리는 어부지

나의 어리석음에
돌을 모으는 보석상인처럼 나는 십년을
바깥의 지식만 주워 모으며 행복할 줄 알았지

나의 어리석음에
나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고, 방안 가득한 무덤
그러나 어느새 칼을 쥔 채 내 가슴을 조준하게 되었지

지식이 잃어버릴 수 없는 재산이라고
누가 말했지? 그도 이미 죽어
잃어버렸을 것이다, 대답할 입술도 썩어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일부터 어리석었지
외로움 잊으려 발광했던 일도
나 그저 나를 점점 두껍게 칠했을 뿐이지

―이제 점점 겨울바람도 불어
생선가시 같은 나무들, 낙엽도 없네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같은 생활음
찾던 것은 행복조차 아니었다

이상한 눈을 한 채 태어나
내 본능은 그저 더 많은 지식을
썩고 벌레먹이 될 뇌수에 맹목으로
쌓고 쌓는 것이었다, 지혜는 한 조각도 없었다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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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초겨울

글/시 2019. 11. 25. 18:05 |

도심, 초겨울


초겨울 바람도 날카로운데
나무들은 뼈만 앙상하다
하늘엔 구름도 뜨지 않아
죽음이 골목골목 나다닌다

새하얗게 질린 콘크리트 아래서
이런 계절이면 발광할 것 같아
행인들 텅 빈 유모차 밀고
나는 미친 손으로 뭐라도 주워 모으려

태양이 황금으로 빛나던 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고
대지는 이제 차가운 등뼈
발골된 세상, 내가 쥔 것은 칼

이런 때면 으레 나는 어리석은 일에 미쳐
생명의 소리를 듣겠다고 시멘트에 들러붙지만
모조리 죽었다…… 물소리도 없는 도시
어디선가 결핵환자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폐쇄된 방안에나 있을 일이지
어리석은 발은 거칠게 쏘다니며
담배연기는 숨쉬기도 전에 스쳐지나가고
불안한 마음, 사방이 콘크리트다

이제 내 마음은 죽음에 닿아
그래, 평안해지고 마는 법이지―따라잡힌 발걸음
골목에서 나온 그가 오로지 내 눈 주시할 때
그래, 죽음에 닿아, 담배연기는 깊이 폐로

하늘은 마른 생선 껍데기
거대한 등뼈 위를 쏘다니다 지칠 즈음
세계는 세 가지 정도의 창백한 색깔이 있고
황혼도 없이 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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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 밤

글/시 2019. 11. 21. 23:43 |

알코올의 밤


알코올의과량섭취는지나간이에대한그리움을유발시킬수있다

1.

아버지와 마신 술은 연했고
아버지의 주름은 술보다 진했고
내 눈은 아버지보다도 늙었고
술병은 내 눈동자보다도 늙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새벽마다 독송과 108배로 대신한다고 했다
나는 간만에 부모를 보았다
꽉 막힌 침묵 어느새 입술에 묻었다

안주는 먹자마자 망각되고
다만 알코올만이 의식을 모르고
위장에서 신경으로 중첩된다
밤은 더욱 밤이 되어 굳은 기름처럼 변한다

누가 인류를 증오한다고 했지?
그래, 내가 그랬지, 아니야 사실은
인류가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배꽁초 버리듯이 증오하는 것이다

백탁으로 굳은 기름처럼
세상은 경화되어가고
나는 오물 같은 말을 쏟아내고
혹은 쏟아내지 않거나, 나는

도시가 멸망해가는 게 안 보여?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외치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피하며 집으로 향하고
나는 절명하는 콜타르 멱살을 잡고

아버지, 먼저 들어가시죠, 저는
몇 개비의 담배꽁초를 이 콜타르 위에
집어던지고 짓밟아야만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영령의 눈동자로
휙휙 지나가고, 휙휙 무관심하고
아아, 술인지 멸망인지에 취한 나는
친구 집의 현관문이나 걷어차고 싶다

비 내리는 계절은 멎었나?
그래도 멎었겠지, 이제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생명의, 생명의 물이 아니야
고양이들 빗물 마시고 마비되어 죽어간다

водка! 그것의 어원이 생명의 물이야
그러나 지갑도 어느 진창에 떨어트렸고
스스로 담배연기에 질식해가면서
나는 네온사인 밑에서 꿇어앉는다

알고 보니 말이야,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래층에 알코올중독자 부부가 이사 왔다고 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울부짖는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희희거렸다

도시는 콜타르 색으로 죽어가고
빗물은 포름알데히드 같아……

2.

이 옷은 네팔에서 사고
이 바지는 인도에서 샀지
그리고 난 미국남부에서 산 담배를
입술의 일부인 듯 물고 다녀

괜찮은 길이다, 이대로 가도 나쁠 것은 없다
내던져진 행성에서 내던져진 생명으로
윤리를 내던지고 도덕을 내던지고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가는 것도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그럴 리가 없지
이상한 가격의 소주를 흠뻑 마시고
담배연기로 화하여 걷는 거리에도
그녀는 나타나고야말지

여긴 대륙 끝자락이야
여긴 반도의 화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네가 있을 리가 없는 곳이야
영어로는 페닌슬라라고 하는 브릿지 같은 곳이야

그러나 그녀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바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민족은 잿더미가 되리라”
그런 나라에서 정갈히 머리를 깎고 온 바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나는 이미 잿더미라

아니야, 그래도 난 괜찮은 길을 걷고 있다고
내던져진 행성에서도 구원은 있으니
이번 생은 그렇다 치고, 다음 생은 괜찮겠다고
이름을 떨어트리고 산골로 들어섰으니

그러나 그녀는 왜 나타나고야 마는가?
술에 취하고 담배에 취하고 입술도 잃어버린 내게
저 단발 지나가고, 저 장신 지나가고, 저 미소 지나가고
어둠은 가로등은 형상Eidos을 섞어 혼란을 내게

그만, 그만! 이제 웃어라 시인 나부랭이야
그리움도 사치니 아무것도 망각하지 못하는 너는 웃어라
현실은 지나가기만 하는 환상이니, 너는 얼간이야
시간에 매장된 글쟁이야, 너는 담배 한 대나 더 빼물어라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살아있든 죽었든, 그러니
아냐, 나는 담배 한 대나 더 태우렵니다.

3.

그것은 참으로 괴물 같은 어둠이었어
그 속에 나는 앉아있었고
엉덩이와 다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영원히 내려가는 계단에 동화되었지
내 안경에 뭐가 묻었나?
내 영혼에 뭐가 묻었지
분노의 외침들이 고요히
눈동자를 까맣게 좀먹어갔고
마침내 무관심으로 화하여
행성의 저편에서 순결한 생명이 죽어간들
나는 지금 태우는 꽁초나 마저 태우면 그만인 걸
북인도로 갔다던 그녀는
몇 년이나 잊어버리고 있었더라
정신이 백탁해지고, 굳은 기름
잠들 때가 되었어
멸망할 때가 되었어, 사방을 뒤져
유럽을 떠도는 유령까지 붙잡았지만
후세, 나는 잠들고 싶을 뿐이다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없이
종말의 행성에서
절멸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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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시

글/시 2019. 11. 17. 12:52 |

늑대의 시


도시에서는 더 많은 비가 내렸지
빗방울 하나마다 비치는 감금과 비극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내 마음 포화되어 갇힌 늑대처럼 자기 다리 뜯었네

어둠 내리면 모두 옥상으로 갔지
담배연기에 영혼까지 뿜어지길 바라며
다들 손에는 술병 하나씩 잡고
이따금 난간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친구도 있었네

골목 바닥은 너무 낮아,
영혼만큼 낮아서 그대로 동화될 듯해
달려라, 달려라 숨 못 쉴 높이까지
나 죽으면 연립빌라 옥상에 묻어줘, 티켓값 잊지 말고

비가 내렸지, 사람 마음 미쳐버리게 하는
절반은 인공의 어둠, 절반은 갈구하던 광기
빗방울을 씻어내 광기만 남길 순 없나
알코올은 너무 약해, 75도짜리 광증을 마시게 해

이 옷은 너무 답답하지
단백질, 지방, 뼈 따위로 지어놨으니
아무에게도 어울리지 않지
늑대는 늑골을 찢어 부수고 스모그 사이로 달리고 싶어

비가 내렸지, 도시에선 더 많은 비가 내렸지
하늘은 먹빛이고 도망치기엔 절호의 날씨지
아프다고 옷이 절규해, 속에서부터 찢어지고 있다고
옥상에선 친구들이 연달아 굴러 떨어져

이 행성에 사는 것들은
70억의 인간들이 아니라
70억의 갇힌 늑대들이어라
너무 오래 달을 못 봐 미쳐가는

도시에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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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울음소리

글/시 2019. 11. 14. 15:12 |

가을의 울음소리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하늘은 계속 높아져
돌아오지 않을 듯 해

사랑하는 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는 고개 숙이고
땅바닥 굴러다니는 자갈만
무심을 가장하며 발로 찬다

밤이 되면 또 달이 뜨겠지!
너무 맑고 청명해 투신하고픈
그런 달이 다시 뜨고 나는
투신할 방법을 찾느라 절망한다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누가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까
아무도 듣지는 못했겠지
애당초 울부짖을 혓바닥도 없었으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땅을 본 채
무심한 눈동자 안에서는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채이는 자갈만 들으라고 통곡을 한다

아아,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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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걸렸던 결핵

글/시 2019. 11. 14. 07:18 |

연초에 걸렸던 결핵


마음 둘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네
소나무 가지에 담배연기는 뿜어지고
어둠은 결국 밝을 것이라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걸
저주하던 시기가 있었지
화를 냈던가?
내 몸이 화에 들떴지

죽어야만 할 것 같아……
사람들은 실망하고
나는 수치에 몸부림치고
빚을 갚을 마음은 애당초 없으니

온몸의 피를 길게 빼내면
가을바람 휘몰아치는 창밖에
빛살은 내려오고
나는 갇힌 창안에 누워있겠지

왜 떠도느냐고
괴로우니까다
왜 떠도는 것에 괴로워하냐고
괴로우니까다

연초에 걸렸던 결핵이
다시금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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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노래

글/시 2019. 11. 11. 07:59 |

짐승의 노래


산중에 가을비 내리고
담배연기는 커피의 맛
쓰고 떫어, 혀에 들러붙어
분에 안 맞는 사치의 뒷맛 같구나

내 코트에는 빗방울들
껌처럼 눌어붙지
해는 구름이 가렸고,
나뭇잎이 가렸고, 내 마음이 가렸다

신기한 일이지, 담뱃불은
비 내려도 빨갛게 탄다
다만 떨어진 담뱃재
진흙으로 돌아가 회색반점이 된다

입에서 나는 커피와 담뱃진 냄새에
나는 입을 감추고
황급히 몸을 감추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내 둥지로 향한다

질질 끄는 발걸음을
가을비는 붙잡고 늘어지고
질끈 묶은 머리는 비에 번들거리며
나는 도망치는 산짐승 같아라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만 살아왔으니
짐승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바
유아아아 괴상한 울음을 짖으며
지혜로워질 수 있는 날을 망상한다

가을비, 끈덕지게 쏟아붓고
내 코트는 짙은 적색이 되었지
입에 문 담배는 재만 남았네
유아아아, 둥지마저 버리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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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囚人의 고백

글/시 2019. 11. 6. 20:00 |

수인囚人의 고백


제가 밤에 잠 이루지 못하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야밤에, 깨끗한 것을 찾겠다고
산중을 뒤지는 것은

달의 명징함을 만져보겠다고
밤바다로 뛰어들어 더럽게 취해
야밤에, 곡소리를 내며
파도를 헤치는 것은

신 없는 세상에서 하늘에 닿겠다고
담배로 허파 시꺼멓게 태우며
야밤에, 이상하게 노래하면서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는 것은

그것은, 제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순결한 것을 찾아야만
완전한 것을 찾아야만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만

쓰레기 소각장을 뒤지며
통곡하며 죽은 여인을 찾고
공동묘지를 방황하며
붉은 눈으로 어떤 책 한 권을 찾고

그것은 제가 명령받은 죄인이기에
물거품에서
금강석을 찾으라는
누가 내렸는지도 모를 저주에 묶인 죄인이기에

야밤에, 저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무정한 잡초가 되고 싶다고
수평선 향해 철버덕철버덕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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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꿈

글/시 2019. 11. 6. 13:25 |

새벽꿈


한없이 한없이 그리워하던
그 님 만난 밤
오셨다가 떠나셨다
손짓하는 파도에

파도는 수백억 년분의 손 흔들고
바람은 수백억 년분의 춤을 추고
내 님 바람에 발 담그셨다
파도에 산산조각 피었다

아뢰옵건대
윤회의 바퀴로 들어 가렵니다, 하고
말했나? 말했던가?
억겁의 시간에 귀를 잃어버린 나는 모른다

파도는 손 흔들고 바람은 춤추고
하늘은 짓누르는 회색
비가 오려나? 그러나 그 장면에
비는 어울리지 않아

나 목상처럼 서있고 가슴은 흙투성이
필름을 멈추려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비가 오려나, 비가 오려나
비가 오면 소금거품으로 화하는 님도 젖을까

바람은 파도의 손을 잡고 춤추고
스토리라인 무시하고 손 뻗으려는 순간
퍼뜩 깨었고

이불 위에서 되새겨보니
일생 만난 일도 없는 자에게 손을 뻗으려 했던
처량하고 바보 같은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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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일 때

글/시 2019. 11. 5. 21:59 |

바람 일 때


바람이 일고 사람은 태어나고
태어나고 살아가고 이상을 논하고
좁아터진 지구 사상으로 만석이다
담뱃재 같은 생명 맹목으로 내달린다

시끄러워, 나는 외롭단 말이다
이는 바람마다 살갗 베어
늑골 심장 다 드러나
진흙탕 휘적이며 외롭단 말이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누군가
누군가에게 전할 꽃 한 송이
피우고 싶어 발광하여
발밑에는 무덤뿐

후세는 미래에 죽었고
선조는 과거에 죽었다
나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마른 다리 진창 휘저어대며 죽어간다

그래도 절명할 때
괴로움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림자 전당포에 팔아넘기고
장미 한 송이 사서……

―바람 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다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도 없었구나
고독에 탄식하던 것도 몇 번이던가

참으로 촌극 같은 삶이었습니다
찾기는
누구를 찾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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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그리는 새벽

글/시 2019. 11. 5. 08:59 |

밤을 그리는 새벽


달빛 벌판은 정령들 무덤터
해가 뜨면 즉사한다
풀밭에 녹아내리는 사체는
영령의 에로스

죽음을 동경한다
남았던 희망 이미 사망했다
신발도 의자도 없이
시취 풀풀 나는 지구에 서있다

불만은 없고, 소망도 없으니
절실히 사라지려 할뿐
가을 하늘에는 춤추는 조소
구름들 회색 손잡고 돈다

느린 왈츠 빛나는 무도회복
느린 왈츠 옷자락의 회색 그러데이션

나 올려다보다가
계절은 죽어야한다
계절은 번개처럼 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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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해버린 슬픔으로

글/시 2019. 11. 4. 10:25 |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아침 무렵 잔디에는
슬픔 드리우고
산새들 지저귐은
비극 배우의 노래

태양이 뜨나? 산 능선에는
연옥빛 아우성
산사에서도 나는
온 생물의 뒤통수만 보고 있다

생로병사란 네 글자는
삶의 무게만큼 아파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의자도 없는 슬픔만 남았다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온갖 스러져갈 것들을 사랑하고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그림자들의 생몰을 입 다물고 관망 했네

존재해버린 슬픔에
나 영혼마저 죽는 꿈 꾸며
찻잔에서도 독액의 차가운 비웃음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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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시절

글/시 2019. 11. 4. 10:05 |

십대 시절


나는 싸돌아다녔다
나는 뛰어다녔다! 온갖 골목을
온갖 그림자가 진 길들을

한 손에는 게르만 인이 잘라준 신의 목을 들고
환희에 차서 모독을 입에
게거품처럼 물고 살아있었다!

내 입은 고라니 같아서 모든 말은
기괴한 비명이 되어 가아악 거리며 울려 퍼졌지
듣는 이들은 모두 괴로워하며 피해버렸지

그러나 내게는 희망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고……
…………………………………

세계가 정리되고 말 것이라고 믿어
이빨로 혀를 힘껏 물고
스미어 나오는 철분의 환희를 보았다

죽음을 알기만 하면 되겠지! 밧줄, 알약, 날이 선 쇠붙이들
그러면 위대함을 이 작은 손에 잡겠지!
펜촉으로 세계에 흉터를 새기며 나는 잠드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죽은 자들은 진리의 거칠거칠한 표면을
입술로 있는 힘껏 물고 죽었겠지, 내 방은 무덤
나는 공동묘지 안에서만 십 년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 있었어, 희망이 있었어!
동맥에 칼을 박지 않을 이유를 발견했었어!
아아, 그러나, 괴로움은 덜어지지 않고

그렇다면, 고통이야말로 삶의 본질 아닐까
그렇다면, 본질을 가속시키자, 날 구렁텅이에
한숨의 늪에, 영원히 석양만 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세계로

그래,
정말 정신이 나가버렸군……
보호자님, 이 아이는 이제,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 있었어, 희망이 있었어!
그러나 그것은 실은 광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내 중추신경에 흐르는 흑색화약으로

해를 넘기자 나는 영원히
신발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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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의 노래

글/시 2019. 11. 2. 23:06 |
사슴의 노래


그리운 마음이 드는데
그리울 것이 없어서
있지도 않을 것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이리도 아픈가

가악 가악 괴성지르는
사슴의 노래는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아
가슴 아프다

사슴이 누구를 부르는지
우리가 무슨 수로 알려나만
저것은 아마도 노래가 아니라
비명이로다

아무도 필요로 해주지 않는 해수의
악의로 쪼그라든 비명이로다
나는 가만히 그 비명을 듣고
내 이야기가 들려 울었다

해수마저 산 깊이 도망치고
뿌옇게 갇힌 창 안에
나는 다시 혼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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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노래

글/시 2019. 11. 1. 22:29 |

도시의 노래


도시의 노래가 들린다
산양의 비명 같기도 한
죽은 개의 단말마 같기도 한
그런 노래가 그림자 속에 울리네

옆집 아이가 금붕어를 묻은 자리는
어디였더라? 여하간 이 시멘트의 왕국에서는
꼬챙이로 작디작은 흙들을 찌르다보면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무덤 위에 지어진
자신의 장례식을 예약하는 자들의 왕국은
이제 자신만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심야, 도시가 괴성을 울부짖는 시간
젊은이들은 술 취한 입술로 라라 노래를 부르고
형광색 네온사인들이 금화에 홀려있을 때
도시는 자신의 장송곡을 부른다

이제 모두 잠들 시간이야
나는 더욱이 무너질 시간이야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연명책은 되질 못했다

아아, 썩어가는구나
아아, 무너질 때로구나
인간들이 다음 향락을 찾아 나설 때
도시는 자신의 장송곡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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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떴다고 할 것도 없는 밤


숨 쉬는 일이 금지된 내 방에는
카페인, 니코틴, 타르의 역한 냄새로 가득해
풀뿌리나 석양의 향기 같은 것은 코에 닿지 않고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이곳이 활자에 머무는 죽은 유령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주로 탄식하며 생각하는 것은
폐쇄된 행성에서의 삶에 관한 것으로
아아, 말라가는구나, 존재도 행성도
탈출구는 한 줌의 바르비투르산이로다.

서랍 속의 불화佛畫는 열어보면
삼천대천세계의 진실을 가리킬 지언데
정작 서랍은 열어보면
형형색색 수십 개의 알약에 부처의 손이 가려져있다.

심야의 나는 자동인형 같아라
그림자 속의 사람들이 ‘중국어 방’이 아니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지, 이따위 망념에 젖어
까딱까딱 담배나 태우러 다닌다.

어둠 속에 묘비처럼 서서 줄담배를 피우면
골목마다 비극에 비명에 절망이 있음이 더 잘 들리는 바
으으 추악해라, 떨며 몸을 돌리고
결국에는 내 비극과 비명과 절망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목 베는 신이 상공을 활보하는 것은 분명한데―어라, 아무래도
그놈은 혼자 질식사로 돌진하는 놈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었으니
내일도 일단은 살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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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은 죽어가고

글/시 2019. 10. 31. 19:51 |

나날은 죽어가고


오늘도 참으로 아무 일 없었습니다

오후 5시 초겨울 하늘은
흰색 푸른색으로 바싹 굳었고
단지 안의 사람들은
어미가 새끼 손을 잡고 가는데

단풍이 지려나보다, 누가 말했는데
그 말에 처음 나뭇잎을 보고
정말로 그렇구나, 납득하고는
인간들도 단풍이 들지는 않으려나

평상에 앉아 마시는 커피는
맛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습관처럼 졸린 눈으로 담배를 물며
늙은 개가 묶여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오후 7시, 어둠이 내리면 바깥세상에는
그림자처럼 괴물이 살아
얘야 어서 들어가자꾸나
또 졸린 눈으로 그런 광경을 보고, 암, 그렇지

별도 꽃도 없는 저녁 무렵에는
단풍이 시커멓게 몸부림칩니다
평상에 들러붙은 먹물 같은 나는
이젠 거리에 어미도 새끼도 없구나

담뱃불은 암막에 부유하는 나룻배 같고
구름 낀 천정 밑에는
여기엔 희망도 꿈도 없어, 미래는 니코틴처럼 소화되고
바람은 후우우 루우우 울기만 할 뿐

죽음을 기다리나? 굳이 그렇지도 않겠지
단지 어디선가 밥하는 소리는 들려오고
따뜻한 정종 한 잔 마시고 싶긴 하나―굳이 그럴 일도 없지
후우우 루우우 울며 나날은 죽어갈 뿐

오늘도 참으로 아무 일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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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

글/시 2019. 10. 30. 02:56 |

애가


내륙의 밤에 모두가 잠드는 시간에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 콘크리트만큼 차가운
내가 평생 바라기를 마지않던 육신이
거기에 누워있다면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인형은 누구든 될 수 있다
뇌파가 끊기고 전기신호가 끊기고
우연이 만든 가장 적절한 시간에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할 내가 거기에 있기만 하다면

별빛이 비추는 암청색 거리에
인형 하나가 버려져 있다

별빛이 비추는 암청색 거리에
별빛만큼 조용한 인형이 있다

분명 어떤 어린아이가 흘리고 간 것이겠지
그러나 왜 흘렸는지는 모른다

단백질, 칼슘, 지방, 그런 것들은
무기물보다 달빛에 더 빛나는 성질이 있다

철분, 초산, 스테인리스스틸, 그런 것들은
달 속에 녹아들어 현상을 더 아름답게 한다

인간은 밤에 태어났음이 틀림없다
본성은 평화롭고 광막한 것이다, 마치
당신이 눈을 감는 시간에 어둠이 내리듯이

영령은 떠났다. 그러나 영령이 떠나도
아름다움은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미학이라는 것은
그로테스크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지구가 하나의 묘지라면
거기 묻힌 뼈들의 웅장함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환경주의자들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인형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그 칼슘이 만드는 요철이나
날붙이 끝에 벗겨지는 콜라겐에 대하여
그 침묵하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굳이 뭐라 부르든 상관은 없을 것이다

이제 알았다, 난 인본주의자였다

영혼이나 정신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은 인간에게 에로스가 절제된 사랑을
그러나 아가페라는 성역으로 갈 이유도 없는 사랑을 할 뿐이다
온갖 파토스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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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하지 못한 슬픔에

글/시 2019. 10. 30. 01:32 |

결백하지 못한 슬픔에


맥주에서 짠맛이 났다

없는 돈을 긁어모아 간 맥주집에서
시킨 가장 싼 맥주는
짜디짠 소금 맛이 났다

왜 짠맛이 나나
홍콩 시민들이
최루탄과 진압봉에 맞고 있어서 그런가
아프리카에서
눈도 못 뜨는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어서 그런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에게 매춘부 취급을 받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맥주를 사서 마시고 있어서인가

짜디짠 소금 맛이 나는 맥주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먹어치우고선
짜디짠 마음으로
거리에 나섰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빨간 불은 서글프게 빛나고
나는 그것을 담아
내 안에 빨갛게 옮겨 붙이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미국 남부에서 만든 블루칼라들의 담배는
단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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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정신분열증환자

글/시 2019. 10. 29. 03:02 |

21세기 정신분열증환자


딱히 새벽녘의 도봉구에
그림자 사이로 싯구들이 기어 다니는 것도 아니지만은
새벽마다 가장 어두운 골목으로 싸돌아다니는 건
담배를 태울 핑계입니다

요즘 세상이라 하면 놀라운 것 투성이라
아무도 없을 골목으로 들어가면 어디선가 기계 여성이
이곳에는 쓰레기를 버려선 안 된다고 하기에
거기에 누워 잠을 청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 네모난 위장에서는 열다섯 개하고 네 알의 알약이
달가닥거리며 저들끼리 음모를 꾀하니
이 새벽의 방황도
내일 일어날 나는 기억하지도 못 하겠지요

친구에게는, 오버도스의 외출이야, 하고는
별 다른 설명도 없이 나와 버렸으나
누구든 제 곁에 있는 자들이란 익숙해지거나 떠나버리기 마련이어
무슨 생각으로 굳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아아, 갈증 나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물을 마셔도 술을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이란
분명 약물의 부작용이거나 정신의 갈증일 터인데
그런 것이 구분이나 되는 것인지요

절망했느냐 하면 굳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녁에는 까치가 울었고 작은 아이가 제 담배연기를 피해갔고
내겐 아무래도 人間이 없는 것 같아, 되뇌다가
이런, 내 안에는 정말로 인간이 없구나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무어, 은혜롭게도 프로이트 이후에 저는 태어났으니
정제된 리튬 따위의 화려한 알약들로 저는
자아에 대해 착란하는 일을 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만 수치를 끝내는 약은 아직 의사들이 개발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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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대리인의 수기


8월 26일.
 오늘은 김가네에서 사온 김밥이 터져있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한 줄에 4500원이나 하는 김밥이 포장될 때부터 터져있다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모두 사회인 실격이다. 김밥집에서 터진 김밥을 파는 사회 따위 애당초 없는 게 낫다.
 내가 돈이 썩어 넘쳐서 한 줄에 4500원 하는 김밥을 사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무 김밥이나 먹을 셈이었으면 한 줄에 1000원하는 김밥으로 족하다. 김가네는 김밥 전문점이다. 김밥 전문점이면 김밥을 마는 사람도 김밥 전문가여야 한다. 동네 아줌마 데려다가 김밥 말게 해놓고 김밥 전문점이라고 하지 말란 말이다. 그러나 이따위 상황이 길마다 펼쳐져 있는 것이 현실 사회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이 인류가 5천년에 걸쳐 만들어낸 문명사회다. 엿이나 먹으라지.
 생각해보니 오늘은 한 일이 김밥 사온 것 밖에 없다. 오후 3시 쯤 일어났던 것 같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잘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매일이 이런 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터진 김밥에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일 수도. 당장은 수중에 돈이 좀 있다. 그래서 김가네에 가는 사치도 부렸던 것인데, 결국은 이 꼴이다. 망할 자식들, 어차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다면 김밥이 아니라 공깃밥을 샀을 거다. 모두들 책임감이 결여되어있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놈들뿐이다. 신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성경을 보면 신은 인간들이 퇴폐와 향락에 좀 젖었다고 불벼락을 내리던 놈이다. 그런 놈이 지금 세상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만약에 있다면 분노조절장애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서 불벼락을 못 내리는 것이겠지.
 내일도 엿 같은 날일 것이 분명하다. 다만 김가네에는 가지 않겠다. 그럼 터진 김밥을 돈 내고 사먹는 엿 같음은 겪지 않아도 되겠지.

8월 27일(새벽).
 맞은편 건물의 늙은 부부가 또 지랄이다. 저 영감탱이는 미친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항상 새벽 1시 30분만 되면 지랄병이 도진다. 아마도 밖에서 술을 먹고 그때 들어오는 것 같다. 나이는 잘 모른다. 사실 얼굴도 모르지만 목소리로 보아 70대는 되었을 것이다. 매일 이 시간만 되면 술에 꼴아 자기 마누라한테 쌍욕을 하는 게 저 영감의 취미다. 왜 목을 매달고 죽어버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렇게 마누라를 증오하면 차라리 칼을 들고 한바탕 한 뒤 9시 뉴스에라도 나오든가 말이다. 마누라라는 할망구도 똑같이 제정신이 아니다. 물론 제가 먼저 싸움을 시작한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영감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창문을 통해 들리는 두 미친 노인들의 육두문자를 듣노라면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지들끼리 쿵짝이 맞아서 같이 살기 시작했을 것인 인간들이 서로에게 외쳐대는 욕설은 그야말로 부모 죽인 원수끼리 같은 집에서 사는 것 같다. 저 늙은이들에게 자식이 있을 것인가 생각해봤는데, 아마 자식이 있다면 그것도 똑같이 미쳤을 것인즉 이 소음공해는 결국 자식이 노부모를 죽이는 것으로 해결이 될 것 같다.
 30분 쯤 지나면 결말은 언제나 똑같다. 너무 술에 꼴아 고래고래 욕설을 외쳐대는 게 지치면 영감탱이 쪽이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마지막으로 <내일 아침밥을 해둬라>고 하고선 더 이상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남자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할망구는 자빠져 자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에게 10분 정도 ‘개새끼’, ‘시발새끼’ 고함치다가 똑같이 조용해진다. 저것들은 죽어야한다. 만일 누가 나한테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저 노망난 늙은이들부터 언급한 뒤에 나머지 69억 9천만여 명의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가끔 ‘늙으면 죽어야지’하며 신세 한탄하는 늙은이들이 있는데, 내 맞은편 집 노부부에 대해서라면 제발 좀 추잡스럽게 계속 살지 말고 죽어줬으면 한다. 스스로의 삶이 수치스러운 것도 모른다면 차라리 남의 손에라도 죽어야한다. 제기랄, 인간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추하고 더럽고 그런 주제에 끈질겨서, 말하자면 마치 서로 피를 빨며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고 있는 거머리들 같다. 지금은 탄탄하고 잘나 보이는 인간들도 애초에 근본은 모조리 폐기물덩어리 같아서, 늙으면서 그 유독물질이 점점 피부 가까이 퍼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겉보기에도 벌레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 덕분에 오늘도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개 같은 기분이다.

8월 27일.
 오늘은 하루 종일 논문을 썼다. 새벽에 있었던 기분 더러운 소음 때문에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다가 맨바닥에서 잠들어, 오후 늦게 깼다. 논문은 인간의 다면성을 전제로, 개인이 타인을 얼마나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꽤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완성된다고 한들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논문을 쓰면 신문의 칼럼란에 투고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정작 신문을 읽어보면 칼럼란에는 별 지적장애인이 쓴 것 같은 글들만 가득한데, 그런 것들이 버젓이 게시되어있다. 중요한 건 그런 지적장애가 있는 논평들의 저자가 죄다 교수나 박사, 혹은 정치인 등등이라는 것이다. 내 학력은 중졸이다. 원고를 들고 신문사로 쳐들어간다고 한들 편집부 입구에서 되돌려 보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신문사나 출판사에 투고해본 일이 없고, 집안에는 나밖에 읽어보지 않은 원고들로 가득하다. 만일 누가 나더러 왜 논문을 쓰냐고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단을 마무리 짓고 바람이 쐬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10분 정도가 걸렸다. 신경안정제를 어디다 뒀었는지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걸 뒷주머니에 넣어두지 않으면 바깥세상에서 내 손발은 몹시 떨리고 심장은 빈맥을 일으킨다. 결국 찾았고, 난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지금은 여름이라 밤늦게까지도 행인들이 많다. 집 앞에서 어떤 젊은 여자와 마주쳤는데, 지나치고 나서도 그 여자가 계속 날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꼴은 그다지 모범적이지 못하다. 머리는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산발이고 마지막으로 면도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제기랄! 저― 저 젊고 활기찬 육체를 가진 여자는 마치 도망 나온 산짐승이라도 보는 듯이 날 쳐다보고 있었겠지! 불안을 숨기기 위해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지만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이, 팔의 각도라든가 손목의 움직임이라든가 머리의 방향 따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멍청한 여자가 날 보고 있건 어쨌건 그게 무슨 상관이기에! 그러나 나는 결국 발걸음을 빨리하며 골목의 어둠으로 뛰어들었고, 아무도 없고 이상한 소음과 침묵만 가득한 골목 끝자락에서 연신 허덕거렸다.
 분노와 악의가 심장의 구렁텅이에서 부글거렸다. 그러나 고함을 칠 수도 뭘 어쩔 방도도 없었다. 애꿎은 담배꽁초만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뭐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산발적으로 장작도끼니 적출이니 하는 소리를 했던 것 같다.
 해가 질 무렵이라 가로수의 나뭇잎이 암청색에 주황빛이었다.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 그것들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것들뿐만이 아니라 그 커다란 가로수도 결국엔 송두리째 시체가 되어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듯 했다. 그러자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이 지구가 수십억 년분의 시체더미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야 마침내 담뱃갑에서 계속 담배를 꺼내 무는 짓을 멈출 수 있었다.
 아무튼 집에 돌아오자 오늘은 글이라도 썼다는 사실이 나를 좀 안정시켰다. 그러나 논문을 쓰면서 물마시듯 커피를 마셔댔기 때문에 밤이 지나 새벽이 되어도 안면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망할. 누가 제발, 내가 왜 안 죽고 살아있는지를 좀 알려줬으면 싶다.

8월 28일.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다. 빈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광과민이 심하고 몸의 균형 감각이 잡히지 않는다. 딱히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걸을 때 절뚝거리며 걷는다. 어느 근육에 힘을 줘야 몸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지를 까먹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건 그다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오늘 담배를 사는 데 수치스러운 일을 겪었다.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살 때 커피를 함께 사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근처의 아파트 단지를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세 개비 째 피웠을 때 커피를 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슈퍼마켓으로 갈 수는 없었다. 물론이다, 이건 체면의 문제다. 만일 내가 슈퍼마켓에 다시 가서 담배냄새를 풍기며 멍청한 얼굴로 캔 커피 하나를 집어 든다면 계산원은 날 기억력도 나쁘고 주의가 산만한 바보로 알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빌어먹을 늙은 계산원 같으니라고. 그 40대 여자는 꼴에 어울리지도 않는 노란 머리를 하고 있다. 자기가 아직도 젊은 줄 착각하는 천치 같은 여자에게 몇 분 꼴로 슈퍼마켓을 들락거리는 인간으로 보일 수는 없다. 다른 마켓에 가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내 집 주변에는 가게가 그리 많지 않다. 8분은 족히 걸어야 할 것이다. 결국 나는 커피 사는 것을 포기하고 그 망할 계산원의 버러지 같은 노란 머리에 대해 성을 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안압이 높은 것 같다. 빛을 쳐다보는 게 괴롭다. 광과민이 날 괴롭힌다. 화가가 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고흐의 소용돌이 화법은 이비인후과적 증상과 황시증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생각해보면 후세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병리적 증명을 가지고 미학을 논하며 감동한다는 것도 웃다 죽을 일이다.
 오늘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쓰고 싶지 않았다. 아니 거짓말이다. 난 항상 글을 쓰고 싶어 한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미쳐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계단참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이 연립빌라의 통로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깨가 불쑥 솟으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는 것 보다는 낫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그것이 진실인지 내 과민인지는 제쳐두더라도―을 느낄 때마다 뇌가 대각선으로 핑핑 돈다. 그런데 거리에 나가면 거의 3초 간격으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계단참 하니까 말인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이 연립주택의 전셋집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서울에서 얻은 지상층이다. 집은 4층이고, 건물도 4층이 최상층이다. 계단참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옥상창고가 나온다. 그런데 분명히 그 옥상창고는 더 넓고 지저분하며, 온갖 상자와 폐기물 따위로 가득한 공간으로 연결됐었다. 수십 년간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5cm는 내려앉은 미닫이 창문도 하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황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오늘 계단참에서 담배를 피우다 올라가보니, 옥상창고는 5평도 되지 않는 공간으로 사방이 꽉 막혀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난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평생을 반지하에서만 살았다. 옥상창고 따위 갈 일도 없었다. 다른 건물과 혼동한 것이 아니다. 내 기억이 잘못됐단 말인가? 이젠 뭘 믿어야할 지도 모르겠다.

8월 29일.
 파(破)다. 파! 빌어먹을! 이 따위 논문은 도대체 무어하러 쓴단 말인가? 인간의 다면성을 전제한 개인이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의 일방성? 이 현학적은 타이틀은 도대체 뭐야? 나는 이걸 완성해서 누군가, 그러니까 독자나 평론가에게 기립박수라도 받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그건 끔찍하고 치졸한 일이다. 애당초 모든 화가는 닫아놓은 옷장 안에다가만 그림을 그려야 하고,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독방인 방음실에서 나오지 말아야한다. 인간들의 박수갈채는 한 인간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버린다. 가엾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평가할 줄도 모르는 콧대 높은 왕으로 만드는 동시에 어깨가 좁은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이 병신 같은 수기는 또 뭐란 말인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면서, 문법과 표기를 딱딱 맞춰서 쓰고 있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그래, 난 내 추악한 속마음을 알고 있다. 내 비열하고 치졸한 마음을 알고 있단 말이다. 만약 언젠가 어떤 독자가 이 수기를 읽는다면, 나는 그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감명을 주려는 비겁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나야말로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 혈안이 되어있는 노예다!
 나 스스로를 가둬야한다. 순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렇다면 더욱 날 가둬야한다. 세상으로부터 날 가두고, 집으로부터도 날 가두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날 가둬서 차라리 길거리에 흩날리는 신문지 같은 존재가 되어야한다. 마침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이런 시기에 한강 굴다리 밑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다. 아니 보다 더운 계절이었던 것 같다. 침낭 한 장과 참치캔만 가지고 한 달을 살았었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인간애를 느낀 계절이었다. 굴다리에 스프레이 캔으로 낙서를 하러 오는 젊은이들이 푼돈을 주거나 여러 가지를 묻기도 했었다. 아마도 내가 적개심 없이 인간을 대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가진 게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 생존하려는 욕구조차 없었던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8월 30일.
 창문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아침 8시만 되면 프레디 머큐리 흉내를 내면서 노래를 부르는 미친 새끼가 있다. 프레디 특유의 창법을 구사하면서 더럽게 못 부르는데, 매일 아침 8시만 되면 그 지랄을 시작한다. 분명히 사람들의 아침 시간을 방해해야겠다는 숭고한 결심이라도 한 것일 터다. 오늘 난 안 그래도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친 상태였기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났다. 도대체 저 아파트의 관리인은 뭘 하는 것이란 말인가. 저 망할 새끼도 분명 에이즈로 죽고 말겠지.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내 치료비를 끊겠다는 것이다. 난 항의하고 싶었지만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그래서 이대로 병세가 악화되다가 병동으로 옮겨가면 좋겠냐는 말이나 간신히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굉장히 화를 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치료비가 많이 들어 가냐는 것이다. 나도 모른다! 내가 병에 걸리고 싶어서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일부러 치료비가 많이 들어가는 병에 걸린 것이냐는 말투였다. 나는 도무지 할 말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말투는 내 짜증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어머니의 부모로서의 의무와 감정을 툭툭 건드리는 단어만 사용해서 그녀를 비꼬았다. 그녀는 완전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그리고 덕분에 나도 정말로 죽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휙 사라지면 그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욕망은 우울증이 정신분열증으로 진화할 때 쯤 사라졌다. 죽고 싶다고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사실 죽을 마음도 없다. 그냥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을 스스로에게 제시나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절망했을 때에나 상황이 나빠 보이는 것이지, 사실 상황은 단 한 번도 나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코미디의 법칙에 따르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웃음이 발생하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온 세상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이 실소나 키득거리게 하는 코미디에 불과하다. 비극 같은 건 애당초 없다. 어머니가 치료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나는 더 이상 병원에 가지 못할 것이고, 그럼 나는 내 희극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없다. 아무 문제도 없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이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신보다 더 높이 받들고 있는 돈이라는 것도 한강 굴다리에서의 생활에 의하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굶으면 되고 굶어 죽게 되면 죽으면 된다.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는데 내가 굶어 죽는 아침에 저 빌어먹을 가짜 프레디 머큐리가 또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면 그 새끼 목구멍에 칼집을 내고 죽을 것이다.

8월 31일.
 도무지 책을 못 읽겠다. 대략 일 년 전쯤부터 그렇다. 활자를 못 읽겠다는 건 아니다. 활자는 정확히 시각을 통해 내 뇌수에 새겨지고 있다. 문제는 내 인간혐오증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학술서나 논문 같은 건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과 시를 못 읽겠다. 소설에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작가의 의도야 어쨌건 간에,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참을 수 없이 증오스럽다. 나의 비대한 상상력도 한 몫 하는 것이다. 서술에 나오는 인물의 대사라던가 행동, 그들이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들을 읽게 되면 내 머릿속에서는 그 인물의 아주 정밀하고 지엽적인 부분까지 떠오른다. 그러면 어느 인물이고 상관없이 멍청하고, 추하고, 기만적인 것으로 보여서 날 분노케 한다. 그러면 몇 줄인가를 더 읽다가 그냥 책장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삶 따위 전혀 알고 싶지 않다. 그것이 현실에서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 보이는 수십 개의 마스크들이든,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가공의 인물이든, 난 인간의 삶 따위는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 같이 모순덩어리에다가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지도 못한다. 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설령 화자가 <인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이 된다. 언제부턴가 지하철 플랫폼에 전업 작가부터 아마추어들까지 그들이 쓴 시가 중구난방으로 붙어있는데, 제발 좀 그만해줬으면 한다. 나는 그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싶을 뿐이지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찬미나 읽으려고 홈에 들어간 게 아니란 말이다.
 사실 내가 아직도 문제없이 읽을 수 있는 시인이 둘 있긴 하다. 그것은 랭보와 로트레아몽이다. 랭보가 10대 후반에 절필했다는 점이나 로트레아몽이 젊은 나이에 요절해버렸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글씨로 반란과 퇴폐와 증오를 노래한다는 것이다. 19살 때까지 쓰인 랭보의 시들은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고 싶었으나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발악이고 불경하게 악쓰는 구절들이다. 로트레아몽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아직도 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두고 이게 정말 시학에 들어맞기나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맥락 없는 저널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자면, 내가 로트레아몽에 몰입하게 된 건 첫 부분의 몇 소절이었다. <보름 동안 손톱이 자라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활짝 열린 눈을 가진, 윗입술의 위에 아직 아무것도 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침대에서 난폭하게 끌어내려, 그의 아름다운 머리털을 뒤로 쓸어주면서, 그의 이마에 그윽하게 손을 내미는 체하는 것, 아, 그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 다음, 그가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긴 손톱을 그의 부드러운 가슴에 박아 넣는다.>, <장밋빛 얼굴의 어린애를 껴안을 때면, 그는 면도날로 그 아이의 뺨을 떼어내고 싶어 했으며……>.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에서 구원을 얻을 때 나는 이 두 시인에게 구원을 얻었다. 그들이 쓰는 것은 아름다운 시였지만, 분명히 언어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특히 로트레아몽은 내게 <굳이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내 온 정신을 미라처럼 칭칭 감고 있던 죄책감과 도덕에의 강박이 일순간에 다 불타 없어졌다. 랭보가 데뷔한지 2년 만에 절필한 것도 굉장한 얘깃거리다. 그는 애초에 남들이 말하는 시인이 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미학을 찾지만 일단 그걸 찾아서 표현하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다. 샐린저는 이제 글쓰기가 자신의 종교가 되었다고 한 뒤로 단 한 권의 책도 정식으로 출판하지 않았다. 랭보가 왜 아프리카로 갔을까? 그야 유럽대륙은 너무 춥고 공기도 씁쓸하니까. 그는 아마도 병에 걸려 태양에 타죽어 버리려고 인류의 고향으로 간 것일 터다.
 젠장,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이 수기에서 대체 내가 누구에게 뭘 가르치려는 거지? 나는 전두엽 절제술이 필요하다. 내 라면사리 같은 뇌 쪼가리에서 <독자>라는 개념을 완전히 삭제해야한다. 18살 때 시학선생님이 말하길 내 최대의 비극은 스스로 작가이며 독자이며 평론가인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끝나지를 않는 저주였다.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 버려진 다육식물이 되고 싶다. 그러면 난 누가 나에게 물이나 비료를 주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고, 수명이 다 할 때 까지 공기 중의 수증기나 빨아먹으면서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날 보러 오지 않을 것이다.
 쓰다 보니 생각났는데, 2년 전 즈음일 거다. 동두천의 바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다가 어떤 금발의 키 큰 흰둥이 미군이랑 시비가 붙어서 쫓겨났을 때,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로 들어갔는데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몰라도 웬 소주병이―아직도 내가 그 텅 빈 소주병을 왜 갖고 다녔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날 난 소주를 안 마셨다. 바랑 클럽에서 럼주만 오라지게 마셨다― 손에 들려 있기에, 스크린 도어에 붙은 어머니가 어쩌고 자신의 4살 먹은 딸의 웃음이 저쩌고 가을에는 코스모스인지 치매 걸린 하마 궁둥인지가 피어나네 하는 시민참여작 시에 냅다 집어던졌다. 그때야 그 멀대 같은 흰둥이한테 맞은 광대뼈가 시큰거려서 자지러지게 웃는데 달려온 공익요원들이 날 경찰서에 처넣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꼴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사적으로 해결하자며 빗자루와 청소도구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깨진 유리병들을 다 담아 치운 뒤에 그 과체중 요원들에게 넘겼다. 난 경찰 따위는 딱 질색이다. 경찰은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혐오하는 인종인데, 첫 번째로 혐오하는 건 시비만 털리면 바로 경찰 찾는 습관이 있는 겁쟁이 새끼들이다. 아무튼 그 과체중 요원들은 적당히 나태했고 적당히 사람 좋은 것들이었다. 내가 저지른 걸 내가 수습했으니 가 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난 나보다 한참 어린, 스무 살이나 처먹었을까 싶은 복부비만청년들―평발이나 허리디스크였을 지도 모르지. 누가 알겠는가―에게 무슨 연극하듯이 과도한 감사를 전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집에 도착할 때 까지 지하철 안에서 <사노라면>을 열창했던 것 같다. 씨발.

9월 1일.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그리도 간단했다. 술을 마시면 되는 것이었다. 난 지금 5잔의 브랜디 덕분에 홀든 콜필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낱낱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 완전한 관조자의 입장으로 저 문제아의 뇌 속을 헤집어보고 있다. 써니! 써니라니! 어쩌면 그렇게도 창녀 같은 이름이란 말인가! 나는 내 시상하부에 알코올을 똑 떨어트리고 써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알비노증이라도 걸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창백하고, 골격이 다 튀어나오는 뉴욕의 하층 창부. 눈에는 비웃음이 들어있다. 자신을 사는 남자들 모두를 비웃으면서 다리를 벌리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써니는 호텔 옥상에서 온갖 멜랑꼴리한 자기모순 투성이의 감정에 사로잡혀 몸을 투신하겠지. 천치 같으니라고. 사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자본주의가 적용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천치가 된다! 도도하게 외투를 입고 푼돈 5달러를 받아든 채 방을 나가는 써니. 써니. 나는 당신을 내 청춘의 어딘가에서 본 일이 있다.
 쁘로하르친 씨도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다. 아무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갖지 못하다가 왜소하게 죽어버린 노인을 나는 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할아버지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는 것이 떠오른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양반이었지만 더 술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겨울 빙판을 밟고 넘어져 골반 뼈가 부서졌었지. 그 뒤로 할아버지는 운신도 못하면서 점점 더 괴상한 인간이 되어갔다. 간호사들이 채혈을 하러 오면 이 마녀들이 자기 피를 갖다 팔려고 한다며 발악을 했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어떻게 됐었던 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건 오로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뿐이었는데, 오후 8시가 넘어가면 본래의 입을 꾹 다문 주철로 만든 인형처럼 되었다. 그러다가 당시 어렸던 내가 다가가면 입술이 납으로 되어있어 몹시 움직이기 어렵다는 듯이 힘겹게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 쁘로하르친 씨처럼 침대에서 거액의 돈이 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 잠깐. 술에 취했더니 아무 관련도 없는 얘기가 계속 나오잖아. 제기랄, 난 분명히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술 따위를 처먹는데 돈을 썼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가 지독히 미워질 것이다. 담배야 생필품이라지만 술은 그렇지 않다. 책 따위 것, 안 읽으면 어떻단 말인가. 속이 부대낀다. 잠깐 구토를 좀 하고 와야겠다.
 알고 보니 오늘 먹은 것이 브랜디 다섯 잔 말고는 없는 모양이다. 구토를 한 변기물이 너무 깨끗해서 성수로 써도 될 정도다. 뱉거나 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침을 뱉든 담배연기를 토하든 구토를 하든 대소변을 배출하든 눈물을 토하든 땀이나 정액을 각 기관에서 토악질해버리든 내부에 있는 것을 바깥 세상에 내다버리는 것은 뭐든 간에 기분 좋은 일이다―한 가지 절대로 경험해볼 수 없는 예시가 있는데, 그건 출산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여성들이 출산 직후에 웃긴 하더라―. 몸이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난 단식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내장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다면 해봐도 좋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한 적 있다. 애당초 인간의 몸은 내부에서 뭔가를 너무 많이 만든다. 자체 생산도 정도가 있는데 심지어 음식물까지 아가리로 처넣으니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은 고물 태엽시계처럼 되는 것이다.
 그래, 체질상 쉽게 비만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알고 있다. 누구 말처럼 하루 한 끼만 먹는데도 뒤룩뒤룩 살이 찔 수도 있겠지. 세상은 신비로우니까. 그러나 나는 고도비만인 인간이 내 눈앞에 있으면 이성을 잃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이미 인간이 이 행성에 70억 명이 넘게 있는데 왜 각 개체까지 부피를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냐. 그렇게까지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가? 그래, 이 사막 한복판에 버려놔도 40일간 자가 지방연소로 살아남을 대단한 자식아. 다른 게 아니라 인간들이 그렇게 가시적으로 보일 정도로 생명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짜증을 돋운다. 당신들이 자궁 속에서 어머니 내장 걷어차면서 놀던 시기부터 니들 뒤통수에 붙어있던 게 바로 다름 아닌 죽음이다. 근데 그 오래된 친구와 만나기가 싫어서 고기 가는 기계마냥 연료를 아가리에 처 붓고 있단 말이냐. 아니 그래, 솔직히 내가 고도비만 인간들을 보기만 하면 짜증이 나서 말도 안 섞고 도망쳤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내 추리와는 달리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숭고한 목적을 위해 세포 총량을 늘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글쎄, 뭔지는 모른다. 계속 체세포를 늘리다가 분열한다든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난 하루에 한 끼 먹는 것도 기껏 깨끗하게 만들어놓은 내장을 더럽혀야만 하냐고 쌍욕을 하면서 먹는 인간인데. 씨발! 모른다. 애당초 화만 지랄같이 나지 관련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대통령이면 전 세계 사람들을 불임으로 만드는 무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할 텐데. 인류재생산이라니, 크로넌버그가 고안한 괴물들보다 더 추악하게 생긴 새끼들이 재생산은 무슨 얼어 죽을 재생산.
 취한 것 같다. 자야겠다.

9월 2일.
 전화 때문에 오후 2시에 깼다. 일어나자마자 끔찍한 기분이었다. 첫째는 숙취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망할 놈의 전화기 용도 때문이다. 난 전화가 올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다. 굳이 말하자면 어렸을 때 어머니 휴대전화로 포르노를 봤는데 통화료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전화벨이 울리는 내내 그 기분이다. 아무튼 발신인은 병원의 간호사였다. 올 때가 지났는데 왜 오지 않냐는 것이었다. 내 대답이 걸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모르겠다’는 말이 튀어나간 것이었다. 이유야 많지.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치료비를 끊었으니 이제 병원에 가려면 내가 가진 돈에서 할애해야하는데, 애당초 이 돈은 하루 한 끼 먹고 물만 마셔도 한 달이면 없어질 돈이다. 그런 돈을 양주 먹는데 쓰다니, 내가 미친놈이지. 여하간 돈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생각해보니 없다. 이유가 많지 않고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이유였다. 빌어 처먹을 놈의 정부는 지난 정권 때 두 배로 올린 담뱃값을 내리겠다고 공약을 걸어두고서는 도무지 실현할 생각도 안 한다. 커피는 말이다, 이것에 대해선 내가 할 얘기가 좀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10년 전만해도 밥 먹고 숭늉이나 처마시던 인간들이 도대체 단체로 무슨 지랄병에 걸렸는지 케냐 100%가 어쩌고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어쩌고 에스프레소에서는 산미가 돌아야 한다는 둥, 아무래도 대한민국 전역에 뇌랑 관련된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돈이 썩어 넘쳐서 지 입으로 들어가는 게 사향고양이 똥인지 사향고양이 오줌인지도 모르면서 사치 부리고 있는 척 좀 해보고 싶다는 거야 내 알 바 아니다. 문제는 그 천치들 때문에 한 캔에 300원 하던 캔커피가 지금 1000원 대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당히 말하겠는데 난 커피에서 바닷물 맛이 나도 상관없다. 난 그저 300원으로 카페인 60mg을 사고 싶을 뿐이란 말이다. 브라질 본토에서 공수를 해왔건 옷장 안에 백열전등 매달아놓고 키웠건 쥐똥만큼도 상관 안하니까 내 작업을 좀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 카페인이 없으면 일이 안 된다. 하루에 18알 씩 집어삼키는 약들이 날 인간으로 붙잡아놓고 있다는 거야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사람을 정말 멍청하게 만든다. 처음으로 투약을 시작했을 때는 3시간이나 꼼짝도 않고 빈 페이지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일도 있다. 머릿속에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입술이 바싹 말라서 하루에 도대체 몇 리터나 되는 물을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수면시간을 하루에 20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쯤 되면 이미 치료목적이 아니라 사고나 치지 말라고 약으로 재워두는 격이다.
 물론 투약 초기의 얘기고, 지금은 내성도 어느 정도 생겨서 별 문제는 없지만…… 커피와 담배가 아니면 작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난 커피와 담배를 이용해서 나름대로 약물치료와 작업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아무튼 돈이 없고, 간호사한테는 모르겠다고 말했고, 당연히 간호사는 되물었다. 모르다니 도대체 뭘 모르겠냐는 거냐고. 모르는 거야 모르는 거지 어떤 걸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그걸 어떻게 아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영원순환 같은 헛소리를 할 기분도 아니었고, 그저 당분간 병원에 못갈 것 같으니 담당의에게 메모나 전해달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끈질겼다……. 지속적인 치료가 이어지지 않으면 위험한 병이라는 걸 환자분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갑자기 투약을 끊으면 금단증상 때문에 ER에 실려 갈 수도 있다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돈이 없다니까 이 아가씨야.
 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슨 화가 나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달력을 보니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어제 전화를 하지 못한 거로군. 얼마 전에 쓰다가 내팽개친 논문이 마구 구겨진 채로 발치에서 뒹굴대고 있었다. 돈……. 애당초 이런 걸 쓰기 시작한 이유가 뭐더라? 살면서 한 번도 글 팔아서 돈 벌어본 일이 없는데. 아, 아니다. 두 번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작은 이모가 대학원생이었는데, 바쁘다고 논문 대신 써주면 오만 원을 주겠다기에 써준 적이 있다. 두 번째는 스무 살 때, 친구―그 때는 나도 친구가 있었다―가 어린이용 학습 애니메이션 감독 보조였는데, 스무 살이 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약에 쩔어 굴러다니기만 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시나리오 일감을 줬던 것이다. 3시간 만에 시나리오 세 편을 써서 15만원을 번 굉장한 일이었다. 나중에 방영이 됐을 테지만, 보진 않았다. 난 살면서 TV를 가져본 일이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 뭘 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아무것도 안했다. 오후 9시까지 그 자리 그대로 앉아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눈으로는 굴러다니는 원고 조각을 보고 있었다.
 달리 뭘 하겠는가. 그나마 지금 내가 이렇게 수기라도 쓰는 것이 살아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9월 5일.
 집안이 난장판이다. 전자레인지는 앞 유리가 날아갔고, 냉장고는 충격으로 온통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내 주먹은 피멍투성이라서 원래 어떤 색깔이었는지 기억도 못 하겠다. 손뼈에 금이 간 것 같다. 타자를 칠 때 중지가 움직일 적마다 싸한 통증이 느껴진다.
 9월 3일에 어머니가 집에 왔었다. 예고도 하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쳤다. 얼굴을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널 볼 때마다 짜증이 치민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애매하다. 머리에 피가 몰리면 항상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이 들 때쯤엔 울부짖으면서 집안에 있는 것들을 전부 깨부수고 있었다.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왔던 걸까? 그러고 언제 돌아간 걸까? 깨진 사금파리들 위에 엎어져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리조각을 밟은 채로 돌아다녔는지 방바닥은 핏자국 투성이였다. 그게 9월 3일 저녁이었다. 그 뒤에 나는 서랍을 뒤져 남은 수면제를 싸그리 모아 삼키고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 같은 방 안에 자빠졌다. 정신의 사지가 잘려나가는데 13분이 걸렸을 것이다. 빈속에 약을 처넣으면 항상 딱 13분이 걸린다. 그리고 관절염 걸린 개새끼처럼 사지를 뒤틀다가 헛소리를 한다.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날 리가 없지. 다만 벽지에다가 피로 뭐라고 써놓았는데, ‘까마귀는 부자 위에만 난다’라고 의미도 알 수 없는 개소리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깨보니까 9월 5일 오후 3시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차피 뭘 하든 패배자의 넋두리가 될 것이고, 내 삶이란 세상에게 민폐나 끼쳐대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천 년 정도 잠이나 잤으면 싶은데, 이미 이틀이나 자버려서 졸리지도 않다. 만일 정말로 천 년을 잘 수 있으면 깨어난 뒤 이름이라도 바꾸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할 텐데. 시야가 뿌옇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도 사물이 명확하게 보이질 않는다. 아마 수면제의 부작용일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나아지겠지.
 그래도 나는, 도대체 뭘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바닥에 난 자상에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고 주먹에 안티푸라민을 발랐다. 효과가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그냥 하는 것이다. 내가 자살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그 이유라는 게 언제나 불명확하긴 하지만, 존재하긴 한다. 그리고 앉은 채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아주 개판이었다. 뭘 어떻게 손을 댈 의욕도 나지 않았다. 앞으로 전자레인지는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돌연 들었다. 그래, 아마 어머니는 이렇게 될 걸 원하고 내 집에 침입한 거겠지.
 절뚝거리며 계단참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나뭇잎들은 아직 초록색이었다. 그러나 곧 낙엽이 될 것이다. 담배를 다 피운 뒤 옥상창고로 올라가, 분명 철제문이 있었던 벽을 두들겨보았다. 그냥 벽이었다. 허탈한 기분과 짜증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손에는 기름때와 짙은 먼지가 묻었다.
 오늘은 잠을 자지도 못하겠지. 약도 없고, 이틀이나 죽은 듯이 기절해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기를 쓴다. 앞날은 언제나 불행 투성이다. 현재가 비참하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토요일에 약이 하루치 밖에 안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세상이 무너지고 자신이 인간으로 있을 수 없으리라는 극악한 공포에 휘말려버리는 인간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뭘 어쩔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어떻게 되어가든 손을 놓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기록이나마 해가면서.

9월 6일.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평소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엉겨있던 사고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아무튼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통상 인간의 길은 믿음으로서 시작된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부렁이다. 인간의 길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당장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발끝에서 땅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가능성을 불신함으로서 목적지까지 걸어갈 수 있다. 하늘에서 뜬금없이 벽돌이 떨어져 머리에 맞는 바람에 비명횡사할 가능성을 불신함으로서 거리에 나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사상과 신념을 갖는 게 아니라, 세계에 포화된 무수한 가능성을 불신하고 그 중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고르는 것으로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 누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가능성이 0%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무의식에서부터 불신한다. 어느 날이랄 것도 없이 예고도 준비도 없이 죽음이 들이닥쳐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으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인간은 불신의 생물이다. 공포와 혼란을 피하는 방법으로 제딴에는 믿음과 사상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로지 불신뿐인 것이다. 세계는 마구잡이다. 세계는 다시 말할 것도 없이 하늘에서 창이 쏟아지고 수천만 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지가 찢겨나가는 마구잡이인 곳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부 받아들이기에 인간의 영혼은 너무도 좁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도 않고 ‘나는 믿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가능성을 신뢰하는 사람을 정신병질자 취급하기까지 한다!
 축약하여 하나의 상황에 천 개의 가능성이 있다면 인간은 999개의 가능성을 불신하고 한 개의 가능성을 신뢰함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신념이나 사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이것은 불신의 법칙이다. 하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니 신념의 힘이니 지껄이는 것들이, 속을 들여다보면 불신만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생존의 기본이다.
 어떻게 하면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자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인간존재>가 아니라 <현상>이 되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의 모습으로 현세에 일렁거리는 현상. 그러면 그 스파크나 불똥 같은 존재는 자연히 세계에 귀속된다. 바로말해 혼돈에 귀속되는 것이다. 사상이나 신념을 가질 필요도, 욕망이나 의지를 가질 필요도 없다. 현상은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휘말려 다니며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사망이 아니라 열적사라 불리어야할 것이다.
 여하간, 그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길거리의 벽돌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허연 대낮에 반바지를 입은 어떤 늙은이가 지나갔다. 나는 그 늙은이의 다리를 보자마자 구토할 뻔 했다. 백색으로 완전히 탈색되고 삐쩍 말라 혈관과 근육이 완전히 드러나 보이는, 털 하나 나지 않은 삐걱거리는 다리. 병든 다리. 늙은 다리. 저런 다리가 생몰하는 인간의 말로라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나왔다. 늙은이는 절뚝거리면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 나무토막 같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말이다. 나는 늙음에 대해서 화가 치솟았다. 늙음에 대해서 화가 나자 마찬가지로 젊은 것들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젊은 것들은 마치 자신의 탄탄하고 부서지지 않은 육체가 영원할 것처럼 과시하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러나 눈앞에 떡하니 놓인 증거를 보고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단 말인가? 얼마나 멍청하면 자신의 다리가 곧 가죽이 다 늘어지고 뼈밖에 남지 않은 괴물 같은 것이 되리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인가? 젊음이 영원하리라는 듯이 뽐내고 다니는 것들을 보면 분노가 내 시야를 하얗게 만든다. 차라리 내가 알려주고 싶다. 건물 철거용 해머로 그 살과 뼈를 전부 다져 손에 그러쥐고, 눈앞에 내밀면서 <봐라, 이게 네가 갖고 있는 전부다>라고 설교해주고 싶다.
 생명은 슬로우 모션으로 폭발하는 폭탄처럼 인간을 추악하게 만들어간다. 피부는 자글자글 주름이 생기고 독버섯처럼 반점이 피어오르며, 곧 숨조차 원활하게 쉴 수 없게 되고, 스스로 걷지 못해 장님처럼 지팡이를 휘둘러대야 한다. 그러면 이제 병이 코와 입으로 스며들어와 내장을 적시고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간다. 차마 눈뜨고 못 볼 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인간의 전부다! 바들대며 절벽 끄트머리에 들러붙은 버러지처럼 되는 것이 인간의 의무다. 생명의 풍성함을 믿는 것들에게 저주 있으라! 아니, 내가 저주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저주를 품고 태어났다. 어떻게든 추악하게 추락해 갈 것이다. 그 후에는 소멸뿐이다. ‘억’ 소리조차 못 내고 풀벌레들의 먹이가 되어, 곧이어 아무도 그런 것이 존재했다고는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가족과 함께 살 때 명절에 벌초를 하는 것이 정말이지 싫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잔디를 심고 잡초를 뽑은 그 봉분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 한들 흙과 박테리아에 분해되어가는 뼛조각뿐이다. 도대체 왜 이미 죽은 몸뚱어리에 신위神位를 주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죽은 자와의 추억에 술을 올리고 싶으면 방구석에 틀어 앉아 하면 될 뿐이다. 나는 지금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뻔한 얘기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은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 몰래 무덤을 파 관을 들어내어, 저쪽 계곡 어딘가에 갖다버리고, 나중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텅 빈 흙더미에 절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꼴을 보며 비웃을 계획을 세우곤 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애당초 난 획책하는 것은 잘 하지만 무엇 하나 행동으로 옮긴 것이 없다. 나 역시 빌어먹을 쓰레기더미다. 남들의 비열을 비웃으면서 자신의 비겁 속에 파묻히기나 한다.
 9월 2일부터 음식을 먹지 않은 것 같다. 이대로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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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글/시 2019. 7. 12. 16:22 |

비명


미래가 두려운 것이 아니야
미래는 분명 두려워하고 있지
인류는 응고되어가고 있다

단두대 모양의 세상
단두대가 준비된 세상
단두대에 의한 세상
사람이라는 단어는 사어死語다

인류는 19살 이후로 각화증에 시달리며
항암제를 마신다, 변이는 죄악
늙어가는 몸에 숙명이라고 새겨놓고
질식하고 익사해가는 사지四肢

어디까지 굴러가게 될는지?
조정되고, 조각되고, 처분되고
하여 시대정신 끝에 남는 것은
토르소 한 점

실존이 파열하는 소리는 아주 미약한 소음이었다
알아들은 이도 거의 없었다
거의

울부짖는 비명도
군홧발에 터져버리는 핏줄기도
가스실 안의 깨진 손톱도 없었다
그저 희희낙락 스스로의 목을 절단하는
단도를 든 젊은이들

회의, 회의, 회의, 직후 압살
앞서 가던 중늙은이에게서
나사 하나가 떨어졌다
주워주니 고맙게 받는다

지금 내 늑골을 갈라보면
아직은 선혈이 흐른다는 것에 감사
나는 존재한다, 고로 반역한다
단도 끝의 나의 적: 그것의 이름은 때때로 我다
방심하면 그것에게 압살당한다

나타나엘의 스승에게 청하노니, 부디 영원한 치기를!
반역을, 반란을, 목적 없는 반달리즘을
왜냐하면 인류는 응고되어가고 있기에
차라리 단단한 쇠망치를: 그 토르소를 산산조각내면

조각조각에서 머리와 사지가 슬금슬금 뻗어 나오리라고
시체뿐인 땅위에서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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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치 어제와 같은 날


하늘은 남청색
바퀴벌레들은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잔다
노인들은 이른 새벽 아침을 시작하고
세상은 남청색

떨어지는 담뱃재처럼
나의 하루는 저물어가고
오늘도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을 예정이고
술집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단골 카페는 오늘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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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 2019. 5. 19. 06:20 |




빗물 떨어지자 초록이 열린다
날이 피어난다
하늘은 죽은듯한 회색

빗물이 밀어낸 가장자리에는
화분花粉이 흉하게 쌓여
오래전에 죽은 바다생물들의
썩은 표피 같다

밤새 생각한 것은
기도 없이 죽는 방법

나선 발걸음은 지장보살을 찾으며
우연히 만난 성모상을 보고 울 것 같다
누군가 그녀에게
화관을 씌웠다

공기는 성불을 애걸하는 잡신들로
빽빽해
숨도 쉬기 싫다

또다시 봄
비명 지르며 저물 것들이
스멀스멀
구더기처럼 대지의 골수에서 기어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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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개짜리 관觀

글/시 2019. 5. 16. 03:25 |

스무 개짜리 관觀


담뱃재처럼 바스라지는 우리가
사상을 갖고 이상을 말한다

담뱃재처럼 바스라지는 우리가
빛을 갈구하고 어둠 속에서 방랑한다

위악을 갖고 당당히 걷는 다리는
바람도 불지 않는 밤에 강철과 같지만
이내 스스로 주저앉아 풍화된다

선을 외치는 영웅의 목소리는
다발로 된 생명과 같아 드높이 불타오르지만
타고 남은 재는 보잘것없어 흉측하다

담뱃재처럼 바스라지는 우리가
육도를 윤회하며 부서지고, 또 부서지며

부서지지 않는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부서지는 목소리로 애써 묻고
또 미풍에 산산조각난다

재떨이에서 금강반야를 찾는
통풍 같은 존재들은 끊이질 않고
다시 부서지고, 소멸하고

담뱃재처럼 바스라지는 우리가
담뱃재처럼 바스라지는 우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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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화

글/시 2019. 5. 11. 23:39 |

객관화


거울을 보며 식사를 한다
카페인 중독으로 요동치는 신경을 억누르려
맛도 모르고 오로지 음식을 입에 우겨넣는
그 장면은 몹시도 그로테스크하다
이것은 식사라 할 수 없다
저 수염 난 괴인은 자살을 꾀하고 있다
음식을 나르는 숟가락은 히스테릭하게 움직인다
치아가 제 역할을 다 하기도 전에
목구멍은 자학적으로 음식더미를 삼킨다
거울에서 보이는 눈은
과거에는 구원을 구하는 빛이었다.

다음 페이지는 거식拒食을 준비하고 있다
몸의 감금에서 벗어나 영령이 되는 길은
아사뿐이라는 거짓을 믿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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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끝

글/시 2019. 5. 11. 17:49 |

분노의 끝


매일 아침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지를 깨달아 웃으며 잠에서 깬다.

어제도 항공기가 추락했다
난민들은 스스로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헛갈려하며
가게에 벽돌을 던진다
러시아의 동성애 인권운동가가 지나가던
공수부대원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 웃었다
국가들은 텅 빈 지하자원과 함께 붕괴해간다
두 살 먹은 아이를 먹여 살리려 몸을 파는
타국에서 온 매춘부를 보고 지갑을 더듬어보았다
새 시대의 언론이 부르짖는 시대정신에
네오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붙여보고 눈을 돌렸다
세계는 아이러니 위에 지어졌고
아이러니의 다른 이름은 농담이다

매일 밤 고성과 접시 깨지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옆집 부부에게
어린 아이가 있을까 생각해보고 웃었다

새벽마다 담배를 피우며 골목을 방황하는 저 반지하의 남자는
아마 예술가였던 과거가 있지 않을까

살 곳을 잃어가는 북극곰을 도와주세요, 라니
거리에 넘쳐나는 노숙자에 대해서는 인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가
나는 이미 티브이와 뉴스를 끊고 외출마저 끊을 예정이다

우물에 독을 풀어라, 내 이름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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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정리

글/시 2019. 5. 9. 19:18 |

제 1 정리


담배 술 마약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다
시간에게서 도망치려고 매듭도 묶었다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 결심으로 체내의 피를 전부 꺼냈다
폐는 썩었고 간은 문드러졌고 심장은 텅 비었다
맹장 한 조각도 인류를 위해서는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각막은 계단참에서 쓰러졌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수치와 통계 너머의 잔혹함만 보인다
이것이 21세기의 그노시즘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신이 되는 방법은 없다, 애당초 신이 없다
여러 번에 걸쳐 게르만족에게 맞아죽었다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초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초인과 감정 없는 정신병질자의 차이를 모르겠다
애당초 그 차이를 감각할 수 있다면 아직 인간이다
사팔뜨기 철학자를 비웃으며 세계를 분해했다
꿈속에서 느끼는 사랑은 꿈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꿈에는 논리가 없다, 논리가 해체되면 웃음만 남는다
더러운 옥상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 우주에 높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찾았다. 이게 우울증 환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이것은 거대한 하수 시스템이다
추락하고 역류하고 흐르고 다시 사용된다
인류애라는 단어를 입술에 달고 사는 이들에겐 주머니칼을 흔들어보였다
하수구에 사는 쥐들에게도 사회와 유대가 있다
영장류들은 머리가 좋을수록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다
혼돈은 혼돈으로밖에 정의되지 않는다
그래도 감각을 사랑하려고 했다, 육신에서 잘라낸 영혼은 필요없다
순간을 송두리째 느끼려고 했다, 필멸하는 존재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타락 모순 퇴폐 악의 증오 원한 자멸 불신
이 퍼즐들은 자기소개의 액자에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다
다시 돌아온다, 바텀라인bottom line은 또 혼돈이다
그렇다면 골라라, 무관심하거나 혼돈을 가중해라

당신이 성모상에게 꽃을 바치는 와중에도
이 행성에서 사람들은 짚이 쓰러지듯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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