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준영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계속 반복해서 네팔에서 사온 보리수 염주의 알을 세고 있었다. 몇 번을 세어도 107개나 109개가 될 뿐 도무지 108개라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 잡상인이 만들 때 108개를 정확히 넣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달리 할 일도 없어서 계속 세고 있었다. 보일러를 틀어놓은 방바닥은 따뜻했다.
 이대로 죽게 되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백수로 지낸 지 5년 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 5년 째. 5년 내내 되풀이한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그 유명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였다. 무엇이 그리 수치스러웠는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바는 없지만, 여하간 수치스러웠다. 단 한 푼도 벌지 않고 살면서도 겨울엔 바닥에 보일러가 돌아간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가끔 친구들이 부르면 무상으로 술을 얻어 마시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취하면 기분이 드높아져 다음날 아침이면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준영은 방바닥에서 공연히 발을 까딱거리며 48개째의 염주 알을 세고 있었다. 5년 전 네팔여행에서 사온 물건이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 또한 곧바로 고통이 될 생각이라 후회스러웠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대상이 있다. 5년 전에 준영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간 사람이다. 그녀가 준영의 마지막 연인이었다. 짧은 듯 길었던 2년간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도 지금에 와서는 쓸모도 없는 일이다. 다만 그때의 일은 수치스러울 일이 없었고 준영은 항상 헛헛했던 28년간의 삶도 그녀를 만나려고 있었던 삶이었거니 했다. 헛헛했던 삶. 참으로 얻을 것도 없는 세상에서의 삶이었지. 애당초 이 세상에서 얻긴 뭘 얻는단 말인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말이다, 금강석을 찾겠다고 바다를 체로 뜨는 일 같은 것이 세상살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좀 제쳐두고, 그 2년간은 정말로 세상이 온통 황금이 되어 빛나는 것 같았지. 수치나 후회도 전부 철폐되어 부서지곤 했지.
 네팔에 갔던 일을 지금까지도 도무지 가치판단 할 도리가 없다. 애당초 그녀를 만났던 것이 사찰에서였고, 28세의 준영은 출판사에서 도서 디자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녀는 미대를 나와 탱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어 눈이 맞은 거야 온갖 이유나 인연이 있었겠지. 만날만 했으니 만난 것이었을 터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에 빠졌던 일은, 그것이 도대체가 그럴듯한 일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하간 보석의 반짝임 같은 2년이기는 했다만은. 결론은 말이다, 그녀는 네팔의 산사들을 함께 돌아다니다가 불연이 닿았는지 법과 사랑에 빠졌는지, 준영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오롯이 혼자였다.
 연인이 사찰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도무지 보지 못하겠고, 준영은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 잃을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애당초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멈추자 회색과 잿빛의 먹먹한 광경이 되돌아왔다. 도시의 구석에서 그 광경을 마음에 새기는 와중에 직업도 잃고 무엇이고 잃어버렸다. 정확히 무얼 잃어버렸는지, 언어로 나열하기는 힘든 일인데 무엇이고 다 잃어버렸다. 흘러온 삶은 그야말로 수치가 되어 비수처럼 꽂히는 것이다. 그러나 절벽에서 몸을 날릴 만큼 대단한 좌절까지도 아니었다. 그저 의문스러운 것은, 5년 전인지 35년 전인지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은,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그걸 찾으면 남은 삶에 거리낌이 없을 터인데.
 몇 백번을 더 세어야 이 염주 알은 108개가 될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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