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글/시 2021. 9. 17. 02:06 |

일몰


반투명한 창문 너머
가을날의 태양은
천천히
깊은 한숨 쉬며 멀어져가고
겹겹이 그늘진 건물 안
나는 우두커니 살아있다

깡통처럼 발끝에 채이는 생활
긁히고, 점점 구겨지고
주워갈 사람도, 신도 없어
믿음도 알미늄처럼 색이 바랬다

생활, 생활, 하며 되뇌는
머리는 진흙 뻘 같아
담배나 빼어물며 나
어제 떠난 누군가의 자리에
서서
한 모금, 한 모금
살고

오늘 저녁에도

제 주인 잃은 그림자들
술렁술렁 어두운 골목으로 떠날 테고……

나는 어리둥절, 백치처럼 남아
어디 이정표는 없을까
우뚝 서 있는 철인은
없을까,
그러나 없겠지

천쪼가리 버리듯 하루는 또 하늘하늘 날아가고
나는 전날 눈 뜨고 죽었을 누군가의 묘석
영정에 남은 적막한 그리움
따위를 생각하고 
또 생활
하고.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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