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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10.31 좌절이니 절망이니 그따위 단어들 뱉지 않으려 지랄염병을 떨다보니 결국
  2. 2024.10.26 누구 말마따나, 그럴 수밖에 없으니
  3. 2024.10.17 산속에 사나 굴다리에 사나 마음 고요한 거랑은 별 1
  4. 2024.10.14 밤나무 아래
  5. 2024.10.10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제였다
  6. 2024.10.08 항상휘청이며걷는이는돌부리에걸리지않고
  7. 2024.10.01 그는 산을 내려왔다
  8. 2024.09.27 아무도 자유에 대해 진실로 알아본 일이
  9. 2024.09.20 그것들에겐 눈꺼풀이 없고 우리에겐 있고 저기 저편 그들에겐
  10. 2024.09.11 이놈의 도시는 매번 만날 적마다 꼭
  11. 2024.09.04 (시집) 지어진 밤길과 그 너머 언덕과 2
  12. 2024.08.30 오전 두 市
  13. 2024.08.24 뭐 이런 게 다 있냐 연못이라는 단어가 왜 연못인지도 몰라?
  14. 2024.08.22 좀 더 빛을, 하던 사람도 애저녁에 죽었고
  15. 2024.08.22 서러워서 못 해먹겠고 또 걱정은 왜 이리
  16. 2024.08.10 언제까지 매미는 계속 울기만 하려는지
  17. 2024.07.22 1호선, 오후 2시 1
  18. 2024.07.04 이 땅의 인간들이 꿈꾸며 잠들어있을 때
  19. 2024.07.01 서울에서는 1
  20. 2024.06.13 언어를 가장 풍요롭게 만끽하려고
  21. 2024.06.07 어느 열대의 땅과 기억과 1
  22. 2024.05.30 건전과 건강을 혐오하는 삶이었노라고 그가 내게 1
  23. 2024.05.24 필터링
  24. 2024.03.27 나는 탄식한다, 고 탄식하는 놈이 세상천지에 있기나 하냐 1
  25. 2024.03.24 어떤 것들은 제자리에 있을 줄을 몰라서 1
  26. 2024.03.19 아등바등 악에 받쳐가지고
  27. 2024.02.07 호프집에서 1
  28. 2023.03.12 사상가들에게 1
  29. 2022.11.10 의정부시 평화로
  30. 2022.10.27 시월의 어느 1

좌절이니 절망이니 그따위 단어들 뱉지 않으려 지랄염병을 떨다보니 결국


 아무도 나에게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았다.

 오전 한 시 사십일 분
 이곳은 밤이 아니다
 밤의 빛깔조차
 없다 정확히는
 어느 빛과 어둠조차 판별할 수
 없다.

 혼미한 가로등 불빛은
 그렇다치고
 하늘을 보아도
 저게 뭔가 싶다 저것은
 어느 무언가조차 아니다
 저런 색에는 이름이 붙은 역사가 없다

 명줄 깎아먹는 연기만 줄기차게 피어오르고
 니미럴
 아무도 죄를 말하지 않았으나
 습관처럼 생명에 벌을 주고

 내가 뭔가 하고 있기는 했던가
 하지 않고 있기는 했던가
 화를 입고
 화를 쏟아내
 입혀
 버리고……

 스스로 망가트려 기능을 마비시키는 습
 관은
 어디로 간 일조차 없었다.

 몸이, 존재가, 연기가
 더럽게 무겁다
 이건 죄책감이나 후회가 아니라
 주체 없는 증오야, 그러자

 좀 쉬어라, 제발, 좀,
 친구는 말했다.

 발목에는
 스스로 채운 족쇄만 보인다

 아무도 나에게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았다.

 잠들 수 없어
 결말을 쓸 수 없다

 시간이
 끔찍이
 멀다.

Posted by Lim_
:

누구 말마따나, 그럴 수밖에 없으니


 밤이 유독 밝다
 빛은 없는데
 밝다.

 어느새 내일이 되었다
 새벽 숲속에서 잡풀과 잎들의
 색, 색을 보며
 이미 몇 까치의 꽁초를 떨어뜨렸다

 마음은
 약리학의 힘으로 마비되었다
 어둠이 형형색색 선명히, 보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자고 있다
 무언가가 끌고 다니는 이 송장 덩어리도
 자고 있다 죽어 있다 다만
 무언가가 줄곧, 깨어있다
 빛깔도 없이.

 내일이 오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이미
 내일이다
 고작 이름, 단어, 언어,
 중얼중얼, 중얼,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하늘에 나타나 번쩍이던 별이
 오래 보니
 인공위성이다.

 방으로
 사무실로
 돌아갈 수밖에

 문을 닫고
 밤을 끈다.

Posted by Lim_
:

산속에 사나 굴다리에 사나 마음 고요한 거랑은 별


 맞은편 산중턱 골프장 누군가 나이스 샸 외치고.

 이쪽
 고요하지도 적적하지도 않던 절간에
 느닷없이 미친
 무당년놈들
 쳐들어와
 동생 내놓으라고
 지랄
 아주 쌩, 지랄
 절간 문 벌컥벌컥 열어
 제끼고
 사람 붙잡아다
 시비털고

 염병도 그런 염병을

 보다가
 두개골 속
 틱 틱 틱,
 틱.
 초침
 부서져 가는
 소리
 들으며
 보다가

 지랄병, 스며 나와, 도져, 눈깔 허옇게, 돌아가서,
 세상, 어느, 미친, 광인, 보다, 더욱, 미친, 광증, 터트리며, 고함, 발작, 숨
 넘어가는, 웃음, 정신
 깎아먹는, 웃음, 아니, 웃는, 병증
 되어
 돌진,

 하면서 생각하기를 어째 이거 사라지질 않냐 꽤 가라앉은 줄 알았는데……

 하여간,
 지들보다 더
 미친, 토치로
 지져놓은 것 같은
 광태에, 욕지거리며 시비도발
 어쩔 거냐고
 니 새끼야말로 어쩌고싶은건지직접한번보자고응마침공사중이라저쪽에연장도많네종류별로다가착착다늘어놨고어디까지어쩌고싶은건지보자고이기회에서로서로가슴열고솔직담백한진심보여줘보자고사람이아주쪼다에핫바지로보이지어재밌지흥미롭고덕분에웃음도멈추지를않네고마워서어떡하면좋아어디서잡신들려가지고여기까지왔는지는모르겠는데

 가래침 뱉고
 슬금슬금
 돌아
 다니더니

 떠나고
 떠났는데,

 여전한 분노에 혐오
 깊숙이 눌어붙어
 썩은 내 나고
 어깨 잡고 흔들어 떨게
 하고 무겁게
 주저앉히고

 마침내 적적한
 야밤.
 산중.

 맞은편 산중턱
 누군가
 아 싸장님 나이스 샸
 캥캥
 외친다

Posted by Lim_
:

밤나무 아래

글/시 2024. 10. 14. 16:22 |

밤나무 아래


 밤나무 이파리들 사이 비가 내린다
 하늘이 투명하지 않고
 애당초 투명했던 일도 없다.

 수십 그루의 밤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위를 보니
 층층이 얽힌
 밤잎들이
 잘못되고
 찢어진
 녹색 우산 같다.

 이마며, 안경, 어깨에
 빗방울 부딪친다.

 육중히
 썩는
 심폐
 그저 연기 따위로
 밤나무 가지 이파리, 그, 살아, 키가 자라, 피어, 열매 맺어, 생존, 번식, 하려는, 것들에

 토하고

 방금 통화했던 이의
 혼란한 전파와, 이지러진
 앓는
 목소리
 를

 앓으며
 아프지 않은, 말
 말을
 애쓰던
 목소리를.

 경계도 없는 이 자리에만
 밤송이 열리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아주
 나쁜 목소리는 아니었어, 홀로
 중얼중얼구시렁구시렁
 담배를 끈다

 여기서만 도대체
 몇백 까치의
 담배를
 태웠는지

 앞으로
 밤은
 열리기나
 하려는지.

Posted by Lim_
: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어제였다


 눈이 붉다.
 흰자에 온통 핏발 섰다.

 거울 속이 피로하고
 파리하다
 화장실 전구가 맑지 않다.

 아무 때고 성내며 증오스럽던
 얼굴이
 여기엔 비치지 않는다.

 이것은 몹시 지쳐있다, 생각하고
 물기 없는 유리의 표면을
 문지르고
 여러 알의, 딱딱한 수면을 삼키고
 안정도 휴식도 없을 자리에
 눈꺼풀을 닫고

 몸에는 얇은 이불이 덮여있었다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비좁은 집, 방,
 창문은 모조리 새까맣고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부엌도 거실도 방도 아닌
 여기를, 헤매고, 목적도,
 의사나, 의지도, 없고
 128페이지짜리 책을, 하나, 집어,
 들고,

 아주 익숙한 필체로 거기에는
 혈관이 터진 눈동자들
 수두룩이
 새겨져

 무언가를 계속
 계속, 웅얼웅얼, 비명,
 비명 지르고 있는데

 지면이 붉다

 사람
 인간은 그만 됐고,
 사람이 보고 싶다

 페이지가
 시뻘겋다

Posted by Lim_
:

항상휘청이며걷는이는돌부리에걸리지않고


 걷는데
 산길에서 누군가
 넘어졌다.

 늙고
 노쇠하고
 머리가 벗겨졌다.

 나는
 본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다소
 당황, 혹은
 창피한 듯하다

 다시 일어나
 오른다.

 사실
 그가 넘어지기도 전부터
 나는 그의 걸음을
 살피고 있었다 아니
 그저,
 인지
 하고 있었다.

 그는
 올곧게 걸었다, 똑바로
 넘어져
 일어난 후에도
 반듯이
 바르게

 그래서 그는
 넘어졌노라고
 생각했다.

 균형 잡히지 않은, 산길, 걷는,
 내, 걸음, 몸체를, 보고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마구, 내딛지 마
 땅을, 잘, 봐,
 저건
 뜬돌일 수도 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Posted by Lim_
:

그는 산을 내려왔다

글/시 2024. 10. 1. 18:29 |

그는 산을 내려왔다


 밤이었고, 버스터미널에는 외국인, 노동자, 들이, 한국인의 갑절은 있었고, 일곱 시 십오, 분이 되자 어두운 듯 가로등 불빛에 산만한, 듯,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버스, 에 올라탔고, 버스 기사, 는 옆얼굴만을 보이며 하나, 하나, 티켓을 받아들었다, 곧 어느, 좀 더, 큰, 터미널에서 버스는 멈추었다가, 다시, 출발하며, 차내의 불이 꺼졌다, 전혀 어둡지는 않았고,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소리가 윙윙대며, 차라리 엔진 소리나 바퀴 마찰음보다 더 크게 울렸, 다, 머리 한쪽을 유리창에 기대고, 그는, 전혀 바뀌지 않는 듯하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바뀌어 가는 풍경을 육안에 담았다가 그것이 신경까지 가지도 않고 그저 흘러나가는 것을 내버려 두고 있었, 는데, 유독, 잘 보인 것은, 어느 국제적 도넛 회사의 생산, 생산 공장, 그 간판, 네온인지 엘이디인지, 아무튼, 아주 상징적이고 깔끔하여, 이 도넛이 위생, 적이고 의롭, 고 정당한 법과 규율에 의하여 만들, 어져, 판매되어, 지고 있다는, 듯한, 메시지, 이미지, 메시지, 를, 전면에 내세우는, 희게 빛, 나는 간판, 과, 그 너머의 그늘이며 그림자 속에서 그야말로 동물의 사체라도 잔뜩 쌓아놓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을씨년스러운 생산, 공장, 과……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들이 많아졌던 것, 과, 저 멀리 마을, 인지 도시, 인지 알 수 없는, 인간과 인간의 인공물의 집체, 에, 홀로, 높이 솟아, 벽면을 모조리 번쩍거리며 발광, 하는, 총천연색을 거꾸로 뒤집어, 사람의 시야, 시야에 발악하는, 저 무인모텔의 정직함, 등을, 그는 느리게 생각, 하였고, 차들은 계속, 가끔, 인간도, 계속, 득시글득시글, 밤 같지도 않은 밤, 어둠 같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희미함 속에, 늘어나고, 버스는, 어느새, 알아차리지도 못, 한, 사이, 에, 서울의, 버스, 정류장, 터미널, 이었, 고,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그리고, 내리자, 하늘, 은, 부옇고 검은 안개로밖에는 보이지 않, 았고, 오히려 터미널의 인공광이, 새까맣게 타고 마른 그의, 사나운, 몸뚱이를, 비추고, 그는, 그 어떤 눈동자 있는 것의 얼굴도 보지 않으려 성심성의껏 정성을 들여 노력, 하며, 걷기 시작, 하려, 할 때,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이, 도무지, 방법도, 없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의, 육안에는, 온갖 사람들이 모두 넋이 나가 정神마저 없는 것이, 보이고, 말았, 고, 수도 없이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발을 옮길 때, 그는, 발을, 옮긴 적조차, 없었는데
 나는 서울에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산으로
 돌아갈 것이다.

Posted by Lim_
:

아무도 자유에 대해 진실로 알아본 일이


 그리깊지도않은산속오후다섯시삼십육분의하늘로부터숨어서올려다보는하늘은희고푸른,얼룩,사이사이,미세히,붉게,달아오른,듯한,금빛
 박혀있고

 나는 숨어
 그 황동빛
 금쪼가리를 보고

 숨을 수 없고

 숨는다 한들
 의미도 없고

 저기 높은 곳에서는
 그저 바람 따라
 온갖 것들이 기울어
 색을
 바꿔나갈 뿐이고

 내
 허파의 빛을 담은
 흰
 담배 연기는
 저 하늘을 칠할 수 없고

 어느새 금빛이었나 싶던
 그것들은
 높아지거나 무너지거나
 하며
 빛깔 속으로 되돌아가기나
 할
 뿐이고

 성주괴공이며,
 등등등등

 아름다워 마음
 끄는
 것들이며
 황금이며
 등등
 등
 등……

 바지 위에 담뱃재 떨어진다
 손은 털어낸다
 시선은 움직인다
 시간도
 발 딛은
 땅도

 움직인다.

 금빛은커녕
 윤곽도 없는
 검고 두터운 자색 하늘

 가늘다 널리 퍼지는 흰 연기 덧바른다
 빛은 밤에 더욱 밝게 보인다고
 사람들은 흔히 뱉어댔다

 탁 트인 산중에서
 점차 높아지며,
 여기
 밤의 안쪽에서는
 어둠이
 더욱
 짙게
 명백히
 보인다고

 홀로
 웃었다.

Posted by Lim_
:

그것들에겐 눈꺼풀이 없고 우리에겐 있고 저기 저편 그들에겐


 수면에 둥근 원들이
 생기고
 넓고 얇아져
 사라지고
 생긴다

 계속
 사라진다
 계속
 산발적으로 불규칙하게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그러나, 균일한, 크기, 넓이, 속도, 형태로, 파동, 난립하며,
 소멸한다

 때때로
 겹친다

 밑에서
 금빛 은빛 검은빛 잉어들
 노닐고 몰려 생존하고 다니며 쫓고 찾고
 보고,
 가장 진원(眞圓)과
 가까운 것
 들을
 보는 듯도
 한데

 비가 내린다.

 한 친구는 말했다
 이것들은 사람 그림자만 보면 밥 주는 줄 알고 몰려온다고
 그렇게 쭈그리고 들여다보다간
 빠지겠다고,
 또

 그것들은
 비를 볼 줄 모른다

 나는
 수면 밑의 삶
 을
 볼 줄 모른다.

 가끔 번개는 형형한데
 천둥이 들리지 않는다

 저 위에서
 이것저것
 떨어진다

 오늘이 금요일이고
 9월의 20일임을
 확인해야
 했다.

Posted by Lim_
:

이놈의 도시는 매번 만날 적마다 꼭


 왜

 서울에만 오면

 때아닌 폭염에 도시는 삶아지고
 예측될 수 없는 비가 쏟아지고
 건물이 없어졌나 싶더니
 도시 구획을 순식간에 갈아
 세우고
 포크레인 톱날에 깨진
 보도블럭
 콘크리트 밑
 생살밖에 없던
 구더기가 잘려 또 생살을
 내보여야만 하고
 936만 개의 꿈질거리는
 생살들이 역류하는 하수에 휘
 말려 휩
 쓸리고

 나는 유쾌하고
 증오스러운지

 왜

 현관 밀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명준아아
 밥은 먹었냐아아아아
 아아아
 아아

 아……

 밥은
 안 먹었고

 그보다
 날갯죽지가 염병하게
 맹렬하게 아픈 게
 아무래도 뭔가
 돋을 것
 같은데……

 왜
 왼쪽만
 이리 아픈지,

Posted by Lim_
:

작가 소개라는 것들이 보면 다 작가 자랑이던데
살면서 자랑할 것이 술 끊은 일밖에 없습니다.

서점 및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 중.

Posted by Lim_
:

오전 두 市

글/시 2024. 8. 30. 02:25 |

오전 두 市


 팔월이 끝나간다
 밤공기 더는 뜨겁지 않다
 매미들 모조리 낙하하고
 죽었다
 귀뚜라미가, 운다 더러는
 지저귄다
 서울에만 오면 길을 잃는다
 밤이 너무 밝아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약은
 휴식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독을 잃고 나니 눈앞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타는 심장의
 자라나는 분노와 그 불길
 을 쓰다듬으며
 산중의 적적한 소란을
 생각하려 애를
 쓴다

 여기는 집이
 아닌 듯하다.

 하여 예술 인문학 쏟아내려 바닥이 꺼지고 벽이 무너져 오로지 깊은 어둠만이 한량없이 펼쳐진 그 드넓은 심원한 어디에도 출구입구 없는 역사와 생이 수평선 없이 일렁이는, 백형의 방, 생각하고 그곳에 자생하는 실어, 속에서의 망각을 그리워
 하고 이제는
 석유 웅덩이 같은 창밖의 연못
 지나쳐 야밤에 모자 쓰고 오르는 언덕 위의 산신각과 연초와 기도
 터져 붉은 눈을 생각하고.

 한 달 사이 매미들은 무엇을 벗었고
 미소 지을 줄 아는 이들은
 대체 무얼

 팔월은 끝나가고
 밤은 깊어가고
 밖은 여전히
 밝고

 서울 時.

Posted by Lim_
:

뭐 이런 게 다 있냐 연못이라는 단어가 왜 연못인지도 몰라?


 연못에 갓 피어난
 흰
 연꽃이
 꺾였다

 맨발로 휘청거리며
 빠질 듯 안
 빠질 듯
 돌 밟고
 연못
 청소
 하던

 내 손에

 흰 연꽃이
 꺾였다

 여기 돌 위에서 내다보는 산사의 흑청색 기왓장 하나하나는 아주 적막과 고요와 정적과 원망과 분노와 증오와 시기와 질투와 불만 탐욕 분별 시비 내 입장 니 입장 아무 소리도 없이 외치면서 누구는 내키는 대로 절 생활을 한다느니 누구는 내키지 않는 대로 절 생활을 한
 다고
 그러는데,
 이거 다
 조용한 거라고
 평화라고 한다
 화합이고

 몇 번
 대충 여덟 번 정도
 빠질 뻔 했는데
 빠지진
 않았고

 제대로 걸려 넘어져
 흙탕물에 코박은 놈이 하나
 있기는 있는데
 청소는
 계속 해야겠고

 잘 보이지도 않는
 위를 보고

 구름 더럽게 두텁다
 햇빛도 안 쬐고
 좋네.

 아무튼,
 내가
 흰
 연꽃을
 꺾었다고.
 꺾였다고.

Posted by Lim_
:

좀 더 빛을, 하던 사람도 애저녁에 죽었고


 밤비 느닷없이
 쏟아진다

 양철지붕 때리는
 하늘
 무너지는 소리에
 잠,
 이루어지지 않고
 누워
 검은 천장
 바라보고
 뛰쳐나온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의 창을 닫는다
 그것들은,
 처마가
 없다.

 꿈속에는
 몸,
 폭삭
 젖어있다

 어두운 꿈속
 까만 비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비는 내리고 산속은
 괴괴히
 적막하고

 잠들 수 없고
 깰 수
 없고

 결과,
 2,500원짜리 펜과
 묵묵히
 난동이며 폭동
 중.

 뇌수
 몸에 대한 원망
 은,

 너무 오랜
 지겨운
 성가심.

 앞이
 달이 보이지 않는다

 새까만 산속으로
 비척 비
 척
 올라서
 연초에 불 당기자

 새빨간
 불똥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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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러워서 못 해먹겠고 또 걱정은 왜 이리


 그 사람은

 라면을 끓여
 전망이 탁 트인,
 은행
 나무
 밑에서

 라면을 먹었다.

 퍽
 야위었다.

 눈은
 냄비 뚜껑에
 그러나 풍광은
 볼 수 없이.

 사람이 없어
 사방이 고요한
 것
 같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여기 작은 산 중턱
 작은
 세상
 맞은편에는
 화려한
 골프장

 뒤돌면
 남의 주방.

 그 사람은
 바삐 설거지를 하고 환기를 시키고 아무 흔적도 남지 않도록 주방으로
 떠난다

 나는
 곧 떨어지기 시작할 은행열매와
 낙엽을
 생각,
 아니,
 근심
 한다

 돌좌탁이 뜨겁고
 슬슬 바람에서는
 가을비 냄새나고
 싸리비 멀쩡한 놈 몇이나 남았더라

 뒤편에서
 설거지 소리 들린다.

Posted by Lim_
:

언제까지 매미는 계속 울기만 하려는지


 햇빛이 뜨겁다

 사람
 죽이려는 듯하다
 창 밖에 대나무가
 자꾸
 연못에
 대가리를
 처박는다

 자판 두들기다
 전화기는
 계속
 미친 소리 해대고
 나도
 미친 소리 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마침
 구름도 끼었겠다
 뜰채 들고
 나갔다

 구름이
 간다

 햇빛이
 뜨겁다

 곧
 일 점 삼 메다짜리
 브러쉬도 올 텐데

 은퇴한 셀린져는 돌덩이들 닦았나
 쏘로우는 세금 내기 싫다고
 숲으로 가더니
 그 돈 값은 했나
 말년에 헷세는 그렇게 앓다가
 매일 손보던 정원만큼
 정갈하게
 죽었나

 그리고,
 고갱 말인데
 타히티 가서 대체
 뭘
 찾긴
 찾았나

 물이끼를 건진다

 뜰채 속에
 유령만
 드글드글하다

 여기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챙모자가
 책장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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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호선, 오후 2시

글/시 2024. 7. 22. 11:54 |

1호선, 오후 2시


 어느 여인이
 앞좌석에서
 케이크를 먹고 있다
 두 손으로
 두
 맨손으로

 모두 힐끗대며
 모두
 말을 않는다

 여인의 얼굴에
 생크림
 과일잼
 눈물
 범벅

 통제될 수 없는 울음소리
 식도로 넘어가고
 기도로
 내뿜어진다

 사람들
 눈을 돌리고
 혀를
 차고
 말없이
 존재할 리 없는 허공을
 본다

 바닥에는
 케이크 조각과
 생일
 초.

 어떤 알지 못할
 파편들.

 나는
 유심히
 끊임
 없이
 본다

Posted by Lim_
:

이 땅의 인간들이 꿈꾸며 잠들어있을 때
 
 
 잠 못 이루는 이에게 밤이 길어
 몸부림치며 칼이며 술이며
 약이며
 온갖 악덕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태양이
 동녘에 밝아올 즈음
 존재의 끈을
 썩뚝
 잘라버릴
 가장 치명적인
 
 어떤 것
 을
 눈물범벅으로 찾게 된다는 사실
 을
 
 나는 평생 알고 있었다
 아니,
 전혀 몰랐을지도 모른다
 
 새빨갛게 터진 눈으로 펜을
 쥘 적마다
 벽지 위의 메모는 점차 빼곡해졌다
 
 끓는 신음과 폭력 끝에
 기절할 때마다
 눈밭에서 얼어죽는 꿈을 꾸었다
 안락했다
 
 망각에 잡아먹혀 너부러진
 내
 주변에는
 주먹질에 박살 난
 전자레인지
 냉장고
 책상
 의자
 서랍
 정수기

 문
 
 그리고
 가족이 무너져있었다
 오로지 책들만이 멀쩡하게
 고이 모셔져 있었다.
 
 과거는
 사라진 듯해도
 과거 속에 있다
 
 나는 그 은빛 구름에서 은빛 눈이 내리는 은빛 눈밭을 미친 듯이 헤매며 찾아다녔다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그저 끝 간데 없이 안락히 얼어죽기 위하여 낮을 피해 밤을 걷고 새벽을 걷고 인간들의 사이사이와 인간들이 없는 사이사이와 태평양과 인도양과 땅과 하늘과 걷고 건널 수 있는 것들이라면 무엇이든 향하고 도망치고 눈에 불을 켜고 걸신들려 휘청휘청 삐그덕삐그덕
 고함치고 울며
 
 아무것도 없었다.
 
 아,
 그렇지
 
 그건 있었다
 전락과
 추락
 
 뭉근하게 삶아져
 윤곽도 보이지 않게
 바테이블
 밑에
 퍼질러진
 삶
 
 그래서
 돌아왔나보다
 끝장을 내기
 전에
 
 그리고 단 한 번도
 도와달라고
 비명
 지른 적이
 없었는데
 
 아마……
 
 잠들지 못하는 밤이
 칠일
 넘게 계속
 되고
 있는
 2024년의
 여름밤
 
 은빛 눈밭을
 2년 정도 꿈꾸지 않은
 여름밤
 
 얼어 죽을 수 없는
 밤
 
 사람의
 환한 미소가
 보고 싶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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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는

글/시 2024. 7. 1. 09:09 |

서울에서는


 밤의 가로등을 모조리 꺼트려버려라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하고
 어두운 밤길을 손끝으로 더듬어 갈 때
 불현듯 구름 사이에서 나타나는
 창백한 달빛이 필요하다
 불빛이 모두 꺼지게 놔두어라
 태양이 온 사물을 돌출과 발광으로
 강조한 그 끝에
 우리는 더이상
 열파와 색채 들끓는
 세상을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저 깊은 대양의 어둠을 살펴
 어떤 파도와 요동이
 꼭두각시 놀리듯
 기만하며 조소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눈을
 거꾸로 뒤집어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을
 기필코 보려하니

 밤을
 되돌려놓아라
 불을
 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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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를 가장 풍요롭게 만끽하려고


 우리는 그 방에서
 LP판을 돌려
 포크송을 듣고
 어느 오래된
 흑백 영화
 이야기를
 분노와
 침묵으로
 풀어내곤 했다.

 하워드가
 뭐?
 어느 하워드?
 걔, 갱스터 영화
 감독
 말야.

 그래서 걔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빈 맥주잔과
 빈
 온갖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읽곤 했다.

 언제나 밥이 노래하고 있었다
 밥이
 미스터 탬버린을 지랄 맞게 찾아댔다.

 그리고 우리는
 넝마 같은 이불 더미
 책사태가 일어난 방
 한구석에 기대어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보통
 해가 지거나
 해가 뜨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 우리는
 기타리스트였던,
 손목 인대가
 전부
 끊어져
 자살한
 후배 이야기를 했다
 창문 밖은
 새벽인지
 저녁인지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떠나려 했다
 그러자 친구가
 내 칼라를 붙잡으며
 잠깐만, 오늘
 목요일이지?
 몰라
 목요일이겠지
 목요일이면
 병을 내놔야 해
 병을……

 열아홉 개의 맥주병을
 함께
 나눠 들고
 우리는
 그것들을
 편의점에
 팔아치웠다.

 동전이 생겼다

 짤랑짤랑
 헤어져
 각자 가야 할
 뭐 둥지라든가
 벤치
 따위로 향했다.

 그 시절 우리는
 안락하고
 고통 없는
 지옥에서
 단
 한 번도
 뉴스를 틀거나 창밖을 내다보는 일
 없이

 잘
 살며
 천천히
 실어증에
 걸려가고
 있었
 다

 아직도 밥은
 빠른 템포
 빠른 어조로 노래하며
 휘파람에 하모니카까지 불어가며
 잘 살고 있다.

 하워드는
 진즉에 죽었다.

 맥주 공병은
 150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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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열대의 땅과 기억과


커다란 망고 콘크리트 바닥에
피멍마냥,
붉게
주광빛에

풀린
실뭉치처럼
터져있다.

보이는 것은
어린 날
인천
서구

더러는
신곡동
어느
언덕

누가 알겠냐 그걸……

여하간에,

머리 위 열대나무는
이상스레
크고 기다란 잎을, 두껍게
펼쳐
바람과 하늘과
무엇


어떤
무엇과
싸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망고나무라고
알기는커녕
거기에 나무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시선을 내리자
콘크리트 한복판, 그 밑
깊이
뿌리내릴 구멍
숨통이
있다

숨통,
그리고,

질척거리는 바람이
온 천지에
들러붙었다.

곧 비가 내리고 아주 축축하게 끓는 우기가 계속되고 망고 터진 폭발한 망고는
썩고
인천 서구인지 신곡동 언덕인지 뭔지 물에 잠기고
썩고

……

비가 멎고
날이 개고
해가 뜨자
터져있는, 세 개의
망고

펌프질이 끝나고
길가에 펼친
신문지
위에는

짜장면
네 그릇

형체도 없이
자신마저 붙잡지 못하는
부패한
썩어버린
하나.

써갈기고 있는
하나

Posted by Lim_
:

건전과 건강을 혐오하는 삶이었노라고 그가 내게


 그는 살아있었다
 오래 되지 않은
 오래 전
 죽은 문자
 활자의 검은 늪 속

 생존은
 언제나 꼬리표만 주렁주렁
 사납고 성가신 단어라
 그냥
 살아있었다고만 하겠다

 특히
 탄생
 에 대해서는
 할 말 없으니
 원하시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거나 만겁 억겁 주구장창
 쳐다보시든가

 여하튼,
 질척이는 암록색 표면
 스스로
 그는
 보았고
 요동했고
 이따금 밑바닥의
 오래 굳은
 거대한 유목,
 흉물
 수면 위로 뱉고……

 영광을 얻고

 고작 진흙 껍질에 생겨나는
 무늬
 정도로

 아무짝에 쓸모없는 이름들 받아

 그 어느 손이며 입도
 그 생애生涯
 비웃을 수 없도록

 낄낄……

 눈만 뜨면 세계는 늘 밤이었다고
 진흙 속 잠긴 눈은
 지껄이고
 지껄였다

 살아있어 비참한 꿈이
 환幻과 환患이
 골과 골을
 흐르고

 못처럼
 고였
 고

 그는 어디론가 발 내딛을
 출구도 입구도
 아니었고.

 그야 뭐
 자신이
 늪이 아니라는 것쯤이야
 알고는 있었겠지

 그러니까,
 그래서,

 빛은

 태양도 낮도
 하늘도
 아니었다

 꿈은

 물가의 생을 버리고
 수면을 부수며 숨을
 터트릴
 때

 빛
 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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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시 2024. 5. 24. 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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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달 보며
연기 푹푹 뿜고 있는데
주광색 가로등

가시나

떠들어대는 소리
카랑카랑
다 들리고

참 한가롭고
시간들 많은가보다
지나가는 저 사람이
연기 뿜는 저 남자가

너무 말랐다는 둥
새까맣다는 둥
저 눈 좀
보라는 둥
팔뚝에
상처 좀
보라는

바람도 찬데
반팔이 멋인 줄
안다는
둥……

어깨 맞대고 쑥덕쑥덕……
혹은 혼자 입 놀리며
중얼



니미,
진짜 어지간히 할 일 없나보다
할 일 할 거 갈 길
그런 거
눈귀코혀몸이며 생각 좀 구해보겠다고
죄 갖다 팔아먹었나

옳다 그래
인생들 바쁘지 않고
할 일 없이 심심해서
좋겠다

실은 나도
당신네 쑥덕거리는 지랄
하나하나
다 듣고 기억할 만치
여유로와서
할 말이야
없다만은……
……

아,

연기가
허파에 독을 씻고
달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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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탄식한다, 고 탄식하는 놈이 세상천지에 있기나 하냐


잿더미가 된 세상
이라는 말이

이렇게
지겹고
아름답고
향수를
자극하고
기쁘고 애달픈지

아마 거기서 꽤 오래 살았는가보다
어떤 때는 이렇게
재투성이 마을을 둘러보고
그거 헤집고 있노라면
이거 죄다
진금(眞金)처럼 보이기도 하거든

금싸라기 잔뜩 덮인 골목에
발 푹푹 빠트리면서
휘황찬란 소주병

곱사등이
인간들아,
인간?

인간이고 진인(眞人)이고 사실
잘 모르겠고, 동지라고 불러주랴?

그런데 그들도 다 안다
우리 눈 마주치는 순간
용암 같은 동지애가 끓고 솟구쳐서
쌍욕 튀어나오려는 거 서로 안간힘으로 참고 있는거
다 알고
그 순간 세상은 다시
잿더미 되는 거
안다니까

그렇게 나는 또 향수를 자극하다, 와
노스텔지어, 둘 뿐인 갈래길에 무릎꿇고 뇌수랑
심장 비슷한 거 쥐어 뜯으면서

쥐어 뜯으면서……
방금 뭘 봤더라


재투성이 마음은
잿가루 휘날리는 잿더미 뿐인 동네를
몹시도 열렬히 사랑하고 사모하고

숨쉬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못해처먹겠고
해야하고
바쁘다,
인생.

Posted by Lim_
:

어떤 것들은 제자리에 있을 줄을 몰라서


지붕에 엮어놓은
나무들이
썩어서
날이면 날마다
턱턱 떨어져서


떨어져내리는구나
그게
뭐든 간에.

누군가 다가와서는
이거겨울에얼어가지고떨어지는거누구정수리에맞기라도하면보통일이아닌데언제날잡아서싹다갈아야겠는데응?안그래요?내가이런일해봐서아는데이게

나는
가던 길 계속 갔다
떠드는 누군가는
계속 떠들고.

일 없수다
떨어지는 게
나무뿐인가……

그가 뱉는 말들
내 신발 밑창에서
발자욱에 들러붙다
뚝뚝 떨어지고

이상할 만치
싸늘한 봄이 오고
있고

나무야 뭐
이제 얼지는 않겠지
계속
떨어지기는
하겠다만은.

Posted by Lim_
:

아등바등 악에 받쳐가지고


날짜 확인하려고 테이블을 보니
약이
삼 일치 남았다.

사서보관해놓고삼키고마침내남은
삼 일

삼일?

달력이고 일수가 무슨 대수라고
만세부르고 다닐 것도 아니고
머리 꼭대기에 해뜨면 일수가방 들고
설치는 놈들이나

은행 달력 나눠주며 이 날이
원금 이자에 생명 갚을 날이라고
지껄이는
놈들이나

더러는
남의 돈으로 일 개월 사러
병원 가는
미친놈이나……

아아.
아아아아.

삼 일이라기보다
삼생(三生) 같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발.

그래도
아니,
그런데,
이 꼬락서니들 왜이리
증오스러울만치 아름다운지
당최,

그러니까, 그래서, 아무튼, 때문에,
아니, 모르겠고, 일단은,
오늘도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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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프집에서

글/시 2024. 2. 7. 22:12 |

호프집에서


그러니까 내 말은
작년 유월 구 일에 술을 끊었고 그러나 친구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와 마실 봉삼주를
담가놓고
있었고
그냥 음료수인 줄 알았던
개복숭아청은
알코올이
들어
있었고
논-알코올이라고
새빨갛게 써갈겨놓은
칭따오
캔맥주에도
알코올이
들어
있었다고

그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가 뭔데
친구가 짜증을 부린다

겨울이라 낮이 짧아, 나는
태양이라는 놈이 가라앉은 후에만
담배를 피운다
춥고 어둡고
외롭고
행인이 없고
친구는 가게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고
튀겨버린 닭이 있다

아무튼 쓸쓸하고 음침한 구석만 골라가며
담배를 피우는데
망할 놈의 인간
인간이
아니 행인이

담배는 순식간에 타들어가
시뻘건 나체가 길게 드러나 있다 나는

뛰듯이 그것들의 현실에서 도주한다
지 몸속에 맥주를 퍼붓는 친구 앞에 앉는다
시발, 너
담배 냄새 진짜

시끄러워
접시 위 남의 뼈다귀나 헤집는다
이 미친놈은 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다른 세상 공놀이에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닭이 뼈만 남고
저 미친놈이 빈 잔만 쥐게 되면
나는 또
저 밖 어느 구석으로


친구가 나를 바라보고
너 더 마셔
친구가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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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가들에게

글/시 2023. 3. 12. 19:37 |

사상가들에게


장고하지 말라, 우리는 우연히 살아있다
먹을 것만을 찾아, 팔십억 인간들은
애벌레처럼 이 땅을 기어 다닌다
그 대단한 숫자보다, 턱없이 많은 죽음이
우리 발밑에 아무 역사 없이 쌓여있다
땅이 교훈을 주리라 믿지 말라, 의미란
비바람에 무너진 묘비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운율에 맞추어 글 쓰는 일일랑 그만두고
우연히 나타난 생애나 듬뿍 들이켜 취해버려라
우리는 회한할 새도 없이 갑자기 쓰러지리라, 그러니
닥쳐오는 모든 것에 장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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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시 평화로

글/시 2022. 11. 10. 17:09 |

의정부시 평화로


그는 자꾸만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려 한다
하얀 석영처럼 해가 빛나고
거리에 비애가 자라나기에는
아직 이른 오후 다섯 시
그는 어디서 술에 취했을까
멀리 기름종이 같은 하늘 올려다보며
내쉬는 한숨에 에탄올 냄새 섞여있다
따개비 무리 같은 재개발 지구를 지나
왁자한 대학생들의 희멀건 윤곽을 피해가며
그 남자는 어딘가에서 술에 취해왔다
이건 고독을 비껴가는 방법이야, 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탁한 명정
늦가을 바람이 일고 눈꺼풀이 감기고
앞으로 며칠간 그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이다
태양 아래 사람들은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걸어가는구나
골목 울타리에 기대 손안에서
애먼 담뱃갑만 돌릴 때, 바닥없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릴 때
사람들은 다리를 쭉쭉 뻗으며 늠름히 걸어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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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의 어느

글/시 2022. 10. 27. 18:00 |

시월의 어느


자꾸만 구역질이 난다
아 하고 성대를 울려본다 나는
어제부터 말한 기억이 없다

거리 위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우듬지 주변엔 창백한 가을 하늘
멀고 낯설고 까마득히 흔들리는데
곧 눈은 시리고 벌겋게 차오른다

흐려진 눈동자와 안경 너머로
찡그리고 바라보아도 그러나
그곳 어디에도 슬플 일은 없다

그저 종일 앉아있던 방안이 어둑하고
너무 오래 하늘과 마주 보지 못했고
익숙지 않은 미제 담배가 독하고 맵고
찬 바람에 온몸이 팽팽히 굳은 탓이다

방으로 돌아와 전등을 켜니
눈동자는 다시 붉게 떨려오는데
여기 어디에도 슬플 일은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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