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에 해당되는 글 117건

  1. 2011.12.26 표류자들과 전쟁에 대하여.
  2. 2011.12.12 생명에 대한 이해와 우리들 영혼의 원초에 자리 잡고 있는 태양과 빛에 대하여.
  3. 2011.11.24 외로움과 계절에 대하여.
  4. 2011.09.04 비영원성. 아주 작은 존재의 의의.
  5. 2011.08.23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1
  6. 2011.07.21 자해에 대하여. 그리고 위대함에 대하여.
  7. 2011.07.03 허무와 열광. 2
  8. 2011.06.25 월말. 작문에 대한 정리.
  9. 2011.05.29 무작위의 진실.
  10. 2011.05.14 창조와 영감과 환희. 2
  11. 2011.04.09 Brain Damage.
  12. 2011.03.11 어느 모호한 과거와 틀림없는 현재에 대하여. 1
  13. 2011.01.03 투명한 공기중에서 눈을 뜨고 있는 나는 끝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가감없는 세계를 견디지 못하고 식도에 기만을 털어넣는다.
  14. 2010.12.24 생쥐 한 마리.
  15. 2010.12.18 실패와 부패.
  16. 2010.11.17 필요성.
  17. 2010.10.28 통증과 정신요법과 불안. 1
  18. 2010.09.29 2010년 9월 29일 수요일.
  19. 2010.09.20 그럼에도 불구하고,
  20. 2010.09.10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 나는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혼자 있을 때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
  21. 2010.08.30 Love can be seen as the answer. 1
  22. 2010.08.09 분열과 창조.
  23. 2010.07.27 몽롱한 강간범과 피해자.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리라.
  24. 2010.07.23 H. 노바크 - 태양병 1
  25. 2010.07.21 정신나간 행렬 사이로.
  26. 2010.07.14 악순환. 1
  27. 2010.07.10 불균형한 신체와 불균형한 정신과 오류적 존재. 집착과 맹목성.
 세계여! 우리 내버려진 사람들이여.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내가 전력을 다해 거부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가짜 사탕발림에 속아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들떠있었다! 세계는 아무런 법칙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인간과 마찬가지다. 아무런 법칙도, 평등한 수치를 제공해주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저 내버려진 채로 절망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씹는 담배처럼 이빨 사이에 고통을 넣고 그 쓰디쓴,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오직 하나뿐인 그 맛을 언제까지고 우물거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많은 목사와 선생들이 우리에게 희망과 규율을 말했다. 그들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있는 기만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에 점 찍혀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을 보아야 한다. 아무런 법칙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진실을 말이다. 떨어진 새가 다시 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의 자비라는 것은 사람의 약한 마음이 만들어낸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는 바다 한복판에 내버려진 표류자들이고, 파도는 우리의 사정에 상관하지 않고 제멋대로 덮쳐오거나 수그러든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세상인 것을! 다만 우리가 자유라는 점 만은 사실이다.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만큼이나 우리는 자유다. 그러나 고통 또한 진실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로운 만큼 고통스러워야한다. 우리는 사실 희열보다는 절망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전쟁이야말로 삶의 본질이고 실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원망하려면 우리가 의식하고, 제각각의 취향을 가진 동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자, 형제여, 우리는 울 수도 있고 몸부림 칠 수도 있다. 전쟁 상태에 몰입하는 것을 그만둘 수도 있고 아니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지금 내 눈에는 혹독한 전쟁터만이 보인다! 우리는 어떤 약속도 없이 내버려진 채로 서로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지를 뒤덮은 시체와 웃는 모습이 가증스러운 부당한 자들도 보인다. 부당? 물론 그것은 내 적임을 뜻한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적들을 찾아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끝없이 희열을 갈구하던 시절에 내 손을 잡아줄 아군을, 동료를, 형제를 얼마나 애타게 찾아 헤매었던가. 그러나 전쟁이여, 우리는 모두 칼을 든 형제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정신의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희망도 기대도 거부하고 치루는 이 전쟁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단 말인가? 사실 고개를 돌리면, 태도를 바꾸기만 하면 인생은 하나의 달콤한 과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쪽 면이 진실인 것만큼이나 이쪽 면도 진실이다! 우리가 자유라는 것, 우리가 고통스럽다는 것, 우리가 쾌락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절망할 것이라는 것. 모두가 진실이다. 나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혼란하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가슴이 아프더라도 나의 흉기를 쥐고 있으련다. 위대해지는 것만이 단 하나의 목적인데, 전쟁을 포기하는 것으로는 위대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Lim_
:
 혼란한 감정. 나는 시멘트 속에 빠진 생쥐 같다. 내게는 사고들을 늘어놓고 그것들의 특징을 판단하여 분별해놓을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내 영혼의 정상적인 기능의 대부분이 약효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거듭 깨닫는다. 나는 마침내 인생을 손에 쥐었다고 자신만만하여 외쳤지만 사실 그 인생을 잡고 있는 손은 신경약리학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던 것이다. 나는 흐르는 벽돌로 된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로에는 출구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갇힌 곳은 목적도 결과도 없이 정신의 혼돈만을 조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원형 공간이다. 나는 사물들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들에는 내 손이 닿지 않는다. 사물들의 표면 위로 피어오르는 희멀건 안개 같은 것을 나는 볼 수 있다. 모든 것의 본질이 흐려지고 아무것도 뚜렷하지가 못하다. 나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나는 생각을 할 때면 주로 같은 곳을 계속해서 돌며 걷곤 한다. 나는 그저 더 작거나 큰 원을 그릴 뿐이다. 나는 생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 놓는다. 그리고 다시 살펴보다가 침을 뱉듯이 땅 위에 내던져버린다. 나는 깨끗한 것이 보고 싶다. 명확하고 번쩍거리는, 투명한 것이 보고 싶다. 나는 너무 혼란한 곳에 있다. 나의 언어들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입술 위에서 비틀거리다가 쓰러져버린다. 나는 손을 뻗어 잡고 싶다. 단단히 무언가의 손을 쥐고 싶다. 나는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인생은 과연 자유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었다. 아무 대가도 없이 말이다. 언젠가 죽음이 다시 우리들에게서 그것을 가져가버리긴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자유의 기회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이 없는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도 죽어서 바람에 닳아 모래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자유다! 우리는 완전한 맨몸뚱이로 갑자기 나타났다. 우리에게는 신도 없고 도덕도 없다. 햇살이 쬔다. 바람이 불고 모래가 휘날리고 하늘이 흐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우리는 나뭇잎 위에 흐르는 태양빛을 만져볼 수도 있고 땅 위에 고인 샘물을 마실 수도 있다. 우리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죽음조차 삶의 일부다! 그것은 삶의 종언을 특정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완전한 사생아다. 나는 완전한 사생아다. 나는 아무 전통도 짊어매지 않고 태어난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도대체 무엇이 기어다니고 있는 것인지 형언하기가 힘들다. 나는 어떤 거대하고 불투명한, 물렁물렁하고 흐릿한 사상 덩어리의 존재를 느낀다. 그것은 살아있고 지네처럼 발이 많다. 그것은 기어다닌다. 내 머릿속에서 어떤 금속성도 갖추지 않고 흘러다닌다. 나는 빛이 필요하다. 맹렬하고 건조한 빛을 쬐어야한다. 나는 가끔 웃기도 한다. 그것은 사회적인 만족의 표시다. 그것은 나의 불확정성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나는 모든 것을 씻어내고 싶다. 빛으로, 빛으로 만물을 씻어내고 싶다. 의무 같은 것은 죽었다. 족쇄는 허상이었다. 나는 사막에 가고 싶다. 내 몸과 정신에 불을 붙이고 싶다. 나는 어쩌면 축축한 땅밑에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삶에서 언제나 빛과 열을 갈망해왔다. 갈망이란 무릇 그것을 갖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나는 정신의 강자가 되고 싶다. 나는 빛을 쬐고 싶다. 나는 독과 물에 흠뻑 젖은 내 사고를 불꽃으로 태워버리고 싶다. 그런데 자유라니? 자유는 무서운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자유는 우리를 아무 것도 없는 허공으로 집어던지는 무자비한 손과 같은 것이다. 삶에는 지정표가 없다. 우리는 자유다. 우리는 내버려져있다. 그래서 창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땅바닥의 모래를 긁어모아 무언가를 지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 태양이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태양 뿐이었다. 빛이 모든 것을 일깨웠다. 허무에서, 빛이 쬐고 우리는 허무 속에서 사물을 발견하고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저 보았다... 그리고 종종 감동했다. 우리의 영혼은 태양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나는 빛을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빛을 만들고 싶은 것일까? 그것을 다시 비춰보이려는 것뿐인가? 태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나는 어쩌면 불타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놔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어리석은 짓이다. 수지 타산을 할 줄 아는 자라면 삶이라는 기회를 그냥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삶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넘치고 혼란스럽다.
Posted by Lim_
:
 겨울이 왔다. 빛이 투명해지고 공기에서 북쪽의 어떤 선명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나는 태양에 점령당한 땅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내 영혼은 언제나 빛을 향하여 머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빛에 대한 이미지가 부족해지는 일은 없다. 나는 언제나 눈이 부시다. 나의 촉각들은 늪의 뻘을 느낀다. 내 심장이 담겨있는 새까만 늪을 나는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감정과 고독은 내가 어디에 파묻혀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직 죽음을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삶의 그 어느 순간도 죽음을 논하기에 이른 때일 수는 없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오래되고 깊은 외로움은 나의 인격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대단한 것이다. 늙은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고독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홀로 살아와서 인생을 누군가와 나누는 방법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억울하고 슬픈 감정들. 그러나 더는 그러한 기억에 상관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나는 이따금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만만하여 인생을 낙관하는 때가 있다. 내가 쉽게 절망하는 만큼이나 쉽게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부나 영광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극도로 닫힌 인간이다. 내가 기쁨을 느끼는 데에 필요한 것은 외부의 조건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는 일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주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었다. 나는 미치광이여도 괜찮은 것이었던 것이다. 연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은 꿈을 꾸는 자의 욕망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꿈 속에서도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얼마 전에 나쁜 일이 있었다. 나의 충동성과 불행에 대한 억하심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원한감정으로 가득한 슬픈 짐승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와중에도 과거에 발이 묶여있다. 그러나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결할 수 없는 과거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단 말인가? 잊거나 둔감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스스로와 타협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와의 절연. 관계자의 죽음. 완전히 망각하는 방법. 이상한 말이지만, 나를 과거의 나로 인지하는 시각들만 사라지만 과거의 나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영원히 망각의 땅 속에 묻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꼬리를 잘라낸 도마뱀처럼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증오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나를 슬프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아무와도 손을 잡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모든 것이 나의 선택권 밑으로 들어오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지드의 사생아. 모든 사람이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사생아가 될 수 있다. 부모라는 이름의 전통(전통이라는 이름의 부모)을 살해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완전히 스스로의 책임만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시간에 묶여 죽는다. 홀로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인간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다. 생명은 곧 가능성이다.
 계속해서 잠을 자고 계속해서 꿈을 꾼다. 엄청난 양의 꿈들. 엄청난 양의 환상들. 나는 살아가는 일에서 쾌락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잠을 잔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지위도 갖지 못했다는 것은 완전히 사회적이지 않은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환상에 낭비되는 시간들 속에서 방종을 즐긴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선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겨울에: 나는 삶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파괴와 포기. 그러나 나는 삶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오직 삶 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러하다. 누가 영원을 말하는가? 인간은 죽음이 놓여진 삶 밖에 가질 수 없다. 오해하지 말라. 우리가 맛 볼 수 있는 과실은 영원하지 않다.
Posted by Lim_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은 아주 적은 편이다. 그것들을 한 손으로 꼽아볼 수도 있다.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 글을 써야한다. 달리 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무능력과 무기력과 더 없이 작은 존재를 느낀다. 언제나 그래왔다.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사실이었다. 변한 것은 내 환상의 크기였다. 나의 모래 알갱이 같은 실재는 언제나 작게 수축되어있었고 건조했던 것이다. 어떤 날을 경계선으로 하여, 나는 그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전보다도 더욱 글을 쓰는데 열중했고, 그것이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단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빛이라는 것도 얇고 예리할 뿐인 한점의 입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받아들이기는 해야한다. 그것이 사실이고, 실재라고 말이다. 나는 영광을 찾는 것이 아니다. 어떤 초월을 목적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무의미하고 작은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무엇은 안 그렇겠는가? 모든 것이 그러하다. 크고 작다는 것은 비교에 의하여 탄생하는 개념인데, 사실 큰 것은 어디에도 없다. 작은 의미들이 모이고 모여서 그것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크고 작다는 개념도 결국 허구로 밝혀진다. 하늘이 없는 사막. 오직 모래알 뿐. 그러나 분명히 해야할 것은, 그렇다고 하여 감상주의적인 허무로 빠져드는 것이 허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래 알갱이가 하나 있다. 그것은 실재한다. 아주 미세하고 쪼그라들어있으며 약간의 비대함이나 풍부함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것은 실재한다. 나는 손으로 그 모래 알갱이를 집어들어 바람에 깎여나간 면들과 모서리를 손끝으로 느껴볼 수도 있다. 그렇다, 그것은 그리도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의미도 가지지 못하고 미래를-희망이라는 물감으로 칠해놓은, 우리에게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 신들의 미래를- 품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결코 영원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안다. 허무라는 것도 문자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나도 광대한 개념이다. 허무. 그렇게 말로 떠벌리자면 나는 허무에 잠겨있기도 하고 동시에 허무를 거부하고 있기도 하며 허무를 부정하기도 하고 허무를 신뢰하기도 한다. 도무지 '이러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 까뮈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공허하고 목적없는 역할에, 그러하더라도 내 삶을 송두리째 바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것도 언젠가 스러지고 마는 것이라고 회의적인 목소리를 던지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절대적인 것만큼 인간에게 있어 무의미한 것도 없지 않은가. 절대라는 것은 즉 인간의 손이 닿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들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조작할 수 없다. 절대는 우리의 머리 위에서 끊임없이 내리쬐지만, 우리는 그것을 향해 눈을 향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닌 것이다. 오직 알고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절대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절대를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런 것이다. 내가 인간일 유일한 이유. 내가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역할. 건조한 명백성. 사멸하는 가치야말로 가치다. 애당초 사멸하지 않는 가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인간은 태양 아래서 스러지는 것에 목숨을 바치고, 자신의 온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Posted by Lim_
:
 다 썼다.
 4개월이 좀 넘는 시간을 들여서 A4용지 51페이지, 200자 원고지 456 매 분량의 초고 완성. 이제 다듬고 깎아내는 작업만 남았다. 제목은 아직 고민중이다. 가제를 붙여놓기는 했는데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다른 단어의 조합들도 마찬가지로 내용에 비하여 조잡하게만 느껴진다. 수정을 마치고 나면 공모전이나 출판사 따위를 좀 돌아다녀 보아야겠다. 이것이 내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작품이 될지 아직은 그저 불투명하기만 하다. 약간의 기대만 있을 뿐. 하기사 언제나 그랬다. 무엇이 과정이고 무엇이 결과일지 현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블로그에 게재하는 것은 발표 과정이 일단락 된 뒤에 생각해봐야겠다. 우선은 지금의 탈력감과 만족감을 충분히 만끽한 뒤에 말이다.
Posted by Lim_
:
 과도한 감정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 고뇌에 취해버려서도 안된다. 차라리 그것을 하면서 웃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고통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동시에 행위의 근거에도 또한 고통이 있다. 과도해서는 안되지만, 사실 미리부터 행위는 과도하게 흘러넘치는 감정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포화 이후의 절제. 기묘하고 애매한 균형이 있다. 언어화 할 수 없는 언어처럼.
 사실은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가 병적인 결핍상태에 있다는 것을 묵묵한 침묵 속에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차라리 일종의 병에 전염되는 것과 비슷하다. 형태지어진 타인이라는 존재는 내 존재성 속에 퍼지는 독극물 같다. 달팽이는 자신의 연하디 연한 살을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두고 산다. 병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감상주의자들의 불쾌한 내면과 접촉하는 것이 싫다. 그들의 정신은 독과 같고 전염병처럼 추하다. 자기자신의 구역질나는 체액에 잠겨 천천히 익사해가는 그들을 향하여 나는 증오와 혐오의 문장들을 수도 없이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사방으로 손을 내밀어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의 병증에 취하여 만족해버린 익사자들. 나는 그들의 따귀를 때리고 그들이 반드시 있어야 할, 깊고 깊은 바닷속에 처넣어버리고 싶다. 당신들의 손은 역겹다. 당신들의 끈적거리는 외로움만큼이나.

 나의 세계 안에서도 오만가지 시각들이 있다. 그중 어떤 눈은 나를 보지 못한다. 그는 나라는 존재를 세계에서 발견해낼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내가 너무나도 작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도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나는 광막한 세계 속에서 간절히 바란다. 내가 세계의 일부의 일부의 일부라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그러나 개인이라는 것은 늘 시간 속에서 패배해왔다. 염세주의나 패배주의에 근거하지 않더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개인은 늘 시간 속에서 패배해왔다. 승리하는 개인이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개인은 패배한다. 그 자신이 그러한 결말을 알고 있든 알지 못하고 있든, 아무튼 간에 개인의 종말에는 패배밖에 놓여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설령 내가 가는 길의 끝에 허무와 사멸이라는 진실밖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는 꾸준히 발걸음을 옮겨야만 한다고. 그 누구도 결과적으로 승리할 수 없는 세계에서-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세계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가 언어를 알기도 전부터 그 의문은 항상 내 존재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보라, 나는 위대함을 알지 않는가? 위대함이라는 단 하나의 빛줄기를 알고 있지 않은가. 허무주의자들이 말한다. 모두가 패배하는데 위대함 같은 것에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상관 없는 일이다. 소유와 무소유로만 사물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은 안될 일이다. 위대함은 가지는 것도 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향하는 것이다. 나는 길 아닌 길을 발견한 것이다. 끝에 가서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완전하게 사멸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절망적인 반항의 얼굴로 나는 위대함을 향하여 걷는다. 필멸자인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갈구란 바로 그것이다. 나도 죽음을 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 중 하나인 그가 죽는 것도 보았다. 그의 존재가 사라지고, 갈망해왔던 모든 가치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미래도 과거도 없는 멸망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가 아무리 죽음에 반항하며 삶을 향해 손을 뻗어도 죽음이 그를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그것이 결말인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 그런데, 이것 외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영원? 아니다. 영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어떤 관찰자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실제 구조와는 상관 없이, 영원은 우리들의 눈과 귀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만다. 내가 본 것은 필멸자의 위대함이었다. 죽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자가 반항의 몸짓으로 허무 속에서 끄집어낸, 한없이 순수하고 명백한 공허. 세차게 이마를 때려대는 햇빛과도 같은 감각뿐인 존재. 한순간뿐인 열파. 폭발하는 순간 태어나서 곧바로 사라져버리는 먹먹한 실재.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왔다가 가는 계절. 그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세계가 우리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유일한 삶의 방법인 것이다. 인생은 소모하는 것. 생명은 한순간의 불꽃을 위한 연료나 다름없다. 그리고 명백함과 광막함으로 이루어진 폐허 속에서 섬광으로 번뜩이는 것. 도착할 수 없는 목적지. 열광의 활주로. 위대함으로 가는 길.
 그는 죽었다. 그리고 위대하다. 
Posted by Lim_
:

허무와 열광.

기록/생각 2011. 7. 3. 23:24 |
 포기를 위한 감정. 안식에 대한 욕망. 어서 모든 일을 끝내버리고 싶다. 나는 늘 언제까지 살아야하느냐고 누군가에게 묻는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이다. 단 하나라도 좋으니 네 삶을 완결지어라. 사고에 마침표를 찍어라. 만약 내가 아주 잠깐이라도 위대함의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 뒤에는 그저 영원히 깊어지기만 하는 계곡 사이로 굴러떨어져도 좋다. 그러니까 어서 정상에 올라 울고 소리쳐야한다. 결말을 위하여. 나는 끝을 원한다. 그러나 늘 남는 것은 미련 뿐이다. 복수심과 미련. 나의 가장 지저분하고 추잡한 인간성. 누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진심으로 내 심장에 체온을 나누어준다면. 만일 내가 행복하다면. 사실 나는 내가 감상을 갖는 것도 혐오스럽다. 달리 어쩔 도리도 없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살하듯이 잠드는 것 뿐이다. 왜? 죽지 않겠다고 말해버렸으니까. 어떤 시기까지는. 세계와 자주 마주칠수록 발밑에 도사리고 있는 허무주의가 점점 더 뚜렷한 윤곽을 갖는다. 의사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통제권을 손에 넣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발짝만 더 나서면 허무주의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내가 더 이상 의지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고,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고, 패배주의적인 울부짖음 속에서 서서히 흐려지다가 결국에 가서는 완전히 지워져버린다면?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바래야한다는 것은 또 무슨 법칙인가. 이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것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만두고 싶다. 전부 다. 뭐 하나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무엇을 기대해야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냥 굴러 떨어졌을 뿐. 죄악이 무엇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죄 같은 것은 없다. 그 어떤 법칙도 기준도 좌우도 상하도 없다. 그것들은 그저 이 모든 엿 같은 것들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음흉하고 배부른 돼지들의 공작으로 만들어진 허구다. 우리는 맨몸뚱이고 벌거벗었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피와 고기밖에 없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그저 무작위하고 가차없는 우연에 의해 여기에 서있을 뿐.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세계를 송두리째 거부할 수도 있다. 애당초 그것이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죽을 수도 있다. 그것만이 자의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스위치니까.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오직 그뿐. 위대함은? 글쎄, 너무도 멀고 막연하다. 그것에 목매어있는 만큼, 그것은 동시에 공허하고 가끔은 증오스럽다. 나의 인생을 유지시키는 단 하나의 것. 그것만 없었더라도 나는 일찌감치 그만 둘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허무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단 하나의 빛줄기. 나는 그것을 갈망하고 사랑하고 찾아헤매고 증오하고 원망하며 포기하지 못한다. 사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데. 도대체 언제쯤에야 나의 영혼이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죽을 수 있다. 죽음만은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갈망. 안식. 영원한 휴식. 영원한 잠. 깨어날 필요가 없는 꿈. 그러나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찾고 싶어한다. 햇빛은 손에 쥘 수도 먹어치울 수도 없는데. 섬광은 간직할 수도 끌어안을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것에 목이 매어있고, 자살하지 못하는가.
Posted by Lim_
:
 한달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30페이지의 글. 이전과 비교해보면 아주 만족할만한 속도이다. 툭하면 관념적인 표현으로 특정한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사실 나 자신은 그런 방식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경외감. 그러나 나의 문장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에는 하루가 너무 바빠져서 작문에 오랫동안 집중하고 있기가 어렵다. 나는 퇴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내가 가진 시간들을 가능한만큼 전부 작문에 쏟아부으려고 하지만 분량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문장들의 단결성을 해치기도 한다. 핵심을 짚어내라. 상징적인 사건들. '글쓰기'의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던 이미지들에 대하여. 잊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것을 완성시킬 때까지는 변화해서도 안된다. 회의주의는 실천적인 행위들이 끝난 뒤에나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물질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그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개인으로 있을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러는만큼 내 결백함은 점점 흐려지겠지만, 아무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죄라는 것도 간단히 입밖으로 낼만한 표현이 아니다. 나는 그저 '어떤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것뿐이다. 애매모호함을 받아들이지 말라.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을 완전히 정리하고 나의 사상이라는 책장 안에 꽂힌 한 권의 깔끔한 책으로 만들어내야한다. 모호한 정신과 모호한 관념으로 쓰는 글은 자연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정신의 흔적을 쫓으며 분석하고 성립시켜야할 일이다. 언제나 되뇌는 말이지만, 감성에 너무 기대서는 안된다. 내가 가져야할 것은 명백함이다.
 뇌를 녹아내리게 하는 한여름. 나는 격렬한 우울과 낮게 일렁이는 분노 사이에서 발을 질질 끌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오감은 언제나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태세다. 모든 감각이 너무 날카롭게 날이 서있어서 스스로의 신경 때문에 기절해버릴 것 같다. 광기의 한복판. 나는 여전히 이성을 가진 광인이다. 섬광을 쫓는다는 것. 미치지 않은 미치광이의 상태를 유지해야한다는 것. 죽은 예술가들의 꿈. 오직 개인만을 위한.
Posted by Lim_
:

무작위의 진실.

기록/생각 2011. 5. 29. 04:46 |
 나는 춤을 춘다. 나는 춤을 춘다. 내가 춤을 추노라. 내 목소리를 들으려면 어디로 가야하나? 누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입에서 나의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싶은가? 아니, 사실은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어딘가에 완벽하게 만들어진 내 밀랍인형이 있다면!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도다! 나는 희망이 충만하고...희망은 충만하지 않다. 희망은 거부당했다. 그렇더라도 괜찮다. 그것은 애당초부터 거절당할만한 것이었다. 나는 내 손을 뜯어먹는다. 내 유일한 가치를 씹어 삼킨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접시가 비워진다. 내 가죽, 내 살덩이, 내 뼈. 내 목소리. 내 목소리를 내는 내 표정들. 사방으로 떠들어대는 얼굴들. 나는 춤을 춘다. 들어본 적도 없는 리듬에 스탭을 밟는다. 그런데 내가 만일 그들에게 빚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빚이 있는가? 그런데 나는 누구에게도 원한 살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결백하고 유쾌하다. 그러나 완전하지는 못하다... 충분하지 않다. 그래도 잘 되어가고 있다. 나는 잿가루가 뿌려진 기쁨을 들이삼킨다. 커다란 잔에 그것을 담고 마시며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통증이야말로 나의 뿌리가 아니던가. 춤추자! 기쁘니까 춤을 추어야한다! 나는 꿈 속에서 나의 집을 갖는다. 나는 내 집의 가장 안전한 방의 가장 깊숙한 안락의자에 머리꼭대기까지 파묻혀 있다. 나는 또 소리내면서 웃는다. 무엇이 우스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도망쳤다는 사실이 유쾌하다. 나는 완벽하게 도망쳤다. 그러나 일시적인 도망이다. 다시 목이 묶여 끌려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내 집으로 도망치기 위해 내 목을 자를 것이다. 머리가 떨어져 내린다. 내 손해다. 소리내서 웃자. 나는 믿는다. 어떤 길거리에서, 사람이 한 명도 다니지 않지만 사람의 그림자가 시야를 스쳐지나가는 어떤 길거리에서 나는 겁에 질린 만큼이나 편안하다. 내 몸에서는 웃음이 체액처럼 뚝뚝 흐른다. 잘린 머리. 잘린 머리. 잘린 남근. 잘린 영혼. 잘린 정신. 잘린 자아. 유명한 단어들... 너무도 값싼, 너무도 고귀한. 누구나 먹어야 산다. 그 어떤 고명한 철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탐하자. 걸신들린 것처럼. 뜯어 먹자! 나는 잠을 자겠다. 내 통제를 벗어난 다리와 함께. 어떤 주관의세상은 아득하게 멀어지고 연기로 둘러싸여 있다. 내일. 연속되는 사람들.
Posted by Lim_
:
 나는 내가 상당히 괜찮은 소설을 구상하고 있고, 그야말로 멋지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만한 소재와 부품들을 구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텅 빈 페이지를 직시하고 있을때 돌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온갖 발상과 생기를 머금은 대사들이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물론 나는 아직 단 한 줄의 문장도 완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내 의지로 인한 것이다. 나는 아직 이 이야기를 형태화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내 두개골 안에서 기분좋게 굴러다니는 가공의 인물들을 다소 흥분한 마음으로 관찰하곤 한다. 보라! 나는 곧 걸작을 써낼것이다! 그러면 내 모든 수치와 내 발치에 놓여 나를 노려보는 경멸의 시선들도 전부 산산조각나 사라질 것이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렇게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공상 속에서 갖게 된 성공을 빛에 비춰보이고 또 자랑한다. 그리고 나는 또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을 꽉 물고 떨어지지 않는 나의 적들을 향해 사납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했지 않은가! 바로 내가 옳다고! 너희는 모두 글렀다! 이제 내가 위대함에 더 가까우니 당신들의 지식과 교양이라는 것은 전부 시체조각과도 같다! 당신들은 이제 나의 적조차도 아니다! 그저 무덤 아래에서 신음하는 덜 죽은 주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쓰려는 이 이야기조차 어딘가의 책에서 따온 흔해빠진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로 당당하게 자랑해보일 글을 쓰려는 것인가? 이 과잉의 시대, 이 21세기에서 나는 독창성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창조력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빛이 바래고 낡아빠진, 추잡하고 비웃음이나 살만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리라. 흠! 그러나! 전보다는 덜 자신만만하지만, 나는 내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과 능력이 충분히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달리 믿을 것이 무어 있겠는가. 내게는 그것밖에 보이지가 않는데.
 어쩌면 이런 흥분된 마음과 즐거워하는 입술도 다음달, 혹은 다다음달, 어쩌면 이 텅 빈 페이지를 완성하게 되는 그 날이 오면 송두리째 나락 아래로 떨어져내릴지도 모른다. 실상 그것이 몇번이나 겪어왔던 일이고 사실이었다. 이전까지 나는 도무지, 내 영혼의 눈 앞에서 번쩍이는 그 섬광들을 완벽한 형태로 옮겨오는 것에 서툴렀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과 면을 따라 길가에 놓인 바윗덩이를 완벽한 예술품으로 깎아내는 것과 같다. 이 일에는 요령이라는 것도 없고, 그저 언제 거머쥐게 될지 알 수 없는 성공을 위해 그 반석으로 수많은 실패들을 쌓아올리는 일만이 필요한 것이다. 그 사실 때문에 가끔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이것은 안도를 위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들을 짓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만 하리라!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나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섬광에 가까워져야한다! 지금 내가 열에 들뜬 정신으로 뒤쫓고 있는 이 이야기는 과연 성공을 위한 과정이 될 것인지 혹은 결정적인 성공이 될 것인지. 나도 확언하지는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눈밭 위에서 눈덩어리를 굴리듯이, 조심스럽고 또 최적의 방식으로 나의 아이디어들을 부풀려야한다. 덧붙이고, 깎아내고 자르고 또 색을 칠하거나 지우기도 하며, 작업을 진행해야한다. 몇 번이나 반복하여 고백하건데, 나는 기쁘다! 나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기쁘다! 내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유일하고 또 얼마나 특별하며 환희로 가득한가! 단 한 줄기의 빛! 천지사방을 까맣게 메우고 있는 어둠 때문에 그 빛줄기는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어쩌면 그 빛을 제외한 모든 어둠이란 그 빛줄기가 더욱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것만을 위한 무대장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충분히 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마치 빛에 취한 듯 하다!
Posted by Lim_
:

Brain Damage.

기록/생각 2011. 4. 9. 03:09 |
 타인의 말에 공격받지 않는 방법으로는 자멸적인 퇴폐 뒤로 도망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는 항상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울면서 길을 걷지 않는가. 콘크리트와 시멘트 따위로 만들어진 포장도로는 도시인들의 비웃음만큼이나 무뚝뚝해서 아무리 눈물을 떨어트려도 우리를 위해 웃어주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그들에게는 온기라는 것이 없다. 어머니 자궁 속의 한조각 살점이었을 때부터 줄기차게 갈구해왔던 그 온기.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남들과는 다르게 흉기를 갖추지 못하고 태어났다.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맨몸뚱이였던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세련된 웃음을 지어보이는 그들은 언제나 흉악한 무기를 손에 쥘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정갈한 감정이라는 것도 다 싫다. 내가 슬플 때 운다고 누가 내 눈물을 받아주겠는가. 나는 차라리 눈물샘에서 알코올을 흘릴 것이다. 정신나간 휘발성 액체가 달큰한 냄새를 풍기면서 흘러나올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들이 조금 더 우습게 보일 것이다. 물론 아직 나는 웃지는 않고 있다... 내 마음에는 속물적인 부분들이 없잖아 있다. 그래서 나는 승리자들을 부러워하고 명예와 권력을 향해 혀를 낼름거리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흑백사진으로 인쇄된 밀랍인형과 닮아있기를 바라는데, 현실의 나는 그것보다 훨씬 지저분하고 들쭉날쭉하다. 그런데 하여간, 내게는 패배주의의 속성도 있다. 나는 아마 내가 질투하는 그것들을 손에 쥐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제발로 더 깊은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친구는 날더러 영리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옳다. 그는 참으로 항상 옳다. 벌집이 밀랍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고 있는가? 나는 밀랍이라는 단어가 좋다. 그것은 깨끗하고 탄력있어보인다. 그리고 우윳빛의 광채를 낸다. 너무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광채 말이다. 나는 아마도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경쟁도 싫다. 나는 경쟁도 싫어서 전부 그만 둬버렸다. 나는 남을 이기기 위한 무기가 없다. 어쩌면 잘 찾아보면 그것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다지 내 무기를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 관둬버렸다. 잘못된 선택들, 장기적인 안목이라는 것도 전부 내버렸다. 나는 현재밖에 살줄 모른다. 아니, 더 솔직하라. 나는 현재조차도 제대로 살 줄을 모른다. 나는 공포와 함께 산다. 내 이불 속에 그것이 꿈틀거리면서 살아있다. 아프고 울고 싶지만 그러한 사실들은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 내 고백을 도대체 누가 좋아라고 들어주겠는가? 그런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돈을 내야한다. 나는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돈이 필요하다. 내 친구의 말마따나, 그것이 돈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숫자가 인쇄되어있을 뿐인 종이조각들을 피처럼 아끼겠는가? 그는 현명하다. 그러나 나는 반 자본주의자도 아니다. 그런 사상을 가질만큼 단정적이지 못하다. 나는 결론이나 판결을 내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누군가를 평가하라고 지시한다면 난 그 지시자를 목졸라 죽이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치를 가질 것을 강요 받아왔다. 누가 그랬을까? 아마 나도 그랬고 남들도 그랬고 또 세상 또한 그랬을 것이다. 무의미한 일이다. 땅에는 이미 봄이 피었는데 나는 너무 춥다. 모든 일어난 일들은 이미 형태지어져있다. 성형수술과 성전환수술. 그리고 나는 피 묻은 메스가 무섭다.
Posted by Lim_
:
 오늘도 내일도 없이, 그저 낮과 밤이라는 기계적 순환으로만 시간의 흐름에 경계선을 긋던 그때를 나는 어떤 표정으로 기억하는가? 나는 몽상과 환각으로만 하루를 빼곡히 채색했다. 미래라는 것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고 기력없는 모습으로 저 멀리에 서서 내게 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으며, 나 역시 미래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시간은 단단히 문이 닫혀있었고, 내 방의 공기는 두텁게 얼어붙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박제된 시체처럼, 나의 작고 문이 잠긴 방은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방 바깥의 살아 움직이는 것들과는 접촉하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나의 고형화 된 공간은 꼭 홀로 영원할 것처럼 나를 감싸 안았던 것이다. 그 마음 편한 추위 속에서 나는 외로움도 몰랐다. 환상은 현실보다 컸고, 완벽했으며, 또 외롭지 않았다. 나는 곰팡이 핀 벽지에 둥글게 만 몸을 기대고 웃는 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보지 않고 있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하는 법이었다. 나는 벌거벗겨진 채 햇살 찬란한 텅 빈 거리로 끌려나왔고, 갑작스런 위협에 얼떨떨해진 채 겁에 질린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아무리 일상의 굴레라는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몽상으로 내 존재의 목을 축이더라도 영원이라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자신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나왔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나는 내게 익숙한 표피를 벗어버리고 세찬 겨울바람이 휘몰아치는 거리에 서있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진정으로 위안이 없다. 나태는 사실 단 하나의 달콤한 꿈이었는데─정말이지 그것은 꿈이라고 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나는 과거로부터 미래에 향하는 시간과 만나고 나태의 가능성마저 빼앗겨버린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도덕적 잣대로도 평가할 수 없는 일이리라. 나태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말로는 포기라는 것이 있다. 이것도 언젠가 이야기했던 관념이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커다란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산산조각난 나의 시체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생명이 흐르는 나의 비극적인 살과 근육들을 내려다본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다. 예전보다도 훨씬 깊게, 더 본질적인 의미의 외로움을 말이다. 나는 구원이 없는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마도 태초부터 이 땅에는 확신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야한다는 것이다. 어떤 미래들이 어떤 사건의 모습을 하고 내 코앞으로 쏟아져내릴지 나는 참으로 손톱만큼도 알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줄 어떠한 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나는 인간의 감정을 가슴 한가득 안고 이 황폐한 대지 위를 기어야하는 것이다. 나의 단단한 방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을 적에는 세상의 광막함에 굳이 시선을 붙이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우울에 만족하지도 못하고, 이미 한계까지 차오른 눈물샘을 짓누르며 소리를 지르고 싶다. 아우성치고 비명을 지르고 싶다. 내 속에 생명이, 열망이 흐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멈춤 없이 기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그리고 필연적인 고통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가장 완벽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도대체 뭘 가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목표해 마지않는 것을 향하여 사지를 움직여야하는 것이다.
 이 새카만 밤에, 나는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누군가에게 내 손을 잡고 나를 일으켜달라고 진심을 다하여 부탁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혼자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나는 혼자다. 그리고 혼자인 채로 살아야만 한다.
Posted by Lim_
:
 불안과 고통. 불안과 고통. 우리는 태어났다. 우리는 어쩔 도리도 없이 태어나버렸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덮치고 강간하던 순간을 우리는 불타는 적개심과 증오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사방으로 폭발하는 공기 한가운데에 버려졌다. 우리는, 우리는, 나는 아직도 태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태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 몸은 도마뱀처럼 끈적거리고 역겨운 모습으로 구부러져있다. 나는 꼬리를 배에 가져다댄다. 머리를 내 갈비뼈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새빨간 태아. 탯줄이 끊긴 태아가 땅 위에서 굴러다니는 것이다. 바람은 날카로운 바늘처럼 피부를 찌르고 말초신경의 끝자락마다 흉터를 남기고 간다. 나는 배신당했다. 나는 배신당했다. 나는 그들에게 배신당했다. 나는 내 유일한 친구에게 배신당했다. 나는 그를 증오한다. 내가 투명한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릴때 그는 나를 버리고 갔다. 나의 둥글고 투명한 안구. 친구. 나는 손을 원했다. 나는 다섯개의 곧게 펴진 손가락과 그것을 싸고 있는 피부와, 그 속의 근육과 뼈와 골수를 원했다. 달그락거리며 악수를 나누는 뼈로 된 손들. 나는 손을 원했다. 직관적인 표현. 직관적인 비유. 나의 심장. 근육과 피들, 선명한 피. 새빨갛고 어찔어찔하다. 도움을 청한다. 나는 허공에서 떨어져내리고 있다. 언젠가 바닥에 닿는다. 내 손은 구름을 헤집고 내 기도에는 새파란 하늘이 가득하다. 꿀럭거리며 거품들이 피어오른다. 코로 물을 삼키듯이. 아프다. 모든 기관들이 산소중독에 걸린 것처럼 아프다. 말하는 것은 공포스럽다. 나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당신들을 증오한다. 내 친구를 증오하는만큼. 당신들을 한명한명 잡아 찢어발기고 부수고 터트리고 싶다. 내가 울때 그들은 무얼하고 있었나? 나는 그들도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울고 고함지르다가 바스라졌으면 좋겠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손과 당신들의 손에 흉악한 흉기가 쥐여져있다. 죽여라, 두들겨 패고, 휘두르고 깨트려라. 모래들이 쏟아져내린다. 우수수. 무거운 질량이 가루가 되어 쏟아져내린다. 사랑하고 싶다. 체온과 심장박동을 사랑하고 싶다. 또 운다. 나는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내 목에는 단단한 자물쇠가 잠겼다. 목에서부터 심장과 폐까지, 전부 단단히 잠겨있다. 나의 뇌수 한가운데에서 바늘뭉치가 헤엄치고 있다. 그것은 빙글빙글 돌며 두개골의 안쪽 벽을 스친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당신이 낳았습니다. 당신의 아들이 뜨거운 양수와 끈적거리는 점액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모꼴의 시각. 누가 죄인이라고? 태어났었습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내 모든 감각과 손과 발과 치아 하나하나가 나의 질식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것을 물어뜯는다. 아무리 씹어도 삼킬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좋은가? 좌절당했다. 감정들. 감정들. 급진적인 발들. 진공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성대가 터지고 피를 삼킬 정도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사방에 피와 살점과 골수를 튀기면서. 그것을 믿는다. 언젠가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부조리하고 나를 향한 원한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에, 어쩌면 영원히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 구조로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정말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희망사항. 희망. 끝.
Posted by Lim_
:

생쥐 한 마리.

기록/생각 2010. 12. 24. 01:51 |
 별처럼 빛나는 것. 언제까지고 떨어지지 않는 것. 언제나 그 자리에서 번뜩이고 있는 것. 가치 있는 것. 아름다운 것. 죽지 않는 것. 의미를 가진 것. 그리고 생쥐가 한 마리 있다. 그는 자신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장도 사지도 망가지고 부서진 그 생쥐는 무언가에 감염된 것처럼 새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저것을 가지고 싶다. 저것을 내 손에 넣고 씹어 삼키고 싶다. 송두리째. 저것을 모조리 취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 생쥐는 자신이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언젠가 결승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승점에서는, '결승점'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어느 누구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모두가 패배하듯이, 생쥐도 패배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뚝거리면서, 피 흘리면서 앞으로 기어간다. 오해하지는 말자. 이것은 의기가 아니다. 생쥐는 망가진 팔다리로 열병에 걸린 듯 죽음을 향해 기어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시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하늘에 떠있는 저 빛나는 것을 갖고 싶다. 생쥐는 자신이 한낱 시궁창 쥐새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오물과 악취들을 전부 지각할 수 있다. 생쥐는 생각한다. 나의 정신도 그다지 다를 것은 없다. 내 정신 역시 쓰레기와 구정물 따위로 만들어져있다.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저것이 가지고 싶다. 저 빛나는 것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집어 삼켜 내 안에서 빛나게 하고 싶다. 그는 끊임없이 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저것을 취한 뒤에 죽고 싶다. 나는 패배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저것을 먹어 삼킨 뒤에 패배하고 싶다. 생쥐는 피투성이의 발을 또 한 발 앞으로 내민다. 별처럼 빛나는 그것을 열망하면서, 그의 눈에서는 고름과 피가 섞인 눈물이 한 방울 찐득하게 흘러나와 기름과 오수로 엉겨붙은 털에 휘감겨든다. 저 빛나는 가치를 단 한 번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움켜쥘 수 있다면, 그저 가까운 곳에서 볼 수라도 있다면, 손톱 끝으로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 아아, 저것을 내 심장과 뼈에 깊숙이 박아 넣고 싶다. 그 지저분한 생쥐는 소리도 없이 운다. 그리고 새까만 하수구 속에서 또 죽음을 향해 긴다.
Posted by Lim_
:

실패와 부패.

기록/생각 2010. 12. 18. 17:18 |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거부. 멸시. 경시. 절벽 아래로 밀려 떨어진 기분. 또 한 번의 광막한 시간이 내 앞에 들이닥친다. 자유, 자유란. 그것은 지독히도 비인간적이고 사방으로 날이 서있는 위험한 흉기와 같은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손에 없을 때에 우리는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손에 넣고 보면 그것은 자신의 날카로운 뿔과 바늘 따위로 우리의 살과 뼈를 헤집어놓는다. 고통. 고통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큰소리로 외친다.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단 한 번의 인생. 모든 것은 가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등가의 가치를 지닌다. 다만 취향의 문제만 남을 뿐. 비논리적인 것. 그러나 현실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바로 그 가장 비논리적인 감정이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가치를 열망하던 나의 시간은 공기처럼 투명하고 무의미하게 흐른다. 시간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선택들 중 하나, 계획. 예정. 그것들은 전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렸다. 또 한 번의 대책없는 시간들. 내 연속적인 삶. 나는 그저 그만두고 싶다. 내가 행하고 있는 모든, 근거도 의미도 목적도 없는 행위들을 그만두고 싶다. 백년이고 천년이고 그저 잠만 잘 수 있다면. 사고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이것은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내가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이제와서는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실패했다는 한가지 사실 뿐이다. 그 미래를 위해서 근 일년간 나는 무던히도 애를 썼다. 스스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격벽을 열어보이려고 몹시도 애를 썼다. 몇 번씩이나 피흘리고 나 자신의 이상성에 좌절하면서도 나는 그들이 내게 요구했던 것을 가지기 위해서 더 가까히 인간들의 시선 사이로 기어들어갔다. 그러나, 그러나 내게 남은 것은 더 커져버린 공포와 칼로 자르는 듯한 거부 뿐. 나는 다시 내 꽉 막힌 갈비뼈들 사이로 들어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언제까지고 그저 잠만 자고 싶다. 그만두고 싶다. 살아가는 것을. 좌절하는 것을. 갈망하는 것을. 나를 향해 번뜩이고 있는 세계의 적의에 일그러진 미소로 답하는 것을. 나는 더이상 웃고 싶지도 않다. 철벽 같은 나의 가식.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회적 기술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마저도 그만두고 싶다. 사람들의 발과 손, 눈과 귀, 그리고 입들의 무더기 사이에서, 나가고 싶다. 나는 옛날 같은 고립을 원한다. 나는 그때처럼 공허하고, 또 영원하기에 오히려 자극조차 되지 않는 슬픔과 고독으로 내 정신을 무장하고 싶다. 무엇인가가 내게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다고 무의미한 혼잣말을 뇌까리면서,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향해 몇 번 손을 뻗어보다가 무너지듯이 잠들어버리는 하루하루의 연속들로, 회귀. 차라리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는, 낮게 가라앉아 이따끔씩 경련하듯 꿈찔거리는 절망의 공기 사이에 누워서 말이다. 차라리 그것이 낫다. 영원성과 유사한 것. 그리고 곧 끝내버릴 수 있는 것. 단단히 닫힌 나의 방 안으로. 차라리 그것이 낫다. 그곳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시간에 목이 졸리며,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좌절할 뿐. 어제와 오늘과 내일. 내일. 또 내일이 온다. 그러면 나는 강제적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는 일상.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 그러한 폐쇄상태로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실망의 시선들로 갈가리 찢어질 내 모습을 나는 상상할 수 있다. 나는 그만두고 싶다. 나는 잠을 자고 싶다. 영원히 깨지 않을 잠을 자고 싶다.
Posted by Lim_
:

필요성.

기록/생각 2010. 11. 17. 20:10 |
 내가 인간과 세상에게 목소리를 던질 때, 그로 인하여 울려퍼지는 반향이야말로 나 자신의 사상을 똑바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와 스트레스, 자극과 감정간의 충돌, 갈등과 비합리에 대한 직시의 필요성.
Posted by Lim_
:
 나는 욕망하는 사람이고 욕구로 말미암아 행동한다. 내가 만나지 못한 어느 누군가의 욕망은 투명하고 상쾌한 색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낯 모르는 이의 욕망은 어찌되었든간에 내 욕망은 거무죽죽하고 부정적이다. 나는 글을 쓴다. 과거에도 글을 썼다. 꽤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내 글은 사랑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나 다름없다. 저주. 도대체 누가 저주를 당하고 기뻐한단 말인가? 내 글은 욕구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은 양가감정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상승하고자 하지만 단 한 번도 권위와 가치를 가진 나 자신을 상상해본 일이 없다. 그런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것들은 마치 나락 밑에서 뻗어나온 손과 같아서 내 바짓자락을 붙들고 나를 더 낮고 절망적인 좌절 속으로 끌어당긴다.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미학과 철학!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 어느 생명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필요성에 근거하여 움직인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나는 부정한다. 부정하기만 한다. 나는 통증과 섹스한다. 그 추잡한 짓거리를 아주 잠깐이라도 쉬어본 일이 없다. 그리고 나는 아주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 내 의사와 내 약물과 내 잠자는 시간들에게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 나는 통증 때문에 당신을 찾아 왔습니다. 거짓말! 나는 이미 통증과의 연결을 끊을 수도 없다. 내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은 통증이고 고통이며 나머지는 오만과 자멸감 따위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지저분한 것들로만 뭉쳐진 지저분한 인격으로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내가 아프지 않은 채로 글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나는 괴롭지만, 사실 괴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괴로운 것이야말로 내 원래 상태라고 믿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미래! 미래! 미래가 항상 대책없는 모습으로 나를 향해 덮쳐온다! 변화는 언제나 불안과 함께 온다. 그러나 현재조차 마찬가지다. 현재 또한 불안과 부조리와 절망으로 두텁게 칠해져있다. 나에게 단 한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은 항상 부차적인 문제들 뿐이다. 모든 본질들은 그냥 그곳에 있다.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틀림없고 분명한 무게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지는 희망이란, 희망이란 이름의 기만적인, 인간의 복잡한 뇌가 만들어내는 기만의 관념을 뒤집어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을 깎아내고 진흙탕 속에 눈알을 처박으면 삶이라는 것도 어느정도는 견딜만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내 자랑이다. 그러나 내 자랑 또한 나를 위선자로 만드는 데에 한 몫하고 있다. 나는 자랑거리가 있음으로 인하여 그 유일한 자랑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하잘것 없는 인성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 불행해지고 있다. 사실은 정말이지 내가 낫는다는 것이 두렵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다. 이미 내 감정과 정신은 어느정도 약에 길들여져 둔마되어있다. 처음의 변명은 무엇이었나. 내가 약물 복용을 거부한 첫번째 변명은 내 글쓰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복용량을 적당히 조절하기만 하면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러운 채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그 하얗고 노란 정제들의 가루가 내 혈관을 따라 돌아다니며 나의 신경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불쾌한 망상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비참하고 불행하게, 인상을 찡그린 채 미치광이로 죽어도 좋으니 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이란! 내가 통증과 섹스하고 고통으로 만들어진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통증 앞에 무력한 법이다. 통증에 발작하고 날뛰다보면 자연히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어느새 의사 앞에 앉아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조절되면! 약으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그와 동시에 날뛰는 감정과 적개심까지 심장의 그늘 뒤로 숨어버리면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안, 불안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것은 영원히 성립되지 않는 가상의 관념이기 때문에, 나는 불안해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자연히 만들어진 아이덴티티가 없다. 나는 자아가 없을지도 모른다. 과장되어가기만 하는 감정과 사고도 그 증거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나에게는 증거가 필요하다. 위선자가 되지 않고 내 무죄를 나에게 입증하기 위하여.
Posted by Lim_
:
 의사가 내게, 어쩌면 나에게 있는 절대 선에 부합하려는 열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평균적인 것보다 훨씬 강했었을 것이며 혹은 지금도 여전히 강하리라고 말했다. 나는 울 것 같았다. 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눈물샘에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새빨간 눈을 하고는 누군가를 조롱하듯 웃었다.
 하지만 나는 도덕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도덕을 믿지 않는 인간이 되어야만 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덕을 믿든 믿지 않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체취가 섞인 숨을 사방에 토해놓고 있었다. 그 냄새가 내 코를 타고 기어올라와 기도에 눌어붙었다. 기도 표면에서 따끔거리는 아픔을 느꼈다. 내 옆에는 지독하게 가난할 것이 틀림없어보이는 어떤 중늙은이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에게서는 달큰한 소주 냄새가 났다. 겨우 오후 한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의 황달끼가 보이는 피부와 주름이 진 채 늘어진 눈살을 보았다. 그가 나에게 적의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고 '나는 정신병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병든 머리를 남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련하는 영혼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그의 팔뚝을 향하던 손을 거두어들였다. 나는 슬펐다.

 병원 문을 열고 나올 때 나는 굉장히 음산한 기분에 젖어있었다. 의사가 나를 정신병자로 생각하리라는 생각 탓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정신병원이었고, 이미 수개월도 전부터 나는 그 병원을 들락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의사에게 한가지 고백을 했다. 십수년도 더 된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죄책감에 대한 이론을 늘어놓다가 그 '고백'을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말해버린 것이다. 의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러나 통찰력과 정신병리학적 공식이 빛나는 눈으로 내 고백을 듣고 그것을 분석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병들어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나는 병들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어쩌면 건강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가 지극히 건강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처방받은 약을 집어들고 나왔다. 심장을 면도칼로 썰어내는 것 같았다. 간호사는 나를 보고 친절하게 웃었다. 나는 가능한한 가장 점잖고 정상인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처음으로 병원에 발을 들여놓은 그날부터 계속 그 간호사는 내가 병든 머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그녀의 웃음에 부아가 치밀어올랐을 텐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중금속처럼 무거운 우울이 내가 활발하고 공격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무엇을 기대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거리로 나와보니 오만한 젊음과 비참한 늙음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Posted by Lim_
:
 이 모든 일들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욕망한다. 원한과 울분과 복수심이 있다. 무엇이든 그리 긍정적인 감정은 아니다. 그러나 생존은, 생존이 긍정적인 것이라고 누가 말하기나 했던가. 생명의 기준에서? 이미 오래전에 그런 기준은 부정 당했다. 폭력에 의하여. 폭력에 의하여. 우리는 궁극적인 폭력의 자손이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는 히틀러가 있다. 그의 역겨운 전체주의 뒤편에서 처절한 인간성의 비극을 발견하고 어떠한 종류의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폭력에 대한 감동. 개인주의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필요도 없이 정당화시킨다. 그것이 가상의 것이든 주관이든 간에, 왜냐하면 개인의 의식이기 때문에. 히틀러란 일종의 심볼이다. 본질은 우리 자신이 그것이 되지 않는 이상 단 한 번도 중요했던 적이 없었다. 아무튼 간에 연료란 불타 소진되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든 앞바퀴를 향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망한다.
Posted by Lim_
:
오래 전부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럴 의지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노력하기 위한 활동성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내일은 의사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대화의 무용성에 대해 대화하기 위하여 그와 대화할 것이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열망한다. 나는 긍정한다. 나는 그들에게 화를 내고 증오당한다. 너무 오래된 사실들이다. 너무 오래된 사실들이 너무 오랫동안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어왔다. 나는 약을 먹으면 사람들의 눈에서 악의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약을 먹지 않으면 그들의 발걸음에서도 불타는 악의를 발견한다. 나는 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의사에게 전화를 걸고 내가 약에 의해 조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약에 의해 조정당해야만 한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사실은 전부 정직해야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도 정직할 필요가 없다. '모두'이전에 내가 정직해야할 필요가 없다. 필요성이 없다. 필요성. 필요성. 필요성. 내가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우선은,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노력해야한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허무주의자는 고통스럽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단 하나의 모범적인 답이고 태도이고 삶의 방법이다. 삶이 아닌 것의 방법이기도 하다. 구토할 만큼의 행동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구역질에서 멈춘다. 산업폐기물.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관심없고 싶다. 예술가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의 무용한 고뇌와 고통이 무용하지 않다고 인정받은 이들을 사람들은 얼마나 정다운 눈길로 쳐다보는가? 정다운 눈길. 프라이즈. 말. 말. 말. 언어와 언어가 되지 않는 언어들. 강제된 심리학. 소설가들.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과격하던가? 과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진을 찍고 죽었다. 그렇다, 그들은 사진을 찍었다. 살인자이거나 하인.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덜 불안하여, 덜 불안하여, 더욱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더욱, 정도의 문제이다. 체온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체온이 있고 또 소통과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나도 관심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야만 한다'라는 말은 경멸당한다. 경멸당한다.. 그들은 경멸했다. 그녀도 경멸했다. 그녀도 나를 경멸했다. 그 안경 렌즈 너머로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사실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불쌍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주로 불쌍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약에 의해 좌우된다. 나는 불쌍하기도 하고 불쌍하지 않기도 하다. 아무것도 확실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약에 의해 좌우되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나에게는 좌우의 기준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열망한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만은 아마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통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에 좀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면... 내가 만약에 좀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좀 더 완벽한 것을, 좀 더, 나와 닮지 않은 것을 말이다. 그러나 나와 닮아야만 한다. 나와 닮을 수밖에 없지만 나와 닮지 않아야 한다. 훨씬 더 아름다워야하고 완벽하게 완벽해야한다. 나는 그쪽 길로 가면 갈수록 간질환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에 대해서, 그러나. 사람들은, 사람들과 세상들은 내가 비단과 장막으로 본질을 포장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줄까?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리포장해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장이란 의미가 없다. 포장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포장에 의미가 없다면 포장을 위한 천과 리본들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것은 혼란을 가중한다. 혼란을 조장한다. 그렇다면 모든 죄는 그것들에게 있다. 의사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킬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길을 걷고 있으면 차들이 달려와서 나를 짓뭉개버릴 것만 같다. 그것은 사고가 아니라 적의의 산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까뮈가 죽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죽음은 까뮈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명명백백하다. 나는 어떤 위대한 작가의 영혼의 귀퉁이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신경증 환자들의 유전자뿐이다. 비극. 비극은 내가 비극이라고 말할때만 비극이다. 그리고 나는 사건을 비극이라고 말한다. 끈질기게 비관에 들러붙어 있다.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나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나는 좋은 대화상대도 아니고 좋은 환자조차도 아니다. 내 유서에는 사죄만이 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명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정직하지만, 아무튼 간에 정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유서를 쓰고 나서 죽는 순간, 내가 쓴 모든 것들을 격렬하게 부정할 것이다. 좌우. 이것들이 전부 무슨 의미가 있나? 바닥에서 기어올라오는 광증은, 오래된 사람들에게는 지속되지 않는다. 거대하고, 거대하고, 거대하고 인간에 의하여 인간에게 잔혹하다. 나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나는 내가 좋은 작가이기를 바란다. 나는 자꾸만 헛것을 본다. 그것은 아마도 내 두려움에 기인하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어떤 정답을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도움 없이도 다른 이들처럼 지상에 두 다리를 딛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내 노력이 가치가 있다면 좋겠다.
Posted by Lim_
:
 내 정신을 조금씩 침잠시키는 약물은 동시에 기억 밑바닥에 말없이 가라앉아있던 수치와 좌절까지 끄집어내버렸다. 나는 내가 추악한 인간인 것을 알고 있다. 참으로 그렇다. 손톱만한 변명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나는 추악하며 또한 죄인이다. 내가 나 자신을 추악한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의 기준은 바로 내게 있다. 추악한 죄인인 내가 추악한 죄인인 나를 추악한 죄인이라고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내 얼굴을 없애버리리라고 결심했다. 내 이름과 기억도 마치 타인의 것인 양 죽여버리기로 결심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쌓아올려진 결과물이며,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나 자신을 끊임없이 증오한다. 그런데 어째서 살고 있는가? 어째서. 아무리 내가 나를 증오한다 한들 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증오하는 내가 고통과 수치를 당해도 괴로워하는 것은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복수란 도무지 완성될 수가 없다. 자기파멸로 향하는 가장 극단적인 길조차도 스스로에 대한 배려와 이기가 은밀하게 숨어있는 것이다. 아아, 자살이란. 그것은 고통과 불행으로부터의 도피다.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자애심의 극단이다.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현상 그 자체인 인간의 마지막 긍정적 선택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불행은 중력과도 같아서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오래 살면 살수록 수치는 늘어나고 후회해야할 일도 많아진다. 좌절과 지독하게 왜곡된 분노를 자신의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넣으며 늙어가는 것이 바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끔찍한 고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것. 그런데 나는 어째서 살아가는가. 병적인 고뇌와 고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향정신성 약물이 담긴 캡슐들을 집어삼키면서. 끈질기고 수치스럽게. 매일같이 자기파괴와 자기살해의 환상을 보면서. 무엇이 나를 살게 하나. 타성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타성이야말로 죽음 이외의 모든 것에게서 승리한다. 타성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생명의 본능인 것이다. 그것에 순응하면 그 어떤 삶도 못견딜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타성이 싫다. 취향의 문제다. 취향의 문제. 내 개인의 전쟁은 내 살을 도려내고 내 뼈를 깎아내는 것으로 무언가 추상적인 것에 대해 승리하려하는 모순 가득한 정신병적 순환이다. 정신병.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 그러나 건강이란? 우리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신이 없다. 나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율법조차 없다. 내게 있는 율법이란 당황하고 불신하면서 자신의 피부에 새겨넣은 의문형으로만 가득한 지향점들 뿐이다. 건강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명사다. 무엇이나 그렇다. 한가지 확실한 감정-취향은 내가 나 자신을 추악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죽고 싶어하면서 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하나의 분명한 의견이 없다. 어쩌면 나는 자아조차 없다. 여러 권의 책들을 묶어놓고 그것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입을 부여하면 나와 똑같은 모습의 가짜 인격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사죄하고 싶다. 그저 사죄하고 사죄받고 싶다. 그러나 내가 사죄할 대상이란 이 세상, 아니 상상속에서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하는 모든 것들은 내가 나를 증오하는 것만큼이나 나에게 증오당한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죄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삶을 구성해온 모든 것들을 한계없는 감정으로 증오합니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 삶을 구성할 모든 것들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증오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어쩌면 사실 내 마음 속은 오래 전부터 인간에 대한 마를 길 없는 호의로 불어 넘치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Lim_
:

분열과 창조.

기록/생각 2010. 8. 9. 05:40 |
 생각할 것, 생각할 것!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언어나 표정 따위를 품어둔 채 타인을 찾아 헤맨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와 표정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틀림없이 이 땅 위에서 수천 수만번은 더 반복되었을 그 언어와 표정들을 끄집어 내놓을 때에는 자신들의 오만에 취해 황홀해하는 것마저 엿보인다. 낡고 닳아 없어지기도 전에 강한 휘발성으로 흩날려 사그라지는 것을. 나는 그들을(그것들을) 증오하고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 형태화 시켜 놓고 구두점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나는 그들과 대화할 줄을 모른다. 그들이 내 앞에 와서 웃는 낯으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의 언어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내가 끈질기게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피학적인 목, 그리고 물어뜯으면 쉽게 찢어질 것 같은 그들의 살거죽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신이 나간, 양민들의 안심을 위하여 살과 철근으로 쌓아올린 벽 속에 가둬버려야할 그런 성질의 인간인 것은 아니다. 나는 살가죽이 얇아 안에 들어있는 내장과 혈관들이 전부 드러난 인간이다. 귀를 막고 자신의 광증에 설득당해 똑같은 사고를 돌고 도는 행복한 미치광이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갈비뼈조차 갖지 못한 심장이고 두개골을 잃어버린 뇌수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광인들이 모두 겹겹이 둘러쌓인 자기합리의 벽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담아놓을 뼈대조차 손에 넣지 못하고 길바닥에 쏟아져 고통받는 내장 같은 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변할 것이란 말인가. 인간은 인간의 세상밖에 알지 못하고 개인은 개인의 세상밖에 알지 못한다. 구별당하고 분류당하는 것은 타인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대적인 일이다. 필연적인 일이다. 한탄할 수도 있고 분노할 수도 있지만 변하는 것은 없으리라. 매일 아침 태양빛에 절망하는 사람은 해뜨기 직전의 새벽에도 절망한다. 주관은 연결되지 않고 폐쇄된 채 완전하며 아무런 감각기관도 가지지 못한다.
 생각에 집착하라. 개인의 증명은 무의식의 표면에 쌓인 사유의 침전물들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항상 정신의 구심점에 병증과 함께 붙잡아 놓은 화두가 있어야만 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과 언어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관념들을 한 마디의 문장으로 해명할 수 있는 독재의 사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을 하나의 완성된 여과기로 만든다. 그러면 비로소 개인은 수많은 사유의 침전물로 다져진 단단한 발판 위에서 정신의 주안점에 시각을 두고 세상을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 동시에 창조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Lim_
:
 끊임없이 잠이 온다. 나는 거의 세시간 간격으로 잠이 들며 꿈을 꾸고 꿈을 꾸고 또 꿈을 꾼다. 괴상한 꿈들이다. 꿈 속에서 나는 지고한 존재로 변신하기도 하고 삶을 긍정하며 느긋하게 살아가기도 한다. 존재에 대한 충실감으로 가득한 채 행복의 표피 안으로 손을 집어넣기도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순간을 영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꾸어본 적 없는 꿈들이며 내 유아적인 욕망이 허위없이 여실히 드러나는 꿈들이다. 항상 해왔던 말들이지만 나는 가치를 찾아 헤매고 있다. 마침내 끝에 가서는 먼지처럼 아스러져 손에 쥐었던 것도 집어삼켰던 것도 전부 사라지게 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치를 갈망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살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 혹은 가치를 찾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지어 말하지는 못하겠다. 아마도 그것은 복합적인 사실일 것이다. 그것도 결국에는 인간의식인만큼 모순되고 왜곡되었으며 동시에 그 모순과 왜곡으로 논리를 보완하고 있는 하나의 지저분하고 동물적인 사이클일 것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고 정신병자의 논리체계다. 그러나 그것이 의식하는 동물의 전부이자 본질인 것이다. 애당초 의식과 동물은 손을 잡아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꿈. 꿈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해야한다. 꿈은 의식과 추상만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동물의 냄새는 남을지언정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나를 죽이려드는 음모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나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나를 죽이려드는 음모임에 틀림이 없다. 계속해서 꿈을 꾸니 이제는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사물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오고 나는 한여름밤의 밀폐된 공기 안에 갇혀 울고 있다. 원망하는 눈길을 받으며. 원망하는 눈길을 받으며. 꿈 속에서 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사막을 헤맬 필요가 없다. 내 정신은 낙타의 혹처럼 기름지고 갈증을 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몇 번이고 자살을 상상한다. 울면서 잠들어 울면서 깬다. 절망과 불안은 그런 것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 욕망덩어리 세계를 거쳐 가차 없이 무겁고 치명적인 것으로 변한다. 그냥 내버려둬도 얼마든지 화려하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의도들이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몸부림치며 경계조차 불분명한 현상 위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하나? 내 인생마저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들의 어림짐작으로 무겁게 가라앉아있는 추한 눈을 기억하라. 친절과 기대는 즉 나를 모델화하려는 추잡한 욕망의 증명이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엉망진창으로 터트려버리고 싶다. 속에 있는 내용물이 거짓 없이 전부 흘러나오도록. 병증과 병원과 약물과 치료와 상담과 불신과 관계와 정신. 정신병리학적이지 않은 정상적인 관계들. 정상적인 관계야말로 가장 비정상적이고 불안하다. 차갑고 축축하며 여지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정상적인 관계가 정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관계는 말그대로 비정상적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절망스럽고 혼란하다.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목적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이미 모든 것의 결말까지 추측하고 나태하게 늘어져있는, 좌절한 정신이 있다. 그것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좌절해있다. 그리고 믿을 것이라고는 그 지독히도 현실적인 회의밖에 없다. 꿈. 꿈! 욕망의 발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 가장 바람직한 상황인가? 내가 병든 정신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폐쇄를 바란다. 어떤 논리나 관념이나 실재에도 침범당하지 않는 정신병자의 믿음이, 아니다. 모른다. 무엇을 욕망해야하는지도 모른다. 보다 살고 싶지만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
Posted by Lim_
:
태양병균 - 비정상적인 강한 열 속에서만 생존하는
나는 토오라는 표범과 말레이 여자 마라를 만났다
토오는 나를 미워한다
나는 마라 몰래 토오에게 구하기 힘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직 따스한 암소고기를 먹인다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 길들지 말라고
갈색 피부의 마라 -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여자를 소유하고 있기를 하나
나......'토오를 내쫓아', 마라......'나는 토오가 없으면 잠이 안와요'
나는 토오를 미워한다. 토오는 마라의 애정 일부를 빼앗고 있다
우리는 대륙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열파의 한가운데에 있는데 춥다
흰 여자가 흰 남자를 사랑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갈색남자가 갈색 여자를 사랑할 때는?

내 심장은 전쟁을 원하고 있다
나는 마라를 사랑한다
마라는 일어선다. 나체로 갈색으로 사랑하면서 
나는 태양병이 무섭다
그리고 우리의 피는 소리를 지른다
호수 한가운데서 나는 세계를 향하여 소리질렀다. '마라!'
마라, 우리의 사랑은 안죽어
태양은 나를 죽일 것이다
갑자기 광적인 생각이 엄습해 온다. 
죽음이 구제를 갖다줄지도 모른다는,
그러나 숲의 화제는 광기다
사랑하는 불, 사랑하는 숲이여,
너는 죽어야 한다
나는 고통없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
나는 한계 위에 서있다

 
- "태양병" / H. 노바크

이 쪄죽을 듯하고 열광적인 냄새를 사랑한다.
갈증. 종말적인 이미지지만 동시에 영원할 것만 같은 열기.
Posted by Lim_
: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기가 도로 위를 미친듯이 내달린다. 저 열기도 언젠가는 사그라들 것이다. 그리고서는 떨어지는 낙엽들도 곧 사그라들 것이며, 녹아 없어지는 눈이 내린 뒤에는 말라 시들어버릴 꽃들이 필 것이다. 이렇듯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확신은 있다. 사실 확신은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도 썩고 부스러질 것이다. 썩고 부스러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해야하는가? 아직 죽어본 일은 없지만 죽음은 보편적 진실이기는 하다. 언젠가 모든 것이 산산히 흩어질 것이니 나는 만족하고 살아가야하는가. 과정은? 과정은 어떻게 되나. 내가 목적론자라면 아마도 과정은 모두 끝나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쳐도 상관 없는 현상의 표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적론자가 될 수 있을 만큼 무언가를 긍정하지 못한다. 나는 목적마저도 부정한다. 그래,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 별다른 지침도 없이 무작정 손에 쥐게 된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광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하기 위한 약들도 있다. 과정. 과정이라니! 도대체 과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미 확신을 가졌다. 나는 죽는다. 그렇다면 나는 쾌락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아니면 선험적 성질로 말미암아 퇴폐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궁극적으로 회의하기만 할 뿐인 나는 결코 쾌락주의자는 되지 못하리라. 나는 쾌락이라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거세당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야 무엇이든간에, 나는 우울과 공허에 빠져 인중까지 허무에 잠겨버렸고 무엇을 하든 불신과 무기력으로만 대응한다. 다소는 열정적이거나 열광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은 그것조차도 허무에 대한 열광과 열정인 것이다. 최근에는 글을 쓸 수가 없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모든 부조리한 위협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작게 웅크리고 있다. 나는 자주 웃는다. 나는 나의 웃음을 증오한다. 그것은 역겹고 기만적이다. 보편에게 반항하기 위해 내 육체적 진실들과 화해하기를 거부했지만 나의 근육과 뼈들은 피조차 나지 않는 작은 흠집에도 고함을 질러대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탐한다. 여름이다. 여름이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무자비한 여름이다. 더위와 습기가 모든 쓰라린 상처들을 곪아 터지게 한다. 골목골목마다 악취가 나는 고름덩어리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의 희희낙락한 살갗을 보는 것이 공포스럽다. 우리는 병들었나. 우리는 병들었는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삶을 긍정하는, 치열하면서도 무력하게 생존을 갈망하는 그들의 눈과 마주치는 것이 소름끼친다. 오늘은 여름이다. 열기가 도로 위를 미친듯이 내달린다. 나는 내 이상성을 증명하러 나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간다. 삶이여. 삶이여. 삶이여.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다. 파열하고 싶다. 산산조각으로. 공포스럽다. 종말과 마주치고 싶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고독하다. 당연한 사실이다. 사실 곧 무언가를 다시 쓰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불안은 이성과 악수하지 못한다. 밖으로. 자살자들이 뛰어다니는 밖으로. 나도 쏟아지는 폭염 속에서 무언가와 맞닥뜨려야한다.
Posted by Lim_
:

악순환.

기록/생각 2010. 7. 14. 03:53 |
 나는 알 수 없다. 세상은 태어나자마자 폐허가 되었고 탄생일은 내게 저주나 다름없었다. 그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눈에 들어오는 온갖 가치들에 손을 뻗고 그것을 잡아당겨 뿌리째 집어삼킨 후 또다른 가치에게 손을 뻗는다. 가치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내 정신의 근본 구성성분들을 갈아치운다. 그래서 나는 가치의 본질까지 보았다. 나는 내가 절멸해 없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더이상 먹어치울 가치조차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치의 본질이 곧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기는 커녕 실제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를 위한 미덕 같은 것이며 인간을 위한 믿음 같은 것이다. 나는 내가 절멸해 없어진다는 것밖에 믿지 않는다. 존속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해야할 것이 많지 않다. 해야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고, 나는 온갖 것들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나는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단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으로써 망가졌고, 신념과 법과 신성을 모조리 위와 장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오물통에 내버리고 나니 내게 남은 것은 취향과 감정밖에는 없었다. 세상은 태어난 이후에도 재차 폐허가 되었다. 나는 억압당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강조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도 과거의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약물의 기만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미 난 내 정신과 영혼조차 타인의 학문에게 맡겨버린 구제불능의 좀비 같은 것이 되었다. 내장을 쏟아내고 죽어버리고 싶다. 정직을, 정직을, 정직을. 모든 사상과 이념이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은 문명이 탄생한 순간 죽었다. 산산조각으로 찢어발겨져 죽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조차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종에 햇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깨끗한 유리창은 포함되지 않는다.

 글을 써야한다. 글을 써야만한다. 글을 써야만하고 써야 할 글을 생각해내야한다. 모든 것에 정통한 오만한 나는 뻔한 피해망상 속에서 내 정신과 미학에 대한 음모를 느끼지만 그것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백수천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지독한 악순환이다. 내 정신과 사고는 악순환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정리될 수 있다. 나는 악순환이다. 나는 회전하는 재앙덩어리다. 나는 글을 써야한다. 나는 글을 써야하는데 그들(혹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내 문학은 덫에 걸렸다. 발목이 물렸다. 호르몬제와 화학물질의 이름을 단 쇠로된 이빨에게 사정없이 물렸다. 선생님, 당신이 내 예술에 대한 박해의 주모자라고 말해주십시오. 선생님, 당신이 내 예술에 대한 박해의 주모자라고 말해주십시오. 선생님. 선생님, 모든 것은 당신과 당신들의 탓입니다. 나는 궁지에 몰렸다. 나는 기만을 위한 기만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기가 괴롭기 때문에 기만을 위한 기만에게서 도피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 내 어디에 잃어버린 것이 있고 내 어디에 채워진 것이 있단 말입니까. 자살. 잃어버리면 자살해야한다. 충족되어도 자살해야한다. 나도 자살하고 내게 안락을 주려는 것들도 전부 자살해야한다. 거짓으로 도움을 청한다. 도와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독이다. 육체의 독과 정신의 독과 영혼의 독이다. 언어는 이미 모조리 뒤집어져있기 때문에 나는 실상을 말할 수 없다. 울 것 같다. 울며 죽을 것 같다. 글을 써야만한다.
Posted by Lim_
:
 자신의 호르몬만은 믿어야한다. 설령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제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한다. 오늘도 아침이 왔다. 밤이 지나간 기억도 없는데 아침은 온다. 정당성과 자연주의적인 욕망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눈을 감아야 할 순간을 알지 못한다. 온갖 알약들 덕분에 졸음에 대한 내 감각은 엉망이 되버렸다. 나는 졸음과 피곤을 구분할 줄 모른다. 피로를 못견뎌 몸이 무너지기 전에 새까맣고 깊은 약기운이 나를 무너트린다. 행복한 상념이 있었다. 외롭지 않은 이미지도 있었다. 갈증이 있고 욕망이 있으며 목적한 것을 향해 가차없이 손을 뻗어대는 유아적인 탐욕이 있었다. 내 뇌를 통과하는 신경들을 붙잡아 나락 밑바닥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는 병리학적 메커니즘들이 있다. 내가 토해낸 것을 다시 긁어모아 집어삼킨 두통도 있다. 절대를 부정했고 잣대를 부정했으며 도덕을 부정했고 진리를 부정했고 소위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존재를 맡겼다. 나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산산조각난 인격들이. 이천십년 칠월 십일. 시간은 무자비하게 흐른다. 혐오하는 것들을 주워삼켰다. 공포스러운 것들을 씹어삼켰다.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나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나는 틀림없이 근거가 필요합니다. 내 병증도 광증도 행위를 위해서 정당함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은 내 몸무게만큼 균형이 잡혔을 것이다. 59kg의 돌발상황. 59kg의 불규칙성. 59kg의 명백한 오류. 그러나 자기비하가 아니다. 나는 당당하게 자기비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결말지어진 존재가 아니다. 59kg. 터무니없이 가벼운 수치고, 영향력이 없다. 내가 책을 출판한다고 생각해보자. 책 한권의 무게는 어림잡아 500g이다. 500g에 판매부수를 곱한다.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권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세계에 대한 영향력을 원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또한 단언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더이상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믿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사멸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히틀러. 히틀러는 무엇을 원했던가. 히틀러는 <조국>의 국민들이 열화와 같이 자신에게 동의해주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아마도 그 불행한 인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불행한 인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불행한 인간은 행복했을 것이다. 모든 열정들은 동등하다. 도덕을 부정했으니까. 모든 열정들은 동등하고 어딘가에서는 찬미받으며 어딘가에서는 증오받는다.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지구 밖으로 나가보라. 그들은 당신의 열정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규정짓는 타인. 하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도피적인 뉴에이지 사상에 미쳐있지만 않다면, 당신은 지구 위에 땅을 밟고 서있는 비참하고 초라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는 절대적으로 사멸한다. 어쩌면 나는 권력을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 어떤 가치도 영구하지 않다고 단언하면서도 어떤 무거운 가치를, 내 존재성을 인정해줄, 증명해줄, 뒷받침 해줄 그런 강력한 가치를 만들어내려고 발버둥치는 중인지도 모른다. 발버둥. 발버둥. 어떨까, 사실 난 그런 단어에 어울릴정도로 열성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무기력도 8할 정도는 약물의 탓이다. 그들이 날 안정시켜주겠다고 말하며 건낸 약. 위대한 정신병리학이여.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사방이 캄캄해지기 시작하는 초저녁에, 세상에는 배경음악도 없고 정해진 계획표도 없다. 그저 유치하게 강간을 한다. 강간을. 생명력. 충실한 생명력. 범법. 집단사회. 최소한의 예의. 도덕. 전통. 탈피하다. 위버맨시. 야수. 개인. "혁명가는 증오하기 위해 증오하고 파괴하기 위해 파괴한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던 것들이지만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혁명주의자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단 한가지 정당할 수 있는 전체주의(집단)가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이상이나 사상도 가지지 않고 오직 모든 체제의 붕괴를 위해서만 원한을 불태우는 전체주의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으로 심장을 재울 수 있다. 내 혈관 속을 흘러다니는 호르몬과 화학물질들로 나의 병증이라는 것들을 다소나마 제한할 수 있다. 공격성은 억압당하고 증오는 가라앉아 결정화 되며 슬픔은 천박한 유쾌함에 가려져버린다. 졸음 속에서. 졸음을 위한 메커니즘 속에서.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