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 나는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혼자 있을 때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록/생각 2010. 9. 10. 00:26 |오래 전부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무도 그럴 의지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노력하기 위한 활동성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내일은 의사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대화의 무용성에 대해 대화하기 위하여 그와 대화할 것이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열망한다. 나는 긍정한다. 나는 그들에게 화를 내고 증오당한다. 너무 오래된 사실들이다. 너무 오래된 사실들이 너무 오랫동안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어왔다. 나는 약을 먹으면 사람들의 눈에서 악의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약을 먹지 않으면 그들의 발걸음에서도 불타는 악의를 발견한다. 나는 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의사에게 전화를 걸고 내가 약에 의해 조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약에 의해 조정당해야만 한다고 말해야할 것이다. 사실은 전부 정직해야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도 정직할 필요가 없다. '모두'이전에 내가 정직해야할 필요가 없다. 필요성이 없다. 필요성. 필요성. 필요성. 내가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우선은,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하여 노력해야한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허무주의자는 고통스럽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단 하나의 모범적인 답이고 태도이고 삶의 방법이다. 삶이 아닌 것의 방법이기도 하다. 구토할 만큼의 행동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구역질에서 멈춘다. 산업폐기물.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관심없고 싶다. 예술가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의 무용한 고뇌와 고통이 무용하지 않다고 인정받은 이들을 사람들은 얼마나 정다운 눈길로 쳐다보는가? 정다운 눈길. 프라이즈. 말. 말. 말. 언어와 언어가 되지 않는 언어들. 강제된 심리학. 소설가들. 그들은 어떻게 사는가? 그들은 어떻게 죽었나? 과격하던가? 과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진을 찍고 죽었다. 그렇다, 그들은 사진을 찍었다. 살인자이거나 하인.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덜 불안하여, 덜 불안하여, 더욱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더욱, 정도의 문제이다. 체온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체온이 있고 또 소통과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나도 관심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야만 한다'라는 말은 경멸당한다. 경멸당한다.. 그들은 경멸했다. 그녀도 경멸했다. 그녀도 나를 경멸했다. 그 안경 렌즈 너머로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사실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불쌍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주로 불쌍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약에 의해 좌우된다. 나는 불쌍하기도 하고 불쌍하지 않기도 하다. 아무것도 확실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약에 의해 좌우되지 않더라도, 그렇다면 나에게는 좌우의 기준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열망한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만은 아마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통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에 좀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면... 내가 만약에 좀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좀 더 완벽한 것을, 좀 더, 나와 닮지 않은 것을 말이다. 그러나 나와 닮아야만 한다. 나와 닮을 수밖에 없지만 나와 닮지 않아야 한다. 훨씬 더 아름다워야하고 완벽하게 완벽해야한다. 나는 그쪽 길로 가면 갈수록 간질환에 가까워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에 대해서, 그러나. 사람들은, 사람들과 세상들은 내가 비단과 장막으로 본질을 포장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줄까?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리포장해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장이란 의미가 없다. 포장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포장에 의미가 없다면 포장을 위한 천과 리본들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것은 혼란을 가중한다. 혼란을 조장한다. 그렇다면 모든 죄는 그것들에게 있다. 의사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시킬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길을 걷고 있으면 차들이 달려와서 나를 짓뭉개버릴 것만 같다. 그것은 사고가 아니라 적의의 산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면 나는 까뮈가 죽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죽음은 까뮈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명명백백하다. 나는 어떤 위대한 작가의 영혼의 귀퉁이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신경증 환자들의 유전자뿐이다. 비극. 비극은 내가 비극이라고 말할때만 비극이다. 그리고 나는 사건을 비극이라고 말한다. 끈질기게 비관에 들러붙어 있다.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나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나는 좋은 대화상대도 아니고 좋은 환자조차도 아니다. 내 유서에는 사죄만이 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명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야말로 정직하지만, 아무튼 간에 정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유서를 쓰고 나서 죽는 순간, 내가 쓴 모든 것들을 격렬하게 부정할 것이다. 좌우. 이것들이 전부 무슨 의미가 있나? 바닥에서 기어올라오는 광증은, 오래된 사람들에게는 지속되지 않는다. 거대하고, 거대하고, 거대하고 인간에 의하여 인간에게 잔혹하다. 나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있다. 나는 내가 좋은 작가이기를 바란다. 나는 자꾸만 헛것을 본다. 그것은 아마도 내 두려움에 기인하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어떤 정답을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내가 도움 없이도 다른 이들처럼 지상에 두 다리를 딛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내 노력이 가치가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