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것, 생각할 것!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언어나 표정 따위를 품어둔 채 타인을 찾아 헤맨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와 표정에 대해 과도한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틀림없이 이 땅 위에서 수천 수만번은 더 반복되었을 그 언어와 표정들을 끄집어 내놓을 때에는 자신들의 오만에 취해 황홀해하는 것마저 엿보인다. 낡고 닳아 없어지기도 전에 강한 휘발성으로 흩날려 사그라지는 것을. 나는 그들을(그것들을) 증오하고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 형태화 시켜 놓고 구두점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나는 그들과 대화할 줄을 모른다. 그들이 내 앞에 와서 웃는 낯으로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의 언어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내가 끈질기게 보고 있는 것은 그들의 피학적인 목, 그리고 물어뜯으면 쉽게 찢어질 것 같은 그들의 살거죽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신이 나간, 양민들의 안심을 위하여 살과 철근으로 쌓아올린 벽 속에 가둬버려야할 그런 성질의 인간인 것은 아니다. 나는 살가죽이 얇아 안에 들어있는 내장과 혈관들이 전부 드러난 인간이다. 귀를 막고 자신의 광증에 설득당해 똑같은 사고를 돌고 도는 행복한 미치광이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갈비뼈조차 갖지 못한 심장이고 두개골을 잃어버린 뇌수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광인들이 모두 겹겹이 둘러쌓인 자기합리의 벽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담아놓을 뼈대조차 손에 넣지 못하고 길바닥에 쏟아져 고통받는 내장 같은 자들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안다고 해서 무엇이 변할 것이란 말인가. 인간은 인간의 세상밖에 알지 못하고 개인은 개인의 세상밖에 알지 못한다. 구별당하고 분류당하는 것은 타인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절대적인 일이다. 필연적인 일이다. 한탄할 수도 있고 분노할 수도 있지만 변하는 것은 없으리라. 매일 아침 태양빛에 절망하는 사람은 해뜨기 직전의 새벽에도 절망한다. 주관은 연결되지 않고 폐쇄된 채 완전하며 아무런 감각기관도 가지지 못한다.
생각에 집착하라. 개인의 증명은 무의식의 표면에 쌓인 사유의 침전물들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항상 정신의 구심점에 병증과 함께 붙잡아 놓은 화두가 있어야만 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과 언어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관념들을 한 마디의 문장으로 해명할 수 있는 독재의 사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개인을 하나의 완성된 여과기로 만든다. 그러면 비로소 개인은 수많은 사유의 침전물로 다져진 단단한 발판 위에서 정신의 주안점에 시각을 두고 세상을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 동시에 창조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