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망하는 사람이고 욕구로 말미암아 행동한다. 내가 만나지 못한 어느 누군가의 욕망은 투명하고 상쾌한 색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낯 모르는 이의 욕망은 어찌되었든간에 내 욕망은 거무죽죽하고 부정적이다. 나는 글을 쓴다. 과거에도 글을 썼다. 꽤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내 글은 사랑할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의 저주나 다름없다. 저주. 도대체 누가 저주를 당하고 기뻐한단 말인가? 내 글은 욕구로 이루어져있다. 그것은 양가감정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상승하고자 하지만 단 한 번도 권위와 가치를 가진 나 자신을 상상해본 일이 없다. 그런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것들은 마치 나락 밑에서 뻗어나온 손과 같아서 내 바짓자락을 붙들고 나를 더 낮고 절망적인 좌절 속으로 끌어당긴다.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미학과 철학!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 어느 생명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필요성에 근거하여 움직인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나는 부정한다. 부정하기만 한다. 나는 통증과 섹스한다. 그 추잡한 짓거리를 아주 잠깐이라도 쉬어본 일이 없다. 그리고 나는 아주 뻔뻔하게 거짓말을 한다. 내 의사와 내 약물과 내 잠자는 시간들에게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 나는 통증 때문에 당신을 찾아 왔습니다. 거짓말! 나는 이미 통증과의 연결을 끊을 수도 없다. 내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은 통증이고 고통이며 나머지는 오만과 자멸감 따위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지저분한 것들로만 뭉쳐진 지저분한 인격으로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기만 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내가 아프지 않은 채로 글을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것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나는 괴롭지만, 사실 괴롭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괴로운 것이야말로 내 원래 상태라고 믿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미래! 미래! 미래가 항상 대책없는 모습으로 나를 향해 덮쳐온다! 변화는 언제나 불안과 함께 온다. 그러나 현재조차 마찬가지다. 현재 또한 불안과 부조리와 절망으로 두텁게 칠해져있다. 나에게 단 한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은 항상 부차적인 문제들 뿐이다. 모든 본질들은 그냥 그곳에 있다.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통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틀림없고 분명한 무게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가지는 희망이란, 희망이란 이름의 기만적인, 인간의 복잡한 뇌가 만들어내는 기만의 관념을 뒤집어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을 깎아내고 진흙탕 속에 눈알을 처박으면 삶이라는 것도 어느정도는 견딜만한 것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다. 이것은 내 자랑이다. 그러나 내 자랑 또한 나를 위선자로 만드는 데에 한 몫하고 있다. 나는 자랑거리가 있음으로 인하여 그 유일한 자랑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하잘것 없는 인성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스스로 불행해지고 있다. 사실은 정말이지 내가 낫는다는 것이 두렵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다. 이미 내 감정과 정신은 어느정도 약에 길들여져 둔마되어있다. 처음의 변명은 무엇이었나. 내가 약물 복용을 거부한 첫번째 변명은 내 글쓰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복용량을 적당히 조절하기만 하면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러운 채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그 하얗고 노란 정제들의 가루가 내 혈관을 따라 돌아다니며 나의 신경계를 조작하고 있다는 불쾌한 망상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내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비참하고 불행하게, 인상을 찡그린 채 미치광이로 죽어도 좋으니 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이란! 내가 통증과 섹스하고 고통으로 만들어진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통증 앞에 무력한 법이다. 통증에 발작하고 날뛰다보면 자연히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어느새 의사 앞에 앉아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조절되면! 약으로 통증을 가라앉히고 그와 동시에 날뛰는 감정과 적개심까지 심장의 그늘 뒤로 숨어버리면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안, 불안이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신이라는 것은 영원히 성립되지 않는 가상의 관념이기 때문에, 나는 불안해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자연히 만들어진 아이덴티티가 없다. 나는 자아가 없을지도 모른다. 과장되어가기만 하는 감정과 사고도 그 증거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나에게는 증거가 필요하다. 위선자가 되지 않고 내 무죄를 나에게 입증하기 위하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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