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생각'에 해당되는 글 117건

  1. 2019.07.30 「어서 오세요, 작가를 꿈꾸는 아가씨.」
  2. 2019.07.27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3. 2018.03.09 시 개인전 [존재비애: 인간존재의 선험적 공허에 대한 몰두와 노스탤지어] 개최 1
  4. 2016.11.08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 출간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시작
  5. 2016.05.28 2016/05/28
  6. 2016.04.24 발신되지 않음.
  7. 2016.03.05 2016/3/2 편지의 한 조각
  8. 2014.09.04 어제 일기.
  9. 2014.08.22 생의 한복판. 절망의 개념.
  10. 2014.04.01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 초고 완성.
  11. 2014.03.18 밤마다 꿈을 꾸고 있다면 괴물조차 되지 못한다.
  12. 2014.01.09 보다 미치는 것이야말로 보다 성숙해지는 일이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13. 2013.08.07 나는 지쳤다.
  14. 2013.07.31 두통. 구토. 희열. 저 밤거리에 깔려있는 빛의 파편들.
  15. 2013.07.14 선택. 조건. 그리고 지옥이라는 개념.
  16. 2013.06.22 진실. 명백한.
  17. 2013.06.11 구원.
  18. 2013.06.04 이 마음 전할 길이 없어 이곳에 담습니다.
  19. 2013.05.25 나는 마침내 지옥에서 끌어올려져 인간이 되었다.
  20. 2013.05.05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가장 저속한 신음을 흘립니다.
  21. 2013.03.31 관계.
  22. 2013.03.11 <모든 이름 있는 것들에 대한 그의 혐오> 초고 완성.
  23. 2013.03.03 오락. 자유. 즐거움. 광증이 내놓은 답. 1
  24. 2013.01.13 전쟁과 투쟁
  25. 2012.12.05 2012/12/5
  26. 2012.10.08 점검. 고백. 화살표. 비열한 욕망. 1
  27. 2012.09.24 반성
  28. 2012.09.04 기쁨
  29. 2012.03.09 독립된 의식이란 무엇인가.
  30. 2012.01.30 <인간>으로서의 자격. 절망과 죄책감.

「어서 오세요, 작가를 꿈꾸는 아가씨.」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도대체 왜 그 많은 전업작가들을 제치고 저에게 오신 건지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제 의견을 듣고 싶어 하신다니 영광입니다. 듣자하니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시라고요.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아, 18살이라, 학생이시군요. 참 좋을 때입니다. 틀림없이 온갖 감성과 영감이 쉴 틈도 주지 않고 머릿속에서 번쩍거릴 테지요. 영감과 직관에 이끌려 투박하게 쓴 글조차 젊음의 수액을 머금어 빛나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천재의 조각들을 품고 있지요. 서론이 길었군요. 당신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을 제 별것 아닌 소견으로 해소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영어도 불어도 노어도 아닌 한글로 글을 쓰고 계시지요? 예, 아마도 그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설령 타국어에 능통해 현란한 어휘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고향의 말로 글을 쓰는 것과 타향의 말로 글을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결국 아가씨께서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글을 쓰게 되실 것입니다. 무어 그것이 잘못되었다거나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놓인 조건을 확인할 수밖에 없게 만들뿐이죠. 소설가가 꿈이 아가씨, 분명 온갖 서점을 매일처럼 드나들다보면, 입구에서부터 화려하게 쌓여있는, 이미 베스트셀러가 될 목적으로 출판된 책들을 거의 강제적으로 보게 되실 겁니다. 눈과 귀를 잘 이용하세요, 문학소녀 아가씨.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아가씨를 문학의 세계로 밀어 넣은 장본인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어린 시절, 압도적인 문장과 울부짖는 존재와 때때로 달이나 혹은 태양을 가리키던 손가락으로 당신의 세계를 산산조각 내버린 것은 어떤 한 권의 책이었습니까?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였습니까? 알베르 카뮈였나요? 뇌수를 뒤틀리게 하는 프란츠 카프카였습니까? 현인 헤르만 헷세였습니까? 아니면 다자이 오사무의 차갑고 축축한 손길이었습니까? 분명 무엇이든 있었겠지요. 문학소녀 아가씨. 그런데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죽었습니다.

 아니 뭐라고! 절대 죽지 않는, 세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활자 속에서 영생을 얻은 그들이 죽을 리가!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반복하여 말하는데, 그들은 정말이지 죽었습니다. 굳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지엽적으로 죽었습니다. 이야기를 잠깐 되돌려보죠 18세의 빛나는 아가씨. 그 대형서점들의 프런트에 들어설 때마다 보이던 책들이, 방금 말한 사망한 작가들과 같은 절대성을 갖고 있던가요? 그 책들이 시대를 초월해 영생하던가요? 사상과 서술만으로 나라 하나를 뒤엎던가요?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책들은 현시대를 위해 공급된 소비물자들입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도대체 가치가 없는 것이 어디 있으며 가치가 있는 것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아가씨, 시대정신은 개인을 위대하게도 만들고 혹은 파멸시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를 잘 살펴보세요. 극단화된 자본주의 경제사회의 실험대로서 쓰이고 있는 이 땅의 21세기를 잘 살펴보세요. 사람들은 지쳤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으며, 연속적으로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만, 자본을 취득하지 않으면 그런 의문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는 믿음으로 스스로의 사고를 취소합니다.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인간실존으로서의 존재성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기업―비단 국어사전에서의 기업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의 부품이 되어갑니다. 그들은 더 이상 위대함을 좇을 기반을 가지지 못하고, 턱없이 가난한 존재의 조건 속에서 짧은 안도나 쾌락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라고 믿게 됩니다. 소확행, 워라밸, 이런 신조어들은 사실 인간을 치유하는 말들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니게 된 부품들을 타협시키는 말입니다.

 실존을 상실하고, 개인이 파괴된, 과거 인간이었던 자본주의 경제체계의 부품들은 이제 두 가지 선택밖에 하지 못합니다. 공급하거나 소비하거나, 그것뿐입니다. 그로 인하여, 아가씨,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젊은 아가씨, 작가라는 단어는 사어死語입니다. 그 단어는 이제 <콘텐츠 공급자>로 전환됩니다. 공급과 소비의 상관관계는 학교에서 배우셨겠지요. 콘텐츠 공급자는 말 그대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자인만큼, 수요에 대하여 확실한 이해와 행동을 겸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콘텐츠는 소비됩니다. 근대에 예술이라는 개념이 가졌던 특권은 소멸하였고, 안 그래도 이미 끔찍하게 지쳐있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존재에 대한 처절한 마주봄이 아니라 결말 없는 위안입니다.

 제 20대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 전 이런 것들을 이해해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제 난도질당한 <문학>에 가격표를 붙여달라고 오기 속으로 부르짖었으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이런 실패자에게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자 오셨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그러나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은 알려 드렸습니다. 저는 가끔 스스로를 <아직도 특권의식을 버리지 못한 시대착오자>라고 천천히 읊어보기도 합니다! 하여간 명백한 객관에 의하면 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못해 도태된 글쟁이입니다. 당신과 나의 이 만남이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라는 말로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군요.

 작가를 꿈꾸는 아가씨, 그저 제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빛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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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울지 않는 매미는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매미는 없지요. 빗물이 뚝뚝 듣는 한여름의 새벽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비非생존자라고. 생존자들의 특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살입니다. 생존하는 것들만이 자살할 수 있지요. 그들에게는 사고와, 비관과, 회의와, 합리적인 절망이 허락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빠르고 간단하게 죽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특권이죠.


 세 시간 전부터 여기에 앉아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하늘이 붕 뜬 가래 같은 색깔에서 남청색으로 변하고 있어요. 태양이 뜨기 시작하면 제 피부 색깔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이 황인종의 마른 피부는 아무리 봐도 거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직관되는 거예요. 만약 뾰족한 바늘의 개념을 가져다대면 육신 전체가 미약한 소음과 함께 펑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환각과도 같은 믿음이 날 지배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고대의 사망자이기 때문에 바늘의 개념idea 같은 것은 가져올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황야 위에 떠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타르거품입니다.


 거품에게 즉각적인 자살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사고하는 것도 비관하는 것도 회의하는 것도 절망하는 것도 순차적이지 않고, 논리가 없으며, 한 덩어리로 사악하게 뒤섞인 혼란 그 자체입니다. 생존자가 되는 조건을 말씀드렸던가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믿음이든, 단 하나의 믿음이라도 있기만 하다면, 예를 들어 신념 같은, 삶의 조건에 대해 신뢰하고 있는 단 하나의 끄트머리라도 있다면, 인간은 충분히 생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녹슨 톱니바퀴라고 할지언정 계속 작동합니다. 생명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자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 연결된 다른 톱니바퀴, 나사, 볼트 따위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톱니바퀴의 극단적인 자기파괴 또한 찬란한 절망과 함께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절망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고, 생명에의 믿음이 없으면 의미 따위는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 시간 째 여기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있는 바, 비非생존자들에게도 자살의 방편 정도는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재떨이에 떨어진 담뱃재들이 자신을 흐트러트리고 파괴할 바람을 기다리는 것과 동일한 방편입니다. 아주 길고 느리며, 끔찍이도 수동적이고, 죽음에 대한 기대조차 하지 않는 자살, 그것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일찍이 <흡족한 마음으로 더 바랄 것 없이 완전하게 절망하여 죽기를 희망한다>고 나타나엘에게 말했습니다. 이 어찌나 아름다운 문장인지요.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에 우리는 손을 뻗을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는 소리를 지른다>고 썼던 H. 노바크 시절에는 이렇게 죽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태양에 반항하여 리볼버를 발사할 수 있었던 때라면, 아아, 그러나 지금은.


 껍질 안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 껍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는 니체의 말은 철학자의 고상하고 멋 부린 한 구절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언이고 저주였습니다. 심연은 다름 아닌 이 꿈같은 현실에 수도 없이 깔려있고, 인간본성은 그것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합니다. 그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심연이라는 것의 진실을 말입니다. 짐승들은 피할 것입니다. 짐승들은 공포의 본질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도망쳐버리지요. 인간은 이상해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마치 자멸로의 행로가 미리 설계된 프로그램 같습니다. 감히 말하건데 인간은 생물실격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연의 진실은 굉장히 입체적입니다만, 제 본성에 맞는 면을 발견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아마 지금쯤 당신은 저를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 정도로 착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심연 속의 진실의 한 면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허무나 개개인의 실존조차 압도하는 엄청난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서로 모순되고 공격하는 악의들이 혼재된 괴상망측한 의미들의 덩어리였고, 집합이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지평이었으며, 또한 영원히 서로를 반사하는 마주본 거울이었습니다. 그것은 꿈도 아니었고 현실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꿈이나 현실이 아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실재하는 허구였습니다. 우주만물의 평등한 무가치를 가리키는 그것은, 혼돈이었습니다.


 이로써 저의 두서없고 횡설수설하는 이야기를 당신께서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제가 자신을 비非생존자라는 생소한 단어로 설명했는지, 왜 입을 떼자마자 자살 운운하더니 능동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이들에게 질투했는지 따위를 말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앞뒤가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비단 저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이것을 계속 피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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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6일부터 3월 18일까지

시 전시회 [존재비애: 인간존재의 선험적 공허에 대한 몰두와 노스탤지어]가 개최됩니다.


약도에 표시된 '아트갤러리 카페 어스피셔스'와 같은 건물 1층의 '하나빈 팩토리'에서 동시 진행하며, 12:00부터 20:00까지 오픈합니다.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된 시들과 영상작품으로 만들어진 산문시등이 전시되며, 2017년 발표한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과 1층 하나빈 팩토리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기념하여 발매한 프리미엄 더치커피도 한정 판매하고 있습니다.


첫 전시회라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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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Tumblbug에서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 출간을 위한 펀딩을 진행중입니다.


https://www.tumblbug.com/madnessandlove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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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8

기록/생각 2016. 5. 28. 05:33 |

 옳아 나는 모든 이들을 내 삶에서 쫓아낼 작정인 것이다. 이제야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내가 이타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것은 더러운 자기합리화다. 그녀가 나를 떠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를 나로부터 떠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다. 내가 모든 이들이 나로부터 떠나도록 만든 것이다. 이건 아주 진부하면서도 새로운 것이다. 내가 얼마나 좆되있는지, 가닥을 잡았다.

 분명 나도 태어날 때부터 망가져 있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모를 일이다. 온갖 정신의학 학파들과 가설과 치료방식이 존재한다. 그런데 정녕 나는 그것들을 전부 내 영혼에 맞춰볼 셈인가? 이제와서 이성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내 입으로 말할 수나 있는가? 물론 의사들의 말도 맞겠지.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고? 내가 내 치졸한 자아가 너무 소중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든, 내 어린시절이 지랄 같은 비명과 흉터들로 가득해서 이렇게 됐든,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적어도 스스로의 존재를 양심에 호소할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언제부터 내가 걸어다니는, 나이프와 전기톱을 조합해 만든 괴상하고 끔찍스러운 오브제가 됐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현재다. 나는 고독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바로 비극이다. 나는 사람들이 가엾다. 그래서 그들을 증오하는 것이다. 아! 방금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았다.

 의식이 이 모든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 지독하게도 우습다. 내 일생이 나의 무의식에 의하여 스스로를 파괴하고 격리해왔던 것이다! 그것도 인간애를 위하여! 나는 스스로를 가장 혐오스러운 어떤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 안의 벌레들을 보여주어 쫓아냈다. 그간 외로움에 허덕이면서 왜 내가 외로운지 자문해 왔는데, 이 고독은 나라는 놈이 만들어 놓은 나의 격리병동이었다. 나는 너무 일찍 피냄새에 구토했다.

 오 아냐. 드디어 알겠다. <나>는 실체가 아니었다. <나>는 가장 끔찍한 입체영상이었다. 금연홍보영상에 나오는 모자이크도 가해지지 않은 폐암 수술장면처럼, <나>는 무언가에 의해 의도된 교훈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내 곁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리둥절한 채,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도망쳐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명확한, 그리고 올바른 것이었다.

 역겨운 자기연민 따위는 어디에도 없어야한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서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되고 싶지만 인간이 될 수 없다면 인간이 되지 말아야 한다. 치료될 수 없는 병마는 희생자만 만들 뿐이지, 그 병마라는 것을 인간이라고 부르는 미친 놈은 어디에도 없다. 하하! 내가 받을 것은 바로 노벨평화상이다. 나는 기특하게도 스스로 물러나는 역병이다.

 당신의 손이 바늘과 송곳과 단도로 만들어져있고 거기에 수은이 흐른다면 외롭더라도 그 누구의 손도 잡아서는 안 된다. 잡을 생각도 해서는 안 된다. 아 제기랄.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 감상주의자들이었는데.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오해하는 것조차 두렵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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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되지 않음.

기록/생각 2016. 4. 24. 09:26 |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자판을 두드리면서 뭔가를 써내려가고 있는데

내가 뭘 하는지는 정말로 모르겠어.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데 통달했지

시(詩)라는 이름으로 내 자질을 과시해댔어.

그런데 문장이 아름답다는 게 도대체 무슨 대수람.

단순히 예쁜 문장과 추한 문장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학의 잣대에 대해서 말이야.

나 자신에 대한 몰이해가 점점 깊은 구덩이처럼 되어가.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계속 깊어지기만 하는.

모든 미학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사실은 모든 것을 다 미학으로 덮어씌울 수 있어.

예를 들어 지나가는 노숙자를 넘어트리고

망치로 그의 머리를 계속 내리쳐 두개골을 깨트려도

그리고 깨진 두개골을 꺼내 계속 빻아 가루로 만들어도

경찰들에게 행위예술일 뿐이었다고 주장해도 돼.

뭐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널 정신병원에 처넣겠지만.

중요한건 행위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내면에 있는 미학적 감각에 의하여

그건 행위예술이 되는 거지. 경찰도 그걸 바꿀 순 없어.

정신병동 남자 간호사들도 마찬가지고.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미안, 방금 전에 신경안정제랑 항우울제를 잔뜩 먹었거든.

정신이 좀 몽롱해.

줄곧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나는 글만 쓰는 인간쓰레기야.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내게서 글 쓰는 능력만 제한다면

다른 내 모든 부분들은 그저 쓸모없는 똥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거지.

난 인성도 더럽고 도덕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어.

심지어는 생산적인 삶을 이어갈 원동력도 없어.

자기비하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니까…….

차라리 글 쓰는 것보다 노숙자 머리통을 망치로 깨는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딱히 노숙자 머리통만 깨진 않을 거야. 세상과

자본주의와 계급사회에 대한 무책임한 분노로

일단 보이는 대로 망치를 휘두르다가 사형당하겠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게 언제더라.

아무튼 나도 노력을 하기는 했어. 성경도 공부하고 쿠란도 읽고

불교경전도 잔뜩 읽었어. 읽고 연구하고 공부했어.

왜, 종교란 인간정신과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화잖아.

그래서 나도 그 인간정신이라는 걸 좀 공부해보려고 했는데

많은 객관적 사실들은 알게 되었지만

나한테는 별 도움이 안됐어.

예수님도 석가세존도 심지어 모하메드조차도.

어쩌면 절반정도는 내 잘못이지

애당초 기대도 안했거든.

그들의 인생은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어.

그러니까…… 염병할,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요새 지구 곳곳에서 대형 지진이 일어나던데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게 어리둥절해있을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안 남았을 지도.

아, 그래도 글은 계속 쓸 거야.

그게 의미가 있든 없든, 사실은 글을 쓰는 게

항분열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는 것보다 효과가 좋거든.

세 시간 정도 열 내면서 작문에 집중한 뒤에는

한 30분 정도 평온한 기분이 들어. 약도 필요 없지.

내가 말하면서도 요점이 뭔지 모르겠다.

만약에 63빌딩이나 그에 준할만한 사회적 상징물을

온통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발라놓고 성냥불을 던진다면

글을 안 써도 될 텐데. 더 이상 창조가 필요 없는 시대잖아.

차라리 뭔가 부수는 게 더 생산적일지도 몰라.

파괴가 생산적인 것이라니,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되네.

근데 실제로 그래. 이미 모든 게 다 말이 안 돼.

모르겠다. 약용 모르핀 성분이 내 혈관을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게 느껴져서 더는 못 깨있겠어.

한 천 년 쯤 잠들었다가 황무지 한복판에서 깨어나면 좋을텐데.

그럼 안녕.

Posted by Lim_
:

(...)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사족입니다만,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문학계에 몸을 담은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간 단 한 번의 공모전 수상도, 신춘문예 당선도, 심지어는 약소문예지에서의 데뷔조차 없었습니다.(이 점은 다소 이상한 사건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네의 문예지 공모전에 제 시가 당선되었다면서 출판비와 문단 등단비 60만원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물론 거절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을 사회와 자발적으로 격리되어 19,20세기의 유럽문학과 소련문학에만 빠져 살았으며

현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인간집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말살 행위를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미술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몰이해적 괴물에 잡아먹혀 미술관에 배설물을 전시하는 상황에 처했으며, 문학은 <순수>나 <고전>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들은 모조리 목이 잘리고 국제경제의 위험과 더불어 텍스트가 혁명을 일으키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텍스트에 기반하여 혁명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제 텍스트는 오락행위를 위한 도구이고, 소위 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공연한 자위물에 불과합니다.

한때는 고전문학의 부활을 바랐습니다. 가죽자켓을 입은 록커들이 클래시컬 뮤직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아 현대적 멜로디로 재해석하고, 미술은 더 이상 몰이해를 자극해 돈을 버는 것을 그만두고 인상파의 근원으로 재탐구해가고, 문학은 그저 오래된 책장에서 잠들어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를 비롯한 온갖 문학사상들이 현대에 재해석되어 인간정신의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정도의 권력(니체적 의미의)을 갖는 텍스트가 탄생하기를 바랐습니다.


아! 제가 왜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지 궁금하실 겁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을 문학에 쏟아부은 결과, 저는 말그대로 사회적 쓰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고, 글 쓰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회적 능력도 없는, 돈도 없고 노동력도 없고 시답지않은 정신질환에 휘둘리는 야간활동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도대체 이 시대에 문학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를 고민하고 10년만에 처음으로 아르튀르 랭보가 어떤 모습으로 펜을 꺾었는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습관처럼 강박적으로 계속해서 작품을 찍어내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현대-한국-독자들의 <Needs>를 충족시키는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섹스와 바이올런스와 드러그와 알코올과 카페인과 온갖 말초적 쾌락으로 이루어져 꿈틀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저는 제 목을 겨냥하고 떨어질 단두대의 칼날만 기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제가 그 칼날을 희망했기에! 시인 로트레아몽 백작을 아십니까? 천박한 신분 주제에 파리로 올라와 자신을 <로뜨레아몽 백작>이라고 자칭하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산문시들을 뱉어내다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비로 출판한 <말도로르의 노래> 한 권만을 남기고 죽어버린 사람입니다. 그것은 썩어 사라지는 수밖에 없었지만, 놀랍게도 100년 뒤 어떤 초현실주의자가 파리 대도서관에서 그 낡아빠진 책을 발견하고 세상의 등불을 비췄습니다. 죽은지 100년이 넘어 로트레아몽 백작은 불현듯 천재가 되었습니다. 모든 국가의 문학계가 그의 이해할 수 없는 장황한 산문시를 분석하고 공부하고 찬탄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비록 이 시대가 쾌락만을 바라는 시대이기에 스스로 천재적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죽은 뒤에라도 각광 받기를 바라서?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라는 이름의 책까지 낸 니체가 정신병원에 들어갈때까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다가 유럽문단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박수갈채를 보낼 때 정작 프리드리히 니체는 격리병동에서 이식증에 걸려 자신의 배설물을 먹어치우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요. 천재라는 것은 실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차라리 양자역학적인 시각에서의 입자의 존재와 비슷합니다. 관측자가 입자를 관측했기 때문에 입자가 입자로서의 성질을 가지는 것처럼, 천재 역시 독자가 작품을 읽고 영감을 느꼈을 때 그 작가는 천재가 될 가능성을 얻는 것입니다. 작가는 독자에 선행한다는 틀림없는 물리학적 진실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독자에 의해 재창조됩니다. 독자가 없어도 작가는 존재할 수 있지만, 독자가 없으면 작가는 관측자를 잃어버린 입자처럼 파동으로 변해 실재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작품을, 아아! 더이상 작품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할 것도 없이, 컨텐츠라고, 엔터테이먼트라고, 상품이라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21세기에 와서 구두제작공과 소설가는 똑같은 위치에 서고 말았습니다. 좋은 구두는 신었을 때 발이 편하고 걷기 좋듯이, 좋은 소설은 읽기 편하고 독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집단도 다수도 공권력도 국가도 사회도 인류도 아닙니다. 그냥 개인입니다. 개인의 필터로 개인의 사실을 개인의 진실로 만들어서 개인의 작품을 펴내는, 약하디 약한 개인입니다. 더군다나 인류의 문화적 종말은 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극단에 달해있고 말초적이 되고 만개한 꽃처럼 위태위태합니다. 다음 수순은, 분명히도 종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저는 돈을 벌고 싶습니다. 제 이름을 남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저의 멋있는 한 순간의 필치로 사람들이 감명을 받았으면 합니다. 고전문학의 부활? 아, 이미 손을 떠난지 오랩니다. 그것도 모두의 손에서요! 너무 장황한 글이 되었군요.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느꼈던 빛의 덩어리 같은 충격, 그리고 알베르 까뮈의 미완유작 <최초의 인간>을 읽으며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다락방에서 흐느껴 울었던 것. 그 과거들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산산조각. 인류문화의 멸망이 가깝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태어나지 않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처참하게 찢겨 죽었고, 다자이 오사무는 <중2병>이라는 손가락질에 지쳐 미치고 돌아버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입니다.

제 난도질 된 영혼의 값을 매겨주십시오.



항상 귀사의 번영과 성공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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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기.

기록/생각 2014. 9. 4. 18:54 |

어제 뭉크전 보러 서초동까지 갔다가 비를 피해 찻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갈때부터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무엇이 좋지 않았냐 하면 입구부터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빈공간에 여유롭게 채워넣은 조각들이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난 친구와 함께 어정어정 들어가서 의자에 앉으려는데 유니폼 입은 점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이쪽에 앉으시지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우리 좆됐어.' 그리고 어정어정 점원이 소개한 자리에 앉으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차분한 공기는 사람들 차나 마시라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쪽팔림 무릅쓰고 점원에게 다가가 메뉴판이나 한번 보자고 하였다. 커피 한 잔에 육천오백 원이었다. 시바. 나는 친구 셔츠 잡아당기며 찻집 밖으로 도망쳤다. 시바. 자본주의가 날 울게 만든다. 누나 나는 맑스나 배우러 가야할까봐요. 사람들이 육천오백 원짜리 커피 때문에 날 빨갱이라고 부르더라도 별 도리가 없어요.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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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길로 가야하는 지를 모르겠는 것이 아니라, 길이 어디에 있는 지를 모르는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목적지는 눈에 보이나, 그것은 도달점이 아닌 황량하고 고독한 드넓은 영역이기에, 나는 방위를 헤매고 마는 것이다.
 카타르시스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인지 잃어버린 뒤로, 나는 대단원 없는 비극의 위를 계속해서 걷고 있다.
 나는 부서지고 깎이며 고독과 고통에 비명지르고 있지만, 한 모금의 물을 갈구하는 지독한 갈증 때문에 더 이상 제동장치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한 모금의 물>이라는 것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나를 더욱 옥죄어온다.
 때로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괴롭다. 나는 포기하거나 그만 둘 수도 없는 탓이다.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사는 것 외에는 아무 방도도 없다.
 내 영혼은 항상 금단증상에 허덕인다. 그것의 욕구를 채워줄 약물이 어디에도 없는 까닭이다.
 오로지 깊디 깊은 고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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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일.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 초고 완성.
A4용지 102페이지. 200자 원고지 948장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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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나는 마음 같은 것은 바란 일도 없다. 잠깐의 짐승으로도 좋았다. 잠깐의 짐승이라면 더 바랄 것도 없다. 마치 태풍이나 지진처럼. 나에게 무슨 이름이 붙여지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의지도 없는 천재지변이었더라면 불만도 모르고 흩어져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철창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이 너무 멀다. 내 정수리에 영혼의 눈을 달아둔 덕분에 이 짓도 그만 둘수가 없다. 뼈와 살점과 함께 웃으면서 터지는 폭발물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죽음이 어머니라는 것을 발견할 눈동자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미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기라는 개념이 부여되지 않는 현상이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너무 거추장스럽고 무겁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또 내일이 온다. 또 생명이 연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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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분명 그녀가 마지막이었으리라. 내가 고독이라는 독액을 내 팔뚝의 굵은 동맥에 주사하고 있는 것은 영원히 이어질 일이다. 나는 어제 갑작스럽게-니코틴이 나의 정신을 맑게 했기 때문이리라- 신의 이름을 알아냈다. 나는 그 이름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밀스럽고 끔찍한 이름은 나의 노트에 아무도 모르게 적혀있다. 지난 반년간 단 한 번도 자해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 난 수도 없는 흉측한 흉터들은 아직도 가끔 피와 진물을 흘린다. 내 서랍에 잠들어있는 단도는 언제나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나는 그것을 쥐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손에 쥐지 않아도 그 날붙이는 밤새 서랍에서 기어나와 나의 심장에 흠집을 낸다.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쉬웠었지.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믿지 않아도 되었었지. 나는 어둠 속에서 난동을 부린다. 내가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파멸적인 믿음에 빠져서. 그때 나는 태초의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간 쌓여온 벽이 Pink의 결말처럼 가차없이 부서졌었다. 그러나 운명은 항상 비극이다. 나는 비명지르면서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와 마주친 것만으로 부서졌던 드높은 벽은, 내가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칠때마다 보다 높고, 보다 두껍고, 보다 단단한 형태로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이제 나는 수십 겹의 장갑을 낀 손으로만 인간을 만진다. 감히 말하건데, 그녀 앞에서 나는 어린애였노라. 수십 년의 절망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 앞에서 그러한 상처들은 차라리 축복으로 보였었다! 그래, 모든 운명은 파멸을 종용한다. 그녀와의 만남조차도 내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위한 무대장치였던 것이다. 이제 태양의 빛은 더욱 작게 보인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슴에 나는 나의 길다랗고 신성모독적인 손톱을 박아넣고 싶다. 그리고 온갖 환상들이 외쳐대는 환희에 대하여-나는 그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저주, 저주, 저주한다. 아주 조금 어른이 되었을 뿐인데도 세계는 전보다 더 두터운 갑옷을 차려입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밤하늘에서 어둠을 뜯어내어 내 옷을 해입었다. 내 마음 속에서 날뛰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열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얼음처럼 차갑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증오와, 자신의 손목에 박아넣기 전에 망설임과 공포 때문에 떨리는 단도 뿐이다. 나의 야망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모든 이들의 파멸이다. 나는 빌딩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불타 죽는 것을 보고 싶다. 더 이상 신이 재앙을 내리지 않는 세계에서 망치와 칼을 들어야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지어다. 어쩌면 나는 계시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길고 끈질기게 나의 영혼을 점령해온 계시를 말이다. 그들이 믿는 규율의 붕괴 속에서 나는 최고의 환희를 맛볼 것이다. 어떠한 윤리도 도덕도 없는 세계에서 나는 인간이 절대로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새로운 법칙에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나는 내 손톱이 갈퀴였고 내 송곳니가 나이프와 같았던 그 과거를-그 무구한 과거를 기억해내려고 한다. 나는 아직도 고독이라는 고통에 몸을 떨지만 그것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부정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받는 것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나는 고통을 나눠주는 것으로 존재한다. 언젠가 내 어깨에는 날개가 솟겠지. 해골로 된 왕이여, 그대는 틀림없이 웃고 있을 것이다. 하늘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순간에야말로 인생이 정신 속에서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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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쳤다.

기록/생각 2013. 8. 7. 05:04 |
그만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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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잔상을 남기며 굴러다니는 눈알이 보인다. 하늘에는 천둥소리: 분명 밤에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한. 내 방의 벽들은 두껍지만 나는 그 너머에 있는 사물들의 유령을 볼 수 있다. 약 여섯 시간 전부터 누군가가 내 귓가에 계속 속삭이고 있다. 그녀는 여자다. 그리고 내가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수 년 전의 지옥으로 돌아간다. 여기에는 웃음이 남았다. 그러니까 끔찍한 침묵과 자학 끝에 남는 것은 오직 합선된 정신과 웃음 뿐이다. 모든 것이 다 쉬워졌다. 번쩍거리는 사람들과 고양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그들이 외치는 것을 듣는다. <내 몸을 잘게 썰어줘.> 그렇다, 그대들의 욕망, 그리고 나의 욕망. 아니, 나는 욕망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욕망한다. 거울에 비친 내 마음을 보면 이천오백 년 전에 죽은 성인의 말마디들이 송곳으로 새긴 흉터처럼 드러나보인다. 그래서 나는 내 영혼의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는데, 모든 것들이 엉망으로 뒤섞이고 각자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몇 번 정도 웃었다. 내 감정이 분열되는 것을 느낀다. 조각조각, 몇 가지 색깔들로 반짝이면서, 그리고 저쪽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였던 광기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여덟 살 때였던가? 나는 어둠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새벽 두 시 쯤에 바깥으로 나가 가로등도 켜지지 않은 시골의 밤길에 앉아 몇 시간을 기다렸다. 뭘 기다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나는 태양이 지독히도 미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눈동자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나는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 그 뿌리는 공허와 허무를 먹으며 새싹과 꽃을 피우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자살기도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허무의 뒷면이 바로 자유라는 것을.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의 손에 칼과 총이 쥐여졌다. 마침내 단 하나의 명확한 진실이 보였다. 광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고 동시에 모든 것의 목적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내 심장을 갈비뼈 바깥으로 꺼내려고 몇 번인가 시도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자살시도자들을 증오했고 내 가슴에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 몇 개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행운아가 되려고 했다. 행운아라는 것은 자신을 죽이기보다 타인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자아를 가진 사람들을 칭한다. 나는 텔레비젼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욕하고 짓밟는 범죄자들과 눈을 마주친다. 그들의 이기심과 폭력성과 반사회성은 시원한 샘물이 되어 내 목구멍으로 흘러들어왔다. 나는 땅 속에 구멍을 파고 잠들어있는 매미 유충과 닮았다. 그러나 우화, 우화, 우화, 우화, 그리고 마침내 노래. 노래. 노래는 중요한 것이다. 누구나 노래를 하다가 죽어야한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지 않고 죽어간다. 노래하지 않는 매미는 의미가 없다. 니체가 말했던 것을 떠올려라. 우리 모두의 손톱과 송곳니가 충분히 날카롭고 갈증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복수란, 복수란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나의 복수 또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행한 악행에 대한 복수가 돌아오고 돌아오고 대물림 되어 나에게까지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의를 버려야한다. 그리고 내 손을 충동과 혼돈에게 맡겨버려야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나의 가슴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광기가 세계를 축복할 것이다. 곳곳에 잘려나간 살점들이 반짝이고, 그 반짝임 속에서 새로운 우상이 걸어나올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상이 신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친구들의 피와 뼈로 새로운 아이돌을 조각해내겠지. 그러면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윤리에 걸맞는 행복 같은 것은 소위 성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입을 열었던 그 순간에 모두 목이 졸려 죽었으니까. 그러므로 행복이란 바로 붕괴에 있다. 모두가 더는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을 때, 불행과 고통과 혼돈의 구렁텅이 속으로 스스로 걸어내려가, 나락 밑바닥에서 전 인류와 만나게 될 때, 모든 사람들의 손에는 날카롭고 오래된 흉기가 들려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본성을 되찾고 죽음 속에서 희희낙락하면서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광기가 언제나 웃음을 동반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더욱 즐겁게 만들 것이다. 더욱 즐겁게. 더욱 즐겁게. 마침내 우리의 영혼이 죄악과 피로 물든 시궁창을 초월하여 불경하게=위대하게 될 때까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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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꿈은 아름답다는 이유에서 잔혹하다. 그리고 누가 날 배신하든, 배신하지 않든, 그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나는 노력할 것이다. 최소한 내가 산업폐기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증명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저 끝에서 꿈과 초월적인 절망이, 아니 그것은 사실 초월적이지 않다... 아무튼 그것들이 번쩍거리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이 보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하는가?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이란 다분히 폭력적이고 교만하며 위선과 허식으로 가득하다. 나는 단순히 분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내게 향하고 있는 그 칼날들, 그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 잊어버리는 일이지만 내 손에도 칼이 한 자루 쥐여져있다. 나는 증오하고, 또 증오한다. 이 모든 조건과 상황들 말이다. 빌어먹을 현실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러니까 나는 꿈을, 꿈을 꾸었던 것인데, 그것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다분히 현실도피적이고 환각적이었다. 구원이라는 허상을 위해서 나는 한 인간을 이용해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이기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나 자신의 기만이다. 만약에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가장 경악할 범죄행위가 저질러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겠지. 다음에는 어떨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나는 이제 지쳤다. 인간성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매달려있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그러니까 죽거나 죽이거나, 포기하거나 미치거나... 선택 가능한 폭은 별로 넓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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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명백한.

기록/생각 2013. 6. 22. 00:06 |
자, 꿈은 끝났다. 구원이라는 개념은 잠시 나에게 얼굴을 보였다가 그대로 질식해서 죽어버렸다. 나의 오랜 친구들이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자고 속삭였다. 나는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이 환한 곳에서는 고통이 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관념의 흉기로 다시 내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방식이라고, 이전에도 나는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영감이 나를 지배했다. 인간적 정신과 괴물적 정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자주 발견되는 그것이, 잡아먹을 듯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결국 나를 살게 할 셈이란 말이지?> 나는 몹시 웃으면서 지껄였다.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우스워졌다. 내 입가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어떤 불행도 농담거리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내 가슴에 광증이라는 이름의 못을 하나 더 박아넣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다 편안해졌다...... 이 분열된 시야도, 심장을 찢는 고통도,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것 같은 고독도, 수십 개로 나뉘어 서로 논쟁을 벌이는 정신도, 내 주변에서 뛰노는 환각들도 다시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나약한 놈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가치관마저 붕괴되고 나면 나약하고 나약하지 않고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죄악감과 수치도 광기의 문 안에서 유린당하고 소멸할 것이다. 나는 다시 선량한 이들이 사는 집의 창문가에서 비열한 유혹을 던지는 그림자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썩어 없어지기 마련이다. 죽음이라는 시커먼 구덩이는 모든 개념과 형상들을 집어삼켜버린다. 삶과 자유는 손에 들린 흉기와 같다. 저 위에서 누군가가 내려다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아, 나는 기꺼히 받아들이리라. 모든 죄는 벌을 끌어들인다.

*

(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세계가 꽃과 나무와 번쩍이는 빛살과 이슬이 맺힌 풀들로 찬란하게 빛났었습니다. 나는 인간의 얼굴에서 희망을 보았고 최초로 인간의 눈동자와 마주했으며 나의 광증은 피안의 저편에서 내밀어져온 손길에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누가 운명의 무자비한 의도를 알겠습니까? 나의 희망은 내가 막 가지게 된 신성한 세계를 집어들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산 꼭데기에 올라갔고 이제 뛰어내린다고 중얼거리면서 온 몸의 뼈가 부서진 시체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의 오랜 친구인 광기가 나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헤로인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원래 세계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좋아, 안 될 것 없지. 나는 이미 여러번 죽었어. 삶 같은 것은 믿지 않았어. 내게는 여전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두 손이 있고, 법칙의 진짜 이름은 태초부터 혼돈이었어.
나는 환희에 차서 낄낄 웃었습니다! 그 환희는 예전에도 몇 번이나 맛본 적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차라리 내 생명의 원동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봐, 그래서 너는 고통의 어깨를 감싸안았군! 너는 우리 모두를 친구로 삼고 사랑할 작정이야! 불행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나는 잠깐이나마 인간이 되었었지만, 그것은 꿈의 거품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울을 보니 온몸에 흉터가 새겨진 정신불구자가 서있었습니다. 나는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그것은 환각이었어. 망가진 자는 영원히 고독할지니!
한때 찬란하고 붉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하늘을 보았습니다. 정다운 어머니인 죽음이 상냥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내가 다시 당신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살갑게 알렸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이 하는 일을 도와줄 것입니다. 당신이 부지런히 아들들의 가슴 속에서 심장을 빼어갈 때, 나는 열광적으로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비참! 비참!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수람? 그것은 당신의 부품과도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것은 고통과 고독과 비참과 허무와 언어가 되어 나오지 않는 소름끼치는 욕지거리들입니다! 모두 함께 웃읍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가 아닙니까?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인 자유가 우리의 심장을 중독시켜버리지 않았습니까? 나의 허파에는 끔찍한 술이 가득 차서 내 머리는 취해버렸고 온갖 즐거운 환상들이 잔치를 벌이며 서로에게 칼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아! 잡설은 그만 둡시다. 요는 우리들의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자비로운 손길을 보십시오. 쾌락과 관능과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무자비한 손길을 보십시오. 우리는 무상 아래서 춤을 춥니다! 그것이 본질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나는 수십 년간 지옥에서 살다가, 잠시 인간도로 끌어올려졌다가, 이제는 가슴에 수라의 얼굴을 품은 괴기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환영의 박수로 나를 맞아주십시오. 너무 깊은 꿈이었고 너무 짧은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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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기록/생각 2013. 6. 11. 05:05 |
새벽 다섯시 경
동쪽 하늘의 붉은 구름을
본 일이 있습니까
나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서
당신의 티없이 맑은
영혼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애절하면서도 아름답고
기적적이면서도 평화롭습니다
예전에, 내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을때
발견했던 섬광들은
한 없이 강렬하고 날카로우며
내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관념의 광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세계의
자비한 미학을
연못의 파문 같은 고요한 울림을
마침내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 뻐꾸기 울음소리는
당신과 함께 들었던 그 울음소리입니다
세상 어딘가에서 아침과 함께
명상에 잠겨있을
그대여,
당신이야말로
나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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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마음 전할 길이 없어 이곳에 담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당신을 만나기 전, 나는 수십년이나 지옥 밑바닥에서 수라처럼 살아왔습니다. 나는 고통과 혼돈밖에 아는 것이 없었고, 내 가슴 속에 있는 것이라고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증오뿐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는 내 자신도 증오했습니다. 나는 다섯 번의 자살시도와, 실패 끝에, 완전한 미치광이의 영역으로 들어서려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고통과 불행에도 웃을 수 있고, 타인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마저도 한 자루 나이프 끝의 섬광으로 유린할 수 있는,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나의 가슴에는 수많은 깊은 흉터들이 남았고, 내 입가에는 운명을 조롱하는 실소가 걸렸습니다. 그러나 당신, 갑작스런 인연으로 내 앞에 나타난 당신. 나는 당신을 보았을 때 생애최초로 맛보는 공포와 놀라움에 질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얼굴은, 거기에서 보여지는 더 없이 순수한 영혼은, 내 세계에서 있을 리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공포와 놀라움 뒤에, 나는 당신의 영혼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보는 인간의 얼굴을……. 그리고 나는 순식간에 매료되어버렸습니다. 아니, 매료되었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찰나의 순간에 내 세계를 뒤바꿔버렸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최초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아가페와 에로스가 뒤섞인 괴상한 사랑으로 나는 당신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당신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추운 나라에서 왔다는 것, 당신이 세계를 여행하고 다닌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모든 사람과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비구니스님이 되려고 한다는 것까지……. 나는 어쩔 도리 없는 마음으로, 비애와 기쁨에 젖어 당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상냥한 친구의 얼굴로 분장하고……. 당신은 내게 아름다운 미소와 갈색 눈동자, 깊고 고요한 목소리로 마주해주었습니다. 나는 점점 당신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비구니스님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처절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당신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노골적인 절망을 깨닫고 괴로움 때문에 뒹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여신과 같은 미소로 웃고 있었습니다. 아, 그대여,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단 말입니까? 제발 나에게 희망을 주지 마십시오. 그러나 부디 나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당신의 입에서 비구니스님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가슴의 통증에 괴로워하며 웃었습니다. 절대 당신에게 슬픈 얼굴을 보여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축복해줘야만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에 염증이 나서 죽어버릴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친구로서, 당신과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정상에 도착하면 뛰어내려버릴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길에, 당신은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로 내게 함께 인도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나는 순간이지만 허무하고 필멸적인 기쁨에 사로잡혀, 좋다고 말해버렸습니다. 아, 그대여, 그대여, 인도에 간다한들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오직 당신의 미래만이 있을 뿐. 나는 그저, 그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당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스님이 되겠지요. 언젠가 나는 다시 혼자가 되겠지요. 여전히 나는 당신을 사랑할테지요. 여기 남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행자생활을 시작하는 것을 축복해주는 패배자 뿐입니다. 언젠가 나는 내 얼굴에 불을 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완전히 포기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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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나는 가끔씩 몰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고통이 예전만큼 원망스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숭고한 감정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오, 나의 구원자여, 한 시라도 빨리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 당신의 웃는 얼굴을 보고, 당신의 갈색 눈동자와 마주하고, 당신의 조용하고 깊은 목소리를 듣고 싶다. 당신만이 나의 공허를 채워주고, 나의 고통을 지워주며, 나를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 곁에 있으면 심장이 아파온다. 그러나 그 통증은 내 병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 통증마저도 사랑한다. 당신이 준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모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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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당신의 아들은 미쳐가고 있어요. 세상에 사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고독과 적막이 내 영혼을 광기로 물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인간이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닐는지요? 그들이 말하는 행복과 사랑이란 전부 위정자들의 기만이 아닐는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속았습니다. 나를 잉태한 순간 당신은 완전한 사기행위의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내 혈관 속을 도는 검은 피는 아직 뜨겁지만, 나의 영혼은 점점 90살 늙은이의 그것처럼 굳어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내게는 동정도 연민도 없어요. 나의 눈동자는 밤하늘에 붙들려버렸어요. 차라리 그를 현실에서 지워주세요. 그에게서 현실을 지워주세요. 여기는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이 골목 너머엔 무엇이 있나요? 나에게는 하수구 속에 빠진 어두운 도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미쳐가고 있어요. 내 눈은 불빛을 잃었어요. 골목 저 끝에서 그가 웃음 짓고 있는 것이 보이시는지요? 그의 송곳니와 손톱이 나의 심장을 먹어치워버릴 거예요. 아! 차라리 내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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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기록/생각 2013. 3. 31. 00:54 |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불만족과 슬픔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계속 실패한다. 남들의 기대와 신뢰를 배반하고 내 몸과 정신을 망가트리기만 한다.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하다. 절대로 불가능하다. 여기 누구 베라 린이라는 여자를 기억하는 사람 없나요. 그녀가 말했었죠. 어느 화창한 날에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고. 왜 살고 있는지. 그야 분명하다. 내가 살고 싶어하니까. 그러나 만약 내가 더 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면? 아, 나는 모르겠다. 그저 슬플 뿐이다. 병든 자들의 사회. 병든 사회의 병든 사람들. 그들에게 날개가 있었으면.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으면. 나는 한때 저 드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기도 했었다. 나의 지저분한 골방 속에서 그런 환상을 보며 살았었다.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이상 배신하는 것은 싫다. 누군가 내게 진실한 인간관계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그러나 그것도 나의 유아적인 욕구에 지나지 않는다. 유치하다. 너무나 유치해서 스스로도 구역질이 난다. 알고 싶은 것은 스스로 탐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무엇으로? 도대체 무엇으로. 무엇을 기반으로.
내일이 올 때마다 그는 '안 돼'라고 외친다. 신음소리처럼. 어머니, 창문 밖에서 광인이 나를 주시하고 있어요. 그가 나를 그의 세계로 데려가려고 해요. 나를 구해주세요. 내 손을 잡아주세요. 내가 비록 인간이 되지 못한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내 손을 잡아주세요. 그것마저 거부하신다면, 차라리 나의 영혼을 길게 찢어주세요. 내 육체에 반쪽의 영혼만 남게 해주세요. 그리고 내 육체마저도 길게 찢어주세요. 내 땅은 항상 지진으로 흔들리고 있어요. 나를 죽여주세요 어머니. 내가 당신을 죽이지 못했던만큼 나를 죽여주세요.
길거리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 것은 이제 신물이 난다. 내가 자유라는 것은 이미 수도 없이 증명했다. 굳이 증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완전히 자유였고 지금도 자유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는 나락 밑에서 혼자 웃고 깔깔대며 주먹을 휘둘렀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미친 개처럼 살았다.
미친 개.
언어는 불분명하다. 언어는 너무나도 불분명하고 불완전해서 내 영혼의 출구가 되지 못한다. 나는 항상 되다만 문장들을 끼적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들은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말이라는 것은 표현되지 못하니까. 언어를 연구하는 것은 유령을 연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유령을 연구하는 것은 미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미친 사람만이 유령과 관계를 가지니까.
어디로 가야하지?
나는 어둠 속을 헤매는 것에 지쳐서 그냥 어둠 속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새우처럼 구부리고 다리를 끌어안은 채 바닥에 누웠다. 내 눈에서는 가끔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내 눈물이 아닌 눈물이 내 눈에서 흘렀다. 나는 안된다고 되뇌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러나 무엇이? 나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안 될 뿐이다.
살려 줘. 아니야, 살리지 말아 줘. 아니, 넌 누구지? 넌 누구입니까? 너는 누구길래 내가 당신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입니까. 내가 무얼 요구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는 채로. 내 욕망은 길을 잃었다. 길이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냥 한 줄기의 불길이다. 왜 타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타기만 하는, 그런 불길이다. 사람들은 나한테 손을 뻗었다가 화상을 입고 물러난다. 내가 그들에게 손을 뻗어도 그들은 화상을 입고 물러난다. 나는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람을 원하고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다.
완결, 종언, 종말. 내가 꿈꾸는 것.
더 이상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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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장편소설 <모든 이름 있는 것들에 대한 그의 혐오>가 A4용지 87장, 200자 원고지 796.8장으로 초고가 완성되었다. 몇 달이 걸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퇴고를 해야한다. 그리고 퇴고가 끝나면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들에게 원고를 들고 가야겠다.
 여전히 반사회적인 내용에 비도덕적인 주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야기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것은 항상 모르는 일이었다. 내 친구가 말한 것처럼 나는 자기위로적인 글을 쓰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는지.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루 빨리 이 사회 밑바닥 진창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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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미쳤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행위를 해야만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 책을 펼쳐서 보여줬다. 나는 말하자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펼쳐진 책이다. 마치 도서관에 꽂혀있는, 손떼를 타서 표지가 반들반들해진 그런 책 말이다. 나는 내가 펼쳐진 책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미친 글귀들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로, 나는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내가 손을 대는 얼굴들은 전부 뭉개지고 윤곽이 사라져서 폭발해버린다. 내 손에는 열 자루의 칼날이 돋아있다. 내가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말로 할 것인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없애고 싶어했다. 혹은 내 손으로 그들의 생명의 마지막 편린을 맛보고 싶어했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내가 어디로 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웃는다. 내 얼굴에는 웃음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결국 나의 비참한 희열이 날 죽일 것이다.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고독하고 비참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스스로에게 인생은 유쾌하다고 계속 학습시켰다. 덕분에 나는 웃을 수는 있다. 내 머릿속에 상주하고 있던 끔찍한 기억들을 문 안에 넣고 닫아버리면 된다. 세상은 네온사인의 빛살만큼이나 화려하고 정신나가있으며 즐겁다고 나는 혼잣말을 뇌까렸다. 광기의 벽은 투명하다. 밖에서도 볼 수 있고, 안에서도 밖을 볼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절대 깨지지 않으며, 두껍고 절대적이다.
 나는 한 자루의 총을 상상한다. 그것은 하나의 허가다. 내가 무엇이든 부수고 파괴하고 죽일 수 있다는 허가 말이다. 내 총의 사정거리가 닿는 모든 것을 내가 죽일 수 있고 부술 수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내가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하겠는가? 나는 부서진 세계 이외의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스스로 말했다) 내 손으로 끝장을 내면 모든 것이 더 간단해질 것이다. 그것은 분명한 것이다. 날 떠나거나 내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수는 것이다. 한 가닥의 흉터만 깊게 남을 정도로 완전하게 부수는 것이다. 오래된 흉터들은 더는 아프지 않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보면서 산산히 조각난 과거를 떠올리고 웃을 수도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 세계는 모든 것을 망가트리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수고 상처입히고 죽이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해야한다. 나는 즐거워야한다. 나는 웃어야한다. 내가 부수고 죽이는 것을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불러야한다. 운명은 통제불능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망가지고 부서지고 죽고 사라진다. 나는 한가지 오락을 발견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이 사라지기 이전에 망가트리는 것이다. 시멘트가 갈라지기 전에 길거리에 불을 지르고 내 사랑하는 누군가가 늙기 전에 그를(그녀를) 죽이는 것이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 나는 절대로 우울하지 않다. 그저 약간의 혼란과 편집증세만 있을 뿐. 나는 우울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망쳐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속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퇴폐적이고 파괴적인 게임이다. 내게도 손이 달려있고, 자유의지가 있다. 만일 하늘 위에 있는 위대한 누군가가 내게 명령을 한다면, 그것은 나의 의지를 모조리 사용하여 세상의 혼돈을 가중하라는 명령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즐겁다. 굳이 명령을 듣지 않아도 나는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부술 것이다. 말하자면 규칙이나 윤리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현실에 떨어져서 혼란 속에서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그 어떤 관계보다도 진실한 유대가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유대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가위로 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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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투쟁

기록/생각 2013. 1. 13. 14:01 |
자주 파악하고 이해하라.
정신의 병에 걸려 타인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인간이라는 경계, 그 절벽 끝에서 환상과만 놀며 색채를 잃어간다.
현실이란 하나의 기회인저, 활력을 다하고 생명을 갈구하라.
의식은 꿈의 거품 같은 것이니 현실의 단단함 위에서 쉽게 스러진다.
경계하고 주의하라.
적의 창끝에 피가 묻지 않았다면 그대는 아직 진정한 실존자가 아니다.
그대의 흉기에도 피와 화약 냄새가 깃들게 하라.
전쟁이야말로 인간에의 찬가이며 오름길이다.

어떤 사람들의 내면에는 새의 영혼이 숨쉬고 있다.
육지를 모르고 날갯짓을 계속하는 바닷새의 창백하고 고고한 영혼이
그들 가슴 속에서 날뛰며 요동친다.
휴식은 정신에 대한 죄악이니 결백함을 따른다.
공기를 먹고 바닷물을 마시는 그들의 심장은 마치 전사의 것과 같다.
투쟁하는 영혼이야말로 고귀한 것이니,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을
유쾌해하라.
기뻐하며 절멸하라.
죽음조차 안중 밖인 그대의 눈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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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5

기록/생각 2012. 12. 5. 11:57 |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노래를 불렀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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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어렸을 적의 일이 거의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좋은 일인가? 물론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의 영혼에게는? 내 영혼은 가면 갈 수록 열망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 책상 밑의 어두운 공기. 긴장감과 증오로 단단하게 엉크러진 소리들. 나의 고독. 나의 공포. 원망의 뒷편에서 이상한 형태로 자라고 있는 소년. 모든 것이 점점 잊혀져간다. 이것은 망각이다. 나태와 일상성 속에서 나의 정신은 점점 둥글어지고 있다. 술과 담배와 약.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은 안식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불이 되는 것이었다. 강렬한 발화. 소진되는 생명. 날름거리며 탐욕스럽게 뻗어나가는 영혼. 상승. 불꽃의 정상. 아직도 내게는 가슴 속의 통증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망각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그렇다면 나에게도 아직 남은 것은 있다. 고통의 승화. 불을 당겨라. 내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살덩어리에 불을 붙여라. 내 혀는 아직도 가시가 돋혀있고 치명적이다. 내 혀뿌리는 심장까지 닿아있고, 그것은 비인간적이다. 내 혈관 속에서는 썩은 피가 흐른다. 너무나 검게 썩어서, 이것은 마치 석유와 같다. 부싯돌을 당기면 온몸으로 불길이 퍼져나가 나는 불타버릴 것이다.
 나는 어떤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내 일그러진 정신의 시발점이 되는 것.
 내 일그러진 정신. 아, 구역질이 난다. 나는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 내가 그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말이다. 내 몸은 예정보다 일찍 죽어간다. 누군가의 고의에 의해서. 나는 어머니의 고통과 아버지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살덩어리로 태어났다. 나는 누구냐? 나는 날 때부터 패륜아. 나는 구르는 살점. 기회의 집합체. 나는 얼마든지 더 타락할 수 있다. 나는 계속해서 구토한다. 내장을 전부 끄집어내버릴 것처럼, 환자처럼 토하고 눈물 흘린다. 내 조상들은 아마도 내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리라. 탐식. 탐식. 탐식. 공허.
 이곳에서는 생각보다 별이 많이 보인다. 귀뚜라미들은 나무에 다리를 붙이고 가을을 노래한다. 달은 반쪽이고, 나 역시 반쪽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심장이 반쪽이다. 잘려나간 단면이 피를 뿜는 것이 느껴진다. 울컥거리며 솟아오르는 혈액. 아물지 않는 상처. 나는 내일이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내일 나의 더러운 이부자리에서 썩은 주검으로 발견된들 무슨 놀라운 일이랴?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나 자신에게 더욱 고통을 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고행하는 수도승의 모습으로 타락하는 것. 내가 선택한 길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점점 더 추한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즐거울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성인들은 내게 오히려 정반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아, 사랑하는 선생님이시여.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젊고 사악합니다. 내가 손을 대는 것은 모두 엉망이 되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타락해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부술 수 없는 것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만큼 이미 타락한 것을 낳고자 합니다. 만약 운이 좋다면, 거기에서도 위대함은 피어나겠지요. 새빨간 꽃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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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기록/생각 2012. 9. 24. 07:54 |
 최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시간은 여전히 쏟아져흐르는 강물처럼 목적도 없이 나를 지나쳐가고 있다. 생명은 의미를 찾아야한다. 생명은 아무 색깔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그 기대에 기대를 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참으로 그렇다. 우리들 눈을 뜬 인격들에게는 기회가 수도 없이 많다. 나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태어난지 하루도 안 되어 굶어죽어가고 있는 어떤 아기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 헛된 생명에게도 탄생은 축복일진저.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고통과 빈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만사가 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썩어가고 있다. 그러나 만사가 다 잘 되어가고 있다. 내가 부패하고 있을 지언정, 실제로는 그러하다. 어떤 남자는 내게 세계의 끝이 이제 거의 다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루하루 직장과 교회에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영생을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구원받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그에게는 있었다. 나는 아무 표정도 없는 눈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피안 너머에 있는 세계에 희망을 거는 일은 하지 못한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단순한 성질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최근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글을 쓸 때에만 내가 의미있는 존재라고ㅡ그것도 어떤 주관에 의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ㅡ 감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것이 너무 오래된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최소한 요 한달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간을 보내왔다. 가치도 없었고, 생산성도 없었다. 그저 그랬다. 나는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나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위대함을 찾고 아름다움을 탐하고 삶을 씹어삼킨다. 그러나 나의 나태가. 나태가. 나태가. 아, 그러나 이 나태는 나의 내면에서 나온 것이 분명한가? 잘 모르겠다. 외부에서 온 나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불을 꺼라. 불을 꺼. 어둠이 우물에서 샘솟는 물처럼 차오르게 해라.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 이외의 많은 것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치를 부리지는 않는다. 나는 추상의 인격이오. 편집증에 걸린 유령이오. 내일이 오리라. 내일의 나는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내 머릿속 한구석에서, 밝고 화창한 환상들이 빛으로 만들어진 벌레처럼 뛰논다. 나는 그 환상을 감상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스스로 위대해지기 위한 의지를 되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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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기록/생각 2012. 9. 4. 03:04 |
 내가 오랫동안 썩고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썩은 오물덩어리가 되어서 눈을 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동굴에는 빛이 들지 않았고 말동무라고는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눈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 나를 바라보면서 내가 정말로 썩고 있는지, 혹여라도 헛된 희망을 품지는 않는지 감시하곤 했다. 나는 그와 마주보면서 내 육체와 더불어 정신까지 썩은 흙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썩었다. 정말로 오랫동안 썩고 있었다. 어느 날 동굴의 입구가 오렌지 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울음을 터트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 모든 것이 부랑자의 거적처럼 닳고 부드러워져서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옳지. 나는 울 수가 없어서 가끔 웃었다. 나는 널부러진 쓰레기더미 같았다. 그때 나는 완전히 포기했던 것 같다. 그가 말했다: 너는 포기할 것조차도 없다! 하지만 내게도 의식은 남아있었다. 흑연가루를 잔뜩 묻혀놓은 수정 같은 의식이……. 그런데 이제부터 나는 인간애(人間愛)에 대한 이야기를 하련다. 거의 사 년 동안 나는 썩어갔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내 입꼬리에서는 정기적으로 신음소리가 흘렀는데 그것은 신성모독적이었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처참하도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드디어 다 썩어서 부스러져버렸을 때, 내 알맹이가 썩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썩은 육신과 정신의 잿더미 속에서 햇빛을 만나 반짝반짝 빛날 순간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오, 그때 내가 느낀 그 감격이라니! 내 알맹이는 그 오랜 시간을 견디면서 빛을 기다려온 것이었다. 오직 빛나는 것만으로 위하여! 순간이라도 좋다. 나는 천장에 들러붙은 그 커다란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동공이 퇴색하여 아무런 색깔도 없었다. 나는 이미 부패하여 조각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리는 손으로 내 알맹이를 집어들었다. 그것은 깨끗했고…… 그 어떤 과거에도 없던 것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의 전조 같은 것이었다. 나는 죄 썩은 내 몸을 긁어모아서 모양을 만들고 근육을 뭉쳐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내 알맹이를 들고 동굴 입구를 향해 기어나갔다. 바깥에서는 햇살이 폭우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높았고 태양은 불타는 다이아몬드 같았다. 나는 짜라투스트라가 은둔하던 곳이 어딘지를 알아차렸고, 내가 굳이 저 아래로 내려갈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 알맹이가 빛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귀중하게 나의 알맹이를 감싸 안고 날카롭고 투명한 공기가 흐르는 지상에서 비틀비틀 두 다리를 딛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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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증오와 절망은 고통으로 환원되었다. 정신적인 것은 육체적인 것에 귀속되어있고 얼마든지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그 부피와 양만은 유지하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나의 터질 것 같은 <중심>은 세계의 모든 병폐를 닥치는대로 집어삼키고 붙들어 매었다. 사실 개인이 말할 수 있는 세계란 즉 그 개인의 세계 뿐이다. 외계와 연결되어있는 그 접점과 내면의 아노미 뿐이다. 내 정신은 어떻게든 땅 위에 서있다. 두 발로 바닥을 딛고. 그것은 생리적인 희생에 의한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늘 자해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제이기 때문이다. 세계와 연결되어있는 상태 자체가 나의 신경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 파멸적 에너지로 말미암아 산출되는 수많은 것들이 내게 위안을 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병질의 덩어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이 복잡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뇌를 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완전한 파괴고 종말이다. 그것은 유아적인 욕망이면서도 사실은 가장 명확한 답이다. 파괴. 탄생의 가능성마저 일절 남기지 않는 완벽한 파괴. 그것이 모든 <의식하는 것들>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파멸에 대한 갈망이 있는가 하면 계속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 또한 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의 심장 깊숙한 곳에서 혈액과 근육에 뒤섞여 박혀있다. <살기에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에는 너무 젊다.> 그리고 실상 <완전함>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간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흉터 투성이로 박동하는 심장. 탄환과 탄약. 단 한 발의 충동. 그 정도 뿐이다. 그래서 삶을 <당하는> 사람들은 뛰는 피로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구조의 해체를 계속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찾아 헤맨다. 목적이 없는 것이 바로 목적인 것이다. 내버려진 존재인 우리들은 <내버려져 있는> 존재성을 더욱 과시하면서 정신적 표류자의 모습을 제시하려 한다. 모든 병폐와 통증을 껴안은 채로 그저 뛰어드는 것이다. 필연이 우리를 부수러 올 때까지. 우리는 가치라는 것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영원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절대>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치고 침을 뱉는다. 실재하는 것은 고통 뿐이다. 고통! 내 온 존재를 꿰뚫는 고통. 그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고, 개인의 세계를 실재하는 세계로 감각하게 해주는 주된 근거다. 그것은 증오라는 중요한 감정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존재에 대한 증오. 생명에 대한 증오. 구조에 대한 증오. 체제에 대한 증오. 인식에 대한 증오. 세계를 구성하는 의지들에 대한 증오. 증오는 <적>을 발견하게 만든다. 적을 발견하고 증오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의 존재성은 한층 더 의식적으로 정립되어간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은 집단의 불완전한 의식이 만들어낸 체계를 거부하고 자기자신만의 양심-혹은 취향-을 건립하게 되는 것이다. 독자적인 정신의 출범이다. 유일하게 되는 것.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관습과 체제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완전히 해체시키고 나면 남는 것이라고는 생물학적인 본능 밖에 없다. 그만큼이나 인간의 신념이나 가치관이란 허황되고 무근한 것인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존재의 고통을 느끼며, 세계의 내외에 산재하고 있는 병질과 날것 그대로 마주치고, 절대적인 죽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독히도 비인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우리의 새로운 의식은 세계를 다시 한 번 파악해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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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단일 개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개인주의조차도 집단 속에서만 발현 가능한 것이다. 그것이 인격이든 아니든 개인은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는 룰이 있다. 모두가 동일하다면 룰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모두 결핍되어 있다. 그것은 존재의 필연이다. '완성' 같은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결핍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갈망만이 실재한다. 관계란 그 갈망에 기인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게다가 누군가는 반드시 망가져있기 마련이다. 불량품이 있다. 결핍이 많을 수록 갈구는 강해지지만 평균 이상으로 부품이 결핍된 기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어떤 기준이 있다. 절대다수에 의한 룰이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놀이상대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갈망하는 마음들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게임판 위에 오른다. 그러나 불량품들이 있다...... 흉내를 내면 낼 수록 그것은 결국 흉내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 서로의 맨 얼굴을 보고서도 손을 잡을 수 없다. 의식하지 않고 룰을 지킬 수 있는 적응자들은 아름답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간단히 부서져버리는 얇고 약한 것. 누가 고독을 말했는가? 나는 뇌가 굳었다. 행복한만큼 의식을 버려야하는 것이다. 쾌락도 환희도, 규칙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짐승처럼 쫓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우리들의 심장은 반쪼가리다. 이상할 정도의 고독감. 나는 생각했다. 너무나도 외로워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부적응의 증명이라고. 내면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내면이? 정확히는 고유성의 알맹이가 말이다. 결국 아무와도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탐하고, 욕망하고 갈구하고 체온을 먹어치우고 싶어서 눈이 벌게져있다. 타인의 마음을 집어삼키고 싶어서. 그러나 무용한 짓이다. 무용한 짓!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정장을 입고 세련된 가면을 쓴 채로 거리로 걸어나가면 그들과 악수를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부서져버린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만큼이나 그렇다. 의사 선생님, 당신이 내민 약이 내게 평화를 주었습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인격이란 의식하지 않는 인격이다. 짐승. 짐승이 되면 모든 것이 더 간단하다. 사랑과 포식이 동일한 것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나 나는 악인이 아니다. 도덕률...... 그러나 나는 악인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사회적 구조가 약할 뿐이다. 얼마나 파멸에 가까운지, 혹은 멀리 있는지. 그정도 차이에 의해서 좌우될 뿐이다. 행동이란, 얼만큼 상처주느냐 상처입느냐.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은?
미치지 않은 사람의 웃는 모습은 싫다.
룰에 의해 통제되는 감정들은 하나 같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그들의 고약한 관계만큼이나.
나는 원초의 것을 보고 싶다.
나는 하얀 빛이 보고 싶다. 더러워진 것은 전부 불타 사라졌으면 한다.
더럽다는 것은 본연에 충실하지 못한 가공된 태도들을 말한다.
가식과 위선에 대한 나의 결벽증. 나의 결벽증.
나의 젊음. 나의 대외적인 혐오와 대내적인 혐오.
우리는 흉기를 든 형제들이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을 산산히 부수고 싶어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의 자궁에서 태어난 괴상한 것.
자포자기의 감정도 있을 수 있다. 그저 짐승이 되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아름답고 역겹고 또 아름답고 적의로 넘치고 또한 아름답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항상 사랑해왔다.
사랑하는 것이 붕괴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을 처참하게 찢어놓으려고 했다.
그리고 내 마음에 가득한 증오, 내 갈증, 갈망.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불 같은 증오.
자신이 미쳤다고 믿고 있는 가엾은 환자들을 눈앞에 둘적마다 느끼는 구토감.
비명과 괴성. 파괴에 대한 향수.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 그러나 내가 아는 얼굴들은 얼마나 아름답지 못했던가?
<그 무엇도 태어나서는 안돼.> 영원에 놀아나는 것은 싫다. 나는 증발해버릴 것이다.
수백 번이나 내 머리를 쏘고. 그러나 밉다. 그저 예민할 뿐이었던 어린 나를 망가트린 사람들이.

 빛이 모든 것을 씻어내줬으면 좋겠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모든 오물들을 정화시켜줬으면 좋겠다. 내 손으로 불을 당길 수 있다면 좋겠다. 혐오해야할 적들은 불꽃에 타버리고, 증오해야할 적들은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다. 강렬한 것. 열렬한 것. 안팎으로 산발하는 감정. 표현되지 않는 문장. 나의 증오만큼이나 세계에 대한 애정도 내 가슴속에서 흘러넘치고 있음을 당신들이 확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손을 잡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정상의 흉내만 내다가 포기할 것이다. 나는 그저 아름다움을 쫓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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