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자판을 두드리면서 뭔가를 써내려가고 있는데
내가 뭘 하는지는 정말로 모르겠어.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데 통달했지
시(詩)라는 이름으로 내 자질을 과시해댔어.
그런데 문장이 아름답다는 게 도대체 무슨 대수람.
단순히 예쁜 문장과 추한 문장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학의 잣대에 대해서 말이야.
나 자신에 대한 몰이해가 점점 깊은 구덩이처럼 되어가.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계속 깊어지기만 하는.
모든 미학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사실은 모든 것을 다 미학으로 덮어씌울 수 있어.
예를 들어 지나가는 노숙자를 넘어트리고
망치로 그의 머리를 계속 내리쳐 두개골을 깨트려도
그리고 깨진 두개골을 꺼내 계속 빻아 가루로 만들어도
경찰들에게 행위예술일 뿐이었다고 주장해도 돼.
뭐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널 정신병원에 처넣겠지만.
중요한건 행위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내면에 있는 미학적 감각에 의하여
그건 행위예술이 되는 거지. 경찰도 그걸 바꿀 순 없어.
정신병동 남자 간호사들도 마찬가지고.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더라.
미안, 방금 전에 신경안정제랑 항우울제를 잔뜩 먹었거든.
정신이 좀 몽롱해.
줄곧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나는 글만 쓰는 인간쓰레기야.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내게서 글 쓰는 능력만 제한다면
다른 내 모든 부분들은 그저 쓸모없는 똥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거지.
난 인성도 더럽고 도덕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어.
심지어는 생산적인 삶을 이어갈 원동력도 없어.
자기비하가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니까…….
차라리 글 쓰는 것보다 노숙자 머리통을 망치로 깨는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았을 걸.
딱히 노숙자 머리통만 깨진 않을 거야. 세상과
자본주의와 계급사회에 대한 무책임한 분노로
일단 보이는 대로 망치를 휘두르다가 사형당하겠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게 언제더라.
아무튼 나도 노력을 하기는 했어. 성경도 공부하고 쿠란도 읽고
불교경전도 잔뜩 읽었어. 읽고 연구하고 공부했어.
왜, 종교란 인간정신과 존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화잖아.
그래서 나도 그 인간정신이라는 걸 좀 공부해보려고 했는데
많은 객관적 사실들은 알게 되었지만
나한테는 별 도움이 안됐어.
예수님도 석가세존도 심지어 모하메드조차도.
어쩌면 절반정도는 내 잘못이지
애당초 기대도 안했거든.
그들의 인생은 탐구할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어.
그러니까…… 염병할,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요새 지구 곳곳에서 대형 지진이 일어나던데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게 어리둥절해있을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안 남았을 지도.
아, 그래도 글은 계속 쓸 거야.
그게 의미가 있든 없든, 사실은 글을 쓰는 게
항분열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는 것보다 효과가 좋거든.
세 시간 정도 열 내면서 작문에 집중한 뒤에는
한 30분 정도 평온한 기분이 들어. 약도 필요 없지.
내가 말하면서도 요점이 뭔지 모르겠다.
만약에 63빌딩이나 그에 준할만한 사회적 상징물을
온통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발라놓고 성냥불을 던진다면
글을 안 써도 될 텐데. 더 이상 창조가 필요 없는 시대잖아.
차라리 뭔가 부수는 게 더 생산적일지도 몰라.
파괴가 생산적인 것이라니,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되네.
근데 실제로 그래. 이미 모든 게 다 말이 안 돼.
모르겠다. 약용 모르핀 성분이 내 혈관을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게 느껴져서 더는 못 깨있겠어.
한 천 년 쯤 잠들었다가 황무지 한복판에서 깨어나면 좋을텐데.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