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분명 그녀가 마지막이었으리라. 내가 고독이라는 독액을 내 팔뚝의 굵은 동맥에 주사하고 있는 것은 영원히 이어질 일이다. 나는 어제 갑작스럽게-니코틴이 나의 정신을 맑게 했기 때문이리라- 신의 이름을 알아냈다. 나는 그 이름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밀스럽고 끔찍한 이름은 나의 노트에 아무도 모르게 적혀있다. 지난 반년간 단 한 번도 자해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 난 수도 없는 흉측한 흉터들은 아직도 가끔 피와 진물을 흘린다. 내 서랍에 잠들어있는 단도는 언제나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나는 그것을 쥐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손에 쥐지 않아도 그 날붙이는 밤새 서랍에서 기어나와 나의 심장에 흠집을 낸다.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쉬웠었지.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믿지 않아도 되었었지. 나는 어둠 속에서 난동을 부린다. 내가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파멸적인 믿음에 빠져서. 그때 나는 태초의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간 쌓여온 벽이 Pink의 결말처럼 가차없이 부서졌었다. 그러나 운명은 항상 비극이다. 나는 비명지르면서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와 마주친 것만으로 부서졌던 드높은 벽은, 내가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칠때마다 보다 높고, 보다 두껍고, 보다 단단한 형태로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이제 나는 수십 겹의 장갑을 낀 손으로만 인간을 만진다. 감히 말하건데, 그녀 앞에서 나는 어린애였노라. 수십 년의 절망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 앞에서 그러한 상처들은 차라리 축복으로 보였었다! 그래, 모든 운명은 파멸을 종용한다. 그녀와의 만남조차도 내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위한 무대장치였던 것이다. 이제 태양의 빛은 더욱 작게 보인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슴에 나는 나의 길다랗고 신성모독적인 손톱을 박아넣고 싶다. 그리고 온갖 환상들이 외쳐대는 환희에 대하여-나는 그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저주, 저주, 저주한다. 아주 조금 어른이 되었을 뿐인데도 세계는 전보다 더 두터운 갑옷을 차려입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밤하늘에서 어둠을 뜯어내어 내 옷을 해입었다. 내 마음 속에서 날뛰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열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얼음처럼 차갑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증오와, 자신의 손목에 박아넣기 전에 망설임과 공포 때문에 떨리는 단도 뿐이다. 나의 야망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모든 이들의 파멸이다. 나는 빌딩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불타 죽는 것을 보고 싶다. 더 이상 신이 재앙을 내리지 않는 세계에서 망치와 칼을 들어야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지어다. 어쩌면 나는 계시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길고 끈질기게 나의 영혼을 점령해온 계시를 말이다. 그들이 믿는 규율의 붕괴 속에서 나는 최고의 환희를 맛볼 것이다. 어떠한 윤리도 도덕도 없는 세계에서 나는 인간이 절대로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새로운 법칙에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나는 내 손톱이 갈퀴였고 내 송곳니가 나이프와 같았던 그 과거를-그 무구한 과거를 기억해내려고 한다. 나는 아직도 고독이라는 고통에 몸을 떨지만 그것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부정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받는 것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나는 고통을 나눠주는 것으로 존재한다. 언젠가 내 어깨에는 날개가 솟겠지. 해골로 된 왕이여, 그대는 틀림없이 웃고 있을 것이다. 하늘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순간에야말로 인생이 정신 속에서 꽃을 피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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