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기록/생각 2019. 7. 27. 06:38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물론이죠. 울지 않는 매미는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매미는 없지요. 빗물이 뚝뚝 듣는 한여름의 새벽에,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비非생존자라고. 생존자들의 특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살입니다. 생존하는 것들만이 자살할 수 있지요. 그들에게는 사고와, 비관과, 회의와, 합리적인 절망이 허락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빠르고 간단하게 죽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특권이죠.
세 시간 전부터 여기에 앉아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하늘이 붕 뜬 가래 같은 색깔에서 남청색으로 변하고 있어요. 태양이 뜨기 시작하면 제 피부 색깔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나는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이 황인종의 마른 피부는 아무리 봐도 거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직관되는 거예요. 만약 뾰족한 바늘의 개념을 가져다대면 육신 전체가 미약한 소음과 함께 펑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환각과도 같은 믿음이 날 지배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고대의 사망자이기 때문에 바늘의 개념idea 같은 것은 가져올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황야 위에 떠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타르거품입니다.
거품에게 즉각적인 자살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사고하는 것도 비관하는 것도 회의하는 것도 절망하는 것도 순차적이지 않고, 논리가 없으며, 한 덩어리로 사악하게 뒤섞인 혼란 그 자체입니다. 생존자가 되는 조건을 말씀드렸던가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믿음이든, 단 하나의 믿음이라도 있기만 하다면, 예를 들어 신념 같은, 삶의 조건에 대해 신뢰하고 있는 단 하나의 끄트머리라도 있다면, 인간은 충분히 생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녹슨 톱니바퀴라고 할지언정 계속 작동합니다. 생명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자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 연결된 다른 톱니바퀴, 나사, 볼트 따위에 의미를 부여할 때 그 톱니바퀴의 극단적인 자기파괴 또한 찬란한 절망과 함께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절망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이고, 생명에의 믿음이 없으면 의미 따위는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 시간 째 여기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있는 바, 비非생존자들에게도 자살의 방편 정도는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재떨이에 떨어진 담뱃재들이 자신을 흐트러트리고 파괴할 바람을 기다리는 것과 동일한 방편입니다. 아주 길고 느리며, 끔찍이도 수동적이고, 죽음에 대한 기대조차 하지 않는 자살, 그것입니다. 앙드레 지드는 일찍이 <흡족한 마음으로 더 바랄 것 없이 완전하게 절망하여 죽기를 희망한다>고 나타나엘에게 말했습니다. 이 어찌나 아름다운 문장인지요.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에 우리는 손을 뻗을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피는 소리를 지른다>고 썼던 H. 노바크 시절에는 이렇게 죽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태양에 반항하여 리볼버를 발사할 수 있었던 때라면, 아아, 그러나 지금은.
껍질 안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 껍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심연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는 니체의 말은 철학자의 고상하고 멋 부린 한 구절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언이고 저주였습니다. 심연은 다름 아닌 이 꿈같은 현실에 수도 없이 깔려있고, 인간본성은 그것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합니다. 그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심연이라는 것의 진실을 말입니다. 짐승들은 피할 것입니다. 짐승들은 공포의 본질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도망쳐버리지요. 인간은 이상해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마치 자멸로의 행로가 미리 설계된 프로그램 같습니다. 감히 말하건데 인간은 생물실격입니다.
그렇습니다. 심연의 진실은 굉장히 입체적입니다만, 제 본성에 맞는 면을 발견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아마 지금쯤 당신은 저를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 정도로 착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심연 속의 진실의 한 면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허무나 개개인의 실존조차 압도하는 엄청난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서로 모순되고 공격하는 악의들이 혼재된 괴상망측한 의미들의 덩어리였고, 집합이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지평이었으며, 또한 영원히 서로를 반사하는 마주본 거울이었습니다. 그것은 꿈도 아니었고 현실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꿈이나 현실이 아닌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실재하는 허구였습니다. 우주만물의 평등한 무가치를 가리키는 그것은, 혼돈이었습니다.
이로써 저의 두서없고 횡설수설하는 이야기를 당신께서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제가 자신을 비非생존자라는 생소한 단어로 설명했는지, 왜 입을 떼자마자 자살 운운하더니 능동적으로 자살할 수 있는 이들에게 질투했는지 따위를 말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앞뒤가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비단 저 자신뿐만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이것을 계속 피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