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뜰의 남자
                                                         -바틀비를 바라보던 또 하나


 이 짧은 기록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밝혀두고 싶은 것은, 법원에서 검사와 판사가 뭐라고 했든 나는 결코 사악한 동기에 의해 행동한 흉악범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성자나 현자, 정의 집행자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나는 지극히 일반적이며 이성적인 사고로 움직이는 시민이자, 나름대로의 지성을 갖춘 교육된 현대인이다.
 그러나 실상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툼즈 구치소 독방에 갇혀있다. 위에서 굳이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은,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가 변별력과 객관성이 결여된 광인의 일기 따위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에게 이해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작은 독방에서 창살문을 등지고 서, 단 하나뿐인 창―네모나고 작으며 창살이 끼워져 있을 뿐이기에 바람조차 막을 수 없는―을 내다보면 구치소의 안뜰이 보인다. 지난 3년간 나는 안뜰에서 사람의 모습은 고사하고 살아 움직이는 짐승조차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몇 주 전부터, 나는 안뜰에서 두 명의 인물을 매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깡마르고 키가 큰 남자였다. 아침마다 해가 뜨면 그는 안뜰로 나와, 5분 정도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붉은 벽돌로 세운 구치소 담장을 향하더니, 해가 질 때까지 미동도 없이 그저 서 있거나, 앉아있을 뿐이었다. 내 독방의 창을 통해서는 남자의 정면을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도대체 뭘 보고 있는지는 전혀 추측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이며 터무니없이 정적인 일과를 한동안 지켜본 내 감상은 이러했다. 망할, 이 미치광이 같은 나라의 폭군이자 사형집행자인 사법부가 마침내 정신과 영혼에 병이 난 사람들까지 잡아서 구치소에 처넣기 시작했구나. 뉴욕을 불사르고 북미의 모든 거짓말을 산산조각 낼 행동가는 여기 독방에서 썩고 있는데 말이지. 희망이라는 이름의 출구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나려는가.
 하지만 내 정당한 분노는 그렇다 치고, 남자는 그 괴이하며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일과를 밤낮으로 반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마다 안뜰에 모습을 보였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인물로, 정육점에 걸린 커다란 고깃덩어리에 앞치마를 입히고 사람 얼굴을 붙여놓은 것 같은 거친 인상의 사내였다. 나는 죄수들이 그를 ‘사식업자’라고 부르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식사 시간마다 그들은 잠시 만났다가, 사식업자 쪽이 안뜰에서 사라지곤 했는데, 여느 때처럼 창문에 바짝 붙어 귀를 기울이던 어느 날 나는 그들이 평소보다 가까운 곳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이 준비되었습니다요, 나리.
 지금은 식사를 안 하고 싶습니다.
 아니, 나리는 도대체 언제쯤 식사를 하고 싶어질 예정이오?

 낮은 톤에 점잖지만, 억양이랄 것이 전혀 없어 차라리 유령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 키 크고 깡마른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식업자는 불만스러운 듯 씩씩거리면서 커다란 몸동작으로 안뜰에서 퇴장했다. 유령 같은 남자는 반응도 없이 담장으로 천천히 걸어가, 평소처럼 완벽하게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짧은 대화를 엿들었을 뿐이나, 나는 그 유령 같은 남자를 향해 강렬한 동지애가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동료다, 그는 반항하는 사람이로구나! 그는 부정하는 자다! 그는 거룩한 진실로 거짓을 깨부수는 자다! 그렇지, 그러니 저 자가 음식을 먹을 리가 없지. 특히나 이런 시대의 이런 나라에서라면 말이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과 기만에게 패배당하는 것이니 말이야!
 감옥살이 때문에 오래간 잊고 지내던 혁명과 진리에의 갈망이, 내면에서 지옥 불처럼 타올랐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흥분한 채로 동료의 모습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나의 동료는 매일 안뜰에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만나지 않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정지한 채, 담장 어딘가를 바라본 채, 선 채, 앉은 채, 철저하게 반항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더더욱 전율했다. 그는 결코 먹지 않았다! 점점 더 말라가는 창백한 얼굴은 이제 거의 비인간조차 아닌, 비실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불태우고 부수고 무너트린 것들이, 처음부터 품고 있던 공허를 드러낼 때 마침내 마주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던가. 나는 스스로의 행운에 감사했다. 이곳에서 실로 나보다 높고 진실한 동료를 만난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내가 추구해온 모든 것이며, 단 하나의 진리일 수도 있었다. 신도 사람의 형상을 했으며 그 아들도 사람의 형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모든 거짓을 파괴하고 나타나는 것이 사람의 형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아침 저녁으로 복도를 거니는 간수가 나에게 말을 걸거나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 나의 스승인 그는 어느 저녁 차가운 돌 위에 머리를 뉘이고 웅크렸다. 나는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 가고, 안뜰이 보이지 않는 습기로 젖어갔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일도 안 하고 싶었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사식업자, 교도관, 그리고 처음 보는 신사 한 명이 나타났다. 태도를 보아하니 신사는 나의 친구와 가까운 사이인 듯싶었다. 그가 누워있던 친구의 눈에 손을 댔다. 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신음했다. 이 먼 곳에서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곧 그들이 나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안뜰에서 걸어나갔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오로지 실루엣만 판별할 수 있는, 구치소 담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높다란 담장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으며, 그냥 벽돌 무더기이기도 했고 성상(聖像) 같은 무지막지한 상징이기도 했다. 그것에 새벽빛이 비칠 때 비로소 나는 밤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등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파악하기 힘든 어조로 내게 말했다.

 당신 괜찮소?
 철창 너머에 있는 간수에게로 시선을 향하며, 의도치 않았던 질문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형은 언제쯤 집행됩니까?
 나는 그냥 간수요. 그런 것 까지는 모르는데.
 더 이상 기다릴 게 단 하나도 없게 되었군.

 나는 그들에게 종이와 펜을 요구했다. 그들은 곤란해했으나 이틀 뒤에 종이와 목탄을 제공해 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친구이자 스승에게서 배운 진실을 남길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도시에 불을 질렀다고 하는데, 전부 거짓말이다. 저지른 건 ‘의무[need]’라는 이름으로 전미에 출몰하는 유령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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