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무가 개폼 잡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다고
글/시 2025. 5. 11. 17:13 |시인의 의무가 개폼 잡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다고
형식이 내면에서 필요를 잃고
그 누구를 위하지도 못해
녹아버린 후
가끔 이런 말도 듣긴 했다
그렇게 시 잘 쓰던 사람이
왜 욕지거리 집어넣으면서 멋을 부려
아
옘병할,
생각하니까 또 욕 나오는데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담배 쥐고 나간 어젯밤의 어둠에는
늘어진 검은 실처럼 이상한
본 적 없는 선이
허공에
머리 위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었고
잘 보니
전봇대서 떼어온 전선, 옆 빌라
어느 가구에 끌어다 놓고
더 잘 보니
고정하겠다고 가스관에
타이 묶어놨던데
더 자세히 보면
그 연약한 가스관은
삼 년 전 태풍으로 떨어진 간판에 직격
당해
삼 년째 방치된
그 가스관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웃음과 청량한
욕지거리도 터져 나와
아, 염병, 살겠다고 아주
지랄들을
하며 웃고, 그 앞에서
담뱃불 붙이고.
전혀 거리낄 것도
위조할 것도
꾸밀 것도
멋 부리고 개폼 잡을 일도 없는
자연하고 티 없는
웃음에 쌍욕에
가로등도 깜빡이는 창동의 밤에
연기보다 불분명한 군청색 하늘에
전기고 돈이고 삶이고 시간이고 떼갈 건 모조리 떼가야 했던 만사천여 명의 주민들이
안락하고 싶어
잠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
씨발새끼야, 하고,
주택가 그림자 너머 저편
불 밝은 24시간 편의점에서
청명한 쌍소리 들려오니
또 웬 놈이 술 처먹고
또 아침이면 잊어버릴 싸움을
싸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