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무가 개폼 잡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다고


 형식이 내면에서 필요를 잃고
 그 누구를 위하지도 못해
 녹아버린 후
 가끔 이런 말도 듣긴 했다
 그렇게 시 잘 쓰던 사람이
 왜 욕지거리 집어넣으면서 멋을 부려

 아
 옘병할,
 생각하니까 또 욕 나오는데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담배 쥐고 나간 어젯밤의 어둠에는
 늘어진 검은 실처럼 이상한
 본 적 없는 선이
 허공에
 머리 위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었고

 잘 보니
 전봇대서 떼어온 전선, 옆 빌라
 어느 가구에 끌어다 놓고
 더 잘 보니
 고정하겠다고 가스관에
 타이 묶어놨던데
 더 자세히 보면

 그 연약한 가스관은
 삼 년 전 태풍으로 떨어진 간판에 직격
 당해
 삼 년째 방치된
 그 가스관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웃음과 청량한
 욕지거리도 터져 나와
 아, 염병, 살겠다고 아주
 지랄들을
 하며 웃고, 그 앞에서
 담뱃불 붙이고.

 전혀 거리낄 것도
 위조할 것도
 꾸밀 것도
 멋 부리고 개폼 잡을 일도 없는
 자연하고 티 없는
 웃음에 쌍욕에
 가로등도 깜빡이는 창동의 밤에
 연기보다 불분명한 군청색 하늘에

 전기고 돈이고 삶이고 시간이고 떼갈 건 모조리 떼가야 했던 만사천여 명의 주민들이
 안락하고 싶어
 잠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

 씨발새끼야, 하고,
 주택가 그림자 너머 저편
 불 밝은 24시간 편의점에서
 청명한 쌍소리 들려오니
 또 웬 놈이 술 처먹고
 또 아침이면 잊어버릴 싸움을
 싸우나 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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