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해당되는 글 360건

  1. 2024.04.21 (2023/01/28)쥐구멍 1
  2. 2024.04.21 (2023/01/12)나는 이불을 개었다 1
  3. 2024.03.27 나는 탄식한다, 고 탄식하는 놈이 세상천지에 있기나 하냐 1
  4. 2024.03.24 어떤 것들은 제자리에 있을 줄을 몰라서 1
  5. 2024.03.19 아등바등 악에 받쳐가지고
  6. 2024.02.07 호프집에서 1
  7. 2023.04.03 일요일 1
  8. 2023.03.30 어느 맑은 날에
  9. 2023.03.15 줄담배
  10. 2023.03.12 사상가들에게 1
  11. 2022.11.29 소문에 의하면 그는
  12. 2022.11.23 우리 모두가 지옥으로 간다 1
  13. 2022.11.10 의정부시 평화로
  14. 2022.10.27 시월의 어느 1
  15. 2022.04.14 사월
  16. 2022.02.19 학력 유감
  17. 2022.02.19 아레시보 메시지
  18. 2022.02.10 여행(초안)
  19. 2022.01.27 녹색 눈물
  20. 2021.12.23 남은 해
  21. 2021.11.18 매일 죽는 사람
  22. 2021.10.22 책과 담배
  23. 2021.10.15 역전에서
  24. 2021.09.17 일몰
  25. 2021.09.09 길 위의 피
  26. 2021.08.18 (엽편)구멍
  27. 2021.07.30 부취(腐臭)
  28. 2021.07.15 시인의 피
  29. 2021.07.08 복도의 눈
  30. 2021.04.08 봄날 1

(2023/01/28)쥐구멍

글/소설 2024. 4. 21. 22:54 |

(2023/01/28)
쥐구멍


 5월 9일, 월요일, 오후 6시
 오후 2시가 조금 지나 깨어났다. 뱃속에 커다란 동굴이 뚫린 것 같은 굶주림에 잠에서 깼다. 위장에서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입 주변에는 거품이 잔뜩 말라붙어있었다. 허기와 목마름 때문에 역으로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그대로 거실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속을 게워내자, 식도가 타들어가는 것 같아 구토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거실에서 끔찍한 소리를 내며 거의 투명에 가까운 위액을 뱉어냈다. 구토가 멈출 즈음이면 또 식도의 통증과 이물감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눈물로 젖은 얼굴을 들었다. 잠들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닥과 벽의 경계에 뚫린 자그마한 구멍이었다. 딱 보기에 다 자란 생쥐 한 마리가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의식이 물에 잠긴 것처럼 혼탁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인 구멍이 맥락도 없이 머리를 꽉 채웠다. 어린아이들이 처음 보는 장난감을 쥐어보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어둠 속으로 쑥 들어갔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깎여나간 듯 까슬까슬한 구멍의 벽면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벽에 뚫린 쥐구멍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마침내 나는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탁상 위의 전자시계를 확인하고 날짜를 계산해보았다. 나는 사흘 동안 잠들어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다시 뱃속에서 맹렬한 허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사흘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들어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쩐지 내 것 같지 않은 사지를 억지로 움직여 냉장고까지 기어갔다. 우유, 햄 통조림, 식빵, 달걀부터 냉동 밥까지 닥치는 대로 입안에 욱여넣었다. 한참을 아귀처럼 먹어댄 뒤에야 조금 안정이 되는 듯했으나, 다시 구역질이 올라왔다. 두 번 정도 게워내고 또 먹어치우는 짓을 반복했다. 그리고서 드디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은 좀 누워야겠다.

 같은 5월 9일, 월요일, 밤 11시
 한참을 매트리스 위에 누워 정신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머릿속의 혼란스럽던 생각들이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거실 탁상으로 가 수첩을 뒤졌다. 잠에서 깨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쓴 것은 5월 6일의 기록이었다. 대단한 것은 없었다. 주된 내용은 내가 어떤 약을 몇 그램이나 삼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수첩에 적힌 수 많은 화학성분들의 이름을 가만히 읽어내려갔다. 그날 내가 삼킨 약은 트리아졸람 0.25mg 정제 스물한 정과 수십 알이나 되는 리튬, 쿠에티아핀푸르마산염 등이었다. 그밖에, 문장에서 나타나는 산만한 정신상태와 사후세계에 대한 강한 부정 따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앙드레 지드가 삶을 긍정하기 위해 썼던 글까지 인용하며, 난삽한 문장으로 내 ‘삶이 약을 삼키고 잠드는 순간 완전히 끝나’버릴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그날 저녁 내가 약물의 성분과 용량에 대해 수첩에 써놓았던 것은 기억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은 부분은 기억에 없다. 아무래도 약 기운 때문에 몽롱할 때 쓴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었으나 특별히 유감스럽지도 않다. 며칠이나 잠들어있다가 깨어났기 때문인지, 심한 피로감과 두통 때문에 마냥 눕고만 싶다.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려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다. 좀 더 쉬고 나면 내가 처한 상황을 보다 감정적으로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실에 게워놓은 오물을 치워야겠으나 도무지 몸에 힘이 없다. 한숨 자고 난 뒤에 치운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벽의 구멍은 난데없이 어쩌다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잠들어있던 사흘 사이에 쥐라도 들락거리게 된 것일까.

 5월 10일, 화요일, 밤
 두통과 피로감이 가시질 않는다. 밤에 잠을 자기는 했지만, 내내 혼란스러운 꿈만 꿔서 전혀 개운하지 않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거실을 청소했다. 청소라고는 해도 휴지로 바닥을 닦아냈을 뿐이다. 오물을 닦은 휴지를 처리하기가 귀찮아 벽에 난 쥐구멍에 전부 쑤셔 넣어버렸다. 집안의 쓰레기통들은 진즉에 가득 찼다. 지난 삼 개월간 단 한 번도 집 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도 없었다. 만약 내게 거리로, 아니, 현관 앞의 쓰레기장까지만이라도 나갈 용기가 있었더라면 굳이 남아있던 약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깥세상에는 보다 확실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실 때문에 나는 밖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열해보자면, 건물 밑을 지날 때는 옥상에서 벽돌이 떨어져 내릴 것 같다. 거리를 건널 때는 느닷없이 자동차가 돌진해올 것 같다. 그리고 길에서 지나치는 행인이 갑자기 칼을 쥐고 덤벼들 것 같다. 그런 공포가 늘 나의 발을 묶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전부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생을 이런 어처구니없는 공포에 시달려온 것은 아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중소 IT기업에서 2년을 일했다. 아니, 어엿한 직장인이라는 말은 취소해야겠다. 시쳇말로 나는 고문관이었다. PC용 웹사이트를 모바일 사양으로 변환하는 일을 2년이나 계속했으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적이 없다. 늘 기한에 늦거나 세세한 부분에서 오류를 냈다. 직장에서 나의 주 업무는 시말서를 쓰고 사죄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으려나, 땅이 꺼져버리지는 않으려나 하고 습관적으로 좌절하곤 했는데, 사실 이것이 나의 가장 한심한 성질이었다. 보다 나은 인간이 될 각오를 하기보다는 세상이 끝장나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니 5월 6일에도, 아니, 그만두자, 이제는 삼킬 약도 남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죽음이 찾아오는 몽상만 하며 살다 보니 상상은 어느새 망상이자 병이 되어버렸다. 어느 때고 죽음이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뿌리를 박자 이번에는 그것이 두려워진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기가 싸늘하고 하늘이 화창하던 11월 초순, 나는 출근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섰었다. 그런데 그 주택가의 골목 한가운데에서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골목을 걷는 사람들 모두가 내게 지독한 악의를 품고 있었다.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총칼로 무장한 적군들 앞에 맨몸으로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몸에 기력이 없으니 기분까지 우울해진 모양이다. 회사 대신 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 당시의 일은 어지간해서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지금같이 수첩에 온갖 일을 적고 있자면, 생각이 제멋대로 이어진다. 실상 오늘 한 일이라고는 거실을 닦은 휴지를 쥐구멍에 욱여넣은 뒤 해가 질 때까지 넋 놓고 앉아있던 것뿐이다. 모아뒀던 약을 전부 삼켜버렸으니, 이제는 자려고 해도 쉬이 잠들 수가 없다. 트리아졸람 없이 잠드는 방법을 몸이 잊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죽을 작정으로 먹었던 약은 치사량도 아니었던 모양이고, 이제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5월 11일, 수요일
 쓰레기통 하나를 비웠다. 밖에 나간 것은 아니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거실 탁상 옆에 널브러진 듯 누워있었다. 집안은 어스름했고 곳곳에 그늘이 져 있었다. 그림자 안쪽에 새까맣게 뚫려있는 쥐구멍은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 시간, 어쩌면 두 시간 동안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전날 욱여넣은 휴지 생각이 났다. 만약 구멍 안에 쥐가 살고 있다면, 내가 한 일 때문에 입구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쥐구멍까지 기어가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그런데 구멍은 막혀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쥐들이―정말 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 지저분한 휴지를 갉아먹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기묘한 흥미를 느꼈다. 거실 구석에 놓여있는 쓰레기통을 끌어와 안에 든 것들을 조금씩 꺼내, 쥐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어딘가에 걸리는 듯 잘 들어가지 않더니, 약간 힘을 주자 쓰레기는 구멍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나는 다소 멍한 상태로 쓰레기통의 내용물을 쥐구멍에 집어넣는 일을 반복했다. 어쩌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작은 입구 안쪽에 상당한 크기의 공간이라도 있지 않은 한, 쓰레기통의 내용물이 전부 들어갈 리가 없다. 그제야 나는 자살시도 이후 처음으로, 내가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느꼈다. 약을 삼킨 뒤 나는 생명을 잃었고, 영혼만이 이 거실에 붙잡힌 채 정체불명의 쥐구멍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구멍은 현실감이 없었다.
 텅 빈 쓰레기통을 확인하고 나서 다른 생각도 해보았다. 5월 6일에 삼켰던 약이 치사량은 아니었으나 뇌와 신경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기에는 충분한 용량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이미 죽었든 정신이 망가졌든, 증명할 방도가 없다. 손에 오물이 묻어 끈적거렸다. 나는 개수대에서 손을 닦고, 다시 쥐구멍 앞으로 돌아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휴지며 약봉지며 달걀 껍데기 따위를 잔뜩 집어삼킨 구멍은, 전보다 입구가 커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지금 겪고 있는 사태가 너무 이상스러웠다. 결국에는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어나는 일을 수첩에 적어놓기로만 했다. 창문 밖으로 아침 해가 뜨고 있다. 그리고 거실의 쓰레기통은 분명히 텅 비었다. 쥐구멍은 전보다 넓어진 것 같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처음 직장을 구했을 때 품었던 것과 비슷한 불안을 느낀다.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대한 근심과 불안이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가까운 친지 중 알코올중독자와 조현병 환자가 넷이나 된다는 사실이 늘 내 가슴 속에 불발탄처럼 묻혀있다.

 5월 12일, 목요일
 깜빡 잠들었나 보다. 깨어나니 집안이 환했다. 나는 거실 탁자 밑에 나동그라져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아래서 보니, 거실은 전날 생각했던 것만큼 기괴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새벽이라는 시간이 가진 특유의 불길함 때문에, 별 것 아닌 일을 유난스럽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보다 맑게 만들어야겠다. 걸레를 빨아 아직도 시큼한 냄새가 나는 거실을 청소했다. 찬장에서 라면을 꺼내 끓여 먹었다. 5월 9일에 깨어나 냉장고에 든 것을 손에 잡히는 대로 먹어치운 이후 처음으로 하는 식사였다.

 5월 13일, 금요일
 쥐구멍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더 이상 쥐구멍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넓이다. A4용지로 겨우 입구가 가려질 정도다. 이 정도 크기라면 건물 외벽까지 닿아도 이상하지 않은데, 지하로 쑥 꺼진 울퉁불퉁한 통로가 보일 뿐이다. 건물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회사에 다닐 때 입던 와이셔츠를 구멍에 구겨 넣고 달력을 뜯어내 입구를 막았다.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은 알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학생 때나 읽던 공포소설들이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러브크래프트나 스티븐 킹의 작품 따위 말이다. 그들의 소설은 대부분이 어딘가 왜곡된 현실에서 솟구쳐나오는, 실제로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주인공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스러운 이야기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이 쥐구멍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현실의 법칙을 따르는 것인지도 불분명해졌다.
 창문 밖은 어두컴컴하고 비가 내리고 있다. 어제 햇살이 밝았던 것이 거짓말 같다.

 5월 14일, 토요일
 이틀째 비가 멎지 않는다. 나는 하루 종일 탁상의자에 앉아 달력 낱장으로 막아놓은 쥐구멍과 창문을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다. 밖에서 울리는 빗소리가 마치 구멍 안쪽에 있는 무언가가 달력을 툭, 툭, 하고 건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삶이 끝나고 자유로워지리라는 기대로 일을 저질렀는데, 성공하지 못한 지금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편집증 환자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막힌 쥐구멍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구멍에서 빗물이라도 차올랐는지 달력의 아랫부분이 젖은 듯하다. 정체를 예측할 수 없는 무언가가 달력을 찢고 거실로 기어 나오리라는 생각이 잦아들지를 않는다.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마다 어깨가 들썩 솟을 만큼 놀라곤 한다.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다. 제때 밥을 챙겨 먹지도 않고, 아무래도 신경과민이 있는 것 같다. 종일 의자 위에 쭈그려 앉은 자세로 있으려니 온몸의 관절이며 근육이 아프다. 내내 긴장한 채로 쥐구멍을 향해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있으니, 머리통이 떨어질 것 같다. 그래, 차라리 이대로 머리가 목에서 뚝 떨어져버리면 좋을 텐데.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나와 아주 닮은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막내 삼촌은 아버지보다 열 살 어렸다. 큰아버지와 아버지, 삼촌 삼 형제 가운데 혼자만 성격이 유별난 편이었다. 사실 유별나다기보다는 이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그는 항상 직업도 없이 놀고 있었다. 큰아버지 댁에 있는 자신의 좁은 방에서 나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놈은 글러먹었어. 삼촌 이야기가 나오면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추석이었는지 설날이었는지, 큰댁에 명절을 쇠러 갔을 때의 일이다. 친척들로 바글거리는 집안에서 도망이라도 친 것인지 삼촌은 외출하고 없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을 것이다. 저녁이 되어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은 한참 화투를 치다가 판을 접은 뒤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루했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슬쩍 거실에서 나와 삼촌의 방인 뒷방으로 향했다.
 문은 잠겨있기는커녕 살짝 열려있었다. 그대로 밀자 습기 차고 담배 찌든 냄새가 퀴퀴한, 어둡고 좁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매트리스 위에 이불이 흩어져있고, 장롱 하나와 오래된 TV가 놓인 단출한 방이었다. 바닥 한구석에는 새것으로 보이는 일제 담배 세 갑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삼촌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그따위 것들이 아니었다. 매트리스의 반대쪽 벽면에야말로 삼촌의 정신이 그대로 투영되어있었다. 그곳에는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검은색, 청록색 등 온갖 색깔의 마커로 쓴 단어들이 벽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문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없었고, 각기 다른 색깔로 된 단어들뿐이었다. 그리고 어떤 단어들은 검은색 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붉은색 ‘사랑’과 노란색 ‘증오’가 연결되어 있었고, 청색 ‘보다’와 보라색 ‘기다리다’가 선으로 이어져 있는 식이었다.
 아마 삼촌은 하루 종일 그 좁은 방안에서, 매트리스에 앉아 자신이 만든 계산식―나는 그것이 계산식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치 직접 보기라도 한 듯 그런 장면이 머릿속에 선하다. 가끔 단어들을 추가하거나 수정하고, 새로운 공식을 발견하면 같은 개념끼리 선으로 묶곤 했겠지.
 나는 그때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삼촌이 나의 육친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솔직히, 나는 친인척 중 그다지 대화도 해본 적 없는 삼촌에게서 가장 큰 동질감을 느끼곤 했었기에 더욱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나는 자신이 삼촌처럼 미쳐버렸다는 것을 긍정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인가? 그러나 어찌 되었든 건강한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지 않고, 시계의 시침이 몇 바퀴씩 도는 동안 벽에 발라놓은 달력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스스로의 행위와 기억들을 수첩에 옮겨적을 정도의 제정신은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펜을 놀릴 때만은 빗소리인지 구멍에서 나는 소리인지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동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제정신을 유지한다고 해서 앞으로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5월 16일, 월요일
 내 방에 사람이 있다. ‘있는 것 같다’가 아니다. 그는 하나뿐인 방을 차지하고서 지금 잠들어있다. 그가 나타난 것은 바로 하루 전이다. 나는 탁상의자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오뚝이처럼 몸을 흔들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온 집안이 습하고 어두웠다. 마음속의 불길한 감정을 내쫓을 수가 없었다. 그때 작은 짐승 같은 것들이 거실 벽 속에서 내달리는 소리를 들었다. 환청이 아닌가 의심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침내 일이 벌어지겠구나, 싶어 오히려 침착해졌다. 의자 위에서 나는 달력으로 막아놓은 쥐구멍을 가만히 살피고 있었다. 달력은 이미 반쯤 젖어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곧 안쪽에서 무언가가 젖은 달력을 찢고 나왔다. 쥐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그것은 지저분하게 얼룩이 지고 곰팡이까지 슬기 시작한 흰색 와이셔츠였다.
 내가 어떻게 그리 침착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와이셔츠는 슬며시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깃발이라도 되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와이셔츠는 깡마르고 뼈가 불거진 손에 붙잡혀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커다란 쥐구멍에서 뼈와 가죽밖에 없는 나체의 남자가 달력을 찢으며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 비쩍 마른 남자는 서커스단의 곡예사처럼 온몸을 뒤틀며 어깨너비도 되지 않는 구멍으로부터 천천히 빠져나왔다. 몸이 전부 거실로 나오자 그는 탈진한 듯이 바닥에 풀썩 엎어져 버렸는데, 오른손은 여전히 지저분한 와이셔츠를 백기라도 되는 듯 흔들고 있었다.
 의자 위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홀린 듯이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거실 위에 나체로 늘어져 있는 그의 몸은 비참할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등은 갈비뼈와 척추가 전부 드러나 보였고, 하체 또한 둔부 없이 골반이 그대로 대퇴부에서 정강이로 이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도저히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여전히 와이셔츠를 좌우로, 곧 실이 끊겨 무너져내릴 꼭두각시 인형처럼 흔들고 있었다. 말이 통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그에게 단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에곤.
 마지막 숨을 쥐어 짜내는 듯한 한마디와 함께 마침내 그의 오른팔마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면서 와이셔츠를 쥐고 있던 오른손이 펼쳐졌는데, 그 손아귀에서 흰색 알약 이십여 정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쏟아졌다.
 나는 이 남자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여전히 나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경찰이나 구급대원을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상황을 설명하든 결국에 나는 집 밖으로 끌려나가고 말 것이다. 끝내 내가 한 일은 에곤이라는 남자를 거실에서 방까지 끌어다가 매트리스 위에 눕혀놓는 것이었다. 다시 깨어나기는 할지 의문이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처참할 정도로 마른 몸뚱이에 이불을 덮어주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에곤이 손에서 놓친 알약들을 들여다보았다. 본 적이 없는 약이었다. 쓸어모아서 비닐로 된 약봉지에 담아놓았다.
 그 뒤로 하루가 지나도록 에곤은 깨어나지 않고, 나는 찢어진 달력이 너덜거리며 붙어있는 구멍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이미 사람 하나가 그곳에서 기어 나왔다. 더 이상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5월 18일, 수요일
 에곤은 죽지 않았다. 그는 오늘 새벽에 잠에서 깼다. 거실에서 어두운 천장을 보며 누워있던 나는 그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뼈 위에 가죽만 입혀놓은 것 같은 나체의 남자가 비척거리며 거실에 나타나는 장면은 마치 산송장이 억지로 사지를 뒤틀어가며 걷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기괴했다. 나는 그에게, 옷장에 남는 옷이 있으니 꺼내 입으라고 했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되돌아갔다. 에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됐다. 너무나도 퀭하고 병색이 짙은 얼굴이었으나, 그의 눈동자 색과 생김새 따위로 보아 에곤은 외국인이 분명했다. 아마도 유럽계인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환각이나 망상일 수 있는데, 하나하나 따져보는 것도 실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곤이 가져온 약을 담아둔 봉투를 서랍에서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마른 몸에 비해 너무 큰 옷을 입은 그는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나는 냉장고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내가 남의 걱정이나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토록 심하게 마른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그는 사양도 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에곤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누구시라고요?
 에곤이요.
 어디서 왔습니까?
 툴른에서 왔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그야 구멍 밑이지요.
 내 말은… 알겠어요, 가족은 있으세요?
 모두 병으로 죽었습니다.
 저런.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는, 그게, 나도 잘 모르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내가 말문이 막혀있는 사이, 그는 빵과 우유를 아주 느리게, 그러나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해가 막 뜨기 시작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제야 나도 비구름이 걷히고 다시 하늘이 밝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곤은 나에게 종이와 연필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탁자 위에 있던 A4용지 다발과 볼펜을 내주었다. 연필은 없었다. 에곤은 군말 없이 물건을 받더니 창문으로 다가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나는 며칠 사이 일어난 일들 때문에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생각할 것은 많았지만 고민할 기력이 없었다. 창문 앞에 달라붙어 종이와 펜으로 무슨 일인가에 열중하고 있는 에곤은 그리 위험한 사람 같지는 않다. 방으로 가서 잠을 자야겠다.

 같은 5월 18일, 수요일
 저녁에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보니 탁자 위에는 펜화가 그려진 종이 수십 장이 쌓여있었다. 그림은 모두 똑같은 구도였다.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을 수십 번이나 반복해 그린 것들뿐이었다. 에곤은 아직도 창문 앞에서 새 종이에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지만, 어쩐지 새벽에 보았던 것보다 살이 조금 붙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자살시도 이후로 보름 정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남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내 두 팔을 보니 새삼 그것은 말라붙은 나무막대기처럼 보였다.
 아직도 거실에 휑하니 뚫려있는 쥐구멍 앞으로 다가갔다. 찢겨 너덜너덜한 달력을 전부 뜯어냈다. 구멍은 명백하게 전보다 더 커져 있었다. 그럴 마음만 든다면 별 무리 없이 구멍을 향해 투신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바가 있어 에곤을 불렀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추고 내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당신이 들고 온 약은 뭡니까?
 무슨 약이요?
 당신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것 말이에요.
 그건 바르비탈입니다.
 바르비탈?
 그러니까 일종의 백기 같은 거죠, 항복의 표시라든가….
 와이셔츠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여하간 말하자면 쥐구멍으로 들어갈 때 필요한 겁니다.
 왜 그걸 갖고 있었습니까?
 그 질문에 에곤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말을 고르는 듯 입술을 조금 달싹거리며,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그러나 중요한 것을 설명하는 듯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삶이든 가족이든, 강제로 주어진 것들은 하나 같이 믿을 수가 없어요, 도망을 꿈꾸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에곤은 펜화를 그리러 돌아갔다. 나는 작은 동굴처럼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구멍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몇 가지 생각을 기록해두려 한다. 스스로 쥐구멍에 들어갔다던 에곤은 왜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을까. 그는 왜 바르비탈을 삼키지 않고 손에 쥐고만 있었을까. 나는 같은 이름을 가진 불우한 화가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는 금지된 것만 바라다가 손에 있던 것마저 전부 빼앗긴 어처구니없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은, 왜 하필이면 이 쥐구멍이 내 거실에 생겨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5월 9일에 깨어난 뒤로 지금까지 줄곧 혼란스러운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영화 <엔터 더 보이드>에서 주인공이 사망한 뒤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혼탁하고 음울한 환각을 직접 겪고 있는 기분이다. 그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대롱 같은 통로’를 통과해 다시 태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알아챈 것인데, 근 일주일 정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5월 24일, 화요일
 달력은 오늘이 화요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에곤 덕분에 집에 쟁여두었던 A4용지가 동이 났다. 이제 그는 이미 그린 그림들의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그림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창밖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을 계속해서 그릴 뿐이다. 냉장고 안의 음식과 찬장의 라면까지 꺼내먹으면서 그는 점점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거실에 송장처럼 늘어져서 벽에 난 커다란 구멍을 마냥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입던 옷들은 에곤에게 제법 잘 어울린다.

 5월 30일,
 에곤이 내게 결혼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종이를 사러 밖에 나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탁자 위에 있는 지갑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 지갑은 너무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에곤은 이미 내가 회사에 다닐 적에 입던 바지와 셔츠를 입고 있다. 전보다 살집이 붙은 얼굴은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본 일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나는 점점 몸의 기력이 쇠하고 팔다리가 얇아지는 것을 느낀다. 가슴에 손을 대면 내 갈비뼈들의 모양을 손끝으로 짚어볼 수 있다. 아마 밥을 먹지 않아서 그렇겠지. 나는 가장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꿈은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깨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거나 사건이 벌어질 때 사람은 깨어나는 것이다.

 5월 33일
 집안이 에곤의 그림들로 가득 찼다. 요새 그는 밖에서 그림을 그린다. 어느새 이젤과 캔버스까지 구해 들고서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거실과 방에는 이미 완성되었거나 작업 중인 캔버스가 잔뜩 쌓여있다. 오늘 나는 커다란 구멍을 쳐다보면서 에드거 앨런 포의 <M. 발드마르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생각했다. 최면에 걸린 채로 죽은 발드마르는 죽어있는 동안, 그러니까 최면에 걸려있는 동안,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되어있는 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죽음이라는 상태에 있던 것일까? 그러나 최면에 걸린 그의 몸은 썩지 않았었고… 아니, 여하간 중요한 점은 최면에서 깨어난 순간 발드마르의 몸이 순식간에 썩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외친, 비명인지 환성인지 모를 “dead! dead!”라는 절규가 귀에서 쟁쟁 울리는 것 같다.
 에곤은 최근 혈색이 좋다. 그가 웃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다.

 38일
 나는 오늘 에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는 요새 그림을 그리느라 너무 바빠서 나와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는 듯하다. 나는 쥐구멍 안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구멍 안에 ‘무엇’ 따위는 없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듣자 번역이 잘못된 외국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직접 다녀온 사람의 말이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느냐고 묻자 에곤은 웃었다. 그야 출구가 있었으니까요. 질문이고 대답이고 지리멸렬해서 더는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곤은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바르비탈을 삼키지 않았습니다, 삼키기에는 원망할 것이 많았습니다.
 에곤이 처음 쥐구멍에서 나왔을 때 흰색 와이셔츠를 흔들던 것은 백기를 흔드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화가 날 때 남의 옷깃을 쥐고 흔들어대기도 하니 말이다.

 4?일
 요즘 에곤은 나를 쳐다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그다지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나 역시 이제 에곤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나는 구멍의 새까만 입구를 쳐다보며 삼촌에 대한 생각, 병원에 대한 생각, 바깥세상의 위협에 대한 생각을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시작부터 내 인생의 절반은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5월 6일 자살을 결심했을 때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예전에 <랜트>라는 아주 기괴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반복하며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낳는 위험천만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것이 생각났느냐면, 그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드는 유일한 생각은 주인공의 저주 같은 순환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서랍 안에서 꺼낸 바르비탈은 세어보니 스물한 알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나는 이제 이상한 환각을 끝내고 그 ‘무엇’도 없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5월 6일, 금요일
 이것이 내 마지막 기록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탁자에는 초봄에 모아 놓은 트리아졸람 0.25mg 정제 스물한 알과 물 한 컵이 준비되어있다. 내가 지금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삼 개월이 넘도록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삶이 약을 삼키고 잠드는 순간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이다. 트리아졸람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리튬과 쿠에티아핀푸르마산염도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아놓았다. 단번에 삼키면 이 중 무엇이라도 효과가 있겠지. 그러고 보니 약품의 성분과 효능에 필요 이상으로 호기심을 보이는 것도 증상 중 하나라고 의사가 말했었는데, 아니다, 이야기가 지리멸렬해지고 있다. 나는 곧 모아놓은 약을 전부 삼키고 바닥에 누울 것이다. 억울하거나 미련이 남는 일은 없는 듯하다. 다만 사후세계 같은 것이 느닷없이 내 눈앞에 튀어나오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앙드레 지드는 <나에게는 육체에서 떼어낸 영혼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백번 옳은 말이고, 만약 영혼이나 내세 같은 것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또 사설이 길어지고 있다. 이 글이 더 이상 엉망진창이 되기 전에 이만 끝을 내야겠다.


끝.

Posted by Lim_
:

(2023/01/12)
나는 이불을 개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위에 이불을 갠다. 나는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3년 전 나는 한가지 목표를 정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갠다는 목표 말이다. 그러나 목표를 정하기만 했을 뿐, 2년이 넘어가도록 나는 단 한 번도 이불을 갠 일이 없었다. 이불은 항상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겹겹이 파도치는 그 곡선 주변으로 소주병과 맥주병 따위가 조화롭게 굴러다녔다. 곳곳에 책과 음반 따위가 무질서하게 쌓여있었고 무언가를 무너트리지 않고 걸으려면 몹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방뿐만이 아니라 온 집안이 그런 꼴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더라? 나는 책을 쓰기도 했고 대학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고 가끔은 조각을 깎기도 했다. 돈이 필요하면 아무런 경력도 되지 못할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그들이 다시는 내 전화를 받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해치지 않기 위해 술을 마셨다. 길을 걸을 때 마주치는 통행인의 눈동자를 살인마의 눈으로 착각하지 않기 위해, 은행에 들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접수원 앞에서 굳어버리지 않기 위해, 전철에 탔을 때 한 정거장마다 뛰어내려 숨을 몰아쉬지 않기 위해 말이다. 굳이 술일 필요는 없었다. 대마든 LSD든 버섯이든 상관없었고, 실제로 시험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나 같은 사람이 교도소에 들어가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술은 합법이라는 점에서 중요했다.

 아무튼 나는 술을 마셨다. 책을 쓸 때도 악기를 연주할 때도 조각을 깎을 때도, 심지어는 일을 하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와중에도 술을 마셨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불조차 갤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 사실을 자각할 때면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또 술을 마시고 나면 절망은 거짓말처럼,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곳에 얼마나 많은 절망이 쌓여있을지, 나는 짐작하려고 시도해본 일도 없다.

 그리고 세상일은 이치에 맞도록 돌아간다. 나는 매일 술에 취해서 집안을 돌아다녔고 내 발걸음 소리가 너무 크다는 아래층 세입자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툼을 벌였다. 결국에는 그들이 어딘가에 신고를 한 모양이다. 무슨 복지 센터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들여 보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안될 것도 없었다.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내 집에 들어왔고 그들이 분명히 무슨 긴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당시에 난 이미 소주를 네 병이나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그들이 내게 재활원에 입원하는 것을 추천했다는 점이다. 그때 나는 나에게 얼마 정도의 돈이 있는지 헤아려보았다.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고, 그런 식의 삶이 벌써 수년간 이어져 온 상태였다. 나는 그들에게 입원씩이나 할 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기금’이라는 것에 대해 운운했다. 어쨌거나 내가 얼마간 무료로―그들이 지원사업이라느니 뭐가 어떻다느니 하고 말을 했는데― 재활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 그것이 대강 1년 전인 것 같다. 아마도 그렇다.

 그렇게 하여 나는 지금 침대 위에 이불을 갠다. 아침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세안을 하고, 이를 닦고, 환자들이 모이는 식당으로 간다. 나는 배식을 받은 후 평소처럼 최 씨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자리로 향했다. 미라처럼 삐쩍 마르고 볼이 움푹 팬 이 영감님은 한쪽 발을 관 안에 들여놓은 정도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쓰러져 이승을 떠날 것 같이 생겼으나, 67세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마른 사람들은 이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다들 밥 먹듯이 술만 마셔왔을 뿐, 안주나 음식에는 제대로 손댄 적도 없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 얼굴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스스로 판단할 만한 것이 아니기에 나는 남들에게 내가 어떤 얼굴로 보이는지 알지 못한다.

 최 씨 할아버지는 배식판을 응시한 채 젓가락으로 애먼 미역국만 계속 찔러대고 있었다. 탁, 탁, 하는 금속성의 소음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주변에 앉은 환자들이 눈치를 주고 있었으나 영감님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안 드세요? 내가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영감님은 나를 힐끗 보더니, 대답도 하지 않고 여전히 젓가락으로 배식판을 찔러댈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무슨 날인데요.

 손주 생일이야, 다섯 번째 생일.

 갇혀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의사한테 물어보지 그래요.

 아들내미가 오지 말라더라.

 이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은 너무 뻔했다. 아니, 그보다도 이 좁은 건물 안에서 부대끼며 사는 환자들은 서로의 사정을 훤히 다 알고 있다. 영감님은 의사 동의를 구해 손주 생일잔치에 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틀림없이 술에 손을 댈 것이다. 처음에는 맥주나 막걸리 한 잔으로 시작하겠지. 잔칫날이니 딱 한 잔만 하고 그만두자고 말이다. 그리고 한 잔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두 잔까지는 괜찮겠지. 그러면 이제 6개월간의 치료와 상담이 전부 뒤집어 엎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의사도, 영감님의 아들내미도 아니다. 영감님 본인이다.

 그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것이 나에게는 사실 축복 같은 일이었다. 이 건물 안에서는 그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고, 무슨 일을 할지 예측불허한 공포스러운 타인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에서 술을 안 마시고도 다소간 제정신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난동을 피우거나 금단증상 때문에 여기저기 구토를 해대는 신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상정한 범위 내에 있다. 그렇다면 무어 두려울 일이, 두려울 사람이 있겠는가.

 식사를 하고 나서 약을 받아 삼키고 나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세상에서 온갖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약간 소리 내어 웃었다. 바깥세상은 늘 그렇지. 너무 넓기 때문이야. 더러는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있기 때문이고. 온 세상에 격리병동을 만들어 사람들이 생활하게 하면 차라리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즐거운 몽상에 빠졌다. 어차피 모두가 미치광이라면……. 그러고 있을 때에 남자 간호사가 내게 다가왔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이었다.

 면회입니다.

 그래요, 요새 자주 오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누가 면회를 왔을지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 간호사를 따라 면회실로 향했다. 이곳은 바깥세상과 ‘안’쪽 세상의 완충지 같은 곳이다. 흔히 상상하는 방탄 유리벽이나 감시인 같은 것은 없다. 교도소도 아니고. 그저 테이블이 대여섯 개 놓여있고, 테이블마다 서너 개씩 의자가 있는 공간이다. 창문가에 있는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내 동생이었다. 10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 덕분에 그는 철이 들 무렵부터 내가 술에 절어있는 모습만 보아왔다. 열 살짜리 꼬맹이가 스무 살이나 되는 친형이 매일 술에 꼴아 가구를 부수거나 가족들과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라왔다고 생각해보라. 동생은 자기 인생에서 나를 완전히 지워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나를 형으로 대했다. 내게 동생은 내가 술 때문에 망쳐버리지 않은 유일한 인간관계였다. 그래서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망칠 것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잘 지냈어? 내가 물었다.

 나는 잘 지냈지, 형은 어때.

 술 안 마신 지 벌써 일 년쯤 된 것 같은데.

 잘됐네, 잘됐어.

 오늘은 무슨 일로 왔어.

 이때 동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순간 아침 식사 때 보았던 최 씨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반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말에 결혼해 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 남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얘가 지금 몇 살이더라. 하기야 벌써 삼십이 넘었지.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내게는 아직도 젖살이 덜 빠진 꼬맹이 모습부터 생각이 나지만 이미 한참도 전부터 어엿한 성인인 것이다. 그런데 왜인지, 무슨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알 수 없었다. 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면 뭐라고 말해줘야 하지? 축하한다고 하나? 너무 거리감이 느껴지는 말 아닌가. 그보다도 이 녀석은 왜 말하기 전에 뜸을 들였지?

 아,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것도 뻔한 일이다. 바깥세상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동생에게 나는 억지로 짊어지게 된 짐 같은 것이다. 더군다나 결혼을 한다지 않는가. 배우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처가도 생기기 마련일 것이고, 내 존재는 무엇 하나 동생에게 도움이 되는 면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까지고 여기에 있는 수밖에.

 잘됐네. 나는 웃었다.

 동생도 웃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 밤 약을 먹고 잠든 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또 이불을 개야지. 침대 위에 칼같이 이불을 개어놓고 스스로 만족스러워해야지. 내가 이 정도 일을 스스로의 의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성취감을 느껴야지.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말이다. 우리 형제는 마주 보면서 웃었고, 내 입안에서 아주 오랜만에 소주의 씁쓸하고 불쾌한 단맛이 감돌았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Posted by Lim_
:

나는 탄식한다, 고 탄식하는 놈이 세상천지에 있기나 하냐


잿더미가 된 세상
이라는 말이

이렇게
지겹고
아름답고
향수를
자극하고
기쁘고 애달픈지

아마 거기서 꽤 오래 살았는가보다
어떤 때는 이렇게
재투성이 마을을 둘러보고
그거 헤집고 있노라면
이거 죄다
진금(眞金)처럼 보이기도 하거든

금싸라기 잔뜩 덮인 골목에
발 푹푹 빠트리면서
휘황찬란 소주병

곱사등이
인간들아,
인간?

인간이고 진인(眞人)이고 사실
잘 모르겠고, 동지라고 불러주랴?

그런데 그들도 다 안다
우리 눈 마주치는 순간
용암 같은 동지애가 끓고 솟구쳐서
쌍욕 튀어나오려는 거 서로 안간힘으로 참고 있는거
다 알고
그 순간 세상은 다시
잿더미 되는 거
안다니까

그렇게 나는 또 향수를 자극하다, 와
노스텔지어, 둘 뿐인 갈래길에 무릎꿇고 뇌수랑
심장 비슷한 거 쥐어 뜯으면서

쥐어 뜯으면서……
방금 뭘 봤더라


재투성이 마음은
잿가루 휘날리는 잿더미 뿐인 동네를
몹시도 열렬히 사랑하고 사모하고

숨쉬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못해처먹겠고
해야하고
바쁘다,
인생.

Posted by Lim_
:

어떤 것들은 제자리에 있을 줄을 몰라서


지붕에 엮어놓은
나무들이
썩어서
날이면 날마다
턱턱 떨어져서


떨어져내리는구나
그게
뭐든 간에.

누군가 다가와서는
이거겨울에얼어가지고떨어지는거누구정수리에맞기라도하면보통일이아닌데언제날잡아서싹다갈아야겠는데응?안그래요?내가이런일해봐서아는데이게

나는
가던 길 계속 갔다
떠드는 누군가는
계속 떠들고.

일 없수다
떨어지는 게
나무뿐인가……

그가 뱉는 말들
내 신발 밑창에서
발자욱에 들러붙다
뚝뚝 떨어지고

이상할 만치
싸늘한 봄이 오고
있고

나무야 뭐
이제 얼지는 않겠지
계속
떨어지기는
하겠다만은.

Posted by Lim_
:

아등바등 악에 받쳐가지고


날짜 확인하려고 테이블을 보니
약이
삼 일치 남았다.

사서보관해놓고삼키고마침내남은
삼 일

삼일?

달력이고 일수가 무슨 대수라고
만세부르고 다닐 것도 아니고
머리 꼭대기에 해뜨면 일수가방 들고
설치는 놈들이나

은행 달력 나눠주며 이 날이
원금 이자에 생명 갚을 날이라고
지껄이는
놈들이나

더러는
남의 돈으로 일 개월 사러
병원 가는
미친놈이나……

아아.
아아아아.

삼 일이라기보다
삼생(三生) 같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발.

그래도
아니,
그런데,
이 꼬락서니들 왜이리
증오스러울만치 아름다운지
당최,

그러니까, 그래서, 아무튼, 때문에,
아니, 모르겠고, 일단은,
오늘도 구른다

Posted by Lim_
:

호프집에서

글/시 2024. 2. 7. 22:12 |

호프집에서


그러니까 내 말은
작년 유월 구 일에 술을 끊었고 그러나 친구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와 마실 봉삼주를
담가놓고
있었고
그냥 음료수인 줄 알았던
개복숭아청은
알코올이
들어
있었고
논-알코올이라고
새빨갛게 써갈겨놓은
칭따오
캔맥주에도
알코올이
들어
있었다고

그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가 뭔데
친구가 짜증을 부린다

겨울이라 낮이 짧아, 나는
태양이라는 놈이 가라앉은 후에만
담배를 피운다
춥고 어둡고
외롭고
행인이 없고
친구는 가게 안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고
튀겨버린 닭이 있다

아무튼 쓸쓸하고 음침한 구석만 골라가며
담배를 피우는데
망할 놈의 인간
인간이
아니 행인이

담배는 순식간에 타들어가
시뻘건 나체가 길게 드러나 있다 나는

뛰듯이 그것들의 현실에서 도주한다
지 몸속에 맥주를 퍼붓는 친구 앞에 앉는다
시발, 너
담배 냄새 진짜

시끄러워
접시 위 남의 뼈다귀나 헤집는다
이 미친놈은 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다른 세상 공놀이에 정신이 팔렸다

그런데 닭이 뼈만 남고
저 미친놈이 빈 잔만 쥐게 되면
나는 또
저 밖 어느 구석으로


친구가 나를 바라보고
너 더 마셔
친구가 나를 바라본다.

Posted by Lim_
:

일요일

글/에세이 2023. 4. 3. 17:47 |

일요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약 5초 전까지 하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잊어버렸을 뿐이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말을 듣던 친구는 손에 커피잔을 쥐고 있었다. 통유리로 된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봄답게 환했고 우리가 앉아있는 카페 2층에는 다른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내가 수십 초 이상 말을 멈추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사라진 대화 주제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던 나는 곧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아내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다만 열심히 뭔가―그게 뭔지도 전혀 모르겠지만―를 말하다가 느닷없이 침묵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대화가 이어질 만한 소재를 찾아서 카페 곳곳을 둘러보았다.
 이런 환절기가 찾아올 때마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스럽다는 얘기지.
 그렇게 나는 문장을 완성 시켰다. 친구는 더더욱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하고 있던 말과 전혀 아귀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게 하루에 물을 2L씩 마셔야 한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결국 친구가 이렇게 묻자 나는 본래의 주제를 기억해냈다. 아, 하고 나는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나는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하루에 물을 2L씩은 마셔야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그러한 건강법에 대해 주워들어서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고, 매일 2L의 물을 마시는 행위가 어째서 몸 건강에 좋은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미안, 무슨 말 하고 있었는지 까먹었다.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을 뱉었다. 친구는 이상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술이 덜 깼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술을 마신 건 오늘 새벽 3시까지였고 지금은 오전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상태를, 숙취 때문이라고 친구가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일이었다. 머릿속의 뇌수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부위들이 서로 격벽을 쳐놓은 것 같은 현재의 기묘한 정신상태를 굳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한 해석이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요새 겉옷 입기 애매하긴 해.
 그렇게 대화주제가 바뀌었다. 나는 친구가 굳이 따져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주제에 올라 타준 점에 관해 은근히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산맥과 당장 깨져버리기라도 할 듯 유난스레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친구도,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나는 언어라는 것이 퍽 귀찮은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햇빛이 너무 강했다. 마치 하늘 위에서 누가 두 손 가득히 빛줄기를 잡고, 지상을 향해 무자비하게 던져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너는 오늘 뭐 할 거냐? 친구가 물었다.
 아마 집에 돌아가면 책 좀 읽고, 글 좀 쓰지 않을까. 내 앞에 놓인 자스민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말했다. 차는 이미 식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뒷집 아주머니가 출판사에서 일하신다던데.
 어느 출판사?
 몰라, 모르겠는데, 나중에 만나면 한 번 물어볼게.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그리고 또 우리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햇빛이 너무 강했다. 어쩌면 햇빛 때문에 내가 방금 한 말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어쩌면 햇빛에는 눈과 피부로 스며들어 뇌를 깨끗이 소독하는 성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생각한 바를 그대로 친구에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이불 말릴 때처럼…….
 이불 말릴 때처럼. 나는 그가 한 말을 조용히 되풀이해 말했다. 두개골을 쪼개고 뇌를 꺼내서 강한 햇볕 밑에 말려놓는 상상을 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카페 2층에는 벌써 50분 넘게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자릿세’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몇 가지 연상을 거쳐 사람이 어느 공간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생각하고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실이었다.
 책은 잘 돼가? 친구가 갑자기 물어왔다.
 모르겠는데, 나는 몰라.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글쎄.
 넌 요새 도대체 무슨 돈으로 먹고 사냐.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알아낸 건데, 스스로를 작가라고 칭할 수 있는 인간은 두 종류밖에 없어, 정말로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있는 문호던가, 혹은 사기꾼이지, 그런데 돈이라는 것은 사기꾼이 잘 벌지.
 네가 사기꾼이라면 누구에게 사기를 치는 건데?
 주로 나 자신에게지 뭐.
 우리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친구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지, 내가 올바른 단어들을 선정하여 의미를 전달한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시 한번 언어란 참 성가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가자, 역까지 태워줄게. 친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찻잔을 손에 쥐었다. 이미 다 식어버린 자스민 차는 별로 맛이 없었다. 한 모금에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나는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수분 섭취가 건강과 직결된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하루에 물을……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입을 닫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코트와 잔을 챙겨 일어났다. 나는 입속말로 젠장, 이라고 중얼댔지만 사실 화가 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상황이 ‘젠장’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딱 적확한 상황이었던 것뿐이다.
 잔을 카운터에 반납하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날씨가 맑았다. 그때 친구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오늘 미세먼지 수준이 ‘나쁨’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래’라고만 했다. 미세먼지가 나빴고 날씨가 맑았다.

Posted by Lim_
:

어느 맑은 날에

글/에세이 2023. 3. 30. 17:10 |

어느 맑은 날에


 2주간 내리 위장병 때문에 고생을 했다. 며칠 약을 챙겨 먹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구역감과 위산 역류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잠에서 깨어날 때 나는 무언가가 아주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당장 알 수 없었다. 끙끙대며 이불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한동안 거실과 방을 오고 가며 이 괴기스러운 이질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용 책상 위에 마구잡이로 쌓인 책 세 권이 별 의미도 없이 눈에 들어왔는데, 맨 밑으로부터 페터 한트케, 베르톨트 브레히트, 허먼 멜빌의 순서로 책이 쌓여있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허먼 멜빌의 책을 맨 밑에 두고 그 위에 페터 한트케를 두었으며 맨 위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 작업에서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잘못된’ 무언가가 다소는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속이 헛헛한 듯이, 더러는 백일몽을 꾸는 듯이 나는 도저히 제 컨디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음!” 나는 괜스레 목소리를 내보았다. 아마도 지금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목적에서 그랬던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내 오른손을 들여다보았는데, 아주 기겁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색 피부밑에 튀어나온 관절과 뼈, 그리고 불거진 핏줄 따위가 전에 없던 강렬한 형상으로 내 눈에 박혀버린 것이다. 내 손이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나는 거의 30초가량 손을 앞뒤로 돌려가며 유심히 관찰했다. 크게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내’ 손에 대해 놀라움을 느낀 까닭을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오히려 싱숭생숭한 기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나는 내 미국인 친구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소위 ‘매직머쉬룸’이라는 것을 섭취한 적이 있는데, 환각이 사라지고 나자 몹시 이상한 부작용이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부작용이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이 너무도 강렬하게, 그리고 치명적일 정도로 분명하게 자신들의 존재성을 부각하고 있어서 도무지 눈을 뜨고서는 휴식도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의 나와 비슷한 기분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는 또다시 집안을 서성거렸다. 서성거리기엔 그다지 넓은 집도 아니지만, 여하튼 나는 방문과 화장실 문 따위를 전부 열어보며 세계로부터 완전히 이방인이 된 기분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핸드폰을 일주일 넘게 꺼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위장병을 앓느라 도무지 기력이 없어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일일이 반응하기도 귀찮았던 것이다. 지금 핸드폰 전원을 켜면 아마 부재중 전화가 열 몇 통은 쌓여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핸드폰은 그냥 꺼두기로 했다. 나중에 활력이 좀 돌아오면 그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냉장고 문을 5번 정도 열였다가 다시 닫았다. 여전히 식욕이 없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같은 동 303호에 사는 아저씨가 마침 볕을 쬐러 나온 것인지 인사를 해왔다. 그와 만나는 것은 약 2달 만이었다. 나는 그가 왜 이런 대낮에 집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 뒤, 한 대 피우겠느냐고 담뱃갑을 내밀었다.
 아니오, 이젠 끊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는 티셔츠의 목덜미를 슬쩍 내리면서 목에 난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이젠 평생 끊어야겠죠.
 저런, 큰일이었겠네요.
 뜬금없지만 그제야 나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길에 행인들이 평소보다 많다 싶었다.
 햇빛이 좋네요. 내가 말했다.
 이젠 봄이죠.
 나는 어쩐지 없던 기력마저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담배는 다 탔고, 그에게 인사를 한 뒤 계단을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안방 문을 열어보니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동생이 침대 구석에 온몸을 쑤셔 넣은 듯한 자세로 잠들어있었다. 오후 4시였다. 나는 동생이 그대로 자도록 내버려 두고 안방 문을 닫았다. 내 방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 때문에 우울해졌다. 곧 마감을 맞춰야 할 원고를 위장병 때문에 2주 내내 내팽개쳐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날아간 2주를 되돌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책 없이 게으른 기분이 되었다. 나는 작업용 책상에 앉아 브레히트의 시를 몇 편 읽었다. 다시 덮어놓으며 “흠!” 하고 또 괜한 소리를 냈다. 삼월이 끝나가고 있었고 내게는 아무런 계획도 떠오르지 않았다.
 창밖에는 날씨가 퍽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6월에 친구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요새는 축의금으로 5만 원만 냈다가는 괜히 나중에 뒷담화 거리나 된다고, 그런 얘기를 TV뉴스에선가 친구로부터였던가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나는 멍한 채로 의자 위에 앉아있었다. 6월이 되기 전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테지. 중얼거리면서 나는 이상하게 앉은 자세 때문에 골반이 몹시 아팠다.

Posted by Lim_
:

줄담배

글/에세이 2023. 3. 15. 07:41 |

줄담배


 역 근처의 구석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자니 누군가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키가 작은 노파였다. 그녀는 생쥐 같은 인상을 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담배를 구걸했다. 담뱃갑을 열어보니 마침 세 개비가 남아있기에 두 개비를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감사 인사도, 떠나지도 않고 그저 멀뚱히 내 얼굴만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내뱉은 말은 “한 개비가 더 있던데.”였다. 이번에는 내가 멀뚱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돗대를 가져가는 법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딱히 화도 내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노파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역 저편으로 걸어가 버렸다.
 이상한 꿈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으로 돗대를 피워버렸다. 그리고 역사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샀다. 남은 돈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갑에 남은 현금은 이천 원뿐이었다. 어차피 담배 한 갑도 못 살 돈이라고 생각하자, 그것이 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캔커피 두 개를 사는 데 모조리 써버렸다. 얼마 뒤 약속했던 대로 친구가 역전에 나타났다. 나는 캔커피 하나를 건넸다. 친구는 의례적으로 고맙다고 했다. 그가 담배 한 대만 피우고 가자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는데 시야 저편에서 그 노파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맞은편 흡연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가슴 속에 흙탕물이 흐르는 기분이라, 한 개비를 더 빼물고 불을 붙였다. 젠장, 내가 중얼거렸다. 친구가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친구는 캔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젠장’이라고 말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흡연장에서 어정거리다가 술을 마시러 가자고 결정했다. “아.” 내가 돌연 떠올렸다. “그 캔커피가 내 마지막 자산이었어.”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실없이 웃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술은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키 작고 생쥐 같은 노파는 여전히 흡연자들에게 개비담배를 구걸하고 있었다. 점점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거리 위로 기어나오는, 별로 유쾌할 것도 없는 간절기였다.

Posted by Lim_
:

사상가들에게

글/시 2023. 3. 12. 19:37 |

사상가들에게


장고하지 말라, 우리는 우연히 살아있다
먹을 것만을 찾아, 팔십억 인간들은
애벌레처럼 이 땅을 기어 다닌다
그 대단한 숫자보다, 턱없이 많은 죽음이
우리 발밑에 아무 역사 없이 쌓여있다
땅이 교훈을 주리라 믿지 말라, 의미란
비바람에 무너진 묘비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운율에 맞추어 글 쓰는 일일랑 그만두고
우연히 나타난 생애나 듬뿍 들이켜 취해버려라
우리는 회한할 새도 없이 갑자기 쓰러지리라, 그러니
닥쳐오는 모든 것에 장고하지 말라.

Posted by Lim_
:

소문에 의하면 그는

글/소설 2022. 11. 29. 22:06 |

소문에 의하면 그는

 

 

1.

 도대체 누가 저지른 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도시에 나에 대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응급실에 실려 갈 때마다 능숙하게 거짓말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라는 인종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고 심지어는 훈련된 관찰력까지 있다. 그들은 내 거짓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으나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 세 번의 시도들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을 것을 상상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 집 천장에 두 개의 시꺼먼 구멍이 나버린 일을 모두가 알고 있는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한강 공원 한구석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물을 토하고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던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도대체 누가 삶이 아름답다는 말을 함부로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매번 마지막이어야 했을 잠에서 깰 때마다, 올가미 안에 머리를 넣으며 스스로에게 미소 지었을 때마다, 공중에서 자신의 몸무게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그런 순간마다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매번 나를 배신했다. 이것은 정말로 저주라도 받은 것 같다.

 나는 내가 선택할 죽음에 대해 어쩌고저쩌고하며 옹졸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끝날 것이다. 나라는 세포들을 가득 담고 움찔거리는, 생각보다 너무 단단했던 그릇도 이제는 깨질 것이다. 내 오른손에는 소주가 잔뜩 담긴 비닐봉지가 있고 주머니에는 손잡이까지 금속으로 된 나이프가 있다. 우선 위장에 소주를 들이부어, 내가 새로 맛볼 고통 때문에 스스로 망설이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칼은, 사방에 널린 게 콘센트다. 지금까지 여섯 번의 시도로 엉망진창이 된 몸이 전기에 한껏 지져지면, 아무리 여태 버텨왔던 몸이라고 해도 생명이 남아날 리가 없다.

 우선은 방으로 돌아가 소주를 따야겠다.


2.

 도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그 소문은 너무 구체적이라서 사실상 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작정하고 만들어낸 것 같았다. 내용인즉 여섯 번의 자살시도를 실패한 사람이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 번의 음독자살을―첫 번째와 두 번째는 수면제 과용이었으며 세 번째는 메탄올을 들이켰다고 한다― 시도했으나 매번 며칠 뒤 응급실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두 번 목을 매달았으나 첫 번째는 실링이 부서져 내렸고 두 번째는 천장 타일이 뜯겨나오며 떨어졌다. 마침내 그는 모두가 그렇게 하듯이, 마포대교에서 난간을 기어올라 한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곧 살아있는 채로 하류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은 소문이라기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구체적인 이야기였다. 덧붙여 그가 드디어 성공하고 말 일곱 번째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는, 도대체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나돌고 있었다. 애당초 이상한 것은 왜 이런 이야기가 소문이라는 형태로 돌아다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뉴스에까지 나올법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다 신빙성 있는 루트로 이야기가 퍼져야 마땅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크게 신경을 쓸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흥미를 돋우는 도시 괴담 같은 것에 지나지 않고, 이 좁고도 넓은 도시에서 내가 소문의 주인공과 만나게 될 가능성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 불쌍하고 안타까운 누군가가 일곱 번째 시도를 성공시키든 그러지 못하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나는 나를 위한 준비를 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벌써 직장을 구하지 못한 지 2년이 지났다. 아니, 그렇지 않다. 처음 한해는 분명 아무리 시도해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 맞다. 그러나 그 뒤부터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저금해두었던 돈만 천천히 까먹으며 일 년을 보냈다. 이 일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흐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일은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발견하고 만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 일 년 사이에, 내게는 더 이상 삶을 헤쳐나갈 그 어떤 의욕도 원동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나에게는 가족도 없고 내 삶에 있어 중요하게 여길 만한 ‘그 무언가’도 없다. 애당초 멀쩡한 모습으로 직장에 다니던 시절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것은 목표도 목적도 없는, 오로지 관성에만 의지한 생존방식이었다. 그런 것을 나는 일 년간의 백수 생활에서 확연하게 깨닫고 만 것이다.

 죽고자 하는 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날은 오늘이다. 정확한 방법은 아직 생각 중에 있다. 다만 그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내게 약간의 교훈을 주기는 했다. 정말로 확실하지 못한 방법이란 계획의 나머지 부분을 운에 맡겨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비닐봉지에 소주를 가득 담은 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주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는 데 알코올이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3.

 그들이 서로를 지나치고 있다. 소주를 잔뜩 들고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처음 남자가 졸피뎀 한 병을 입안에 쏟아부었을 때 나는 평소처럼 수거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도 많이 봐온 장면 중 하나였고, 일상처럼 행하는 업무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나는 그때 남자의 방안을 둘러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길거리를 거닐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 마냥, 버릇처럼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졸피뎀뿐만이 아니라 트리아졸람이 가득 담긴 병을 발견했고, 분명히 목적이 있어서 쌓아놓은 복사기 토너들을 발견했고, 서툴게 매듭을 지은 올가미부터 아주 완벽하게 길이를 맞춘 밧줄 매듭까지 온갖 것들을 발견했다. 그 더럽고 엉망인 방 안에서 체계가 있는 것이라고는 ‘그런’ 물건들뿐이었다.

 그때 내게 한가지 발상이 떠올랐다. 낙엽을 치울 때도 한곳에 모아놓았다가 단번에 자루에 담는 법이다. 나는 이 남자가 빗자루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각이랄까, 계획이 완벽하게 정리되어있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 영감을 따라 가보기로 했다. 수면제를 한 병 삼키고 10분도 되지 않아 남자는 휘청거리더니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러나 나는 그를 수거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누군가가 그의 방으로 들어와 응급차를 부르고 난리를 쳤다.

 그다음에도 나는 그를 수거하지 않았고, 다시 그랬고, 다음엔 천장의 실링에 약간 장난을 쳤으며, 또 같은 일을 반복했다. 남자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변화가 나타났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개념에게서 약간의 장난스러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정확히 예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계획하고 있던 일이었다. 나는 내가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 자살중독자는 인간관계가 그리 넓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주었으면 했다. 나는 길에서 자는 이들, 진심으로 웃지 못하는 이들, 손톱을 씹는 이들에게 남자의 이야기를 속삭였다―이 일을 하면서 나는 아주 예전에 만났던 어떤 학자를 떠올렸는데, 그 이야기는 지금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을 뜨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금세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

 남자가 일곱 번째 헛수고를 준비하는 사이 나는 첫 번째 성과를 찾아냈다. 그는 원래부터 자질이 있었으나 ‘소문’ 덕분에 자신도 모르는 새 죽음에 대한 방비를 다 풀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위에서 낙엽을 치우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남자의 일곱 번째 시도에도 절망한 실업자의 첫 번째 시도에도, 나는 결과물을 쥐여주지 않을 것이다. 곧 두 번째, 세 번째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계속 소문을 퍼트릴 것이다. 아무도 수거되지 않을 것이다. 도시 모두가 죽음이란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허상 같은, 그야말로 거짓말이나 장난 같은 것이라고 느끼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낙엽은 모조리 한 군데에 모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쓸어 담기만 하면 된다. 벌써 몇몇 동료들이 내 작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Posted by Lim_
:

우리 모두가 지옥으로 간다


 이것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글이다. 그러나 이 글에는 그 어떠한 종류의 충고나 조언도 없다. 애당초 내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지도 않을뿐더러, 사실 작가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조언과 충고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곳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용서다. 말하자면 단테의 <신곡>이 실용서였고, 밀턴의 <실낙원>이 실용서였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전 일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마을에 도착했다. 어쩌면 ‘떨어졌다’고 말해야 옳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나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숲에서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시간은 밤이었고 내가 걸어온 어두운 숲을 벗어나자 갑자기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그때 나는 어둠 속에서 초원에 늘어져 있는 그림자 같은 인영을 발견했다. 나로서는 아주 오랜만에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금발 머리를 가진 외다리 청년이었다. 한밤중이었지만 휘영청 밝은 보름달 덕분에 그의 머리 색깔과, 다리 한쪽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청년은 눈을 감고 있었고 만취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벌린 채 풀밭에 누워있었다. 아주 아름다운 얼굴 생김이어서 짧게 자란 수염이 아니었다면 여자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내가 묻자 그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의 내면에 가득 쌓여있던 화약 더미가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격렬한 어조로 내게 무슨 말인가를 쏟아부었다. 나는 그가 어느 나라 말을 하는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욕설과 저주의 뉘앙스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고, 그는 내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정체불명의 폭언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채 그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가던 길을 계속 걷기 시작하자 뒤에서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한숨이 들렸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그가 내뱉던 괴성과 욕설이 언젠가 들었던 프랑스어와 닮아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이상한 사건을 뒤로하고, 약간 언덕진 초원 저 너머로 시선을 향했다. 건축물처럼 보이는 그림자들이 무수히 솟아있었다. 그러나 그것들 중 단 한 개도 불이 밝혀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건축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과연 건물인지, 사람이 살고는 있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초원에 난 길을 걷는 와중에 나는 처음에 만난 외다리 청년처럼 풀밭 곳곳에 늘어져 있거나, 앉아 있거나, 혹은 유령처럼 선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외다리 청년에게서 교훈을 배운바, 그들에게 다가서서 말을 거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흥미로웠던 점은 그들 모두가 남자였고, 각각 다른 인종이라는 사실을 어둠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종의 다양성 때문에 나는 언덕 저편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과연 내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낮은 언덕을 넘어가자 그곳은 역시 마을이 맞았다. 나무로 건축한 단층이나 2층짜리 주택이 수도 없이 밀집해있었다. 마을에 딱히 입구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만 초원과의 경계를 의미하는 듯 어느 지점부터 건물들이 세워져 있고 풀밭에 나동그라진 사람의 수가 줄어있었을 뿐이다. 울타리 같은 것은 없었다.
 마을의 초입에서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나와 아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고, 다만 검은 머리털이나 동북아시아인 특유의 얼굴 형태가 새삼 내게 익숙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는 어느 건물 벽에 기대선 채 끊임없이 자신의 두 손을 서로 쥐었다 폈다 하며 불안한 몸짓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그에게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그는 우리말을 할 줄 몰랐고, 일본인인 듯했다. 다행히도 나는 조금이나마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대화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마을은 왜 이렇게 캄캄합니까?
 여기에는 불이 없습니다.
 불이 없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의심했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손가락과 겁먹은 듯한 표정은 정신에 안타까운 상처가 있는 사람 특유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불이 없다는 말은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이미 상기했듯 한밤중임에도 온 마을에 달빛 말고는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과거에 읽었던 코맥 매카시의 어떤 작품을 떠올렸다. 인류문명이 멸망해버린 세계를 다루는 그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잠깐 잡념에 빠져들었다. 마을의 새까만 광경과 일본인의 의미심장한 말이 내 상상력을 부풀린 것이다. 어쩌면 굉장히 오랫동안, 어느 누구도 이 마을로 ‘불’을 운반해올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래된 습관 때문에 생긴, 관념적인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여하간 나는 이 마을의 중심으로 가면 광장이 있으려니, 광장이 있다면 더 멀쩡한 사람과 만날 수 있으려니 싶었다. 하늘을 보니 달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대지를 은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불쌍한 일본인 사내를 내버려 두고 걸음을 재촉했다. 길들은 좁았고 제대로 관리되어있지 않았다. 보아하니 아무도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지저분한 길목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사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가 외따로 떨어져 있었으며 통행인이나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불쌍한 일본인처럼 불안증세를 보이는 이들도 자주 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마을에 광장 따위는 없었다. 더 정확하게는, 이 마을에는 중심이 되는 구역조차 없었다. 그저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밀집해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사이로 수도 없는 길목들이 겹쳐졌다가 나뉘어지고, 또 교차하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안에 있을 사람들까지 합하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일지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정점에 달할 즈음에, 나는 아주 놀라운 일을 겪었다.
 어느 건물의 계단참에 새하얀 수염이 인상적인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얼굴이 몹시도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얼굴을 분명히 본 일이 있었는데…… 맙소사, 그는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가 틀림없었다. 비록 책에서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 얼굴을 잘못 볼 리가 없다. 나는 순간 귀신에 홀린 듯, 계단참에 올라앉은 그에게로 달려가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때 나는 마땅히 이 마을에 관해 물어봐야 했을 실제적인 질문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로지 그의 작품과 사상에 대해서 무어라 무어라, 높은 목소리로 외쳐대기만 했다. 그러나 그 늙은 사상가는 완전한 몰이해의 표정으로 내내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몇 분 뒤에야 나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제정 러시아의 문호가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순간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 옆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다소 냉정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만약 이 마을이 내가 생각하는 곳이 맞다면, 그렇기에 이곳에 불이 없는 것이라면. 나는 몇 가지 생각을 거쳐 진실을 확인할 한 가지 방도를 찾아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외국어는 지극히 한정되어있고, 그마저도 복잡한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단지 누군가의 이름을 말할 뿐이라면 어떨까. 그것이 외국인의 귀에 얼마나 부정확하게 들릴지는 쉬이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다면 나는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만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내 곁에 초라하게 쭈그리고 앉은 대문호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니콜라이 고골.
 노인은 저 멀리 있는 어느 건물을 가리켰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노인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또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나는 이미 거의 진실에 가까워졌다. 더 이상 묻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이름’을 나열했다. 19세기로부터 조금씩 멀리,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조금씩 멀리 향하는 이름들을 말이다. 키르케고르부터 카뮈까지, 셰익스피어부터 피츠제럴드까지……. 이름을 들은 노인은 모조리 고개를 끄덕이거나, 어딘가를 가리키거나, 더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을을 보라는 듯 손바닥을 옆으로 저었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그때 절망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환희 따위는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 마을에 자의로 들어왔다는 것을, 스스로 떨어져 내렸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숲을 빠져나온 후부터 요만큼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하늘에 유리구슬처럼 떠 있는 새하얀 보름달을 가리켰다. 그것이 내 마지막 희망이었다. 이 인본주의자가 마을 입구에 있던 일본인의 말을 부정해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러나 벌써 탁해진 눈동자로 노인은 미간에 주름을 짓고, 고개를 양옆으로 휘저었다. 이제 모든 절망이 확실해졌다. 마을 초입의 불쌍한 일본인 작가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 순간 내 귓속을 향해, 지금까지 듣지 못하고 있었던 무수한 소음이 기어 들어왔다. 애벌레가 나뭇잎 먹는 소리를 수천 배로 증폭시킨 것 같은 소음이었다. 이 거대한 마을 전체가 실낱같은 숨으로 비명을 토해내는 소리였다. 그것은 내가 처음 마을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알아채지 못한 소리였고,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사방팔방에서 멈추지 않고 들려온 소리였다. 마을의 모든 목조건물 안에서, 그 건물들의 작고 좁은 방 안에서, 그 작은 소리들은 겹쳐지고 공명하며 그야말로 이 세상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각사각, 사각사각하며.
 나는 공포에 질린 채 구르듯이 계단참을 뛰쳐 내려왔다. 그리고 왔던 길을, 그 좁고 더럽고 엉망진창인 길들을 있는 힘껏 역방향으로 달렸다. 가끔 멀거니 서 있던 사내들이 어깨에 치였으나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시야 끄트머리에 불쌍한 일본인 작가가 잠시 보였다가 사라졌다. 나는 마을 밖으로, 초원으로, 언덕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서야 그 끔찍한 소리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러나 사각사각하며, 내 인생 전체에 들러붙어 있던, 마침내는 삶을 모조리 갉아 먹어버린, 그 오래된 소리가 아직도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거친 숨을 쉬며 내가 나왔던 숲길을 향해 걸어나갔다. 숲은 빠져나왔을 때보다 더욱 어두컴컴했다. 나는 다시 외다리 청년과 만났다. 그러나 내가 나왔던 그 숲길은 찾을 수 없었다. 아주 빽빽하고 울창한, 새까만 숲이 벽처럼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조롱하는 듯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금발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얼굴의 외다리 청년은 모로 누운 채, 나를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가 누군지 안다. 그는 태양으로 걸어 올라가려던, 나쁜 피를 가진 시인이었다.
 나는 처음에 이 글에는 조언도 충고도 없다고 말했다. 그런 것은 있을 수도 없다. 사각거리며 종이에 펜을 긁는 소리가 이미 우리의 삶을 먹어치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명성과 존경이, 또한 모든 실패와 무관심이 그 소리와 함께 이곳으로 온다. 살아있는 피부에 열기를 전해줄 불꽃조차 없는 이곳까지 와서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멈출 리가 없다. 우리가 멈출 리가 없기 때문이다.

Posted by Lim_
:

의정부시 평화로

글/시 2022. 11. 10. 17:09 |

의정부시 평화로


그는 자꾸만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려 한다
하얀 석영처럼 해가 빛나고
거리에 비애가 자라나기에는
아직 이른 오후 다섯 시
그는 어디서 술에 취했을까
멀리 기름종이 같은 하늘 올려다보며
내쉬는 한숨에 에탄올 냄새 섞여있다
따개비 무리 같은 재개발 지구를 지나
왁자한 대학생들의 희멀건 윤곽을 피해가며
그 남자는 어딘가에서 술에 취해왔다
이건 고독을 비껴가는 방법이야, 라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탁한 명정
늦가을 바람이 일고 눈꺼풀이 감기고
앞으로 며칠간 그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이다
태양 아래 사람들은 다리를 쭉쭉 뻗으며 걸어가는구나
골목 울타리에 기대 손안에서
애먼 담뱃갑만 돌릴 때, 바닥없는
밤이 오기만을 기다릴 때
사람들은 다리를 쭉쭉 뻗으며 늠름히 걸어가는구나

Posted by Lim_
:

시월의 어느

글/시 2022. 10. 27. 18:00 |

시월의 어느


자꾸만 구역질이 난다
아 하고 성대를 울려본다 나는
어제부터 말한 기억이 없다

거리 위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우듬지 주변엔 창백한 가을 하늘
멀고 낯설고 까마득히 흔들리는데
곧 눈은 시리고 벌겋게 차오른다

흐려진 눈동자와 안경 너머로
찡그리고 바라보아도 그러나
그곳 어디에도 슬플 일은 없다

그저 종일 앉아있던 방안이 어둑하고
너무 오래 하늘과 마주 보지 못했고
익숙지 않은 미제 담배가 독하고 맵고
찬 바람에 온몸이 팽팽히 굳은 탓이다

방으로 돌아와 전등을 켜니
눈동자는 다시 붉게 떨려오는데
여기 어디에도 슬플 일은 없다.

Posted by Lim_
:

사월

글/시 2022. 4. 14. 23:22 |

사월


삼거리에 벚꽃잎 마구잡이로 흩날린다 친구는
군시절 생각난다고 욕설을 뱉는다
그제야 나는 가게 앞 비질하던 돼지갈비집
사장님을 생각한다 보도블록 위에 짓밟혀
갈색이 된 목련을 생각한다 매일
건물 앞에 쌓이는, 명함 같은 찌라시들을
생각한다 가을마다 바빠지는
환경미화원을 생각한다
그리고 사월의 둘째 주
친구 모두 정장하고 걷던 청명한 식장 앞
꽃구경하러 나온 사람들과 연인들
가족들을 떠올린다 그날만은
진 꽃잎이 썩어 짓무르리라는 생각 따윈 하지 말자고
아무도 몰래 다짐하던 자신을 떠올린다
벚꽃도 낙엽도 치울 일 없이 살아오던
그러나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무엇이던
끝에는 하수도로 쓸려가리라고
음울한 상념만 중얼거리던
내 굴곡 없는 손마디가 보이고
벚나무 심어진 부대에서 봄을 보낸 친구에게
할 말 없이 숙연해진다.

Posted by Lim_
:

학력 유감

글/시 2022. 2. 19. 21:38 |

학력 유감


아버지가 대학에 다닌다
곧 우리 가족은 대졸자가 둘이다
방통대 학생회장 출마
플래카드 펄럭이는 캠퍼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까마득한 후배다

아버지도 어느새 내 학력을 추월하고
나는 고등학교 문턱도 못 밟은
십오 년째 작가 지망생
글 쓴다고 저녁마다 술이 고픈
나는 술값 좀 벌어보자고
몇 번이나 아버지 과제 대필했다.

무슨 돈으로 내가 막걸리 마시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 거리에서
푸른 담배 연기 뿜어 올리는지
어머니는 모른다

대학영어 낙제한 아버지
타박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영어를 못하고
내 뒤통수만 쳐다보고
슬그머니 일어나던 나는
꼬여버린 우리 집안 학번에
문득 웃었다가
대필값 돌려내야 할지도 모른다.

Posted by Lim_
:

아레시보 메시지

글/소설 2022. 2. 19. 21:33 |

아레시보 메시지


 모든 일이 다 잘못되었다고 그는 생각한다. 변기를 얼싸안고 있는 그의 뒤통수 위, 화장실 천장에서는 약간 황색이 도는 백열등이 잉잉거리며 빛나고 있다. 변기에 고인 물에서는 토해낸 비누 거품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며 둥둥 떠다닌다. 퉤, 하고 입안에 맴도는 로즈메리 향을 뱉어낸다. 약간의 알코올 냄새가 섞여 있다. 그는 얼굴에 번들거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는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베어 문 잇자국이 선명한 반쪽짜리 비누를 세면대에 올려놓는다. 선반에 개어진 수건들 틈에 놓아둔 휴대전화를 꺼내려다가, 그는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역한 비누향을 견디지 못해 온몸을 들썩이며 또 한 번 토악질을 하고 만다. 작은 비누 조각들이 더 많은 거품과 함께 변기 안으로 쏟아진다. 다시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20분이 넘도록 구토를 하고 있을 동안 휴대전화는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열어도 도착한 문자메시지는 한 건도 없다.
 ‘들어오세요. 저 종민이예요.’ 3년 동안 저장만 되어있던 번호로 다시 한번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답장을 바라고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사실, 진즉에 아버지는 전화번호를 바꾸거나, 더 먼 곳으로 떠나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전화번호는 분명 바뀌었으리라. 3년 전에 산책 좀 다녀오겠다며 현관을 나서더니 귀신같이 사라져버린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보낸 메시지가 엉뚱한 사람의 전화에 도착했거나,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채 전파 상태로 공중에서 흩어져버렸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아버지가 사라졌을 때 어머니가 보였던 이상한 반응을 그는 기억한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시댁에 전화를 하지도 실종신고를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산책’을 간 뒤 일주일이 지나자, 마치 그것만으로 상황이 매듭지어졌다는 듯 그녀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김치를 팔기도 하고 보험회사에서 영업직을 하기도 했다. 대체로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하곤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그는 자신에게 혼란스러워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매일 밤 지친 모습으로 돌아와 콩나물국 따위를 끓여 찬밥을 말아먹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는 당황하거나 우울해하는 것은 생계에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그 또한 눈앞에 놓인,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절망하여 주저앉는 것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수돗물로 입안을 헹구고 거울을 보았다. 눈이 온통 충혈되고 얼굴에 그늘이 진, 퀭한 인상의 그 젊은이는 평판 높은 K 공과 대학의 장학생이었다. 참 성실도 하지, 그렇게 그는 생각한다. 거울 위에 달린, 누렇게 물때가 낀 방수 시계를 본다. 새벽 세 시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다섯 시간은 술집에 있었다는 계산이 된다. 어제저녁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는 안방 이불에 누워있었다. 평일 초저녁에 어머니가 잠들어있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아침에도 그 모습 그대로 자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전날 퇴근했을 때 어머니는 평소보다도 유난히 지치고 수척해 보였다.
 그는 문지방을 넘지 못한 채, 부엌과 안방의 경계에 마냥 서 있었을 뿐이었다. 저 어둡고 퀴퀴한 방 한구석에 돌무더기처럼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이불을 덮고 있는 그녀를, 마찬가지로 석상이라도 된 듯 그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3년 전 아버지가 산책을 나가버린 이후로, 이제 이상한 일이라고는 질색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현관을 박차고 나갔다. 지갑에는 팔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다. 사흘 전 어머니가 용돈으로 쥐여준 이후 한 푼도 건드리지 않은 돈이었다. 그는 연립주택 밖으로 나가, 가로등 불빛을 싸늘하게 반사하며 주차되어있는 승용차들을 지나쳐, 주택가 귀퉁이에 자리 잡은 늘 왁자한 소리가 나는 술집으로 향했다. ‘노가리 1000원’. 가게 이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간판이 붙어있다. 그는 자리를 잡고 천 원짜리 노가리와 삼천 원짜리 소주를 시켰다. 한 잔, 한 잔을 비울 때마다 절벽 끝으로 밀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더욱 느린 속도로만 마셨다. 눌어붙은 기름과 사람 비린내가 가득한 술집에서 팔만 원이 전부 없어질 때까지 다섯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가긴 어딜 가겠는가. 어느새 새벽 거리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분명 아침이 오면 경사로가 많은 이 동네에서 한두 사람이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는 비틀거리며, 추위에 눈과 코가 빨갛게 얼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을 열고 어두컴컴한, 10평짜리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서자 평생 맡아본 적 없는 기묘한 냄새가 났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된장국이 상했나 하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냄새는 안방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실 불도 켜지 않고 화장실로 뛰쳐들어가, 그는 삼만 원어치 술을 전부 게워냈다. 산책간 아버지가 이제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고 술기운 속에서 생각했다. 슬슬 집으로 들어오라고, 그는 휴대전화 안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고요한 집안에선 여전히 형언하기 힘든, 비강에 달라붙는 듯한 불쾌한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비누라도 먹으면 냄새가 지워지겠지, 알코올 때문에 회로가 엉켜버린 머리가 그렇게 생각했다.
 역겨운 로즈메리 향밖에 느껴지지 않는 채로, 그는 화장실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방에 어머니는 그가 술집으로 도망치기 전과 똑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낸다. 아직도 산책 중인 아버지에게 한 번만 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술에 취한 손가락이 계속 잘못된 버튼을 누른다. ‘어머니도 없으니 이제 들어오세요’ 메시지를 전송한다.
 그는 초점이 맞지 않을 정도로 어지럽고, 피로하다. 누워있는 어머니의 발치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아직도 비누 냄새 때문에 속이 메스껍다. 이제 그만 잠들어버려야지, 그는 눈을 감는다. 내일이야 오든 말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있는 것도 아니다. 눈동자는 눈꺼풀 안쪽에서 흩어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불분명한 잔무늬를 보고 있다. 지난 하룻밤 동안 있었던 일을 그의 술 취한 머리가 천천히 정리하려 한다. 그는 작년 교양과목에서 배웠던 어느 서글픈 천체물리학 지식을 떠올린다. 그것이 척추를 타고 온몸을 돌며 사지를 천천히 굳게 하고 있다.
 1974년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서 쏘아 올린 메시지는 외계의 지적생명체가 수신하기를 기대하고 쏘아 보낸 것이 아니었다. 왕복 5만 년이 걸리는 메시지에 과학자들이 기대한 것은 답신이 아니었다. 전파를 송출한 천문대가 ‘이 정도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자면 일종의 시위 행위로 벌인 프로젝트였다. 전파를 받을 누군가가 있든 없든, 답신이 오든 오지 않든 처음부터 상관없는 일이었다.
 취기와 구역질의 산란한 물결 속에서 천천히 의식이 가라앉는다. 아주 깊고 어두운 곳까지 의식이 떨어졌을 때, 그는 멀리서 울리는 듯한 휴대전화의 메시지 착신음을 듣는다. 그러나 굳이 깨어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림자와 침묵이 방안의 낡은 가구며 두 사람을 검은 장막처럼 덮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Posted by Lim_
:

여행(초안)

글/에세이 2022. 2. 10. 22:49 |

여행


 24살 때, 나는 텍사스주 오데사에서 3주 정도를 머물렀다. 그때까지 내게 여행이란 특별한 의미나 목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 돈이 생기면 현실에서 도망치듯, 평소 생활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버리는 나쁜 버릇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데사에서 있었던 우연한 만남 이후로 나의 여행은 차례차례 나름의 체계를 가지기 시작했다.
 오데사의 가을 하늘은 눈에 띄게 높고 투명했다. 그 밑에는 색채 없는 건물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웅크린 것처럼 땅을 뒤덮고 있었다. 하늘과 땅이 유난히 멀어 보이는 곳이었다. 당시 나는 그곳에서 친구 율라이아의 집에 얹혀 지내고 있었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직장을 그만두었고, 그 2년간 월급을 받아 저금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 수중에 있었다. 그리고 전전해에 한국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던 율라이아가 놀러 오지 않겠느냐고 가볍게 말을 꺼냈으니,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던 것이다.
 그전에도 몇 번 미국 남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이토록 큰 땅덩어리에 갈 곳도 구경할 것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었는데, 오데사는 더욱 볼 것이 없는 동네였다. 주변 수십 킬로미터에 몰개성한 주택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거리에는 행인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곳 주민들은 아침이 되면 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출근했다가, 저녁에는 돌아와 잠만 자는 것 같았다.
 첫 주부터 하는 일 없이 지냈다. 정오 즈음 되면 잠에서 깨어, 씻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가 준 예비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줄담배를 피우며 마냥 걸었다. 행인도 없어 한산한 거리를 자동차들이 하나둘씩 달렸다. 가끔은 큰 길가의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었다. 그 동네에서는 늘 담배를 물고 다녔던 것 같다. 공화당이 득세하는 주라서 담뱃값이 싼 것이 다행이었다. 오후 9시가 되면 돌아와 혼자 술을 마시고, 친구와 잡담을 하다 잠들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니 당연하다는 듯 생활이 불균형해지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저녁에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지금 생각하면 친구에게 굉장히 걱정을 끼쳤다―서(西)오데사의 도심을 한밤중에 슬렁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런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새벽마다 인적도 없는 시가지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밤이었다. 층이 낮은 아파트가 늘어선 거리를 꺾어 들어가는데, 골목 저편에서 붉은 불빛이 작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인공적인 빛이 아니라 드럼통에서 타고 있는 장작불인 듯했다. 그리고 곧바로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무슨 말을 외쳤다. 나이든 여자 목소리였다. 남부 사투리가 강하게 섞인 말투로 그녀는 ‘거기 아시아 사람, 뭘 하고 있어?’ 라고 내게 묻고 있었다.
 달리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는 노숙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당시의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지, 자리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정직하게 ‘산책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불꽃이 일렁이는 드럼통 쪽으로 걸어갔다.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백인 여자였다. 온갖 잡동사니를 잔뜩 실어놓은 쇼핑카트를 드럼통 옆에 세워놓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관광객이 밤중에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핫도그를 먹겠느냐’고 물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안 것인데 그녀는 드럼통에 피워놓은 불로 핫도그를 굽고 있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다. 대체 무슨 담력이었는지, 좋다고 대답한 나는 그녀와 핫도그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판단과 행동이 당시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이름은 ‘카를라’였다. 내 이름을 말해주었으나 익숙하지 않은 음절들이었는지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나는 카를라에게 담배를 한 개비 권했다. 그녀는 굉장히 즐겁게 담배를 피우며, 미국에서 노숙자로 사는 것이 어떤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를라는 곧 닥쳐올 겨울을 대비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에, 무조건 서쪽으로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오데사에는 그녀의 여동생이 사는데, 여동생은 ‘멀쩡하게 사는’ 사람이어서 다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나 잠자리까지 빌리지는 못했다고 했다.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나는 카를라의 주변인들이 그녀를 어떤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당장 위험할 일이야 없겠지만 아마 그녀에게 정신질환이나 중독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10분 정도 이야기를 듣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을 나눠주어서 고맙다고, 20달러 지폐를 하나 건넸다. 그것이 잘한 일인지 아닌지는 지금에 와서도 알 수가 없다.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문제에 대해 미국은 유난히 논란이 심한 곳이다. 그러나 당시의 내 입장과 상황을 생각해보면 특별히 더 나은 선택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카를라는 진심으로―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고마워했다.
 나는 친구의 집까지 아무 문제 없이 돌아왔다. 그리고 계피 향이 나는 싸구려 위스키를 몇 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며칠 뒤 토요일 아침, 친구와 나는 식사를 하러 근처의 팬케이크 식당을 찾았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친구는 자신이 돈만 더 벌 수 있다면 텍사스를 떠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때 누군가가 커다란 통유리 창을 두드렸다. 돌아보니 창 너머에서 카를라가 반갑다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조금 놀랐으나, 역시 반가운 마음에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녀의 뒤쪽에는 아무 옷이나 마구 겹쳐 입은 사람들이 서넛 거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더니 그녀는 만족한 듯 그 사람들 사이로 돌아갔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친구는 놀란 표정이었다. 지금은 그의 심정을 백분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친구는 떨떠름한 얼굴로 농담인 양 말했다. 자신은 반년을 여기서 살았어도 친구가 없는데 너는 벌써 길에서 친구를 만들었느냐고 말이다.
 이것이 텍사스주 오데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쓰다 보니 율라이아에게 대단히 폐를 끼쳤구나 싶다. 지금 그는 인디애나에 살고 있고 관계가 소원해진 지 2년 정도 되었다. 카를라는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해 겨울이 오기 전에 충분히 서쪽으로 이동하는 일에 성공했는지, 아직 살아있을지, 확인할 방도도 없다. 다만 그날, 밤거리에서 그녀를 만난 뒤부터, 내게는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한 가지 주제가 생겼다. 예를 들자면, 텍사스에서 아칸소까지 스무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사정사정하며 몇 달러를 빌리더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라져버린 인도계 소년, 캘리포니아에서 몇 번이나 마주쳐 함께 저녁을 먹었던 수염이 새하얀 흑인 노숙자 조나단, 북인도에서 가는 곳마다 떼로 몰려오던 헐벗은 아이들,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잡스러운 수공예품을 기를 쓰며 팔려고 하지만 그냥 주는 돈은 못 받겠다던 네팔의 잡상인 등.
 이처럼 외국을 갈 때마다 가장 눈에 들어오고 인상에 남는 것은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어느 공항에 내려도 유명한 관광지나 유적보다는, 시장 골목과 상업 지역으로 먼저 발걸음이 향한다. 그런 버릇이 시작된 것은 카를라와 만난 뒤부터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만남이었다. 그러나 나의 여행은 그때부터 서서히 의미가 명확해졌다. 나는 박물관이나 고건물을 보기 위해 떠나지 않는다. 낯선 거리에서 사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어 떠난다.
 사람들은 호텔이나 관광버스가 아니라 거리에 있다. 이방인이 되어 스며들면 그 거리는 가끔 고향보다도 친숙하다.

Posted by Lim_
:

녹색 눈물

글/시 2022. 1. 27. 22:59 |

녹색 눈물


이 거리에서 슬픔은 초록빛이다

창동 사거리
하나마트 문 닫을 무렵
당장이라도 얼어 부서질 듯한 하늘
사내는 국방색 코트 속에 오그라들어
건널목 보도에 앉아있다
팔뚝만 한 담금소주 1800ml
열린 병 속 내려다보며
잘못 그려진 초상인 듯
희미하게 웃고 있다

몇 대의 순찰차가 귀 따갑게 지나갔다
곧 눈이 내리면 저들은 사거리 구석에
경광등 켜놓고 잠을 잘 것이다

결빙된 밤안개처럼 눈발 흩날린다
사내는 술병 속 무엇을 들여다본다
탁류 같은 흙빛으로 웃기만 할 뿐
낡은 등산화 위로 하얀 기억들 몰아친다

사내가 잃어버린 슬픔의 방법
나뭇잎 푸르게 인쇄된 페트병
아직 일 리터는 남아있다.

Posted by Lim_
:

남은 해

글/시 2021. 12. 23. 23:24 |

남은 해


 형광등 불 밝은 방, 방향제들 곰팡이 퍼지듯 슬금슬금 늘어난다, 거의 죽어버린 커다란 시간이 방에, 이 방에만 몸뚱어리를 눌러놓았고, 네 방에서 시취가 나, 오늘 어머니는 눈 덮인 전나무 모양 방향제를 하나 건네주었다, 시간은 왜 그저 지나쳐버리지 않는지, 지나가려다 발목 잘린 그것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썩고 장판에는 시쳇물이 철벅, 거리고, 의자 위로 피신한 나는 작년 연말을 악몽처럼 꿈꾼다, 같은 표정의 거대한 시체가 전부 썩기까지 걸린 일 년, 다시는 그런 것을 방안에 들이지 않으리라고, 창문을 열고 책을 덮고 늠름하게, 나의 방문이 시간의 관뚜껑이 되지 않게 하리라고, 무척 진지하게 결단했었고, 결단했으나, 한 해 동안 썩어갈 그것이 무너져서, 드러누워 있다, 저녁마다 가족은 지친 얼굴로 방향제며 비누 따위를, 상냥하게, 책장에 탁자에, 올려놓고, 아니에요 어머니, 이 송장 더미는 내 숨통에 묶여 다녀요, 미처 못한 말을 중얼대며, 신년이 되면 숨질 놈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것은 참 거울을 보는 듯하다.

Posted by Lim_
:

매일 죽는 사람

글/시 2021. 11. 18. 23:09 |

매일 죽는 사람*


 야간버스가 달리고 창밖의 풍경은 계속해서 뒤로만 밀려난다, 종일 서울이 뿜어낸 땀이며 연기며 습기 찬 한숨 따위에 하늘은 새까맣게 흐렸고 그 뒤에 별들은 도사렸고, 오늘은 무너져 내려오지 않으려나 보다, 뒷좌석 사내는 옆구리를 감싸 안고 송장처럼 뻣뻣하게 앉아, 죽어있고, 죽어있는가보다, 성기게 포장된 도로 위에서 버스는 가끔 몸을 벌떡인다, 그때마다 승객들은 덜컥 이를 부딪으며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 곧바로 눈을 감는다 아직 종점이 아니고 종점은, 검은 구름 위의 별들처럼 기다리고 있다가 그쪽에서 엄습해오겠지, 승객들은 모두 그렇게 믿는다 가로등 불빛으로 점멸하는 얼굴에 웃음인 듯 체념을 띄워놓았다, 뒷좌석 사내는 줄곧 죽어있고, 길은 갈수록 좁고 버스는 더욱 몸을 뒤틀어대는데, 사내는 경직되어 흔들리지도 않는다, 이미 종착지가 찾아온 덕인지, 이제 너부러질 일만 남았으니 무너질 밤하늘에 대해서도 내일이면 기점이 될 종점에 대해서도, 땅거미 떼처럼 각자 굴속으로 돌아가 어둠이 걷히지 않기만을 바라는 시민들에 대하여도 걱정하지 않으리라고, 그렇게 단단히 믿어도 야간버스는 종점에 도착하고 뒷자리 사내는 풀려난 용수철처럼, 느닷없이 일어나버린다 그리고, 한쪽 발은 잃어버렸는지 기우뚱, 기우뚱 버스에서 내리고 계속하여 그렇게, 외로만 구두를 신고 컴컴한 개미굴 같은 골목으로, 남의 다리를 빌려 쓰는 듯 걸어간다 걸어가서, 어딘가 서울이 등진 구석으로 삐거덕삐거덕 사라진다.

 

*조해일, <매일 죽는 사람>,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Posted by Lim_
:

책과 담배

글/소설 2021. 10. 22. 01:23 |

(스토리텔링 습작)

책과 담배


 내 친구 이철우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한창 서랍장이며 장롱 따위를 필사적으로 뒤지는 중이었다. 그날은 14일이었는데, 수중에 남은 돈과 날짜를 계산해보니 보름 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만 생활이 가능했다. 나는 어떻게든 담뱃값을 충당하기 위해 여권과 통장이 있는, 가장 안쪽에 있던 서랍까지 전부 꺼내 바닥에 늘어놓았다. 어딘가에 천 원짜리 몇 장이나, 동전, 그도 아니라면 환전할 수 있는 적은 액수의 외화라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도 찾지 못해, 돼먹지 않은 분노로 가슴속이 끓다시피 할 때였다.
 거칠게 전화를 받자 철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서야 나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인데. 내가 되묻자 그는 용건을 이야기했다. 철우는 자신의 막내 여동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은 지금 대학생이고 내년이면 철학과를 졸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수화기로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미 뒤졌던 서랍들을 다시 한번 살피고 있었다. 아무튼, 철우의 말에 의하면 여동생은 3년간 대학을 다니며 처음 입학했을 때 갖고 있던 열정을 전부 잃어버렸다고 한다. 매주 반복되는 장황한 토론과 현학적인 전문용어들 사이에서 완전히 지쳐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왜 그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내심 어떻게 하면 약간의 돈이라도 빌릴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철우는 막내 여동생에게 추천해줄 만한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책을 좋아하던 것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온갖 책을 사서 읽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여동생의 학구열에 다시 불을 붙일만한 책을 내가 추천해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듯했다. 지금의 나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집안이 온통 책장으로 가득했으나 전부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언제부터인가, 쉬는 날에는 책을 읽기보다 잠을 자거나 술을 마시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담배가 중요했다. 집안에 가득한 갖가지 종류의 책들은 벌써 몇 년째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었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 푼돈 찾는 일을 포기하고 거의 해체되다시피 한 장롱 옆에 주저앉았다. 전공과목인 철학에 흥미를 잃었다고 하니 사상서보다는 인문교양서 등을 읽으며 다른 학문에도 흥미를 갖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복수전공도 생각해볼 것 아니냐고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어떤 책이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전화를 든 채 난장판이 된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고개를 향하는 곳마다 과거에 읽었던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있었다. 먼저 윌러드 게일린의 증오와 범죄심리에 대한 인문서를 이야기하고, 고명섭 교수의 인간 내면의 문제적 열정에 관한 책, 카잔차키스의 자서전, 볼테르의 철학소설, 이런 식으로 한참 책 제목들을 나열했다. 사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내뱉는 식이었다.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대학생의 진로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화 저편에서는 컴퓨터로 받아 적고 있는지,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직후 철우가 한 말 때문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내가 열거한 책 중 절반이 이미 절판되었다고 말했다. 절판, 나는 계시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곧바로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인터넷 서점을 검색했다. 철우가 절판되었다고 얘기한 책들은 중고서점에서 최소 만오천 원, 비싼 경우에는 육만 원을 호가하고 있었다. 기분이 몹시 들떠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나는 책장에 있는 오래되고 제본이 호화로운 책들을 검색해보았다. 레프 톨스토이의 은박이 입혀진 특수양장본은 새로 나온 보급판보다 두 배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중고로 팔 만한 책들을 정리해보니, 적당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면 총 합쳐 내 두 달 생활비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불과 십수 분 전까지 아사 직전의 쥐처럼 집안을 뒤져대던 스스로가 거짓말 같았다.
 나는 희희낙락하여 마치 금괴라도 쌓듯 서가를 정리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말했다. 동생한테 얘기해, 내가 저녁 살 테니까 너랑 같이 한번 보자고, 진로같이 중요한 얘기는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야지. 친구는 내 느닷없는 감정변화에 어리둥절한 모양이었으나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다시 연락하겠다며 나는 전화를 끊었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지지 않았다. 값비싼 책들을 방 한쪽에 몰아두고, 외투를 걸친 뒤 집을 나섰다. 이제는 남은 담배가 두 개비뿐이라는 사실에 초조해할 이유도 없었다.
 집 앞의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달을 사는데 40만 원이면 충분한 이 동네에서 나는 누구보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맞은편 건물에서 온종일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마저 유쾌하게 느껴졌다. 늦가을 하늘은 높고 화창했다. 서늘하고 건조한 공기는 담배 맛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책 덕분이었다. 폐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허공으로 뿜어져 나오는 연기를, 나는 만족스럽게 눈으로 좇았다. 그것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흥분했던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몇 권을 판 뒤 월급날이 되면 다시 책을 읽어볼까. 언젠가 이런 날이 또 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꽁초를 버리고, 마지막 한 개비를 꺼내물며 생각했다. 마시면 사라지는 술에 생활이며 돈을 탕진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나을 것이다. 문득, 몇 달 뒤에 내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했고 버릇처럼 불길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일을 지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진로상담 문제를 힘이 닿는 대로 도와줘야 할 것이다. 대학까지 들어갔으면 나보다 나은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마지막 꽁초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이 분명 더 있을 것이다.

Posted by Lim_
:

역전에서

글/시 2021. 10. 15. 22:28 |

역전에서



창동역 1번 출구의 겨울은 줄곧 붉은색이었다

사내가 소주병을 기울이고
포차 천막은 꺾인 날개처럼 퍼덕이는데
석유 히터는 가끔씩
쓸쓸하게 자갈 튀는 소리를 내곤 했다
불콰한 얼굴들은 표정 없이 번들거렸다

붉은 플라스틱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엎어지려는 소주잔을 쥐자
느닷없는 경광봉에 휩쓸려 포차 지붕들은
모조리 도시의 먼 곳으로 밀려났다

창동역 1번 출구 포장마차가 전부 사라진
가로등 불 밝은 멀끔한 광장

미처 취하지 못한 사람들 전철 구르는 소리 아래
공원이 된 폐허를 헤맨다

역사도 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워 나는
한 잔, 한 잔, 더 어두운 길로만 걸어나가고

테이블 끝의 소주잔
젊은 술꾼의 깡마른 손가락에 붙잡히는데

술로 가득 채운 내 몸뚱어리
다시는 역전할 수 없는 가장자리
무채색의 추위
끝에 서서
붙잡아줄 손도 없다.

Posted by Lim_
:

일몰

글/시 2021. 9. 17. 02:06 |

일몰


반투명한 창문 너머
가을날의 태양은
천천히
깊은 한숨 쉬며 멀어져가고
겹겹이 그늘진 건물 안
나는 우두커니 살아있다

깡통처럼 발끝에 채이는 생활
긁히고, 점점 구겨지고
주워갈 사람도, 신도 없어
믿음도 알미늄처럼 색이 바랬다

생활, 생활, 하며 되뇌는
머리는 진흙 뻘 같아
담배나 빼어물며 나
어제 떠난 누군가의 자리에
서서
한 모금, 한 모금
살고

오늘 저녁에도

제 주인 잃은 그림자들
술렁술렁 어두운 골목으로 떠날 테고……

나는 어리둥절, 백치처럼 남아
어디 이정표는 없을까
우뚝 서 있는 철인은
없을까,
그러나 없겠지

천쪼가리 버리듯 하루는 또 하늘하늘 날아가고
나는 전날 눈 뜨고 죽었을 누군가의 묘석
영정에 남은 적막한 그리움
따위를 생각하고 
또 생활
하고.

Posted by Lim_
:

길 위의 피

글/에세이 2021. 9. 9. 23:05 |

길 위의 피


 나는 손안에서 담뱃갑을 돌리며 시멘트 위의 핏자국을 보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방금 내가 보았던 일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지각쯤은 간단히 용서해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방금까지만 해도 여자 둘의 새된 비명과 울음소리, 경찰과 구경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30분 전, 나는 역을 향해 걷고 있었고 중간에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단지를 질러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었다. 20미터 정도 앞에 개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는 사람이 각각 둘 있었다.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는 한 명, 반대 방향에서 오는 한 명이 막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내 쪽에서 뒷모습만 보이는 여자는 애견용 목줄을 쥐고 있었다. 줄 끝에는 작고 하얀 소형견이 있었다.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은 이제 30대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가 쥔 줄은 털이 누런빛이고 주둥이가 길쭉한, 커다란 개의 목에 걸려있었다.
 추위가 막 물러가기 시작하는 3월의 쾌적한 오후였다. 하늘은 맑았고 아직 기울지 않은 태양이 얼굴과 외투 위로 따사로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곧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술도 한잔 마실 예정으로, 들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앞에 가던 작은 개가 날카롭게 짖기 시작했다. 그 새되고 히스테릭한 짖는 소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대형견을 향한 것이었다. 개들의 심리 같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보아하니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동족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깡깡댄다고 해야 할지 깽깽댄다고 해야 할지, 여하간 어지간히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짖었다. 개 주인은 목줄을 잡아당기며 개에게 그만두라고, 사람 말로 어르고 있었다. 커다란 놈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짖는 녀석을 쳐다볼 뿐, 짖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는 그 직후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딱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계속 성가시게 짖어대는 작은 놈에게 느닷없이 커다란 놈이 덤벼든 것이다. 10살짜리 사내아이만 한 몸집이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바람에 개 주인은 목줄을 놓쳐버렸다. 그 커다랗고 누런 개는 순식간에 작은 개의 배를 힘껏 물더니 도리질을 치며 양옆으로 마구 흔들어댔다. 개 주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달려들어 멈출 생각은 없는 듯했다. 하기야 10초도 되지 않아 벌써 사방에 선혈이 튀고, 하얗고 작던 개는 새빨갛게 물들어버렸으니, 아무리 자신의 개라고 해도 선뜻 손을 대기 힘든 광경이기는 했다. 나는 10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서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이 키우던 개에게 겁을 집어먹은 주인들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도무지 우스운 상황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을 들은 아파트 경비원이 달려오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젠 구경꾼들까지 함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6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경비원은 어떻게든 개들을 떼어놓으려고―사실 개들끼리 맞붙은 상황도 아니고 일방적인 도살이었지만― 애를 쓰고 있었으나, 이미 피를 본 누런 개는 아주 끝장을 낼 기세였다.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커다란 녀석이 붉은 덩어리를 한쪽에 뱉어놓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시멘트 위에 피가 흥건하게 고였고 개 주인들의 울음소리, 비명, 넋이 나간듯한 흐느낌까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거기다가 구경꾼들까지 한몫하여 집단으로 알아듣기 힘든 고성을 내고 있었다. 커다란 개 쪽의 주인을 책망하는 욕설, 어떡해, 어떡해, 하며 상황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드는 황망한 목소리들…….
 결국 순찰차가 주인 둘과 주둥이가 피투성이가 된 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작은 개를 데리고 현장을 떠났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한동안 서로 의견을 말하고, 대화를 나누며 수런수런하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제 갈 길을 갔다. 순찰차가 떠나고 5분도 되지 않아 자리에는 피 웅덩이를 치우는 경비원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경비원마저 청소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마침내 나는 일이 벌어졌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여태껏 나는 멀찍이서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벌써 스며들어버린 핏자국이 시멘트 바닥에 얼룩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몹시 담배가 피우고 싶었으나 남의 아파트 단지에서 그럴 수는 없어, 공연히 손으로 담뱃갑만 돌려댔다. 5분 가량, 머릿속의 난잡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나는 넋이 나간 듯 서 있었다. ‘짐승’과 ‘동물’이라는 단어가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온갖 문장들 속에 배치되었다가 사라지곤 했다.
 시계를 확인하자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정말로 호되게 욕을 들을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어, 조금 늦겠다고 전하면서 바쁘게 역으로 향했다. 25분 즈음 후에 나는 의정부 시내의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있었다.
 서로 얼큰히 술이 들어갔을 무렵 나는 오늘 보았던 끔찍하고 흥미로운 광경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일이 일어난 순서에 따라 이해하기 쉽도록, 그리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을 수 있도록 간략하면서도 완급을 주어 설명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이입하여 화를 내는 등 다양했으나, 의견은 전부 비슷했다. 그 여자는 왜 목줄을 놓쳤느냐, 왜 곧바로 달려들어 멈추지 않았느냐, 그러게 큰 개들은 입마개를 채워야 한다, 등등.
 아니, 그게 아니야, 우리 곁의 짐승들 이야기를 한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정정하려 했으나 대화는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용훈이는 공무원 시험 벌써 두 번째 아니냐, 승호는 요즘 주식 한다더라, 종인이는 대기업까지 들어가더니 도대체 왜 그만두고 나왔냐, 이러쿵저러쿵……. 이런 대화가 되어버리면 그다지 할 말이 없다. 나는 이빨을 상대의 배에 깊숙이 박아넣고 양옆으로 흔들어대던, 그 커다랗고 누런 개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 헝겊처럼 되어버린 작은 개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는 나는 웃는 얼굴로 저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 누런 개는 상대에게 덤벼들기 전까지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대형견들이 으레 그러하듯 늠름하면서도 온순한 표정으로 서 있었을 뿐이다. 나는 다시 한번 짐승과 동물이라는 단어에 대해, 집착하듯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어쩐지 그것들은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길들여있더라도 이따금 마구잡이여도 괜찮다. 동물이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그래야만 동물이다. 누군가 건배를 외치기에 나도 맥주잔을 들었다.
 술에 취한 친구들의 표정을 돌아보았다. 새삼 술에 취해도 우리는 동물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이곳은 참 안전하구나, 술집마저도 안전하구나, 다행이고 당연하고 조금은 슬프다.
 그날 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술기운 속에서 잡스러운 생각만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털 없는 짐승이 아니라 진짜 짐승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송곳니도 있고 발톱도 있으며 마구잡이로 죽을 수도 있는 짐승,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나, 카프카에게 기도하면 되는 일인가. 그러면서 집까지 돌아와 이불 위에 쓰러져 잠들었다.
 한주 뒤 비가 올 때까지 검은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Posted by Lim_
:

(엽편)구멍

글/소설 2021. 8. 18. 21:17 |

(고전적 글쓰기 연습)

구멍


 나는 지금 탁자 위에 앉아 검은 파도가 치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재앙은 모두 내가 불러온 것이다. 현실을 캄캄한 구멍 속에 집어넣으려 했던 결과, 이제 곧 내가 그 어둠에 삼켜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힘주어 말하건데, 나는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처음에는 부엌에 놔두었던 음식이 몇 개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정도였다.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먹어치운 뒤에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 터다. 나는 혼자 살고 있었고 내 기억력은 언제나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자 내 건망증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부엌에 올려놓았던 사과나 식빵들, 장을 보고 탁자 위에 던져둔 채소들이 갉아 먹혔다. 다용도실에 있는 쌀자루의 귀퉁이가 터진 것까지 발견하자 나는 마침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입구에서는 커다란 카트를 끌고 다니는 행상인이 해충구제 약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카트에 달린 파라솔 밑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에게 집에 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어가 인쇄된 상자를 하나 내밀며, 음식에 섞어 집안에 뿌려두라고 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독한 약이니 엄한 데 쓰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설명을 들은 대로 빵조각에 약을 섞어 부엌과 다용도실 구석에 뿌려두었다. 쥐약을 집어 먹은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고 싶었지만 이미 외출할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서기 전 집안 곳곳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거실의 어두운 구석에서 나는 놈들의 소굴을 발견했다. 거실 벽이 나무 몰딩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 확실했다. 그곳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어서 뚫어놓은 듯한 작은 구멍이 있었다. 구멍은 성인 남성의 주먹 절반 정도 되는 크기였다. 안쪽은 아주 깜깜해서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깊은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저녁에 돌아오면 전부 정리되어 있으려니 하며, 나는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약을 뿌려두었던 곳을 확인했다. 검고 지저분한 쥐의 시체 하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음습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축 늘어진 채 다용도실 한복판에서 죽어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쌀 포대를 갉아먹고 있었는지 주변에 쌀알이 흩어져있었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시체를 집어 들었다. 죽은 생물을 만질 때의 촉감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쥐를 들고 선 채로 잠시 고민했는데,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 버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일반 쓰레기는 아니고, 음식물쓰레기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물도감에 따르면 쥐들은 잡식이라고 했다. 놈들은 무엇이든 먹으며, 단 한시라도 먹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5분에서 10분만 굶어도 죽어버리는 것이 쥐라고, 분명히 읽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는 쥐의 몸뚱어리를 거실로 들고 가, 어둡고 캄캄한 놈들의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것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 뒤로 사흘 정도 아무 일도 없었다. 쥐들은 더 이상 내 음식을 훔쳐가지 않았고, 나도 구멍을 내버려 뒀다. 시멘트를 발라 막아버릴까 생각해봤지만, 놈들이 음식을 훔쳐가지 않는다면 그럴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그 구멍은 의외로 내게 편리한 것이기도 했다. 독신생활을 하며 생기는, 음식물 찌꺼기가 잔뜩 들러붙은 비닐이라든가, 종이와 플라스틱이 단단히 붙어있는 포장지 등, 배출이 난감한 쓰레기는 그 구멍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밖으로 밀려 나오거나 안에서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 사실로 보아 구멍 안에 사는 것들이 알아서 잘 처리하는 것 같았다. 쓰레기를 구겨 넣을 때마다 모서리끼리 마찰하기 때문인지 구멍이 조금씩 커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특이한 취미가 생겼다. 신문을 읽다가 불쾌한 기사가 있으면 오려서 구멍에 넣었다. 주로 정치, 사회와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전기, 가스비 따위의 청구서는 요금을 지불한 뒤에 누군가에게 복수라도 하는 기분으로 구멍에 욱여넣었다. 구멍은 정말 끝도 없이 깊은 것인지 아니면 그 안의 짐승들이 내가 넣는 불쾌한 것들을 전부 먹어치우고 있는 것인지, 절대 막히는 일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이 구멍이 집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구멍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온갖 불쾌하고 어딘가 멀리 집어던지고 싶은 물건들―혹은 생각들―을 구멍이 훌륭하게 처리해주지 않는가. 성가시고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이 구멍 안에서 해충들에게 갉아 먹히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그 새까맣고 커다란 구멍이 있으니 그러한 상상은 노력 없이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온갖 것들을 구멍에 집어넣었다. 누군가의 부고(訃告), 5년 넘게 만나지 않은 옛 친구가 보내온 청첩장, 구청에서 보낸 선거홍보지, 죽어버린 화초, 심지어 사회생활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는 지갑에 있던 30여 장의 명함을 전부 구겨 넣기도 했다. 내 손길을 타면서 구멍은 계속해서 커졌고, 나는 내가 ‘그것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분명히 알고는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표현을 일차원적이고 피상적인 의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구멍’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었다. 생활의 일부이자 나의 특별한 쓰레기통이 된, 새카만 입구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구멍의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한 무리의 쥐들이 계속해서 내가 주는 먹이를 갉아먹으며 생존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거실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우연이었다. 젓가락으로 집은 반찬이 기름이나 조청 때문에 미끄러워서 떨어지는 일은 아무 때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콩은 바닥에 떨어져 2cm 정도를 굴러갔다. 나는 그것이 굴러간 방향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무심히 생각하며, 그리로 시선을 향했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구멍이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세배 이상 넓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벌어졌다. 굶주리고 잔악한―틀림없이 내가 먹여온 것들 때문에― 검은 파도가 핏빛으로 점멸하는 눈동자들과 함께 해일처럼 쏟아져나왔다.
 나에게는 경악할 시간도, 도망칠 시간도 없었다. 나는 식기들을 전부 밀어내며 탁자 위로 뛰듯이 올라갔다. 놈들은 순식간에 온 집안을 뒤덮었다. 곧이어 집 전체가 비명 지르는 것처럼 할퀴고 뜯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들은 내가 올라앉은 탁자 다리를 그 흉측한 앞니로 갉아 먹고 있었다.

Posted by Lim_
:

부취(腐臭)

글/시 2021. 7. 30. 01:37 |

부취(腐臭)


매미가 울면 마을은 가난해서
들척지근하게 썩는다

담쟁이넝쿨 까맣게 붙은 벽
도둑고양이는 다 삼키지 못한 계절을
왁왁 뱉어놓고

계단참에 엎질러진 거실
생활의 내장에서 왱왱거리는
아스파탐, 소주 냄새

매미가 울면 온갖 산 것들이
대기에 포자며 정충을 풀어놓아
허파는 차라리 익사를 꿈꾸며 헐떡이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새날이 밝으면
먼 데서 날짐승들이
부취를 모조리 쪼아먹으러 올 것이다

그러니 매미가 울어도 가난해도
나는 이끼 짙은 그림자 밑에 자욱한 연기로 서서
백 번의 새벽만 날갯짓으로 오고 갈 것을
생명이 송두리째 썩어 다시 하얗게 탈취될 것을

밤마다 기도하며 하늘로 분향하는 것이다

Posted by Lim_
:

시인의 피

글/시 2021. 7. 15. 23:03 |

시인의 피


꽃나무가 어떤 꽃을 피우는가는
주로 육신에 도는 수액에 달려있다

개나리는 저대로 개나리꽃을 피우고
장미나무는 싫어도 장미꽃을 피우고
양귀비는 저가 양귀비인 줄 몰라도
눈 따가운 빨간 꽃봉오리를 피운다

제복들이 곳곳의 둔덕을 드나들었다
정원사처럼 무장하고 제초제를 들었다
개천은 제 갈 길만 몇 번이나 겹쳐 흘렀고
하늘은 파랗게 무심하여 가끔 흰구름이나 지어주었다

어찌 되었건 유월에는 각혈만큼 새빨간 꽃잎에
햇빛이 방울져 떨어졌다

북인도의 고속도로 위에서 사흘을 지내고
흙먼지뿐인 휴게소에는 멀대 같은 양귀비
찢어지게 웃고 있었고
나는 그 입술 하나를 씹었다

덜컹대며 뼈마디 부딪는 버스 의자에서
아픔도 권태도 죄도 없이
나는 어린 날의 시인들에 대해
내가 삼켜온 핏빛 위안에 대해 생각했다.

Posted by Lim_
:

복도의 눈

글/에세이 2021. 7. 8. 22:59 |

복도의 눈


 얼마 전, 아래층 복도에 방범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올봄에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자비로 들여놓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303호로 이사 올 때부터, 결국에는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방범 카메라 등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것은 그들이 이사 온 봄날부터 확실했다.
 애당초 303호의 전 세입자가 도망치듯 빌라를 나갔을 때도 그랬다. 그에 대해 입주민들이 서로 대화를 나눈 일은 없었지만, 나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고 확신한다. 문제는 현관을 마주하고 있는 304호에 거주하는 술주정뱅이인 것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 빌라로 이사 왔던 것이 약 6년 전이다. 그때부터 그는 매일매일, 꾸준하게 건물의 모든 세입자를 괴롭혀왔다. 그의 주정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매일 오후 10시가 되면 취해서 소리를 지르며 동거인―어쩌면 아내일지도 모르겠다―에게 욕지거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1시 30분 즈음 되면 빌라의 1층부터 4층 사이 현관 하나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는 문을 두들겨대며 ‘도무지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라고 말도 안 되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지독한 주정은 새벽 2시경까지 계속되다가, 결국 너무 취해서 기력이 다 떨어진 그가 동거인에게 힘없이 욕설을 하며 곯아떨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일련의 일들이 이 알코올중독자의 찢어지는 목소리와 방음설비가 전혀 되지 않은 건물 덕분에 끊임없이 빌라 사람들을 괴롭혀왔다.
 불행히도 내가 사는 곳이 4층이기 때문에 그의 ‘주정 시간’이 되면 나는 담배를 피우러 나가지 못했다. 건물의 계단 사이에 있는 복도는 사실 복도라기보다 계단참이라고 불러야 할만한 넓이라서, 그 시간에 건물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주정뱅이와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사소한 불편은 그렇다 치고, 이런 일이 내가 알기에만도 6년은 지속되었는데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곳이 도봉구의 후미진 주택가이기 때문이다.
 경험에 따르면 인천이든 의정부든 도봉구든, 오래되고 여름이 찾아오기만 하면 온 동네에서 음식물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들에게 3층의 술주정뱅이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사실은 그가 건물에 살든 살지 않든 별반 달라지는 것도 없다. 이 동네에서는 계단과 복도를 서너 차례 거쳐 건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더욱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사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자신의 개한테 욕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도봉구 살라마노 영감이라든가, 길에서 소주를 마시며 보행자들에게 트집을 잡는 연배를 분간하기 힘든 꼽추, 주말 새벽마다 큰 소리로 발라드 가요를 열창하는 건너편 건물의 남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현관문을 열고 나서기만 하면, 동네가 하나로 연결된 정신병동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무엇하러 성가신 일을 감수하며 경찰을 부르거나―우리는 경찰이 이런 상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민원을 제출하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올해 초에 이사 온 젊은 부부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었다. 초봄, 그들이 타고 왔던 원색의 빨간 오픈카를 보았을 때부터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들이 약 3주에 걸쳐 303호를 개조하고, 새하얀 벽지와 페인트를 바르고, 인테리어 업자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보았다. 솔직히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부동산 업자에게 속았을지도 모른다. 이 마을의 현관은 각각이 병실 문이고, 마을 전체가 병동의 홀Hall이거나 통로라는 것을 젊은 부부는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사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부부는 304호 주정뱅이와 부딪쳤다. 사실 부딪쳤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경찰서에 전화한 모양이었다. 차를 타고서 경찰 둘이 왔고, 한밤중에 304호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주정뱅이는 1시간이 넘게 서로 버티고 서서 언쟁했다. 다음 날 밤에도 경찰이 왔다. 그다음 날에는 머리끝까지 취기가 오른 주정뱅이가 303호 문을 쾅쾅 두들기며 조롱 섞인 사죄와 차마 말하기 힘든 상욕을 목청 높여 반복했다. 이제 밤 10시가 지나면 빌라의 3층 복도는 도무지 지나갈 수도 없는 공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정말로 피로에 찌들어있었다. 안 그래도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는데, 이런 바보 같은 짓거리가 두세 달 넘게 반복되자 문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밤이 되면 담배는 아주 포기해야만 했다. 그때쯤 나는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폐를 끼치는 저 알코올중독자인지, 괜히 말벌집을 들쑤셔놓은 젊은 부부인지,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며 상황을 깨끗이 해결하지도 못하는 경찰인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혼탁하게 흐르다 보니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한 정치인에게까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바로 2주 전, 303호의 젊은 부부가 3층 복도에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다. 첫날에는 고정을 잘못시켜 놓았는지, 벽에서 떨어져 전선에 매달린 채로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나보다 먼저 발견한 304호의 주정뱅이가 주먹으로 쳤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무튼, 다음 날에는 콘크리트 나사로 벽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약간 다른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 10시가 지나자 혀가 꼬인 주정뱅이가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하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30분 넘게 혼자서 욕하고 고함을 쳐대기에 도대체 무슨 일인가 계단참까지 내려가 보았다. 주정뱅이는 앞집의 문을 두들기며 욕을 하는 대신 방범 카메라의 렌즈를 쳐다보며 큰 소리로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거리낄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 마치 카메라 앞에 선 배우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연극적인 태도로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뭐지, 무슨 상황이지. 이전과는 다른 뜻에서 정신이 어지러웠다. 이 사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진행될지 전혀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수면제를 삼키고, 소음 속에서 어렵게 잠이 들었다.
 그러나 젊은 부부는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그날부터 이틀 정도, 304호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낮에 작게 나곤 하던 생활소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예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알고 보니 3층의 부부는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을 경찰에게 제출한 모양이었다. 이 이야기는 1층의 철도공무원에게 전해 들었는데, 철도공무원 아저씨와 나는 평소 건물 앞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며 친해진 사이였다.
 사흘이 지나고 문제의 술주정뱅이는 돌아왔다. 이전에 비하면 훨씬 조용해진 것이 몹시 놀라웠다. 아직도 밤 10시가 되면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가 있긴 하지만, 현관 밖까지 나와 엄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며 조용히 해달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지는 않게 되었다. 젊은 부부가 달아놓은 그 기계의 효과가 감탄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한 것은 왜일까. 일이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나는 3층 복도 벽에 붙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잠시 멈춰선다.
 그 까만 렌즈가 비추고 있는, 계단참처럼 비좁은 복도에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해결방안이라거나 답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도봉구가 모조리 방범 카메라로 뒤덮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안전해진 3층 복도를 지나가면서 나는 매번 머리가 복잡하고, 어서 건물을 빠져나가 담배나 태우게 되는데, 거리는 여전히 바뀐 것이 없다.

Posted by Lim_
:

봄날

글/에세이 2021. 4. 8. 23:13 |

봄날


 겨울이 지나가고, 오전부터 차차 햇볕이 따뜻해지면 아무래도 그 온기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스스로 겨울을 좋아한다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데는 겨울 공기가 제일이라고 믿고 있더라도 그렇다. 겨울 공기나 냄새가 정신에 약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도 역시 그 계절은 신체적으로 괴롭다. 추운 날씨는 보일러가 제대로 안 도는 방부터 시작하여 밖에서 담배 피울 자유도 빼앗아가는 등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
 그러다 봄날이 오면 따뜻한 날씨는 곧장 반가운 마음을 들게 한다. 행인들은 한 꺼풀씩 겉옷을 벗고 여기저기 노란색, 분홍색 꽃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피워도 손이 곱지 않으니 새삼 웃음까지 나온다. 겨우내 그저 회색조였던 동네에 색깔이 입혀지면, 이렇게 내몰린 동네에 사는 불쾌한 이웃들마저, 그들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그러한 엉뚱한 생각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얼마 전 아래층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원래 살던 세입자는 그 앞집의 알코올중독 가족이 하도 일 년 내내 소란이라 이사를 갔다는 게 빌라 사람들의 추측이다. 바로 그 집으로, 봄날이 한창일 때 새로운 가족이 들어온 것이다. 집 앞 골목에 서서 담배 피우며 그들이 이사 오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 부부였다. 즉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별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누구네 아들’이 아니고서야 젊은 부부가 이런 동네 말고 어디서 집을 구할까. 그들도 봄이라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거다. 앞으로 아래층에서 그들에게 벌어지게 될 일이라는 것은, 정말로 내 손 밖의 될 대로 될 일이다. 빨간 원색의 승용차를 타고 온 젊은 부부의 얼굴을 보니 그들은 부동산에서 그놈의 앞집 식구에 대해 듣지 못한 것처럼 생각됐다. 아니면 듣긴 들었으나 다른 방도가 없기에 저런 표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이건 내가 간섭할 문제는 아니다. 그저 날이 따뜻하고 지구가 한 바퀴 돌아서 기분이 좋다. 이사 온 가족이 집을 꾸민다고 드릴이며 망치를 휘둘러대는 소리가 나도 짜증이 솟지 않는다. 아마 언제가 되건, 누가 먼저 시작하건 아래층에선 큰소리가 몇 번 나겠지. 어쩌면 또 경찰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봄이 끝나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따듯한 볕 아래서 담배 태우는 나날이 즐겁고, 누군가가 도망가고 사라지는 일은 겨울 즈음에나 일어날 일이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