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빈 방에서 너는 울고 있고
닫힌 문은 이쪽을 보는 일 없고
내 마음에선 알코올 냄새
함께 눈물 흘릴 방법을 찾고 있다
진눈깨비라도 내려라, 술기운이나 돋게, 했더니
더러운 눈이 내려 거리가 꽝꽝 잠겼다
안주머니에 넣은 손에
영수증 다발 잡혀 나오고, 지폐는 한 장
문 앞에서 신발을 신으며 나는
괴물을 만나러 가련다
네 문 앞에서 문을 닫으며, 웃으러 간다
겨울 밤거리
눈 내리는 하늘은 밝게 비웃고
더 많이 취하려고 내 입에선
이빨이 돋고
네 어깨가 슬픔에 무너지던 순간을
이해하고, 비통해하고 싶어
발밑에선 유리 깨지는 소리
단골 술집은 불이 꺼져 있다
그야 세종대왕 한 장으로는
그놈이 내 앞에 앉아주지도 않았겠지만
아아, 사랑하는 네가 여기 있다면
이빨은 소리 내며 웃고
깜깜한 유리문에 이마를 박으며
널 두고 나온 거리는 지옥보다 시려라
심장이 농담한다
술김에 쳐들어갈 친구네 현관도 없고
사랑스러운 네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글'에 해당되는 글 355건
- 2021.01.03 닫힌 문
- 2020.12.06 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 2020.11.21 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 2020.11.12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 2020.10.30 책들, 그리고 삶들
- 2020.10.25 경계선
- 2020.04.16 봄의 조각들
- 2020.02.04 동생의 기억
- 2020.01.29 과거를 생각하며
- 2020.01.02 슬퍼하는 나는 슬픔 자체가 슬픈 존재인가 1
- 2020.01.02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 2019.12.28 태양이 얼어붙어서 1
- 2019.12.25 겨울안개
- 2019.12.20 암막 같은 희망
- 2019.12.17 꽃봉오리 속의 지혜
- 2019.12.14 念
- 2019.12.11 질식의 땅
- 2019.12.10 불야성
- 2019.12.09 無名 1
- 2019.12.07 펜을 문 짐승
- 2019.12.06 부정否定의 시 1
- 2019.12.03 첫눈 1
- 2019.12.02 몇 가지 겨울
- 2019.11.27 나의 어리석음과
- 2019.11.25 도심, 초겨울
- 2019.11.21 알코올의 밤
- 2019.11.17 늑대의 시
- 2019.11.14 가을의 울음소리
- 2019.11.14 연초에 걸렸던 결핵
- 2019.11.11 짐승의 노래
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글/시 2020. 12. 6. 21:41 |두개골 한 겹 안팎에서
너는 고함을 지르고 있다
너는 그와 드잡이질을 한다
그리고 너는 앉아서
천공에 모독의 함성을 지른다
저쪽의 너는
얼굴을 부여잡고 공포에 웅크린다
구석에서 너는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읊조린다
너는 드러누워
자신의 심장을 겨냥 중이다
그리고 장님인 너는
어디에도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너희들의 땅에서는
만개한 꽃에 서리가 내리고
담뱃잎과 버섯을 태운 연기가 앞을 가리니
나는 하얀 알약
너희들의 영혼을 빼앗으련다.
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글/시 2020. 11. 21. 21:00 |그곳에선 하수구 냄새가 났다
피 대신 치기가 혈관에 흐를 때는
네온사인만 켜지면 달려나갔지
빨간 십자가 지상에 우글대면 달려나갔지
중랑천이 빛나는 걸 보려고 뛰었지
징검다리에 말뚝처럼 서서
물의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가로등 빛이 반짝이는 수면에 홀려있노라면
세상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
바보 같아…… 하천은
함성을 지르는 일도 없고
대답해줄 것 같은 반투명한 입술은
조롱하고 비웃는 짓뿐
핏줄에선 치기와 함께
혈액도 빠져나간 듯
하천 한복판 물빛이 비추는 얼굴은
분명 빈혈 환자 같을 터다
사람들은 세련된 스포츠웨어에
이어폰을 꽂고 기계로 심박수를 세고
물이야 흐르든지 말든지
얼굴 찾는 일도 이제는 그저
이끼를 씹는 맛이라
시내 쪽이 빛으로 불타는 도시의 야경에
흐르는 물에 쓴 침을 뱉고,
지갑에 든 돈으로는 담배 아니면 막걸리구나
기적은 없다, 곤란하다.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글/시 2020. 11. 12. 22:51 |새벽 2시, 도봉로 130길
불 꺼진 간판 아래
나는 장대처럼 서 있는 거다
목욕탕 굴뚝처럼 연기 뿜으며
네가 있을 자리를 더듬어보는 거다
그러면 구름에 가린 달처럼
머리 위 불 켜진 창문에서
너는 늙은 목소리로 흐느끼는 거다
그리고 너는 캄캄한 연립주택 사이
놀이터 저편에서 비명 지르는 거다
아직도 흐느끼는 너는
골목 너머 다투고 있는 젊은 연인인 거다
맹렬하게 타오르며
네 남자친구에게 따지고 있는 거다
내가 네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로 보이냐고
가스버너 불꽃같이 쏘아붙이는 거다
그러면 나는 몰래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는 거다
머리 위에서 너는 왜 울지, 하고
희희낙락 연기에 잠기는 거다.
책들, 그리고 삶들
글/에세이 2020. 10. 30. 18:06 |책들, 그리고 삶들
20살 즈음 나는 헌책방에서 『말도로르의 노래』 2편과 4, 5편을 찾아냈다. 당시 나는 그로부터 수년 전에 민음사에서 낸 동일한 시집의 1편을 읽은 뒤였다. 강한 감명을 받고 이것이 6편으로 이루어진 산문시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책방과 도서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1편 이후의 번역본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잠깐 『말도로르의 노래』가 내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말하고 싶다. 나는 10대 중반부터 구약, 신약은 물론 불교 경전과 주역, 코란, 탈무드와 카발라 관련 도서 따위를 귀신에 홀린 듯이 뒤져댔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의 발생과 변형, 그것이 인간행동이나 문화에 끼치는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서는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똑같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이었다. 기독교 영지주의나 조로아스터 교리, 한국 조계종의 근원인 임제종에 대해서는 깊은 흥미를 느끼고 공부도 나름 해보았지만, 그것들이 내 가슴을 꿰뚫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칠 때, 차라리 내 영혼을 개혁한 것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나 장 그르니에의 『섬』,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들이었다. 그 책들을 통해서 생겨난 것 같은 내 안의 교리는 알베르 카뮈와 도스토옙스키, 니체 등과 함께 거의 종교나 다름없는 형태가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날것의 삶밖에 없다는 종교 말이다.
그러나 안심하지도 만족하지도 못했다. 아니, 애당초 내 안의 그 ‘종교’에 의하면 나는 절대 안심하지도 만족하지도 못한다. 나는 감각과 지각과 경험을 무차별하게 씹어 삼키는 목 아래가 없는 머리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분노와 증오가 어디서 생겨나서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내 머리통을 언젠가 보았던 정신분열증 환자의 병실처럼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 병실의 벽에는 온갖 연결되지 않고, 상충하고, 모순되는 단어들이 진심을 다한 필압으로 빼곡하게 쓰여있었다. 그런 이미지들과 몇 년을 정신병동에서 살다 퇴원한 친척의 살찌고 둔해진 얼굴 같은 것은 아직도 내게 오랜 위협으로 남아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영승 선생님이 내게 민음사에서 낸 『말도로르의 노래』를 추천했다. 수업 중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첫 두어 페이지만으로 나는 완전히 매혹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 곧바로 사서 전부 읽었고, 다시 읽었다. 과장 없는 본심으로 말하는데, 나는 사람들이 30~40년을 인생 속에서 헤매다가 성경을 읽고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얘기가 헛소리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떤 텍스트들은 정말로 그런 힘이 있고, 사람마다 성질이나 자라온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텍스트가 다른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말은 모든 종교인에게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딱히 악의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말해두고 싶다.
그러니까 그 악의와 신성모독과 증오로 똘똘 뭉친 산문시집이 내 성서가 된 것이다. 적어도 당시에는 말이다. 마음이 터질 것 같을 때면 그 책을 여기저기 펴보며 여러 번을 다시 읽었다. 어쩐지 ‘괜찮다’는 기분이 들고 피부 위로 바늘처럼 올라오던 혼란들이 아프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시집을 6편까지 전부 읽고 싶었고, 몇 년을 헌책방부터 고서점까지 닥치는 대로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도저히 정보조차 나오지 않아서 방통대 불문학과에 입학했다. 불어를 배워서 원서를 읽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불어로 동화책을 더듬거리며 읽을 때쯤 이건 아무래도 보통 시간이 걸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별생각 없이 들른 헌책방에서 청하 출판사의 『말도로르의 노래』 2편 한 권과 들어본 적도 없는 출판사의 4, 5편을 묶어놓은 한 권을 발견한 것이다. 2편은 1987년에 발행된 것으로 낡고 여기저기 밑줄이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긴 했지만 비교적 깔끔했다. 그러나 4, 5편을 묶어놓은 것은 엄청나게 오래된 데다가 단어 대부분이 한자표기였고 심지어 세로쓰기 형태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몹시 흥분했고 바로 그것들을 집어 주인에게 계산해달라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놀랍게도 주인은 2천 원을 받고 그 두 권을 팔아주었다.
여기까지 얘기해놓고 허무한 말이긴 한데, 일단 정보는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써야겠다. 『말도로르의 노래』는 2018년에 1편부터 6편까지 완역되어 판매되고 있다. 그때까지의 내 노력이 도대체 뭐였는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잘된 일이다. 불문학과는 애저녁에 그만두었다. 공부도 공부지만 술자리에서 학과장한테 거하게 사고를 쳤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불어 인사랑 자기소개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서론이 길었는데 사실 이 글의 주제는 그 산문시집 자체가 아니다.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책이 내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공익근무를 끝내고 22살 때 나는 미국에 잠깐 가게 되었다. 18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앤드류라는 친구의 고향에 함께 가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 집은 차상위 계층이었고 나도 편의점 새벽 아르바이트나 몇 개월 하다가 그만둔 상황이어서 도무지 해외여행을 갈 상태가 아니었지만, 친구는 그냥 비행기 티켓 값만 내고 나머지는 맡기라고 했다. 체면 차릴 이유도 없었고 한국에서 할 일도 없었다. 통장 잔액을 다 긁어내니 왕복티켓 값은 나왔다.
여행이라기보단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데 다만 비행기를 탈 뿐이라는 기분이었다. 앤드류의 고향 집은 아칸소주의 로저스시(市) 교외에 있었다. 그야말로 남부 깡촌의 아무것도 없는 동네였다. 거기서 2주를 보내야 하니 나는 한가할 때가 많을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2년 전에 사놓고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도무지 계속 읽을 수가 없었던 그 책을 짐가방에 넣었다. 세로쓰기에 한자투성이인 『말도로르의 노래』 4, 5편 말이다. 친구에게 들은 바로는 주택 간 거리가 거의 1km씩 되고, 집 맞은편은 옥수수인지 뭔가를 키우는 거대농장이고, 아직도 카우보이 비스무리한 영감님들이 농지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곳이라고 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반억지로라도, 그 활자가 안경알 위를 헤매다니는 것 같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텍사스공항으로, 텍사스공항에서 아칸소공항으로 날아갔다. 아칸소공항은 인천과 텍사스에 비하면 거의 오두막으로 보일 정도였다. 여하간 출구로 나오자 앤드류의 어머니와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키가 작고 안경을 썼는데 어쩐지 인텔리 느낌이 났으나 표정이 온화했다. 내가 인사를 하며 맴(ma'am)이라고 부르자 크게 웃으며 그냥 카를라라고 부르라 했다. 나도 미세스 버르퀘스트라는 긴 문장을 매번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좋은 일이었다. 앤드류의 누나는 이름이 메건이라는 것과 그 집 가족 중 유일하게 인상이 차가웠고, 어쩐지 행동거지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영국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는 것 외엔 기억나는 게 없다. 나중에 앤드류가 알려주었는데 가족 모두가 메건만이 ‘버르퀘스트’답지 않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리고 후에 카를라 아주머니는 내가 그녀를 도와 장작을 나르고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사위는 ‘영국 머저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버르퀘스트’에 대한 것은 맞는 말이었다. 공항 주차장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던 앤드류의 아버지를 만나는 순간 뭐가 ‘버르퀘스트’다운 인간인 것인지 대강 알아차렸다. 시종일관 이쑤시개를 질겅거리고 있는 70살 가까이 된 그 키 큰 노인은 날 처음 보자마자 마치 오랜 친구의 아들이라도 만난 것처럼 웃었다. 그리고 남부 사투리가 너무 심해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여전히 이쑤시개를 문 채)큰 소리로 늘어놓으며 내 어깨를 탕탕 쳤다. 대충 잘 왔다, 비행기를 오래 타서 피곤하겠다, 배 안 고프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카를라 아주머니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서(sir)라고 하며 인사를 하자 주차장이 다 울리도록 웃으며 데이브라고 부르라 했다.
2주간 한가하리라는 내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집까지 운전하는 내내, 여전히 이쑤시개와 남부 사투리 때문에 절반 이상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계속 내게 뭔가를 물어보거나 혼자 농담을 하고 스스로 엔진 소리를 묻어버릴 정도로 크게 웃는 아저씨의 성격이 파악되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처음 알았는데, 이 가족은 경제력이 없어서 남부 시골에 사는 가족이 아니었다. 오히려 돈이 넘쳐도 굳이 북부도시로 갈 이유가 없는 성질의 가족이었다. 현관 게이트를 열고 차고까지 가는데 차로 1분이 넘게 걸렸다. 집은 단층이었지만 어림잡아 200평은 넘었고 앞마당 뒷마당은 아예 어디까지가 끝인지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 부잣집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들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저씨가 잔에 뭔가를 따라 내밀었다. 주방 테이블 위에 있는 유리항아리에서 떠낸 것을 보자 바로 감이 왔다.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그 문샤인이었다. 처음 만난 아들 친구를 집에 들이자마자 자기가 담근, 아마도 50~60도는 될 밀주를 권한다. 나중에 양조면허가 있다고 들었으니 밀주는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우리 아버지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잔을 받아 전부 입안에 털어 넣었다. 참이슬이 50도가 되고 아스파탐을 안 넣으면 이런 맛이 나는 것이로구나 싶었다. 나중에 생각한 것인데 아저씨는 그 한 잔으로 ‘아들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한 것 같다. 그런 부분도 우리 아버지와 근본적으로 같은 인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하간 카를라 아주머니가 나더러 2주간 앤드류가 고등학생 때까지 썼던 방을 쓰라며 안내해주고, 나는 거기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좀 한탄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내가 온다고 하자 남편이 저녁으로 훈제 소갈비를 만들겠다며 아침부터 뒷마당 드럼통에 숯을 만들었다고, 자신은 그 요리가 너무 매워서 못 먹는다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짐을 풀자마자 아저씨는 내게 집을 안내해주었다. 한마디로 넓었다. 그리고 차고가 두 개였는데 본채에서 떨어진 커다란 차고에는 연식도 가늠이 안 되는 빈티지 스포츠카가 있었다. 이걸 타시는 것이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고, 그냥 수리하고 개조하는 게 취미라고 했다. 차고의 냉장고에는 손글씨로 라벨이 붙은 맥주병이 잔뜩 있었다. 아저씨는 자신이 담근 것이고 냉장고 문에 라벨에 써놓은 이름마다 알코올 도수가 얼마나 되는지 적어놨으며, 아무 때고 꺼내 마셔도 좋다고 했다. 내일 낮이 밝으면 지하실의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발효시키는 걸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그 와중에 커다랗고 하얀 케빅이라는 개가 계속 우리를 따라다녔다.
첫날이라고 해야 하나, 오후 늦게 도착해서 잠들 때까지 나와 앤드류와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계속 대화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라면 나는 가족이든 누구든 이렇게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것보다도 위험한 일이다. 너무 오래 대화해서 내가 경계심을 풀고 얘기를 꺼내버리면 그들 중 거의 8할은 내 인생에서 없어진다. 그런데 나는 2주간 신세 지게 될 사람들에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데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자리에 없는 메건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아마 메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위험을 느껴서 입을 닫고 간단하며 무해한 대답만 반복했을 것이다. 딱히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주간 내 짐가방에 『말도로르의 노래』 4, 5편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선 첫날부터 재채기가 심했는데, 이틀이 지나서야 그게 약한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유는 뭐든지 될 수 있었다. 서양 공기, 서양 나무, 서양 건축물, 서양 개, 서양 세제. 나는 아주머니에게 혹시 알레르기 약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내게 디펜하이드라민이라는 약을 꺼내주었다. 그것은 훌륭한 약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이 즉시 멈출 뿐만 아니라 세계와 나 사이에 장벽이 생긴 것처럼 내 뇌를 향한 아무런 자극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 느낌에 맛이 들려 며칠 사이 하루에 140mg까지 삼키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내성이 생긴 것인지 알레르기 약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 사이 한 번, 완전히 약에 취해 있을 때 카를라 아주머니가 자신의 친구와의 점심식사에 나를 데려간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분이 이 아시아인에 대해 의아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노년의 백인 여성이 자신의 친척이 자가면역질환에 걸렸다는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정신이 나간 상태로(영어로는 이 상태를 Stone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있던 5~6개의 자가면역질환의 이름을 유창한 영어로 늘어놓으면서 어느 것이냐고 물었다. 그 이후로 기억이 없으나 나중에 카를라 아주머니는 친구가 놀라워했으며 내게 의대생이냐고 묻자, 내가 중졸이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전부터 경험한 것이지만 만취하거나 약 기운에 정신이 뒤집혀있으면 평소엔 기억 속에 흩어져있던 외국어들이 전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있으면 긴장성 변비에 걸리는 체질 때문에 1주일 이상 변을 보지 못하자 앤드류가 파이프와 대마잎을 가져다주었던 일, 데이브 아저씨가 시도 때도 없이 미국에 왔으면 치즈버거를 먹어야 한다며 픽업트럭에 태우고 로저스시의 모든 치즈버거 가게에 데리고 다녔던 일 등이 기억난다. 대마는 장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굉장한 효과가 있었다. 치즈버거에 대해서는, 앤드류가 왜 한국의 지역마다 다른 된장찌개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 그 환각 같은 이국 생활에서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온 일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사흘 정도 전이었을 것이다. 데이브 아저씨는 오두막에 가자며 나와 앤드류를 트럭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했다. 짐칸에는 시꺼먼 가방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오두막에 가자길래 나는 무슨 톰 아저씨의 오두막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버르퀘스트 가족이 통째로 소유하고 있는 산에 세워놓은, 아직 완성이 덜 된 나무집 두 채였다. 우리는 거기에 대충 짐을 던져놓고 불을 피운 뒤 아저씨를 따라 산 능선에 있는 평지로 향했다.
앤드류는 매번 있는 일이라는 듯 널따란 평지 곳곳에 나무판자와 표적을 세우고, 아저씨와 나는 짐칸에 있던 시커먼 가방들을 전부 바닥에 내렸다. 그것은 작은 핸드건부터 자동권총, 돌격소총에 기관총, 심지어 대전차용 저격 라이플까지 포함한 40정 정도 되는 총기와 3000발 가까이 되는 탄환들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사격을 해도 되냐고 묻자, 아저씨는 총기 소유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이 산이 전부 자신의 사유지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이 늙고 호탕한 남부 백인의 진짜 취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총을 쏴보았으나 자동소총은 도무지 표적에 맞지도 않고, 저격총은 우선 스코프 초점을 맞추는 것부터 감이 잡히질 않아 결국 유난히 손에 잘 맞는 리볼버로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저격총으로 맞추기 위한 사제폭탄을 섞고 있을 때(이것이 합법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걸레짝 같은 표적 맞은편에서 리볼버에 장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 괜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아무리 봐도 실전용이 아닌 무식하게 크고 총신이 전부 강철로 된 리볼버에 탄환을 채우면서, 나는 무언가가 내 정신을 붙잡고 끌어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으로 한 방만 내 미간에 쏴버리면 끝이다. 다시는 현실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다. 휴대용이라기엔 너무 무겁고 큼직한, 틀림없이 총기 애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 취미용 리볼버의 구경은 내 뇌를 관통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머리통을 아예 박살 내버릴 것이다. 한발 한발 탄창에 탄환을 넣으면서 그런 생각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올랐다. 그때 트럭 짐칸에서 어떤 작업을 하던 앤드류가 다가와 내게 뭔가를 건넸다.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없어진, 필터도 없는 말아 피우는 궐련이었다.
내 친구가 뭔가를 눈치챘는지 아닌지 그런 것은 알 도리도 없고,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 나는 고맙다며 궐련을 받아 물고 불을 붙였다. 스스로 죽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몹시 유감스러운 일이다.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은 다 때려치우고, 심지어 내가 여기서 자살을 할 경우 버르퀘스트 가(家)의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외교적 문제 같은 것도 다 무시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미래도 과거도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나는 지금 산 중턱의 청량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친구와 그의 아버지와 함께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현실이라는 불가해한 개념에 금이 가는 것 같은 탄약 터지는 소리를 즐기고 있다. 미래에 무슨 절망이 있을지 가늠해보는 것은 멍청한 일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일이다.
내가 여섯 발을 표적에 쏘는 동안 아저씨는 평지 끝에 세워놓은 사제폭탄을 세 발이나 맞췄으나 폭발하지 않아서 불쾌해하고 있었다. 재료를 금고에 너무 오래 넣어놔서 습기가 찬 것 같다고 불평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앤드류가 알려준 것인데, 우리가 미국에 가기 전 앤드류는 미리 가족들에게 친구 MJ가 정신치료를 받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데이브 아저씨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를 40정의 살인무기와 함께 사람 하나 없는 산으로 데려갔다.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설명하거나 해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다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종일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아저씨의 수제 맥주를 계속 마셨던 일. 메건이 어머니에게 어린 아들을 맡기러 오면 카를라 아주머니가 바쁠 때 내가 한쪽 팔에는 한 살배기 어린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맥주병을 쥔 채 마당을 돌아다녔던 일. 케빅이 그늘에 엎드린 채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일. 데이브 아저씨가 흡연자인 나를 위해 마당 한쪽에 양철 버킷을 꺼내놓으며 ‘나도 피웠지만, 그건 역겨운 습관이야.’라고 말했으나 목소리에서 그 어떤 경멸이나 악의도 느껴지지 않던 일. 그런 일들이 끝나고 앤드류와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14시간의 비행은 피곤한 것이므로 나는 수면제와 함께 삼킬 생각으로 기내에서 럼주를 주문했다. 여기서 좀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40대쯤 되어 보이는 백인 스튜어디스 여성은 뜬금없이 나보고 군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해본 뒤 공익 출신이더라도 서류상으로는 병장제대로 기록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곧이곧대로 고국에서는 병장(Sergeant) 제대 취급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군인에게는 음료 제공이 무료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럼주를 가지러 가버렸다. 그제야 저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 건지 알아차린 나는 순간적으로 해명을 하려 했지만, 어차피 럼주 한 잔은 5달러밖에 하지 않고, 아메리칸 항공이 그런 걸 신경 쓸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 들었던 손을 내려버렸다. 옆에서 앤드류가 웃고 있었고, 나도 웃었다. 아마 내 피부가 중동사람 피부였으면 실제로 미군 장교더라도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겠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하늘이 온통 하얀 잿빛이었고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항철도를 타고 중간까지 앤드류와 함께 가다가 노선이 갈라졌다. 수트케이스의 드르륵거리는 바퀴 소리와 함께 집에 돌아오자 아무도 없었다.
방에서 짐을 풀다가 셔츠 더미 속에 박혀있는 『말도로르의 노래』 4, 5편을 발견했다. 주변의 책장에 적당히 집어넣었다. 그리고 대강 예상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도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닌 생활이, 비관이라고도 낙관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2개월 정도 방탕하게 지냈던 일에 대해 산문을 쓰면서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곳’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여행의 요점이라고 적었던 적이 있다. 아무도 나를 몰라서, 내가 아무도 아닌 곳에서는 책을 읽고 정보와 지식을 꾸역꾸역 뇌에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 실제로 버르퀘스트 가에서의 2주 이후 나의 모든 여행은 그런 식이었다. 네팔 안나푸르나의 해발 2,300m 지점에서 몇 주씩 담배만 물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등산하는 서양인들은 내가 현지인인 줄 알았고 현지인들은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책은 한 줄도 읽지 않았다.
얼마 전 앤드류로부터 케빅과 함께 지내던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중 한 놈이 너무 늙어 치매가 왔는지, 사방에 오줌을 뿌리고 아무나 공격해대며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것이다. 데이브 아저씨는 뒷마당에 구멍을 파고 권총 탄환 두 방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동물병원에서 안락사시키려면 200달러가 들지만 총알 두 개는 25센트도 안 한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아저씨의 표정과, 이쑤시개와, 빈민 시절에 어깨에 새겼다는 문신이 떠올라 소리 내 웃어버렸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특히 북부도시의 리버럴이나 동물권리주의자들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화를 내겠지. 돈이 썩어 넘치면서 반려묘를 위한 200달러가 아까운 것이냐고 부르짖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아저씨도 아주머니도 그 검은 고양이를 사랑했다. 그러나 버르퀘스트 가의 그 넓은 땅에서 생명과 죽음은 그뿐이다. 특히나 짐승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새벽마다 케빅이 취미 삼아 뒷마당에서 아르마딜로와 다람쥐를 사냥해 그 시체를 화단에 쌓아놨던 것이 똑똑히 기억난다. 더욱 명확한 것은, 아저씨에게 있어서 고양이의 혈관에 치사량의 모르핀이 들어가는 것과 머리통에 두 발의 탄환이 들어가는 것은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도축장에서 엽총을 들고 일용직도 하던 사람이다. 아마도 그에게 죽음과 존엄에 대한 복잡한 사상 따위는 없겠지만, 그 어떤 죽음도 존엄하거나 혹은 존엄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 아저씨의 혈관에 흐르고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사변과 사상이 비대하게 붙어 본체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친구는 거의 남지 않았고 내 방엔 온갖 책들이 난잡하게 펼쳐져 있다. 이야기의 시작이 됐던 『말도로르의 노래』 4, 5편은 도대체 어딜 갔는지 모르겠으나, 완역본이 있으므로 그다지 상관은 없다. 여전히 분노와 증오 등은 터진 경동맥의 혈액처럼 울컥울컥 솟아오르곤 한다. 과연 양으로만 따진다면 삶은 살 이유보다 죽을 이유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러나 앤드류에게서 그 치매 고양이와 아저씨 얘기를 들었을 때 모든 고뇌들이 다 실없는 농담으로 느껴졌다.
별로 중요할 게 없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내가 먹을 고기를 스스로 도축하고 해체하는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책들을 전부 불태울 필요도 없다. 사상가들을 병원과 절벽으로 몰아가는 그것들은 거기에 그대로 있어도 좋다. 삶이 너무도 간단한 살해와 포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관념이 아니라 촉각이 된다면, 정신의 혼란과 증오는 내 내면을 갉아먹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독서를 하더라도 활자들에게 내 영혼을 빚지지 않을 것이고, 손에 묻는 피보다 중요한 책 따위를 찾아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경계선
당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몰래 옥좌에 광기의 여왕이라고
당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당신이 자리에 앉을 무렵
나는 어전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꿈의 꿈은 현실이어서
땅끝의 작은 섬에 섰을 때도
나에게 수평선은 보이지 않고
증오로 타오르는 얼굴들만이
천공에 가득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인형을 만드는 일에 열중해
가장 말 없는 것에게 이름을 붙이고
딸이나 아들로 삼아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했으나
그것들은 타는 쓰레기였다
니코틴의 연기로 보여지는 현실은
잠들기도 전의 꿈이어서
아무것도 멸종하지 않은 잿빛의 악몽이라
나는 끊임없이 신음하고
정소를 떼어내고 이불에 눕고 싶었다.
2020/04/16
1. 이것은 픽션이다.
봄의 조각들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놓으면 되지 않을까? 바보 같긴, 바로 그 아름다운 음악을 못 견뎌서 방금 전 카페에서 일행을 놔두고 도망 나왔잖아. 사내는 방 안에서 장롱에 기대앉은 채 중얼거렸다. 책상 위에 로라제팜이 30알이 넘게 있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쓰고 싶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그런 것을 쓴 일이 없다. 더욱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사내의 얼굴이 유리로 만든 가면처럼 굳었다. 갈비뼈가 온통 피부를 뚫고 튀어나와, 장미꽃마냥 활짝 필 것 같은 흉통을 느꼈다. 그럼 더할 나위 없지. 실패한 원고만 가득한 삶이라도 끝나는 것이 삶이다. 시체라도 꽃처럼 핀다면,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하겠지.
벌써 4월인데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잔뜩 움켜쥐고 있는 나무를 보았다. 낙엽을 떨어트리기도 전에 죽었나, 하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낙엽을 놔줄 생각은 있었는지 궁금했다. 궁금증이 다른 생각으로 연계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떴다.
그래서 도대체 어쩔 것이냐, 라고 친구가 대뜸 물었다. 그런 난폭하게 걱정하는 말투는 생각지도 않던 중이라 사내는 흠칫 놀랐다. 뭐가 말이야, 하고 사내는 평정을 가장하면서 되물었다. 해가 넘어갈 무렵의 전집이었다. 친구가 막걸리와 안주를 샀다.
“널 나쁘게 말하는 게 아니야. 다만 K도 너에게 돈을 빌려줬다던데.” 친구는 막걸리가 담긴 사발을 들고 마치 교무실의 선생님처럼 말했다. 사내는 친구의 눈을 바로 보면서도 손톱으로 숟가락 손잡이를 마구 긁더니, 그 돈은 A에게 빌렸던 돈을 갚는 데 썼어, 라고 말했다. 친구는 아무 말도 않더니 사발에 든 것을 마셨다. 친구의 눈은 질책을 담고 있지 않았다. 이놈의 혀를 잘라버릴까, 사내는 생각했다. 진실은 말을 하든 안 하든 변하는 것이 없다. 언제나 추하고 가학적이다.
“네 빚, 얼마 안 되면 그냥 내가 갚아줄까.” 사발을 비우더니 친구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 뒤에 <나중에 편집부가 네 글을 사면>이라던가 <예전에 네가 냈던 책이 재판되기라도 하면> 같은 문장들이 따라왔지만, 사내한테는 들리지도 않았다. 손 좀 씻고 오겠다고 갑자기 일어나고선, 사내는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 봄이었고 어두웠고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서 죽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의 책무.
유서를 쓰려고 종이를 꺼냈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을 백지만 쳐다보았다. 결국 사내는 펜을 들어 이렇게 썼다. 일평생이 수치였는데, 수치스럽지 않게 죽을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방도를 모색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서랍에 넣어버렸다.
무가치한 원고작업에 시달리다가 밤을 새버린 어느 날, 흔치 않게 아침에 밖으로 나갔다. 산책을 할 요량이었다. 걷다보니 동네 중학교 앞까지 왔다. 적지만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사내는 선 채로 그들을 멀리서 쳐다보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그 뒤에 주머니에 넣어뒀던 신경안정제를 꺼내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둑고양이가 앞을 가로질렀다.
밥은 잘 먹고 있냐고 어머니가 전화로 물어왔다. 거짓말을 했다. 사실 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냉장고에 음식은 있지만 요새는 물만 마셔도 구역질이 난다. 어머니가 약은 잘 챙겨먹고 있냐고 물어왔다. 이번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차에 기름을 넣듯이 철저하게 먹고 있다. 병원비가 모자라지는 않냐고 물어왔다. 또 거짓말을 했다. 이젠 도대체 어디서 병원비를 충당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사내는 자신이 왜 가족에게 돈이 더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스스로도 모른다. 어머니가 잘 지내라며 인사를 했다. 전화를 끊고 사내는 한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아니, 눈물이 나오지 않았으니 운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운건지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던 건지, 아무튼 그러고 나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봄이다. 겨울옷 중 멀쩡해 보이는 것은 전부 전당포에 넘겨버리자. 사내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던 전당포 간판을 기억해냈다. 그는 장롱에서 그나마 깨끗하고, 값이 나갔던 코트 같은 것들을 꺼냈다. 대부분 오래 전에 가족이 사준 것이었다. 일주일치 약값은 벌 수 있겠지. 혹은 빚의 일부라도 좀 갚을 수 있겠지. 그러면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는 일도 좀 덜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옷더미를 짊어 매고 전당포로 걸었다.
전당포에서는 브랜드도 없는 코트 같은 건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대체.” 사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젊은 여자에게 물었다. 대학교 동창으로 그나마 최근까지 연락을 주고받던 여자다. 실의에 빠진 얼굴로 환자복을 입고, 왼쪽 손목에 부자연스러운 붕대를 감고 있다. 사실 무슨 일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자살시도가 도중에 발각된 정도의 사건인 것이다.
“이상하지. 아픈 곳도 없는데 병원침대에 눕혀놓다니.” 여자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있다. 이 갈라진 목소리가 함의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사내는 잘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이상한 상황은 유희인 거야.” 건조하게 말했다.
“유희였던 것 같은데. 하다 보니 진심이 됐어.” 여자가 웃는다.
대답을 듣고 보니 지루하다. 낱낱이 듣지 않아도 낱낱이 추정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로 쉬운 일이구나, 하고 사내는 생각했다. 어쩐지 저 붕대에서 인텔리 냄새가 난다.
“왼손은 쓸 수 있대?” 이미 살아난 이상 질문은 한정되어있다.
“아직 몰라. 인대가 다시 붙는다면.”
유서에 써놨듯이 수치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양하는 것이다. 처음 정신병원을 들락거렸을 때부터, 대기실에는 항상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은 젊고 바싹 마른 여자들이 어슬렁거렸다. 어렸던 그는 그녀들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모양 얼음세공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에게서 살아있는 인간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굳이 자살하거나 하지 않아도 곧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질 것 같았다. 사내는 그 얼음세공들에 대한 모든 가치판단을 영원히 보류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불유쾌했다. 버스에서 자신의 경동맥이 어디 있는지 목과 손목을 더듬어보았다.
김밥을 한 줄 사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뱃속이 들끓고 아무것도 소화시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이러다가 정말 아사하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빌라 앞에서 늙은이 셋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주차를 이상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사내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조금 주춤거리며 그들을 지나쳤다. 오후 세 시에 사지 멀쩡한 청년이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걸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걱정을 했다. 집에서 김밥을 이빨로 씹는데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달리지도 않을 열차에 석탄을 채우는 건 낭비고, 또한 슬픈 일이다.
삼킨 김밥은 전부 토했다.
근처 공원에 가니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저 개들은 주인과 함께여서 기뻐 보이는구나.
결국 죽게 된다. 봄 햇살이 따사로웠고, 이것이 사내의 책이 아무도 모르게 출간되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잊혀 진 뒤 몇 번째 봄이던가. 봄 햇살처럼 아름다운 것을 쓰고 싶다. 태양 같은 것은 싫다. 배경에 비춰지는 옅고 반투명한 햇살 같은 것이 쓰고 싶다. 반짝이고 따스하지만 정말로 그 어떤 질량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슴을 열어 읽고 난 뒤 조금도 기억하지 못할 책. 나중에서야, 어라, 그런 책이 있었던가, 하고는 굳이 떠올리려 하지도 않을 책.
유산도 묘비도, 그런 것을 남기기에는 평생을 철지난 날벌레의 심정으로 살아왔다. 날씨가 추워진 것을 느끼고 하수구에서 잠들며, 이제 죽는가, 하지만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힘없이 날아다니고 행인들의 방해를 하다가 저녁에 다시 하수구에서, 이번에야말로 죽겠지, 그런데 또 눈을 뜨고, 그것을 반복하다가 어느새 겨울이 되어 동료들은 모두 죽었는데, 죽은 동료들을 시기하며 혼자 비척비척 날아다닌다.
그래도 결국에는 죽겠지. 그러니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쓰고 싶은 것이다. 통속 소설이라도 괜찮아. 오히려 사내는 통속 소설가들을 존경하고 싶다.
할 말 있으면 해.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말은 없어.
자주 지나가는 골목에 어느 목수의 사무실이 있다. 사내가 지나갈 때마다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체구가 그렇게 크진 않지만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몸집 때문에 강인하게 보이는 목수다. 서로 전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몇 개월이나 비슷한 시간에 사내는 그 앞을 지나가고, 목수는 그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보니 왠지는 모르겠으나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목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목수가 인사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이 동네 사시는 모양이죠. 처음으로 인사를 받고 당황하여 입을 뻐끔거렸다. 안녕하세요, 하고 말했으나 즉시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것은 아닐까, 후회했다.
“매일 이 시간에 지나가시더라고요.” 불붙은 담배를 입에 물더니, 담뱃갑 뚜껑을 열어 내밀면서 말했다. “피우세요?” 사내는 담배를 한 개비 뽑으면서 대답했다. “피우지만, 형편이 안 됩니다.” 그러자 목수는 끄덕거리면서 입술과 이빨로 뭐라 형언하기 힘든 소리를 냈다. 공감인지, 동정인지, 아무튼 그런 것이었다. 목수에게 라이터를 빌려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았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없다. “좋네요.” 혼잣말인지 목수에게 하는 말인지 애매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예술 하는 분이시죠?” 목수가 대뜸 그렇게 물었다. 놀랐다. “마주칠 때마다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사내는 당황하고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멍하니 서서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만 보였다. 한 박자 늦은 대답을 어렵게 꺼냈다. “아니, 아니요. 예술 같은 것은, 그다지…….” 말꼬리를 흐리며 땅을 본 채, 자신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어쩐지 창피스럽고, 아니, 예술가라니, 그것은 사회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들의 총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구실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한테 기생할 명분을 만드는, 그런 것이 예술가라고, 아, 그렇다면 나는 예술가다. 사내는 갑자기 목이 잠기는 것을 느꼈다.
“담배, 고맙습니다.” 꽁초를 쥔 손을 올리며 힘겹게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은 목수의 눈동자를 쳐다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사내는 일방적으로 목례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작은 삼거리를 돌아 집으로 가는 골목을 걸으며, 온갖 처참이라고 부를만한 감정들을 애써 무시하고, 그저 담배를 피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모금의 연기를 삼킬 때마다 심장이 딱딱하게 닫혀가는 기분이 들어서, 용케 주저앉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 선생은 흰 당나귀도 나타샤도 있었잖아. 그러면 됐지. 나타샤가 그 선생을 사랑했잖아. 그러면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되는 거야. 아름다운 나타샤가 널 사랑하면, 그러면 넌 펜이고 원고지고, 그런 것은 더러운 것이라고 버릴 수도 있겠지.
“휴양 온 거라고 생각하고 느긋이 지내.”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매형은 그렇게 말했다. “아니요.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습니다.” 사내는 음색도 없이 대답했다. 기분이 언짢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저분한 방안에서, 완성한들 동전 한 푼도 되지 않을 원고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여느 날, 그저 한없이 고독하고 서러웠던 것이다. 누가 인간의 체온을 갖고 있을까, 누가 나에 대해 보편적인 애정을 갖고 있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내는 결국 뒤돌아보지도 않고 서서히 멀어졌던 가족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러나 부모님은 안 된다. 그들에게 가서 당신들의 아들이 이렇게나 망가졌다는 것을 자랑스레 내보일 수는 없다. 누이와의 사이는 어땠더라. 우리가 좋은 남매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내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누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카가 태어나던 날, 매형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감동스러운 호의를 보인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사내는 병원에서 나는 소독제 냄새가 왜 이렇게 익숙한 것인지 혼자 혼란스러워하고만 있었는데, 매형은 와줘서 고맙다면서 크게 웃는 얼굴로 어깨를 탕탕 두드려주었다. 아마 5년 전이다. 그 뒤로 누이도 매형도 만난 일이 없다. 그러나 사내는 고장 난 기계가 돌발행동을 하는 것처럼 누이가 아니라 매형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얼굴 좀 보러가도 될까요, 라고.
그런데 휴양 온 거라고 생각하라니, 사내가 집안의 문젯거리라는 사실은 진즉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로 반갑다고 웃으며 말하는 매형의 이 친절어린 태도에 스스로의 존재가 진절머리 난다. “그러고 보니, 조카가 이제.” “5살이지. 말도 잘 해.” 그렇군요, 하며 중얼거린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조카가,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 그러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매형이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외식을 하자. 다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자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이 현관으로 들어가고, 어린아이가 아빠, 하며 달려 나오고, 그 어린아이가 생면부지의 친척을 보고 경계하고, 아버지가 딸에게 네 외삼촌이야, 하고 소개하고, 외삼촌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서 입꼬리가 뒤틀려있고. 그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외삼촌은 대체로 자기가 왜 여기에 왔는지 후회하고 있었다.
간신히 소파에 둘러앉아, 사내는 매형이 건넨 캔맥주를 들고 있다. 병든 위장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조카는 지금 외삼촌에게 굉장히 흥미가 있다. 약간 경계를 하면서도 옆에 앉아 사내를 구석구석 관찰한다. “정말 우리 외삼촌이에요?” “그렇지. 그럴 거야.” 얼버무리듯이 대답하면서 매형에게 누이는 집에 없는지 묻는다. 곧 올 거라고 한다. 이제야 조카를 쳐다보니 과연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다. 성장하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인이 될 것이다. 사내는 이 아이가 가엾다고 생각한다. 아니 물론, 추녀인 것보다야 편한 삶이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 예쁘게 묶었네.” 마음에도 없는 소리지만 이런 말을 던지면 아이들이 알아서 떠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건요, 엄마가요, 아빠가 별님 머리끈을 사왔는데요, 기타 등등. 사내는 이미 듣지도 않고 절망적인 문장들을 곱씹고 있다. 5년을 살았고, 광야처럼 끝이 안 보이고 난폭한 미래가 있다. 아하, 광야처럼, 이라니. 어리면 급사하지 않는다는 법칙 같은 것도 없지 않은가. 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대처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서는 상정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모두 죽는다. 모두들 하나같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죽는다. 이런 젠장. 사내는 자신이 신이 나서 떠드는 5살짜리 조카를 눈앞에 두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죽어야 한다. 영혼에 독액이 퍼진 상태로 너무 오래 살았다. 진작 죽어야했을 인간이 억지로 살고 있으니 모든 것에서 죽음이 보이는 것이다. 발정난 개가 아무것에나 허리를 흔들 듯이, 보이는 모든 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가리킨다.
기가 죽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사내는 괜히 맥주 캔을 땄다. 기포가 좁은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났다. “아빠도 이거 좋아하는데, 너무 마시면 엄마한테 혼나요.” 아이가 동그란 눈을 하고 말했다. 매형이 소리 내 웃었다. 사내는 따라 웃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얼마 뒤 집에 들어온 누이는 남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너, 더 안 좋아졌네.” 사내는 과연 가족뿐이다, 생각하고 웃으며 대꾸했다. “뭘, 언제나 비슷해.”
호화로운 외식. 거의 먹지 못했다. 매형이 걱정했다. 누이는 남편에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생각보다 조카가 먹성이 좋았다. 위장이 안 좋은 탓인지 몇 잔 만에 술에 취했다. 마음이 우수수 무너질 것 같은 죄책감으로 미소를 유지했다.
새벽에 슬그머니 일어나 아무도 깨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심야 버스 안에는 온통 검은색 연기가 들어찬 것 같았다.
왜 죽지 않는 거지? 왜?
영화에서, 어느 백인 배우가 상대 배우에게 데미지드 굿즈(Damaged goods)라고 소리를 질렀다. 상대 배우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아가씨가 알고 보니 아주 무섭더라고, 까맣고 세련된 가죽 핸드백에 항상 마르크스를 넣고 다니고, 내가 능청스럽게 술이라도 한 잔 할까, 하면 그 하얗고 예쁜 얼굴이 순식간에 살인범을 추궁하는 고결한 검사나리 같아지는 거야, 아무 말도 않지만, 칼날처럼 시퍼런 눈동자가 마치, 당신은 그 술 마시면서 무산계급의 혁명을 위해 무어라도 했나? 라고 쏘아붙이는 것 같다니까.” 친구가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낄낄거리면서 떠들고 있다. 사내는 멍하니 듣고 있다가 묻는다. “잠깐, 그 여자, 전에 말했던 그 여대생이야?” “그래, 아주 인텔리한 아가씨야, 그렇지?” 지금 저급하게 웃으며 자기 엽색 얘기나 하고 있는 이 친구는 놀랍게도 전에 사내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말한 그 사람이다. 만날 때마다 자기가 마시고 싶으니 술을 사주곤 하는데, 매번 컨디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는 것이 감탄스럽다고 사내는 생각한다. “우리들, 곧 30대 후반이 되는 거 아니었나.” 사내가 중얼중얼 말한다. 사실 말하면서도 별로 지탄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이 친구는 일주일 뒤면 다른 여자 얘기를 할 것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지금 세상에 마르크스주의 여대생이라고. 신기해서라도 손을 댈 수밖에 없지.” “그렇기도 하겠지.” 맥주를 홀짝이면서 무성의하게 대답한다. “이미 뒹굴었지?” 역전에서 만났을 때 친구가 비열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을 보고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도대체가 무슨 수집취미라도 있는 거야.” 신기한 것을 보면 자기 위장 속에 집어넣어야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네가 즐거워 보여 다행이다. 30대가 남자의 전성기라고 어디서 들었던 것 같다. 사내의 전성기도 오는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전성기냔 말이다. 방안에서 원고 파지나 구겨 발로 차고, 밤에 삼킬 약이나 한줌 달그락거리는 그런 전성기인가. 그러고 보니 최근 체중이 성인이 된 뒤 최저점을 찍긴 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이것 봐, 시체가 웃고 있군, 하며 실실거리기도 했다. 여러모로 절정에 다다르긴 했구나, 사내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아아, 최소한 40대가 되기 전엔 꼭, 꼭 죽고 말테다. 기도하듯이 읊조렸다. “로맨스는 말이야, 역시 한쪽이 죽어야 해. 함께 죽는다면 더할 나위 없지…….” 사내가 맥주잔을 들여다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죽기는. 이 몸으로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셰익스피어 때부터 작가들은 나쁜 버릇이 있어.” “그 몸이 썩어버리고 만단 말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면, 반드시 등장인물들이 아름다울 때 끝이 나버려야 하는 거라고…….” 취했나? 위장병을 앓고서부터 주량에 대중이 없어져버렸다. 그러면서도 위악적으로 들이킨다.
어찌됐건 친구는 사내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을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멸망할 것 같은 어조로 가끔씩 입을 열어 헛소리를 하는 사람, 그렇게 역할이 정해져 있다. 사내의 말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은, 기껏해야 병원 의사 정도겠지.
봄이 가기 전에 끝을 낼까. 청산가리는 어쩐지 야생화의 이름 같다.
술이다, 술. 취하면 중요한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못하게 되니 좋다. 취중에는 진담이 아니라 허담만 오가는 것이다. 그편이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A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동창이다. 얼마 전 사내는 K에게 돈을 빌려 그에게 빌렸던 돈을 갚았다. 아무튼 전화기 너머에서 그가 짤막하게 내뱉었다. “죽었어.” 사내는 조용히 있다가 퍼뜩 되물었다. “뭐?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죽었다고. 간호사가 옮기던 카트를 덮쳐서 주사기를 닥치는 대로 자기 몸에 찔렀대.”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전화기를 들고 막힌 창문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그런 행동력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갈 거냐?” A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어딜?” 사내는 계속 되묻기만 하는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장례식 말이야. 듣자하니 부모는 슬프기보다 열이 머리에 뻗쳐서, 그런 불효자식은 딸도 아니라고 장례를 안 연다는 얘기도 있었다는 모양이다만.” “아, 모르겠는데, 몰라.” 이상한 대화에 계속 침묵이 낀다. “……나중에 정해지면 장례식 일정이랑 주소는 보내 놓을게.” 혹시 A는 사내가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냥 두어도 별 상관은 없다. 전화가 끊겼다.
사건을 진지하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도무지 그 녀석이 인생에 엄청난 비애가 있어, 마지막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는 생각이 되질 않는 것이다. 이것도 그저 대학시절부터 계속 반복되어왔던 퍼포먼스의 일환인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사내는 전화를 끊고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A는 사내가 대학재학 당시 함께 몰려다니던 무리의 중심 같은 인물이었다. 다른 학과였지만 동아리인지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경로를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어느새 무슨 술자리라도 생기면 가장 많이 전화를 걸어대는 사람이 되었다. 아마 그래서 이번에도 제일 먼저 정보를 접했고 무슨 의무감으로 전화를 돌려대는 것이겠지. 여하간 사내는 무표정으로 전화기 겉면을 쓰다듬고 있었다. 간호사가 끌고 다니는 카트에 약물이 든 주사기가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혈관에 공기라도 주사했나. 괴상한 일이다. 그런데 괴상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죽으려고 하면 무슨 방법으로든 죽겠지. 시간만 있다면 카테터로도 목을 매달았을 것이다.
“꽃이라도 사둘까.” 사내가 마치 자기가 들어야만 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즉시 부정한다. “아니야, 바보 같은 짓이다.” 결국 흉측하게 시들고 말 것을 왜 돈 주고 산단 말인가. 받는 입장에서도 처치곤란이다.
이로써 사내의 생활에서 잡담이나마 나눌 수 있는 여자의 수는 제로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A는 재작년엔가 결혼을 했지.
완성이다. 내 평생의 역작이다. 한 30번째 평생의 역작인 것 같다. 가슴이 기쁘고 들떠서 지금이라면 옥상에서 소리 내 웃으며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언제 쓸 수 있게 될까. 그걸 쓰지 못하고 죽으면 영 멋이 없는데. 아니, 어찌되든 멋은 없겠지. 멋은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만 쓰는 말이다.
“재미가 없어요.” 편집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사람은 처음 사내가 소설책을 낼 때 일반 편집자로 담당되었었는데, 어느새 부서 편집장이 되었다. “재미가 없고, 너무 난해하고 음습해요. 아무도 이런 건 돈 내고 보지 않아요.” 사내는 표정도 변하지 않고 편집장을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이전에, 사실 아무 생각도 없다. “애당초 이거 소설입니까, 아니면 수필입니까, 그도 아니면 무슨 언어유희 같은 겁니까.” 분명히 악의가 담겨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 정도는 분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내는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할 말도 없고, 하도록 된 말도 없다. “저기.” 사내가 가까스로 입을 뗀다.
“오천 원만 빌려주시겠습니까. 돌아갈 차비가 없습니다.”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그러나 더 외로워할 기력도 없다.
사내가 방에 틀어박혀 뭔가를 쓴다. 가끔씩 만취한 사람처럼 혀를 내밀며 헛구역질을 한다. 난폭하게 잉크를 새기고 있는 종이는 다름 아닌, 예전에 썼던 유서의 뒷면이다. 책상과 마주보고 있는 면에는 여전히 수치가 어쩌고, 방도를 모색해보겠다는 문장이 변명처럼 적혀있다. 깨끗한 면에 뭔가를 마구 쓰고 있다.
옛 시절에는 여인들이 낙태를 하기 위해 간장을 통째로 퍼마시곤 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짠맛에 몸부림치며 태아는 차라리 게으른 노인처럼 안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품에서 나오게 되면 자, 이것이 네 이름이고, 이것은 네 책임이고, 이것은 네 운명이다, 하며 짊어질 십자가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너는 인간이니까, 라는 말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인간이니까, 인간이니까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쓰고 싶었다는 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동경이었을까요. 극본이 될 만큼 아름다운 연인은 필시 손을 마주잡고 죽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솔직히 다른 결말이더라도 그 극본의 위대함에 손상이 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연인을 죽이든, 연인에게 모든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 세상 자체를 페이드아웃 하든, 그다지 다를 것도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나중에 반드시 시들어 추악하게 되리라는 운명을 가위로 잘라낸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역시 온 세상이 황금이 된 것 같은 아름다운 순간만을 고정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셰익스피어 이후로 늘 작가들은 나쁜 버릇이 있다는 친구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합니다.
구구절절…….
이건 유서인가? 도대체가 유서인지, 수기인지, 그냥 언어유희인지. 사내는 새로운 종이를 세 장이나 더 꺼내어 정체불명의 희론 같은 것을 완성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도 읽지 말기를, 기도하며 그 종이뭉치를 원래 있던 서랍에 넣었다.
만일 늑대였다면 초원을 달리는 게 억울했을 것이고, 만일 새였다면 하늘을 나는 것이 서러웠을 것이다. 그런 기분으로 생명을 얻었다.
4월. 아직 봄이다. 창문을 막고 있는 신문지를 다 뜯어내고 활짝 열었다. 이제 차갑지는 않지만 조금 서늘한 바람이 분다. 사내는 장롱을 기어 올라가 높은 곳에 있는 벽장을 열었다. 곰팡이냄새가 자욱한 안쪽에서 설탕이 담긴 병 같은 것을 꺼냈다. 다시 장롱을 기어 내려가 부엌으로 갔다. 유리컵에 수돗물을 담았다. 그리고 설탕 같은 것을 병에서 듬뿍 퍼내어 물에 넣고, 숟가락으로 계속 저으며 녹였다. 잘 녹지 않았다. 아무리 저어도 알갱이가 남아서 사내는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시간은 밤이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담배가 있다면 좋을 텐데.
자, 집에 가자.
끝.
동생의 기억
형 주변에 항상 신기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늘 악기 케이스를 등에 매고 다니는 사람무리라든가, 볼 때 마다 줄담배를 물고 있는 더벅머리를 한 남자들이라든가 말이다. 형과 나는 십년을 훌쩍 넘기는 나이차가 있어서, 형은 동생이라기보다 조카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형이 나를 같은 핏줄로서 아낀다는 것은 당시의 어렸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형의 직업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일정하게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한량처럼 부모님에게 돈을 꾸지도 않았다. 다만 일주일에 몇 번인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밤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으레 대낮에 집 앞의 평상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당시 여덟 살이나 됐을까 싶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지폐 몇 장을 내밀면서, 담배 하나랑 너 먹을 과자 사와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의 군것질 값은 전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형이 내주었다.
이따금, 주로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산보하기 좋은 저녁이면 형은 나를 데리고 신정동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아다녔다. 노을 때문에 벽돌담들의 그림자가 길어진 골목에서 왼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언제나처럼 담배를 피우며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그 얼굴로 느릿느릿 걸었다. 너무 느려서 내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골목을 걷다보면 꼭 어느 집의 지하실로 들어가는데, 지하실에는 조악한 드럼세트나 낡은 앰프 같은 것들 주변에 때가 탄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형의 친구들 중 몇몇은 저녁마다 그곳에 둘러앉아, 도대체 연주하는 걸 본 적도 없는 통기타들을 벽에 세워두고 막사발에 소주를 마시며 늘 뭔가에 대한 논쟁을 펼치는 것이다. 나와 형이 지하실에 들어가면 다들 반기곤 했다. 그들은 내 친척이라도 된 것처럼 나를 예뻐했는데, 내가 그 아저씨뻘의 형들과 장난을 치는 사이 형은 술자리에 끼어 꼭 두어 잔씩만 마시면서 친구들과 무슨 얘기인가를 했다. 무슨 얘기였는지는 들은 바가 없다. 그저 어린 마음에 우리 형이니까 뭐든 간에 중요한 얘기겠지, 했을 뿐이다.
그 뒤에는 지하실을 나와 또 걷고, 공원이나 공터에서 다른 친구무리들과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 형은 신정동 어딜 가도 항상 친구가 있었다. 어딜 가나 친구들이 형을 반기고, 나는 그런 형의 어린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여움을 샀다. 산보는 언제나 집근처의 대포집에서 끝났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그 대포집에는 형의 친구가 아니라 아버지가 있었고, 얼큰히 취한 아버지가, 막내가 왔구나, 이제 집으로 갈까, 하면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아버지가 마신 것을 계산하는 형을 뒤돌아봤다.
출근도 하지 않고 매일 평상 위에서 담배만 피우며 앉아있던 형이 도대체 무슨 수로 항상 푼돈이나마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가 있다. 그러나 직장을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형이 무얼 하던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에도 여기저기 떨어져있던 힌트들을, 이제 어른이 되어서야 짜맞춰보는 것이다. 내가 열 살이 되던 날, 헌병이 들이닥쳐 형을 데려갔고, 그 뒤로 동네에서 형뿐만이 아니라 형의 친구 몇 명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전날 밤에는 드물게 형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거실의 수화기 너머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알 방도가 없으나, 잠결에 열린 문틈으로 나는 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상전파라고, 편집 담당이 가장 죄가 크니까, 나만 도망가지 않으면 되겠지.
그 뒤로 형을 본 일은 없다. 형을 잡아간 헌병들은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무슨 죄목으로 잡아갔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수년 뒤에 뭣 때문에 언론이 통제되니 신문이 검열되었다느니 큰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형은 여전히 존재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의 짧았던 10년 속에만, 말이 없고 발걸음이 조용하던, 나이 많은 형으로 기억될 뿐이다.
과거를 생각하며
밤거리 그림자로 웅성거리고
생명의 기척은 없다, 나는
앙상한 몸을 비척대며
위악스럽게 걷고
그러니까 종말을 망상하는 것이다
가로수의 그림자에도 놀라며
내가 인간에게 저질렀던, 저지를 수
있었던 수치들에 놀라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했던
죄스럽기만 했던
패악뿐인 삶이었던
그런 것들을 너무 일찍 알아차린 것이다
연신 줄담배를 물어도 풀릴 리 없는
죄악의 실타래는 내 숨까지 옭아매
앞으로 한 발짝 떼는 일조차
더 깊은 죄악일 듯 싶어 공포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 멸망한 밤에
종말이 오지는 않으려나, 어린아이 같은
죄를 뒤집어쓴 어린아이 같은
꿈꿀 수도 없는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해가 뜨고
그때까지는, 그림자들에게 사죄하고
또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갇힌 나는 창문을 두려워하며
햇빛 찬란한 겨울에 죽음을 그려보고
거기에 꽃이나 피지는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슬퍼하는 나는 슬픔 자체가 슬픈 존재인가
글/소설 2020. 1. 2. 22:25 |슬퍼하는 나는 슬픔 자체가 슬픈 존재인가
최씨는 쉽게 슬퍼한다. 오늘 아침에는 교복 차림의 소년소녀들을 보고 슬퍼했다. 그들이 발랄했기 때문에, 그리고 곧 그들의 젊음이 탁하게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젊음이라는 것의 덧없음에 대해 사유해보기도 전에 가로수를 보고 슬퍼했다. 그것이 도시계획에 의해 규칙적인 거리를 두고 일정하게 서있기 때문이었다. 인위성과 무위자연에 대해 저울질을 해보기도 전에 하늘에 구름이 너무 많아서 슬퍼했다. 이쯤 되니 최씨는 자신이 왜 슬퍼하는지도 알 수가 없어서 슬펐다. 그러나 딱히 논증할 것도 없었다. 슬픔은 기억나지도 않는 아주 오래 전부터 최씨의 뇌에 총알파편처럼 박혀있었고, 딱히 해결된 일도 없었다.
그러나 최씨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슬픔에 대해 말한 일이 없다. 애당초 서술이 불가능하다. 운명이려니 싶어서 괴로운 것이었다.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해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과 존재에 대한 엄청난 통찰이 있으면 모를까, 애초에 그런 통찰력이 있다면 슬프지도 않지 않을까. 이런 슬픔은 일종의 장애가 아닌가 싶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정신의 장애 같은 것 말이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날씨가 추웠다. 바람이 칼날처럼 매섭게 불었다. 물론 어쩐지 슬픈 심상이 되었다. 겨울의 초입은 세계의 냄새 자체가 슬픈 뉘앙스를 풍긴다. 생명이 절멸한 것 같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최씨는 그런 발상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렇다면 여름의 냄새는 슬프지 않은가, 단연 슬프다. 그 생명이 부풀어 터져 오르다가 부패하는 냄새도 슬프다. 하지만 겨울의 이 무기물로 공기가 가득 찬 것 같은 냄새도 슬프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퍼했다. 행성 자체가 슬픔으로 가득 찬 것 같다고 조용히 슬퍼했다.
골목으로 들어서 최씨는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피울 때는 슬픔이 조금 옅어지는 것 같았다. 폐에 독을 밀어 넣을 때는 슬프지 않다니, 그렇다면 생존자체가 슬픈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의 삶의 구조가 슬픈 것 같았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었고, 너무나 오래된, 망각되지 않는 심상이고, 최씨는 결국 담배를 피우며 어두운 골목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담배가 오래 타는 날이었다. 집의 현관 밖에 서서 여전히 남은 담배를 태우고 있자니 온갖 쓰잘데 없는 망상이 피어올랐다. 생각해보면 내 연배의 동료들은 이미 다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거나 하다. 나는 평생을 혼자 살아왔구나. 그것도 늘상 슬퍼하기만 하면서. 빨갛게 타는 불똥이 시야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더욱 빨갛게 탔다. 집에 들어가도 물론 혼자다. 혼자 살기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나는 혼자 슬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벽지가 하얗다면 흰색에 대해 슬퍼하면서. 왜 흰색 벽지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것을 소비하는가에 대해 슬퍼하면서 말이다. 최씨는 담배를 뻐끔대며 시야가 어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눈물이 난 것도 뭣도 아니었고, 분명한 것은 최씨의 정신 자체가 슬픔으로 구부러지는 것이었다. 최씨는 가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얼마 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늙은 채로 홀로 살고 있다. 그런데 그때 깨달은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슬픔이 하늘이 파란색이어서 느꼈던 슬픔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노인이 된 채 혼자 사는 현실도, 들고양이가 새벽에 울어서 느꼈던 슬픔과 다를 것 없었다. 담배는 이미 다 탔다. 최씨는 교묘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평생 슬퍼하기만 하면서 살아왔으나, 어쩌면 말이다, 나는 사실 살며 단 한 번도 제대로 슬퍼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럼 나의 삶을 이토록 지배해왔던 심상은 무엇이었을까.
다 탄 꽁초를 입에 멍하니 문 채 최씨는 한참을 현관 앞에 서있었다. 집으로 들어갈 마음도 어딘가로 뒷걸음질 칠 마음도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몸을 움직여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최씨는 한참을 서있었다.
계절은 여전히 겨울의 초입이었다.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글/소설 2020. 1. 2. 19:53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준영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계속 반복해서 네팔에서 사온 보리수 염주의 알을 세고 있었다. 몇 번을 세어도 107개나 109개가 될 뿐 도무지 108개라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 잡상인이 만들 때 108개를 정확히 넣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달리 할 일도 없어서 계속 세고 있었다. 보일러를 틀어놓은 방바닥은 따뜻했다.
이대로 죽게 되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백수로 지낸 지 5년 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 5년 째. 5년 내내 되풀이한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그 유명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였다. 무엇이 그리 수치스러웠는지 명확하게 기억나는 바는 없지만, 여하간 수치스러웠다. 단 한 푼도 벌지 않고 살면서도 겨울엔 바닥에 보일러가 돌아간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가끔 친구들이 부르면 무상으로 술을 얻어 마시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취하면 기분이 드높아져 다음날 아침이면 후회할 짓을 저지르는 것도 수치스러웠다. 준영은 방바닥에서 공연히 발을 까딱거리며 48개째의 염주 알을 세고 있었다. 5년 전 네팔여행에서 사온 물건이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었지,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 또한 곧바로 고통이 될 생각이라 후회스러웠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대상이 있다. 5년 전에 준영의 인생에서 떨어져나간 사람이다. 그녀가 준영의 마지막 연인이었다. 짧은 듯 길었던 2년간의 연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도 지금에 와서는 쓸모도 없는 일이다. 다만 그때의 일은 수치스러울 일이 없었고 준영은 항상 헛헛했던 28년간의 삶도 그녀를 만나려고 있었던 삶이었거니 했다. 헛헛했던 삶. 참으로 얻을 것도 없는 세상에서의 삶이었지. 애당초 이 세상에서 얻긴 뭘 얻는단 말인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말이다, 금강석을 찾겠다고 바다를 체로 뜨는 일 같은 것이 세상살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좀 제쳐두고, 그 2년간은 정말로 세상이 온통 황금이 되어 빛나는 것 같았지. 수치나 후회도 전부 철폐되어 부서지곤 했지.
네팔에 갔던 일을 지금까지도 도무지 가치판단 할 도리가 없다. 애당초 그녀를 만났던 것이 사찰에서였고, 28세의 준영은 출판사에서 도서 디자인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더랬다. 그녀는 미대를 나와 탱화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어 눈이 맞은 거야 온갖 이유나 인연이 있었겠지. 만날만 했으니 만난 것이었을 터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에 빠졌던 일은, 그것이 도대체가 그럴듯한 일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하간 보석의 반짝임 같은 2년이기는 했다만은. 결론은 말이다, 그녀는 네팔의 산사들을 함께 돌아다니다가 불연이 닿았는지 법과 사랑에 빠졌는지, 준영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오롯이 혼자였다.
연인이 사찰에서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도무지 보지 못하겠고, 준영은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 잃을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다. 애당초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멈추자 회색과 잿빛의 먹먹한 광경이 되돌아왔다. 도시의 구석에서 그 광경을 마음에 새기는 와중에 직업도 잃고 무엇이고 잃어버렸다. 정확히 무얼 잃어버렸는지, 언어로 나열하기는 힘든 일인데 무엇이고 다 잃어버렸다. 흘러온 삶은 그야말로 수치가 되어 비수처럼 꽂히는 것이다. 그러나 절벽에서 몸을 날릴 만큼 대단한 좌절까지도 아니었다. 그저 의문스러운 것은, 5년 전인지 35년 전인지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은, 나의 작은 마음은 어디에 있나.
그걸 찾으면 남은 삶에 거리낌이 없을 터인데.
몇 백번을 더 세어야 이 염주 알은 108개가 될까.
태양이 얼어붙어서
사람이 불행에 잡아먹혀서
존재는 슬픔밖에 피우지 못하고
겨울하늘이 연탄재 색깔이어서
폐부는 잿빛으로 썩어가고
믿었던 사랑이 기만이어서
절벽 끝에서 다리를 내밀기도 하고
여지도 없이 희망이 죽어가서
실링 째 떨어지는 올가미를 바라보고
그러니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다
생각하자면, 얼마나 많은 불행인지
행성 구석구석 들어찬 불행인지
담배를 뻐끔대며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다
혈액이 분노로 들끓던 시기도 가고
단도로 자기 심장 파내던 시기도 가는 것이다
단지 조용히 앉아 생각하노라면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존재의 무서운 굴레인 것이다
아무 정도 없이 피었다 말라가는
그런 나무처럼 되고 싶다고 되뇌일 때
나 혼자 나무가 되어 피었다 말라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슬픔은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 사람들……
고통의 바다에서 솟아올라 허우적대다
결국엔 익사해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스스로 사랑도 없었던 일에 자책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앉아 있다가
구원은 어디서 오나, 그러나 결코 밖에서 오진
않는 것이다, 밖에서 올 리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그런 것이다
태양이 얼어붙어서
빙하기에 불을 때는 마음이다……
겨울안개
밤이 겨울안개로 가득 차면
나는 희희낙락하여 오로지
해가 결코 뜨지 않을 줄로만 안다
시각은 쓸모가 없고, 더욱이
내딛는 발도 절벽 끄트머리를 걷는 듯
내 오감은 불확실의 포로가 된다
그런데 왜 이리도 기쁜 것인지
어디선가 위협적으로 산짐승 울고
이런 밤에, 나는 밟혀 죽은 독사를 기억한다
어둠과 안개가 먹어치운 다리를
쭉쭉 내뻗고, 한 발짝만 잘못 딛었다간
그래, 그 독사처럼 길을 잃고
단숨에 죽어버릴 것이다
보이는 것은 없고, 안개 위엔 먹구름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희희낙락한다
소리도 모조리 죽었어, 나는 이제
혼돈과 비실재 속에서 방황한다
내가 볼 수 없을 때 세계가 어떻게
요동치고 진동하며 천변만화하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코 알 도리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멍청한 다리를 쭉 뻗고!
땅 밑으로의 추락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차라리 내 영혼이 추락사할 것인가?
아니야,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세계가 형체 없어지는 일에 기쁜 것이다
고로 나도 형체 따위는 없고
겨울안개 속에서 내 몸뚱어리는
안의비설신의도 안개에 두들겨 맞아 죽었다
그러므로, 그런 고로
축축한 어둠 속에서 비실재하는 다리만 쭉쭉 뻗는다.
암막 같은 희망
새까만 하늘의 별들은
빛나는지 빛나지 않는지
고라니들은 모습 숨긴 채 뛰어다니고
인간의 힘은 언제나 불행이었다
자신의 불행이든 타인의 불행이든
사람은 비극에서야 어지러이
빛을 품는데
그러나 도대체 어째서?
저 멀리 도시에서는 분명
오늘밤도 그 비극에 취한 걸음들이
길가에 떨어진 동전을 줍듯
삶의 파편들을 주워 모으고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몹시도 슬프고
나 역시 그 속에 있었고
어둠은 물러날 줄을 모르고
모두가 그 안에서 맴돌고
그러다가도 너의 창백한 팔을 보고
나는 산길을 올랐던 것이다
그러면 너는 온화한 웃음을 보이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러나 동전 줍듯이 모아 만든 빛들도
시간에 따라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절벽 위에서 죽음을 결심했던 마음도
한낱 망념으로 화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때 그 산에 있지 않고
여전히 수풀 속에서 연기를 뿜지만
너와 함께 있지는 않은 것이다
너의 창백한 팔도 어디론가, 가버렸고
불행을 곱씹다가 홀연히
빛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먹먹한 마음으로, 인간마저 떨치려고 한 것이다
꽃봉오리 속의 지혜
글/시 2019. 12. 17. 22:37 |꽃봉오리 속의 지혜
꽃봉오리 안에 쓰러지듯이
이 꽃의 색깔을 나는 모르는구나
이곳은 너무 어둡고 답답한 동시에
사실은 평생을 여기서 살아왔다
꽃봉오리 안에도 꽃들은 있어
가지각색으로 빛나는 욕망들
그것의 본질도 모르고
하나씩 따 내 입안에 넣는다
이런 것들은 모조리 후회로 밖에는
남지 않아……
한때 상습 자살미수자가
<부끄러운 생을 살아왔습니다>라고, 그렇게
그렇게 말했지, 그 자는 분명
자신이 수치에 발버둥 칠 것을 알고도 꽃을 먹었으리
필요한 것은 분명히 지혜다
꽃을 먹든, 먹지 않든……중요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 지혜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지금, 꽃을 먹기를 멈춘 나에게도
꽃의 본질을 알고, 먹거나 먹지 않고
그렇다면 그것은 위대함으로 이어지겠지
후회하거나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실상 다 무지의 결과이니
그렇다면 그때, 어느 때가 됐든, 어떤 색깔로 피든
내가 쓰러져있는 꽃봉오리도 산산조각으로 피어날까
念
어리석단 말이다, 인간은, 나는……
평생을 희론으로 살아온 나는
어디로 가려고 했나, 어디로?
한 주먹의 이 알약들은
어디로 가느냔 말이다, 어디로
해가 뜨지도 않는 땅이다
그러나 태양도 달도 물리치고
패배하는 일 없이, 오로지 나는
영혼의 수액만을 찾아 마시려고 했다
오로지 온화하게 웃으며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내 가죽을 전부 벗기는 일이 있어도
결코 즐거워하는 일도 없이, 그러나
어리석단 말이다, 인간은, 나는
뇌수에 갇힌 내 무언가
나침반도 없이 절규하고, 통곡하고
무언가 날 마주하고 있어, 무언가
아주 새까만 장막 같은 것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모든
내 환영들을 송두리째 파괴할
그런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죽음조차 기만이 되었다
가지고, 탐하고, 사랑하고
그런 것은 이제 됐다, 이 겨울
아름다움조차 무언가를 방해하고
나는 비존재에의 열망에 허덕이고
空으로, 空으로, 무조건
마치 돌진하는 창병처럼, 단숨에!
그러나 무언가가 날카롭게 조소하고 있어
두개골 속에서, 감옥의 간수처럼
왜 감각하지?……
어리석단 말이다, 나는, 나는……
질식의 땅
대기에 스모그 끼어서
창밖은 하얗게 어둡습니다
어디선가 중기의 고함소리 들려오고
뻐끔뻐끔 담배연기만 두개골에 들어찹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창 닫힌 건물
여기는 어디인가 의문할 것도 없이
담뱃재 떨어지는 자리에 나 있습니다
세상이 스모그 먹어서
낮인지 밤인지, 아니 그런 것이
중요하기나 한 땅인가
달 대신 가로등 뜨는 골목에
눈도 내리지 않는 이상한 겨울
갈퀴 같은 바람은 하얀 먼지 긁어내고
나는 그것을 높이서 내려다보다가
창백한 하늘에 어찔하고, 난간에 스러집니다
―알제리, 알제리!……―
그만 둬, 나는,
가본 적도 없는 땅에 환상을 심지는 않을 터다
녹은 황금 같은 햇살도
드넓은 사막 파랗게 얼려버리는 달도
이미 내 머릿속에서 한 번의 생각으로 떴다가 졌다
난간을 기어오르며 입에는 담배 물고
뭐어야, 이미 죽은 생선과 같다
기름때 낀 창문 너머는 지독히 말세로다
그러나 그러나 멈출 수도 없지요
타는 담배는 끝까지 다 타야하고, 삶도
담뱃잎 싸놓은 육신처럼 다 타버려야 하고
세상이 어떤 꼴이든……
하하! 나는 위악으로 웃고는
해도 달도 없는 땅에서 깡통 찾으러 가는데
세상이 스모그 듬뿍 먹어서
행성이 도는 일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불야성
산에서 내려온 도시의 밤은
그야말로 불야성, 밤이 찾아오질 않는구나
명성이니 자본이니 그런 것은
뒤집히는 낙엽 같아 논할 것도 없으나
명성에 대해서니 자본에 대해서니
더욱이 모습만 바꾸는 꿈이어 나는 슬픈 마음이다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취중에 토하는 얘기는 불법에 대한 희론이다
세상이라는 착각에서 떠받들 것
가지게 될 것 버리게 될 것
모두 한번 생각하고 잊히게 되는 것이니
거품 덩어리 속에서 금강석을 찾는가
―나는 취하여 세상을 보았다
기쁨을 찾느라 발광하는 사람들은
어둠 내리지 않는 밤에서 바삐 달린다
그만, 그만! 그런 괴로움은
어리석음은 무지는 치워둬
불붙은 눈으로 뛰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감정도 없는 슬픔에 젖는다
이 도시는 도대체 누가 지었는지
빛은 사방에서, 그러나 깨끗할 것도 없는 빛
산에서 보았던 맑은 달은 파괴적이었다
사방팔방의 허상을 온통 부수었다
불야성의 도시에서, 나는 꿈도 꾸지 않고
그러나 꿈꾸는 자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들은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르고
냅다 내달리며 어딘가로 추락한다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은 귀가 없어
절벽에서 팔을 뻗는 내 얘기도 듣지 못하는 구나
도대체 얼마나 내달리게 될지
57억 6천만년이나 허상을 달릴 셈이냐
그만, 그만! 세상을 바꾸려는 일은 그만두고
이 착각 벗어나는 일이나 하지 않으려나……
無名
초겨울의 냉기가 산을 뒤덮고 하늘을 뒤덮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같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시내에서 사람들은
몸을 싸매고 바삐 어딘가로 걸어간다
한 몸 편할 곳을 찾아, 추위를 피해 달려
어딘가로 어딘가로 바삐 가려고 한다
세상은 거대한 착각이니, 여기서
세상에게 이름을 붙인 채 살면
괴로움이 끊어질 일이나 있을까요
몇 번이나 죽고자 하여, 나
실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비존재가 되려했습니다
바람 불면 일어나는 파도가
아아, 나는 파도로구나, 하는 순간
천둥치는 하늘과 고해에서 영겁을 뒤엉깁니다
그러니 나, 무한한 바다로 다시
파도에게서 이름을 지우고, 스러지는
심해의 밑바닥으로 형상도 없이 가고 싶었습니다
뇌 속에 갇힌 누군가를 꺼내려고
권총 한 정 꺼내 구멍을 낸다 하더라도
내가 空으로 돌아가지도 않겠지요, 죽음도 미신인걸!……
알고 보니, 흙탕물 튀기며 살려고 했던 발버둥도
죽고자 하여 약병과 밧줄 쥐던 발버둥과
별로 다를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내가 이름도 없는 곳으로
저 멀리, 저 멀리……
펜을 문 짐승
딱히 겨울하늘이 파랗게 얼어붙었다 한들
그것에 대해 무어 감상이 있지도 않지
마른 숲속에서 도망치는 고라니와 마주쳤다 한들
내게 무어 놀란 가슴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세상은 얼어가고 나도 얼어가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쥔
담배도 이제는 무슨 맛인지
녹슨 울타리 같은 마음으로 궁금해 하지
감성, 감성! 그렇게도 부르짖는
그것이 내게 있기나 했던가
지난여름 비 오는 철교 위에서
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궁금했었지
―이제 그만 쉬어
문학도 예술도 인생의 끝에
그리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할 거야
그런 말들에 나는 심장을 난도질당하고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겠지만!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 손가락 저릴 때마다
나는 비참한 심상으로
한 가지 싯구를 떠올리고야 말아
저 능선 위의 절벽은 어떤 죽음을
내 정신과 영혼에게 드러내줄까?
수세미를 씹듯이 담배를 물고
나는 이상하고 추운 탐미에 홀려있네
……이제 그만 쉬어
그 말에도, 고통만 읊조리며
펜을 찾아 돌아가는 슬픈 짐승이다.
부정否定의 시
내 삶은 사유가 폭풍우치는
끝나지 않는 밤 같았으나
누군가 내 껍질의 가느다란 실마리를
강하게 잡아당기고야 말았습니다
시인들의 노래가 어디로 가는지
나의 정신이 미치광이처럼 따라갔으나
끝에는 공동묘지, 더하여
도무지 죽을 줄을 모르는 시체들
그리하여 저의 껍질을 더듬어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회의를 계속하고
죽어버릴까? 이런 육신으로는
영혼에서 퍼 올린 자아조차 가려지는데
그러나 누군가가 분명히
내 실타래 끝의 실마리를 잡아당겼고……
육신은 헐거워지기도 하는 법이지요
뇌수조차 묵직한 고기였던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햇빛은 더욱 선명하기에
겨울에 골몰하여―아, 그러나
광풍 같던 사유와 사고는 이미 가라앉고
나는 적적히 뭔가를 회의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그만한 것도 없지요
옛날부터 깜깜했던 나의 시각은
떠올려진 망념들이 미친 말馬들처럼 지나가는 일로
그리도 깜깜했던 것입니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팔짱을 끼고
증오와 광란만 허용하던 나의 삶은
죽음에 이를 때는 미풍도 그치려나요
밤에도 햇빛은 지평선 너머서 빛나니
그래요,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폭풍우와 지진을 집으로 삼고
살갗이 전부 찢겨나가는 것을 기대하던, 어린아이가요.
첫눈
눈 내리면 소리가 사라진다고들 하지
사실 그저 하늘과 대지가
눈 내리는 소리에 뒤덮일 뿐이야
자세히 들어보면 참도 소란스럽지
부스럭 차르륵 사방을 치며
눈이란 놈은 그렇게도 주장을 해
눈 내린다고 소리들이 어디로 가지도 않지
그저 푸르고 거뭇거뭇하던 색깔들이
하얀 소음으로 마구 칠해질 뿐이야
모두가 잠을 잔다는 계절에
소란스럽기도 하지, 마치
세상이 곧 자신 되기라도 하듯
이름도 없는 색깔들 떨어지지
눈이 그치면 밤이 내리고
그러나 구름들은 물러나지도 않아
달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비행기 소리에 올려다본 하늘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달을 보다가
담뱃갑에 손을 베였구나.
몇 가지 겨울
빛이 쏟아져 내리는 우박 되는 계절에
나 마른 잎들을 밟으며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네
그러나 희망도 없이
노란 나비들 날던 때는 가고
이젠 밥 먹을 때조차 벌벌 떠는
파리들이 끊임없이 들러붙어 오듯이
망념은 계속, 어디서 떠올라 오나
어디선가 빛이 깜빡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전신주 위에서 겨울이 빛나는 소리인가
그러나 나 쳐다보지도 않고
하얀 입김에 기뻐하며 그 소리 들었네
―어느새 겨울
굳이 풍광을 언어화할 필요는 없다
시인들의 일이란 진절머리 나는 것이지
진절머리 내면서 한 겨울에 나비를 찾고
그러니 그런 것들은 증오되고……
하지만 달리 고백할 것도 없다
희망 놓고, 기대 놓고, 이러이러 하리라는 마음도 놓고
그 사람 눈동자는 성자 같았지
어디선가 보았던 한 여름의 활엽수림 같았지
나 활엽수림 앞에서 계곡에 거꾸러지고, 옷이 젖지 않길 기도하며
끝내 놓지 않던 담배꽁초 연기가 내 눈에 스며들었지
이 눈이 다시 밝아지는 때는 언제? 언제냔 말이야?
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앙드레 지드는
어떻게 죽었나? 그의 말대로
지상의 양식 다 취하고 희망 없이 죽었나?―성자가 될 수 있었나?
나 한번 죽었으나 완전히 죽지 못했다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 몇 번이고 다 읽었어도
정혜쌍수를 쥐지 못했다, 세월은 막히지도 않고 흘러가고!
―그래, 지금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겨울 무렵이면 사방이 깜깜했고
어머니는 이불을 덮고 있었지…… 나는
나는 반짝거리는 어둔 공기 속
뭔지도 모를 불안에 멀뚱히 서있었고!
나의 어리석음과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의 어리석음은
만일 내게 밝은 본성이 있다면
달을 뒤덮은 구름 같은 것이지
나의 어리석음은
구름 낀 야밤 파도 속에서
달을 건지려고 철벅거리는 어부지
나의 어리석음에
돌을 모으는 보석상인처럼 나는 십년을
바깥의 지식만 주워 모으며 행복할 줄 알았지
나의 어리석음에
나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고, 방안 가득한 무덤
그러나 어느새 칼을 쥔 채 내 가슴을 조준하게 되었지
지식이 잃어버릴 수 없는 재산이라고
누가 말했지? 그도 이미 죽어
잃어버렸을 것이다, 대답할 입술도 썩어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일부터 어리석었지
외로움 잊으려 발광했던 일도
나 그저 나를 점점 두껍게 칠했을 뿐이지
―이제 점점 겨울바람도 불어
생선가시 같은 나무들, 낙엽도 없네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같은 생활음
찾던 것은 행복조차 아니었다
이상한 눈을 한 채 태어나
내 본능은 그저 더 많은 지식을
썩고 벌레먹이 될 뇌수에 맹목으로
쌓고 쌓는 것이었다, 지혜는 한 조각도 없었다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도심, 초겨울
초겨울 바람도 날카로운데
나무들은 뼈만 앙상하다
하늘엔 구름도 뜨지 않아
죽음이 골목골목 나다닌다
새하얗게 질린 콘크리트 아래서
이런 계절이면 발광할 것 같아
행인들 텅 빈 유모차 밀고
나는 미친 손으로 뭐라도 주워 모으려
태양이 황금으로 빛나던 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고
대지는 이제 차가운 등뼈
발골된 세상, 내가 쥔 것은 칼
이런 때면 으레 나는 어리석은 일에 미쳐
생명의 소리를 듣겠다고 시멘트에 들러붙지만
모조리 죽었다…… 물소리도 없는 도시
어디선가 결핵환자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폐쇄된 방안에나 있을 일이지
어리석은 발은 거칠게 쏘다니며
담배연기는 숨쉬기도 전에 스쳐지나가고
불안한 마음, 사방이 콘크리트다
이제 내 마음은 죽음에 닿아
그래, 평안해지고 마는 법이지―따라잡힌 발걸음
골목에서 나온 그가 오로지 내 눈 주시할 때
그래, 죽음에 닿아, 담배연기는 깊이 폐로
하늘은 마른 생선 껍데기
거대한 등뼈 위를 쏘다니다 지칠 즈음
세계는 세 가지 정도의 창백한 색깔이 있고
황혼도 없이 밤이 쏟아진다.
알코올의 밤
알코올의과량섭취는지나간이에대한그리움을유발시킬수있다
1.
아버지와 마신 술은 연했고
아버지의 주름은 술보다 진했고
내 눈은 아버지보다도 늙었고
술병은 내 눈동자보다도 늙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새벽마다 독송과 108배로 대신한다고 했다
나는 간만에 부모를 보았다
꽉 막힌 침묵 어느새 입술에 묻었다
안주는 먹자마자 망각되고
다만 알코올만이 의식을 모르고
위장에서 신경으로 중첩된다
밤은 더욱 밤이 되어 굳은 기름처럼 변한다
누가 인류를 증오한다고 했지?
그래, 내가 그랬지, 아니야 사실은
인류가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배꽁초 버리듯이 증오하는 것이다
백탁으로 굳은 기름처럼
세상은 경화되어가고
나는 오물 같은 말을 쏟아내고
혹은 쏟아내지 않거나, 나는
도시가 멸망해가는 게 안 보여?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외치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피하며 집으로 향하고
나는 절명하는 콜타르 멱살을 잡고
아버지, 먼저 들어가시죠, 저는
몇 개비의 담배꽁초를 이 콜타르 위에
집어던지고 짓밟아야만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영령의 눈동자로
휙휙 지나가고, 휙휙 무관심하고
아아, 술인지 멸망인지에 취한 나는
친구 집의 현관문이나 걷어차고 싶다
비 내리는 계절은 멎었나?
그래도 멎었겠지, 이제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생명의, 생명의 물이 아니야
고양이들 빗물 마시고 마비되어 죽어간다
водка! 그것의 어원이 생명의 물이야
그러나 지갑도 어느 진창에 떨어트렸고
스스로 담배연기에 질식해가면서
나는 네온사인 밑에서 꿇어앉는다
알고 보니 말이야,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래층에 알코올중독자 부부가 이사 왔다고 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울부짖는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희희거렸다
도시는 콜타르 색으로 죽어가고
빗물은 포름알데히드 같아……
2.
이 옷은 네팔에서 사고
이 바지는 인도에서 샀지
그리고 난 미국남부에서 산 담배를
입술의 일부인 듯 물고 다녀
괜찮은 길이다, 이대로 가도 나쁠 것은 없다
내던져진 행성에서 내던져진 생명으로
윤리를 내던지고 도덕을 내던지고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가는 것도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그럴 리가 없지
이상한 가격의 소주를 흠뻑 마시고
담배연기로 화하여 걷는 거리에도
그녀는 나타나고야말지
여긴 대륙 끝자락이야
여긴 반도의 화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네가 있을 리가 없는 곳이야
영어로는 페닌슬라라고 하는 브릿지 같은 곳이야
그러나 그녀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바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민족은 잿더미가 되리라”
그런 나라에서 정갈히 머리를 깎고 온 바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나는 이미 잿더미라
아니야, 그래도 난 괜찮은 길을 걷고 있다고
내던져진 행성에서도 구원은 있으니
이번 생은 그렇다 치고, 다음 생은 괜찮겠다고
이름을 떨어트리고 산골로 들어섰으니
그러나 그녀는 왜 나타나고야 마는가?
술에 취하고 담배에 취하고 입술도 잃어버린 내게
저 단발 지나가고, 저 장신 지나가고, 저 미소 지나가고
어둠은 가로등은 형상Eidos을 섞어 혼란을 내게
그만, 그만! 이제 웃어라 시인 나부랭이야
그리움도 사치니 아무것도 망각하지 못하는 너는 웃어라
현실은 지나가기만 하는 환상이니, 너는 얼간이야
시간에 매장된 글쟁이야, 너는 담배 한 대나 더 빼물어라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살아있든 죽었든, 그러니
아냐, 나는 담배 한 대나 더 태우렵니다.
3.
그것은 참으로 괴물 같은 어둠이었어
그 속에 나는 앉아있었고
엉덩이와 다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영원히 내려가는 계단에 동화되었지
내 안경에 뭐가 묻었나?
내 영혼에 뭐가 묻었지
분노의 외침들이 고요히
눈동자를 까맣게 좀먹어갔고
마침내 무관심으로 화하여
행성의 저편에서 순결한 생명이 죽어간들
나는 지금 태우는 꽁초나 마저 태우면 그만인 걸
북인도로 갔다던 그녀는
몇 년이나 잊어버리고 있었더라
정신이 백탁해지고, 굳은 기름
잠들 때가 되었어
멸망할 때가 되었어, 사방을 뒤져
유럽을 떠도는 유령까지 붙잡았지만
후세, 나는 잠들고 싶을 뿐이다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없이
종말의 행성에서
절멸하고 싶을 뿐이다.
늑대의 시
도시에서는 더 많은 비가 내렸지
빗방울 하나마다 비치는 감금과 비극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내 마음 포화되어 갇힌 늑대처럼 자기 다리 뜯었네
어둠 내리면 모두 옥상으로 갔지
담배연기에 영혼까지 뿜어지길 바라며
다들 손에는 술병 하나씩 잡고
이따금 난간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친구도 있었네
골목 바닥은 너무 낮아,
영혼만큼 낮아서 그대로 동화될 듯해
달려라, 달려라 숨 못 쉴 높이까지
나 죽으면 연립빌라 옥상에 묻어줘, 티켓값 잊지 말고
비가 내렸지, 사람 마음 미쳐버리게 하는
절반은 인공의 어둠, 절반은 갈구하던 광기
빗방울을 씻어내 광기만 남길 순 없나
알코올은 너무 약해, 75도짜리 광증을 마시게 해
이 옷은 너무 답답하지
단백질, 지방, 뼈 따위로 지어놨으니
아무에게도 어울리지 않지
늑대는 늑골을 찢어 부수고 스모그 사이로 달리고 싶어
비가 내렸지, 도시에선 더 많은 비가 내렸지
하늘은 먹빛이고 도망치기엔 절호의 날씨지
아프다고 옷이 절규해, 속에서부터 찢어지고 있다고
옥상에선 친구들이 연달아 굴러 떨어져
이 행성에 사는 것들은
70억의 인간들이 아니라
70억의 갇힌 늑대들이어라
너무 오래 달을 못 봐 미쳐가는
도시에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렸지.
가을의 울음소리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하늘은 계속 높아져
돌아오지 않을 듯 해
사랑하는 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는 고개 숙이고
땅바닥 굴러다니는 자갈만
무심을 가장하며 발로 찬다
밤이 되면 또 달이 뜨겠지!
너무 맑고 청명해 투신하고픈
그런 달이 다시 뜨고 나는
투신할 방법을 찾느라 절망한다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누가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까
아무도 듣지는 못했겠지
애당초 울부짖을 혓바닥도 없었으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땅을 본 채
무심한 눈동자 안에서는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채이는 자갈만 들으라고 통곡을 한다
아아,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연초에 걸렸던 결핵
글/시 2019. 11. 14. 07:18 |연초에 걸렸던 결핵
마음 둘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네
소나무 가지에 담배연기는 뿜어지고
어둠은 결국 밝을 것이라
매일 아침 태양이 뜨는 걸
저주하던 시기가 있었지
화를 냈던가?
내 몸이 화에 들떴지
죽어야만 할 것 같아……
사람들은 실망하고
나는 수치에 몸부림치고
빚을 갚을 마음은 애당초 없으니
온몸의 피를 길게 빼내면
가을바람 휘몰아치는 창밖에
빛살은 내려오고
나는 갇힌 창안에 누워있겠지
왜 떠도느냐고
괴로우니까다
왜 떠도는 것에 괴로워하냐고
괴로우니까다
연초에 걸렸던 결핵이
다시금 그리운 밤이다.
짐승의 노래
산중에 가을비 내리고
담배연기는 커피의 맛
쓰고 떫어, 혀에 들러붙어
분에 안 맞는 사치의 뒷맛 같구나
내 코트에는 빗방울들
껌처럼 눌어붙지
해는 구름이 가렸고,
나뭇잎이 가렸고, 내 마음이 가렸다
신기한 일이지, 담뱃불은
비 내려도 빨갛게 탄다
다만 떨어진 담뱃재
진흙으로 돌아가 회색반점이 된다
입에서 나는 커피와 담뱃진 냄새에
나는 입을 감추고
황급히 몸을 감추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내 둥지로 향한다
질질 끄는 발걸음을
가을비는 붙잡고 늘어지고
질끈 묶은 머리는 비에 번들거리며
나는 도망치는 산짐승 같아라
어리석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만 살아왔으니
짐승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바
유아아아 괴상한 울음을 짖으며
지혜로워질 수 있는 날을 망상한다
가을비, 끈덕지게 쏟아붓고
내 코트는 짙은 적색이 되었지
입에 문 담배는 재만 남았네
유아아아, 둥지마저 버리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