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구멍

글/소설 2021. 8. 18. 21:17 |

(고전적 글쓰기 연습)

구멍


 나는 지금 탁자 위에 앉아 검은 파도가 치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재앙은 모두 내가 불러온 것이다. 현실을 캄캄한 구멍 속에 집어넣으려 했던 결과, 이제 곧 내가 그 어둠에 삼켜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힘주어 말하건데, 나는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처음에는 부엌에 놔두었던 음식이 몇 개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정도였다.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먹어치운 뒤에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일 터다. 나는 혼자 살고 있었고 내 기억력은 언제나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자 내 건망증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부엌에 올려놓았던 사과나 식빵들, 장을 보고 탁자 위에 던져둔 채소들이 갉아 먹혔다. 다용도실에 있는 쌀자루의 귀퉁이가 터진 것까지 발견하자 나는 마침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곧바로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입구에서는 커다란 카트를 끌고 다니는 행상인이 해충구제 약을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카트에 달린 파라솔 밑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는 중년 여성에게 집에 쥐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국어가 인쇄된 상자를 하나 내밀며, 음식에 섞어 집안에 뿌려두라고 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독한 약이니 엄한 데 쓰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설명을 들은 대로 빵조각에 약을 섞어 부엌과 다용도실 구석에 뿌려두었다. 쥐약을 집어 먹은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고 싶었지만 이미 외출할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서기 전 집안 곳곳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거실의 어두운 구석에서 나는 놈들의 소굴을 발견했다. 거실 벽이 나무 몰딩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 확실했다. 그곳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어서 뚫어놓은 듯한 작은 구멍이 있었다. 구멍은 성인 남성의 주먹 절반 정도 되는 크기였다. 안쪽은 아주 깜깜해서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깊은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저녁에 돌아오면 전부 정리되어 있으려니 하며, 나는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약을 뿌려두었던 곳을 확인했다. 검고 지저분한 쥐의 시체 하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음습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축 늘어진 채 다용도실 한복판에서 죽어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쌀 포대를 갉아먹고 있었는지 주변에 쌀알이 흩어져있었다. 나는 비닐장갑을 끼고 시체를 집어 들었다. 죽은 생물을 만질 때의 촉감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쥐를 들고 선 채로 잠시 고민했는데, 이것을 도대체 어디에 버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일반 쓰레기는 아니고, 음식물쓰레기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때 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물도감에 따르면 쥐들은 잡식이라고 했다. 놈들은 무엇이든 먹으며, 단 한시라도 먹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5분에서 10분만 굶어도 죽어버리는 것이 쥐라고, 분명히 읽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는 쥐의 몸뚱어리를 거실로 들고 가, 어둡고 캄캄한 놈들의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것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그 뒤로 사흘 정도 아무 일도 없었다. 쥐들은 더 이상 내 음식을 훔쳐가지 않았고, 나도 구멍을 내버려 뒀다. 시멘트를 발라 막아버릴까 생각해봤지만, 놈들이 음식을 훔쳐가지 않는다면 그럴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그 구멍은 의외로 내게 편리한 것이기도 했다. 독신생활을 하며 생기는, 음식물 찌꺼기가 잔뜩 들러붙은 비닐이라든가, 종이와 플라스틱이 단단히 붙어있는 포장지 등, 배출이 난감한 쓰레기는 그 구멍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밖으로 밀려 나오거나 안에서 썩는 냄새가 나지 않는 사실로 보아 구멍 안에 사는 것들이 알아서 잘 처리하는 것 같았다. 쓰레기를 구겨 넣을 때마다 모서리끼리 마찰하기 때문인지 구멍이 조금씩 커지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특이한 취미가 생겼다. 신문을 읽다가 불쾌한 기사가 있으면 오려서 구멍에 넣었다. 주로 정치, 사회와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전기, 가스비 따위의 청구서는 요금을 지불한 뒤에 누군가에게 복수라도 하는 기분으로 구멍에 욱여넣었다. 구멍은 정말 끝도 없이 깊은 것인지 아니면 그 안의 짐승들이 내가 넣는 불쾌한 것들을 전부 먹어치우고 있는 것인지, 절대 막히는 일이 없었다. 어느새 나는 이 구멍이 집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구멍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온갖 불쾌하고 어딘가 멀리 집어던지고 싶은 물건들―혹은 생각들―을 구멍이 훌륭하게 처리해주지 않는가. 성가시고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이 구멍 안에서 해충들에게 갉아 먹히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 그 새까맣고 커다란 구멍이 있으니 그러한 상상은 노력 없이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온갖 것들을 구멍에 집어넣었다. 누군가의 부고(訃告), 5년 넘게 만나지 않은 옛 친구가 보내온 청첩장, 구청에서 보낸 선거홍보지, 죽어버린 화초, 심지어 사회생활에 진절머리가 났을 때는 지갑에 있던 30여 장의 명함을 전부 구겨 넣기도 했다. 내 손길을 타면서 구멍은 계속해서 커졌고, 나는 내가 ‘그것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분명히 알고는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표현을 일차원적이고 피상적인 의미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구멍’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었다. 생활의 일부이자 나의 특별한 쓰레기통이 된, 새카만 입구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구멍의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한 무리의 쥐들이 계속해서 내가 주는 먹이를 갉아먹으며 생존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거실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우연이었다. 젓가락으로 집은 반찬이 기름이나 조청 때문에 미끄러워서 떨어지는 일은 아무 때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콩은 바닥에 떨어져 2cm 정도를 굴러갔다. 나는 그것이 굴러간 방향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무심히 생각하며, 그리로 시선을 향했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구멍이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세배 이상 넓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벌어졌다. 굶주리고 잔악한―틀림없이 내가 먹여온 것들 때문에― 검은 파도가 핏빛으로 점멸하는 눈동자들과 함께 해일처럼 쏟아져나왔다.
 나에게는 경악할 시간도, 도망칠 시간도 없었다. 나는 식기들을 전부 밀어내며 탁자 위로 뛰듯이 올라갔다. 놈들은 순식간에 온 집안을 뒤덮었다. 곧이어 집 전체가 비명 지르는 것처럼 할퀴고 뜯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들은 내가 올라앉은 탁자 다리를 그 흉측한 앞니로 갉아 먹고 있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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