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알다시피 넌 모든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쓸데없이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 말하기 힘들지만 너는 게으름을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다간 연기 같은 관념이 되고 말아. 두려우니까. 두려워하니까. 불꽃은 스스로가 비참하지 않다고 말했어. 너도 난간을 잡아야지. 그 난간 말고. 그래. 나도 알아. 다른 누구한테 하는 말이 아니니까. 나도 알아. 우린 정말 잘 알고 있어. 우리는 단어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 고마워. 우리는 단어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 어느 쪽으로 가야하는지 알지. 우리는 끝이 나지 않는 일요일들도 견딜 수 있을 거야. 멍청한 짓인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 건 그만 둬야지. 설득하지 않아도 돼. 어느 쪽인지 아니까. 유일하지. 유일한 우방. 우리는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거야. 틀림없이. 틀림없이. 여기서 나가자. 그쪽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이제 됬어.

Posted by Lim_
:

낯선 형상의 끈적거리는 현상들이 당신의 방패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다면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방패라는 것은 여러분 같은 겁쟁이들이 항상 겁을 내는, 인간의 살냄새가 엉겨붙은 금속들이다.
동이나 철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무방비다. 당신이 코미디로 몸을 지키려한다면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방비야.
방을 어질러 놓아도 사람들은 오물을 피해 걸어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들 눈에는 항상 길이 보이는 게 틀림없다.
길이 어디 있냐고 발악을 해대는 우리들의 눈에나 보이지 않는 거겠지.
그러나 나는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나는 탓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저번에도 말했지. 병증은 숨어들만한 공간이 없다.
차가운 공기가 살가죽을 찔러대는 광장에 내버려졌다. 겁쟁이들 말이다. 그들이 내버려졌다.
아무것도 입지 못한 벌거숭이인 채로.
온갖 섹슈얼한 기온들과 시퍼렇게 멍든 시선들 사이에 말야.
둥근 눈알들과 가학증.. 하지만 이것도 난센스다. 난센스 중에서도 가장 우습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난센스다.
잊어버려.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스크래치, 스크래치, 스크래치. 그들이 그리는 그림들. 공간을 말한다.
과장되지 않은 비유들을 말한다. 나의 아침에는 없는 그들의 언어.
울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즐거워.
그들은 과장을 싫어해.
과장을 싫어하니까 진실도 싫어하지.
진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사실을 좋아해.
누군가는 내 말을 중요하게 여긴다. 의사들 말이다. 의사들과, 의사들과, 혹은 의사를 닮은 교수들.
의사를 닮은 사람들.
난센스다.
리비도를 통해 우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아침이다.
도시에서 맞는 아침의 지저분한 색깔들.
도시색의 공기. 태양을 꺼버려야한다.
아무튼 리비도 말이다. 리비도.
마치 우스광을 떠는 것처럼 말했지만 인간이 된 이상 그곳에서 진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진지한 고자들, 유쾌한 색정광들. 그것들을 전부 포함한 생명들.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가? 내가 몇 번이고 반복하는 말이다. 온갖 것들이 그렇다.
달에서 본 지구는 틀림없이 섹슈얼했다.
특히 그 푸른빛이야말로 추잡스러운 기적이었다.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정말로 말이다. 하지만 내 영혼이 온갖 것들과 닮아있고, 에탄올의 색깔을 한 신을 찾아내려고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것도, 이건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추측들, 추측들, 하여간에 수도 없이 많은 추측들. 추측은 갖혀있어. 추측은 당신들의 것이 아니다.
당신의 두개골이야말로 자신의 소유물이겠지. 그 두개골, 그 두개골, 거친 색감의 감옥.
지면에서 2미터 정도 떨어져서 둥둥 떠다니는 감옥.
당신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곳은 지면이다. 괴상한 멜로디나 읊는 놈들 같으니.
활자로도 웃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웃음은 활자로는 변환되지 않는다. 특히나 짧은 활자들로는 더욱 더 그렇다.
이 글이 통째로 웃음소리라면 몰라도.

Posted by Lim_
:

 멈추지 않는 불안감과 생각하지 않는 공포에 대하여. 나는 손끝에서 나는 단조롭고 신경질적으로 반복되는 소리들처럼 공포에 질린다. 내가 이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통이란 가끔은 사고를 잊게 만들기도 하고, 가끔은 그야말로 미치광이의 머릿속 같은 상념의 쓰나미 속으로 처넣기도 한다. 후자가 좋다. 고통스럽지만 후자가 좋다. 적어도 그런 때에는 심장이 쪼그라들어 쥐새끼처럼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통은 온갖 내장들을 크게 만든다. 울렁거리고 욱신대는 내 피와 살덩어리들을 피부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다. 생각하지 않는 공포에 잡아먹혔다는 것은 허무를 잊었다는 뜻이다. 죽음을 잊고 생명조차 잊었다는 뜻이다. 이곳에 있는 감각과 펄떡거리며 뛰어다니는 피투성이의 정신도 잊어버리고, 그 손에 들려있어야할 잔인하고 끔찍한 전쟁의 도구들 마저도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잊어서는 안된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비일상에서 일상으로 도망치고, 감각과 충동에서 상식으로 굴러떨어져서는 안된다. 벌레들에게 갉아먹히고 말 것이다. 새까만 벌레자국으로 너덜너덜해지고 말 것이다. 명징한 정신은 흉터 속에. 피흘리는 통각 속에. 내리찍는 흉기 속에. 비참하고 어두운 정념 속에. 진정성이다. 정신의 전쟁. 사상의 조각들이 피와 함께 튀고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처참한 살육전. 생명의 모습. 필연. 나는 너희들을 모두 증오해야만 할 것이다. 혹은 슬퍼해도 좋다. 병사의 손에는 죽음이 낳은 허무가 들려있어서는 안된다. 죽음이 낳지 않은 허무가 들려있어야만 한다. 생명의 탄생과 함께. 그러니까 고통을 잊어서는 안된다.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고통과 함께 하자. 그 고통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더 강하게, 더 자극적인 통증을, 정신을 차려야만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실 그럴싸한 환경만 있으면 굳이 통각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럴싸한 환경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과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과도 닮아서, 익숙해질 틈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고가 멈추지 않는다. 사고가 멈춘 절벽 밑의 시체가 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고통은 절망이고, 절망은 고뇌의 입구이고, 그 문 안쪽에는 도그마 없는 사상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지독함, 생명. 가치다. 가치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이미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지독한 아름다움이다.
 시지프스. 시지프스의 신화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까뮈의 필체 바깥에서.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