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인간보다도 인간적인, 그 어떤 인간도 상상하지 못할, 인간을, 인간의 덩어리를.
나는 체화된 욕망이 보고 싶다. 그 순진무구한 핏빛의 입술과 크게 벌린 입을 보고 싶다.
굳이 종교라 한다면, 이것이 나의 새로운 신앙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지금 이 관계들 속에선 투명한 눈물이다. 너무도 많고 복잡한 감정들이 혼탁하게 얽혀 오히려 투명하게 보이는.
처절한 울분이다.
혼탁한 눈물을 태어나게 만드는 너희들이야말로 전쟁광이다. 전쟁에 미친 인류다.
그리고 그 눈물샘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들이야말로 전쟁광이다. 미치광이다. 필연적인 잔혹함이다.
그러나 전쟁광이라고? 이러한 단어가 있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냐.
나는 쓰지 못한 것을 쓰러 가야 한다. 너희가 빼앗아간 핵심과 너희가 내게 준 시각들을.
틀림없는 '다름'을. 천연의 것을 대단히도 괴상한 괴물성으로 만들어버리는 격리의 혓바닥들을.
너희들의 끔찍한 눈과, 나를 항상 미쳐 날뛰게 만들었던 그 표정들을. 그 표정들을. 그 표정을 짓는 자들을. 너희는 정당하냐? 너희는 스스로 짓고 있는 그 표정들 만큼 정당하냐? 그 찌푸린 미간은? 경악하는 눈동자는? 공포에 질린 시선은? 혐오감에 꿈틀거리는 혓바닥은? 역겹게 일그러진 입꼬리는? 나를 향하던 그 푸르죽죽한 입술들은? 너희의 이마 한가득 꽂혀 있는 정당함의 근거들은? 너희는 정당하느냔 말이다. 너희는 괴물을 만드는 자들이다. 너희는 격리를 만드는 체제이고, 너희는 혐오를 위한 정신을 가지고 태어났다. 너희는 스스로 만든 괴물들을 울리는 자들이다. 너희는 자연을 자연이 아닌 것으로 덧칠해놓는 흉악한 왜곡을 만드는 자들이다. 너희는 그저 폭력배이며, 모여서 흉기를 드는 자들이고, 너희들의 그 힐끗거리는, 그 힐끗거리는, 그 곁눈질하는 야비한 눈동자들, 야비한? 야비하다고 할까? 아니면 무어라고 할까. 너희들을 이만큼이나 증오하며 울부짖고 있는 난 어떤 방식으로 언어를 입에 담아야 정당할까? 그 누가 정당하다고 할까? 누가 정당함을 입에 담을까? 누가 정당함을 온갖 흉기들에게 나눠 주고 있을까? 너희들을 그저 엿같은 새끼들이라고, 찢어발겨 마땅한 개새끼들이라고, 찢어발기지 못하는, 너희들 모두를, 이 거대한 건축물의 주인들을, 너희 정당하고 정의로운 시민들을, 착실한 납세자들을, 봉사정신이 투철한 선민들을, 내 심장을 꺼내려고 했던 쓰레기 같은 법과 도덕의 수호자들을, 쓰레기 같은, 아아, 폭언이 도대체 무어라고. 욕지거리들이 도대체 무슨 표현력을 가진다고. 만약 그것들이 충실하고 완전한 것이었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길게 늘어놓는다. 나는 계속해서 길게 늘어놓는다. 나는. 계속해서. 길게. 늘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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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 번이라도 배가 고팠던 적이 있는가? 나는 배가 고프다고 말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허기 속에서 실체를 갈구한 적이 있느냔 말이다. 나는 욕망만을 갈구하지 않았나. 나는 욕망만을 갈구하지 않았던가. 허무주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무를 아는 삶은 얼마나 극단적이란 말인가. 그러나 보라, 그 극단은 극단이 아니다. 극단이라는 것은 경계선과 축이 나눠 놓는 좌표다. 그러나 그의 삶 속에는 경계선도 축도 없다. 태양을 갈구하며, 하얗게 작렬하는 햇빛을 갈구하는 그 타들어가는 눈동자를 갈망하며, 온 몸에 퍼진 독의 맛을 보는 누군가. 지상에 두 발을 짚고 살아가는 인간과 그 두 발을 찾지 못해 부유하며 울고 있는 삶 말이다. 삶이라니, 삶이라니, 삶이라니. 삶이라니, 누가 그런 이름을 붙이고 즐겁다는 듯이 웃어대느냔 말이다. 누가 그 이름을 입에 담고 차가운 눈동자를 얼어붙은 눈꺼풀로 감쌀 수 있단 말이냐. 그 열광하는 이름을 손에 쥐는 자들은 모두 울고 있을 터다. 아니다, 울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울지도 못하고 슬퍼할 것이다. 눈물도 없는 채로 절규할 것이란 말이다. 역류하는 눈물샘이 이어지는 곳에 마침내 심장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두개골에 담겨있는 심장을 생각해보라. 두개골에 담겨있는 심장과, 늑골에 감싸인 뇌수를. 마치 신화속의 인물들처럼. 마치 신화밖에 모르는 인간들처럼. 나는 머리에 뇌수를 담고 차가운 눈동자를 갖고 있는 거짓말쟁이들을 증오할 것이다. 그들이 열화와 같이 끔찍한 진실만을 입에 담지 않음을 혐오할 것이다. 사랑을 해라. 정신은 썩지 않는 다는 비극 아래에서 사랑을 해라. 비극을 알지 말고, 비극을 뼈에 새긴 채로 사랑을 해라. 그러나 인간을 피할 것. 설령 어떤 내면의(그리고 당신 내면의) 이미지를 사랑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미지만을 사랑할 것. 누군가가 병증을 말하더라도 불안해 하지 말 것. 불안해 하지 말 것.

우리는 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어느 무엇도 춤을 추지 않는 광막한 사막에 있다. 우리는 틀림없이 날카로운 소금덩어리들이 태양과 몸을 섞는 새하얀 사막에 있다. 우리는 춤을 추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춤을 추어야 한다. 미치광이들을 사랑하며, 너무 뜨거운 열기에 생명마저 입을 다문 공기 속에서 미치광이처럼 춤을 추어야 한다.

아아, 나를, 감탄사밖에 없는 언어적 공허 속을, 인간의 이빨과 똑같은 눈을 가진 소름끼치는 천민들을..
위대하게 되기. 그들이 아닌 '그'의 페이지 안에서. 충동과 섹스하기.
그들의 오만한 혈관의 흐름과, 소름끼치게 뭉개진 이성의 입꼬리를 찢어 명확하게 하라.
모든 통증들이 아름다움이 되기를─이 땅의 사막과 태양이 똑같이 하얗게 작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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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머니스트다. 다만 남들이 얘기하는 만큼 휴머니스트는 아니다. 내가 얘기하는 만큼 나는 휴머니스트다. 너희들은 휴먼이 아니고 나야말로 휴먼이기에 그렇다. 휴먼. 휴먼. 필멸의 운명을 감각 깊이 받아들이고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휴머니즘과 모랄리즘이라니. 사실은 그 둘은 단 한 번도 몸을 섞은 일이 없다.

내가 낙오자나 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시대다. 어느 시대에서나 그랬지만.. 적어도 나는 비참함 속에서 안락을 찾지는 않는다. 아아, 한낮의 태양과 생명, 혓바닥 위에 올려놓은 생명력. 수십 개의, 혹은 수백 개의... 아무튼 그것은 너희들의 비극이자 관계성의 비극이다.

나는 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병원은 필요하지 않다. 나는 내 병증과 광증의 경계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어디까지가 치료이고 어디까지가 아니며 어떤 필요성을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그렇다면 나는 약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하나? 하지만 내가 약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취할 수 없으면 나는 온갖 것에 취하고 싶어진다. 일부 나약함에 대한 통증. 나는 잠을 자고 싶지 않다. 그러나 시간 속의 방치도 바라지 않는다. (무엇이 어찌되든 글을 쓰는 것밖에는 수가 없다. 강압성보다는 필연성이고, 결국 그런 색깔의 방향이었다.)

병원에서(그런 역할에서), 다급하게 나를 불렀었고. 나는 다급하게 불려갔다. 다급하게. 급박하게. 내 정신의 긴급성을 외쳤고, 바쁘게 만들었다. 아, 빌어먹을 통증. 빌어먹을 통증. 빌어먹을 객관성. 그건 너희들의 것이다. 正常은 너희들의 것이다. 일반화의 공식도 너희들의 것이고, 너희들 내면에 새겨져 있는 것들은 전부 빌어먹을 너희들 것이야.
나는 병들었고 아프고 엉망진창으로 흩뿌려져있다. 하지만 이 통증도 처참한 감정도 전부 내 것이다.

알제리에 가고 싶다. 나는 알제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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