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인의 노래

글/시 2014. 9. 1. 01:18 |
삼류 시인의 노래


1.
내 연애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은 웃을 것이오.
요즘엔 삼류 드라마 작가들도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소.
즉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강렬했다고
보석보다 아름다웠다고 시원찮은 말을 흘리는
바로 그 이야기가 삼류도 못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바텐더는 내가 사랑 때문에 울었다고 할 테지만
나는 내가 술 때문에 울었다고 해야 할 것 같소.
사랑 때문에 우는 것은 삼류요.
사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조차도 삼류요.
고로 내가 그 호박빛 럼주의
빨간 라벨을 보고 울었다고 해야
시인으로서의 위신이 서는 것 아니겠소.
바야흐로 인간의 감성이라는 것이
송두리째 싸구려가 되어버린 시대요.
보들레르도 이제는 숨을 쉴 수가 없소.
니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생들에게
멍석말이를 당할 듯싶소.
그러나 기왕 삼류도 못 되는 연애를 했으니
적어도 삼류는 되는 이야기를 좀 해야겠소.

2.
나는 배낭 가득 책 짊어지고
얼어붙은 잎사귀들 굴러다니는 거리 위에서 헤맨다
헤매었다고 한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두근거리고
내 심장에는 피가 아닌 이상한 것이 펌프질 당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불안과 고독과 유황지옥 같은 불길과
내가 죽어가는 소리의 하모니다. 그것은 새까만 석유처럼
휘발성의 지독한 냄새가 난다.

그까짓 책들 다 불질러버리라는 스님 말씀도 무시하고
나는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었다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겨울
아래서. 그 겨울 하늘 아래서
결국 내 어깨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았고 발은 썩어가고 있었다 동상과
극심한 화상 때문에.
나는 글 쓰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너무 오래된 기대 때문에.

가장 무거운 것은 키에르 케고르였다. 그 다음은
사드였다. 그 다음은 니체였다. 그 다음은 프레이저였다.
누군가가 얼른 책들을 버리고 불을 붙이라고 외쳐댔다
그 누군가는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책 속에서 만난 인물인지라 나는 실소했다.
나는 얼어붙은 땅 위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나의 상체는 간신히 무릎에 의지하여
북쪽을 향한 채 일어서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려야했다.
무언가를 기다려야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부를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부르는
그런 색깔의 것이었다.

나는 근처의 절로 기어들어갔다. 왜냐하면 절에는
문지기가 없기 때문이다.
문지기가 있는 곳으로는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육체는 이미 모두가 혐오하는
죄악으로 물들고 방탕에 썩어가는 것 같은
그런 꼴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마당에서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법당에서 스님 한 분이 나오셨다. 나는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담배 있으십니까?」
스님은 내게 담배 한 개비를 주셨다. 나는 라이터도 달라고 하였다.
스님은 라이터도 주셨다. 나는 배낭을 매고 바닥에 늘어진 채
도대체 몇 백 년 만인지 모를 담배를 달게 피웠다.
나는 니코틴과 일산화탄소 때문에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스님에게 다시 물었다 「스님, 여래께서 오실까요?」
스님께서는 내 어리석음 때문에 웃으셨다.

3.
별은 호수에서 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 내 눈앞에 호수가 있었기에 그리고 그때 하늘엔 밤이 찾아왔기에 밤인데도 불구하고 내 가슴은 빛을 품고 사방을 경계하며 울려댔기에 나는 그 밤을 기억한다 어둠 속에 뜬 연꽃잎과 건조한 나무 냄새와 내일이면 다시 태양이 뜨리라는 것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쁘게 발음했던 것 따위를 기억한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나는 한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더랬다 한참 오래전에 그는 나에게 인간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그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인간 따위는 모조리 증오한다고 대답했었다 그는 그 대답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까만 눈빛이 그것은 결여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느꼈다 아무튼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기에는 너무 뜨거운 날씨였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에게 드디어 찾아냈노라고 말했다 나는 풀숲을 뛰어다녔고 산속을 활보했다 태양이 뒤집어진 것 같았다 달이 거꾸로 뜬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시베리아에서 오는 모든 차갑고 시린 것들을 사랑하리라고 공중에 외치고 외쳤다 자꾸만 외쳤다 그때가 여름이었던가? 아니면 겨울이었던가? 그렇다 계절마저 엉망진창이었고 아무 의미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인간뿐이었다 남은 것은 감각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희극은 비극으로 돌아간다 아니면 희극도 비극도 아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극으로 혹은 절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블랙코미디로 돌아간다 아하 지금 내 머릿속에는 웃음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광소만이 남았다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할 수 없는 그리고 기억하려고 하기는커녕 절대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단골술집에서 보았던 바카디151의 빨간 라벨 때문에 그 빨간 라벨에 울었던 것 때문에 울면서 웃었고 웃으면서 울었고 어떻게 해도 내 감정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아 뱃속에 럼주만 끝없이 채워 넣었던 그 새까만 기억 때문에 나는 만개하는 꽃이었다가 시들어가는 봉오리였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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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담

글/시 2014. 8. 27. 19:00 |
진담


좆나게 취한다고 해서 친구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술집 닫을 새벽 무렵 비틀거리며 어둔 밤거리를 걸을 때 내 심장은 어찌나 발광을 하였는지 발광하여 혈액 대신 알코올이 도는 혈관에는 어찌나 쓰라린 고독이 돌았는지 눈물로 된 나뭇잎을 하늘거리는 나무 밑에서 나는 나무뿌리에 몇 번이고 새빨간 토사물을 뱉었습니다 럼주는 분명히 사탕수수로 만든다는데 왜 이렇게 지독하여 마치 독액과 같은지 의문하면서도 나는 밑 빠진 독처럼 그 독액을 위장에 쏟아 넣고 쏟아 넣고 쏟아 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술기운에 달아오른 고독이 온갖 가시와 칼들로 무장한 채 몸속에서 일어나 난도질하는 때에 나는 왜 내 옆에 친구 하나 없는지 이미 말도 듣지 않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꺼내어 닥치는 대로 통화버튼을 눌렀으나 이 어두운 밤에 해가 뜨기 직전의 새까만, 하늘에 장막을 친 것 같은 밤에 깨어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목소리, 목소리 부디 내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려줄 목소리 한 줌만 주시오 나는 중얼거리면서 내 온몸의 땀구멍에서 알코올의 냄새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헛구역질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네 어머니도 널 낳기 전에는 술꾼이었어 아하,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의 자궁을 차고 나올 때 어머니의 술에 대한 갈망도 전부 가지고 나온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이제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버리는 것에 반하여 나는 일주일에 한번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내 인생 전부를 분쇄기로 철저히 갈아 음식물쓰레기수거함에 처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껏 술에 취한 뒤에는 내 인생 대신 나 자신을 분쇄기에 집어넣고 싶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소주가 좋지요 그리고 시인이라는 족속들은 하나같이 돈 만지는 법을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아직 일터에서 쫓겨날 때가 되지 않았기에 가끔은 럼주 같은 사치도 부리고는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호프집에서 2차로다가 맥주를 마시며 혼자 앉아 마시며 누군가의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모두가 커피숍에 가서 멋 부리며 다리 꼬고 에스프레소 잔 옆에 시집을 덮어놓을 때 나는 맥주병 주둥이와 담배를 번갈아 입으로 가져가며 점점 흐려지는 눈으로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정신을 잃고 시를 썼던 누군가의 시집을 읽는 것입니다.
내가 단골로 있는 바의 사장님은 내 지저분한 장발도 좋아하고 핏기 올라 번쩍이는 내 눈동자도 좋아하며 더러는 내 시를 좋아하기도 하기에 술에 취하면 나도 그에게 시 한 장 써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란색 포스트잇에 자신의 심장을 꺼내먹어 심장과 위장이 가까워지게 해야만 한다고 써갈겨서 건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손님이요 그는 사장인 가운데 내가 술푸며 슬픈 얘기를 조롱하듯이 하면 그는 또 웃고 경청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만은 퍽도 좋습니다 너무 좋아서 양주 서너 병을 한큐에 삼키고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쓰러졌던 신해철이처럼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신해철이는 죽지 않았지요 그는 머리를 깎고 일어섰지요― 하지만 내 지랄 같은 봉급으로 술값을 계산하고 나오면 거리는 한산합니다 어둡고 한산하여 고적할 뿐입니다 나는 또 비틀비틀 비틀거리며 순경이 순찰하기도 포기한 더러운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가고 집으로 가는 길만은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아무리 취해도 아무리 정신이 나가도 내 둥지만은 기억합니다 아무리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그대로 달에게로 날아가 달을 배고 눕고 싶어도 내 슬픈 몸은 집에 가는 길만은 기억합니다 그러나 걷는 길이 너무도 고적하고 내 영혼은 또 달아올라 오밤중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내 휴대전화에는 절대로 전화 한 통 걸려오는 법이 없고 나는 울면서 전봇대 둥치를 끌어안고 오바이트를 쏟고 쏟는 것입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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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글/시 2014. 8. 26. 20:38 |
손님


흔치 않게, 아직 살아있는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읽고 있었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았다.
어쩐지 그 시집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불쾌한 손님이 찾아왔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찾아온 그 손님은
내 손에 들려있는 시집을 먹어 치워버렸다.
나는 그의 눈동자가 유난히 새까맣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내 심장에서 상당량의 혈액을 빨아마셨다.
그의 입이 내 심장에 닿을 때
살아있는 것에 진력이 났다 그래서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었다 세상을 버리고
버리고 죄다 버리고 그저
영원히 새벽인 거리에서 그저 걷고
그저 어둠을 향해 혼잣말을 지껄이던
말하건대 내가 혼자뿐인 나라의
이단의 왕이라도 된 듯 도취하여
지독히 도취하여 달에게
히틀러의 <R> 발음을 도용하여 연설하던
그 때처럼 버리고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불쾌한 손님의 눈동자는
새까매서 내 달마저 먹어치우겠다고
폭언하는 듯하였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분노 비슷한 것이 맴돌았다 내 핏발 선 눈동자 속에서
나는 달빛 비추는 정상에 오를 것이라고
나는 불쾌한 손님의 여린 목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사방이 피였다.
닭고기가 먹고 싶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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