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어진 높이에 대한 노래

 어느 날 남자가 방에서, 그러니까 철학자들의 논문과 몽상가들의 일기가 즐비하게 널려있는 그의 방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갑자기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의 천장에는 지금까지처럼 벽지와 벌레의 시체가 쌓여있는 형광등이 아닌, 구형의 우주가 불경하고 혼란스러운 혼잣말을 외면서 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심장에 단도가 박힌 것처럼 찬탄했다. 그의 방에 쌓인 서적들만큼이나 수가 많은 그의 가면들이 일제히 입을 닫은 것이었다. 그리고 대양을 헤엄치는 한 마리의 위대한 고래처럼 묵직한 진실이―그것을 진리라고 불러도 오만한 일이 아니다!― 그의 영혼 속에서 근엄하고 단조로운 노래 가락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매일 아침 그렇듯이 그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아 졸도했다가 더러운 진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가 받은 계시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감각이었다. <보라! 이 세상은 거대한 구렁일지어다. 구렁 밑바닥에서 보는 밤하늘에는 신의 핏방울 같은 별들이 수학을 만들고 그들의 완전한 질서를 초월적인 목소리로 노래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칼을 쥐고 태어난 형제들이어라. 말하건대 초인(Übermensch)은 이 전쟁에서 영원히 승리할 수 없다는 운명에 승리한 자일지어다. 그는 날 적부터 갖고 있던 뾰족한 단도로 독생자의 심장을 찔러버렸다! 모든 우상이 죽어버렸다. 모든 신들의 목은 낫에 베여 뎅그렁 뎅그렁 소리를 내면서 떨어져버렸다. 그런데 저 불경한 우주 한복판에서 끔찍스러운 웃음소리로 숨넘어갈 듯 웃고 있는 저 의지는 무엇인가?>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천장에서 회전하고 있는 구형의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경외하는 눈동자로 외쳤다: 권태의 왕이여! 그대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잠들어 있을 때, 그대가 그대의 독이 묻은 손가락으로 내 영혼의 머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 독은 살점을 파먹는 나병균처럼 순식간에 나의 영혼을 점령해버렸다. 그리하여 내 혈관 속에는 그대의 신적인 독액이 돌았다. 덕분에 내 정신은 빼내어진 토끼의 눈알처럼 맑고 투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대의 무시무시한 이름을 알아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마치 신들린 무당처럼 책상으로 뛰어가더니 노트를 펼치고 그곳에 비밀스럽게 방금 알아낸 <권태의 왕의 이름>을 적었다. 이렇게 해두자!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 노트를 보여주지 말도록 하자. 왜냐하면 이것은 무시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자의 이름이 이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무서운 사실이라서 만일 순한 양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그 양들의 뇌는 수천 조각으로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그는 노트를 덮고 책상서랍 가장 깊은 곳에 넣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방금 천사를 죽인 인간의 것처럼 초조함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그 천사의 피는 이상한 색깔이었다! 그는 갑자기 화가 나서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을 집어던지더니, 자신의 육체를 저주하기 시작했다. <오, 이 기적이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호르몬의 화학작용으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육신이여! 그대는 기적적이도다! 그리고 그대는 저주일지어다. 모든 인간들이 열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다는 진실은 인간존재의 진보를 속박해버렸다. 내가 방금 이루어낸 발견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나 또한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다. 나도 열 개의 손가락과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는 필멸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영혼은 그의 손가락이 내 머리에 독을 묻힌 순간 수천 개의 머리를 갖고 만 개의 눈동자를 갖고 있는 메두사처럼 되어버렸다. 보라, 지금 몇 개의 목들이 답답한 육신을 견디지 못하고 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이제 내 육신과 영혼은 도무지 짝이 맞지 않는다. 내가 토한 토사물에서는 괴물들이 태어나 기어 다니며 인간들에게 저주받은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심지어 이제 나는 그러한 사실에 슬픔조차 느끼지 못한다!> 천상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굴러 떨어진 그는 광포한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방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방문을 닫을 때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고, 회전하는 구체의 우주는 방 안에 갇혀버렸다. 진리를 본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이 세계는 그야말로 조악한 농담과 같다! 손가락 끝으로 개미를 눌러죽이며 노는 어린아이의 작은 마당처럼, 이 마당은 개미들에게 결코 행운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여, 그대의 다섯 손가락으로 쥘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다. 불경스러운 피리소리가 울려 퍼지는 천상을 그대는 그저 경외하고 존경하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할 수밖에! 그리고 저 권태의 왕에게 어떠한 종류의 믿음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그대는 절대로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남자가 더럽고 좁은 거리로 뛰쳐나갔을 때 하늘은 밤이었다. 그는 쫓겨 다니는 사람처럼 불안하고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곳에는 공을 가지고 노는 한 귀여운 어린아이가 있었다. 갑자기 지독한 생각이 남자의 머리를 번갯불처럼 스쳐지나가고 그는 주먹을 쥐며 웃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도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머리털을 정리하더니 아이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얘야, 즐거우냐?
 예.
 그렇다면 너에게는 분명히 훌륭한 부모님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니?
 맞아요.
 그리고 네 부모님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났다고 너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그래서 너는 인간이 어떻게 생명을 보존해가는 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지금 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네 아동기가 전광석화처럼 지나가고 언젠가는 일종의 흉터로 네게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은총을 받았어요.
 너는 마치 신부처럼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너의 갈색 눈동자를 보니, 네가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불안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빤히 보인다. 그리하여 너도 나와 똑같은 인간인 것이다! 너의 살은 아직 부드럽고 약하며 근육은 실낱같다. 그리고 너의 영혼은 무구하지만 아직 악(惡)에 익숙하지 않아 앞으로 수많은 칼과 창들이 네 영혼에 박힐 것이다.
 그것은 무서워요.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축복을 내리는 기분으로 말해주겠다. 너는 신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너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를 낳은 왕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굉장한 비밀이지만, 너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그 이름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아이의 귀에 대고 그 이름을 속삭였다. 그랬더니 아이의 얼굴은 새파랗게 변하고 딸꾹질을 하는가 싶더니 그는 들고 있던 공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갈색 눈동자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려다가 입을 막고, 길 저편으로 도망쳐버렸다. 도망쳐버렸다! 자, 달려라, 도망쳐라. 너는 이제 사흘 밤을 앓다가 일어서서 너의 부모에게, 친구에게 가서 그 이름을 말할 것이다. 너의 손톱은 갈퀴가 될 것이고 송곳니는 나이프처럼 날카로워질 것이다. 자, 달려라, 도망쳐라. 나는 이 더러운 골목거리에 서서 네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있다. 나의 목구멍에서는 사악한 웃음이 솟아나오고 눈에서는 내가 이종(異種)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는 웃고 울면서 골목거리에 서 있다가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혀를 끊어버렸다. 그때 달빛이 찬란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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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분명 그녀가 마지막이었으리라. 내가 고독이라는 독액을 내 팔뚝의 굵은 동맥에 주사하고 있는 것은 영원히 이어질 일이다. 나는 어제 갑작스럽게-니코틴이 나의 정신을 맑게 했기 때문이리라- 신의 이름을 알아냈다. 나는 그 이름을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비밀스럽고 끔찍한 이름은 나의 노트에 아무도 모르게 적혀있다. 지난 반년간 단 한 번도 자해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 난 수도 없는 흉측한 흉터들은 아직도 가끔 피와 진물을 흘린다. 내 서랍에 잠들어있는 단도는 언제나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나는 그것을 쥐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손에 쥐지 않아도 그 날붙이는 밤새 서랍에서 기어나와 나의 심장에 흠집을 낸다. 꿈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쉬웠었지. 내일이 오리라는 것을 믿지 않아도 되었었지. 나는 어둠 속에서 난동을 부린다. 내가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파멸적인 믿음에 빠져서. 그때 나는 태초의 인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간 쌓여온 벽이 Pink의 결말처럼 가차없이 부서졌었다. 그러나 운명은 항상 비극이다. 나는 비명지르면서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와 마주친 것만으로 부서졌던 드높은 벽은, 내가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칠때마다 보다 높고, 보다 두껍고, 보다 단단한 형태로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이제 나는 수십 겹의 장갑을 낀 손으로만 인간을 만진다. 감히 말하건데, 그녀 앞에서 나는 어린애였노라. 수십 년의 절망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 앞에서 그러한 상처들은 차라리 축복으로 보였었다! 그래, 모든 운명은 파멸을 종용한다. 그녀와의 만남조차도 내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위한 무대장치였던 것이다. 이제 태양의 빛은 더욱 작게 보인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슴에 나는 나의 길다랗고 신성모독적인 손톱을 박아넣고 싶다. 그리고 온갖 환상들이 외쳐대는 환희에 대하여-나는 그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저주, 저주, 저주한다. 아주 조금 어른이 되었을 뿐인데도 세계는 전보다 더 두터운 갑옷을 차려입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밤하늘에서 어둠을 뜯어내어 내 옷을 해입었다. 내 마음 속에서 날뛰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열이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얼음처럼 차갑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증오와, 자신의 손목에 박아넣기 전에 망설임과 공포 때문에 떨리는 단도 뿐이다. 나의 야망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모든 이들의 파멸이다. 나는 빌딩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불타 죽는 것을 보고 싶다. 더 이상 신이 재앙을 내리지 않는 세계에서 망치와 칼을 들어야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일지어다. 어쩌면 나는 계시를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길고 끈질기게 나의 영혼을 점령해온 계시를 말이다. 그들이 믿는 규율의 붕괴 속에서 나는 최고의 환희를 맛볼 것이다. 어떠한 윤리도 도덕도 없는 세계에서 나는 인간이 절대로 인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새로운 법칙에 오르가즘을 느낄 것이다. 나는 내 손톱이 갈퀴였고 내 송곳니가 나이프와 같았던 그 과거를-그 무구한 과거를 기억해내려고 한다. 나는 아직도 고독이라는 고통에 몸을 떨지만 그것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부정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고통받는 것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나는 고통을 나눠주는 것으로 존재한다. 언젠가 내 어깨에는 날개가 솟겠지. 해골로 된 왕이여, 그대는 틀림없이 웃고 있을 것이다. 하늘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가 갑자기 추락하는 순간에야말로 인생이 정신 속에서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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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해서 변해가고,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어제 왔던 봄이 어느새 여름과 가을을 거쳐, 북풍과 함께 몰아치는 겨울로 나타난다. 새로운 한 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우리는 신년이라는 것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고, 과거에도 수도 없이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고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나무들 사이로 얼음송곳 같은 겨울의 빛살이 비추기 시작하면 나는 언제나 고요한 죽음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잠에 들고 죽는 계절, 이 추위 속에서는 인간들마저도 말이 없어지고 돌과 불꽃으로 쌓은 자신의 방패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사방에 죽음이 만연해있고 여름에는 그렇게도 수다스러웠던 태양이 이제 대지를 주시하는 하나의 거대한 눈동자 같은 모습으로 절망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런 계절에야말로 사람은 삶을 사유한다. 황금색 비단 같은 햇살의 물결이 나체의 싱그러운 피부를 감싸 안고 파도 속에서 생명의 호흡을 느끼며 수영하던 여름에는 사유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는 모든 이들이 생명을 소진하느라 바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추운 계절에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죽음의 그러데이션을 마주하고 생각에 빠질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콘크리트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시멘트 조각마저도 잠에 빠져있는 것 같은 시간에,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삶에, 변화무쌍하면서도 한결 같은 세상 어딘가에 영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영원의 흔적, 그것은 수천 년이나 젊은이들의 영혼을 괴롭혀온 것이었다. 우리는 만물의 한계성을 알고 있다. 태어난 것은 죽고, 만들어진 것은 망가진다. 그런데도 젊은 예술가들의 영혼은 이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피와 흙으로 다져진 땅의 역사와 하늘의 광활함 때문에 혼란하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에 대한 갈구이다. 이 위대하고도 위험한 갈구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본성처럼 모두의 마음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인류는 종교를 만들었고 영원불멸하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를 썼으며 절대자의 허무한 발자국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충분히 지혜로운 이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세상에 무한한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어도 인간에게는, 적어도 인간의 세계에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터질 것 같은 감정을 기록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끔찍한 고함을 쳤을까? 누가 정령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피를 흘렸을까? 그리하여 니체가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리하여 랭보가 불타는 아프리카 땅에서 외다리로 죽음을 맞이했다. 무한에 대한 갈구는 이 일시적인 세상에서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라서 결국은 인간을 광기 속으로 떨어트리고야 만다.
 어떤 이들은 아주 교활하다. 그들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정신에 대한 위협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혼돈 속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아우성치는 갈망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봄 아니면 가을이다. 그들은 항상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지만, 그것을 잊어버린 채로 그냥 둔다. 바쁜 일상과 반복되는 타협, 그리고 타성으로 영혼의 뜨거운 피를 굳혀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인간>이 되고야 만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선한 사람들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정에 충실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영혼의 유치한 외침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고, 찾을 수도 없는 영광의 열매를 찾아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사막으로 휘청거리며 나아가지도 않는다. 그래, 선한 이들아! 이것은 바로 당신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젊은 당신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누가 미치광이 같은 영혼의 갈망에 붙들려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디에 정답이 있다고? 타성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달콤하고, 위협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앞으로 올 12월 31일의 마지막 순간에도 앞으로 다가올 일분을 이미 지나간 일분처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른>들 조차도 기억할 것이다. 자신이 미치광이였던 그 필연적인 시절을 말이다. 원인 모를 정신의 목마름 때문에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어쩌면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정체불명의 추상 때문에 새하얗게 질린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던 혼돈과 드높은 절망의 나날들을. 누구에게나 그러한 본성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모두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에 대한 불타는 듯한 열망이 있었다.
 그것은 광인의 길이기도 하고 동시에 성자의 길이기도 하다. 그들 중에서도 누군가는 계율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우주 전체에 수북이 쌓여 점멸하는 아나키즘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들의 특질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젠가 필멸할 아름다움을 좇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 먹구름이 자욱이 낀 하늘에서 번쩍하고 굴러 떨어지는 빛의 물방울에 감동하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은 시절이 지나가버린 것에 대해서 회상해보라. 수많은 위대한 문명들이 무너져 흙과 모래먼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우리에게는 본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답을 알지 못한다. 아무도 정답을 알고서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채로 선택하기만 한다. 아하, 모든 것이 결국에는 허무의 절대적인 구덩이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마는데, 선택 따위가 무슨 중요성을 갖느냐고 화를 낼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보라, 느껴보라, 우리는 죽을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 우리는 살아있다.
 로트레아몽과 반 고흐의 죽음은 어떤 것이었는가? 누군가 그들의 인생이 공허하다고 말했는가? 혹은 누군가가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했는가? 만약 로트레아몽 백작의 시집이 끝내 발견되지 못하고 프랑스의 한 도서관 구석에서 썩어버리고 말았다면? 만약 반 고흐의 그림이 단 한 점도 팔리지 않고 그의 이름이 역사의 뒤틀림 속에서 묻혀버렸다면? 그런데 그런 것이 도대체 무슨 중요성을 가진단 말인가? 감히 추측하건데, 우리는 아마도 위대함을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위대함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무한의 끝자락을, 영원의 흔적을 장님처럼 더듬어 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은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 때문에 좌절할 필요까지는 없다. 절망과 좌절은 동의어가 아니다. 세계는 절망적이지만, 인간은 좌절하지 않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내일이 온다.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며 도무지 가늠할 수도 없는 가능성에 대해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모든 것이 사멸하고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단 하나의 분명한 진실 아래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을 선택해야한다. 왜냐하면 미래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유일한 의무는 오직 살아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슴 속에서 미치광이처럼 아우성치는 어떤 열망을 품고, 그것에 휘둘려 손을 피에 적시기도 하고, 혹은 그 열망의 입에 재갈을 물려 타성 속에 묻어버리기도 하면서.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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