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인이라는 개념을 질투하다

 

 

굶어죽으려 했다

그러나 생명의 유일한 의무는

사는 것이었다

나는 돼지처럼 먹었다

 

길거리를 걸어보았다

혁명의 잔재마저도

온데 간데 없었고

모조리 황금의 배설물이었다

 

붓다도 예수도

마르크스도 레닌도 그 어떤 사상가도

존재의 은거에 들어갔다

나는 한낱 풀이다

 

그림자 밑에 서자

눈물샘에서 그림자가 흘러나왔다

세계는 작동하고

활개친다

 

노동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것은 사어死語

누구도 노동할 수 없다

삶의 반대는 정직이다

 

의사는 내게

생각을 멈추는 약을 주었다

그것은 잘 들었다. 너무도.

그러나 해가 뜨면 약효는 연기처럼 흩어진다

 

매달 내 손에 들어오는 지폐에

시뻘겋게 핏자국이 묻었다

보인다. 나는 미쳐가고 있거나

이미 미쳐버렸다

 

내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유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기업

말단, 무산계급인 나는 노동력을 팔며

나의 노동력을 사가는 사람들의 손가방을 본다.

 

지금도 누군가가 아사했다…… 혹은

살 수 있었는데도, 내 손으로 병사시켰다

피 묻은 지폐 때문에

내 돼지 같은 탐식 때문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굶어죽으려 했다. 불가능했다.

내 의무는 타인의 의무를 등진다

혹은 이 황금의 도시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한다

 

스승께서는

사변하는 자의 정체를 의문하라 하셨다

그는 지혜로운 분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신을 열렬히 증오한다

그는 정신병질자다

그래서 나는 그를

열렬히 연민한다

 

나는 세계를

인생을 인류를 중력을 증오한다

나에게는 분명 커다란 인류애가 있다

죽어가는 사람과만 벗이 된다

 

온몸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

비트겐슈타인의 얇은 금언을 기억하며

보다 빛나는 것을 찾아다녔다

잿더미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황금에 무고한 자들의 피가 덮여

나는, 그런데 나는

나는 행동하지 않기로 결정하지 않았던가

심장은 까맣게 타버렸다

 

철컥, 철컥, 세계는 작동하며 활개치고

사람들은 먹을 음식을 지폐를 내고 사간다

어디에서든…… 모든 사상은 실패했고

사상 자체도 실패였다. 금대今代.

 

눈에서 흘러나오는 그림자에 발광하여

나는

이뤄지지 않을 이상과 결별하지도 결별하지 못하지도 않은

나는 도대체

나는

 

곧 다시 동이 튼다

저쪽 동쪽, 어쩌면 따뜻해 보이는 저 동쪽에서

영겁의 절망이 뜬다.

 

랭보는 분명히, 자신의 두 손목을 잘랐다고 선언했지

10대의 후미에서.

 

나는 내 뇌수가 불편하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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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견자見者

글/시 2017. 2. 20. 23:04 |

거울과 견자見者



수천 번 원을 그려도 원은 그려지지 아니한다

수천 번 선을 그어도 선은 그어지지 아니한다

수천 번 거울을 보아도

나는 보이지 아니한다


플라톤은 너무 쉽게 말했다! 나는 나오지 않는 욕설을

입안에서 잘근잘근 씹는다

수천 번 거울을 보아도 그곳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더러는 나

자신이 알 수 없으니 누구도 알 도리가 없다


털끝이 거꾸로 선다. 하얀 벽지가 발려 병실의 소독약

냄새가 당장이라도 스며들 듯한 방에서

이미 형체가 불분명해져 망령처럼 되어버린 나의

하얀 손을 이빨로 물어뜯는다. 수천 번 물어뜯어도

나의 손일 리가 없음이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은 한 줄의 선이다

그러나 그런 선이 존재할 도리가 없다

벼랑 끝에서 발밑을 조심하기는커녕 하늘이 천구天球라는 것에

어리둥절하여 머리 꼭대기를 수천 번 쳐다보는

아무리 영혼의 커튼을 걷어도 존재할 리가 없는 눈알이다.


물컹거리면서 딱딱한, 차갑지만 뜨거운 피를 흘리는

그러나 그 현실감 없는 윤곽에 나를 위험하게 만들어버리는

이 몸뚱이 수천 번 난자해도 비명 지르는 건 내

가 아니라 수천 번 보았던 거울 속의 타인, 혹은 망령

아니면 수천 번 그려졌던 아무것도 아닌 것


직방형의 하얀 공간에서 내 물컹거리는 말초신경으로 우연히 발견한 물컹거리는 어떤 나비의 혹은 나방의 유충을 눌러서 죽이면 그것에서 빠져나오는 비현실적인 내장들과 체액 그것들은 비현실적이라는 단어조차 무용할만큼 비현실적이어서 동시에 그 체액이 묻은 내 물컹거리는 <손가락>이라는 이해될 수 없는 어떤 단말은 분명히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터진 애벌레와 구별되지 않고 그러한 일련의 광경들을 쳐다보는 나의 창窓도……, 그 창을 내다보는 누군가가 누군가인지를 알기위해 알고 싶어서 알아야만 하기에 수천 번 거울을 보았지만 거울은 사실을 보는 도구가 아니라 모호성을 더욱 확장시켜놓기만 하는 공포의 도구였다


수천 번 눈을 뜨자 나는 108개로 분산되어 마치 미지근한 설탕물을 타놓은 압생트처럼 희뿌옇게……


아아, 그렇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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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의 수기

글/시 2017. 1. 4. 10:11 |

파충류의 수기



어느 날 내 눈을 장막처럼 가리고 있던 안대가 풀렸을 때, 나는 나의 온몸을 뒤덮고 있는 비늘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끈적거리는 윤기와 함께 빛나고 있었으며,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움직였다. 심지어 나는 내 뇌수조차 도마뱀의 그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해가 질 때를 노려 담요를 뒤집어쓰고 도망쳤다. 그리고 나의 작은 다락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며칠간을 고함과 비명을 지르며 술 취한 사람처럼 벽에 몸을 부딪치고 다녔다. 자결하려고 했지만 편지봉투를 뜯을 때나 쓰는 작은 나이프로는 내 비늘을 자를 수 없었다. 절망의 새벽이 몇 번이나 지나간 뒤 나는 더 이상 고함지르지 않고, 방바닥에 웅크린 채 내 차가운 심장에서 증오와 공포가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냉혈동물이 되어버리자 나는 더 이상 춥지 않아, 보일러조차 들어오지 않는 싸늘한 다락방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방바닥을 하염없이 긁고 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나는 마그마 같은 증오에 사로잡혀 다락방을 마구 뒤지다가 나의 작은 노트와 펜을 찾아냈다. 세 시간이나 걸려 물갈퀴가 있는 손으로 펜을 놀리는 데에 익숙해졌다. 나는 노트에 아무 말이나 갈겨대면서 내가 이젠 분노와 공포밖에 남지 않은 쭉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가 안대를 벗기 전에도 파충류였다는 광적인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적들은 항상 내 도처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이들은 본능적으로, 인간의 거리를 걸어 다니는 파충류를 죽이고 싶어 했다. 그로써 그들은 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드디어 그들 모두를 마귀처럼 불꽃처럼 증오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산산조각 내 피가 흠뻑 젖은 살점들을 씹어 삼키고 싶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이 좁은 다락을 나간다면, 거리에 발을 딛는 순간 모든 인간들이-그러니까 나의 적들이 나의 심장에 창을 꽂을 것이다. 나는 살해당할 수 없었다. 살해당해서는 안 되었다. 고로 내가 그들을 살해하거나 무한히 증오해야만 했다. 나는 사태를 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한참을 다락 안에서 돌아다녔다. 나는 무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권총도 그럴싸한 나이프 한 자루도 없었다. 만일 무기를 조달할 필요성이 있다면 나는 인간의 거죽을 구해 뒤집어쓰고 인간의 흉내를 내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흉내를 내려면 우선 그들을 연구해야했다. 운 좋게도 나에게는 명철한 직관과 지성이 있었다. 나는 불 꺼진 다락에서 파충류의 눈동자로 오랫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마침내 모든 것을 기록해야한다는 강한 소명을 느꼈다. 나의 이 무구한 증오를 축복으로 여기면서 공포라는 잉크로 지금 몇 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나는 곧 나의 본성대로, <그들>이 나를 만든 대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누구의 것이든, 길바닥에 쓰러지게 될 시체를, 혹은 시체들을 위하여: 파충류 만세.

증오 만세.

살인 만세.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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