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혐오하게 된

글/시 2016. 12. 2. 04:38 |

마침내 혐오하게 된



어느 날 저녁에 내가 해질녘의 노을빛으로 꽉 찬

붉은색의 광장에서 하릴없이 앉아만 있을 때

내 인생이 저쪽에서 느린 걸음으로 맴돌았다

그녀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아름다운 미녀였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불렀는데, 그녀는

눈동자가 한쪽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양 뺨을 때리고 꽉 쥔 주먹으로

그녀의 여린 턱을 후려쳤는데

그녀는 튀어나온 이빨을 주워 모으며 끈질기게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저리 꺼지지 못해, 이 갈보 년아!>라고 외치며

그녀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다.

피와 멍으로 뭉개진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몸서리치며 붉은 광장에서 도망쳤다.

내 입안에서는 계속해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고

그녀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구석진 골목으로만

밤이 대지에 어둠을 깔 때까지 도망쳐 다녔는데


나는 알고 있었고, 이 반골의 방랑이 끝나고

시리고 외로운 내 방으로 돌아가면 그곳에 그녀가

있을 것임을,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당연한 듯이 방구석에

목각처럼 서있을 것임을 이미 알았다.


염병할, 나는 밤거리에서 천공을 향해 사납게 소리쳤고

별들이 내 눈으로 들어와 내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눈물이 되어주었다.


어디로 가야 이 더러워 버리고 싶은 세상과 인생의 반대길 인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었으니…… 술이

영혼의 독이 되는 비겁한 계절에 나는 추위에 온몸을 끌어안고

눈물샘에서 별들을, 별들을 흘렸다. 그러나

분명 누가 보기에도 그것은 추했을 것이다.


슬픔이라는 단어는 슬픔이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그래서 나는 굳이 말한다,

내가 광란의 고독하고 고단한 야밤을 보냈노라고.

Posted by Lim_
:

슬픔의 내륙

글/시 2016. 11. 30. 23:19 |

슬픔의 내륙



나는 슬픔을 마신다.

아침-아침임에도 어두운 방 한구석

에서 눈을 뜰 때 나는 방안에 연기처럼 퍼져있는

슬픔을 마신다.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슬픔에 너무 바빠

다른 일에는 눈길도 주지 못한다.


점심 때, 사람들이 실컷 일을 하고 식사를 하러 갈 때에

나는 여전히 내 방 안, 그곳에서

이불에 둘러싸여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마른 슬픔에 뒤척거린다

아, 난 게으르지 않아. 이건 그저

내가 게으르지 않기 위해 선택한 또 다른

게으름의 방편일 뿐이야. 나는 내 살을 물어뜯고


저녁이 되어 네온사인들에 불이 들어오고

술집들이 문을 열 때, 나는 가벼운 지갑을 움켜쥐고

해가 진 거리의 처량한 냄새를 맡으러 나간다.

「여봐, 삶을 직시하고 살아. 제발…….」 이런 젠장……

난 이미 삶을 직시하고 있어, 그 꼴이 이렇다고.

「그렇다면 남들처럼이라도 살아봐, 네 손을 펴고.」

오래 전에 손도끼와 실톱으로 잘라낸 내 손 말이야?


자본주의가 책정한 술값을 꼬나쥐고, 그 지폐들을

꼬깃꼬깃 오른손에 쥐고, 그 종이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꽉 쥐고…… 나는 계단을 올라

저기 길가에는 이미 술에 취한 노인네들이―그러나 충분히 젊은 노인네들이

담배연기를 뿜으며 뭔가를 숙덕거리고 있다. 그들의

마스크에서 번질거리는 미광은 내게

도시적 비극의 비밀을 넌지시 전한다. 그러나, 엿 먹어, 난 술을 마시러

갈 거야…….


분수에 맞지 않는 눈물을 마시고 내 피를 마시고

이미 알코올의 냄새로 독하게 삭아버린 내 피를, 피를,

한 발자국만 더, 한 모금만 더 마시면 이 슬픔도 전부 지워지겠지

그러나 망할, 나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실 돈이 없어

어설프게 취한 내 슬픔에는 중력가속도가 붙어

그러나 여전히 눈물은 나올 기색도 없고, 염병, 나는 신음을

사망의 기괴한 골짜기에서 기어 나온 것 같은 신음을

신성모독적으로 으르렁거리며…… 그래, 이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지

머리를 흔들고 눈동자를 흔들고 그러나 충분치는 않고

오늘은 달이 안 떴어. 요 며칠간 달을 못 봤어.


도시의 거리를 가로질러 흙탕물을 튀기며 걷는다.

빈 방에 도착하면 나는 바싹 마른 내 얼굴을 부여잡고

우는 사람의 흉내를 내며―그러나 울지는 못하며

적당하지 못한 알코올 때문에 한숨을 쉬며 나는 생각을 하겠지

생각, 생각, 그 빌어먹을……인간의 권능.

거리에는 시베리아에서 온 북풍의 냄새 속에

슬픔으로 빚은 보드카 냄새가 나.


오늘도 슬픔을 마시느라 너무도 바빴다.

이불로 도망쳐

수마(睡魔)와 껴안고 눈에서 흰 연기를 뿜을 시간이다.

안녕, 안녕, 굳바이, 나의

나의 어떠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열정의 시대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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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타인이 아무도 없다



내가 괴로운 건 수마(睡魔)의 탓이 아니야

내가 게으른 건 약학(藥學)에서 시작된 게 아니야

내 한쪽 눈이 떠지지 않는 건

뜨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야

이제 난 원망할 사람도 없는데


모두가 잠든 새벽마다 식은땀을 쏟아내며

거친 숨과 벌떡 일어나는 건

엄마, 그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죠

엄마, 누구에게도 죄는 없었어요.

그래, 그러니 난 도시의 시궁창에 흐르는 하숫물을

전부 긁어모아 내 늑골 속에 담아두고 살겠어


왜냐하면, 엄마, 누구에게도 죄는 없었으니까요.

자기 손으로 장난감을 내던진 아이가

망가진 장난감을 붙들고 울어도 되는 권리는

아이가 아이일 때만 있지. 가슴의 서랍을 열 때마다

맡을 수 있는 원망의 냄새, 증오의 냄새, 불완전한,

결함품의, 그러니 난 서랍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버릴 거야


이건 박애주의가 아니야

이건 박음질한 상자 속의 사람들 이야기도 아니야

아무도 증오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내 육신에 백팔 개의 대못을 박고

나머지 한쪽 눈도 감겨줘

이런, 증오할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다 내 적이고 증오스럽네……


지옥에서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누더기가 된

내 영혼을 보고 당신이 고결한 동정의 마음으로

칼질과 채찍질에도 굴하지 않고 내 손을 잡으러 온다면

사랑스러운 당신의 손을 잡아서

무간지옥의 밑바닥에, 피연못의 밑바닥에

무한히 처넣어줄게. 이제 내가 죄악의 상자로 쓰는 건

내 마음 뿐이니까.


내 영혼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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