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현실주의자의 마네킹



나는생각하는방법을잃어버린것같다내머릿속에선모든일들이자동기술법으로쓰여진문장처럼활자로연속하여떠올랐다가아무런논의도이루지못하고흩어져버린다


그는 총 18알하고도 두 알이 더해진 알약들을 삼키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담겨진 수천 권의 책들과 그 문장들의 혼합된 덩어리를 굽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계시를 받듯이 단 <하나>의 거대한 혼돈을 보았다. 구겨진 이불 사이에서 유기된 시체처럼 썩어가던 그의 정신은 갑자기 경련하듯이 꿈틀댔다. 그는 분명 무언가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은 위대한 것이었으리라는 믿음이 전류처럼 흘렀다. 그러나 천둥번개는 강렬한 소음과 함께 나타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정리하기 위하여 노자와 니체 등 어줍지 않은 지식들을 자와 컴퍼스처럼 이용하려고 했으나 이미 너무도 노화된 그의 정신은 제대로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그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동물이란!」 그것은 일종의 동경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원히 녹슬지 않는 무의식으로 가득 찬 기계들의 삶이여! 그는 넘어진 컵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벌컥거리며 움직였고 핏발 선 눈은 사납게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라는 <인간>은 인간의 존재조건으로 말미암아 너무 녹슬어버렸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일에도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내야할 판이었다. 그러니 생각이라는 것을 정리하는 일은 오죽했으랴! 이미 활자조차 이루지 못하는 그의 정신은 관념적인 이미지만으로 고장 난 신호등처럼 점멸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정신의 사업들이 단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파도처럼 휩쓸려왔다. 실재로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의 가족들은 어디에 있고 그의 친구였던 자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마지막으로 책을 읽었던 것은 언제이며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제대로 된 대화를 성립할 수 있었던 건 언제인가? 그는 스스로 망각 속에 있었고 그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흡사 영원과 비슷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비참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말도 늘어져버린 녹음테이프처럼 분열된 음절들을 기괴한 소음으로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비참……비참……비참하……비……비참……> 구두점을 찍으면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비슷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의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필멸자이면서 영원과 닮아 비참했다. 아니면 슬플 수도 있었나? 글쎄, 그가 비참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서술자인 내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 스스로 문장을 끝맺을 수 없다. 그는 가래가 끓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어둠 속에서 움찔거렸다. 그의 젊음과 청춘은 어디에 낭비되어버렸는지? 영화필름 사이에서 한 컷만을 칼로 잘라낸 것 같은 이 장면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축축한 퇴폐와 절망의 색깔을 한껏 담은 채 완벽하게 정지되어있었다. 이 장면에는 스토리도 결말도 없었다. 저 썩은 나뭇가지 같은 남자를 보라! 저것은 도무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오발탄처럼 잘못 날려진, 아무런 교훈도 의미도 줄 수 없는 잉여의 장면, 곧 누군가가 주워 쓰레기통에 던질 뿐, 그 누구도 주시하지 않는 잘못 만들어진 장면이었다. 그가 계시처럼 느낀 강렬한 이미지도―그러니까 그 혼돈이라고 칭해진 것 말이다― 사실은 시간도 측정할 수 없는 어지러운 일생동안 계속해서 느끼고 잊어버리고, 느끼고 잊어버린 저주 같은 것이었다. 지금 그는 입을 반쯤 벌리고 신음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신음소리는 나올 리가 없다. 약 20분 전 삼킨 18알 하고도 두 알이 더해진 약 때문에, 그는 이제 존재를 잃어가고 있었고 건드리면 마치 바늘로 찌른 물 풍선처럼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그는 <또 다시> 구겨진 이불 사이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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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글/시 2017. 5. 14. 21:42 |

참을 수 없는



도시가 밤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갑에 지폐 한 장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껴안을 어깨가 없는 것이 허전한 게 아니다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슬픈 게 아니다


오늘 교수직을 은퇴한 늙은이를 한 명 만났다

그는 자신의 군장교 시절부터 시작하여

한 학교의 교장이었던 것, 어느 대학의

교수였던 것, 당당히 쌓아올린 자신의 지식들을

수집한 우표를 자랑하는 어린아이처럼 늘어놓았다


나는 그의 늙어가는 얼굴이 고목의 껍질 같다는

그런 생각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의 장황한 자부심과 친절한 대접이 끝난 뒤

거리로 나오니 밤이었다 별도 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를 점쳐보려 했으나 별도 없었고

별이 있다 한들 별 도리도 없었다

끔찍하게 담배가 피우고 싶었으나

니코틴이 주는 위안을 물리칠 만큼 나는

어쩌면 절망해있었다


더욱 깊숙이 담배를 끊어야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나는 중얼거리고, 이제는 알코올 등 온갖

신경물질들이 주는 퇴폐적 위안도

나의 고독을 방해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은밀하게 등을 꼿꼿이 폈다


그러나 여러분, 오해는 마시라

나는 더 낮은 곳으로 걸어가기 위한 준비를

단단하게 시작한 것이다

더 단순하고―발 디딜 뭍도 없는

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존재가 시작되는

공허의 밑바닥으로


그러나 그것은 결단 내릴 것도 없는

숙명 같은 전락이다: 늙을 줄 모르는 영혼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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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늘 짧았다

글/시 2017. 5. 9. 02:48 |

젊음은 늘 짧았다



정오의 용암 같은 태양빛 아래 술통 위에 앉아있을 때, 나는 <천재>라는 말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악마가 나의 눈꺼풀을 찢어 결코 눈 감을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노련한 통장이가 불길로 굽힌 판자들로 단단히 형태 지어진 술통을 나는 거칠게 걷어찼다. 주황빛 광장에 둔탁한 소리가 터지고 밤이 내렸다.

나는 모든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젊었던 내 피들은 부글부글 끓더니 정수리를 통해 증발해버렸다. 이제 늙고 거뭇거뭇한 심장으로 나는 야밤의 빛살들을 보았다.

아름다움은 모든 곳에 있었으나 그림자와 거짓이, 그리고 혐오가 그것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광부처럼 나는 곡괭이를 쳐들었다. 「이 마을엔 나밖에 없는 모양이야. 아니 이 마을뿐만이 아니라……」 깨져가는 흙벽 사이에서는 선혈이 꿀럭거리며 기침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 달빛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지. 내 곡괭이는 달빛에 세게 맞아 부러졌다. 나는 떨어진 보석들을 주워 모았으나 그것들은 이내 꿈틀거리는 역겨운 벌레가 되어 나의 손바닥 가죽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오열嗚咽을 위한 계절만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내 곡괭이는 처참히 부러졌다.


벚꽃이 피면 쌍뜨뻬테르부르크로 걸어서 가자. 그곳에는 꽃잎이 날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눈감을 도리를 잃어버린 내 눈은 시뻘겋게 핏발이 서 광견병에 걸린 개의 눈 같았다. 나도 분명 공수병에 걸린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물 흐르는 소리가 이렇게 두려울 리 없다. 그 소리는 내 뇌수에 이 행성의 나이를 삽입한다.

절망의 손이라도 잡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는 나의 오랜 친구였고, 내가 그를 떠나게 만들었다. 곡괭이도 부러진 마당에 나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손도끼로 나의 양손을 끊으려 했으나, 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언젠가는 이 손으로 묻어야 해…… 그러고 나면 대지는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니게 되겠지.

길이 아닌 곳만을 찾아 걸어온 다리는 너무 지쳐있었다.

너무 오래 비명을 참아 입가에서는 피로 된 거품이 들끓었다.

<천재>라는 말을 불신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나는 다시금 펜을 찾고자 했다.


열광! 열망! 갈구! 그러나 그것은 너의 말이다. 내 영혼은 침체의 바닥을 핥아보았다. 그리도 찬란한 너의 머리를 언젠가 금강반야의 도끼가 부숴버리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그리도 아름다워서, 처참하게 피 흘리며 죽어야만 하기에.

언젠가부터 해가 뜨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일이다. 지금 나의 육신은 햇빛을 받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산산조각으로 깨지며 굉음을 단말마로 삼고 말테니. 아니, 차라리 그렇게 하라. 차라리 날 수류탄처럼 터지게 하라.

북쪽으로 가는 길은 멀기도 하지. 그러나 그곳에선 영원한 먹구름 아래 진눈깨비만이 시간도 잊은 듯 나릴 것이다. 만약에 내 기억이 맞다면, 어느 가난한 이와 푹푹 나리는 눈과 아름다운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재들이 거기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도 따위를 올리러 가는 것이 아닌걸. 죽음이 하는 일들에 침을 뱉었으니 나는 차라리 신도 여신도 없어서 살고 또 사는 것인걸.


땅 밑은 온통 피바다와 잿가루. 오늘도 쌍뜨뻬떼르부르크에서는 잿가루가 푹푹 나리리라. 거기선 내 영혼도 얼어붙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무거워지겠지. 손에 든 펜으로 나는 내 몸에 시구를 새긴다. 종이에 쓴 것들은 불타고 만다. 그러나 이 몸도 불타고 말 것인데, 아니 나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

고되서 앉았다. 풀섶에 털퍽 앉았다. 밤벌레들 산만하고 하늘엔 달만 고고히 떴다. 나는 이제 <천재>가 무슨 말인지에 대해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마음 가뿐한 일이었다.

진눈깨비와 재가 흩날리는 공백의 도시까지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 남았을까. 목적지가 정해진 방랑에 나는 늘 혼자였다. 누구라도 나타나 입을 열라치면 나는 그놈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릴 셈이었건만, 아무도 없었다. 하하. 여기가 어디로 가는 골목인지는 모르겠으나 날씨는 점점 춥다.


바다에서 도망치려면 뭍으로 가야지. 바다가 보이지 않는 내륙의 내륙으로 가야지. 북녘의 땅에 무엇이 있든

나는 점점 여위어간다.

나는 굳이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소연할 필요도 없음에, 즐거운 일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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