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음의 계절

글/시 2017. 12. 16. 11:37 |

무음의 계절



날던 새들은 모두 떨어져 죽었다

농장에는 검은 나무들

파편처럼 서있다

추위에 잠이 든 길고 축축한 짐승들은

깊고 깊은 땅 속으로 도망쳤다.


머리 위에는 천구天球가 아니라

곧 깨져 우수수 떨어져 내릴

살얼음이 얼었다.


지평선도 보이지 않는 땅

내 발밑에서는

서걱대는 발자국 소리만 썰린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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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곳에 있었다

글/소설 2017. 10. 22. 22:17 |

2017/10/22 완성.


1. 나는 글을 쓴다.

2. 나는 일을 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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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유령들이여



그간 잡고 있던 유령들의 소매를 놓을 때가 되었나

나는 그들에게 나를 살게 해달라고

그들의 지혜를 빌려 내 육신과 영혼이

너무도 당연한 듯 흙더미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십여 년간을 매달려왔다.


너무 오래 유령들의 옷소매를 붙잡고 있자

내 손도 반투명한 비물질이 되어가는 것을

나는 느꼈고

그러자 그 손으로 잡는 나의 펜 또한

유령처럼 비어가는 것을

나는 뒤늦게 보았다.


슬픔과 비참으로 쌓았던 벽은

살짝 건드리자, 허무하게 산산조각 나

이제는 내 발밑에 온갖 슬픔과 비참이 마구잡이로

굴러다닌다. 나는 그 땅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저앉아, 그것들을

한때 나의 벽돌이었던 비명들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잡고 있던 것들이 유령이었나? 아니면

오히려 내가 유령이었단 말인가? 그리하여

나의 육신의 무게를 느끼려고 한 발짝을 뗄 때

한 자루의 날카로운 창이 내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자

붉은 피들이 흘렀는데


아아, 그래! 적어도 나의 심장은

아직도 살아서 피를 품고 있던 것이다

나는 나의 피를 긁어모아, 그것을 얼굴에 바르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르며


나의 왼쪽 눈에서는 한 방울의 눈물이

세계를 담고 떨어진다.


안녕, 나의 망령들이여, 안녕.

나는 정말로 당신들을 사랑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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