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날

글/시 2017. 9. 9. 10:55 |

보름날



오래된 패배의 습관들이

절망을 부르짖으며 늑골 안에서 헤엄치던 날

나는 너무 지쳐 주머니칼을 꺼낼 기력도 없었고

그리하여 참으로 몇 년 만에

눈물을 흘려보고자 결심했다


노을이 뒤덮은 산등성이에서

담뱃불은 그 노을처럼 새빨갛고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물샘에서

그 투명하지만 맑지 못할 수액들을

끄집어낼 준비를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리며 살아왔고

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며 살아오는 와중

눈물을 흘리는 방법도 홀연히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무기력하게 앉아 슬퍼하는데

해가 떨어지고 말았다


산속의 밤은 어둡고

담뱃불은 힘없이 꺼졌다

시간은 나를 스쳐지나가기만 하였구나


원망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하늘로 향하자

아, 보름달이다. 어떤 밤보다도 청명한

나는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 맑은 만월이

나를 대신 울어준 것에 대하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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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에게 그 무엇도 물어서는 안 되리라



金은 자신이 언제부터 늪 속에 살았는지 떠올려보려 했다

그러나 기억은 너무 오랜 시간 때문에 흐려져 있었고

분명한 것은 아주 오래 전 김에게도 폐가 있어 지상에서 숨을 쉬었지만

이제는 아가미로 숨을 쉬는 것이 너무도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늪 속으로 가라앉아 살게 되었는지

그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를 않는다.


金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지느러미와 갈퀴가 생기어

늪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는 피막이 생겼고

김의 턱 아래에는 두 개의 아가미가 있다, 이제 김의

흉부 안에는 폐라는 기관이 없다 있을 이유가 없다

물론 늪 속의 삶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한 것은 아니다

이 질척거리는 웅덩이 속에도 세속의 모든 고통과 절망이

아주 느린 속도로 유영한다, 그러나 삶이란 어디서든 그런 것 아니던가?


다만 金은 아주 오랫동안 늪 속에서 살았을 뿐이다

개구리나 도롱뇽 따위를 잡아먹으며, 아주 오랫동안 살았을 뿐이다.


그러니 늪 밖으로 나가야한다는 그 막연하고 당혹스러운 발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金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마치 다시 태어나는 듯, 늪의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었을 때

영겁의 시간 동안 쓸 일이 없던 두 눈이 태양에 의해 지져졌고

아가미는 숨을 쉬지 못해 金은 숨이 막히고 고통스러워 그야말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비명을 질렀다 김은 입으로 울컥거리며 진흙을 토했고

너무 밝은 암흑 속에서 지느러미가 돋은 팔과 손으로 늪의 수면을 긁었다

질식하여 죽을 것 같은 중에 김은 점액으로 미끈거리는 나신을

전부 늪 위로 끄집어냈다.


이제 金은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럽다, 차라리 죽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다

숨을 쉬고 싶으면 다시 폐를 가슴 속에 지어야한다 아가미는 닫아야한다

거의 도마뱀의 꼬리처럼 변한 다리도 더 다부지게 만들어야한다

지져진 눈일지언정 다시 눈으로 무언가를 보게 되어야한다

김은 정말이지 다시 늪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하게


그러나 金은 발을 흙에 디디고 천천히, 위태롭게, 그리고 절망적으로

휘청거리며 땅 위에 일어서려 한다, 다른 도리가 없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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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이 있어선 안 될 호소呼訴



달밤에달밤에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로 쓸 수 없는 것을 시로 쓰고자 하니 아프고 아파

울 수도 없으니 약병은 바닥을 쳤다

달밤에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달밤에달밤에나는 바람이 되고 싶다 별이 되고프다

왔다 가는 선객先客들의 홀가분함이 불고

아직 울 수 있는 사람들이 떨어트린 눈물이 밤하늘을 가득 채운 것이니

나는 바람이 별이 되고픈데


아프게 궁금해 했다

펜은 언제 부러지는 것일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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