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협하는
유리잔을 본다
그것은 테이블 위에 있다
그 물체는 언제나 깨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저기에 서있다
유리잔을 쥔다
수전증은 의학의 이성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뼈와 힘줄은 폭력성을
선험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니 생각
은 비열하다 나는 비열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명이 심장에서 새어나올 것 같다
나는 유리잔을 공포스럽게 내려놓는다
유리잔의 존재로부터 도망친다
너를 위협하는
유리잔을 본다
그것은 테이블 위에 있다
그 물체는 언제나 깨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저기에 서있다
유리잔을 쥔다
수전증은 의학의 이성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뼈와 힘줄은 폭력성을
선험적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니 생각
은 비열하다 나는 비열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명이 심장에서 새어나올 것 같다
나는 유리잔을 공포스럽게 내려놓는다
유리잔의 존재로부터 도망친다
회상
열다섯의 다락방, 시린 겨울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 기뻤다
창문은 하얘
밖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어린 나이에 그는 너무 거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십 년 뒤 나는 이런 말을 들었다: 이미 죽은 시인들은 널 구해주지 못해
두들기는 문마다 부재중이었다.
망령처럼 스스로를 홀리며 살아온 십 년이 십일 년이 될 때
너무 늙은 소년은 너무 어린 성년이 되고 있었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바랐고
그러나 어딜 가도 똑같은 풍경에
똑같은 골목, 막다른 길
당장 필요한 것이 한 줌의 지폐인지
또 한 장의 텅 빈 종이, 그러니까 즉
또 한 장의 공포인지
하릴없이 서있자 증오를 받는다.
술과 담배. 수면제와 자낙스. 눈앞에서 쏟아져 내리는 현실.
너를 마구 할퀴고 쥐어뜯으며 갈기갈기 찢는
아, 너구나. 울증 속에서 너는 너와 마주하고
손에는 술, 담배, 수면제와 자낙스.
입이 떨어지지 않아 내뱉어지지 않는 「굳바이」 한 마디
꿈속에서 열차를 오래 탔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동차건 버스건 열차건
바퀴 달린 것들은 하나같이 질색이었다.
마침내 내려 플랫폼에 토악질을 하고 뿌예진 눈동자를 치켜세웠다.
어딜 가든 낯선 고장이다. 「Home」 이라는 단어는
너무 장황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야말로 내 손으로 집필한
길고 장황한, 이해되지 않는
한 문장뿐인 나의 검은 책.
열다섯의 차가운 다락방에서 혼돈을 해소하려고 쓴 글귀들은
아직까지도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 서서, 증오를 받는다.
낫과 망치를 들고 싶었던 앙상한 손에, 술과 자낙스.
“성자聖子가 되는 방법은 분명히 알고 있어. 명상과 수련 속에서 어렵사리 알아냈어.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항상 문제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술집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우리도 괜찮다. 약병이 바닥을 치기 전에는 우리도 바닥을 치지 않는다. 하늘에선 별들이 밤 위를 기어간다. 아주 느린 속도로. 그것이 십일 년 간 반복됐다. 별들은 흩어지며 형태가 불분명한 여럿의 빛이 되고,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우리 자신을 원망한다.
도스토예프스키나 고골이 살았던 소련은 우리가 알았던 소련과 다른 소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열차 타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으로, 듣자하니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항상 진눈깨비가 하얗게 쏟아지고 거꾸로 치솟는다지만
플랫폼을 여행의 목표로 삼는 나로서는.
깜깜한 겨울. 봄이 와도 죽을 수 없으므로 여름까지 살고, 그러나 너무 덥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는 죽을 수 없으므로 가을까지 살고, 그러나 낙엽들 사이에 시체 한 구를 더하는 짓도 도무지 못할 짓이고, 또 깜깜한 겨울.
2017/12/24 완성.
1. 억지로 쓴 거 같기도 하고
2. 그러나 혈통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쓰고 싶었다.
도망자
―그리고 그 도달점에 대한 길지 않은 질문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내 열 살 무렵의 기억이었다. 내가 이미 잠들어있을 시간인 밤 열두 시 경이 되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비틀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짙은 알코올과 남성용 향수의 냄새가 뒤섞인 채 내게로 덮쳐들었다. 그리고 겨울이건 여름이건 변함없이 뜨거운 손이 내 볼을 어루만졌고, 그 손에서는 언제나 역한 공업용 기름 냄새가 났다. 내가 가만히 눈을 뜨면 잠결에 흔들리는 시야 속에 아버지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였고, 그는 한껏 취한 채, 이 세상 그 어떤 근심도 그를 건드리지 못하는 듯 무구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나를 <우리 장남>이라고 부르며 껴안곤 했는데, 그 독한 알코올의 냄새와 흩어져가는 향수의 냄새, 그리고 일터에서 그대로 가져온 새까만 공업용 기름의 냄새,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며 <아버지>라는 이름의 냄새가 되어 나를 한없이 편안하게 안정시켜주는 것이었다. 후에 내가 막 성인이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는 주말의 정오 즈음에 아버지가 베란다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가 아버지의 냄새였어.>라는 둥의 이야기를 하며 공감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로 인하여 나는 늘 가장 강력한 기억은 냄새나 향기 따위에 대한 기억이라고 믿고 지냈으며, 내가 이미 독립하여 홀로 지내면서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아직까지 습기 찬 반지하로부터 떠나지 않는 것은 역시 그러한 곰팡이 냄새나 퀴퀴하게 젖은 공기의 냄새가 가족들에 대한 내 노스탤지어를 늘상 자극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튼 어머니의 경직된 목소리에게 나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전화를 끊자 사위가 조용했다. 나는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냉장고로 가 맥주를 꺼내왔다. 그는 왜 하필 토요일 아침에 죽었을까. 내가 알기로 그는 항상 토요일에 가장 활기가 넘쳤다. 토요일 저녁에는 다음 날 출근할 걱정을 하지 않고 그가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들과 모여 진탕 술을 마시며 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어제 그는 다음 날 저녁에 거리낌 없이 마실 술과 늙고 정다운 친구들의 얼굴을 기대하며 잠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 아침 영원히 깨어날 수 없게 되었고,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술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500ml 크기의 맥주 캔을 따고 단숨에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전에 아버지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을 때 그는 내가 500cc의 생맥주를 단번에 마셔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참 시원하게도 마시는구나! 나는 그렇게 마시질 못 해. 너희 큰아버지가 술을 그렇게 마시곤 했지.>라고 껄껄 웃으며 말했었다.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슬그머니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내 집은 반지하지만 언덕 능선에 건물이 지어진 탓에 현관으로 들어올 때는 지하로 내려 가야하지만 정작 집 안에 들어와 창문을 내다보면 2층 높이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다. 평생을 반지하에서 살았다고는 해도 아침마다 창문으로 사람들의 구둣발이 지나다니는 걸 봐야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기에 나는 지금의 집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다시 냉장고에서 한 캔을 더 가져왔다. 시릴 정도로 차갑게 식은 알루미늄의 감촉이 좋아서 한동안을 그저 들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맥주가 미지근해질 것이 걱정되자 따개를 따고 기세 좋게 마시기 시작했다. 30초도 지나지 않아 맥주 캔을 다 비우고 두 개의 빈 캔을 나란히 탁자 위에 놓은 뒤 나는 가라앉듯이 의자에 몸을 묻었다. 거실은 겨울의 냉기로 싸늘했고 내 얼굴만이 알코올로 말미암아 조금씩 달아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오늘 내 아버지가 죽었다.
*
“아버지가 죽었어.” 정오 즈음에야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했다. 동생은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녀가 제대로 알아들었음에도 되묻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손으로 맥주 캔을 따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그래.” 동생의 목소리가 톤이 높아지려는 것을 느끼고 나는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가 한참동안 말을 않기에 나는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염병할, 안 그래도 전화해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나는 벌써부터 회사에 연락해서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언제?> 비극이 벌어질 때마다 들을 수 있는 동생의 하이톤 목소리는 어머니가 젊은 시절 히스테리를 부릴 때의 목소리와 똑같다. 이제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동생에게 전화하겠다고 말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일어나서 깨우려고 보니 이미 돌아가셨었대.” 또 한참 정적이 흘렀다. 나는 이미 한 캔을 다 비우고 다른 캔을 따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말이 돌아올지 기대도 하지 않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자, 흐느낌 소리와 신경질을 내는 소리가 뒤섞인 잡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멀리서 소음처럼 <장인어른이?>하는 매제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고, 동생의 우는 소리가 커지면서 전화 저편의 상황이 개판이 되어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계속 맥주를 마시면서 저쪽 상황이 좀 진정되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캔을 다 비울 때까지도 소란은 가라앉지를 않았다. 나는 그냥 여전히 전화기를 귀에 댄 채 냉장고로 가서 문을 열었는데, 이제 맥주가 한 캔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제기랄.” 나는 중얼거리면서 냉장고 구석구석을 뒤지고 야채용 서랍까지 열어봤는데도 맥주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냉장고 문을 닫고 전화기 너머의 엉망진창인 소란과 새된 목소리를 들으며 부엌으로 가 찬장을 열어보았다. 다행이도 거기에는 싼값에 사 쟁여놓았던 잭 다니엘이 여섯 병이나 있었다. 나는 한 병을 꺼내고 어깨로 휴대전화를 귀에 받치면서 양손으로 브랜디 뚜껑을 돌려 열었다. 그리고 다시 왼손으로 휴대전화를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병을 들어 병째로 한 모금을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간 브랜디가 위장에서 불길이 되어 확하고 불이 붙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난 내일 가보려고. 듣고 있냐?” 브랜디를 마시고 좀 진정이 된 뒤에 내가 말했다. <왜 지금이 아니고 내일이야? 엄마 혼자 어떻게 하라고.> 정신이 나간 상황에서도 휴대전화는 붙들고 있었는지 동생이 딸꾹질과 흐느낌이 섞인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타박했다. “지금 운전하면 음주운전이야.” 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내 말이 동생의 엉망인 머릿속을 더 엉망으로 만든 것 같았다. <오빠! 오빠 진짜 미쳤―> 나는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소파 위에 던지고 나는 선채로 브랜디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어찌됐든 맥주를 사와야 했다.
잭 다니엘 한 병을 다 마시고 걷는 토요일 정오의 길은 한산하고 고요했다. 멀리서 차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고 차가운 겨울바람 사이로 따스한 햇볕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다소 꼬인 발걸음으로 휘적휘적 마트를 향해 걷고 있었다. 이렇게도 좋은 날, 술에 취하니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도시의 한 구석에서, 아버지는 죽었고 더는 없다. 슬픔과 히스테리와 발작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족들만 남았을 뿐. 꽤 오래 전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서 곡을 하다 실신했던 할아버지의 딸이 생각났다. 왜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을까? 어린 내게 그 장면은 몹시 불쾌하고 끔찍하게 지루했던 이미지로 다가왔었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내가 언제 처음 이해했더라?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작고 당연한 깨달음은 내게 그 어떠한 충격이나 슬픔으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사실 인간의 필멸성을 지식으로 알기 전에도 나는 모든 사물과 생명들이 피었다 지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관찰하곤 했었다. 어쩌면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슬픈 일도, 애처로운 일도 아니었다.
마트의 자동문을 넘어 나는 곧바로 주류매장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도 크고 작은 마트들이 몇몇 있었지만 내게는 굳이 이곳으로 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알코올 도수 8.6도의 500ml 크기, 새까만 디자인의 캔 맥주. 수입맥주이기 때문인지 도수가 높아 사람들이 잘 사지 않기 때문인지 이것은 동네에서 지금 내가 있는 마트에서만 판매한다. 나는 캔 맥주 여섯 개 묶음 다섯 개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 서있는 중년의 여성 계산원은 날 보더니 빙그레 웃어보였다. “항상 똑같은 걸 사가시네요.”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이게 제게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까요. 종량제 봉투도 하나 주세요.” 나는 신용카드로 계산을 마치고 종량제 봉투에 맥주를 전부 쓸어 담은 뒤 마트를 나왔다. 겨울하늘의 태양은 유리처럼 맑고 찬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봉투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그리고 비틀비틀, 도시의 풍광과 가로수들의 마른 잎에서 떨어져 내리는 빛 알갱이들을 흠뻑 음미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걷는 사이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고 나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이얼을 눌러 회사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20초 뒤 전화를 받았다. “예, 부장님. 접니다.” “무슨 일인가?” 그의 목소리에는 휴일 정오를 즐기고 있는데 분명 사무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불만이 잔뜩 묻어있었다. “제 부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아침에요.” 그러자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분명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단어를 고르고 있는 중이겠지. “그것 참…… 유감이군. 고인의 명복을 비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장례가 끝날 때까지 출근하지 못할 것 같은데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말게. 다시 복직했을 때 휴가계를 쓰도록 해놓을 테니까. 자네는 괜찮은가?” “물론이죠. 저는 괜찮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내가 <물론이죠>라는 말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후회감이 밀려왔다. 내게 전혀 이익 될 것이 없는 쓸데없는 말이었다. “그거 다행이군. 나도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노력해보겠네.”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부장의 별 의미 없이 걱정하는 말이나 잡다한 위로들을 들은 뒤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 전화 한 통만으로 온몸의 기력이 다 빨려나간 것 같았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걸음에 박차를 가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면 맥주들을 냉장고에 넣고, 커튼을 연 뒤 안락의자에서 맥주를 마셔야지. 사실상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 밖에 없으니 말이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가 날 놀이공원에 데리고 갔던 일을 기억한다. 나는 체질적으로 사람이 많은 공간을 못 견뎠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가 나를 즐겁게 하려던 것을 알고 있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공원을 돌아다닐 때, 우리는 작은 오락실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드럼 세트 모양의 리듬게임 오락기를 실행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아버지는 고등학생 시절 드럼을 쳤었다. 그러나 큰아버지 주변에는 실패하고 비참한 뮤지션들이 수없이 많았고, 다소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는 아버지의 <뮤지션 적인>면을 만류하였다. 결국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드럼을 치기는커녕 공장에서 손에 기름만 묻히며 일했고, 단 한 번도 어떤 밴드나 그룹에 속해 드럼을 쳐본 일이 없었다. 쉬는 날이면 아버지는 맥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는 맥주를 들고, 한 손으로는 팔걸이를 두드리며 <덤더러러덤>거리며 중얼거렸다. 그가 자신의 죽을 날을 알고 있었더라면 정식으로 드럼을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따위 생각을 하며 맥주를 마시면서, 아버지가 했듯이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려보았다. 덤더러러덤. 그는 무엇을 위해 온몸을 바쳐 살았던 것일까.
나에게는 이제 <우리 장남>이라며 껴안고 등을 두드려줄 사람이 없다. 필요로 하기는 했나?
그러나 마지막으로 내가 아버지를 뵈러간 것이 도대체 언제인가? 나는 늘 바빴고, 피곤했다. 여동생은 나보다 더 자주 아버지를 뵈러 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히스테릭한 울음소리도 나는 짜증이 치민다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바빴다. 모두가 자신의 일로, 자신의 가정의 일로 바빴다. 덤더러러덤……. 나는 술을 핑계로 아버지의 장례식을 도우러가지도 않으면서, 허공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다. 덤더러러덤덤더덤덤더덤……. 술이 얼큰히 취하자 나는 내가 슬퍼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그저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거실에 늘어져있다. 내게서 풍기는 알코올과 효모 냄새로,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시는 환상을 보면서. <장남, 내 자랑스러운 아들…….> 어린 시절 잠에 취해 아버지와 마주했을 때, 누워있는 나를 쓰다듬으며 아버지는 중얼거리곤 했다. 그의 동물적인 사랑, 동물적인 감정들. 그런 것들은 내가 엉망진창으로 자라왔음에도 날 곧게 세워놓았다. 그런데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나면,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회사에 가서도, 그리고 일이 끝나고 돌아와도, 항상 술을 마신다. 나는 그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다. 나는 그저 알코올에 절어있는, 마시다 남은 술을 퍼붓는 쓰레기통이다. 아버지는 항상 나를 응원해주었는데, 이제 그는 죽고 없다.
빌어먹을 감상주의! 갑자기 욕설이 터져 나왔다. 평생 효자노릇 해보려고 한 적도 없는 놈이 마침내 당신이 죽어야만 감상에 잠긴다고 머릿속 누군가가 비웃어대고 있었다. 그래, 젠장, 언제부터 내 심장에서 피가 말라갔지? 14살 때 처음으로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이후부터인가? 몇 번이나 나는 반복해서 말한다. 이 염병할 놈의 세상은 도무지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나 증오하는 것도 신경이 알코올로 젖어 있어야만 아름답다. 맨 정신으로는 사람도 건물도 날씨도 흙도 동물도 죄다 부러진 채 죽어있는 나무토막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거창한 욕설이 메아리를 치면서 울린다. 당장 뒈져. 당장 뒈져. 당장 뒈져……. 철학가들이나 신학자들이 그걸 신이라고 부르는지 운명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친 작자인 건 분명하다. 만약에 정말로 모든 걸 손수 만들어놓고 그걸 하수구에 처박는 놈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술을 마셔야한다! 술에 취하면 모든 광경들이 조금은 더 나아진다. 붉은 노을의 아련함이나 태양의 노란 빛살, 푸른 하늘같은 것도 알코올의 도움 없이는 사실 별 볼일이 없다. 맥주 캔이 비었고 나는 그것을 손으로 찌그러트렸다. 눈을 감고 의자에 머리를 기대자 내 육신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심지어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럴 만도 하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침에 일어나서 오후까지 계속 마셔댔으니 말이다. “나는 사람이 되려고 술을 마시는 거야.” 이미 꼬일 만큼 꼬인 혀가 멋대로 내뱉어댔다. 나는 이제 내가 <사람>이라는 단어의 어디쯤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는데.
*
일어나니 사위가 어두컴컴했다. 집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전부 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가로등 빛이었고, 그래서 집의 구조는 약간 노란색을 띄며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안락의자에서 일어나려다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통증에 다시 털썩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엄지로 한쪽 관자놀이를 누르며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자 탁자 위의 빈 브랜디 병과 사방팔방에 흩어진 수십 개의 빈 맥주 캔들이 보였다. 안락한 나의 집. 나는 조금만 움직여도 골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냉장고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검은색 맥주 캔들이 수도 없이 채워져 있었고,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따개를 열고 바로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마를 차가운 냉동고 문에 박은 채로 한참을 서있었다. 효모로 인해 발효된 맥아에 두통이 씻겨나간다. 나는 한 모금을 더 마시고 내 방으로 갔다. 침대 탁자 위에 파란색 정제가 가득 찬 유리병을 찾아 나는 뚜껑을 열고 두 알을 맥주와 함께 마셨다. 분명 이 끔찍한 두통도 맥주와 자낙스 두 알로 금세 사라질 것이다. 수도 없이 겪어봤기에 안다. 예전이라면 아편제제를 이용하여 순식간에 해결했겠지만, 더 이상 이 나라의 어느 병원도 내게 그것을 처방해주지 않는다. 나는 계속 맥주를 홀짝이며 방의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나는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최근에는 침대에서 자는 일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팔아버릴까 싶기도 하다. 평생을 바닥에서 자다가, 왜 이 집을 얻을 때 굳이 침대 따위를 샀던 걸까. 나는 갑자기 그 침대 매트리스의 푹신한 감촉이 소름끼치게 느껴져 벌떡 일어났다. 사람은 죽을 때 눕는다. 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렇다. 나는 맥주를 챙겨 급히 거실로 나갔다. 어느새 내가 두통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이제 다시 술을 거침없이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휴대전화를 집으면서 안락의자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내 얼굴만 비추고 있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면서 나는 기기 안의 사진 저장 폴더로 들어갔다. 3년이 조금 넘도록 쓴 전화인데도 기기 안의 사진은 50장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사실 특별히 찾고 있는 목적물은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사진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하는 행동이었다. 가장 오래된 사진에 그들이 있었다. 어느 공원인가 산에서 찍은 것 같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고 있었다. 둘 다 반팔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여름인 것 같았고 아버지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어머니는 얇은 카디건을 셔츠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동생이나 조카들의 사진도 없었다. 그러나 내게 하나 남은 그 사진이 사이좋은 노부부의 사진처럼 찍혔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부부가 함께 산 시간을 60년이라고 친다면 그중 55년 정도는 항상 서로를 향해 차가운 감정을 일렁이며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진은 남은 5년 사이의 기적적인 순간인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리고 맥주 캔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벌써 내가 캔을 다 비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침대 위에 앉았을 때 느꼈던 서늘한 감촉이 또 한 번 등골을 떨리게 했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했다. 나는 또 한 캔의 맥주를 따며 중얼거렸다. 나는 평생을 도망쳐왔다. 그러기 위해 내 안의 모든 것을 말려버리고, 그 남은 자리에 술을 부어왔다. 이미 치러지고 있거나 혹은 곧 치러질 장례식의 환영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무작위하게 움직였다. 이러한 환영은 곧 연쇄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한없이 따분하고 이상한 침묵 속에서 움직이는 실체 없는 검은 정장들의 무리가 일사분란하게 파도치고, 나는 행렬 앞에서 영정사진을 든 아이였다가 어느새 그 아이는 얼굴이 없어지고 저 뒤쪽 으스스한 곳에서 나는 그 아이를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영정사진의 주인공은 아버지였다가 할아버지였다가 큰아버지였다가 어느새 그들은 돌아가며 내 옆에 서서 나와 어깨를 마주대고 있을 것이고, 그 기괴한 번복과 생사의 무분별한 모호함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래, 이것이 내가 두려워 마지않았던 것이다.
*
나는 차의 운전석에 있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고,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드문드문 했다. 나는 긴장된 채 액셀을 밟고 있었고 몸에서는 알코올과 효모의 냄새가 났다. 내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착각하고 반대로 밟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불안 때문에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컵홀더에 끼워놓은 캔 맥주를 연신 마셔댔다. 무엇이 날 이렇게 급하게 튀어나오도록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생각과 환영들이 날 괴롭히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시체가 된 아버지를 직접 보고, 그 딱딱하고 차가워졌을 손을 잡아보는 것이 내게 필요한 행동 같았다. 새삼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을 때를 생각했다. 비보를 받고도 내 얼굴근육은 단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 하루 동안 무슨 연유에선지 난 극도의 불안과 긴장을 느끼며 무언가로부터 계속해서 도주하는 미치광이가 되어왔다. 아버지의 죽음, 아니, <죽음>의 가차 없고 무지막지하며 도무지 예측 따위는 할 수 없는 판결이 어떤 방아쇠라도 되었던 것인가? 나는 지금 국도를 시속 90km로 달리고 있다. 내 목덜미 뒤에서도 새까만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을 나는 촉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늘 따라다니던 것이다. 다만 지금 나는 취했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뗄 수가 없을 뿐이다. 새벽의 텅 빈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내 발에는 멋대로 힘이 들어갔다. 100km/s. 110km/s. 그러나 동시에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이 느리고 물컹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오늘 전혀 죽을 예정이 없다. 120km/s. 자살관념이나 충동 따위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14살 때 심장의 피와 함께 말라버렸다. 그래, 이것은 발작이다. 그러나 내가 손에 올리고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발작이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다 마셔버리고 빈 캔을 뒷좌석에 던지며 천천히 브레이크에 힘을 실었다. 거의 5분에 걸쳐 차의 속도는 몇 단계를 지나며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쐐기를 박으려고 조수석에 있던 맥주를 집어 땄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단번에 절반을 마셔버렸다. 거의 고통에 가까운 목 넘김이 중추신경에 번개라도 때려 박은 것 같았다. 나는 슬슬 눈동자의 초점이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이 다행이었다. 경주마처럼 쿵덕거리던 심장은 잦아들었고, 그와 함께 차의 흔들림도 작아졌다. 나는 이대로 속도를 줄이려고 했다.
아, 염병, 면허 교습소에서 선생이 오른발로만 운전하라고 했던 걸 믿은 게 잘못이지. 내가 여태껏 밟고 있던 게 액셀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코너에서 눈앞에 보이는 건 가드레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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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우리가 그저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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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내 온몸에는 온갖 튜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 눈은 떠지지 않았고 다른 쪽 시야마저 부옇게 흐렸다. 입으로 숨을 쉬려고 하자 기도에 뭔가가 걸린 느낌이 들었다. 어렵사리 손을 들어 코 주변을 만지자 콧구멍으로 두 개의 튜브가 들어가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윙윙거리는 이명이 있는 채로 말소리가 들리는 왼쪽으로 고개를 향하자 간호제복을 입은 간호사와 경찰관이 서있었다. “실려 왔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0.627% 였어요.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조차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급성알코올중독으로 죽었어야 해요.” 이명 소리 가운데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기야 내가 자랑할 것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강철 같은 간 밖에 없다. “일어나셨네.” 얼굴도 보이지 않는 경찰관이 날 보며 말했다. “선생, 정신이 듭니까.” 나는 <예>라고 말하려 했으나 혓바닥 왼쪽과 입술의 가장자리가 심하게 아파 잠깐 입을 다물었다 쉰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어디까지 기억나세요?” “술 먹고 운전하다 가드레일 받은 데까지요. 그보다 이 튜브 좀 빼주시오.” 나는 코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경찰관은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묻는 것이었다, “기억력은 좋으시네. 그럼 음주운전이 불법이라는 것도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나는 고개를 바로 하며 한숨처럼 대답했다. “그래서 형량이 얼마나 나옵니까?” 내가 물었다. “혈중알코올농도 0.2% 이상 음주운전에 과속, 기물파손까지 해서 면허취소에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만 원 이상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거기에 이것저것 상황 봐서 더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술에 만취해서 어딜 가려고 했던 거요?” “아버지 장례식이오.” 나는 이제 경찰관의 얼굴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잠시 침묵이 산만한 공간 속을 돌았다. 침묵을 깬 것은 물론 경찰관이었다. “부친께서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오늘이 무슨 요일이오?” 내가 묻자 경찰관은 월요일이라고 답했다. “내가 일주일 넘게 여기 누워있었던 게 아니라면 이틀 전입니다.” 경찰관은 또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면허취소에 벌점이랑 벌금은 어쩔 수 없겠지만 감형이 될 수도 있겠소. 여하간 치료가 다 끝나면 법원 출두서가 나올 겁니다.” “뭐가 어찌 됐든 삼일장 끝나고 나서야 일이 마무리 지어지겠군요.” 내가 덤덤하게 말했다. “유감입니다.” 그 후 경찰은 무엇인가 형식적인 얘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더니 또 한 번 <유감>을 표하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간호사에게 내 몸 상태를 물어볼 수 있었다. 그 남자 간호사는 차트를 확인하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말을 늘어놓았다. “늑골 세 대랑 오른쪽 정강이뼈가 부러지셨고, 부러진 늑골 하나가 폐를 찔렀지만 실려 오신 뒤 바로 수술을 하고 봉합을 했으니 별 문제는 없습니다. 안면에 심한 타박상과 자상을 입었지만 영구손상이 될 만한 것은 없고 나중에 흉터만 좀 남으실 겁니다.” 내 생명은 정말 지저분하게 끈질기다. 예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삶 자체를 자살시도처럼 살아도 나는 무조건 끝까지 살아남는다. 마치 누군가가 나더러 계속 살아보라고 조롱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쯤 퇴원할 수 있습니까?” “대략 3주요.”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확정되었고, 동시에 어머니와 동생이 영원히 날 증오하리라는 것도 확정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그들은 날 증오하기는 했다. 사회적으로 정상 기능하는 인간들은 부품이 부서진 인간을 증오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증오당하는 것은 인간본성과 순리,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의 자의에 의한 것이다. 모든 만물이 나를 더러 당장 죽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도무지 나는 죽을 수가 없다. 나는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간호사를 쳐다보며 물었다. “맥주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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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나는 피고석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병원에서 보낸 삼 주간은 지옥 같았다. 몰래 기어나가려고도 해봤으나 정상인보다 훨씬 기동력이 떨어지는 내 다리로는 술집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맥주 한 방울도 없는 병원침대 위에서 나는 알코올 금단증상으로 인한 불면증과 신경과민으로 극도로 예민해져 쉬지도 않고 사방에 화풀이를 해대는 사이코가 되어있었다. 입원기간 동안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전화 한 번 울리지 않은 것을 보면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는 경찰이나 병원 측에서 연락을 한 모양이지 싶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내게 연락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다. 여하간 지금 내가 죽은 눈동자로 법정에 서있는 까닭은 퇴원하고서부터 어제 밤까지, 병원에서 못 마신 술을 전부 마시고 생긴 숙취 때문이다. 갈비뼈와 오른쪽 다리가 유난히 욱신거리는 것이 역시 의사들이 술 먹지 말라는 소리를 공으로 하는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나 난 오늘 아침에도 맥주 5L를 비우고 왔다. 내가 뭘 어쩔 수가 있기나 하단 말인가. “……그러니까 피고는 부친을 잃은 슬픔에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다는 것입니까?” 검사인지 뭔지, 지금까지 전혀 법정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죄를 물으려는 사람이 갑자기 질문해왔다. “딱히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혈중알코올농도 0.6%가 넘어가는 만취한 상태로 운전을 시도한 것입니까?” 저 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정의로운 분노는 정말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나는 그 분노가 정말 저 자의 분노인지 아니면 일종의 역할극을 하는 상황에서 끄집어낸 의도된 분노인지가 새삼 궁금했다. “그야 장례식에 가려고 했을 뿐이지요.” 나는 정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검사―인 것 같은 자―는 모두가 들리도록 혀를 차더니 법관에게 증거물 소환을 요청했다. 법관이 요구를 승인하자 100L 크기의 투명한 비닐봉투 서너 장이 온갖 색깔로 알록달록한 빈 캔 맥주들로 가득 찬 채 사람들 손에 들려 나왔다. “피고의 차 뒷좌석에서 꺼낸 맥주 캔들의 <일부>입니다.” 검사는 소리 높여 말했다. “처음 차문을 열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이것이 자동차 뒷좌석인지 알루미늄 재활용센터의 창고인지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캔들이 피고가 마셔온 것들이 맞습니까?” 검사는 비닐봉투들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내 차에서 꺼내온 것들이라면 제가 마신 것이 맞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더욱 기세등등하여 외치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보아 피고가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피고의 회사동료로 있는 증인이 증인석에 설 것을 요청합니다.” 법관은 상황 돌아가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는 듯이 요청을 승인했다. 그리고 증인석에 올라선 사람을 보자 그는 정말 내 옆자리에서 일하는 P 대리였다. P는 증인석에서 다소 불안한 눈동자로 나와 검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증인은 회사에서 피고와 함께 일하는 P 씨가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는 여전히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증인은 가끔 회사에서 피고에게서 알코올 냄새가 났다고 했는데 그것이 정말입니까?” “예, 하지만 저는 그것이 그저 구강청결제의 냄새인 줄만……” P 대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사는 거의 설교하는 예수의 제자라도 된 것처럼, 머리 뒤에서 후광이라도 보일법한 모습으로 외쳤다. “피고는 회사에서, 근무시간에 술을 마신 일이 있습니까?”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휴대용 술병에 브랜디를 담아 가지고 다니며 가끔 회사에서도 남들 모르게 마시곤 했다. “있지요.” 지금까지 계속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제지하려고 애를 쓰던 옆자리의 국선변호사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내 대답으로 말미암아 검사의 기세는 법원 천장을 뚫을 듯이 올랐고 목소리는 점점 더 크고 카랑카랑하게 변해가며 내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알코올중독자이며 사회에 위협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징역과 함께 출소 후 알코올중독자용 보호감호시설에 수용해야한다고 막힘없이 목청을 높였다. 알코올중독자. 그 말은 왠지 내게는 너무도 신선하게 들리는 단어였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코올중독자의 영역에 속한다고 뚜렷하게 생각해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했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저 정의로운 검사는 의학과 통계의 힘을 입어 알코올중독자라는 번쩍이는 왕관을 내 머리에 씌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모든 일이 다 내 손을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 이 정신 사나운 법정다툼이나 내 생활, 내 회사, 내 집, 내 삶, 그리고 내 존재까지도, 심지어는 아버지의 죽음이나 어머니와 여동생의 지겹게 이어질 생명에 대해서조차 전부 내 손을 떠나 더는 상관하지 않아도 될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 손은 족쇄에서 풀려난 듯이 갑자기 가벼워졌으며 나는 그 자리에서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내 웃음소리에 법원이 통째로 조용해졌다. 검사는 몰이해가 감도는 부릅뜬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법관은 시종일관 약간 웃는 듯한 눈매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그 말이 너무 신기해서요. 알코올중독자라는 단어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허허하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재빨리 처리되기 시작했다. 이미 내 변호사는 턱을 괸 채 앉아 말이 없었고, 검사의 열변 이후 법관은 피고가 중증 알코올중독자이며 상습적 음주운전자임은 정황상 틀림이 없으나 부친의 죽음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판단력이 상실되었을 수 있음을 감안하여 면허취소, 800만원의 벌금과 3개월 내에 자발적으로 알코올중독 치료기관에 입소할 것을 명령했다. 자발적으로라고는 하나 4개월 이내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입소 시킨다는 말 따위를 했으며, 중독이 완전히 치료되기 전까지는 면허발급을 금지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목제망치가 두드려졌다. 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채로 자리에 서있었으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모든 것은 흘러갈 대로 흘러가고 마는군.”
*
나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사고 때문에 회사에서의 공백기가 너무 길기도 했고 회사로서는 알코올중독자 낙인이 찍힌 사원을 부리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이다. 내 데스크에서 들고 나올 것은 별로 없었다. 고작 펜 몇 개와 숨겨놨던 휴대용 술병 두어 개 정도. 내가 처리해야 했을 이미 기간이 지나버린 서류 뭉텅이들은 전부 파쇄기에 갈아버렸다. 그러나 나는 술에 절어 살면서도 회사에서 공을 올린 경력이 꽤나 많았기 때문에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인사부 과장과 잘 이야기하여 넉넉한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모든 직장동료들이 그러하듯이 그도 다른 말은 않고 그저 내 아버지에 대해 위로하는 말만을 했다. 퇴직금과 그간 모아놨던 돈들을 합하니 벌금 800만원이라는 문제는 어이없도록 쉽게 해결되고 말았다. 범퍼가 아예 떨어져나간 차는 폐차시켰다. 어차피 꽤 긴 기간을 나는 자가용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나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며칠 전, 평일 오후에 집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상한 감각에 둘러싸인 채 안락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어머니에게 몇 번이고 통화를 시도했었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 메시지로 아버지가 어디에 묻혔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장에는 주소와 위치만 적혀있을 뿐 그 어떤 인사나 안부도 없었다.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버스를 타고 아버지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철제 의자에 앉아, 한 손에는 맥주 캔 다섯 개가 든 비닐봉투를 들고 말이다. 아버지의 무덤은 지방의 할아버지 묏자리 아랫단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실 어머니에게 위치를 물어볼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독립하기 전까지는 매년 명절 때마다 들르던 산이니 말이다.
고속버스는 엔진소리를 울리며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나는 가끔씩 안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 브랜디를 홀짝였다. 차창 밖으로 지나쳐가는 황량한 산맥들이 이 계절은 역시 만물이 잘못된 자리에 놓인 파편처럼 보이게 만들어버리는 계절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썩지 않은 낙엽들이 도로가에서 움찔거렸고 곧 차바퀴 밑으로 말려들어가곤 했다. 태양은 완전히 흰색이라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수없는 시체들의 거대한 등뼈 위를 달리고 있다. 매년 무언가가 태어났다가 죽어서 썩어 사라지는 것을 30년 넘게 지겹도록 보아왔다. 모두가 그런 것을 보아왔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말없는 반복이 우리로부터는 유리되어있다고 어떻게든 믿으려 한다. 동생은 울었다. 소리치고 비명 지르며 울었다. “불쌍한 조카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시골 정류장에서 작은 마을버스를 잡아타고 산 밑까지 이동하는 동안, 나는 스테인리스 술병을 다 비우고 500ml 맥주 한 캔도 끝장을 낸 참이었다. 바람은 차갑게 불어 내 코트가 마구잡이로 펄럭거렸고 얼굴이 시렸다. 나는 뫼지기가 일하는 컨테이너 박스 건물을 지나 천천히 산을 올랐다. 경사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는 비닐봉투는 바람 때문에 내용물이 움직여 카랑카랑하는 소리를 산발적으로 내고 있었다. 나는 찬바람 때문에 옷깃을 여미면서 동시에 봉투에서 맥주 하나를 꺼내 땄다. 내 기억에 따르면 할아버지의 묘는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있다. 아마 십 분 안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나는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산을 오르면서 맥주를 조금씩 삼켰다. 아버지 무덤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취해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아버지의 묘는 몹시 찾기 쉬웠다. 매년 가던 할아버지 묘의 아랫단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매장하고 떼를 입힌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파릇파릇한 잔디가 유난히 눈에 띠었기 때문이다. 비석 또한 검은색에 윤기가 도는 것이 새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아버지 묘에서 뒤로 돌자 사방이 탁 트여 건너편 산까지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시리도록 깨끗하고 고요한 계절이며 풍광이었다. 나는 다시 봉분을 돌아보았다. 주변에선 아무 소리도 안 들렸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깔린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닐봉투에서 두 개의 빈 캔이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얼마나 무덤을 보고 있었더라?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건 무덤이었다. 새로 떼를 입혀 번쩍거리는 무덤. 나는 무덤에 더 가까이 가서 앉았다. 코앞에서 풀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는 봉투에서 맥주 세 캔을 모두 꺼내, 하나를 열어서 한 모금을 마시고 남은 것을 모두 봉분 위에 쏟았다. 황금색의 맥주줄기가 잔디 위에서 마구 튀다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다음 캔도 따서 부었다. 그리고 마지막 캔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무덤 앞은 맥주로 흥건하여 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오면서 마신 브랜디가 이제야 끓는 열기가 되어 얼굴로 올라오며 더는 춥지 않은 것을 느꼈다. 나는 또 한참을 멍하니 무덤만 바라보고 있다가 비틀거리며 일어서, 검은 비석 쪽으로 가서 주저앉으며 비석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폈다. 고개를 들자 하늘의 구름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미안해요.” 나는 취한채로 중얼댔다. “오랜만에 옆에서 좀 잘게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나는 눈을 닫았다.
어찌 됐든, 세상은 끝나지는 않는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마찬가지로, 흘러갈 것들은 계속 흘러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