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붕괴 뒤에 건축이 있고 죽음 안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줬으면 했던 것일까. 그리고 거기서 자연스레 뻗어나오는 환희와 자유를, 나는 보여줄 역량이나 있었나.
우화羽化의 꿈
“번데기가 되었으면! 그렇다면 끝이 안 보이는 어둠과 감금 속에서도 안락을 찾은 채, 그러나 천변만화한 변화를 멈추지도 않은 채 언젠가 고치가 찢어질 것을 굳게 믿을 텐데.” F는 쇠락한 마을광장을 빙글빙글 돌며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었다. 노을 아래 그 광장은 온통 주황색과 붉은색 투성이였으며 사방에 고철이나 더 이상 쓸 수 없는 목재들이 무질서하게 버려져있었다. F는 자신이 이 마을광장에서 살기 시작한 지 몇 년이나 되었는가를 헤아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셈으로는 구할 수가 없는 숫자였다. 그는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언젠가부터 옅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그 무성한 수염들은 그의 쇄골까지 지저분하게 내려 와있었다. 그는 자신이 몇 살인지도 몰랐고 언제부터 마을광장에서 살았는지도 몰랐으며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동안 자신이 죽지도 않고 움직이는 청동상처럼 광장에 붙박여있다는 것이었다. F는 과연 자신에게 어린 시절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전혀 생각나는 바가 없었다. 노쇠하여 기억력이 좋지 않아진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에게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없어서 뜬금없이 노인으로 생겨나 마을광장에 처박혀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광장을 돌다가 버려진 유리조각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것을 햇빛이 반사되도록 비스듬히 들고 자신의 얼굴로 향하자, 쇳물로 만든 것 같은 딱딱하고 주름진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은 언제 비춰보든 항상 같은 모양이었다. 다른 모양이었던 때가 있기나 한가? F는 도무지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유리조각을 집어던지고 절망에 빠져 자신의 침낭으로 향했다. 광장 구석의 어느 계단참 밑, 언제나 그늘이 지는 그곳에 F의 침낭과 음식, 몇 가지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다. F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 무너져 내리듯이 침낭 위로 쓰러졌다. <번데기가 되었으면!> 그는 눈을 감은 채 또 한 번 같은 문장을 마음속으로 반복했다. 그의 주변에는 이미 상하기 시작한 음식들 위에 날벌레들이 왱왱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고 오물과 썩은 야채 따위의 냄새가 지독하게 피어올랐다. F는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살았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굶어죽거나 병에 걸리는 일도 없었고, 이 마을광장에는 여름도 겨울도 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꽉 막힌 막다른 골목에 쓰러져있다고 생각해왔고 어느 모로 생각해봐도 그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오래 전부터 F는 은연중에 자신의 죽음을 희망해왔지만 그의 교묘한 직감은 그가 절대 죽을 수 없다고 저주 같이 속삭이기만 하는 것이었다. F는 침낭 위에 쓰러진 채 고개를 돌려 눈을 떴는데, 시선 저 끝에 보이는 벌레 먹은 축축한 널빤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 그 누구도 그것을 치우지 않았고 F 자신도 그 널빤지에 대해 아무런 감상도 갖고 있지 않았다. 실상 그 광장에 놓인 모든 폐기물들이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썩지도 불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심지어 바람에 움직이지도 못하며 F 자신과 같이 그저 천년만년 그곳에 버려져있기만 했다. 변화의 낌새 같은 것은 이 광장 어디에도 없었다. F는 무의미하게 자신의 낡은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광장이 늘 노을빛이라는 것을 저주했다. 그런데 그 저주도 이미 몇 년을 반복해온 것이었고, 아무리 저주해봤자 해는 지지도 않고 머리 꼭대기에 걸리는 일도 없이 항상 비스듬히 광장과 납덩어리 같은 구름들을 붉게 비추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았으나 사실은 이 광장의 모든 것이 비수처럼 찔러대는 진실이었다. F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침낭에 얼굴을 파묻었다. 모든 존재들이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심지어는 목적도 없이 버려져있는 것 같다고, F는 늘 생각해왔다.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다. F의 일과라고 해봤자 매일 똑같았던 것이, 잠에서 깨면 노을빛인 광장을 서성거리며 절망하고 좌절하다가 번데기가 되는 것에 대한 꿈을 꾸고, 너무 걸어 다리가 저려오면 침낭에 쓰러지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면서 잠들었다가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은 채 잠에서 깨면 또 이전 그대로인 붉은빛 광장 앞에 황망하게 맞서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가끔 분노에 차 도대체 어디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저주를 퍼붓다 주저앉아 다시 울곤 했다. F는 자신에게 의식이 있다는 것이 신의 저주처럼 생각되었다. 아니면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그자의 악의적인 심심풀이 장난이라든가 말이다. 저 널빤지나 깨진 유리조각들, 고철들은 F와 똑같은 처지임에도 절망하고 저주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그것들에게는 의식이 없고, 같은 존재라도 F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버려져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생각이나 의문조차 버려져있었다! 그러나 F는 그런 널빤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널빤지나 고철 따위가 된다면 꿈도 꾸지 않는 무無와 공空의 세계에서 안락하겠지! 그러나 F는 그 자리에 있는 자체로 침묵하는 사물이 되기보다는 번데기가 되고만 싶다는, 자신도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갈망으로 매일을 울부짖었다. 그는 처절하게 안락을 바랐지만 동시에 절대로 안락하고 싶지 않았다. 안주한다는 것이 죄악처럼 생각되었는데 그러한 선악의 구분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 늙은이는 서성거리고 고함을 지르고 울고 쓰러지며 고통 속에 잠겨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매일, 그야말로 매일 매일 반복되었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광장에 나타났다. 그자는 햇빛을 가리려고 밀짚모자를 쓰고, 몹시 닳고 낡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드러난 팔뚝이나 목덜미가 새까맣게 탄 것이 어떻게 보나 나그네 같았다. 그런데 그는 양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고 맨발에 나무와 끈으로 만든 샌들을 신고 털레털레 나타난 것이었다. F는 몹시 놀라 둥그레진 눈동자로 그 나그네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을 보는 것이 너무도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나그네는 밀짚모자를 추켜올리고 광장을 슥 둘러보더니 F에게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는 것이었다. <저것이 악마이려나?> F는 무심결에 그렇게 생각했다. “노인장, 말 좀 물읍시다.” 나그네의 목소리는 겉보기보다 훨씬 어리고 카랑카랑한 음색이었다. “나는 이 마을에 들어와 세 시간 가량을 돌아다녔는데 그 어디에도 사람이 없고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당신이오. 건물과 가게들은 멀쩡히 있는데 왜 아무도 이곳에 없는 거요?” F는 그 나그네가 충분히 가까이 왔기 때문에 드디어 그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는데, 나그네의 눈동자는 청회색으로 번쩍거렸고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F는 더듬거리다가 대답했다. “오래 전에 이웃마을에 돼지농장이 생겼소. 안 그래도 불경기만 지속되던 이 마을에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이웃마을의 커다란 돼지농장으로 모조리 옮겨가버렸소.” “노인장은 왜 가지 않았소?”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나그네가 물었다. “나는 이 광장에서 수 년 간 번데기가 되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소.” F의 대답에 나그네는 팔짱을 끼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그는 대뜸 물었다. “이웃마을에 가면 볼거리가 좀 있소?” “듣기로는 큰 울타리 안에서 다 자란 돼지들을 도축장으로 끌고 갈 때 그것들이 꽥꽥거리는 모습이 볼만하다고 하오.” 그러자 나그네는 갑자기 위악적이고 높은 목소리로 웃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돼지농장은 이웃마을에 있는 것이 아니군!” F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주춤거리면서 그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러자 나그네는 갑자기 F에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 같이 쉴 곳 모르고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게 무언지 아오?” “글쎄, 나는 항상 이 광장에서만 살기 때문에……” “칼과 성냥이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마을에를 가든 사막에를 가든 심지어 눈밭뿐인 설국에를 가든 무서울 게 없지.” “그래서 짐이 없군.” F가 중얼거렸다. “그렇지. 그리고 지금 이 마을에서 필요한 건 오로지 성냥뿐이오.” 그렇게 말하더니 나그네는 밑도 끝도 없이 F의 따귀를 있는 힘껏 올려붙이더니 깜짝 놀란 그의 목덜미를 잡아 무시무시한 힘으로 광장 구석에 던져버렸다. 얻어맞고 던져진 F가 얼이 빠진 채 볼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 나그네는 F의 침낭, 잡동사니, 음식, 옷 따위가 들어있는 나무상자를 거칠게 한 군데로 모아 쌓았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주머니에서 꺼낸 성냥에 불을 긋고 F의 물건더미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불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새까만 연기를 뿜어내면서 침낭과 물건들은 점점 재가 되어갔고 불길은 악마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높이 치솟았다. 나그네는 그 꼴을 잠시 보고 있더니, F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밤이 오기 전에 난 떠나야겠소.” 그리고 그는 터벅터벅 광장 밖으로 걷더니 연기라도 된 듯 사라져버렸다. F는 황당하고 겁이 난 채로 불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모든 것이 재가 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활기와 함께 공포가 그의 혈관 속을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물건들이 다 타버리고 불길이 꺼질 무렵, 갑자기 해가 졌다. 사방이 새까맣고 암청색 하늘에는 달과 별들이 떠올랐다. F는 이제 일어서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맞는 밤이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광장조차도 검은색이었고 어디에도 노을은 남아있지 않았다. F는 광장의 바깥, 멀리 보이는 마을의 현관에 짙은 그림자가 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밖에는 침엽수와 활엽수들이 마구잡이로 어둠 속에 뭉개져있었고 작은 오솔길이 분명히 그곳에 있을 터였다. <번데기가 되었구나.> 하는 믿음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F의 마음속에 부풀어 올랐다. 그는 오솔길을 따라 떠나자고, 인생 최초의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나타나엘은 몹시 당황해있었다. 지금 그는 어떤 감옥의 철창 안에 있었는데, 몹시 좁고 지저분한 그 감방은 한 사람을 구속시키고 생활하도록 하기에 딱 알맞은 크기와 모양새만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높이 있고 철창이 쳐져있어 보이지도 않는 단 하나 뿐인 창문이나 딱딱한 침대에 들끓는 빈대, 벼룩 따위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나타나엘이 자신이 왜 갇혀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감방에서 자신이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간수에게 몇 번이나 상황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그는 늘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당신은 구속되었소.> 따위의 대답만, 사실은 대답조차 될 수 없는 말마디만 내뱉는 것이었다. 애당초 사건의 발단부터가 나타나엘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직장에서 퇴근해 저녁을 먹고 약간의 운동을 한 뒤, 허브티를 마시고 ―지금은 이미 감촉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는데, 새벽 즈음엔가 난데없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그의 얼굴에 검은 가죽자루를 씌우고 어디론가 한참을 끌고 가더니 이 감방에 처넣어버린 것이었다. 감옥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제일 먼저 회사의 상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단 한 번도 지각하거나 결근한 일이 없는 나타나엘이 갑자기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면 상사는 분명 불쾌해하면서 전혀 나타나엘에게 이득이 될 리 없는 상상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철창을 붙들고 간수에게 전화기를 좀 가져다 달라고 했으나,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당신은 구속된 몸이고 전화 따위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없소.> 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것이었다. 나타나엘은 흥분하여 <나를 납치한 당신들이 도대체 무슨 집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일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받게 될 거요. 나는 건실한 직장인이고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며 존경받을만한 국민이란 말이오. 그리고 도대체 당신들 때문에 내가 직장을 잃게 된다면 그건 누가 보상해줄 거요?> 라고 외치자 간수는 또 한 번 웃으면서 <뭔가 착각하고 계시군. 우리는 바로 그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법기관이오. 당신은 정당한 절차에 의거하여 이곳에 구금되었단 말이오.> 라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대는 것이었다. 정당한 절차라니? 도대체 언제 그 절차라는 것이 진행되었는지 나타나엘로서는 전혀 모를 일이었다. 나타나엘은 이 답답한 간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잠시 포기하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평소에도 그는 매우 이성적인 성격이라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 이유와 인과관계를 유추해보는 데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빈대가 들끓는 침대에 걸터앉아 혹시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구속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저 간수의 말이 완전히 거짓일 가능성도 있었다. 어쩌면 이 감옥은 나타나엘의 정부와는 좁쌀만큼도 상관없는 곳이며 나타나엘을 납치한 그 제복 입은 남자들이나 간수도 나타나엘을 구금시켜놓는 것으로 재물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범법자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한 평짜리 감방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고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나타나엘은 뒷짐을 지고 감방 안을 빙빙 돌면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건 누군가의 모략에 걸려든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타나엘은 살면서 담배꽁초를 길거리 구석에 버리거나 무단횡단을 하는 정도의 범법 밖에는 저지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들이닥쳐 체포―그것을 체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하여 그대로 감방에 던져 넣는 정도라면 그 죄질이 아주 무거워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타나엘을 모략중상하여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나타나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다시 간수에게로 가 말했다. “당신들이 무슨 소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평생을 결백하게 살아온 사람이오. 물론 사람이라면 살아가다 몇 가지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저질러온 실수들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소. 당연히 이런 감방에 집어 던져질만한 종류의 것도 아니었고! 그러니 당신들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요. 분명 누군가의 중상모략으로 내가 이 꼴이 된 것이 틀림없으니 당신들이 더 철저히 조사를 한다면 내가 결백하리라는 것이 분명 밝혀질 것이오.” 그러자 간수는 철창 밖에서 나타나엘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고, 게다가 내 소관도 아니오. 당신이 무슨 이유로 이 감옥에 잡혀 들어왔든 내겐 하등 상관이 없는 일이오. 내 직무는 그저 당신이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뿐이니까.” 그 말에 나타나엘은 놀라서 내뱉었다. “그럼 당신은 내가 무슨 근거로 잡혀 들어왔는지도 모른다는 거요?” “물론이오. 보통 나 같은 간수들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어떤 인물이고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오. 우린 그냥 우리 책임을 다 하고 그에 대한 대가인 월급을 받을 뿐이지.” “이것은 완전히 코미디로군!” 나타나엘은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나타나엘이 절망스럽게 웃는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자 간수에게는 그 모습이 딱해보였는지 그는 한 마디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가끔 우리도 수감자들이 무슨 죄목으로 잡혀왔는지 아는 방법이 있소. 그런데 그건 당신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군.” “그 방법이라는 걸 들어나 봅시다.” 나타나엘이 이미 별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바로 수감자들 자신에게서 듣는 거지. 예를 들어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에 바로 이 감방에 갇혀있던 자는 자신이 저술하여 배포한 반체제주의 서적 때문에 이곳에 잡혀온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소.” “그래서 그는 사상범으로 잡혀온 겁니까?” 나타나엘이 물었다. “확신할 수는 없소. 말했다시피 그 양반도 스스로 추측하기에 자신이 잡혀올 만한 이유나 근거가 그 책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뿐이니까. 그러나 우리 윗사람들이나 고등법원의 법관들이 실제로 무슨 이유로 그 남자를 구속시켰는지 우리 간수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소.” “그는 어떻게 되었죠?” 그러자 간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 “그것 역시 알 도리가 없소. 감옥에서 그 자를 빼내간 요원들은 우리보다 훨씬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수감자를 빼가서 어디로, 혹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권한이 간수들에겐 없소.”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법체계는 각각 유기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하나도 없고 토막 난 기계처럼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로군!” 나타나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아마 수감자를 이동시키는 요원들도 자신들이 담당한 수감자가 어디로 이동해야하는지만 알 뿐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모를 거요. 왜냐하면 분명히 그들보다도 높은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테고, 기본적으로 법원에서 오고가는 정보들은 전부 기밀사항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그냥 각자 우리의 직무만을 다 할 뿐이오.” “맙소사.” 이제 나타나엘은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이 절망스러운 사태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포기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나타나엘이 무슨 짓을 하든 이 감방에서 더 많은 정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나타나엘은 침대 위에서 한참을 눈을 감고 앉아 있다가 퍼뜩 무언가가 떠오르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절차.” 유레카를 외치듯이 내뱉어진 그 단어에 간수는 나타나엘쪽으로 고개를 향했다. “당신은 분명 내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구속되었다고 말했소.” “그건 사실이오.” “그런데 나는 그 제복 입은 사람들이 내 방에 들이닥칠 때까지 나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소송이나 기소가 이루어졌다는 정보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소.” 그러자 간수는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내가 맞춰보지. 당신은 그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한 일이 없으니 자신과 무관한 일이리라고 주장하려는 거지.” 나타나엘은 동의의 뜻으로 간수의 눈동자를 곧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법률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생각일 뿐이오. 만약 죄인이 자신에 대한 소송절차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죄인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는 것과 같소. 그런데 인간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는 짐승이라 피고인이 소송에 참가한다는 것은 법관들이나 혹은 사법체계 자체에 대해서 죄인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뜻이오. 고등법원의 법관들이 수호하고 있는 사법체계란 그야말로 절대 손상시킬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기에, 죄인이 거짓말로서 사법체계를 모독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시켜야 하오. 그래서 누군가에 의한 기소가 이루어지고 나면 법은 피고인을 완전히 방치하고, 또 사법체계에 접근할 기회를 온전히 차단시킨 뒤에야 일을 시작하지. 내 생각에 당신이 체포되기 이미 수 달 전부터 법률가와 조사원들이 당신 주변을 온통 뒤지고 다녔을 거요. 단 당신이 절대로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틀림없이 당신이 죄를 지었다는 증거가 확정되면 그때 요원들을 보내 당신을 체포하는 거지.” 나타나엘은 간수가 그렇게 즐거워하며 길게 말을 늘어놓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는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사법체계라는 것이 그토록 완전무결하며 성스럽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타나엘은 반발심이 들기도 하고 화가 나서 내뱉었다. “그렇다면 내게는 변론의 기회 따위는 전혀 없는 거요?” “법은 실수를 하지 않소.” 간수는 그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타나엘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입을 다물고 감방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철창 안의 짐승 같군!> 나타나엘은 열을 내며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간수의 말대로 법이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타나엘의 삶에서 중대한 범죄행위를 찾아냈다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러나 아무도 해답해줄 사람이 없었다! 당장 저 간수부터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일이 무얼 위해 행해지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고위법관들을 포함하여 법원이라는 기관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실정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끔찍한 생각이 한 가지 떠올랐는데, 만일 사법기관의 일꾼들이 자신들은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실수를 해버린다면, 정말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변호의 기회도 갖지 못하고 감금 당해버릴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타나엘이 지금 감방에 있는 것도 사실은 나타나엘과 동명이인인 어떤 자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서류상의 실수로 나타나엘이 그 동명이인의 범죄자와 혼동되어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동명이인이 뒷골목의 폭력배든 마을 공장의 통장이든 일단 나타나엘의 이름이 적힌 서류에 직인이 찍히고 나면 법관이라는 족속들은 사실을 확인하기는커녕 나타나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다시 조사해볼 의지조차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나타나엘은 자기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절대로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이 이쯤 이르렀을 때 나타나엘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간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요?” 그러자 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난 더 이상 아는 게 없소. 난 그저 당신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간수일 뿐이오.”
나타나엘은 계속 의미 없이 반복되기만 하는 대화에 지쳐버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는 높이 난 창을 바라보았는데, 회색의 거무죽죽한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어 그것이 하늘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았고 구름은 납빛으로 낮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문뜩 나타나엘은 일상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생각이 미쳤는데, 아마 지금쯤 그들은 나타나엘의 행방에 대해 알 수가 없어 당황하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법원에서 그들에게 통보를 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간수의 말을 들어도 이 사법체계의 형태를 대충 상상해보아도 법원이 나타나엘의 지인들에게 상황을 통보했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그저 도도하고 자신들은 신성한 법을 모신다는 자만에 부풀어 사소하지만 사실은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도 전연 관심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 일인가. 모르긴 몰라도 직장에 전화도 할 수 없는 지금 나타나엘은 이미 사직처리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호운이 와 나타나엘이 감방에서 벗어나 다시 사회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직위와 재물은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타나엘은 사회에서 사라져버린 사람이나 다름없었고,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이 감방을 벗어나는 것이나 자신이 왜 구속되었는지, 법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생각하였듯 나타나엘은 이미 갇힌 짐승처럼 잉여의 존재가 되어 무슨 처벌이 내려지든, 설령 갑자기 나타나엘 자신이 사라져버리든 아무 중요성도 가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타나엘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런 일은 언제나 닥쳐올 수 있는 것이었어. 게다가 모든 이들에게!” 간수는 나타나엘의 말소리를 듣고 곁눈으로 그를 보더니 다시 정자세로 뒤돌아섰다.
며칠 밤인가가 지났다. 이제 나타나엘은 자신이 지내는 감방에 대해서도 별 불만을 갖지 않게 되었다. 감방에 있으나 거리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며칠간 나타나엘의 머릿속을 꽉 채워버린 것이었다. 침대에 사는 빈대와 벼룩 때문에 나타나엘의 몸은 온통 울긋불긋해졌지만 나타나엘은 그런 사실에도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타나엘은 더 이상 간수와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하지도 않았고, 매일 매일이 날짜나 밤낮의 경계도 없이 혼탁하게 되어 시간이 흐르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나타나엘이 실상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분명 무언가에 골몰하여 있기는 했다. 다만 그것을 생각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사색 따위와 닮은 것이기나 한지도 애매한 일이었다. 그는 그냥 가끔 감방의 시멘트벽을 만져보거나 철창의 금속성 냉기를 느끼며 한없이 무언가에 골몰해있었다. 나타나엘은 분명 창밖을 자주 내다볼 수도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고의로 그런 짓을 꺼리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갈색 제복을 입고 낮은 모자를 쓴 남자가 나타나엘의 감방 앞에 나타났다. 그는 무관심한 눈으로 나타나엘을 슥 쳐다보더니 간수에게로 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이었다. 간수는 직립한 자세로 남자의 말을 들으며 단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고 몇 번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제복의 남자는 금세 떠났고, 나타나엘이 의문의 눈빛으로 간수를 쳐다보자 간수는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별 거 아니오. 그저 당신에 대한 절차가 더 진행됐을 뿐이오.” 나타나엘은 대답을 듣고도 초점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간수 쪽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패배조차도 그다지 패배라고 단언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밤 나타나엘은 침대에 앉아 있다가 돌연 내뱉었다. 나타나엘은 자신이 태어난 이래의 일들을 쭉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 말하자면 나타나엘이 간수에게 토로했듯이 건실한 직장인에 사회의 구성인물이고 존경받을만한 국민이라고 스스로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고 뒤집어보며 사고해보았다. 그런데 뭐가 어찌 되었든 나타나엘은 지금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말미암아 감방에 갇힌 채 어느 누구도 모를 결과를 마냥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타나엘은 운명이라는 것이 잔혹한가에 대해서 자문했다. 그러나 그 말 자체가 다소 이상한 것이었다. 운명은 잔혹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운명은 그저 운명이었고 그것은 자신의 본성대로 별 다른 법칙성도 없이 굴러다니는 것이었다. 나타나엘은 자신이 그것을 반항의 묵시하는 눈동자로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몇 가지 참담한 이유로 인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참담한 이유라는 것도 자신이 수인이라는 입장에서 보자 애당초 참담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 “많은 일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일어나곤 하지.” 나타나엘은 침대에 누운 채 중얼댔다.
어느 새벽 나타나엘이 깊은 잠에 들어있을 때, 간수가 나타나엘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 때문에 나타나엘은 눈을 뜨고 일어났는데, 워낙 감옥의 조명이 어둡고 게다가 막 일어난 참이라 흐린 시야 안에 간수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가 보이는 것이었다. 새로 나타난 두 남자는 얼마 전 찾아왔던 갈색 제복의 남자와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제 침대 위에 앉아있는 나타나엘을 쳐다보고 있었고, 간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보시오. 이 분들이 왔다는 건 당신의 법무절차가 거의 끝나간다는 증거요.” “그것은 기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군.” 나타나엘은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다. 간수는 허리춤에 찬 열쇠꾸러미를 꺼내더니 감방의 문을 열었다. 나타나엘은 그대로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제복차림의 남자 둘이 감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타나엘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한 남자가 나타나엘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당신은 신성한 법의 일부가 되었으니 당신에게 참 잘 된 일이요.” 나타나엘은 그 말을 듣고 그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들은 나타나엘의 양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처음 나타나엘이 그의 집에서 체포되었을 때처럼 가죽부대를 머리에 씌웠다. “걸으시오.” 누군가가 말했고, 나타나엘은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두 남자가 나타나엘의 양팔을 잡아주며 방향을 제시했다. “좀 걸어야 할 거요.” 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걸었다. 나타나엘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도 몰랐고, 무얼 위해 가는 지도 몰랐고, 지금 나타나엘이 밖에 있는지 감옥 안에 있는 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연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타나엘은 그저 자기 발걸음에 집중하며 한 발짝 한 발짝을 떼는 그 구두밑창의 감촉을 신선한 샘물을 마시듯이 즐기고 있었다. 또 한참을 걷자, 나타나엘은 자신이 눈동자를 최대한 아래로 하면 가죽부대의 뚫린 방향으로 자신의 구두와 길바닥을 한정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초록색 일직선 위를 걷고 있었다. 나타나엘은 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그러나 이제 그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기색은 없었고, 그저 근거를 알 수 없는 웃음만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걷고 나자 세 사람은 동시에 멈췄다. 그리고 제복의 남자가 나타나엘의 머리에서 가죽부대를 벗겼는데, 나타나엘은 자신이 아주 어둡고 동시에 이상한 흰빛의 조명으로 비춰지는 방 안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 방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어두운 흰빛 속에서 교수대 하나가 고고하게, 마치 오래 전에 죽어 뼈만 남은 태곳적 신神의 시체처럼 경건하게 서 있었다.
K는 대지의 끝에 산다. 직각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세운 흙집이 그의 집이다. K는 집을 지을 때부터 언젠가 풍랑이 이 절벽을 더 가파르게 깎는다면 그 집이 절벽 채로 바다로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인지가 사실 그가 절벽 위에 집을 세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덕분에 그 집은 이 세상 그 어느 건물보다도 세계의 끝에 가까운 집이 되었다. 창문을 열면 아래로는 자잘한 암초들이 보이고 그 위로는 오로지 바람에 쓸리는 물결과 한도 끝도 없이 뻗은 수평선만이 보인다. K는 지난겨울을 그 집에서 보냈다. 지형의 극단성 때문인지 그 바닷가의 기후 역시 날카롭게 벼린 칼날 같았다. K는 지난겨울을 마당에서 장작을 들여올 때를 빼면 단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고 보냈다. 절벽 위의 겨울은 단 십 분이라도 밖에 나가있는 다면 그대로 얼어붙어 인간 모양의 동상銅像이 될 정도로 혹독하게 추웠다. 지난여름과 가을 쉬지 않고 장작을 패놓은 것이 그를 살린 것이다. 여하간 집안에 비축해두었던 식량이 바닥날 무렵 겨울은 끝났고 수평선 저쪽에서부터 봄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얼음과 눈은 녹아가기 시작했고 절벽 밑에 부딪히는 파도의 소리도 어째서인지 다소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겨울에는 파도가 마치 톱이 되어 절벽을 썰어내려는 듯한 소리만이 들려왔던 것이다. 봄이 시작되자 K는 집의 현관문과 창문을 전부 열어젖혔다. 새로 돋기 시작하는 새싹의 냄새와 바다의 소금냄새가 뒤섞여 그의 흙집 안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활기찬 생명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러나 K는 그러한 생명을 받아들이고자 모든 창문을 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알기 위해서 집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었다.
이제 모든 이들의, 영혼의 머릿결이 바람에 나부끼는 방랑의 계절이 온 것을 K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K에게는 이제 별 의미가 없는 계절이었다. 그도 한때는 겨울이 저물고 생명의 환희가 너울거리는 철이 오면 가죽구두의 끈을 단단히 매고 봇짐도 없이 무작정 어딘가로 발걸음을 향하는 인간이었으나, 어느 땐가 K는 자신이 더 이상 방랑자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고, 그래서 긴 여행 끝에 절벽 위에 흙집을 지었다. 실제로도 그는 꽤나 나이가 들었던 것이다. 무덤 속에 있는 것 같은 안락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의자 정도는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편안한 것이어서는 안 됐고, 100년이고 200년이고 우뚝 서있을 기둥 위에 얹어진 기와 아래에 있는 것이라면 더욱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30년이면 풍랑에 쓸려나갈 절벽 위에 따개비 같은 흙집을 지었던 것이다. 아무튼 K의 피가 더는 방랑자일 수 없든 어쩌든 바람 부는 계절은 왔고, 그는 이제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사방에 나타나 이 대지의 끝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K는 바다 쪽으로 열린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년 여름보다 절벽이 훨씬 가팔라져 있었다. 그는 벽난로 위에서 겨울 내내 잠들어있던 목이 긴 부츠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 집안에 남은 식량의 개수를 세어보고, 지난겨울동안 얼어붙어 쓸모가 없었던 우물을 퍼 올려보았다. K는 창고 구석에서 배낭을 꺼내 메고 부엌의 커피테이블 위에 있는, 동전과 지폐들이 마구잡이로 담겨있는 물결 모양의 사기그릇에서 돈을 꺼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현관 문턱을 넘기 전 그는 잠깐 멈춰서 자신의 수염을 더듬어보았다. 한 철 내내 건드리지 않아 분명 엉망으로 자라있을 것이지만, 면도칼은 가지고 있어도 K의 흙집 그 어디에도 거울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수염 다듬는 것을 포기하고 현관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해안과 정대면 하는 곳에 우거진 녹음이 보였고 그 사이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K가 수년 간 밟고 다녀 생긴 길이 있었다. K는 마구잡이로 자란 풀잎들과 흙, 자갈 따위를 밟으며 저벅저벅 그 길을 걸었다. K가 가려하는 시장이 있는 작은 마을까지는 약 하루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그의 배낭에는 대충 두 끼에 해당하는 삶은 콩과 물, 그리고 약간의 꿀이 들어있었다.
아직 선선한 봄 공기 속을 세 시간인가 걷고 있자 풀숲 한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K가 멈춰 서서 그쪽을 돌아보자 무슨 사람 목소리인가가 들리는 것이었다. 잠깐 기다리자 높게 자란 풀숲 속에서 낡은 외투를 입고 밝은 색의 머리칼을 짧게 깎은, 꼬챙이처럼 마른 젊은이가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군.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다짜고짜 실례입니다만 저는 이 땅의 끝에 은거하고 있는 현자가 있다는 소문에 여기까지 온 사람입니다, 혹시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소문으로 그는 짜라투스트라의 제자이며 120년이 넘게 살았다고 하더군요!” K는 입을 다문 채 그 젊은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눈동자는 생기발랄하여 거의 거만함까지 담고 있는 듯 했으며 큰 키와 마른 체구 덕에 안 그래도 너절한 옷차림이 더욱 낡아보였다. 그가 신고 있는 붉은색 가죽구두는 이슬에 젖고 끊어진 잡초들이 여기저기 붙어있었으며 K 쪽으로 내밀어진 손은 낡은 옷차림과는 달리 하얗고 고와 험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모르겠소. 나는 이곳에 꽤 오래 살았는데 현자 같은 것은 본 일이 없습니다.” K가 말했다. “하지만 땅의 끝이라면 그다지 멀지 않지. 세 시간만 내 반대편으로 걷는다면 바다가 나올 겁니다.” 젊은이는 다소 좌절한 표정을 짓더니 K가 걸어온 오솔길을 멀리 바라보았다. “하기야 모두가 그가 사는 곳을 안다면 그건 은거라고 할 수 없겠죠. 아무튼 감사합니다. 어서 가서 해변을 전부 뒤져봐야겠군요. 꼭 만나야만 하는 일이 있거든요.” 젊은이의 말에 K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기 시작했다. 등 뒤편으로 거의 뛰다시피 하는 조급한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계속 길을 걷던 K는 우연히 길 한쪽에 난 자두나무를 발견했다. 아직 초봄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딱 한 알의 자두가 농익은 채 가지에 매달려있었다. K는 신기하게 생각하며 까치발을 하고 그것을 따 한참을 관찰했다. 썩지도 덜 익지도 않은 먹기 아주 좋게 익은 튼튼한 자두열매였다. K는 그것을 옷자락으로 닦아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싱그러운 산미가 입안에 가득 퍼졌고 과육을 삼키자 지금까지 걸어오느라 쌓인 피로가 단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K는 입안에 남은 씨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자두나무의 건너편 길가에 주머니칼로 구멍을 파, 쥐고 있던 씨를 넣고 흙으로 묻었다. <이렇게 해서 이곳에 두 그루의 자두나무가 생기게 된다면 좋겠군.> K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해가 질 때까지 걸었으나 아직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K는 오늘은 노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배낭에서 램프와 먹을 것을 꺼내고 길가의 나무에 기대앉았다. 기름램프를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채 삶은 콩을 먹고 있는데 마을로 가는 방향에서 희미한 불빛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불빛은 점점 다가오면서 두 개로 나뉘고 더 밝아졌는데, 충분히 가까워지자 K는 그것이 각각 램프를 든 두 명의 신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 색에 남색이 섞인 제복 차림이었고 키가 높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둘 다 허리춤에 권총집에 넣어놓은 권총을 차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건장했으나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고 뚱뚱했다. 그들은 K에게 다가와서 한참 삶은 콩을 먹고 있는 그를 보더니 서로 무슨 말인가를 눈짓으로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건장한 쪽의 신사가 K에게 말했다. “노인장, 어디서 오는 길이오?” “바다 쪽에서 왔습니다만.” K는 여전히 콩을 우물거리며 앉은 채로 대답했다. “혹시 당신 이름이 프리드리히 K요?” “아니요, 그게 누굽니까?” 이제 K는 한 끼 분량의 콩을 다 먹고 배낭에서 꿀을 담은 병을 꺼내고 있었다. “반체제분자요. 그가 잠적하기 전에 발표한 출판물로 인해 선동된 대학생들이 몇 년째 전국에서 총통각하에 대한 반정부운동을 벌이고 있소.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그 자를 체포해 수도까지 압송하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내려졌소.” “그거 큰일이군요.” K는 병의 뚜껑을 열어 꿀을 딱 한 숟갈 떠먹은 뒤에 병을 다시 잠그며 말했다. “그럼 큰일이지. 우리는 반년 간의 조사 끝에 그 사상범이 당신이 온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어.” 뚱뚱한 남자가 키들거리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지만 난 프리드리히 K라는 사람을 만나본 일이 없습니다. 꽤나 오래 바닷가에서 살았는데 그런 유별난 사람을 본 일이 없으니 이상한 일이군요.” K는 꿀통을 다시 배낭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신사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걸어 몹시 피곤합니다. 식사를 끝내고 이 나무 옆에서 자려던 참이었어요. 바다라면 이 오솔길로 내일 아침까지 걷는다면 나올 겁니다.” “피곤하다는데 미안하지만 하나만 더 물읍시다. 당신이 사는 바닷가에는 얼마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소?” “내 경험에 따르면 나밖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K는 이미 나무에 기대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이상한 일이군.” 건장한 남자가 뚱뚱한 쪽에게 얼굴을 향하며 중얼거렸다. “정보 자체가 잘못 됐는지도 모르지. 여하간 여기까지 왔으니 우린 그 해변지역을 수색할 의무가 있어.” 뚱뚱한 남자가 재빠른 어투로 단정했다. “휴식 중에 실례했소, 노인장. 마을은 그리 멀지 않으니 내일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잘 수 있을 거요.” 건장한 남자가 이미 램프를 흔들고 걷기 시작하며 말했다. K는 알았다는 듯이 눈을 감은 채 그들에게 한 손을 들어보였다. 두 개의 발소리가 규칙적인 소음을 내며 멀어지는 가운데 뚱뚱한 남자의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말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길이 너무 좁아 사람조차 다니기 힘드니!”
새벽 빛살에 눈을 뜨자 K가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뱀 한 마리였다. 녀석은 누워있는 K의 배 위에 똬리를 틀고 목을 바짝 세운 채 K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K가 아직 덜 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뱀은 두 가닥으로 갈린 혀를 날름거리며 대답이라도 하는 듯 쉭쉭거리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자 녀석은 머리가 각진 것이 독사였다. 혀를 날름거릴 때마다 푸른 빛깔이 도는 독니가 얼핏 보이는 것 같았다. “내려가 주겠니? 난 이제 일어나야 한다.” 독사는 여전히 혀를 날름거리며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가 싶더니 재빨리 K의 몸에서 내려와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K는 뱀이 사라진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더니 느린 몸동작으로 배낭에서 삶은 콩 한 줌을 꺼냈다. 어젯밤과 똑같이 한 줌의 콩과 한 스푼의 꿀을 먹은 뒤 K는 수통에 챙겨온 물로 식도를 씻어냈다. 그리고 그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얼굴을 누르듯이 닦고 밤새 이슬이 묻은 옷자락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기지개를 켠 뒤 K는 바닥에서 젖고 있던 배낭을 들어 메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을에 거의 다 와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무와 풀들의 간격이 점점 줄어들었고 공기 중에서는 은근히 사람의 살 냄새와 연기 냄새, 오물 냄새 따위가 섞여왔다. 너무 오랜만에 맡는 마을 냄새라 조금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어쩐지 몸에 활기가 돌아 K는 배낭을 다시 한 번 들쳐 멨다. 그때 마을 방향에서 젊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린, 이제 막 성년이 됐을까 말까할 앳된 얼굴의 청년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K 영감님! 빌렘 K 영감님!” K는 멈춰 서서 그 청년이 충분히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달려오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지난 늦가을에 본 기억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는 마을에 사는 목수의 도제로, 스승의 명령으로 K의 집 주변에 있는 커다란 단풍나무를 베어갔었다. 그러나 하필 그 단풍나무가 심어져있던 곳이 K가 집을 짓기 위해 매입한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면적의 땅이었기 때문에 목수가 나무 값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처음 목수가 찾아왔을 때 K는 애당초 그 나무는 내 것이 아니고 돈 따위에는 관심도 없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했지만, 목수는 값도 치루지 않고 목재를 가져갈 수는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돌이켜보자면 <빌렘 K씨. 내가 만든 목제 가구 따위를 팔아먹고 산다는 점에서 본다면 나도 한낱 장사치요. 그런데 장사치한테도 상도商道라는 게 있거든. 게다가 나는 장사치일 뿐만 아니라 장인이기도 하오. 물론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럭저럭 알고 있소. 우리가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이 집을 지을 때도 우리 가게에서 몇몇 상품들을 사갔지 않소? 그래서 나는 빌렘 K라는 양반이 돈이나 물질 따위에 별 관심이 없고 다소 지나칠 정도로 소박한 인간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는 바요. 하지만 나도 좋은 목재를 가져가면서 주인이 그저 준다고 입 싹 닦고 좋아라고 가져가는 그런 인간은 아니라는 말이지. 물건이란 뭐든지 다 자기 고유한 값어치를 갖고 있다는 말이오. 게다가 저 단풍나무는 둥치가 꽉 찬 것이 아주 질이 좋은 물건이 될 수 있소. 그러니 나는 저것을 돈을 주고 사가겠다는 말이오.> 하며 굉장한 장광설을 늘어놓았었다. 일이 그렇게까지 되자 K는 사실 그 장황한 이야기와 복잡해진 상황 때문에 진이 빠져 차라리 돈을 받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 목수가 K에게 얼마를 원하느냐며 K가 가격을 정해주기까지 바라는 것이었다. K가 자신은 나무의 질이나 정당한 가격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며 그다지 관심도 없기에 그저 동화 한 닢을 줘도 상관없으니 제발 알아서 하라고 지친 목소리로 얘기하자 목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우선 저 단풍나무를 베어가 확인한 뒤 정확히 정당한 액수를 내 제자 편에 보내겠소. 빌렘 K씨! 당신은 정말 욕심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사람이로군요!>
그러고서 한 철이 지나버린 것이다. 물론 K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아마도 이번 겨울이 너무 혹독해 도무지 말도 타지 않고서는 K의 해안절벽까지 걸어서 올 수 없는 탓이려니 했었다. 그런데 이제 마을 어귀에서 목수의 도제를 보자 그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K는 청년이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K 영감님! 마침 마을에 오시는 길이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솔직히 그 해안절벽까지 하루를 꼬박 걸어야하나 고민하던 참이었어요.” 청년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자네 수고를 덜어주게 됐다니 기쁘군.” K가 수염 때문에 잘 파악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웃으면서 두꺼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지난겨울엔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어서요! 스승님께서 좋은 나무를 팔아주어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K는 오른손으로 배낭끈을 잡은 채 그 봉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단풍나무 값입니다.” 청년은 받으라고 재촉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제야 K는 그 두터운 봉투를 집어 아무렇게나 배낭 안에 넣어버리는 것이었다. “고맙네.” 실상 별로 고마운 말투는 아니었다. K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왜 그 단풍나무의 값을 받아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감님께서 마을로 오신 덕분에 제 임무가 예상 외로 이렇게 빨리 끝나버렸군요. 공방에 들르시겠습니까? 스승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청년은 이미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다 마쳤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좋겠군. 자네가 타준 커피가 맛이 좋았던 것을 기억하네. 그런데 나는 마을에 도착하면 우선 들러야 할 곳이 몇 군데 있어. 내가 저녁에 공방에 들러도 되겠나?” K가 벌써 마을을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저녁이라면 손님도 없어 더 한산할 겁니다. 제가 스승님께 말씀드려두죠.” 그리고 별 의미 없는 잡담을 하는 사이―사실상 주로 떠드는 것은 청년이었고 K는 보일 듯 말 듯 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였다― 그들은 앙상한 포도나무 밭을 지나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사실 입구라고 할 만한 현판이나 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냄새가 점점 강해지더니 어느 순간 K는 자신이 온전히 마을 안에 들어온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시골마을이었지만 그래도 마을은 마을인지라 인간의 군집이 만들어내는 느릿느릿한 혼탁이 마을 전체를 흐르고 있었다. 이제는 도대체 누굴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알아볼 수도 없는, 마을광장 중앙의 낡고 초라한 청동상 앞에 도착하자 청년은 K에게 인사를 하고 목수의 공방 쪽으로 달려갔다. K는 청년이 떠난 뒤에도 몇 바퀴인가를 청동상 주변을 돌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풀 한 포기 피어있지 않은 광장에서 이따금씩 휘몰아치는 흙먼지 섞인 소용돌이를 바라보곤 했다.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곳에선 모두가 가난했다. 당장 길가는 사람들의 표정만 보더라도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그을린 얼굴과 거푸집에 넣은 쇳물로 만든 것 같이 단단한 주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을 전체가 가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K는 그런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절벽 위 흙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이러한 마을이라는 것에 K는 다소 만족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가난한 만큼 속되지만 그 속됨 역시 가난한 것이었다. 너무 큰 상상력이나 야망을 가진 인간들은 이곳에 살지 않았다. 우연히 이 마을에 태어나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결국엔 떠나버리곤 했다. K는 광장 한구석에 흙빛으로 망가진 채 버려져있는 나무술통을 쳐다보다가 배낭을 다시 들쳐 메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식료품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나무로 벽을 지은 낡은 식료품점 앞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분명 너무 이른 아침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K는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에 달아놓은 종이 딸랑거리며 울리자, 계산대 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점주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K를 보고 눈이 둥그레지더니 일어서는 것이었다. “에르윈 K씨! 건강하셨군요!” “오랜만일세, 오토.” K가 인사하자 오토라는 사내는 환영한다는 듯이 두 팔을 벌리며 거창하게 웃는 것이었다. “겨울 내내 보이시질 않아 어디로 떠나셨거나 아니면 얼어 죽으신 게 아닌가했습니다!” “지난겨울이 어지간히 추웠어야지. 가을에 모아놓은 음식과 장작으로 벽난로 앞에만 붙어있었네.” 오토는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만족이라는 듯 또 한 번 거하게 웃었다. “식료품을 좀 주문하러 왔네. 내일 아침까지 쥐엄나무 콩 한 말과 꿀 큰 병 하나를 준비해줄 수 있겠나?” “매번 같은 것만 찾으시는군요. 에르윈 씨는 일 년 내내 사순절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오토는 자신의 농담이 재미있다는 듯 다시 웃었고 K도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렇지는 않아. 집에 약용으로 둔 슈닙스Schnaps가 다 떨어져서 술가게에도 가봐야 한다네.” 오토는 웃음이 많은 사람답게 말이 끝나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쥐엄나무 콩과 꿀은 내일 아침까지 포장해놓겠습니다. 그런데 매번 여쭙는 겁니다만, 연세도 있으신데 어떻게 콩 한 말을 지고 집까지 하루를 걸려 걸으십니까? 돈이 좀 들어도 짐꾼을 고용하시죠.” 이번에는 K가 덥수룩한 수염 사이로 웃었다. “됐네. 기왕 쓰라고 있는 몸 죽기 전까지 다 써야지.” 그러고서도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오토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에르윈 씨, 요새 신문은 좀 보셨습니까?” “아니, 내 집까지는 집배원이 오지 않네.” “아무래도 곧 전쟁이 터질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정부가 아주 호전적이 됐어요. 좀 배웠다는 대학생들이 반전운동을 하고 있다지만 별로 의미 있어보이지는 않더군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이 깡촌까지 정부요원 둘이 말을 타고 왔었습니다.” “그런가?” K가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배낭에서 돈 봉투를 꺼내며 물었다. “그들이 에르윈 씨가 사는 해안절벽에 대해 묻더군요. 혹시 거기에 프리드리히 K라는 사람이 산다는 얘기를 들었느냐고요. 그래서 나는 그쪽 땅에는 에르윈 K라는 영감 한 분만 살지 프리드리히라는 사람이 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습죠.” “아마도 그 정부요원이라는 사람들은 나도 만나본 것 같네.” K는 돈 봉투에서 지폐를 꺼내며 중얼거렸다. “얼마인가?” “아이고, 돈은 아침에 가져가실 때 내셔도 됩니다.” “돈 들고 다니기 싫어서 그러니까 그냥 받으시게.” 그러자 오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콩과 꿀 값을 받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에르윈 씨.” K는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왔다.
그는 이제 시장가에 있는 술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광장주변보다 더욱 오물과 썩은 양배추 냄새가 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K는 도망치듯이 발걸음을 빨리하며 몇 번인가 슈닙스를 사러 간 적이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프리츠 어르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서있던 여주인이 인사를 걸어왔다. 여주인은 키가 작았으나 몸집이 다소 크고 늘 웃는 낯인 중년 여자였다. “안녕하시오, 오랜만에 뵙는구려.” “네, 겨울 내내 못 뵀던 것 같네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슈닙스 한 병 주시오. 약 먹는 겸 하며 마시던 게 다 떨어졌소.” K는 호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진열장에서 검은 술병을 하나 꺼내며 말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화주로 건강관리하시는 모양이죠.” “사람이 건강하려면 생각을 좀 쉬어야할 때도 있고…… 아, 그러고 보니 광장 주변 사는 크라우스 목수가 즐겨 마시는 게 무언지 혹시 아시오?” “크라우스 씨는 매일 저녁마다 도제 분을 보내 아펠바인Apfelwein을 한 병씩 사세요.” “그 양반도 일이 힘드니 술에 기대는 모양이군. 아펠바인도 한 병 주시오. 저녁 때 공방에 들리기로 했으니.” K의 말에 여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주 병을 꺼냈다. K는 술 두 병의 값을 치루고 남은 돈을 호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남편 분은 잘 지내시오?” “말도 마세요. 요새 그 양반 신문에서 뭘 읽었는지 장사는 집어치우고 매일 맥주홀에서 무슨 노동당 연설에만 빠져있어요.” “나는 신문을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나라가 꽤 소란한 것 같더군.” “소란하기야 소란하지요. 그러나 저 같은 시골 아줌마가 뭘 알겠어요?” 그러면서 여주인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자 K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K는 여주인에게 잘 있으라며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 뒤로도 K는 잡화상과 철물점, 커피원두가게 따위를 돌아다니며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사 배낭에 구겨 넣었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점원이나 점주들이 K를 알고 있었으나, 모두가 다른 이름으로 K를 불렀다. 그들이 공통되게 알고 있는 것은 K의 성이 K이며 꽤 멀리 떨어진 해안절벽에 홀로 사는 늙은이라는 것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K를 알고 있다 한들 모두가 이름을 다르게 알고 있다면 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그들은 절대 K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예를 들자면: <오늘 스벤 K 영감님을 만났는데……> <스벤 K가 누군데?> <왜 그 알지 않나. 해안절벽에 혼자 사는 영감님 말이야.> <그 노인 이름은 하인리히 K 아니던가?> <아니, 스벤 K 영감님 말일세. 하인리히 K는 또 누군가?> <나는 스벤 K라는 사람은 몰라. 아무래도 자네와 나는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군.> <그 해안가에 스벤 영감님 말고 다른 사람도 살고 있었던가?> <내가 알기로는 하인리히 K라는 사람도 분명히 살고 있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K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애당초 그는 아주 가끔만 마을에 들르는 은거하는 늙은이였고, 마을에서 오래 지내거나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갖는 일은 절대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K는 크라우스 목수의 공방으로 향했다. 그에게 유달리 잡담을 즐기는 취미 따위는 없었지만 단풍나무에 대한 돈을 받은 것을 포함해서 몇 가지 감정들이 목수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이미 도제에게 저녁에 들르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그대로 돌아가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K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공방의 현관 위에 달린 전구는 벌써부터 불이 켜져 있었다. K가 세 번 문을 두드리자 도제인 청년이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도 되겠는가?” K가 물었다. “물론이죠, 스승님께서도 마침 일을 마치셨습니다.” K는 청년과 함께 공방 안으로 들어가, 가게를 겸하고 있는 공간을 지나 목수의 집에 해당하는 건물의 거실로 들어갔다. 마침 크라우스 목수는 소파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건장하며 잔 근육이 두드러진 피부는 검게 탔고, 새까만 턱수염이 인상적인 중년남자였다. K가 들어오자 목수는 벌떡 일어나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빌렘 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건강해보이시는군요.” “잘 지내셨소, 크라우스 씨.” “여기 소파에 앉으시지요. 저는 맞은편 의자에 앉겠습니다.” “그런 것보다, 내가 챙겨온 게 좀 있소.” 그러면서 K는 배낭을 뒤져 아펠바인을 한 병 꺼냈다. 그러자 목수는 큰 목청으로 껄껄 웃는 것이었다. “내가 그걸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아셨지?” “슈닙스를 사러 술가게에 들른 참에 여주인께 물었소.” “아무튼 감사합니다. 내 찬장에도 아펠바인이 한 병 더 있는데, 두 병이면 서로 충분하겠죠?” 그 말에 K는 옆에 서있던 청년을 잠깐 보았는데, 청년은 자신은 안 마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살며시 웃는 것이었다. “나는 몇 잔이면 족하오. 술을 마시는 건 즐기지만 취하는 건 즐기지 않으니.” K는 그렇게 말하며 아펠바인을 탁자에 놓고 소파에 앉았다. “요한! 유리잔을 두 개 가져와라.” 목수가 도제에게 명령하자 그는 부엌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목수는 소파 맞은편의 나무의자에 앉더니 대뜸 말하는 것이었다. “보내드린 단풍나무 값이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봉투는 감사히 잘 받았소. 그러나 난 목재의 값어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전에도 얘기했듯 동화 한 전이라도 충분했을 거요.” “아니요, 그 나무는 속이 꽉 찬데다가 단단한 것이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한 철 동안 수분을 말리고 가공하여 아주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소. 마음 같아서는 값을 더……” “돈 얘기는 그만 둡시다. 미안하지만 난 그런 주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K가 말을 끊자 마침 요한이 유리로 된 커다란 잔을 두 개 갖고 들어왔다.
목수는 K가 사온 아펠바인의 마개를 따서 K와 자신의 잔을 가득 채웠다. “건배하시겠습니까?” “당신과 당신의 충실한 제자 요한 군을 위하여.” K가 읊조리듯 말하자 목수는 크게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K는 가볍게 한 모금을 마셨는데 목수를 보자 그는 그 커다란 잔을 단번에 반이나 비우고 탕 하는 소리를 내며 탁자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저녁에 한 잔 하지 않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서요.” 목수는 변명하듯이 말하며 웃었다. “썩 좋지는 않은 습관이오. 목수 일이 여간 힘들리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야 그렇기는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몇 가지 나눴고 가끔 구석자리에 앉은 요한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K가 한 잔을 비우는 동안 목수는 두 잔을 비웠고, 술병이 비어갈수록 크라우스 목수는 점점 흥이 나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결국 K가 네 잔을 마실 동안 목수는 찬장에 있던 다른 한 병의 아펠바인까지 꺼내 두 병을 다 비워버렸다. “마을에 살지는 않으시지만 빌렘 씨 같이 현명한 분이 같은 땅에 산다는 것이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 복입니다.” 목수가 얼큰히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K는 딱히 무어라 하지 않고 친절하게 웃기만 했다. “그런데 요새 정세가 영 이상합니다. 저 같이 무식한 목수 놈이 뭘 알겠느냐만 이 구석진 시골 동네에 있는 맥주홀에서까지 허튼 소리를 하는 작자들이 점점 늘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무슨 허튼 소리를 하던가요?”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처럼 까만 머리에 까만 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국민도 아니며 고로 국외로 추방해야한다는 미친 소리 따위가 오고간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며 크라우스 목수는 분노와 당혹이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하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게다가 신문에는 온통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 같은 기사 일색입니다.” “듣자하니 술가게 여주인의 남편이 매일 맥주홀에 가서 무슨 노동당의 연설에 빠져있다고 하던데.” “그 친구도 멀쩡하던 인간이 사람을 버려버렸어요! 물론 그렇다고 내가 총통각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싫어하거나 좋아하기엔 너무 멀리 있는 사람이죠.” “과연 그렇습니다.” 목수는 K의 말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얼추 끝나갈 무렵 바깥은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이만 일어나야겠소. 시간이 꽤 늦었구려.” “가시려고요? 제 집에 빈방이 있습니다. 침대도 마련되어있으니 주무시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소. 게다가 안락한 잠자리와는 영 친하지 않은 몸이라서 말이오. 잘 곳은 이미 정해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오.” “빌렘 씨가 어떤 분인지는 저도 대강 아니 강요는 않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퍽 즐거운 술자리였어요.” K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목수와 악수를 나눈 뒤 도제 요한에게도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처럼 열심히만 하면 안 될 일이 없을 걸세.” 그러자 요한은 싱긋 웃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아주 건실한 청년이오.” 목수의 마중을 받으며 K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은 저런 청년들이야말로 나라에 이로운 이들임을 크라우스 씨도 알고 계실 거요.” 목수는 술기운에 힘입어 크게 웃으며 동의했다. 그리고 서로 작별인사를 나눈 뒤 K는 배낭을 멘 채 마을 외곽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K는 마을 외곽에서 마구간이 딸린 어떤 가옥으로 가 현관을 두드렸다. 마구간에는 비싸 보이는 품종의 말이 두 필 묶여있었고 자세히 보니 당나귀도 한 마리가 있었다. 노크 소리에 현관을 연 사람은 마구간 주인이었다. “안녕했는가, 한스.” 한스라고 불린 호리호리하게 생긴 삼십대 남자는 K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K의 손을 잡고 기쁜 듯이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콘라드 K 선생님 아니십니까! 마을에 오셨었군요.” “장을 좀 보고 왔지. 날씨도 풀렸으니 말이야.” “안으로 들어오시죠. 마침 벽난로에 불을 지폈습니다.” “아니 그럴 것 없네. 가능하다면 전처럼 마구간을 좀 빌리고 싶네만.” “또 마구간에서 주무시려고요? 안에 묵으실 수 있는 빈방이 있습니다. 침구도 있고요. 따뜻한 곳에서 주무시고 가시죠.” 한스는 호의가 가득 담긴 얼굴로 권했다. 그러나 K는 크라우스 목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자신은 마구간의 짚더미만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스는 어떻게든 존경하는 콘라드 K 선생님을 편안한 침대에서 머물게 하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기에 별 수 없이 좋으실 대로 마구간을 쓰시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K는 감사를 표하며 한스에게 저녁인사를 건넨 뒤 현관을 닫고 마구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낭을 풀고 짚더미 위에 눕자 두 필의 말과 한 필의 당나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K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너희들도 피곤하겠구나.” K는 혼잣말인지 말들에게 건네는 말인지 알 수 없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짚더미에 눕자마자 마치 기절하듯이 단박에 잠이 드는 것이었다. 네 잔의 아펠바인 덕분에 K의 영혼은 약간 들뜬 상태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말들이 목을 쭉 빼고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 K는 눈을 떴다. 말 한 마리가 짚더미에 누운 K를 말 특유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맑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K는 인사를 하듯이 한참 그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주섬주섬 일어섰다. 그리고 배낭에서 슈닙스를 꺼내 마개를 따고 반 모금을 마셨다. 열기가 뱃속으로 천천히 내려가더니 온몸에 퍼졌다. K는 아침이 온 것을 완전히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점의 졸음도 남지 않은 정신으로 K는 배낭을 메고 마구간 밖으로 나와 옷자락에 묻은 짚들을 털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해가 어디쯤 떴는지 확인하더니 한스네 집의 현관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얼마 뒤 아직 졸린 눈을 한 한스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아, 선생님. 일어나셨습니까.” “마구간 잘 썼네. 말들이 딱 좋은 시간에 깨워주었어. 그리고 이건 얼마 안 되지만 받아두게.” 그러면서 K는 쥐고 있던 지폐 몇 장을 한스에게 내밀었다. “아니,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콘라드 선생님. 집에 방이 있는데도 마구간에서 주무신 걸 생각하면 제가 죄송할 정도인데요.” “어제 시장을 걷다보니 물가가 많이 올랐더군. 많이 정도가 아니지. 빵 한 덩이 가격만 해도 지폐다발이 필요한 상황이던걸. 내가 가진 게 별로 없어 많이는 못 도와주지만 이거라도 받게.” 그러자 한스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지폐들을 내려다보더니 마지못해 받는 것이었다. “사실 요새 모두가 힘들기는 합니다. 게다가 마구간에 있는 것이라곤 당나귀 한 마리뿐이니 돈이 되지도 않고요…… 얼마 전 두 신사분이 마구간 임대료를 내고 말을 두 마리 묶어두고 가서 오랜만에 돈을 좀 만져보기는 했습니다. 아무튼 콘라드 선생님 뜻이 그러시다면 부끄럽지만 받아두도록 하겠습니다.” K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한스와 악수를 하고 마구간을 떠났다.
K는 그대로 식료품점으로 향했다. 가게는 일찍부터 열려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잘 잤나, 오토.” 계산대 뒤에서 앉은 채 졸고 있던 오토가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아, 에르윈 씨, 좋은 아침입니다.” “쥐엄나무 콩 한 말과 꿀을 가지러 왔네.” “미리 준비해놨습니다. 일찍 오셨군요.” 오토는 창고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K는 오토가 물건을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며 배낭을 벗어 바닥에 두고 활짝 열었다. 안에는 커피원두와 슈닙스 한 병, 수통과 꿀이 든 병 등 그 외 잡다한 것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K는 그것들을 배낭 한쪽으로 몰아 꽤 큰 공간을 하나 만들었다. “정말 혼자서 들고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오토가 어깨에 콩 한 말을 지고 나오며 물었다. “매번 그랬는걸.” K는 짧게 대답하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이 안에 좀 넣어주게.” K가 배낭의 입구를 벌리면서 말했다. 오토는 어깨를 숙이면서 콩을 내려 배낭의 공간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배낭 안의 공간이 꽉 찼다. “이걸 메고 꼬박 하루를 걸으시면 등이 휘실까 걱정입니다.” “걱정 말게. 이 몸도 언젠가 못 쓰게 되면 그땐 버리면 되니.” 그 말에 오토는 이상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꿀 말인데요, 좀 특별한 걸 준비해봤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 에르윈 씨는 늘 쥐엄나무 콩과 꿀 밖에 안 드시니 영양소가 부족하실 것 같아서요. 꽤나 고생했지만 석청을 한 병 구해놨습니다.” “그거 고맙군. 그런데 비싸지는 않던가? 어제 주었던 값이 모자랐을 것 같은데.” 그러자 오토는 목청 좋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래 뵈도 장사꾼입니다. 손해 보는 일은 안 합니다.” 그 말에 K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K는 석청이 든 병도 배낭에 넣고 입구를 잠근 뒤 메며 일어섰다. 역시 무겁기는 무거워 발목에 힘을 주어야했다. 걱정하는 소리를 하는 오토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K는 가게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콩 한 말과 술병 따위의 무게에 어깨가 내려앉을 것 같았지만 마을 어귀를 벗어나자마자 일어나서 마셨던 슈닙스 덕분인지 이상하게 몸이 가볍고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미 노인이 된 K의 나이를 생각하면 신기로운 일이었다. 그는 이런 발걸음 속도라면 귀로는 해가 지기 전에 끝나겠노라고 생각했다. 점점 높아지고 있는 태양은 아직 대각선으로 빛을 비추며 나뭇잎과 풀잎들을 건드리고 있었다. 짙은 이슬과 녹음의 냄새가 나고 K의 저벅저벅하는 발소리를 제외하면 새들 지저귀는 소리뿐이었다. 몇 시간인가를 계속 걷자 오솔길 한복판에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는데, 생김세가 익숙한 놈이었다. “안녕, 또 보는구나.” K가 말했다. 독사는 K를 바라보며 쉿쉿거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보게 된 것도 인연이니, 부탁을 하나 하고 싶어. 언젠가 내가 콩 한 말도 짊어지지 못할 정도로 몸이 낡아버리면, 네가 와서 내 발목을 물어주었으면 좋겠다.” K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독사 녀석은 8자를 그리며 머리를 흔들더니 혀를 날름거린 뒤 길섶으로 사라져버렸다.
걷는 동안 정오가 지나고 날씨가 초봄 치고는 무척 따듯해졌다. K는 스스로도 이렇게 성큼성큼 잘 걸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화주가 제대로 몸에 돌았나?> 그는 자문하며 계속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렇게 걷던 와중 K는 자신이 올 때 신기한 자두를 따먹었던 자두나무와 다시 만났는데, 이번에는 역시 계절에 맞게 단 한 알의 열매도 달려있지 않았다. K는 자신이 헛것을 먹었었나 하고 의아해했다. 그러고서는 자두나무의 맞은편을 보았는데, 그곳에는 아주 작게 자두나무의 싹이 돋아있었다. <내가 헛것을 먹은 건 아니었군.> K는 싹을 잠시 바라보며 빙그레 웃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밤이 될 무렵 K는 숲을 벗어나 어둠 속의 절벽과 자신의 집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제 소금냄새가 휘몰아치고 있었고 아득히 깊은 곳에서 그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파도소리가 났다. K의 집은 그가 집을 나올 때와 다름없이 현관과 모든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으며, 그것을 보자 하루 간의 피로가 순식간에 K의 양 어깨와 다리에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K는 빛도 없는 길을 걸어 자신의 집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눈에 띈 것이 있었는데, 현관 바로 앞에 놓인 두 개의 봉투였다. K는 그것을 집어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현관을 닫고, 우선 배낭을 바닥에 내렸다. 어깨가 갑자기 중력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가벼웠다. 그리고 그는 두 개의 봉투를 안락의자 옆에 있는 다탁에 던져놓고, 집안을 한 바퀴 돌며 창문을 모두 닫았다. 집안에서도 소금과 바다 냄새가 가득했다. 그는 물건 정리는 다음 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배낭에서 이미 거의 바닥이 난 꿀 병만 꺼내 식탁 위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기름램프에 불을 붙여 안락의자 옆 탁자에 놓았으며 장작과 마른가지들을 들고 와 벽난로에 불을 켰다. 그 뒤 창고에서 쥐엄나무 콩 한 컵을 가져와 부엌에 두면서 냄비에 물을 담아 벽난로 안에 설치된 철제 거치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서야 K는 무너지듯이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는 두 손바닥으로 양 눈을 지그시 누르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사방이 적막하고 어두웠다. 집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한동안을 가만히 벽난로만 쳐다보다가,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탁자 위에 있는 봉투들을 뜯었다. 그는 먼저 화려하게 정부각인이 박힌 봉투를 뜯었는데, 그 봉투에는 잉크로 <당신이 이 집의 주인이거나 프리드리히 K일 경우에만 열어볼 것>이라고 급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한 장의 종이와 여백에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접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먼저 아무 무늬도 없는 종이에는 <당신이 프리드리히 K일 경우에만 명령서를 열 것. 만약 아니라면 프리드리히 K에게 전할 것. 부득이하게 당신의 집을 조사했으며 당신이 프리드리히 K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에르윈 K라는 증거도 없었기에 이 노트를 남김.>이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한 장의 명령서라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법원 출두 명령서. 당신은 정당한 법률에 의거하여 체포된 신분이며 최대한 빨리 가까운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으로 출두하여 자신이 프리드리히 K라는 것을 증명할 것. 총통 직인. 이 명령서는 총통각하의 명령으로 제작되었음을 증명함.>
K는 그것을 다시 탁자에 놓고 다른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문양이나 직인 따위는 전혀 없는, 값싼 종이에 적힌 편지가 들어있었다.
<이 흙집에 사는 당신께서 분명 소문의 현자이시리라 생각하여 편지를 남깁니다. 저는 베를린에서 반전운동을 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지금 정부는 한 사람의 악마적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호전적이고 배타적으로 변질되어버렸으며, 국민들을 선동하여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키고 민족주의적 인종청소를 벌일 분위기입니다. 우연히 풍문을 들으니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정신적 지침서로 삼고 있는 명저名著의 저자 프리드리히 K의 스승님이 바로 당신이라는 이야기에 여기까지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비록 직접 만나 뵙지는 못하였지만 분명 당신께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고 타락한 정부를 분쇄할 수 있는 분이시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베를린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도와주십시오. 이대로 국민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분명 이번 세기 최악의 비극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하 저희들이 활동하고 있는 베를린의 맥주홀 주소를 남깁니다.> 그리고 편지의 여백에는 어느 맥주홀의 주소가 남겨져있었다.
K는 두 개의 봉투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을 전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깍지를 끼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무언가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다만 멍하니 벽난로의 불길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십 분인가 이십 분이 지나자 K는 안락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편지와 명령서, 봉투 따위를 전부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는 벽난로로 다가가 그것들을 전부 불길 속으로 집어넣어버렸다.
K는 부엌으로 가서 작은 사기잔과 슈닙스를 꺼내 안락의자로 돌아왔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잔 가득히 슈닙스를 따랐고, 코밑으로 잔을 가져가 냄새를 맡더니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화끈거리는 열기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K는 팔걸이에 양 팔을 올려놓고 더욱 깊숙이 안락의자 속에 파묻힌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창문에는 바닷바람이 부딪치고 있었다.
벽난로 쪽에서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K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끝.
여름이 왔다. 봄이 지나가는 동안 K의 집에는 누구도 방문한 일이 없었다. 아직 쥐엄나무 콩도 바닥나지 않았고, 석청 역시 삼분의 일 병 가량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K는 봄에 자신이 불살라버린 두 통의 편지에 대해서는 일치감치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었고, 유일하게 먹는 음식인 삶은 콩과 꿀은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끼만을 먹었다. 한 가지 다소 신경 쓰이는 것은 집에 남아있던 것과 초봄에 새로 사온 것을 합쳐 1.5병 정도가 있던 슈닙스가 벌써부터 거의 다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 사이 자신이 술을 마시는 일이 늘었나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이미 마셔버린 것은 마셔버린 것이었다. 아무튼 삼 일에 한 번씩 그는 집 전체를 청소하고 매일 같이 장작을 패며, 남는 시간에는 창문으로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점점 가팔라지고 있는 절벽을 내려다보았다. 노인이 된 뒤로 시간이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속도에 대해서도 둔감해지고 있다고 K는 담담하게 생각했다. 날들은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마당을 쓸던 K는 처음 들어보는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하늘을 보았다. 전투기들로 보이는 편대가 일직선의 구름을 남기며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비질을 멈추고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위를 보자, 더 높은 곳에서는 폭격기 편대가 똑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날고 있었다. 그것들은 굉장히 높은 곳에 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천둥처럼 긴 굉음을 땅과 바다를 향해 무작위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문득 K는 자신이 초봄에 태워버렸던 편지들 중 한 통에 대해 떠올렸다. 맥주홀에서 모여 반전시위를 한다던 그 대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노동당 연설에 심취했다던 술가게 여주인의 남편은? 검은 턱수염을 가진 크라우스 목수는 또 어떻게 되었는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K는 자신에게 그런 것을 궁금해 할 자격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두 편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K는 하늘을 보며 멀거니 서있었다. 천둥 같은 굉음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K는 잠시간을 목상처럼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비질을 끝낸 뒤, 더워지는 날씨에 피로를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