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몽상

글/시 2018. 6. 13. 14:30 |

시간의 몽상

 


내 피부가 갈색이 되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 피는 끓어오르며 가장 원시의 고기를 달라고 굶주림의 외침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진흙 속에서 구르며, 벌거벗고, 광적인 태양이 빛의 창들을 무자비하게 대지로 던져대는 것을 환희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말할 수 없는 땅에 있었다.
간음이 간음이 아니고 퇴폐가 퇴폐가 아니며 나태가 나태가 아닌 시대를 나는 종횡무진했다. 나의 심장은 점점 어려져 심지어는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으로 돌아갔다.
문뜩 손을 보자 먼 미래 내 가슴에 새겨져있던 수십 개의 흉터는 주먹으로 옮겨졌고 손바닥은 온통 굳은살이 배겨 촉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나는 승리했다고 춤을 추었다!
강한 턱과 무자비한 송곳니로 나는 낯선 혈거인간들을 내 식도로 꿀꺽 삼켰다
하늘에는 분명히 신이 없다! 거기에는 저주처럼 타오르는 붉은 구球만이 고고히 있다.

 

아니야! 내 입이 터져버렸다! 이젠 밤이 내리지 않는다!
선혈 대신 독주를 마시고 죽은 인간 대신 구운 고기를 먹으며 천둥번개 대신 음악이 들린다
나는 오히려 태아처럼 웅크렸다, 단 한 번도 눈물 흘린 일이 없었는데.
높은 수정의 궁들은 날 덮칠 듯이 쏘아본다

내 혈관이 텅 비어버렸다
공포로, 그런데 그 공포도 대지에서 느끼던 것과는 전혀 달라.
언어는 바보이다. 그것에 젓갈처럼 절여진 나는 머저리이다.
「너는 열망을 열망한다.」 커다란 조롱처럼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로 가야 아무 의도 없이 피어나는 장미를 볼 수 있지? 이제는 모든 장미가 씨앗 때부터 <나는 장미가 되고 말 테다>라며 피어난다.

 

쏜살 같은 악덕들…… 나는 몽상가일까?

 

수정궁들은 점점 높아진다. 언젠가 달과 화성에 닿을 때까지.
나는 괴기한 악몽을 꾼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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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작품

글/시 2018. 4. 23. 21:50 |

멈춰진 작품



형태 없는 멈춰진 작품. 그는 지난 2년 간 살아오지 않았다

문짝 없는 집에서 안락한 부랑자처럼 지내는 것은 마음 편한 일이었다.

수백 개 어쩌면 수천 개의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은 서랍들. 무언가는 비었고 무언가는 너무 무겁고

무언가는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타자기는 어디에 숨겨놨더라, 아니, 굳이 숨겨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너를 속였지, 드라마를 만들기 싫다는 치기에 거울이란 거울은 모조리 깨버렸다

그래도 드라마는 너의 두개골에 천공을 만들고 뇌수로 스며든다

깨뜨리려면 너의 눈동자를 깨뜨려야했다.

하지만 그것도 멈춰진 작품을 다시 한 번 멈추는 것만큼 허황된 일이다.


“시를 쓸 때만 분노와 증오에 앓는 시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은 시를 쓰지 않으면 물에 부푼 익사체처럼 평화로이 부유한답니다. 그러면 그것은 둥둥 떠다니며 어쩌면 행복이라는 기괴한 개념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고 뭉글뭉글 생각하죠. 그런데도 언젠가 그것은 자신의 비대해진 몸뚱이를 사시미로 도려내고 비계 속에 파묻혀있던 팔과 손가락의 뼈들을 발굴해요.”

뼈다귀들은 달그락거리며 펜이 들어있던 서랍

과 담배가 들어있던 서랍들을 뒤진다. 아드레날린 주사를 맞는 것처럼 덜커덩

거리다가 그 뼈들은 집안의 술병을 전부 창밖으로 내던진다: 알코올중독자의 자기파괴 과정은 술을 끊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멈춰진 작품은 그간 점점 더 무거워졌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을 때,

그것은 부피는 변하지 않은 채 질량만 폭발적으로 상승해왔다 그래서

아 그래, 멈춰진 작품이 있었지, 하는 순간, 너는 그 무지막지한 질량으로 얻어맞는 거야,

네 두개골은 박살나고, 눈동자는 여기저기 흩어지고, 턱뼈는 어딘가로 도망가 버리지

시를 쓸 때만 분노와 증오에 앓는 시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앓지 않는 동안

나는 문이라는 문은 전부 두드리고 다녔다. 흔들림이 멈추지를 않는 전철을 타고

서울이라는 좁아터진 숲의 빌딩이란 빌딩은 전부 옥상까지 올라가보았다

옥상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천둥번개를 기다린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익사체의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도 사람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즉, 너는 너의 운명이니 천분이니 하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 그런데

물에 부푼 시체 같은 모습으로 너는 참 잘 해왔어 물론 몇 십 년에서 더러는 몇 백 년 간 계속 해왔던 퇴폐와 패배의 습관들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겠지 그러나 아무튼 너는 시체답게…… 물렁물렁한 시체답게 잘도 두 발로 땅 위에 서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또 운명이니 천분이니 천명이니, 의사가 준 알록달록한 약물들과 다시 대화를 하지, 그러니까 말하기를, 그러니까 그쪽에서 말이야, 네가 자주 들락거렸던 단출한 조명의 흰색 꿈나라의 관리자들이, 매번 말하는 것이잖아, 영혼 속에 지네가 들끓는 병은 한 번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지가 않는다고, 그 지네들은 계속해서 알을 깐다고……

너무 많은 말들이 있기 전에 나는 언어의 목줄기를 송곳니로 물어뜯어야만 했다.


멈춰진 작품을 다시 펼쳐보자 남한에도 있었고 소련에도 있었고 독일에도 있었던 K씨는 돌연 야수 같은 울음소리를 내지르고 싶어졌다. 분명 서랍 어딘가에는 나이프가 있고, 노끈도 있고, 심지어는 펜까지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옥상에서 사흘 나흘 기다리며 담배를 피워도 천둥번개는 이쪽으로 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K씨의 덜그럭거리는 팔은 냉장고에서 소주병과 맥주병을 찾아 그것이 확실하게 가득 차있는지 흔들어 본 뒤에 그것으로 길가는 소시민들의 대가리를 깨부술 계획을 짜고 있다.


거울을 깨지 말 걸 그랬지. 너무 어린 치기였어.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또 깨버리고 말 걸. 심지어는 눈동자도.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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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6일부터 3월 18일까지

시 전시회 [존재비애: 인간존재의 선험적 공허에 대한 몰두와 노스탤지어]가 개최됩니다.


약도에 표시된 '아트갤러리 카페 어스피셔스'와 같은 건물 1층의 '하나빈 팩토리'에서 동시 진행하며, 12:00부터 20:00까지 오픈합니다. 월요일은 휴관합니다.


두루마리 형식으로 제작된 시들과 영상작품으로 만들어진 산문시등이 전시되며, 2017년 발표한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과 1층 하나빈 팩토리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기념하여 발매한 프리미엄 더치커피도 한정 판매하고 있습니다.


첫 전시회라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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