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17 완성.
1. 나는 나의 문학을 사랑한다.
2. 설령 내가 문학이라는 것의 정의를 내릴 수 없더라도.
사직서
어제는 골목 구석에서 죽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들어 올려보니 눈알은 뒤쪽으로 돌아가 있었고 내장은 몹시 딱딱했다. 필경 겨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내장을 상상하며 그것을 꺼내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시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근처의 은행 화장실로 가 비누로 손을 씻었다. 도시에서 죽는 들짐승들은 무슨 병이든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병사(病死)는 가장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작년 한 해는 정말로 지랄 같았다. 어제, 즉 신년 1월 1일에는 죽은 고양이와 만났다. 오늘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일에 대한 걱정 없이 걷는 거리는 평소와는 조금 달라보였다. 신년회를 마친 바로 다음날 사직서를 받은 팀장의 놀란 얼굴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내게 몇 가지 질문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타당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여간 나는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코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날씨가 추웠다. 이런 날 아파트 지하 배관실이나 공영주차장 구석에 가보면 박스를 몇 겹이나 뒤집어쓴 채 떨고 있는 노숙자들과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들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눈에 띠지 않는 곳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들의 그러한 점은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지하에 산다. 그러나 보다 좋은 곳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고 몇 개 되지 않는 창문으로는 사람들의 구두가 보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하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익숙해져버렸다. 신선한 공기가 통하는 높은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산 정상이라든가 빌딩의 옥상 같은 곳은 사람이 살기 위해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러한 장소들은 떨어져 죽기 위한 장소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지기 위한 준비과정이자 추락이라는 변화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놀이기구와 같다. 사실 추락하는 자의 감각은 우리네 인생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놀이기구라는 것이 으레 그런 것 아니던가.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을 보다 집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들.
남들보다 낮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가장 좋은 점은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밑에 아무도 없고 내 위로만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가장 비참하고 혐오스러운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가장 추악한 죄인이 되면 오히려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이다. 이 행성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고결해지려고 자신을 묶고 조이며 마치 중세시대 중죄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철로 된 마스크를 쓰는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나의 사상과 감정들은 빅브라더의 감시 밖에 있다. 왜냐하면 그 빅브라더조차 내가 사는 땅의 인간들을 감시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팔을 흔들며 눈보라가 흩날리는 바깥세상을 가끔씩 걸어 다닌다. 최근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담배로 인한 것이었다. 정부가 금연정책으로 모든 담배에 부가되는 세금을 두 배로 올려버린 것이다. 나는 며칠 간 금연에 대한 생각을 조금 했고 담뱃값이 두 배로 올라버린 이상 그것은 내게 걸맞은 사치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담배를 끊는 2주 동안은 가끔 벽에 머리를 처박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몇 번의 미세한 근육경련도 일어났다. 그러나 곧 익숙해져버리고 말았다. 매일 아침 신문을 읽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신문 배달이 오지 않기 시작하면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결국에는, 무관심해져버리는 것이다.
오늘은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이불에서 일어났다. 기억나지 않는 꿈의 파편 때문에 아직도 펄떡거리는 관자놀이 위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웅웅거리는 소음이 머리를 찔러댔는데 그것이 거실의 냉장고에서 나는 소리인지 창문 밖의 낮고 낮은 하늘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고양이 내장의 촉감이 아직까지 손끝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샤워를 하고 난 뒤에 입사하고 나서부터의 그 어느 날보다 옷을 잘 차려입었다. 심지어 처음 출근하던 날보다도 바지의 줄이 잘 잡혀있었다. 넥타이를 매면서 간밤에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해내려고 했다. 그러나 미세한 공포, 아니 그것이 공포였을까? 아무튼 이질적이기만 하면서도 어쩐지 이미 내 혈관 속에 돌고 있을 것만 같이 친근한 감각의 조각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확인했다. 어제는 1월 1일이었다.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뭔가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아마 고도보다도 늦게 오리라는, 근거도 설명할 수 없는 절망을 나는 나 자신에게 선고한다. 서류가방에는 사직서를 집어넣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니 담배 생각이 났다. 나는 별 이유 없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흩날리는 싸락눈 때문에 사방이 하얗게 부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은 저조하지 않았다. 쌀알만 한 눈송이들이 내 깨끗한 정장 위에 들러붙었다. 천국은 공기 중에 모르핀이 눈처럼 날릴지도 모른다. 마침 가게를 열고 있던 구멍가게의 늙은 주인이 내게 꾸벅하고 인사를 해왔다. 나도 그에게 목례를 했다. 노인이 기르는 황색 털의 늙은 개가 가게 앞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개에게도 웃음을 지어보였다. 개들이 인간의 표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은 별 의미가 없다. 단순한 사실은 내가 동물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회사에 도착해 나는 사무실로 들어갔고, 팀장이 있는 자리까지 찾아갔다. 사직서를 내고 그가 그것을 읽을 동안 잠시 기다렸다. 팀장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는 출근길에 노인의 개에게 했던 것처럼 미소를 지어보였다. 몇 마디의 말이 오갔지만 별 의미가 없는 문답뿐이었다. 나는 팀장에게 얼어 죽은 고양이의 감촉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었다. 아무튼지 간에 사표는 수리되었고 나는 내 책상으로 가 챙겨 가야할 것들과 폐기해야할 것들을 분류했다. 대부분 폐기해야할 것들이었고 몇 종류의 서류는 담당자에게 인계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가지고 돌아가야 할 것들은 서류가방의 빈자리에 넣으니 전부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컴퓨터에 입력된 개인적인 정보들을 전부 삭제하고 나는 한때 동료였던 이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나왔다.
겨울에는 왜 이렇게 공기가 맑은지 호기심이 생긴다. 시베리아에 가면 항상 이렇게 차갑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일까. 옛날, 주점에서 만났던 러시아에서 온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의 눈동자는 겨울하늘처럼 청정했었다. 그녀의 피부는 눈 같은 순백색이었다. 또 담배 생각이 났다. 정부는 굉장히 중요한 것을 가난한 이들로부터 빼앗아갔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 건물의 정문 앞에 서서 한참동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내 세련된 정장차림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술을 마시러 갈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직장을 얻기 전에는 낮에도 자주 술을 마셨었다.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 몇 년 간 무엇이 변했느냐고 누군가가 내게 물으면, 나는 딱히 대답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겨울하늘 아래의 화사한 거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목적도 없이 대로를 방황했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서점으로 들어갔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학교도 가기 전인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늘 책을 읽어주시던 것이 기억났다. 그 책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취향에 따라 골라진 것이었다. 삼국지를 시작으로 한 수많은 역사소설들 말이다. 하여튼 어렸을 때는 그것이 좋았다. 아버지가 책을 읽어주는 것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점은 내가 아동에서 청소년으로 변해가면서, 나의 독서취향이라는 것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가계>의 사람들이 절대로 읽지 않는 책만 읽어댔다. 레이몽 라디게와 랭보 같은 젊은 사망자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보들레르나 니체 같은 경우에는 ―이상한 표현이지만―그들의 철없는 근엄함이 나를 매료시켰다. 뒤늦게야 하는 말이지만 내 현실적 기반은 그때부터 무너졌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테오에게 근대유럽철학을 멀리 하라는 편지를 보내준 고흐 같은 사람이 내 곁에는 없었다. 그러나 진행될 만큼 진행되어버린 인생에서 회의는 별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의 글은 거의 읽지 않았다. 나의 독서취향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네크로필리아적인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Nirvana의 음악도 커트 코베인이 엽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린 뒤에야 듣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바흐고 베토벤이고 모차르트고 라흐마니노프고 이미 모조리 죽어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애도하기보다는 마르틴 루터 같은 이들에게 몇 번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서점에는 책이 많았다. 왜냐하면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런트에 진열된 책들은 거의 모두가 비슷한 것들이었고, 순수예술과 관련된 책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구석진 코너에 박혀있었다. 그러나 유감일 것도 없었다. 이미 나부터가 마지막으로 소설이나 시, 희곡 따위를 읽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싸구려에 저질 포장지로 포장한 텍스트들은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내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내 뇌수에 칼을 꽂고 심지어는 나의 현실을 파괴하려고 했다. 어렸을 때는 몇 번이고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도 지금에 와서는 책 한 권 한 권이 거의 융단폭격 수준이었다. 그렇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고, 왜였는지는 모른다. 관심을 줄 여유도 없었다. 그들에게 내 정신을 파괴당하면 취업이니 생활이니 하는 경제적 활동들이 전부 셔터가 내려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 오래된 책장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서점에서 일기장을 파는 것을 발견했다. 꽤 두꺼운, 성인들을 위한 일기장이었다.
몇 년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죽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골로 여행을 가다가 덤프트럭이 그들을 뭉개버린 것이다. 내가 성공적으로 취직한지 삼 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의 첫 월급의 일부를 어머니에게 보냈을 때 그녀가 생전 처음 보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당장 취직하든지 아니면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라고 매일 같이 히스테리를 부려댔던 사람이 바로 나의 어머니다. 내가 회사에 입사하고 나에게서 삼 개월 간 세 번의 생활비를 받고나서,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죽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돈을 보낼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의 무덤에 만 원짜리 지폐 수백 장을 같이 묻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짓은 미치광이나 하는 짓이다. 뱃사공 카론은 그렇게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는데다가 그가 한화(韓貨)를 취급할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내 부모님은 그리스에서 죽은 것도 아니고 그리스인도 아니다. 아버지로 말하자면 그는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알기로 아버지는 결혼한 이래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한 일이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이기적이고 교활한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아버지는 때로는 내 비참한 믿음을 부정하는 안티테제였고 때로는 인간의 본성을 죽을 때까지 드러내지 않은 불쌍한 자였다. 일기장은 한 권에 만 원이었다. 아무런 텍스트도 들어있지 않은 공책이 왜 만 원이나 하는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커버가 가죽으로 되어있었다. 몇 달 뒤면 어차피 벗겨질 금박이나 장식 없이 오로지 박음질만을 단단하게 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계산대로 그것을 들고 가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서점을 나왔는데, 한 손에 가죽공책을 들고 거리로 나와 보니 난 이 일기장을 구매하는 모든 과정 동안 단 한 번도 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이 너무도 투명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마치 내 영혼에 눈이 달려서 정수리로 빠져나와 이십사 시간 하늘만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겨울의 투명한 하늘은 인간의 영혼에 치명적이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이제 다 나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치명적이다. 내게 기독교적 믿음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이라는 개념에 어떤 신성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겨울의 하늘은 사람의 정신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광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런 흰색 계절에 거리를 나돌아 다니다보면 어떻게 사람들이 서로를 물어뜯거나 할퀴어 죽이고자 하는 원시적 본능을 억제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평화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 주변의 환경을 평화롭게 조율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나는 나 자신이 귀머거리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잘 알아듣지 못해, 내가 들을 수 있는 음색은 태양과 구름과 밤의 어둠이 내는 일률적이고 지속적인 노이즈뿐이기 때문이다. 집의 나무 테이블 위에 걸터앉아 머그잔에 가득 담긴 드립커피나 보드카 따위를 마시고 있다 보면 죽음이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 상상할 수도 있다. 나는 땅속에서 기어 올라오는 지구의 소리도 듣는다. 새벽이 되어 사람들이 더 이상 내 집 창문가를 걸어 다니지 않으면, 이제 잠에서 깨어나 노래하는 시멘트와 벽돌로 된 골목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귀뚜라미 한 마리가 보일러실에 들어왔던 날을 기억한다. 그 녀석은 몹시 꽁꽁 숨어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지만, 밤새 어딘가에서 울어댔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나는 매일 이상한 꿈을 꾼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젯밤 오늘 제출한 사직서를 쓰면서 나 자신도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린 이래로, 계속 공중 어딘가를 부유하는 느낌이다. 여동생은 울었었다……. 그녀는 시체를 덮고 있던 시트를 걷을 때부터 계속 울면서 사죄했다. 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안실에서 나와 일치감치 식장의 준비를 도왔다. 작년에 여동생이 무역회사에 취직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에게 생활비를 보낼 필요도 없어졌다. 참고로 덤프트럭에 받힌 어머니와 아버지는 말 그대로 뭉개져있었다. 전에는 내 피붙이였었는데, 그냥 엉망으로 짓이겨진 고깃덩어리였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사다가 망치로 박살 낸 다음 시체와 바꿔치기 해도 아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요는 무엇인가 하면, 나는 옷을 입은 다진 고기를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구멍가게의 늙은 개를 만났다. 나는 녀석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를 뒤져봐도 개가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녀석이 천천히 꼬리를 흔들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나는 쭈그려 앉아서 녀석의 털을 쓰다듬었다. 가게 안쪽에서 주인이 우리를 보며 늙은이 특유의 웃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주름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안녕하시오. 선생. 오늘은 일찍 오시는구랴.” “예에. 그런데 혹시 일기를 써본 일이 있으십니까?”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기억난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말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장례식과 화장을 마치고 유골을 모시기 위해 이동할 때 나는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때 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사실 지금이라고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는 그때 난 어렸다는 것이다. 아무튼 모든 일정이 끝난 뒤에 나는 아버지가 친척들의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구석진 것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따라갔다. 왜 따라갔는지는 모르겠다. 건물 뒤에서 아버지는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아무 소리도 없이 왼쪽 눈에서 눈물 두 방울을 흘렸다. 딱 두 방울이었다. 어느새 따라온 내가 아버지의 옷소매를 잡자 그는 나를 향해 돌아보며, 황급히 눈물을 닦고, 나에게 웃어보였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일기요? 허어. 갑작스런 질문이군요.” “예. 사실 제가 오늘 일기장을 샀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자신이 죽게 되면 화장해서 나무 밑에 뼛가루를 묻어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어머니 같은 경우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싫어했기 때문에 유언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시신도 화장시켜서 뼛가루를 아버지와 같은 곳에 묻었다. 여동생은 내가 나무 앞에서 삽질을 하는 동안 계속 울더니 마침내 졸도까지 하고야말았다. 다소 짜증이 치솟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온통 나무뿌리와 균사로 얽혀있는 땅에 삽질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일기장을 산다는 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가게 주인이 프로이트를 읽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비슷합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던 일률성이 끝났으니까요. 사실은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전에도 일기를 썼나요, 선생?” “전혀요.” 그 노란색 늙은 개는 계속 우리를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했다. 그들은 백치에 순진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백치에 순진하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인간이 내 주변에 있었다면 난 그를 증오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유를 달 필요도 없이 내가 개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개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인간보다는 나은 면이, 개들에게는 많이 있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일기를 써보셨습니까?” “예순 번째 생일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아.” 대화를 하면서 난 계속 주인의 뒤편을 힐끗거렸다. 온갖 색깔의 포장지로 싸인 담뱃갑들이 나란히 줄지어져 진열되어 있었다. 담배의 종류가 많고 제품마다 포장한 색깔이 다르다는 점부터가 심리적 마케팅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만약 전 세계의 모든 초콜릿이 같은 공장에서 같은 모양에 같은 포장지로 포장되어 나온다면 아이들은 지금보다 초콜릿에 집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지갑에 얼마가 있는지 생각해내려고 했다. 감옥에 갇혔을 때의 뫼르소의 생각대로라면 정부는 우리를 벌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굉장히 수동공격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남들 하듯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서 일기를 썼지만, 지금은 그냥 내키는 대로 쓰고 있어요. 굳이 오늘 일어난 것에 대해서만 쓰는 것도 아니고…….” “도움이 되는 얘기군요.” 난 개를 쳐다보았다. 쳐진 눈꼬리와 얼굴이 넓적하게 보이도록 자란 털들이 녀석의 가장 활발하고 경쾌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늙은 개들의 얼굴을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안심감이 든다. 저들은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둔해져가는 팔다리와 부옇게 흐려진 시야로 받아들일 뿐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리 늙은 편도 아니었는데. 여동생이 결혼하는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면 손주가 새빨간 신생아의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그저 아무런 기척도 없이 일어나는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루고 싶다고 해서 오늘 덮칠 쓰나미가 내일 덮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동생은 아직도 미혼이다. 동생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나보다 어리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소시지를 하나 사서 포장을 벗겨 개에게 주었다. 주인은 그것을 보고 내가 지불했던 금액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나는 그대로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와 버렸다. 개가 쩝쩝거리며 소시지를 먹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먹기 시작했다. 난 집으로 향해야했다. 오늘은 더 이상 바깥에서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서 보드카와 럼이 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 걸으면서 아까 산 가죽커버의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난 이것이 일기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년이나 월도 표기되어있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흰 종이에 메모장처럼 줄만 그어진 가죽공책이었다. 서점에서 이것을 펼쳐봤을 때 난 왜 일기장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예전 같으면 내 심리상담사에게 이 얘기를 하고 정신분석학적인 토의를 나눌 수도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나 자신의 영혼을 분석하는 일은 오래 전에 그만두었다. 아마 독서를 그만두면서 그 짓도 그만둬버린 것 같다. 독서광들이여, 문맹이었던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받은 ‘책의 어머니’를 당신이 읽지 못한다고 해서 상심할 필요는 없다. 모든 책들이 마찬가지다. 모든 책들이 다 절대 읽을 수 없는 책들이다. 어떤 책이 자신의 성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점점 읽을 수 없는 것이 되어간다……. 신이 죽기 전에 니체라는 이름이 먼저 죽었다. 그 이후부터 그는 이름 없이 종이에 펜으로 흉터자국을 새겨 넣는 광인이었다. 아, 그런데 내가 누구에게 외치고 있는 것일까? 어느새 나는 길을 걸으면서 입속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의자에 앉아, 탁자 위에 가죽공책을 펼치고 유리잔에는 럼을 온더락으로 만들어놓은 뒤 첫 페이지에 그렇게 적었다. 그리고 페이지에 눈을 붙박은 채 럼을 홀짝거리며 계속 쓰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 집에 이사 올 때 피아노를 하나 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방음 문제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이웃들이 분노하며 현관문을 두들겨댄다면, 차라리 피아노가 없는 것이 낫다. 생각해보면 아파트와 빌라들의 숲인 이 도시는 암묵적으로 모든 악기를 금지하고 있다. 음악에 대한 탄압, 이게 누가 처음 쓴 말이었을까? 여하간 거창한 것은 아니다. 모든 거창한 것들은 인생을 고되게 만들고 또한 자신을 오만하게 만든다. 개인은 개인의 영역 밖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논해봤자 득 될 것이 없다고 본다. 내 불만은 그저 사적인 공간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것뿐이다. 사실 나는 이사 올 때, 단독주택을 빌릴만한 돈은 충분히 있었다. 거실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모멘트 뮤지컬 4번을 쳐대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을 집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지하의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의 소파 위에서나 안락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락하게-혹은 시체처럼. 나는 창문이 많은 집에서는 살 수가 없다. 너무 많은 빛은 일종의 수압처럼 나를 짓누른다. 왜냐하면 빛은 공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빛은 인간의 영혼에도 좋지 않다. 특히 이런 겨울에는, 그리고 봄에는, 그리고 여름에는, 그리고 가을에는 태양광이 모든 이들의 머리를 무차별하게 박살내버린다. 겨울의 빛은 얼음송곳처럼 뇌를 파고 들어와 영혼에 경련을 일으키고, 봄의 빛은 과거의 비참을 흔들어 깨워 오로지 그를 도주하게 만들고, 여름의 빛은 녹인 쇳물처럼 어깨 위로 쏟아져 호흡을 불가하게 만들고, 가을의 빛은 온 도시에 광인들만이 가득하게 만든다. 나는 지하로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지하에 있었고 지하에서 태어나 지하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이 빈곤했던 것에 감사한다! 만일 저 미친 듯이 드높게 솟은 빌딩에서 내가 살아야 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밧줄이 내 목을 졸랐을 것이다. 빛이 모든 것을 환하게 비추어버리니까 말이다! 온 사물이 너무 환하게 드러나 버리면 양심이 비명 지르며 깨어난다. 그래서 안전한 그늘로 숨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도 손전등을 비추지 않는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써놓고 보니 너무 강박적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고골을 읽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펜을 놀리면서 어느새 럼을 세 잔째 비우는 중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것은 문학이 아니라고 다짐하도록 만들었다. “이건 문학이 아니야.” 내가 서점에서 이 가죽공책을 살 때 이것은 분명 일기장이었다. 그러니 내가 쓰는 것은 형식이 어찌되건 일기에 지나지 않는다. 굉장히 개인적인, 그래서 명확할 필요조차 없는 일기 말이다. 내가 누군가의 흉내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잔을 다 비웠다. 담배 생각이 절실했다. 그 러시아 여인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그녀와 만났을 때도 나는 럼을 주문해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너무 오랫동안 타국생활을 하다 보니 러시아어를 잊어버렸다고 영어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프랑스어로 가장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프랑스어로 자신의 일기장이라고,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왜이냐고 독어로 물었다. <아직 한 장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독어로 대답했다. 우리 둘 다 악센트가 가관이었다. 참고로 그녀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지상의 경계에 걸친 창문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항상 창문을 통해 들리는 뚜벅뚜벅 걷는 구두 소리가 피로한 리듬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탁자의자에서 일어나 이미 다 녹아버린 얼음을 싱크대에 버리고 새로운 얼음조각을 네다섯 개 잔에 채워 넣었다. 이미 뇌수에 불이 난 것 같았다. 나는 럼주 병을 기울여 잔을 절반 정도 채웠다. 오늘은 보드카를 마시지 못하리라. 보드카. 보드카. 만일 내가 시베리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는 잔에 입을 대면서 창가로 걸어갔다. 황금색 불길이 단전으로 몰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솔직함을 미덕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술을 가까이해야한다. 의식을 잃는 순간에야말로 인간은 세계에게조차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길거리를 나다니다보면 초록색 술병을 늘어놓고 거리에서 잠든 사람들을 자주 본다. 차에 치어 죽은 비둘기만큼이나 그들은 모순이 없다. 나는 창문을 통해, 길을 걷는 사람들의 구두를 유심히 관찰했다. 오늘은 귀가하는 사람들의 구두를 보았다. 오늘은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구두를 보았다. 오늘은 돌아갈 보금자리가 있는 사람들의 구두를 보았다. 내가 여동생을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장례식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동생의 얼굴을 본 일이 없다. 어제는 고양이를, 아, 잊어버렸다. 부패가 유보된 그 고양이의 시체가 어떤 색깔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차가운 촉감을 제외하고는 이미 그 기억 자체가 흑백사진처럼 변해버렸다. 오늘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샤워가 하고 싶었기 때문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나는 그다지 늦지도 않은 이 초저녁에 술에 만취해 샤워를 할 수 있다. 내일부터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팀장에게 그 고양이 시체를 가져가야만 했었다. 우리 아버지의 곤죽이 된 시체를 만지도록 해야만 했었다.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 아버지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왔었다. 그들은 육개장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그들이 내게 위로의 몇 마디를 건넸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은아버지와 그 딸들이 왔었고, 작은아버지의 장녀가 낳은 어린 조카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장례식장 전체를 둘러보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제이 개츠비가 매일같이 열었다는 놀이공원처럼 화려한 파티가 겹쳐보였다. “아, 그야말로 만국박람회 같습니다 그려.” 샤워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와 변기에 토악질을 했다. 나는 샤워기를 변기 쪽으로 돌려 이곳저곳에 튄 토사물을 청소하고 나 자신도 마저 씻었다. 물기를 닦고 거실로 나오니 온몸이 열로 가득 차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옷을 주워 입고 비틀거리며 소파로 가 누웠다. 나는 침대를 사지 않았다. 그런 것은 매일 밤 알코올에 절어 쓰러지듯이 잠드는 이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다. 나는 소파에 걸쳐져있던 이불로 몸을 말고 태아 같은 포즈로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안쪽에서도 소용돌이치는 곡선과 잃어버린 방향감각이 보였다. 보일러를 켜지 않아 거실은 추웠고 이불 밖으로 빠져나온 머리만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감긴 눈꺼풀 안쪽에서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가 잠깐 보인 것 같았고, 직후 나는 정신을 잃었다.
황혼에 깨어났다. 보라와 황금의 미광이 자주 감기는 내 눈꺼풀 안에서 굴러다녔다. 숙취로 깨질 듯한 머리와 당장이라도 술이 흘러내릴 것처럼 고동치는 눈동자로, 나는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저 황혼의 은은한 빛살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갑자기 어떤 비밀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 인생에 일률적이면서도 모든 것들에 병렬적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었다. 아 그래! 애초부터 문학이란 없었다. 그것은 그저 병(病)들의 무리였다. 굳이 실증주의의 오만하고 면도칼 같은 혓바닥을 거치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어야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내가 알았던 위대함도 아름다움도 모두 병의 권속이었다. 완벽하게 보이도록 설계된 이 도시의 건물과 직선의 도로들은 병을 정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뱃속에서 위벽을 갉아먹고 있는 벌레의 존재를 느끼고 변기에 토악질을 했다. 뇌의 무게중심이 온통 앞으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뭐라도 먹어야만 했다. 정확히는 탄수화물로 된 음식을 위 속에 구겨 넣어야 했다. 예전에는 숙취를 해소할 때 신경안정제가 가장 효과가 좋았는데, 나는 더 이상 그런 신경계 약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머리에 찬물을 뿌려대면서 눈물을 조금 흘렸다. 계집들과 신경계 약물을 쌓아놓고 살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공포. 인지하지 못하는 공포로 가득한 시절이었다. 폭력과 섹스. 악몽과 풀잎 색깔 밤의 잠. 유치한 무관심, 마치 버려진 세상에 혼자 남은 쾌락주의자처럼. 그것도 독서의 종말과 함께 끝났다.
냉장고에 있던 식빵을 꺼내 물도 없이 꾸역꾸역 위장에 채워 넣었다. 위에서는 계속 되 뱉으려는 압력이 올라왔지만 나는 계속 구겨 넣었다. 그리고 물 한 잔과 아스피린 두 알을 삼켰다. 소파에 앉으려는데 누군가가 현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젠장.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면서 일어났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구멍가게 사장이었다. 노란 털 뭉치를 안고 있었다. “무슨……” “선생. 내 개가…….” 나는 곧바로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상실의 눈동자가 불타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있었다. 그래, 이게 삶을 증명당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노란 털 뭉치에 손을 가져댔다. 오늘 날씨와 같은 온도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노인은 주저하는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보시다시피 지금 꼴이 말이 아닙니다. 소파에라도 앉아계시죠.” 그리고 나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나는 내 표정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적어도 그 눈동자 속에 있는 것만이라도. 그러나 덜 깬 술기운과 무력감, 그리고 권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진저리를 쳤다. <작년 한 해는 정말로 지랄 같았다…….> 나는 중얼거렸고 땅 밑에 떨어진 시선에는 아까 흘린 몇 방울의 눈물이 오팔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셔츠를 고쳐 입고 소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노인은 건조한 눈으로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저 그가 말을 꺼내기만을 기다렸다. “오래 살았죠.”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예. 얼마나 됐지요?” “십칠 년은 됐을 겁니다. 나보다도 늙은 셈이죠.” “아.” 나는 사실 당황하지도 못했다. 분명 노인과는 매일 마주치는 사이고 언젠가는 의기투합하여 술 한 잔 하고서는 내 집에서 더 마신 적도 있기는 하지만, 글쎄 나로서는 그가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또 하나의 차가운 짐승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제가 잘 한 것이겠지요, 선생?” 그가 돌연 물어왔다. “무엇을 말입니까?” “이 녀석을 제가 잘 키우고 보내준 것이리라고…….” 그는 말을 잇기가 힘든 듯 보였다. 그러나 값싼 감상주의도 황혼에 비치는 빌어먹을 눈물도 없었다. 오로지 단단하게 박혀 긍정할 것은 긍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하는 노인의 주름만이, 그 갈색얼굴에 감정조차 깎아낸 화강암처럼 만들어버리는 그 주름만이 내 눈에는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존경해야 했으리라. 노년의 안정이란 재물도 환경도 아닌 가부좌를 튼 영혼의 부동자세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내가 팔을 내밀며 말했다. 그는 끄덕이는가 싶더니 노란 털 뭉치를 내게 내미는 것이었다. 그것을 안아 펼쳐보니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엎드린 채 눈으로 내 발길을 쫓던 늙은 개의 온전한 몸체가 내 무릎 위에 놓여졌다. 눈곱이 낀 눈꺼풀은 닫혀있었고, 입꼬리에는 사람과 같은 경멸이나 조소가 없는 것이 어쩐지 가련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이었다. 그토록 평화롭고 알 수 없는 표정을 죽음이 만들어놓고 갔다. 죽음. 죽음. 죽음. 생명의 가을걷이를 위해 항상 우리들의 머리 위를 맴도는 것이. 나는 개를 노인에게 돌려준 뒤 창고 쪽으로 향했다.
나는 창고에서 삽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노인은 나를 쳐다보더니 묵묵히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현관에서 등산용 신발을 신고 삽을 쥔 채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거리를 걸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거리는 한적했다. 거리는 항상 한적할 것이다. 이 내륙에서 도시를 비추는 태양은 사람을 도망치고 싶게 만들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서로 한 마디도 대화 없이 뒷산으로 향했고 노인은 여전히 품에 그것을 안고 있었다.
뒷산 중턱에서 나는 땅을 팠다. 등산로와는 꽤 떨어진 곳이었다. 내가 땅을 파는 모습을 보며 노인은 개를 안은 채 옆에서 오직 서있었다. 그의 얼굴에 왠지 모를 안도가 애수의 뒷면에서 보이고 있었다. 나는 땀을 흘리면서 다시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술을 먹지 말 것을. 나는 30분 정도 땅을 팠고, 충분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노인을 쳐다보자 그는 개를 얼굴로 가져가 품더니 노란 털의 냄새를 맡았다. 더 이상 그 개의 냄새가 나지 않을 털의 냄새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판 구덩이 안에 가만히 개를 내려놓았다. 우리는 흙을 덮었고, 태양은 이미 다 져버린 뒤였다. 산속은 까맣고 가끔씩 청록빛이었으며 벌레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우리는 흙을 덮은 자리 앞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멀리서 자동차들이 굴러가는 엔진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도시라는 단어가 유별나게도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시베리아로 가자고 나는 다짐했다.
어떤 시체도 썩지 않을 만큼 추운 곳으로.
끝.
Posted by Li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