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포한다

글/시 2015. 7. 1. 05:26 |

나는 선포한다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바
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할 것이다.
내 자멸의 순간들에 부디 비극의 색깔을 칠하지 말라.
희망을 짓밟은 토양에서 자라는 깨달음처럼
내 몸에는 끓는 듯한 피가
혈관의 벽들을 태우며 흐르고 있다.
감상이 사멸한 불행의 인생에서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암시를 보았다.
사형수들이 목 매달리고
소녀들이 손목을 절개하는 유쾌한 시대에
길게 빼 물린 혀와 교복의 스커트를 결합하여
혈액이 방울져 뚝뚝 흐르는 에로스를 모두에게 선고하라.
이것은 너무나도 진지한 농담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선포한 농담이다.
그 이후로 모두가 뇌수를 달구며 매달려왔던 농담이다.
자기(그는 분열되었고)
자신의(그는 왜곡되었고)
판단력도(그는 이성理性의 범위를 측정할 수 없게 되었고)
신뢰할 수(그는 가상이 뜻하는 바를 잊어버렸고)
없게(그는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잃어버렸고)
되었나니(그는 다원주의 속에서 영원히 방황하게 되었다.)
내 묘비는 어디에도 세워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보는 여름의 환영들은 감히 환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아, 아아! 나는 노래 부르고 싶다. 나는 비명
지르고 싶다. 더 깊은 땅굴 속으로.
신과 악마는 필요성을 상실했다. 그것들은 이제
신비주의자들의 노스탤지어에만 존재한다―사실은 신비주의자들이야말로
노스탤지어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
샹그릴라도 유토피아도 지상낙원도 무릉도원도 천국도
결국은 생물학의 위장 속에 있었고
우리는 이제 물리학의 이름으로 공허를 관측한다.
곧, 나는 죽지 아니하니 나의 묘비를 깎지 말라.
실상은 그 누구도 죽지 아니하고―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죽지 아니한다.
그 미스터리, 모든 지독한 농담의 수원지로 말미암아
최선은 항상 광기의 지팡이를 들고 휘두르며
불행을 불행이 아닌 불행으로
절망을 절망이 아닌 절망으로
오로지 삶에 들러붙어 노래를-노래를-노래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해
인류는 모조리 미치광이가 되게 생겼다.
지구가 칠십억의 분열증 환자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말에
반론하지 말라. 이것은 가장 낙관적인 예측이다.
언어철학이라니…….
여인이여, 그대가 낳은 것들은
생도 사도 아닌 광기의 부품이라오.
그러니 부디
내가 살아있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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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의 노래

글/시 2015. 6. 22. 08:22 |

꼽추의 노래



1.

당신의 맨 밑바닥에 분노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가?


2.

경멸과 조롱의 팡파르가 울리오.

추한 곱사등이의 몸뚱이로 거리를 맴돌면

날아오는 돌멩이와 욕설이 차라리 즐겁다고 내 굽은 등은 웃으오.

아! 그런데 나 하나 모호한 것이 있오.

언제부터 내가 곱사등이의 몸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으오.


나 어느 밤 사람들 몰래 어린아이 하나를

마대자루에 잡아넣고 내 소굴로 달렸오.

굴속에서 나는 아이를 꺼내

<이것보아. 이것이 행복해지는 약이야.>하며

알약 하나를 먹였오.

고독과 오래 살다보면 자연히 약학과 친해지고

어둔 굴속은 정신의 연금술이 태어나는 곳이오.


나 램프로 밝힌 굴속구석에서

손톱이나 물어뜯으며 아이의 눈동자를 보았오.

눈에 황금색 고리가 돌았고

속에서는 이죽거리는 멸시가 보였오.

낙타 혹 같은 내 등이 키들거렸고

당췌 내게 뭘 바라겠오?


여기가 반대편이오. 와서 무엇이든 좋으니

붙잡고 찬미하시오.

병신 몸뚱이밖에 가진 것 없는 내가

당신들 눈동자와 지저분하게 흘러내린 입꼬리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것이 무어 중요하오?

나는 진흙으로 여러 번 사람도 빚어보았오.

그 뒤에 전부 짓이겨버렸오.


이제 나 햇빛 찬란한 날 거리에 나가면

아이 잡아먹는 꼽추라고 매질을 당하오.

나는 수그리고 엎드려 돌팔매질을 당하며

저쪽에서 돌 던지는 아이를 보며 웃으오.

매질이 끝날 때까지 나는 남들 몰래

행복의 알약만 두알 서알 삼켰오.


나는 늘 웃소. 와서 같이 웃으시오.

나 아무도 찬미하지 않고

나 아무도 손잡지 않고 웃으오.

나 가지가 모두 잘린 나무를 보았오.

푸른 풀밭에서도 그것만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오.

불구에 상처 받은 것들만이 생명을 노래하오.

흑사병에 걸린 환자가 더욱 빛을 찾듯이.


부디 모두 행복해지시오. 그럼 나는

당신들 행복한 이들의 사회를 어두운 밤에만

골목골목을 전전하며 곁눈질로 찾겠오.

내 주머니에 수북한 행복의 알약은

당신들이 삼킬 때에만 내게 의미가 있오.

나 길게 기른 손톱과 굽은 등으로

그림자 진 가로등 뒤에서,

웃는 채로 굳어버린 내 혐오스런 얼굴을

태초의 표정으로 돌려놓을 신선한 물줄기를

공허하게 기다리고만 있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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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것들

글/시 2015. 5. 23. 05:48 |

불타는 것들

 


보헤미안의 모습으로 도시 뒷골목을 거닐 때
하늘에는 태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쪽짜리 달이 뭔가를 외쳤고
나는 알아듣지 못하여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건물들의 잔해를 헤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아 헤맸다.

 

자유를 추구하거나 자유밖에 알지 못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은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굳은 피로 만든
두꺼운 사슬이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이미 사형수의 피로 채워진 늪에
빠져버려
그들의 완전한 사회를 노래했다.

 

달이 또 한 번 무언가를 외쳤고
내륙의 도시에서 자란 나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가 마시고 싶어
가본 적도 없는 고향의 노스텔지어를 울부짖었으나
아, 눈물은 다 말라있었다.
내 심장의 피조차 말라있었다.

 

이 건조한 도시에서 도대체 무엇을 만들 수 있담?
나는 의문하면서도, 커다란 캔버스에
불타는 숲을 그렸고
뛰쳐나오는 짐승들과 가죽이 타버린 갈색 여인들을 향해
손을 뻗고, 옳아, 그때서야 나는 울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낡은 술병에 담긴 독주를 꿀꺽꿀꺽 삼켰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평화가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아니야! 그렇지 않다. 결코
평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더 독한 광기를 향해 혀를 뻗었다!
의사들의 알약과 불이 붙는 술잔들 그리고
감금 되어 등이 굽은 자들의 희열, 그런 것들이
나를 썩히고 있었고, 나를 썩히는 것은 희망과 평화였다.
<네가 앙드레 지드의 단말마를 잊을 리가 없다.> 존경해 마지않는 사탄이여.

 

달이 또 한 번 소리 질렀다.
그때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달은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것은 계시였다. 또 한 번의 엑소더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오로지 한 명 만을 위한, 하나의 영혼만을 위한
바다로, 바다로!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나의 항해는 끝이 없어야할 것이다.
바다가 뒤집어지는 파도와 해일을 마주할 때
불타는 물과 익사자들의 시체가 나의 작은 나룻배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때
나는 나의 죽은 형제들을 위해 환희의 비명을 지를 것이고
적그리스도라는 거창한 이름을
기뻐하며 내 몸에 낙인을 찍겠노라.

 

세계의 폭력과 미친 남자가 존재하는 한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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