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포한다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바
나는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할 것이다.
내 자멸의 순간들에 부디 비극의 색깔을 칠하지 말라.
희망을 짓밟은 토양에서 자라는 깨달음처럼
내 몸에는 끓는 듯한 피가
혈관의 벽들을 태우며 흐르고 있다.
감상이 사멸한 불행의 인생에서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노골적인 암시를 보았다.
사형수들이 목 매달리고
소녀들이 손목을 절개하는 유쾌한 시대에
길게 빼 물린 혀와 교복의 스커트를 결합하여
혈액이 방울져 뚝뚝 흐르는 에로스를 모두에게 선고하라.
이것은 너무나도 진지한 농담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선포한 농담이다.
그 이후로 모두가 뇌수를 달구며 매달려왔던 농담이다.
자기(그는 분열되었고)
자신의(그는 왜곡되었고)
판단력도(그는 이성理性의 범위를 측정할 수 없게 되었고)
신뢰할 수(그는 가상이 뜻하는 바를 잊어버렸고)
없게(그는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잃어버렸고)
되었나니(그는 다원주의 속에서 영원히 방황하게 되었다.)
내 묘비는 어디에도 세워지지 않을 것이고
내가 보는 여름의 환영들은 감히 환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아, 아아! 나는 노래 부르고 싶다. 나는 비명
지르고 싶다. 더 깊은 땅굴 속으로.
신과 악마는 필요성을 상실했다. 그것들은 이제
신비주의자들의 노스탤지어에만 존재한다―사실은 신비주의자들이야말로
노스탤지어의 파편에 지나지 않는다.
샹그릴라도 유토피아도 지상낙원도 무릉도원도 천국도
결국은 생물학의 위장 속에 있었고
우리는 이제 물리학의 이름으로 공허를 관측한다.
곧, 나는 죽지 아니하니 나의 묘비를 깎지 말라.
실상은 그 누구도 죽지 아니하고―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죽지 아니한다.
그 미스터리, 모든 지독한 농담의 수원지로 말미암아
최선은 항상 광기의 지팡이를 들고 휘두르며
불행을 불행이 아닌 불행으로
절망을 절망이 아닌 절망으로
오로지 삶에 들러붙어 노래를-노래를-노래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해
인류는 모조리 미치광이가 되게 생겼다.
지구가 칠십억의 분열증 환자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는 말에
반론하지 말라. 이것은 가장 낙관적인 예측이다.
언어철학이라니…….
여인이여, 그대가 낳은 것들은
생도 사도 아닌 광기의 부품이라오.
그러니 부디
내가 살아있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