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함에 대하여

글/시 2015. 4. 2. 08:37 |

명백함에 대하여


 내 애절함은 닳고 닳아 불경한 집착이 되었다. 애당초 사랑이란 없었노라. 모든 성애(性愛)가 성욕(性慾)으로 변모하면서 나는 태어났다. 피를 가득 담은 가죽주머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이 나라에서 네온사인이 가장 밝게 빛나는 곳에는, 자신의 등에 일종의 날개가 달려있다고 상상하는―누구의 깃털이든 밟기 위해 혈안이 된 소년들이 담배연기로 자신의 메마른 몸을 감추며 걸어 다닌다. 나는 그늘에 숨어 술병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셔버렸다. 바다 건너의 일 따위 나는 모르오! 나는 외쳤다. 변명거리가 필요했고 입안에 머금은 것은 온통 핑계뿐이었으므로. 정직을 추구하기 위해 흰 것들에게는 모조리 잉크를 부어주었다. 비단 바다 건너뿐만이 아니라 오만 지평선들의 너머에 있는 것들은 송두리째 모른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돌아오라. 부디 돌아오라. 그대의 죄악이 모두, 죄악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은 모두 죄악이 되어 끈적거리는 선혈로 웅덩이 진 곳에. 여인들은 잉태하고, 여인들은 손톱을 세우고 잉태한다. 나는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누구의 아내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값싼 단어들은 새로이 만들어져야한다. 그러나 우선은 내리쳐 산산이 박살내어야한다. 나의 잔혹한 욕망들을 말로 만들어내기만 해도 너무 많은 눈물들이 쏟아져 내린다. 오, 부디 나를 동정해주시기를! 너무 많은, 너무 많은 언어들에 잠겨 나의 언어는 목이 졸렸다. 봄 햇살 밑에서 가볍고 얇은 옷을 입고 활보하는 여인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혀를 깨문다. 흉기를 품고 사는 것이 나 자신인지 당신들인지, 광기는 투명해질수록 그 밑으로는 혼돈과 모순을 뚝뚝 흘려댄다. 마침내 모순이 더 이상 모순이 아니게 될 때까지 광기는 깨끗해진다. 발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간질 환자처럼 잉크를 퍼부어주었다. 내 병에는 다시 잉크가 차올랐고 나는 마셔버렸다. 나는 시학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미학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 수첩 페이지를 먹은 염소는 죽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남은 조각을 집어삼켰다.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술집으로 도망쳤다. 생각해보니 매일같이 반복하고 있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지상의 인간의 손을 붙잡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는 눈부시지 않은 황혼과 같아 위대했고 그 황혼에서는 가끔 날벼락이 쳤다. 그러나 매일 찾아오는 침묵의 새벽이여. 너는 광란이었고 미치광이들의 어머니―차라리 어머니의 치맛자락이다. 나는 그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그 이글거리는 것을 경외하는 추한 범죄자였다. 시꺼멓게 중독된 내 심장을 나는 꺼내 바친다. 그 독의 이름은 시(詩)다. 그 중독은 타인의 영혼을 머리 째 집어삼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서, 나는 불유쾌하게 부유하거나 늪 위를 걷듯 천천히 침수되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왕이 되었다…….
 짐이 선포하노니 이 땅에 더 이상의 자비나, 혹은 자비라고 착각되는 것은 없을 지어다! 가신들이여, 짐은 왕정을 부정하노라. 왕정뿐만이 아니라 신정을, 공화제를, 민주제를, 모든 정부를 부정하노라! 오로지 야만만을 행하라고 짐은 명령할 것이다. 폭력과 테러와 반달리즘이 법이며, 또한 아무것도 법이 아닐 지어다! 유일한 지침인 아름다움은 피와 살점과 뼛조각 속에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 내게 바치는 자는 칭송받을 것이다. 갓 태어난 자신의 새끼를 베개로 눌러 질식시켜 죽이는 어미에게는 짐이 눈물로 키스할 것이다. 약자를 구타해 죽이고 그 살점을 모닥불로 구워먹는 잡배들이 더 많은 식인을 행하도록 보조하라. 아버지를 죽이고 선생을 죽이고 짐에게마저 송곳니를 드러내는 소년에게, 짐은 기꺼이 목을 내어줄 것이다. 부디 모든 것을 원시의 혼돈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하라……. 그것은 그리도 아름다웠노라. 심지어 내가 왕이 아닐 때에도 그랬노라. 내가 거지에게 주머니를 털어 가진 것을 모두 내어주었을 때, 나는 미치도록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왜인지는 몰랐다. 영원히 모를 것이다. 나는 영원히 부랑하는 왕일 것이다.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무언가에게 패배했으나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Lim_
:

삶과 비참

글/시 2015. 2. 18. 03:11 |

삶과 비참



세상은 잠들어있고 나는 내 살들을 물어뜯고 있다.

―그런데 누가 세상을 세상이라고 불렀는가?

잠든 이들이 가득한 영안실이나

서랍 속에 죽어있는 개미떼들이나

<세상>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이해하는 데에는

언제나 죽음이 필요하다.


비참. 구토하고 싶어도 구토할 수 없는

나는 카페인을 왼쪽 팔에

모르핀을 오른쪽 팔에 주사하면서

입으로는 흰색의 중추신경억제제를

한줌씩 삼키고 있다. 비참함을 위하여.

내일도 내 눈에 어둠은 없을 것을

새벽이 가면 나는 비명 지르고 아파할 것이다.

도대체 왜 태양이 떠야하는지 소리치며 저주할 것이다.


모든 무게들이 타들어가고

남은 재로 만든 새벽 두 시의 밤공기는 참으로 좋았지!

그대로 나는 별나라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겠다.

화학과 신경약리학이 만들어낸 몸뚱이는

검은 나무 밑에 눕혀두고.


거울을 보면 눈이 붉은 포식성의

늙은 야수가 보인다. 담배를 문, 포기의 낯을 한.

심지어 내 영혼은 아직까지도 하늘만을 보고 있다.

<살아가고 싶지 않다>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가

다른 의미를 가지는지 아닌지

오로지 폐에 니코틴만을 꾸역꾸역 밀어 넣다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어버린다.

세상은 한때 아름다웠는데


자살하는 자를 비웃고 살아가는 자를 경멸하고

냉소주의는 나에게도 칼을 들이댄다.

아무도 특별할 수 없다. 아무도.

때가 되어 안구출혈이 일어나면 나는 성당으로 향해

해머로 하얀 성모상을 때려 부수고

사랑을 설파했던 어느 가엾은 남자의 손과 발에서 못을 뽑아

십자가에서 내려 껴안고 울어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버림받은 뒤부터 살아가는 것이라고

목수의 아들에게 눈물로 속삭일 것이다.


아프다. 모든 것이 정말로

더럽게 아프다.

Posted by Lim_
:

2015/01/16 완성.


1. 시 쓴다고 거의 반년동안 소설에 손도 안 대다가 쓴 것.

2. 나도 몰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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