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뿐인 영혼이 되려고, 내 살과 피를 버렸다
글/시 2016. 6. 30. 03:48 |텍스트뿐인 영혼이 되려고, 내 살과 피를 버렸다
만약
이 세상에 행복한 이가 있다면
정말이지 행복뿐인
내 존재의 근거를 뒤흔드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렇게 가정했다
반드시 찾아내 그 이의 뇌수에
남근을 쑤셔 넣고 강간이라는 폭력으로
영원히 앓게 해주리라고
이봐, 그러나 그런 상상 조차도
너 자신만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네가 행복하지 못한 현실을
그저 분노로 대치하려는
어리석고도 서글픈 폭력이라는 것을
자네는 정말 모른단 말인가.
아! 알고말고. 나는 말이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내가 행하는 모든 모순도
내가 행하는 모든 이율배반도
나는 논리의 힘으로 전부 지배했다네
그럼에도 나는 폭력과 퇴폐를 사랑해
복수만을 깎아왔다네.
애당초 행복이란 무엇인가?
오, 그것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음에도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나는 내가 미치광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네.
논리의 주박에서 벗어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네. 나는 참으로
더러울 만큼 더럽혀진 행운아였어.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아는가?
도파민, 세로토닌, 아드레날린.
그것들의 과다분비가 끝나는 시간. 삼 개월.
친구여, 생물학에, 뇌과학에 빠지지 말게나.
부디 인간으로 있어주게나. 호르몬은
널 정의하지 않아. 오로지 너의
뒤틀린 논리만을 실증주의로 과시하는 것뿐이지.
세상에는 여러 가지 입장들이 있지
무엇을 배웠느냐에 따라서
어떤 지식을 먹어치웠느냐에 따라서
인간은 인간이기도 하고 유기체이기도 하고
성령이기도 하고 아미노산의 후손이기도 하다네.
그러나 나는 진리를 보았어
모든 지식들이, 하나의 혼돈이 되어가는
카오스적인 에이도스의 실체를.
그렇다면 무엇을 믿을 텐가? 나의 동료는 말하고
아무것도, 그저 영겁을.
너무도 일찍 끝나버리는 영겁 속의 순간을.
그렇다면 자네는 잃어버리겠군
자네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릴 거야.
아! 물론이지. 난 그저
내리막길 밑에서 기다리겠네,
내 존재를 뿌리박고, 식물이 되어 기다리겠네.
동료는 울었다. 고함치며 울었고 미치광이처럼
사방을 뛰어다니며
이 역사조차 사멸하지 않는가?
인간이 우주의 눈을 가진다면
그 무엇을 과연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너무 넓어진 시야는
자네 자신을 붕괴시킬 거야.
나는 서투른 손으로 기타를 튕기지
음악은 단말마, 문학은 불타오르는 양피지들의 기록
천재의 미술조차도 언젠가는 먼지가 되는 것을
그러나 무어 유감일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이어서 만족하고,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의 일을 하네.
허무주의를 멀리 하게나. 난 계속 중얼거린다.
허무주의를 멀리 해. 그렇지 않다면
자네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더라도
스스로 구겨져 소멸해버릴 거야.
아!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너무
잔혹하지. 인간에게, 그래 인간에게!
오로지 잔혹하기만 하지.
도대체 누가 진실을 말했는가?
도대체 누가 영겁을 말했는가?
닫힌 문, 불이 붙을 정도로 독한 리큐어.
약쑥에서 뽑아낸 환각제, 미쳐 휘청거리는 취객들.
봐, 오로지 감각이야. 오로지
감각뿐이야.
이성도 양심도 영혼도 믿지 말게
우리는 그저 피어올랐다 꺼지는 불꽃일 뿐.
이보게, 시인이라는 명예에
인간이 되는 것조차 포기한 당신.
그래도 자네에게는 아직 인류애가 있음을
인류애가 없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음을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네, 나의 친구여.
옳아, 그것은 사실이야. 여름의 열풍이 불고 간 자리에도
감상주의자의 눈물은 이슬처럼 풀잎을
타고 흘러내리지.
난 심장을 절개했어, 왼쪽과 오른쪽을
절개해 떨어트려놓았어. 간질 환자들이 뇌를 자르듯이.
친구여,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겐가?
그것은 간단해, 나는 한때 인간의 맛을 보았고
인간임의 맛을 보았고
나의 영혼의 척수에 에틸알코올이 가득 찬 주사를 놓았고
나는 진리를 보았다네.
아무것도 진리가 아니라는
세상이 뒤엎어질 진실을.
진실? 네가? 정말로?
이번에야말로 내 팔을 뻗겠네, 이 벌레 먹은 사다리를
움켜쥐고 늪에서 빠져나와 마지막 숨을 쉬겠네.
아, 미학에 미친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반란이지. 나는 그저 얼굴을 감싸고
자네가 소금과 모래의 재가 되어가는 것을
상상만 하겠네. 자네의 최후를 바라보지 않겠네.
인간 껍질을 뒤집어쓰고 인간을 포기하는 작자를
도대체 누가 제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아름답도록 하게나
혼란과 혼돈 뿐인 세계에서
다만 아름답도록 하게나, 영겁이 주고 간
천둥소리 밑에서, 스쳐지나가는 빛처럼
0.1초의 절규는
우주보다 나이가 많다네.
남자는 미루나무 아래에 누웠고
구름은 오팔 빛으로 번쩍이고
곧 밤이 올 것이다.
부디 얼음 같은 빛으로 내 존재를 지워주게
부디 얼음 같은 열파로 내 의식을 녹여주게
세상은 아직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하늘엔 미친 듯이 천둥소리가 나지만
번개를 쥔 신은 그 위에 있지 않다
천둥소리에 움찔거리는
인간 모양의 인형만
사고하는 고기인형만
상념에 부풀어 마침내는 폭발한다.
잘 가게, 친구여
그대는 모든 것에 대한 반역자였네.
그리고 필시 고독해질 테지.
지옥불 속의 영혼처럼
그대는 필시 고독해질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