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내 인간성의 안쪽
무언가가 고장 난 채 방치되어있다.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다는 것은
단지 살아있는 것의 몇 배의 슬픔이다.
피가 끓는 것을 느낄 때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은
내 무참하게 강간당한 얼의 탓이다.
얼간이. 나는 인간으로서의, 아니
생물로서의 구성물이 결핍되어있다.
모든 비극은
그저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기만 할뿐.
내 심장은
고통과 슬픔과 비참함만을 담은 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온기도 잃은
납덩어리처럼.
애당초 내가 심장이 있기나 해? 중얼거리면
너도 심장이 있기 마련이지, 다만
넌 네 가슴을 절개하여 그 펌프기를 뜯어내고 싶다는 욕망에
차례차례 이가 빠지듯 차례차례 잃어버린 거야.
그야 이것은 고통밖에 주지 않으니까
인간도 괴물도 아닌 채로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는 건
너무 자괴적인 비참이야
그럼에도 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물샘이 마르면 통증도 말라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눈물도 흘리지 못하면서 울부짖는
끔찍한 혼란의 덩어리가 되었다.
누군가 제발, 그 손의 온기를 내게 보여줘.
비극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비극에 젖은
분열된 마음, 분열된 정신, 분열된 영혼
<자아>라는, 학술을 위해 임시로 지정된 개념은
실상 인간의 그 무엇도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드id라는 것도 불가해한 것을 지칭하기 위한
언어화를 위한 불안정한 껍데기에 불과하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천 년도 전부터
절대 언어화 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고
시각화 될 수 없는 것을 시각화하고
추상화 될 수 없는 것을 화성학에 무리하게 끼워 넣고
그것이 우리가 계속 추구해왔던 실패였다.
우린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어떤 방식으로든
완벽한 필치로 서술하기를 갈망하다가
실패하고 죽어갔다. 마침내는 광기와 어깨동무를 한 채.
우리에게는 천 개의 얼굴이 있고
그 모든 얼굴은 우리 자신이 아니며
동시에 그 모든 얼굴이 우리 자신이여
눈 뜬 자에게 광증이란 언제나 예정된 것이었다.
아, 모든 위대한 실패에 영광 있으라.
실패는 실패만으로 위대하리라.
승리도 패배도 득도 실도 없는 광란하는 삶에
적어도 한 줄기 눈빛만이라도 비쳐라.
내 모든 혼돈을 담아
눈물 한 방울, 단 한 방울만이라도
떨어트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오늘도 방구석에서 내 영혼은 시취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