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방울

글/시 2016. 9. 30. 03:42 |

눈물 한 방울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내 인간성의 안쪽

무언가가 고장 난 채 방치되어있다.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다는 것은

단지 살아있는 것의 몇 배의 슬픔이다.

피가 끓는 것을 느낄 때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은

내 무참하게 강간당한 얼의 탓이다.


얼간이. 나는 인간으로서의, 아니

생물로서의 구성물이 결핍되어있다.

모든 비극은

그저 내 머리를 스쳐지나가기만 할뿐.


내 심장은

고통과 슬픔과 비참함만을 담은 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온기도 잃은

납덩어리처럼.


애당초 내가 심장이 있기나 해? 중얼거리면

너도 심장이 있기 마련이지, 다만

넌 네 가슴을 절개하여 그 펌프기를 뜯어내고 싶다는 욕망에

차례차례 이가 빠지듯 차례차례 잃어버린 거야.


그야 이것은 고통밖에 주지 않으니까

인간도 괴물도 아닌 채로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는 건

너무 자괴적인 비참이야

그럼에도 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물샘이 마르면 통증도 말라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눈물도 흘리지 못하면서 울부짖는

끔찍한 혼란의 덩어리가 되었다.


누군가 제발, 그 손의 온기를 내게 보여줘.


비극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비극에 젖은

분열된 마음, 분열된 정신, 분열된 영혼

<자아>라는, 학술을 위해 임시로 지정된 개념은

실상 인간의 그 무엇도 규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드id라는 것도 불가해한 것을 지칭하기 위한

언어화를 위한 불안정한 껍데기에 불과하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천 년도 전부터

절대 언어화 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고

시각화 될 수 없는 것을 시각화하고

추상화 될 수 없는 것을 화성학에 무리하게 끼워 넣고

그것이 우리가 계속 추구해왔던 실패였다.


우린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어떤 방식으로든

완벽한 필치로 서술하기를 갈망하다가

실패하고 죽어갔다. 마침내는 광기와 어깨동무를 한 채.


우리에게는 천 개의 얼굴이 있고

그 모든 얼굴은 우리 자신이 아니며

동시에 그 모든 얼굴이 우리 자신이여

눈 뜬 자에게 광증이란 언제나 예정된 것이었다.


아, 모든 위대한 실패에 영광 있으라.

실패는 실패만으로 위대하리라.

승리도 패배도 득도 실도 없는 광란하는 삶에

적어도 한 줄기 눈빛만이라도 비쳐라.


내 모든 혼돈을 담아

눈물 한 방울, 단 한 방울만이라도

떨어트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을.


오늘도 방구석에서 내 영혼은 시취를 풍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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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아의 여행

글/시 2016. 9. 22. 10:03 |

사생아의 여행



1.

 내가 무얼 하고 있었더라. 아, 그렇지, 삶을 살고 있었지. 질리지도 않는 자기발견의 영원순환. 그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었지. 이걸 봐, 네 유년기에서 조르바가 웃고 있어.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 난 삶을 써내고 있었지. 난 인간가죽으로 표지를 입힌 일종의 서적이 되었고, 지식과 서술과 연구가 내 영혼을 대체했어. 몇 해 전인가 스승께서는, 그런 것들은 근대에 멸종해버렸다고 하셨지. 그러나 아니었어. 나를 봐, 이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생한 종이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나는 실감나는 환영이야. 현대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는 돌연한 근대의 사생아야. 많은 젊음들이 나와 첫 악수를 나누고 항상 하는 말은: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자유롭습니까?> 아하! 세상에 아무런 진리도 없다지만 난 한 가지 진실을 알지. 세상에게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는 진정한 자유란 살아있는 것만으로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야. 만일 자유의 진실 된 얼굴을 그들이 본다면 그 누구도 자유로운 영혼이나 삶 따위는 바라지도 않을 걸. 그런데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2.

몇 주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내 손이 일을 멈추자마자 난 도망자처럼 급히 외투를 걸치고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가 수면제의 환각에 몽롱해 할 때 내 몸은

어느새 하루를 거슬러 올라갔다.


나는 단지 몇 주를 위하여 내가 나의 두 손목을 잘라냈다는

그러한 생각에 미쳐 기뻐 날뛰었다

지구의 반대편은 사방이 넓고 평평한

인간의 목숨 따위는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스러지는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 위험 덕분에 나는 기름으로 칠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친구가 길을 알려주었다

더 깊은 대륙의 한 복판으로 가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바라마지않던 태양과 모래가

거기에 있을 거야.


과연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석유의 냄새를 흠뻑 맡으며

오로지 흰색뿐인 태양 아래서 도대체 얼마동안이나 서있었던가

곱디고운 하얀 모래는 내 맨발을 묻고 발목까지 올라 찼다

그런데 내가 울었던가?


아니야! 사막에서는 일체의 수분이 모두 금지된다.

그래서 감상주의자들이나 허무주의자들은 사막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습기 차고 울적한 도시의 지하실에서

그들은 술잔이나 부딪히며 허망한 인생에 건배를 외친다

마치 내가 도시에 있을 때 매일 그렇게 하듯이.


눈물은 휴가가 끝났을 때에나 뒤늦게 굴러 나왔다.

잘라냈던 손목은 나도 모르게 다시 붙어 있었고

내 다리는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나는 인생을 증오해.」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나는 변명했다.


그래, 여행은 어땠나?

글쎄요. 벌써부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일>을 쉬었었다는 것은 알아요.

이 땅으로 돌아오니 나의 손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전투태세에 든 군인처럼 손목에 붙어있더군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자네는 이곳에서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어,

이 게으르고 궁핍한 무정부주의자야.

아니, 나는 분명히 <일>을 했습니다. 차라리

<일>에 미쳐 살았습니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들은 절대로 모를 거예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내 손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당신 같은

왜소하고 등이 굽은, 탐욕스러운 사상가들은 말입니다.


터벅터벅, 무거운 구두를 이끌고 나는 돌아간다.

처음부터 텅 비어있던 트렁크를 끌며

나의 다락방, 나의 <일터>로 돌아간다.


어느새 이 땅은 가을이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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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니로 덮인 눈동자



온몸에서 이빨이 돋는다.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길을 걷다 네온의 석양 속에서 웃는 이를 보면

온몸의 이빨이 떨린다.

차와 버스들이 소음을 뿌리며 달리고 머리 위에선 전철바퀴가 진동한다.


어제 내린 비로 포도(鋪道)는 더럽게 젖었다.

어제 내린 비로 도시민들의 영혼의 바지자락도 더럽게 젖었다.

하늘도 아직 젖어있다. 먹구름 없이도 하늘은 캄캄하다.


얼마 전 꿈에서 안경을 밟았다.

깨어보니 안경은 짓뭉개져있었다.

이불 주변엔 빈 약통들이 굴러다녔다.

손으로 그것들을 씹어 먹어 흔적을 감췄다.


안녕하십니까, 의사선생님. 무려 한 달 만이군요.

그런데 오늘도 저는 정직하지 못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의 눈에는 아직도 내 손목에 돋은 이빨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어요. 차라리

내 입을 가져가버리시지요.


암소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방금 잘라와 피가 뚝뚝 흐르는

<구하기 힘든>.

노자가 말했던 것이 옳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노자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말입니다…… 안타까운 감정이라면

나치스들과 혹은 니체에게나 주도록 하세요.


이 이빨들이 전부 자라고 나면

위험한 줄타기도 웃음소리로 말미암아 끝날 것이다.

아니요, 프로이트는 죽었어요.

하여 내 정신은 중력가속도에 영향을 받는다.

처음 손가락 끝에 이빨이 돋는 것을 볼 때는 무서웠지

물론 지금도 무서워.

그러나 갈증은 더욱 크고

웃음소리는 그보다 더욱 커다랗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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