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타인이 아무도 없다
글/시 2016. 11. 23. 18:21 |내 안에는 타인이 아무도 없다
내가 괴로운 건 수마(睡魔)의 탓이 아니야
내가 게으른 건 약학(藥學)에서 시작된 게 아니야
내 한쪽 눈이 떠지지 않는 건
뜨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야
이제 난 원망할 사람도 없는데
모두가 잠든 새벽마다 식은땀을 쏟아내며
거친 숨과 벌떡 일어나는 건
엄마, 그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죠
엄마, 누구에게도 죄는 없었어요.
그래, 그러니 난 도시의 시궁창에 흐르는 하숫물을
전부 긁어모아 내 늑골 속에 담아두고 살겠어
왜냐하면, 엄마, 누구에게도 죄는 없었으니까요.
자기 손으로 장난감을 내던진 아이가
망가진 장난감을 붙들고 울어도 되는 권리는
아이가 아이일 때만 있지. 가슴의 서랍을 열 때마다
맡을 수 있는 원망의 냄새, 증오의 냄새, 불완전한,
결함품의, 그러니 난 서랍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버릴 거야
이건 박애주의가 아니야
이건 박음질한 상자 속의 사람들 이야기도 아니야
아무도 증오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내 육신에 백팔 개의 대못을 박고
나머지 한쪽 눈도 감겨줘
이런, 증오할 사람이 나밖에 남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다 내 적이고 증오스럽네……
지옥에서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누더기가 된
내 영혼을 보고 당신이 고결한 동정의 마음으로
칼질과 채찍질에도 굴하지 않고 내 손을 잡으러 온다면
사랑스러운 당신의 손을 잡아서
무간지옥의 밑바닥에, 피연못의 밑바닥에
무한히 처넣어줄게. 이제 내가 죄악의 상자로 쓰는 건
내 마음 뿐이니까.
내 영혼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