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감금

글/소설 2017. 7. 7. 15:20 |

2017/07/06 완성.


1. 나는 이제 내가 누구를(혹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 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2. 이 길도 결국은 끊고 떨치고 떠나는 길이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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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아이

글/시 2017. 6. 15. 05:38 |

세계의 아이



그것은 한 줌의 화약이었고 불어오는 폭풍이었고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지진이었고 터져 흐르는 용암이었다가

마침내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새벽 네 시의 흰색과 검은색의 구둣발들 사이에서

군청색으로 휩쓰는 어둠이었고 침묵하고 있는 재앙이었다

더러는 재앙이기를 갈망하는 움찔거리는 심장이었다


심연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사물들 같은 세상에서

그는 거대한 조소를 믿었고 그것을 경멸하며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선지자였다


짐승들은 무의식의 기쁨을 포효했고 마천루들은

굽어 내려다보는 콘크리트의 눈동자였고 그러나 다만

인간만이 직선과 기하학을 찾아 말라가고 있었다


총탄이 활개를 치는 전쟁터에서 그는 홀로 도끼만을 들었고

죽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를 비껴갔다 그는

살과 뼈와 피와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그래서 절대 총을 들지 않았다


마침내 한 줌의 화약으로 돌아가 부스러지며

철모 밑에 깊게 묻힌 그것은 가끔씩 천공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언젠가 잔악하게 폭발할 것을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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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발심 나름의

글/시 2017. 5. 30. 20:57 |

초발심 나름의



어드메냐 이름 없는 사람들 있거나 아니 있거나 했던 기억도 못할 언덕빼기

허리 숙여 신발끈 단단히 매고 나는 간다 하고 옷깃 털었던 곳이 어드메냐

여하간에 발길 가벼운 절름발이마냥 봇짐도 없이 나는 가기로 했다

동행자는 몇 명의 존귀한 유령들이었으나 나는 산 사람이라 대화할 생각이 없다

가기로 했으니 가야지, 그러니 이제 천만 리를 넘어 내 난 마을에 다시 온다손 하여도

이 마을은 모르는 마을인 것이다 이 마을사람들도 낯모르는 이들인 것이다

가다 가다 지치고 배가 곯아 풀섶에 푹 앉아도 동행 영가들 고수레만 던지고 나는 또 간다

신발끈 묶은 뒤로 그 언덕빼기 뒤로 한 이후 가기만 하는 것이다

만나 악수한 사람도 곧 작별인사 할 사람이고 작별인사 한 사람도 곧 만나 악수할

그런 사람들일 길로 나는 간다 그 외 할 일이라고는 내 양식 송두리째 고수레 던져

발걸음 점점 높아지고 가벼워지다 외롭고 쓸쓸허이 웃으면서 휘적휘적 공중을 걷는 일이다

그릴 사람들이 있으면 있는 대로 떠날 사람들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러니 더욱 가고 또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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