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물원이라는 오브제
글/소설 2017. 5. 26. 10:37 |2017/05/26 완성.
1. 새삼 느낀 것이지만 나는 역시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그 어떤 살아있는 자를 위함도 아니다.
어느 동물원이라는 오브제
우리 동물원을 찾아주신 단 한 명의 숙녀 분! 이 동물원을 책임지는 원장으로서 우리 모든 직원들을 대표해 크나 큰 환영의 인사를 표합니다! 보아하니 대단히 어리둥절하신 모양이군요. 그럴 법도 합니다, 우리 동물원의 이 세계적인 크기와 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전혀 유명하지도―사실은 <유명>이라는 단어조차 쓰기가 부끄럽죠!―, 심지어 그 누군가에게 알려진 일도 단 한 번도 없어 실상 숙녀 분이 우리 동물원의 첫 번째 관람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아마 숙녀 분께서는 산에서 길을 잃으셨던 모양이죠! 그 등산복과 등산지팡이, 그리고 산들로부터 둘러싸여진 이 드넓은 평지에 뜬금없이 세워진 거대한! 그야말로 거대한 건축물을 앞에 두고 지으시고 있는 그 어리벙벙한 표정을 보니 말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우리 동물원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답니다.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저와 수십 명의 직원들―전문 관리인과 청소부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입니다―뿐이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무슨 비밀스런 연구소나 존재를 숨기고 있는 정부시설일 것이라는 생각은 말아주세요. 우리는 단 한 번도 이 동물원의 존재를 숨긴 일이 없답니다. 다만, 그 누구도 우리의 동물원에 대해 알지 못해 언급하지 않으니 굳이 저나 직원들이 밖에서도 이 동물원의 존재를 언급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뿐이죠. 사실 우리는 이곳에서 일하면서도 <이 장소>와 <이 건물>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없답니다. 단순히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우리 동물원의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우리들 직원 일동과 과거 이 동물원에서 일했던, 지금 동물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뿐이랍니다. 그들 중 몇몇은 이미 세상을 떠나기까지 했죠, 슬픈 일입니다만. 여하간! 이곳은 그저 동물원일 뿐이랍니다. 그것도 아주 크고 대단한 동물원이죠! 오로지 관람객의 유희만을 위해 만들어진 평범한 오락시설이에요. 아하, 지금 숙녀 분께서는 「이 불가사의한 원장이라는 작자는 계속해서 동물원, 동물원 하며 언급하고 있는데 왜 어디에도 동물이나 철창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고 계시군요.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의문입니다! 동물원이라면 물론 시각적 향락을 위한 동물들이 있어야지요. 그러나 동물들을 보시기 전에, 제가 이 동물원의 유구한 역사에 대하여 짧게 설명을 드려도 될까요? 아! 감사합니다! 시작은 200년 하고도 50년 전으로 돌아 가야합니다. 250년 전 이 동물원의 창립자이자 첫 번째 원장이었던 Mr. F는 전 세계의 돈을 모조리 쓸어 담은 가장 위대하고도 가장 비열한 비즈니스맨이었답니다. 돈다발로 콜로세움을 서너 개 세워도 지폐가 한참 남을 만큼 돈이란 돈은 모조리 벌어들인 그는, 말년에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나는 이제 세상의 온갖 희열과 쾌락과 돈으로 사들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맛보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말년에 달했으니, 나 아닌 사람들을 위해 남은 돈을 써야하지 않겠는가? 라고요.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의 모범이 아닙니까? 그렇고말고요. 그리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위해 돈을 써야 사람들에게 가장 중대한 이익을 줄 수 있을까? 몇 달의 고민과 철학자, 법학자, 교수, 과학자, 시인, 인문학자 등 수 많은 인텔리전스들과의 논의 끝에 그는 동물원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을 엄청난 동물원을요! 그는 즉시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평지를 매입하고 건축가들과 수천 명의 인부들을 즉시 고용했지요. 지금 눈앞에 보고 계시는 이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고딕풍의 드높은 성과 그 성벽에 그려진 현대미술풍의 그림들이 바로 그 결과물입니다. 이 건물이 우리 동물원의 중심이자 가장 자랑스러운 볼거리죠! 아무튼 그 후에 Mr. F는 저명한 생물학자들을 위시한 몇 명의 과학자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는 앞서 말씀드렸듯 시각적 향락으로 즐길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이익>을 이 동물원의 테마로 삼기 위해서 그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것은…… 아, 미리 말씀드려버리면 재미가 없지요.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면 바로 눈앞에서 그것을 맞이할 수 있답니다!
예? 관람료요? 아하, 무용한 걱정을 하시는군요. 아무래도 제가 Mr. F의 그 무시무시한 재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드리지 않은 탓일지도 모릅니다. 관람료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말입니다, 그가 죽고서도 약 230년간 은행에 넣어놓은 그의 전 재산은 계속해서 불어나는 중입니다. 몇몇의 훌륭한 펀드 회사와 브로커들, 회계사들에게 그 금액이 연결되어있긴 하지만, 사실 그들 모두를 제외해버려도 단순 은행 이자만으로도 Mr. F의 재산은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고 있고, 실상 저를 포함한 우리 동물원 직원들의 급여도 그 이자액만으로 넘쳐 충분할 정도랍니다. 그러니 우리가 굳이 고귀하신 관람객 분께 관람료를 받을 필요가 있나요! 돈에 대해서라면 이 동물원은 유토피아나 다름없습니다. 자, 따라오시죠. 해자 위에 걸쳐진 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성城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 그런데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성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저 성 뒤편에는 항상 뷔페와 요리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식당이 있답니다. 물론 음식도 모두 무료입니다! 보아하니 산을 헤매시느라 배를 곪으신 모양인데, 우선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무엇을 하든 일단 사람은 먹고 봐야지요. 성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걷게 될 것입니다만,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이리로 오시죠.
여전히 이 성의 크기에 놀라고 계신 모양이군요. 그럴 만도 합니다, 정말 엄청난 금액과 인력이 동원됐지요! 재차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것은 Mr. F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가장 중대한 이익>을 위한 것이랍니다. 식사 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면 제 말뜻을 이해하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자, 이곳이 식당입니다. 먼저 들어가시죠. 양식, 일식, 중식, 한식, 게다가 피자와 파스타 등의 갖가지 지중해 요리까지! 저희는 곧 어쩌면 방문하실 지도 모르는 아프리카계 관람객들을 위하여 아프리카 식 요리도 추가할 예정입니다. 저 부엌 쪽에서 울리는 요리사들의 열띠고 즐거운 소음이 들리시지요? 저희는 모두 모든 일을 관람객 여러분의 유희를 위해 행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접시를 들고 뷔페 쪽으로 가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아, 저기 건물유지관리인인 K군이 마침 늦은 점심식사를 들고 있군요. 그의 아버지인 K시니어 씨도 15년 전에 같은 일을 하셨지요. 만일 폐가 되지 않는다면 숙녀 분께서 식사를 끝마치신 뒤 K군에게 이 성과 건축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절대 지루할 일은 없을 것이리라고 제가 보증하지요! 하지만 우선은 마음껏 식사를 즐겨주십시오. 아, 사실 저는 이미 두 시간 전에 점심식사를 마쳤답니다. 제 걱정은 마시고 식사를 즐겨주세요.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나요? 그거 참 다행이로군요! 저는 잠시 K군과 몇 가지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한 시간 뒤에 해자 밖의 헬기 착륙장에 헬기가 도착할거라고 하더군요. 네? 아, 그야 물론 새로운 식자재들과 동물원 내의 기숙사에서 거주 중인 직원들의 생필품을 싣고 오는 것이지요. 사실은 어제 도착했어야하는 헬기입니다만, 동물원 내 생태계조율사인 A양이 주문한 담배가 워낙 희귀한 것이다 보니 재고를 찾느라 하루가 더 걸렸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의 흡연취향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생태계조율사라는 일자리가 얼마나 섬세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일인지를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우리 동물원 직원일동은 차라리 그녀가 희귀담배만으로 만족하는 것에 감사를 표해야할 정도입니다. 잠시 실례―K군! 이쪽으로 좀 와주겠나? 고맙네. 괜찮다면 우리 동물원 창립 이래 첫 번째 관람객이신 이 숙녀 분께 자네가 하는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드릴 수 있겠는가? 좋아, 나는 자네의 그러한 태도를 아주 좋아하네.
「안녕하십니까, 손님! 저희 동물원을 찾아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환영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 동물원의 중심인 성곽을 유지-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는 K라고 합니다.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나요? 아, 그것은 퍽 다행인 일입니다. 이 식당의 요리사들은 바로 그러한 손님의 미각적 즐거움을 위하여 항상 열성을 다하고 있지요. 또한 동물원에서 거주하는 모든 직원들을 위해서도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드리자면, 사실 <건물유지관리인>이라는 제 직함이 주는 뉘앙스에 비해 제 업무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모든 직원들과 관련되어있답니다. 이 건물, 즉 이 성곽과 해자와 다리와 울타리와 헬기착륙장에 식당과 기숙사까지 모든 건물들을 각각의 기능과 역할에 맞게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바로 저의 일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곽에 대해서는, 내부의 상황이 하루도 빠짐없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생태계조율사인 A양을 비롯하여 원내의 모든 과학자들과 생물학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청소부들과도 항상 긴밀한 연락태세를 취해야만 한답니다! 그래도 사실 저의 아버지 때에 비하면 일이 쉬워진 편이죠. 대표적인 예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성내의 낮과 밤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수동으로 자외선발광장치를 조작해야했지만, 10년 전 대대적인 지붕공사가 있은 뒤로는 현실세계의 낮과 밤에 맞춰 각각의 모든 기와들의 투명도가 자동으로 변하게 되었답니다.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죠! 말씀드리고자 하는 중요한 것은 성이 바로 동물원이며, 동물원이 바로 성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Mr. F의 위대한 의지가 담긴 이 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는 셈입니다. 고로 모든 최첨단 기술과 인력이 성의 건전한 상태를 위하여 동원되어야하며 곧 저의 업무는 이 위대한 정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성과 그 내부를 완벽하게, 그리고 언제나 최고의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해 동물원 그 자체와 유기적 연결을 갖는 것이랍니다! 구체적인 사항들을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기에, 이 정도로 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그만 너무 열성적으로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손님을 지루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걱정되는군요.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디 용서하십시오, 저는 정말 너무도 큰 자부심을 제 직업에 대해 갖고 있는 것이기에 이런 실수를 해버렸다고 말입니다!」
훌륭한 설명이었네 K군!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이 숙녀 분께서는 자네의 설명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군. 차라리 자네의 총기 넘치는 눈빛에 감명까지 받으셨다고 하시는걸! 예, 그렇습니다. K군의 업무는 대단히 다각적이고 유기적으로 동물원 전체와 연결되어있지요. 그런데 사실은 이런 광범위한 업무체계를 담당하는 것은 K군 뿐만이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A양이라던가, 사실은 말단의 계단 청소부마저도, 우리 동물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의 업무는 <동물원 그 자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상은 모두가 모두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전원이 성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 1초라도 모두가 모두에 대한 연결 상태를 차단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각해보십시오, 동물원이라는 곳은 생물을 다루는 곳입니다! 게다가 특히 우리 동물원의 경우는 그 시시각각 변하는 <생물들>의 존재여건이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둥근 산맥으로 고립된 이 동물원은 그야말로 독립된 하나의 완전한 세계인 것입니다. 원시우주를 구성하던 질료들 중 단 하나의 질료의 수치가 지금과 티클 만큼이라도 달랐다면 우주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느니 하는 천문학자들의 이야기와도 비슷한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동물원의 중심인 성으로 가보실까요? 아 접시는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대기하고 있는 식당직원이 전부 정리할 것이니까요. K군, 자네는 업무로 복귀해주게나. 그럼 가실까요. 저 알록달록하고 웅장한 성 안에 세계의 그 어떤 동물원보다도 중대하고 소름끼치며 보는 이를 전율케 하는, 자연의 궁극적 도달점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라는 생각을 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눈치 빠른 이들은 이미 그것을 알아채고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아대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 달에조차 식민지를 건설하지 못한 우리는, 실상 이 닫힌 행성 안에 갇혀있는 셈이나 마찬가지랍니다. Mr. F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그 엄청난 재력과 첨단기술을 다 가져도, 그는 죽을 때까지 이 행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좌절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는 대단한 비즈니스맨이면서 동시에 철학가적 기질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달에, 화성에, 그리고 은하계 넘어서 까지 식민지를 구축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실존적으로 항상 감옥에 갇힌 존재랍니다. 감옥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걸 깨닫고 나면 설령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 한 평짜리 감옥에 갇히든, 자신이 자유인인 것처럼 드넓은 사막을 방황하든 별 차이가 없는 것이었어요. 문제는 그것이었습니다. 자유란 어디서 오는가? 그런데 자유는 어디로부터도 오지 않습니다. 온몸을 흐르는 혈액의 값을 전부 치러야만 스스로로부터 자유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이고 위험하며 고통스러운 자유가 말입니다. 그렇게 치고 보면 <자유>라는 단어는 그 단어의 본질에 비해 너무 값싸고 가볍게, 소시민적으로 치부당하는 면이 없잖아 있지요.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인지 의문이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보러 가시는 우리 동물원의 중심은, 바로 그러한 사고를 궁극까지 밀어붙인 결정체 같은 것이랍니다. Mr. F의 의도는 바로 그것이었어요. 보고 관찰하는 것만으로 진정한 자유를, 그리고 수인囚人의 것과 같은 존재의 조건을 모조리 뒤섞어 하나의 상징으로서 알 수 있도록 관람객 앞에 암시하는 것! 성벽에 그려진 이 기괴한 평면 현대미술 작품들도 말입니다, 저는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그 의미를 전부 알 수 없기는 하지만, Mr. F가 고르고 고른 실존주의적 미술가들과 인간의 존재조건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는―혹은 이해하려고 피땀을 흘리며 발버둥치고 있는― 화가들의, 성의 내용물에 대한 암시라고 합니다. 어쩌면 현대미술에 대한 신통한 이해력과 직관을 가진 관람객 분들이 오신다면, 그들은 굳이 성 안으로 들어갈 필요조차 못 느낄지도 모르지요. 말하는 사이에 입구에 도착했군요. 이 커다란 청동제 대문 역시 Mr. F가 고심 끝에 주문한 것인데, 낯이 익으실 겁니다. 예, 이것 참 인상적이군요! 숙녀 분이 보신 대로 이 문은 로뎅의 지옥의 문과 굉장히 닮아있지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문은 로뎅의 지옥의 문의 레플리카인 동시에, 다만 오리지널에 조각되어있는 수 십 명의 절망한 사람들을 전부 없애버린 것이랍니다. 육체가 무너지고 고통의 함성을 지르며 절망에 어깨가 굽어진 사람들의 조각을 전부 없애버린, 인간이 없는 지옥의 문이에요. 우리는 20년 전에 이 지옥의 문에 열 감지 센서를 달아 문 앞에 사람이 서면 스스로 열리도록 공사를 치렀지요. 스스로 열리는 지옥의 문이라니! 재미있지 않습니까? 자아, 그럼 입장하시도록 할까요.
어서 오십시오! 건물 바닥과 벽돌의 냉기가 피부를 파고들고, 이 웅장한 건물 안의 높고 방대한 공기가 몸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이제 이 거대한 홀Hall의 중심에 세워진 드높은 유리감옥을 보세요! 세계에서 단 하나 밖에 없을 가로 150m, 세로 150m에 높이가 250m나 되는 엄청난 물건이죠. 모두 강화유리로 되어있으며, 각 면이 전부 통유리로 제작되었습니다. 현대에도 이런 물건은 못 만든답니다. 250년 전 Mr. F가 공장과 거푸집을 아예 새로 만들어 내놓은 물건이죠. K군이 말 한대로 저 드높은 천장을 이루는 기와들이 지금―시계를 잠깐 확인하겠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맞춰 적절한 불투명을 만들어내고 있군요. 유리감옥의 각 면마다 근접한 곳에 나선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있는 것이 보이십니까? 손님께서는 저것들을 이용하여 스프링클러가 달려있는 유리감옥의 천장 위까지 올라가실 수 있답니다. 물론 엘리베이터는 나선계단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지요. 예전에는 유리감옥의 천장으로 가려면 250m나 되는 높이를 계단으로 올라야하는 수고를 겪어야 했답니다. 가까이 가보시죠. 흙과 나무와 풀밖에 보이지 않으신다고요? 물론 그럴 겁니다. 그럼 이제 이 감옥이 상징하는 바를 알기 위해, 감옥 내 생태관리 및 큐레이터 일을 맡고 있는 S군을 부르겠습니다. S군, 이리로 좀 와주게나. 손님일세!
「우리 성곽에 어서 오십시오! 250년 역사 속의 첫 번째 손님이신 숙녀 분을 모실 수 있어 더 없는 영광입니다. 저는 이 유리감옥의 생태관리와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S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두 가지 직무를 동시에 가지게 된 이유는, 생태관리라고 해봤자 무슨 대단한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그다지 할 일이 없기 때문이죠. 평소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유리감옥 내에 설치된 감지기와 원격 현미경을 이용해 샘플들을 관찰하고, 별 이상이 없다면 보고서에 <이상 없음>이라고 적는 일과 만일 바깥세계에 비가 온다면 유리감옥 천장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 물을 트는 일 뿐이랍니다. 물론 비가 그치면 스프링클러를 꺼야지요. 그런데 저는 이 직무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뒤 20년 간 보고서에 <이상 없음> 이외의 다른 문장을 적어본 일이 없답니다. 250년 전 맨 처음 생태설계부터 완벽하게 이루어지다보니, 대지진이라도 일어나 이 기다란 유리감옥이 통째로 엎어지지 않는 한 별다른 이상이 발생할 수가 없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이 건물 안의, 약간 차게 느껴지는 온도는 강화유리를 통과한 기온이 유리감옥 내의 생물들이 항시 활동하고 번식할 수 있는 온도랍니다. 250년 전 Mr. F가 고용한 위대한 건축설계사는 통풍구나 성곽 벽의 두께, 실내의 광원과 자외선발광장치의―지금은 지붕기와의 자동적 투명도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말입니다― 위치나 출력 등을 고려하여 그 어떤 냉각기나 온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이 성을 지었습니다. 정말 천재적인 기술이지요! 손님께서는 지금 유리감옥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인지 어리둥절하실 겁니다. 사실상 보이는 것은 바닥으로부터 두텁게 쌓인 흙과 그 위에 자라난 나무와 풀들 밖에 없지요. 진실을 보려면 나선계단 옆에 설치된, 10m 간격으로 정지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조금 춥지는 않으신가요? 괜찮으시다고요. 그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만약 추우시다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십시오. 우리는 성곽 벽 한쪽 창고에 500개가량 되는 기다란 망토를 항상 쌓아두고 있으며, 언제라도 사용이 가능하도록 100벌 씩 5일에 걸쳐 순차세탁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존경할만한 성내 세탁사 다섯 분이 완벽하게 해내고 있죠. 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50m 지점으로 가보실까요. 저쪽 나선계단에선 동물원의 청결부 직원 두 명이 오후 2차 청소를 하고 있군요…….
이곳이 50m 지점입니다. 보시다시피 계단참으로 바로 이어져있지요. 이렇게 유리감옥의 외벽을 만져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설비를 해놓았습니다. 난간 위에 확대경 등이 설치되어있는데, Mr. F의 친절한 성질 덕분에 고소공포증을 가지신 분들도 강화유리 안쪽을 관찰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바로 옆에도 고배율 망원경이 설치되어있습니다. 높은 곳은 괜찮으신가요? 퍽 다행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저보다 원장님께서 설명하시는 것이 훨씬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에, 이만 업무로 복귀하겠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고맙네, S군. 저 친구는 참 훌륭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하간 이제는 제가 설명을 드리지요. 우선 저 흙, 유리감옥 바닥에 수 미터 정도 쌓여있는 흙 말입니다. 저 흙은 250년 전 이 유리감옥이 완성되었을 때 넣어둔 흙입니다. 유리감옥 내에 쌓기 전에 아주 정밀한 검사를 하여, 통상적인 흙에 있는 미생물 외의 어떠한 벌레나 벌레의 알도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한 조치를 취했지요. 그때 흙을 검사한 수백 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정밀하고도 세심한 조사 덕분에 S군이 계속해서 보고서에 <이상 없음>이라고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뒤에 똑같이 철저한 검사를 거친 과실나무, 침엽수, 활엽수들과 유리감옥 내의 작은 생태계를 이룰 키가 낮은 풀들의 숲과, 천연자원성분 이외의 그 어떠한 생명체도 들어가지 않은 물로 채워진 작은 연못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상 유지되기가 굉장히 힘든, 여러 결핍요소들이 있는 생태계입니다만, 천만다행으로도 우리에게는 괴팍한 흡연취향을 가졌지만 세상의 그 어떤 생태학자보다 우수한 생태계조율사 A양이 있지요! 저는 이 동물원의 모든 것을 총괄책임하는 원장이지만, 제가 갑자기 사라져도 동물원은 유지될 겁니다. 그러나 A양이 사라져버리면 그것은 그야말로 종말이지요! 물론 우리는 A양 밑에 보조 생태계조율사를 세 명 붙여두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A양의 직무는 우리 동물원에 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유리감옥 안을 보시지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요? 아하, 그렇다면 숙녀 분의 시선 조금 위쪽의, 유리감옥 정중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회색의 소용돌이는 보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저것입니다! 저것이 우리 동물원의 중심이고, 자랑이고, 저것이야말로 우리 동물원입니다! 저것이 Mr. F가 그의 죽음 이후에까지 숭고한 사명으로 지속되게 만든 세계의 궁극점입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70m 지점으로 올라가실까요.
이제 소용돌이를 정면에서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자, 잘 보시죠. 맞습니다. 이것은 수백 마리의 날벌레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냥 날벌레들이 아니지요! 마침 유리감옥 내벽에 몇 마리가 붙어있군요. 난간에 있는 확대경으로 이들을 관찰해보도록 할까요. 우선 이 녀석―보이십니까?―은 두 눈이 없군요. 왼쪽에 있는 녀석은…… 다리가 세 개밖에 없고요. 균형을 잡으려고 계속 한쪽의 연약한 다리로 몸체를 밀어 올리는 게 보이십니까? 저 녀석은 계속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어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애는 없는 것 같군요. 그러나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지요. 그렇습니다, 손님! 이 유리감옥 안에 있는 유일한 동물인, 이 초파리들은, 이 수백 마리의 초파리들은, 멀쩡한 녀석이 하나도 없답니다! 눈알이 없거나, 날개가 한쪽 밖에 없거나, 아예 다리가 없거나, 심지어는 중추신경이 반 토막 난 놈도 있습니다. 생식기능이나 신경구조가 마비된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수 있는 녀석들은―저 소용돌이 말입니다. 저렇게 비행을 하면서 계속해서 번식을 하는 거지요. 이곳은 이제 불구인 초파리들의 광란의 교미장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만일 인간이 이렇게까지 불구가 되었다면 교미고 생식이고 집어치운 채 우울증에 걸려 은둔생활이나 할 테지만, 이들 축복받은 곤충들은 사고思考 자체를 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들은 한쪽 날개로 어설프게 날아오르고 앞도 보이지 않는 채로 계속해서 교미를 합니다! 설령 정소와 난소가 마비되어서 기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바늘 같은 생식기를 미친 듯이 상대의 배에 찔러 넣기만 합니다! 설명을 드리지요. 250년 전 이 유리감옥이 완성되었을 때, Mr. F는 곤충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완전히 건강하고 단 한 번의 교미도 한 일이 없는 갓 탈피한 100쌍의 초파리를 감옥 안에 넣었습니다. 수컷 100마리와 암컷 100마리를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유리감옥 내의 작은 생태계에 적응하여 미친 듯이 번식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첫 번식 이후 2년 만에 초파리의 개체 수는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유리감옥 안이 초파리로 들끓어서 감옥 자체가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요! 그야 그렇겠지요. 이 작은 생태계에서는 그들의 천적도 포식자도 없고, 먹이는 늘 풍족하며, 연못의 물은 마를 날이 없고 나무와 풀들은 천수를 다 하고 죽어 썩어버린 초파리들을 양분 삼아 쑥쑥 컸으니까요. 그러나 20년가량 지났을 때 초파리의 개체 수는 점점 줄기 시작하고, 눈에 띠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네! 아주 훌륭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유전자풀genepool이 너무 좁았던 겁니다. 현재 이 성곽 내의 온도에서 초파리 한 세대의 생존기간은 평균 20일이니, 어디 계산을 해보죠. 이레귤러나 성충이 되는 속도 등을 제외한 간단한 계산으로 1년의 365일간 18.25번 세대가 바뀌고, 첫 100쌍이 넣어진지 약 250년이 지났으니 지금까지 대강 4562.5번의 세대교체가 있었던 셈입니다. 겨우 100쌍의 유전자풀에서 4562번의 세대교체라니! 말 그대로 이런 병신집단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수학적으로 단순한 근친교배의 결과물을 Mr. F가 굳이 현실화, 가시화하여 관람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과 암시를 주려했던 의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아무튼 간에, 우리 동물원에 고용된 수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들은 최소 50년 안에 완전히 절멸할 것이라고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드렸던 질문을 기억하십니까?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라고 생각해본 일이 있으시냐고 물었지요. 뭐어, 여하간. 우리 동물원의 핵심인 이 병든 초파리들이 절멸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리감옥 내부를 싹 걷어내고 새로운 100쌍을 넣을까요, 혹은 동물원이 300년이나 걸린 사명을 마쳤으니 문을 닫아야 할까요. 글쎄요,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Mr. F가 살아있었더라면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겠지만, 당연히 그는 230년 전에 죽어서 지금은 박테리아들의 먹이 정도가 아니라 이미 풀이나 나무의 일부가 되어있겠죠. 그러나 저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답니다. 어차피 50년 뒤라면 제가 아니라 도시에 살고 있는 제 아들이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 원장직을 맡고 있을 테니까요.
자아, 이 장황하고도 짧고도 단순하고도 기묘했던 동물원 관람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볼거리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기이한 볼거리였다는 점을 부인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숙녀 분께서는 길을 잃고 헤매다 이곳에 도착하셨으니, 걸어서 돌아가시는 것은 분명 무리일겁니다. 원하신다면 몇 시간 뒤에 이륙 예정인 헬기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헬기 조종사들 역시 우리 직원이니 <우리의 손님>을 기쁘게 집까지 모셔다드릴 겁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지나가는 말입니다만, 얼마 전 우리 동물원의 여성용 기숙사 관리감독인께서 60세가 되시며 은퇴하셨답니다. 그동안 받으시고 그다지 쓸 일이 없어―의식주가 전부 동물원 내에서 무료로 제공되니 말입니다― 모아두셨던 급여와 은퇴 이후에도 사망할 때까지 지급되는 Mr. F 재단의 <평생근로감사료>로 도시에서든 타국에서든 어느 섬에서든 편안히 노년을 보내시겠지요. 문제는 그 분이 평생 어느 누구와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성용 기숙사 관리감독 자리가 비어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는 Mr. F나 그의 재단이나 이 동물원과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을 왠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다소 꺼리고 있거든요. 사실은…… 숙녀 분 정도의 나이와 현명함을 갖고 계신 분이 그 자리에 아주 적합하지요. 아, 말씀드렸다시피 그냥 지나가는 얘기입니다. 헬기는 두 시간 뒤에 출발합니다. 헬기이착륙장은 기억하시겠지만 성곽 뒤쪽 식당이 있는 방면의 해자를 건너는 다리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저는 이만 원장실로 복귀하겠습니다. 관람은 즐거우셨나요? 그것 참 다행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직원 일동의 가장 큰 기쁨이지요. 헬기가 출발할 때까지 2시간 사이에 용무가 있으시다면 언제든 원장실에 들러주세요.
그럼 안녕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