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囚人의 고백

글/시 2019. 11. 6. 20:00 |

수인囚人의 고백


제가 밤에 잠 이루지 못하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야밤에, 깨끗한 것을 찾겠다고
산중을 뒤지는 것은

달의 명징함을 만져보겠다고
밤바다로 뛰어들어 더럽게 취해
야밤에, 곡소리를 내며
파도를 헤치는 것은

신 없는 세상에서 하늘에 닿겠다고
담배로 허파 시꺼멓게 태우며
야밤에, 이상하게 노래하면서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는 것은

그것은, 제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순결한 것을 찾아야만
완전한 것을 찾아야만
아름다운 것을 찾아야만

쓰레기 소각장을 뒤지며
통곡하며 죽은 여인을 찾고
공동묘지를 방황하며
붉은 눈으로 어떤 책 한 권을 찾고

그것은 제가 명령받은 죄인이기에
물거품에서
금강석을 찾으라는
누가 내렸는지도 모를 저주에 묶인 죄인이기에

야밤에, 저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무정한 잡초가 되고 싶다고
수평선 향해 철버덕철버덕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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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꿈

글/시 2019. 11. 6. 13:25 |

새벽꿈


한없이 한없이 그리워하던
그 님 만난 밤
오셨다가 떠나셨다
손짓하는 파도에

파도는 수백억 년분의 손 흔들고
바람은 수백억 년분의 춤을 추고
내 님 바람에 발 담그셨다
파도에 산산조각 피었다

아뢰옵건대
윤회의 바퀴로 들어 가렵니다, 하고
말했나? 말했던가?
억겁의 시간에 귀를 잃어버린 나는 모른다

파도는 손 흔들고 바람은 춤추고
하늘은 짓누르는 회색
비가 오려나? 그러나 그 장면에
비는 어울리지 않아

나 목상처럼 서있고 가슴은 흙투성이
필름을 멈추려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비가 오려나, 비가 오려나
비가 오면 소금거품으로 화하는 님도 젖을까

바람은 파도의 손을 잡고 춤추고
스토리라인 무시하고 손 뻗으려는 순간
퍼뜩 깨었고

이불 위에서 되새겨보니
일생 만난 일도 없는 자에게 손을 뻗으려 했던
처량하고 바보 같은 꿈이었습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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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일 때

글/시 2019. 11. 5. 21:59 |

바람 일 때


바람이 일고 사람은 태어나고
태어나고 살아가고 이상을 논하고
좁아터진 지구 사상으로 만석이다
담뱃재 같은 생명 맹목으로 내달린다

시끄러워, 나는 외롭단 말이다
이는 바람마다 살갗 베어
늑골 심장 다 드러나
진흙탕 휘적이며 외롭단 말이다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누군가
누군가에게 전할 꽃 한 송이
피우고 싶어 발광하여
발밑에는 무덤뿐

후세는 미래에 죽었고
선조는 과거에 죽었다
나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마른 다리 진창 휘저어대며 죽어간다

그래도 절명할 때
괴로움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림자 전당포에 팔아넘기고
장미 한 송이 사서……

―바람 일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다시 만나고 싶은 누군가도 없었구나
고독에 탄식하던 것도 몇 번이던가

참으로 촌극 같은 삶이었습니다
찾기는
누구를 찾았단 말이야?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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