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그리는 새벽
달빛 벌판은 정령들 무덤터
해가 뜨면 즉사한다
풀밭에 녹아내리는 사체는
영령의 에로스
죽음을 동경한다
남았던 희망 이미 사망했다
신발도 의자도 없이
시취 풀풀 나는 지구에 서있다
불만은 없고, 소망도 없으니
절실히 사라지려 할뿐
가을 하늘에는 춤추는 조소
구름들 회색 손잡고 돈다
느린 왈츠 빛나는 무도회복
느린 왈츠 옷자락의 회색 그러데이션
나 올려다보다가
계절은 죽어야한다
계절은 번개처럼 죽어야한다.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글/시 2019. 11. 4. 10:25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아침 무렵 잔디에는
슬픔 드리우고
산새들 지저귐은
비극 배우의 노래
태양이 뜨나? 산 능선에는
연옥빛 아우성
산사에서도 나는
온 생물의 뒤통수만 보고 있다
생로병사란 네 글자는
삶의 무게만큼 아파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의자도 없는 슬픔만 남았다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온갖 스러져갈 것들을 사랑하고
존재해버린 슬픔으로
그림자들의 생몰을 입 다물고 관망 했네
존재해버린 슬픔에
나 영혼마저 죽는 꿈 꾸며
찻잔에서도 독액의 차가운 비웃음을 듣는다.
십대 시절
나는 싸돌아다녔다
나는 뛰어다녔다! 온갖 골목을
온갖 그림자가 진 길들을
한 손에는 게르만 인이 잘라준 신의 목을 들고
환희에 차서 모독을 입에
게거품처럼 물고 살아있었다!
내 입은 고라니 같아서 모든 말은
기괴한 비명이 되어 가아악 거리며 울려 퍼졌지
듣는 이들은 모두 괴로워하며 피해버렸지
그러나 내게는 희망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고……
…………………………………
세계가 정리되고 말 것이라고 믿어
이빨로 혀를 힘껏 물고
스미어 나오는 철분의 환희를 보았다
죽음을 알기만 하면 되겠지! 밧줄, 알약, 날이 선 쇠붙이들
그러면 위대함을 이 작은 손에 잡겠지!
펜촉으로 세계에 흉터를 새기며 나는 잠드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죽은 자들은 진리의 거칠거칠한 표면을
입술로 있는 힘껏 물고 죽었겠지, 내 방은 무덤
나는 공동묘지 안에서만 십 년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 있었어, 희망이 있었어!
동맥에 칼을 박지 않을 이유를 발견했었어!
아아, 그러나, 괴로움은 덜어지지 않고
그렇다면, 고통이야말로 삶의 본질 아닐까
그렇다면, 본질을 가속시키자, 날 구렁텅이에
한숨의 늪에, 영원히 석양만 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세계로
그래,
정말 정신이 나가버렸군……
보호자님, 이 아이는 이제, 인간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이 있었어, 희망이 있었어!
그러나 그것은 실은 광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내 중추신경에 흐르는 흑색화약으로
해를 넘기자 나는 영원히
신발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