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 밤
알코올의과량섭취는지나간이에대한그리움을유발시킬수있다
1.
아버지와 마신 술은 연했고
아버지의 주름은 술보다 진했고
내 눈은 아버지보다도 늙었고
술병은 내 눈동자보다도 늙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새벽마다 독송과 108배로 대신한다고 했다
나는 간만에 부모를 보았다
꽉 막힌 침묵 어느새 입술에 묻었다
안주는 먹자마자 망각되고
다만 알코올만이 의식을 모르고
위장에서 신경으로 중첩된다
밤은 더욱 밤이 되어 굳은 기름처럼 변한다
누가 인류를 증오한다고 했지?
그래, 내가 그랬지, 아니야 사실은
인류가 아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담배꽁초 버리듯이 증오하는 것이다
백탁으로 굳은 기름처럼
세상은 경화되어가고
나는 오물 같은 말을 쏟아내고
혹은 쏟아내지 않거나, 나는
도시가 멸망해가는 게 안 보여?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외치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을 피하며 집으로 향하고
나는 절명하는 콜타르 멱살을 잡고
아버지, 먼저 들어가시죠, 저는
몇 개비의 담배꽁초를 이 콜타르 위에
집어던지고 짓밟아야만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영령의 눈동자로
휙휙 지나가고, 휙휙 무관심하고
아아, 술인지 멸망인지에 취한 나는
친구 집의 현관문이나 걷어차고 싶다
비 내리는 계절은 멎었나?
그래도 멎었겠지, 이제 하늘에서 내리는 물은
생명의, 생명의 물이 아니야
고양이들 빗물 마시고 마비되어 죽어간다
водка! 그것의 어원이 생명의 물이야
그러나 지갑도 어느 진창에 떨어트렸고
스스로 담배연기에 질식해가면서
나는 네온사인 밑에서 꿇어앉는다
알고 보니 말이야,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아래층에 알코올중독자 부부가 이사 왔다고 했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울부짖는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희희거렸다
도시는 콜타르 색으로 죽어가고
빗물은 포름알데히드 같아……
2.
이 옷은 네팔에서 사고
이 바지는 인도에서 샀지
그리고 난 미국남부에서 산 담배를
입술의 일부인 듯 물고 다녀
괜찮은 길이다, 이대로 가도 나쁠 것은 없다
내던져진 행성에서 내던져진 생명으로
윤리를 내던지고 도덕을 내던지고
바람에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가는 것도
그러나, 그럴 리가 없지, 그럼, 그럴 리가 없지
이상한 가격의 소주를 흠뻑 마시고
담배연기로 화하여 걷는 거리에도
그녀는 나타나고야말지
여긴 대륙 끝자락이야
여긴 반도의 화난 사람들이 사는 곳이야
네가 있을 리가 없는 곳이야
영어로는 페닌슬라라고 하는 브릿지 같은 곳이야
그러나 그녀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바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할 민족은 잿더미가 되리라”
그런 나라에서 정갈히 머리를 깎고 온 바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한 나는 이미 잿더미라
아니야, 그래도 난 괜찮은 길을 걷고 있다고
내던져진 행성에서도 구원은 있으니
이번 생은 그렇다 치고, 다음 생은 괜찮겠다고
이름을 떨어트리고 산골로 들어섰으니
그러나 그녀는 왜 나타나고야 마는가?
술에 취하고 담배에 취하고 입술도 잃어버린 내게
저 단발 지나가고, 저 장신 지나가고, 저 미소 지나가고
어둠은 가로등은 형상Eidos을 섞어 혼란을 내게
그만, 그만! 이제 웃어라 시인 나부랭이야
그리움도 사치니 아무것도 망각하지 못하는 너는 웃어라
현실은 지나가기만 하는 환상이니, 너는 얼간이야
시간에 매장된 글쟁이야, 너는 담배 한 대나 더 빼물어라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살아있든 죽었든, 그러니
아냐, 나는 담배 한 대나 더 태우렵니다.
3.
그것은 참으로 괴물 같은 어둠이었어
그 속에 나는 앉아있었고
엉덩이와 다리는 그대로 얼어붙어
영원히 내려가는 계단에 동화되었지
내 안경에 뭐가 묻었나?
내 영혼에 뭐가 묻었지
분노의 외침들이 고요히
눈동자를 까맣게 좀먹어갔고
마침내 무관심으로 화하여
행성의 저편에서 순결한 생명이 죽어간들
나는 지금 태우는 꽁초나 마저 태우면 그만인 걸
북인도로 갔다던 그녀는
몇 년이나 잊어버리고 있었더라
정신이 백탁해지고, 굳은 기름
잠들 때가 되었어
멸망할 때가 되었어, 사방을 뒤져
유럽을 떠도는 유령까지 붙잡았지만
후세, 나는 잠들고 싶을 뿐이다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없이
종말의 행성에서
절멸하고 싶을 뿐이다.
늑대의 시
도시에서는 더 많은 비가 내렸지
빗방울 하나마다 비치는 감금과 비극
지나가는 소나기에도
내 마음 포화되어 갇힌 늑대처럼 자기 다리 뜯었네
어둠 내리면 모두 옥상으로 갔지
담배연기에 영혼까지 뿜어지길 바라며
다들 손에는 술병 하나씩 잡고
이따금 난간 밖으로 굴러 떨어지는 친구도 있었네
골목 바닥은 너무 낮아,
영혼만큼 낮아서 그대로 동화될 듯해
달려라, 달려라 숨 못 쉴 높이까지
나 죽으면 연립빌라 옥상에 묻어줘, 티켓값 잊지 말고
비가 내렸지, 사람 마음 미쳐버리게 하는
절반은 인공의 어둠, 절반은 갈구하던 광기
빗방울을 씻어내 광기만 남길 순 없나
알코올은 너무 약해, 75도짜리 광증을 마시게 해
이 옷은 너무 답답하지
단백질, 지방, 뼈 따위로 지어놨으니
아무에게도 어울리지 않지
늑대는 늑골을 찢어 부수고 스모그 사이로 달리고 싶어
비가 내렸지, 도시에선 더 많은 비가 내렸지
하늘은 먹빛이고 도망치기엔 절호의 날씨지
아프다고 옷이 절규해, 속에서부터 찢어지고 있다고
옥상에선 친구들이 연달아 굴러 떨어져
이 행성에 사는 것들은
70억의 인간들이 아니라
70억의 갇힌 늑대들이어라
너무 오래 달을 못 봐 미쳐가는
도시에는 너무 많은 비가 내렸지.
가을의 울음소리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
하늘은 계속 높아져
돌아오지 않을 듯 해
사랑하는 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나는 고개 숙이고
땅바닥 굴러다니는 자갈만
무심을 가장하며 발로 찬다
밤이 되면 또 달이 뜨겠지!
너무 맑고 청명해 투신하고픈
그런 달이 다시 뜨고 나는
투신할 방법을 찾느라 절망한다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누가 내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을까
아무도 듣지는 못했겠지
애당초 울부짖을 혓바닥도 없었으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땅을 본 채
무심한 눈동자 안에서는
유아아아 유아아아 유야아아아
채이는 자갈만 들으라고 통곡을 한다
아아,
단풍은 노랗게 죽어가네
단말마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