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겨울

글/시 2019. 12. 2. 13:10 |

몇 가지 겨울

 

 

빛이 쏟아져 내리는 우박 되는 계절에

나 마른 잎들을 밟으며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찾네

그러나 희망도 없이

 

노란 나비들 날던 때는 가고

이젠 밥 먹을 때조차 벌벌 떠는

파리들이 끊임없이 들러붙어 오듯이

망념은 계속, 어디서 떠올라 오나

 

어디선가 빛이 깜빡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전신주 위에서 겨울이 빛나는 소리인가

그러나 나 쳐다보지도 않고

하얀 입김에 기뻐하며 그 소리 들었네

 

어느새 겨울

굳이 풍광을 언어화할 필요는 없다

시인들의 일이란 진절머리 나는 것이지

 

진절머리 내면서 한 겨울에 나비를 찾고

그러니 그런 것들은 증오되고……

하지만 달리 고백할 것도 없다

 

희망 놓고, 기대 놓고, 이러이러 하리라는 마음도 놓고

그 사람 눈동자는 성자 같았지

어디선가 보았던 한 여름의 활엽수림 같았지

 

나 활엽수림 앞에서 계곡에 거꾸러지고, 옷이 젖지 않길 기도하며

끝내 놓지 않던 담배꽁초 연기가 내 눈에 스며들었지

이 눈이 다시 밝아지는 때는 언제? 언제냔 말이야?

 

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앙드레 지드는

어떻게 죽었나? 그의 말대로

지상의 양식 다 취하고 희망 없이 죽었나?성자가 될 수 있었나?

 

나 한번 죽었으나 완전히 죽지 못했다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의 이야기 몇 번이고 다 읽었어도

정혜쌍수를 쥐지 못했다, 세월은 막히지도 않고 흘러가고!

 

그래, 지금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겨울 무렵이면 사방이 깜깜했고

어머니는 이불을 덮고 있었지…… 나는

 

나는 반짝거리는 어둔 공기 속

뭔지도 모를 불안에 멀뚱히 서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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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리석음과

글/시 2019. 11. 27. 09:33 |

나의 어리석음과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의 어리석음은
만일 내게 밝은 본성이 있다면
달을 뒤덮은 구름 같은 것이지

나의 어리석음은
구름 낀 야밤 파도 속에서
달을 건지려고 철벅거리는 어부지

나의 어리석음에
돌을 모으는 보석상인처럼 나는 십년을
바깥의 지식만 주워 모으며 행복할 줄 알았지

나의 어리석음에
나 모르는 것이 없게 되었다고, 방안 가득한 무덤
그러나 어느새 칼을 쥔 채 내 가슴을 조준하게 되었지

지식이 잃어버릴 수 없는 재산이라고
누가 말했지? 그도 이미 죽어
잃어버렸을 것이다, 대답할 입술도 썩어

행복을 찾으려 했던 일부터 어리석었지
외로움 잊으려 발광했던 일도
나 그저 나를 점점 두껍게 칠했을 뿐이지

―이제 점점 겨울바람도 불어
생선가시 같은 나무들, 낙엽도 없네
마을 쪽에선 아지랑이 같은 생활음
찾던 것은 행복조차 아니었다

이상한 눈을 한 채 태어나
내 본능은 그저 더 많은 지식을
썩고 벌레먹이 될 뇌수에 맹목으로
쌓고 쌓는 것이었다, 지혜는 한 조각도 없었다

하늘색 구름이 남아있는 것인지
구름이 하늘을 덮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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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초겨울

글/시 2019. 11. 25. 18:05 |

도심, 초겨울


초겨울 바람도 날카로운데
나무들은 뼈만 앙상하다
하늘엔 구름도 뜨지 않아
죽음이 골목골목 나다닌다

새하얗게 질린 콘크리트 아래서
이런 계절이면 발광할 것 같아
행인들 텅 빈 유모차 밀고
나는 미친 손으로 뭐라도 주워 모으려

태양이 황금으로 빛나던 때
언제였던가 기억도 나지 않고
대지는 이제 차가운 등뼈
발골된 세상, 내가 쥔 것은 칼

이런 때면 으레 나는 어리석은 일에 미쳐
생명의 소리를 듣겠다고 시멘트에 들러붙지만
모조리 죽었다…… 물소리도 없는 도시
어디선가 결핵환자의 숨소리만 들려온다

폐쇄된 방안에나 있을 일이지
어리석은 발은 거칠게 쏘다니며
담배연기는 숨쉬기도 전에 스쳐지나가고
불안한 마음, 사방이 콘크리트다

이제 내 마음은 죽음에 닿아
그래, 평안해지고 마는 법이지―따라잡힌 발걸음
골목에서 나온 그가 오로지 내 눈 주시할 때
그래, 죽음에 닿아, 담배연기는 깊이 폐로

하늘은 마른 생선 껍데기
거대한 등뼈 위를 쏘다니다 지칠 즈음
세계는 세 가지 정도의 창백한 색깔이 있고
황혼도 없이 밤이 쏟아진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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