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의 땅

글/시 2019. 12. 11. 12:43 |

질식의 땅


대기에 스모그 끼어서
창밖은 하얗게 어둡습니다
어디선가 중기의 고함소리 들려오고
뻐끔뻐끔 담배연기만 두개골에 들어찹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로 창 닫힌 건물
여기는 어디인가 의문할 것도 없이
담뱃재 떨어지는 자리에 나 있습니다

세상이 스모그 먹어서
낮인지 밤인지, 아니 그런 것이
중요하기나 한 땅인가
달 대신 가로등 뜨는 골목에

눈도 내리지 않는 이상한 겨울
갈퀴 같은 바람은 하얀 먼지 긁어내고
나는 그것을 높이서 내려다보다가
창백한 하늘에 어찔하고, 난간에 스러집니다

―알제리, 알제리!……―
그만 둬, 나는,
가본 적도 없는 땅에 환상을 심지는 않을 터다

녹은 황금 같은 햇살도
드넓은 사막 파랗게 얼려버리는 달도
이미 내 머릿속에서 한 번의 생각으로 떴다가 졌다

난간을 기어오르며 입에는 담배 물고
뭐어야, 이미 죽은 생선과 같다
기름때 낀 창문 너머는 지독히 말세로다

그러나 그러나 멈출 수도 없지요
타는 담배는 끝까지 다 타야하고, 삶도
담뱃잎 싸놓은 육신처럼 다 타버려야 하고
세상이 어떤 꼴이든……

하하! 나는 위악으로 웃고는
해도 달도 없는 땅에서 깡통 찾으러 가는데

세상이 스모그 듬뿍 먹어서
행성이 도는 일조차 잊어버렸습니다.

Posted by Lim_
:

불야성

글/시 2019. 12. 10. 20:09 |

불야성


산에서 내려온 도시의 밤은
그야말로 불야성, 밤이 찾아오질 않는구나

명성이니 자본이니 그런 것은
뒤집히는 낙엽 같아 논할 것도 없으나
명성에 대해서니 자본에 대해서니
더욱이 모습만 바꾸는 꿈이어 나는 슬픈 마음이다

전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취중에 토하는 얘기는 불법에 대한 희론이다

세상이라는 착각에서 떠받들 것
가지게 될 것 버리게 될 것
모두 한번 생각하고 잊히게 되는 것이니
거품 덩어리 속에서 금강석을 찾는가

―나는 취하여 세상을 보았다
기쁨을 찾느라 발광하는 사람들은
어둠 내리지 않는 밤에서 바삐 달린다

그만, 그만! 그런 괴로움은
어리석음은 무지는 치워둬
불붙은 눈으로 뛰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감정도 없는 슬픔에 젖는다

이 도시는 도대체 누가 지었는지
빛은 사방에서, 그러나 깨끗할 것도 없는 빛
산에서 보았던 맑은 달은 파괴적이었다
사방팔방의 허상을 온통 부수었다

불야성의 도시에서, 나는 꿈도 꾸지 않고
그러나 꿈꾸는 자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그들은 어디로 가려는지도 모르고
냅다 내달리며 어딘가로 추락한다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 그들은 귀가 없어
절벽에서 팔을 뻗는 내 얘기도 듣지 못하는 구나
도대체 얼마나 내달리게 될지
57억 6천만년이나 허상을 달릴 셈이냐

그만, 그만! 세상을 바꾸려는 일은 그만두고
이 착각 벗어나는 일이나 하지 않으려나……

Posted by Lim_
:

無名

글/시 2019. 12. 9. 12:17 |

無名


초겨울의 냉기가 산을 뒤덮고 하늘을 뒤덮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와 같다

하늘은 보이지 않고, 시내에서 사람들은
몸을 싸매고 바삐 어딘가로 걸어간다

한 몸 편할 곳을 찾아, 추위를 피해 달려
어딘가로 어딘가로 바삐 가려고 한다

세상은 거대한 착각이니, 여기서
세상에게 이름을 붙인 채 살면
괴로움이 끊어질 일이나 있을까요

몇 번이나 죽고자 하여, 나
실은 죽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완전무결한 비존재가 되려했습니다

바람 불면 일어나는 파도가
아아, 나는 파도로구나, 하는 순간
천둥치는 하늘과 고해에서 영겁을 뒤엉깁니다

그러니 나, 무한한 바다로 다시
파도에게서 이름을 지우고, 스러지는
심해의 밑바닥으로 형상도 없이 가고 싶었습니다

뇌 속에 갇힌 누군가를 꺼내려고
권총 한 정 꺼내 구멍을 낸다 하더라도
내가 空으로 돌아가지도 않겠지요, 죽음도 미신인걸!……

알고 보니, 흙탕물 튀기며 살려고 했던 발버둥도
죽고자 하여 약병과 밧줄 쥐던 발버둥과
별로 다를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내가 이름도 없는 곳으로
저 멀리, 저 멀리……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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