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문 짐승
딱히 겨울하늘이 파랗게 얼어붙었다 한들
그것에 대해 무어 감상이 있지도 않지
마른 숲속에서 도망치는 고라니와 마주쳤다 한들
내게 무어 놀란 가슴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세상은 얼어가고 나도 얼어가고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에 쥔
담배도 이제는 무슨 맛인지
녹슨 울타리 같은 마음으로 궁금해 하지
감성, 감성! 그렇게도 부르짖는
그것이 내게 있기나 했던가
지난여름 비 오는 철교 위에서
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울지 궁금했었지
―이제 그만 쉬어
문학도 예술도 인생의 끝에
그리 중요한 것은 되지 못할 거야
그런 말들에 나는 심장을 난도질당하고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이겠지만! 그러나
차가운 바람에 손가락 저릴 때마다
나는 비참한 심상으로
한 가지 싯구를 떠올리고야 말아
저 능선 위의 절벽은 어떤 죽음을
내 정신과 영혼에게 드러내줄까?
수세미를 씹듯이 담배를 물고
나는 이상하고 추운 탐미에 홀려있네
……이제 그만 쉬어
그 말에도, 고통만 읊조리며
펜을 찾아 돌아가는 슬픈 짐승이다.
부정否定의 시
내 삶은 사유가 폭풍우치는
끝나지 않는 밤 같았으나
누군가 내 껍질의 가느다란 실마리를
강하게 잡아당기고야 말았습니다
시인들의 노래가 어디로 가는지
나의 정신이 미치광이처럼 따라갔으나
끝에는 공동묘지, 더하여
도무지 죽을 줄을 모르는 시체들
그리하여 저의 껍질을 더듬어보고
도무지 알 수 없는 회의를 계속하고
죽어버릴까? 이런 육신으로는
영혼에서 퍼 올린 자아조차 가려지는데
그러나 누군가가 분명히
내 실타래 끝의 실마리를 잡아당겼고……
육신은 헐거워지기도 하는 법이지요
뇌수조차 묵직한 고기였던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햇빛은 더욱 선명하기에
겨울에 골몰하여―아, 그러나
광풍 같던 사유와 사고는 이미 가라앉고
나는 적적히 뭔가를 회의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그만한 것도 없지요
옛날부터 깜깜했던 나의 시각은
떠올려진 망념들이 미친 말馬들처럼 지나가는 일로
그리도 깜깜했던 것입니다
어둠과 추위 속에서 팔짱을 끼고
증오와 광란만 허용하던 나의 삶은
죽음에 이를 때는 미풍도 그치려나요
밤에도 햇빛은 지평선 너머서 빛나니
그래요, 그런 아이가 있었습니다
폭풍우와 지진을 집으로 삼고
살갗이 전부 찢겨나가는 것을 기대하던, 어린아이가요.
첫눈
눈 내리면 소리가 사라진다고들 하지
사실 그저 하늘과 대지가
눈 내리는 소리에 뒤덮일 뿐이야
자세히 들어보면 참도 소란스럽지
부스럭 차르륵 사방을 치며
눈이란 놈은 그렇게도 주장을 해
눈 내린다고 소리들이 어디로 가지도 않지
그저 푸르고 거뭇거뭇하던 색깔들이
하얀 소음으로 마구 칠해질 뿐이야
모두가 잠을 잔다는 계절에
소란스럽기도 하지, 마치
세상이 곧 자신 되기라도 하듯
이름도 없는 색깔들 떨어지지
눈이 그치면 밤이 내리고
그러나 구름들은 물러나지도 않아
달은 있다가 없다가 한다
비행기 소리에 올려다본 하늘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달을 보다가
담뱃갑에 손을 베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