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대 앞에서

글/에세이 2014. 5. 1. 19:18 |
교수대 앞에서

 한국에서 사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다. 우선 검사가 피고가 죽어 마땅한 이유를 목청 높여 부르짖는다. 그는 이러한 말들을 한다. 우리 사회의 규율과 양심, 국민이 지켜야할 절대적 질서, 법의 고결함, 그리고 검사 앞에 선 불쌍한 불량인자가 이 공동체에서 제거 당해야할 정당성.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이 검사라는 인간은 퍽도 호감이 가는 생김을 하고 있다. 그가 가진 인간적 매력이라는 것은, 그에게 흔들림 없는 신념이 있음에 기반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사회 안에 사는 사람인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갖고 다니듯이 그 검사는 법전을 들고 다니며, 그 법전의 성스러움을 믿고, 심지어 자신의 영혼을 책갈피처럼 그 두꺼운 책의 책장 사이에 끼워두기까지 한다. 아무튼 그는 범죄자에 대하여 사회적 인간이 가져야할 건전한 분노를 사정없이 발산한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그러한 분노에 자부심마저 느끼는 것이다. 왜인가 하면, 사회라는, 더 나아가 국가와 집단의식이라는 우상(Idol)께서 그의 분노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검사라는 인간은 도무지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매력적이고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국가>께서 이 더러운 범죄자에게 내리라고 말씀하신 처벌은 바로 죽음이라고 마침표를 찍는다. 피고의 변호사는 손짓발짓을 다 써가며 형량을 낮춰보려고 노력하지만, 공동체의 세례를 받은―마치 신부(神父)와 같은 검사의 지엄한, 살인에 대한 명령을 어떻게 흔들어볼 여지가 없다. 사실은 이 변호사조차도 자신이 변호해야할 범죄자에게 왠지 모를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공방이 오간 뒤에, 판사는 몇 가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사고는 <살인의 본질>에 대해서는 완전히 빗겨 가있다. 그는 그저 법전과 사회적 윤리에 비추어보아 검사와 변호사 중 누구의 말이 더 그럴듯하게 들리는 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망치가 세 번 내려쳐진다. 옳거니, 그들 생각에 저 범죄자는 이 사회에서 하등 쓸모가 없으므로, 목을 매달아 죽인들 누구 하나 불쾌하게 생각하는 이가 없을 것 같은 것이다.
 판결이 내려진 후 검사는 오늘도 사회의 일부로서 열심히 일을 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돌아선다. 검사는 저 범죄자를 죽이라고 말했고, 판사가 그 주장을 입증해주었으니, 이제 저 범죄자는 대롱대롱 목이 매달려 죽을 것이다. 검사와 판사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그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사랑스러운 가족들을 껴안고 먹음직스런 식사를 한 뒤에 기분 좋은 피로를 느끼며 잠에 들 것이다. 아하, 그것 참 신통한 방법이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사회란 말인가. 식탁에 돼지고기를 올리기 위해 돼지의 멱을 따고 온몸의 피를 묻히며 찢어지는 돼지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퍽도 마음 가뿐한 일이다.
 여하간 변호사는 그 흉악한 범죄자에게 찝찝한 목소리로 사과 한 마디쯤은 했을 것이다. 이제 피고는 교도소로 옮겨지고, 화장실만한 감옥에 갇혀 거의 모든 행위가 제한된다. 그 비좁은 감방에서 제한된 자유만을 가지고서 이제 그가 기다려야하는 것은 한 번의 사인이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훌륭한 정치가가 사형집행을 위한 서류에 사인을 하기만을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주, 혹은 몇 개월이 지난 뒤에 서류에 인가가 내려진다. 우리는 도대체 그 서류에 사인한 사람이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왜 자신이 굳이 이런 서류에 사인을 해야 되는 가에 대해서 그 누군가는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무튼 일은 일이다. 그는 사인을 한 뒤에 도장을 찍고 만다.
 날이 정해지면 이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간수들이 사형수를 감옥에서 꺼내더니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씌우고 어딘가로 끌고 간다. 사형수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정도는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도무지 반항할 틈새도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기계적으로 진행된다. 간수들은 교수대 앞으로 그를 데려가 목에 밧줄을 건 뒤에 사라진다. 그들이 할 일은 거기까지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세 명의 공무원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아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서 그 사형수를 죽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그런 명령이 내려진다면 아마 당신은 방편을 찾기 위해 꽤나 고심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 걱정 없다. 우리들은 수 천 년 전부터 그 방법을 찾아내왔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는 일은, 목에 밧줄이 걸린 사형수를 내버려두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 세 개의 버튼 앞에 각자 서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 숫자를 세고, 동시에 버튼 세 개를 누른다. 그 세 개의 버튼 중 하나가 무작위하게 작동하여 사형수 밑의 발판이 덜컹하고 떨어진다. 그 사람은 이제 목뼈가 분질러져 죽었다.
 이것 좀 보시라. 기가 막히지 않는가? 아무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 사형이라는 절차에 가담한 사람들 중 아무도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아무도 죄책감이나 살생을 저질렀다는 지저분한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형수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도 참 대단하지 아니한가? 과거에는 사람을 죽이려면 주먹이든 칼이든 도끼든, 무엇이든 쥐고서 직접 손을 휘둘러야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아무리 이유가 명확하다고 해도 기분이 더러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 사회의 편의를 위해서 책임이라는 것을 국가나 집단 같은 기묘한 추상성에 전가하고 마지막에는 빨간색의 작은 버튼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누가 그 사형수를 죽인 건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다. 옳거니, 그래서 당신들의 사회라는 것은 더 이상 존재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로군…….
 그런데, 나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의혹에 빠질 것 같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뭔가가 분명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 사형수의 죽음을 멋진 논리로 부르짖던 검사는 지금 어딜 갔지? 사형 집행 서류에 사인을 한 그 신사는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냔 말이야? 글쎄, 만약 당신이 그런 의혹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의 손을 유심히 보기 바란다. 그리고 당신의 지갑에 들어있는 반짝거리는 지폐들도 말이다. 당신들이 작당하여 거울로 된 미로에 파묻어버린 것, 그것이 바로 거기에 있다.
 당신들의 손과 지폐에 묻어있는 신선하고 끈적거리는 피가 보이지 않는가?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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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일. 장편소설 <광기와 사랑> 초고 완성.
A4용지 102페이지. 200자 원고지 948장 분량.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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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나는 마음 같은 것은 바란 일도 없다. 잠깐의 짐승으로도 좋았다. 잠깐의 짐승이라면 더 바랄 것도 없다. 마치 태풍이나 지진처럼. 나에게 무슨 이름이 붙여지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의지도 없는 천재지변이었더라면 불만도 모르고 흩어져 사라졌을 것이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철창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이 너무 멀다. 내 정수리에 영혼의 눈을 달아둔 덕분에 이 짓도 그만 둘수가 없다. 뼈와 살점과 함께 웃으면서 터지는 폭발물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죽음이 어머니라는 것을 발견할 눈동자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미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기라는 개념이 부여되지 않는 현상이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너무 거추장스럽고 무겁다. 나는 마음 없이 태어나고 싶었다. 또 내일이 온다. 또 생명이 연장된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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