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속의 폭도

글/시 2014. 11. 23. 15:35 |
밤 속의 폭도


가끔씩 가슴이 난장을 깝니다.

그럴 때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째서인지 슬프고
어째서인지
이젠 고장이 나 바싹 마른 눈물샘이
울고 싶다고 발악한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러나 누구도 없는데.

그러나 아무 일도 없어서
그러나 누구도 없어서 슬픈 것이다.
오늘도 내가 매일 담배 피우는
그 자리에서 보이는 창문은
열한 시면 불이 꺼지고
비둘기들은 건물 옥상 옆
녹슨 굴뚝 위에서 잠들고.

매일 똑같은
똑같이 슬픈 밤이 오면
나는 그림자 속에 앉아서 연기를 뱉고
매일 이맘때면 나는 이미
눈동자가 녹아내릴 만큼 술에 취해있고
내일이 오리라.
내일도 태양이 뜨리라.

담배 때문인지 점점 숨쉬기가 힘든
가깝고 가까운 미래로 향할수록
나는 잠들 때마다 내일
영원히 눈 뜨지 않을 내일을 상상하고
어둠은 건조한 공기 속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내일도 여전히, 내 흔들리는 척추를
받쳐줄 꿈속의 사랑은 없을 것이며
월요일의 해가 뜨면
나는 나의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
일을 하러 나갈 것입니다.
Posted by Lim_
:

결코 완성되지 않는

글/시 2014. 11. 18. 20:59 |
결코 완성되지 않는


당신에게 한 마디만 남기고 싶었다.
언어로 추락하지 않는 한 마디만 남기고 싶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시대로
죽어간다.

내 손 끝에 한 방울의 미지근한 물방울이
닿았을 때 나는 그것이 벌써 추억이 되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정적뿐인 추억. 나는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하고
기억할 때마다 나의 우주에서는 소리가 사라지고
희고 담배연기 색깔을 띠는 뼈로 된 창살 속에서
괴물 하나가 운다.
너무 울어서 이제는 울음소리 대신
폐에서 올라오는 붉은 피가 번져나가는 잉크처럼
비에 맞아 무너지는 찰흙인형처럼
모노톤의 영혼. 괴물은 운다.

연극무대 위에서 과거-현재-미래는 계속 뒤집히고
아니요 나는 사랑하지 않아요.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아니요 나는 살아가지 않아요.
몇 번이나 밤이 오고 유리창에는 달이 비추고
어젯밤 자살을 실패한 사람에게
오늘 또 해가 떠버리고 만다.
고독의 끝자락에 온기가 닿았던 시절 때문에.

누군가의 눈동자에서 빛을 발견했다면
그녀의 눈꺼풀을 닫아 꺼뜨려라.

괴물을 위하여.
Posted by Lim_
:

출국금지령

글/시 2014. 11. 11. 18:16 |
출국금지령


나는 노래하지 않는다 낮에는
수십 개의 알약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새벽 중 울음소리에 깬 짐승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가 광야를 돌아도
나는 노래하지 않으련다 꼬깃꼬깃 접한
오천 원짜리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저 가난이 주름이 되고 눈동자가 허옇게
뜬 늙은이들이 혀를 늘어뜨리고 걷는
시간에는.

어머니는 주로 나를 미워하고 아들을 사랑하니까
내 방에 놓고 온 나의 심장도
그녀가 쓸어 담아 집 앞에 내놓겠지.
아아!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입니까 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흰색 벽지에 양귀비를 그려놓은 붉은
붉은 방을 찾아 헤매고
여기는 생활이 있는 사람들의 땅이야 고로
여기서 마시는 생수에서는 이국의
냄새가 난다 바다가 없고 태양이 없고
달궈진 모래는커녕 유황불 같은 리큐어도

파란 나팔꽃의 작은 씨앗이 어떻게 광증이 된다지
나는 손을 내밀며 묻곤 하는데
나는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나에게는
신을 만들 기술 밖에는 없다.
내 호주머니에 담긴 열쇠는 잠그기만 하는 열쇠
외출할 때 문을 잠궈버리면
들어갈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고통을 배설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모든 땅과 바다 속에서 끌어 모은
한 사람의 인간이 이런 것들을
단숨에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너는 와이셔츠도
입지 않고 심지어 아무도 네 갈비뼈를
마주 잡지 않으니. 모래와 태양의
모래와 태양의 땅으로 가야겠어요 한 척의
낡고 거대한 배를 타고 멀미와 병에 구토하면서.

다 타고 남은 것들만 있는 땅에는
고통도 녹아 기화하고 슬픔은 훤히 드러나
그림자를 잃겠지요 노인들은 나무 장승처럼
잘 타는 땔감이 될 것입니다……
불의 냄새가 나는 벽돌들로 집을 짓겠습니다
그러면 나는.

젠장, 젠장! 도시에서 사는 바람에
도시에서 너무 많은 담배를 피워서
내 폐는 계속 연기를 뱉습니다
저녁에는 영혼의 외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몇 잔의 술을 마실 것이고요.
그리고 밤에는 기침을 앓으면서
빈 방에서 잠들어야만.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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