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병에 걸린 자를 동정하는 것은 그만
글/시 2014. 10. 2. 07:09 |
불치병에 걸린 자를 동정하는 것은 그만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난 더 이상 지나가는 노파의
지팡이를 빼앗아 그녀를 두들겨 패지 못한다.
그것이 순수라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순수라는 단어를 나 자신에게 사용할 만큼
순진하지 못하다. 어린 시절에 나는
학교 창고에서 발견한
새끼 생쥐들이 바글거리는 둥지에
불을 질렀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였고
그것들은 털도 나지 않은 한갓 생쥐였다.
어머니가 나를 도취시켰다. 야생의.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내 청바지는 무릎 부분이
갈기갈기 찢겨있다. 몇 년 전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술을 처먹고
갑자기 친구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그가 일하는 구멍가게로 냅다 달렸다.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얼굴부터 떨어졌다.
얼굴 오른쪽이 전부 찢겨나갔고
바지도 찢어져있었다. 나는 얼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웃으면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친구가 날 쳐다보았다. 마침 물건을 사던 손님이
내게 반창고를 주었다. 나는 눈에서
소주를 흘렸다.
반창고는 상처의 십분의 일도 가리지 못했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나는 이를 뽑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위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악취는
무슨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지만
나는 잇몸에 피가 날 정도로 이를 닦는다.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닫는다.
온갖 장기와 뇌와 영혼에서 스미어 나오는 악취를
그들에게 들킬까봐. 나는 이를 닦는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노파에게도
시답지 않은 잡담을 건넨다.
그러나 멀찍이서 할뿐이다. 나는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으니까.
가까운 곳에서는
나의 악취를 들키고 만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렸다.
나는 자주 웃는다. 과거에 어머니는
날더러 웃는 연습을 하라면서
입에 볼펜을 물려주었다.
나는 며칠 만에 그 짓을 포기했지만
덕분에 지금 나는 잘 웃는다.
내 흉부에는 수십 개의 흉터가 있지만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잘 웃는다.
나는 옷을 세탁하고 머리를 감는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술을 마셔도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창문을 깨지 않는다.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병에 걸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고
생각보다 아프고
생각보다 쓸쓸하다.
버스가 도로를 달리고 전동차가
사람들을 싣고 철로를 달려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부서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