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글/소설 2014. 8. 13. 22:05 |
2014/8/4 완성.

1. 척 팔라닉의 <질식>을 읽었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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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였다


어둠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면서 네온불빛 위에 쌓이는 밤 시간에 나는 시상이 내 영혼 위에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러우면서도 익숙한 일이라서 나는 혈기도 없는 형광등 불빛 밑에서 담배를 피웠다. 바깥에서는 황달에 걸린 것 같은 가로등 빛이 깜빡거렸다.
그러나 나는 시를 쓰지 아니하였다. 차라리 나는 시상이 무슨 색깔을 하고 있는지에 골몰하였다. 매일 내가 삼키는 십 수 개의 알약들을 오늘 아침 나는 잊어버린 것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광증이 내 뇌수 속에서 분열의 소리를 외치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알아차렸다는 표현은 정당하지 아니하다. 약물이 늘 내 광증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곧 나는 현대의학으로 규정지어진 나의 광증에게 네가 시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고 싶어졌다. 붓다의 어떤 가르침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광증에게 질문할 수는 있어도 광증이 답을 주지는 아니하리라고 말이다. 그래서 광증인지 시상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말하기를: 나는 그저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죽도록 그리웠다.
사락사락 쌓이는 어둠 속에 도시의 눈물인 듯 습기의 냄새가 났다. 나는 담배를 태우고 또 담배를 태우면서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자살을 하느냐고 자문했다. 도시에 사는 영혼들은 네 심장박동을 따라 유감이 핏줄 속을 돌아다닐 때 어떤 면도칼 사이에서 세상을 버리는 방법을 찾아내느냐고.
광증아, 내 광증아 너는 언젠가 내가 타고 갈 비루한 황소 한 마리를 데려오리라. 그러면 나는 양발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황소 위에 올라탈 것이다. 그러면 그 비루한 황소는 위로하는 듯 조롱하는 듯 울면서 계곡을 건너고 강을 건널 것이다. 나는 안녕이라고도 하지 않고, 천천히 썩어가는 세상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나는 시베리아의 여인을 처절하게 사랑했었고 계절은 겨울에서 정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산골을 떠나서 내 광증을 낳은 어머니의 피폐한 젖가슴 속으로 돌아왔다. 벽을 보고 걸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이 깨달음처럼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하여 나는 이 벽이 미로의 한복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또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우고 내 가슴을 껴안았다. 불빛은 불행하여 아름다웠다.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들이 밤하늘에서 서로 부딪히며 떠돌았다. 나는 길 가는 행인들의 정수리를 쪼았고 그들은 핏방울마저도 체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러 가리라고 다짐하였다. 나는 소주병을 나팔처럼 들고 노래하리라고 다짐하였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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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골목에서

글/시 2014. 6. 28. 23:39 |
서울의 골목에서


주황색 긴 그림자
가끔 한없이 슬픈 실루엣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심해에 사는 어류의
눈동자 없는 얼굴을 본다면
필경 그러한 느낌이리라.

병든 마스크들, 그러나 거기에는 발악도
순응도 아닌 포기의 발자국이
검은 빛을 받아 선명히 보인다.

오, 인간이라는 서글픈 아이러니여!
아마도 당신은 찬미하지 않을
그 마지막 순간은
소리 없는 물결처럼 묵직하게
당신의 안으로 스며들어올 것이다.

당신의 흉터를 가려줄 안개조차 없는
이 기괴한 내륙에서
우리들은 분명 삭아 들어가고 있으리라
존재의 마지막 편린에 대해
사고의 귀퉁이로도 잡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가 최후에 맞이하게 될 그 어머니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해보아야만 하리라. 아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그녀는
우리의 심장을 힘껏 움켜잡고 있다.
그러나 당신, 점점 퇴색되어가는
텅 빈 표정을 가진 당신……

원망의 아우성들을 듣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다만, 잠자는 괴물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이 골목에서
우리는

우리는.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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