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21.05.20 <바벨의 도서관> 감상.

도서관, 진실과 회의


  보르헤스의 <픽션들> 가운데 한 편인 <바벨의 도서관>은 저자가 관찰하고 상상하는 세계가 그대로 글이 된 것 같은 단편이다. 시작부터 ‘도서관’과 ‘우주’를 동의어로 사용하는 화자를 이용하여 보르헤스는 작중에 그려지는 ‘도서관’이야말로 우주, 혹은 세계의 비유적 형태라고 넌지시 일러준다.
 육각형의 진열실에 다섯 개의 책장이 있고 각각의 책장마다 서른두 권의 책이 꽂혀있는 공간이 위와 아래, 그리고 복도로 연결된 평면으로 무한하게 펼쳐진 것이 이 ‘우주’의 모습이다. 이 도서관은 어느 모로 생각해봐도 무한하지만, 25개의 철자 기호(22개의 철자와 여백, 쉼표, 마침표)가 410페이지 안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조합은 유한하기에, 단순히 무한하다 유한하다 단정하기가 힘들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에 작중 화자가 나름의 가설을 희망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공간에서 모든 인간은 사서로 태어난다. 그들은 ‘도서관에는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역사적 시행착오 덕분에 알고 있다. 이것은 곧 지식은 물론이고 과거와 미래, 심지어는 진리까지도 도서관의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젊은 시절 으레 ‘어떤 책’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화자 또한 ‘목록 중의 목록’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인물이다. 여행으로 그치지 않고 ‘사서들’은 수 세기에 걸쳐 도서관에 대한 온갖 관념적, 철학적, 신학적 이론을 세우고 교파를 만들며 행동하기까지 한다. 나에겐 이것이 인간본성과 인류에 대한 보르헤스의 날카로운 비평이자 풍자로 보인다.
 ‘도서관’에는 몇 가지 조건(철자의 수, 페이지 등)을 갖추기만 하면 가능한 모든 책이 존재한다. 이는 우주가 무한하다면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영’이 아니기만 하면 모든 가능성이 실재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나에게는 이 도서관이 혼돈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과 ‘영이 아닌 것’으로만 실재가 나뉠 뿐, ‘영이 아닌 것’들은 모조리 존재하거나 벌어질 수 있으며 그런 일에는 허가도 도덕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 주의나 이념을 내세우며 질서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만이 하는 일이다. 작중에서도 화자는 ‘유일한 종족인 인간’이라는 문장을 쓴다.
 작중의 온갖 교파들이 각기 다르게 주장하는 진실이나, 어딘가에 있을 진리가 적힌 책을 찾아다니는 것이 도서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화자는 ‘도서관의 모든 책은 유일무이하다’고 쓴다. 그리고 모든 유일무이한 책이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변형되거나 번역, 해석되어 무궁무진하게 도서관에 꽂혀있다고도 쓴다. 그 책들 또한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서가 찾는 진리의 책이라는 것이 과연 다른 책들보다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도서관의 모든 책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설령 어떤 사서들의 집단이 ‘이것이야말로 진리의 책이다’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고 한들, 도서관의 구조와 원칙을 생각해보면 그 책은 다른 책들과 동일한 가치밖에는 가질 수 없다. 그 ‘진리의 책’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렇게 주장하는 사서들뿐이다.
 다시 말해 ‘가능성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만물과 만사가 평등하게 무가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일한 종족’인 인간만이 거기에 각기 다른 값어치를 매긴다. 인간은 질서를 찾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생각해보면 우주는, 혹은 우주의 대전제가 되는 것은 늘 혼돈과 우연이다. 우주(또는 도서관)가 질서정연한 형태로 보이는 것은 그것의 본질이 규칙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이 질서를 찾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늘에 아무렇게나 떠 있는 구름만 보아도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를 연상하는 본능이 인간에게는 있다. 즉 언제나 규칙성을 찾고 있는 종족이다. 인간이 말하는 질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욕망에 따른 환영 같은 것이며 혼돈 내부에 존재한다. 이런 생각은 보르헤스의 또 다른 단편인 <바빌로니아의 복권>을 읽으며 확신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인간이면서 인간본성을 차갑게 부정하기만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러한 사고방식 또한 ‘질서’를 찾는 본능의 표현이기도 하다. 화자는 곧 자신이 죽게 되면 어느 친절한 사서들이 자신의 시체를 육각형 진열실의 가운데 뚫려있는 영원한 허공에 내던질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에 그는 인간이 멸망해도 도서관은 영원히 존재하리라고 담담하게 서술하면서도, ‘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될 것이다. 진정한 “질서”가.’라고 희망하며 수기를 마친다.
 내가 알기로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평생 진리나 통일성을 찾아다닌다. 방법의 차이 때문에 눈에 띄거나 그렇지 않을 뿐, 모두가 도서관에서 태어난 사서와 같다. 그러나 수없이 많고 판이한 진리들이 동등한 가치로 존재하거나, 인간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신들이 ‘유일무이한 책들’을 써놨을 가능성도 절망처럼 존재한다. 작중에 언급된, 410페이지 동안 M, C, V만이 반복되는 이상한 책이 만약 우주의 진실이라면, 인간에게 우주의 진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위와 같은 생각들을 끌어내며 보르헤스의 소설은 언제나 날 침묵하게 만든다. 침묵을 강요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때문에 오랫동안, 내게 보르헤스는 늙고 괴팍하며 비웃음을 띈 노인으로 머릿속에 그려져 있다. 그는 인류를 모조리 비웃으며 지식과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조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의구심은 늘 머릿속에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악의적인 이미지―나의 개인적인 이미지지만―와는 별개로, 그의 작품은 맹렬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기발한 상상력과 문학에 대한 그 불같은 열정이 읽는 사람을 놔주지 않는다. 설령 그 안에서 가학적이며 얼음같이 차가운 조소가 이쪽을 향하는 것 같아도, 훌륭한 문학작품에서는 그것이 불쾌할 수 없다.
 아니, 보르헤스뿐만이 아니라 거장들의 작품에서는 어떤 끔찍한 눈동자가 페이지 안에 담겨 있어도 책을 덮어버릴 수 없다. 오히려 그 끔찍한 것을 밑바닥까지 마주 보고 싶다. 그것은 아마도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작품에 담는 진실성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osted by Lim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