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3.03.30 어느 맑은 날에
  2. 2019.11.08 전학의 추억 2
  3. 2019.10.29 몇 가지 가능했던 일들 중 하나 1
  4. 2019.10.16 (완결미정)분노대리인의 수기

어느 맑은 날에

글/에세이 2023. 3. 30. 17:10 |

어느 맑은 날에


 2주간 내리 위장병 때문에 고생을 했다. 며칠 약을 챙겨 먹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구역감과 위산 역류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잠에서 깨어날 때 나는 무언가가 아주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당장 알 수 없었다. 끙끙대며 이불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한동안 거실과 방을 오고 가며 이 괴기스러운 이질감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용 책상 위에 마구잡이로 쌓인 책 세 권이 별 의미도 없이 눈에 들어왔는데, 맨 밑으로부터 페터 한트케, 베르톨트 브레히트, 허먼 멜빌의 순서로 책이 쌓여있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허먼 멜빌의 책을 맨 밑에 두고 그 위에 페터 한트케를 두었으며 맨 위에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 작업에서 약간의 위안을 느꼈다. ‘잘못된’ 무언가가 다소는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속이 헛헛한 듯이, 더러는 백일몽을 꾸는 듯이 나는 도저히 제 컨디션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음!” 나는 괜스레 목소리를 내보았다. 아마도 지금 상황이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목적에서 그랬던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내 오른손을 들여다보았는데, 아주 기겁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색 피부밑에 튀어나온 관절과 뼈, 그리고 불거진 핏줄 따위가 전에 없던 강렬한 형상으로 내 눈에 박혀버린 것이다. 내 손이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나는 거의 30초가량 손을 앞뒤로 돌려가며 유심히 관찰했다. 크게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그보다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내’ 손에 대해 놀라움을 느낀 까닭을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오히려 싱숭생숭한 기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나는 내 미국인 친구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소위 ‘매직머쉬룸’이라는 것을 섭취한 적이 있는데, 환각이 사라지고 나자 몹시 이상한 부작용이 몇 달이나 지속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부작용이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이 너무도 강렬하게, 그리고 치명적일 정도로 분명하게 자신들의 존재성을 부각하고 있어서 도무지 눈을 뜨고서는 휴식도 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의 나와 비슷한 기분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는 또다시 집안을 서성거렸다. 서성거리기엔 그다지 넓은 집도 아니지만, 여하튼 나는 방문과 화장실 문 따위를 전부 열어보며 세계로부터 완전히 이방인이 된 기분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핸드폰을 일주일 넘게 꺼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위장병을 앓느라 도무지 기력이 없어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일일이 반응하기도 귀찮았던 것이다. 지금 핸드폰 전원을 켜면 아마 부재중 전화가 열 몇 통은 쌓여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핸드폰은 그냥 꺼두기로 했다. 나중에 활력이 좀 돌아오면 그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냉장고 문을 5번 정도 열였다가 다시 닫았다. 여전히 식욕이 없었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같은 동 303호에 사는 아저씨가 마침 볕을 쬐러 나온 것인지 인사를 해왔다. 그와 만나는 것은 약 2달 만이었다. 나는 그가 왜 이런 대낮에 집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하면서,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 뒤, 한 대 피우겠느냐고 담뱃갑을 내밀었다.
 아니오, 이젠 끊었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는 티셔츠의 목덜미를 슬쩍 내리면서 목에 난 수술 자국을 보여주었다. 이젠 평생 끊어야겠죠.
 저런, 큰일이었겠네요.
 뜬금없지만 그제야 나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길에 행인들이 평소보다 많다 싶었다.
 햇빛이 좋네요. 내가 말했다.
 이젠 봄이죠.
 나는 어쩐지 없던 기력마저 다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담배는 다 탔고, 그에게 인사를 한 뒤 계단을 올라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안방 문을 열어보니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동생이 침대 구석에 온몸을 쑤셔 넣은 듯한 자세로 잠들어있었다. 오후 4시였다. 나는 동생이 그대로 자도록 내버려 두고 안방 문을 닫았다. 내 방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 때문에 우울해졌다. 곧 마감을 맞춰야 할 원고를 위장병 때문에 2주 내내 내팽개쳐두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날아간 2주를 되돌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책 없이 게으른 기분이 되었다. 나는 작업용 책상에 앉아 브레히트의 시를 몇 편 읽었다. 다시 덮어놓으며 “흠!” 하고 또 괜한 소리를 냈다. 삼월이 끝나가고 있었고 내게는 아무런 계획도 떠오르지 않았다.
 창밖에는 날씨가 퍽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6월에 친구가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요새는 축의금으로 5만 원만 냈다가는 괜히 나중에 뒷담화 거리나 된다고, 그런 얘기를 TV뉴스에선가 친구로부터였던가 주워들은 기억이 났다. 나는 멍한 채로 의자 위에 앉아있었다. 6월이 되기 전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테지. 중얼거리면서 나는 이상하게 앉은 자세 때문에 골반이 몹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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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의 추억

기록/생각 2019. 11. 8. 13:33 |

전학의 추억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10살 때였을까요. 저는 가족들을 따라 의정부로 이사가 처음으로 아파트 단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아파트 단지라는 것은 그야말로 혼돈으로,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수도 없이 서있는 미로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문제가 된 것은 전학수속을 마친 뒤였습니다. 그 동네에서 처음 등교하는 학교로 가, 수업을 마치고 보니 이것이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까지 가는 길은 분명히 기억하는데, 단지 안의 어떤 건물이 나의 집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별 도리가 없어 하교하기 전 담임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하니, 그녀는 아무래도 제 신상기록을 뒤져본 모양입니다만, 아무튼 간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반 친구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 아이는 10살치고도 유난히 키가 작고 어머니가 정성스레 땋아준 것으로 보이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것 참 그녀는 그 작은 체구에 놀라운 성질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박또박 말하는 말투며 주변 일에 흔들리지 않는 무관심한 성정하며, 저는 그 어린 나이에도 나와 같은 나이의 어린애가 그런 성격이라는 점에 놀라워했던 것 같습니다. 여하간 선생님이 알려준 동과 호의 숫자를 되뇌며 제 앞에서 따박따박 걷기 시작하는 작은 여자애를 따라 걸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선생님과 그녀가 나를 자기 집도 기억하지 못하는 바보로 안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때는 아마도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초록색 나뭇잎 사이로 흘러내리는 그리 덥지도 않은 황금빛 광선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기억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시각에 집중되어있습니다. 당시에는 소리를 잘 듣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자동차가 지나가도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엔진이 울리는 것 같은 아련한 소리만 들릴 뿐이었으니까요. 하여 도로의 회색이 되어가는 콜타르라든가, 거의 칠이 벗겨진 횡단보도의 흰 줄이라든가, 그 위에서 아른거리는 태양의 흔적들 따위만 저의 어린 시절에는 가득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당시 저는 귓속에 점액이 차는 병을 앓고 있었다고 어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요. 그저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을 뿐입니다. 여하간 제 앞에는 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정수리에서 뒤통수를 지나는 직선의 선으로 두피가 보이는 작은 아이가 놀라울 만치 곧은 자세로 거리를 걷고, 저는 그것에 감탄하면서 마르고 흰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끔 흘러내리는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그때도 저는 몹시 시력이 나빴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이른 나이부터 독서에 열중해 밤에도 성치 않은 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하여 돌이켜보면 우스운 장면인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도 뭣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몸짓이 똑바르고 당당한, 저보다 한참 키가 작은 여자아이를, 나이에 비해 뇌수만 비대해져 창백하고 비쩍 마른 키 큰 남자아이가 주춤주춤 따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코미디의 한 장면 같습니다만, 어린아이의 의식이라는 것은 그렇게까지 발달하지 않아 희극이나 비극을 구분할 필요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가, 삼백 몇 동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 건물 안에서 소녀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추더니, 감탄스럽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 넌 2층이야.>하고 말입니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고 상냥했지만 마치 군인의 강령처럼 완벽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단지까지 오는 동안 그녀가 뭔가 말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아니, 말했을 리가 없겠지요. 그런 소녀가 길을 가는 와중에 사사로운 잡담을 했다는 기억은 없습니다. 하여 처음으로 소녀의 목소리를 똑바로 듣고, 이 작은 아이에 대해 놀라워하면서, 사마귀처럼 긴 사지를 가진 저는 털벅털벅 2층으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 모험을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왔니>하며 무관심하게 반겨주고, 저는 여전히 그 소녀의 놀라운 성질에 대해 감탄하며 벙 찐 표정으로 멍하니 현관에 서있었더랬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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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가능했던 일들 중 하나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게 독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있는지라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지난밤에는 겨울비가 살짝 내렸습니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할 무렵 마음이 들떠 밖에 나가, 혹시 내가 중랑천에 닿을 때쯤이면 폭우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내쳐 걸었습니다. 폭우에 사납게 변해 사람이고 자동차고 전부 집어삼킬 듯 발광하는 강이란 참으로 매력적인 것입니다. 보고 있으면 스스로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뛰어들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랑천에 도착했을 무렵 겨울비는 이미 그쳐있었고, 그 시답잖은 내천은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실개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광경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뜀박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먹기는커녕 그런 일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는 듯 치졸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입니다만, 실개천이 광천狂川이 된다한들 도무지 혼자서는 못 뛰어내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별 것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수치와 민폐로만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정말로 우연히 한반도에 내동댕이쳐진 내 목숨은 누구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사랑도 받아봤고 사랑도 해봤습니다만, 그런 것은 지나고 나면 별달리 중요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요컨대 그냥 지나가버리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바람이야 맞부딪힐 때는 시원하기도 하고 광풍 같아 두렵기도 한 것입니다만, 실제로 바람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이 났다든가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지나가는 것은 결국 지나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의 의미니 가치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것을 찾겠다고 광란하여 흔히 문학이라고 하는 활자의 지옥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로 지옥에는 고통과 절규만 있을 뿐 구원 같은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스스로 지옥에 빠져 광란하는 동안 현세의 저는 주변인들에게 민폐와 상처만 주고 있었던 모양으로, 이미 이마에는 생활무능력자라는 빛나는 이름이 박혀있고 사람들은 벌레 쫓듯이 저를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유감이라면 유감일 일이지만, 저는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납득해 버렸던 것입니다.
 산꼭대기의 절벽이나 능선 간의 흔들다리나 비에 불어 요동치는 강을 찾아다니게 된 것은 당연한 일로, 수치스러운 삶을 살았다면 스스로에게도 수치스러운 바,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비가 내리거나 뉴스의 기상정보에서 폭풍이라도 온다고 하면 마음이 들뜨고 마는 것입니다. 굳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다는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렵니다. 정확히는, 죽을 자리를 찾는다기보다는 죽음이 들쥐를 채가는 매처럼 저를 채 가주지 않을까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제도 겨울비에 이끌려 중랑천에 갔습니다만, 반복하건데 도무지 혼자는 죽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욕해주십시오. 매도하고 발로 걷어차 주십시오. 아직까지 고독이라는 이기심을 품고 있다는 점을, 부디 영원만세 십자가 위에 매달고 비웃어주십시오. 사랑도 받아봤고 사랑도 해봤다고는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소견으로 그것들은 아무래도 사랑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 뭔지는 사실 모릅니다. 그러나 앙드레 지드가 좁은 문에서 피워놓았던 그런 사랑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찾기만 하면 제 저주받은 영혼도 충만감을 갖고 고독에서 벗어나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 제가 알고 있는 진실은, 제행무상 성자필쇠라고, 현세에 영원한 것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을 찾기만 하면, 다정하게 손을 잡고 곧장 울부짖는 강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호운을 빌어주시되, 제 이기심과 뒤틀린 정신을 욕하는 것도 잊지 말아주십시오. 단 한 번도 독자를 가져본 일이 없는 이 작가 나부랭이는 마침내 방랑하는 인생의 답을 찾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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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대리인의 수기


8월 26일.
 오늘은 김가네에서 사온 김밥이 터져있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한 줄에 4500원이나 하는 김밥이 포장될 때부터 터져있다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모두 사회인 실격이다. 김밥집에서 터진 김밥을 파는 사회 따위 애당초 없는 게 낫다.
 내가 돈이 썩어 넘쳐서 한 줄에 4500원 하는 김밥을 사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무 김밥이나 먹을 셈이었으면 한 줄에 1000원하는 김밥으로 족하다. 김가네는 김밥 전문점이다. 김밥 전문점이면 김밥을 마는 사람도 김밥 전문가여야 한다. 동네 아줌마 데려다가 김밥 말게 해놓고 김밥 전문점이라고 하지 말란 말이다. 그러나 이따위 상황이 길마다 펼쳐져 있는 것이 현실 사회다.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이 인류가 5천년에 걸쳐 만들어낸 문명사회다. 엿이나 먹으라지.
 생각해보니 오늘은 한 일이 김밥 사온 것 밖에 없다. 오후 3시 쯤 일어났던 것 같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잘 모르겠다. 사실 요즘은 매일이 이런 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터진 김밥에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일 수도. 당장은 수중에 돈이 좀 있다. 그래서 김가네에 가는 사치도 부렸던 것인데, 결국은 이 꼴이다. 망할 자식들, 어차피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다면 김밥이 아니라 공깃밥을 샀을 거다. 모두들 책임감이 결여되어있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놈들뿐이다. 신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성경을 보면 신은 인간들이 퇴폐와 향락에 좀 젖었다고 불벼락을 내리던 놈이다. 그런 놈이 지금 세상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만약에 있다면 분노조절장애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서 불벼락을 못 내리는 것이겠지.
 내일도 엿 같은 날일 것이 분명하다. 다만 김가네에는 가지 않겠다. 그럼 터진 김밥을 돈 내고 사먹는 엿 같음은 겪지 않아도 되겠지.

8월 27일(새벽).
 맞은편 건물의 늙은 부부가 또 지랄이다. 저 영감탱이는 미친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항상 새벽 1시 30분만 되면 지랄병이 도진다. 아마도 밖에서 술을 먹고 그때 들어오는 것 같다. 나이는 잘 모른다. 사실 얼굴도 모르지만 목소리로 보아 70대는 되었을 것이다. 매일 이 시간만 되면 술에 꼴아 자기 마누라한테 쌍욕을 하는 게 저 영감의 취미다. 왜 목을 매달고 죽어버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렇게 마누라를 증오하면 차라리 칼을 들고 한바탕 한 뒤 9시 뉴스에라도 나오든가 말이다. 마누라라는 할망구도 똑같이 제정신이 아니다. 물론 제가 먼저 싸움을 시작한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영감보다는 나은 것 같지만, 창문을 통해 들리는 두 미친 노인들의 육두문자를 듣노라면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지들끼리 쿵짝이 맞아서 같이 살기 시작했을 것인 인간들이 서로에게 외쳐대는 욕설은 그야말로 부모 죽인 원수끼리 같은 집에서 사는 것 같다. 저 늙은이들에게 자식이 있을 것인가 생각해봤는데, 아마 자식이 있다면 그것도 똑같이 미쳤을 것인즉 이 소음공해는 결국 자식이 노부모를 죽이는 것으로 해결이 될 것 같다.
 30분 쯤 지나면 결말은 언제나 똑같다. 너무 술에 꼴아 고래고래 욕설을 외쳐대는 게 지치면 영감탱이 쪽이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마지막으로 <내일 아침밥을 해둬라>고 하고선 더 이상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남자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할망구는 자빠져 자는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에게 10분 정도 ‘개새끼’, ‘시발새끼’ 고함치다가 똑같이 조용해진다. 저것들은 죽어야한다. 만일 누가 나한테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저 노망난 늙은이들부터 언급한 뒤에 나머지 69억 9천만여 명의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가끔 ‘늙으면 죽어야지’하며 신세 한탄하는 늙은이들이 있는데, 내 맞은편 집 노부부에 대해서라면 제발 좀 추잡스럽게 계속 살지 말고 죽어줬으면 한다. 스스로의 삶이 수치스러운 것도 모른다면 차라리 남의 손에라도 죽어야한다. 제기랄, 인간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추하고 더럽고 그런 주제에 끈질겨서, 말하자면 마치 서로 피를 빨며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고 있는 거머리들 같다. 지금은 탄탄하고 잘나 보이는 인간들도 애초에 근본은 모조리 폐기물덩어리 같아서, 늙으면서 그 유독물질이 점점 피부 가까이 퍼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겉보기에도 벌레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 덕분에 오늘도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개 같은 기분이다.

8월 27일.
 오늘은 하루 종일 논문을 썼다. 새벽에 있었던 기분 더러운 소음 때문에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다가 맨바닥에서 잠들어, 오후 늦게 깼다. 논문은 인간의 다면성을 전제로, 개인이 타인을 얼마나 일방적으로 판단하는 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직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꽤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완성된다고 한들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논문을 쓰면 신문의 칼럼란에 투고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정작 신문을 읽어보면 칼럼란에는 별 지적장애인이 쓴 것 같은 글들만 가득한데, 그런 것들이 버젓이 게시되어있다. 중요한 건 그런 지적장애가 있는 논평들의 저자가 죄다 교수나 박사, 혹은 정치인 등등이라는 것이다. 내 학력은 중졸이다. 원고를 들고 신문사로 쳐들어간다고 한들 편집부 입구에서 되돌려 보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신문사나 출판사에 투고해본 일이 없고, 집안에는 나밖에 읽어보지 않은 원고들로 가득하다. 만일 누가 나더러 왜 논문을 쓰냐고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단을 마무리 짓고 바람이 쐬고 싶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10분 정도가 걸렸다. 신경안정제를 어디다 뒀었는지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걸 뒷주머니에 넣어두지 않으면 바깥세상에서 내 손발은 몹시 떨리고 심장은 빈맥을 일으킨다. 결국 찾았고, 난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지금은 여름이라 밤늦게까지도 행인들이 많다. 집 앞에서 어떤 젊은 여자와 마주쳤는데, 지나치고 나서도 그 여자가 계속 날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꼴은 그다지 모범적이지 못하다. 머리는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산발이고 마지막으로 면도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제기랄! 저― 저 젊고 활기찬 육체를 가진 여자는 마치 도망 나온 산짐승이라도 보는 듯이 날 쳐다보고 있었겠지! 불안을 숨기기 위해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지만 담배를 피우는 내 모습이, 팔의 각도라든가 손목의 움직임이라든가 머리의 방향 따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멍청한 여자가 날 보고 있건 어쨌건 그게 무슨 상관이기에! 그러나 나는 결국 발걸음을 빨리하며 골목의 어둠으로 뛰어들었고, 아무도 없고 이상한 소음과 침묵만 가득한 골목 끝자락에서 연신 허덕거렸다.
 분노와 악의가 심장의 구렁텅이에서 부글거렸다. 그러나 고함을 칠 수도 뭘 어쩔 방도도 없었다. 애꿎은 담배꽁초만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뭐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산발적으로 장작도끼니 적출이니 하는 소리를 했던 것 같다.
 해가 질 무렵이라 가로수의 나뭇잎이 암청색에 주황빛이었다.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 그것들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것들뿐만이 아니라 그 커다란 가로수도 결국엔 송두리째 시체가 되어 썩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듯 했다. 그러자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이 지구가 수십억 년분의 시체더미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제야 마침내 담뱃갑에서 계속 담배를 꺼내 무는 짓을 멈출 수 있었다.
 아무튼 집에 돌아오자 오늘은 글이라도 썼다는 사실이 나를 좀 안정시켰다. 그러나 논문을 쓰면서 물마시듯 커피를 마셔댔기 때문에 밤이 지나 새벽이 되어도 안면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망할. 누가 제발, 내가 왜 안 죽고 살아있는지를 좀 알려줬으면 싶다.

8월 28일.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다. 빈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광과민이 심하고 몸의 균형 감각이 잡히지 않는다. 딱히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닌데 걸을 때 절뚝거리며 걷는다. 어느 근육에 힘을 줘야 몸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지를 까먹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건 그다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오늘 담배를 사는 데 수치스러운 일을 겪었다.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살 때 커피를 함께 사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근처의 아파트 단지를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세 개비 째 피웠을 때 커피를 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슈퍼마켓으로 갈 수는 없었다. 물론이다, 이건 체면의 문제다. 만일 내가 슈퍼마켓에 다시 가서 담배냄새를 풍기며 멍청한 얼굴로 캔 커피 하나를 집어 든다면 계산원은 날 기억력도 나쁘고 주의가 산만한 바보로 알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빌어먹을 늙은 계산원 같으니라고. 그 40대 여자는 꼴에 어울리지도 않는 노란 머리를 하고 있다. 자기가 아직도 젊은 줄 착각하는 천치 같은 여자에게 몇 분 꼴로 슈퍼마켓을 들락거리는 인간으로 보일 수는 없다. 다른 마켓에 가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내 집 주변에는 가게가 그리 많지 않다. 8분은 족히 걸어야 할 것이다. 결국 나는 커피 사는 것을 포기하고 그 망할 계산원의 버러지 같은 노란 머리에 대해 성을 내며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안압이 높은 것 같다. 빛을 쳐다보는 게 괴롭다. 광과민이 날 괴롭힌다. 화가가 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고흐의 소용돌이 화법은 이비인후과적 증상과 황시증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다. 생각해보면 후세의 사람들이 누군가의 병리적 증명을 가지고 미학을 논하며 감동한다는 것도 웃다 죽을 일이다.
 오늘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쓰고 싶지 않았다. 아니 거짓말이다. 난 항상 글을 쓰고 싶어 한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죽어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미쳐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계단참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이 연립빌라의 통로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깨가 불쑥 솟으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거리로 나가는 것 보다는 낫다.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그것이 진실인지 내 과민인지는 제쳐두더라도―을 느낄 때마다 뇌가 대각선으로 핑핑 돈다. 그런데 거리에 나가면 거의 3초 간격으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계단참 하니까 말인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이 연립주택의 전셋집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서울에서 얻은 지상층이다. 집은 4층이고, 건물도 4층이 최상층이다. 계단참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옥상창고가 나온다. 그런데 분명히 그 옥상창고는 더 넓고 지저분하며, 온갖 상자와 폐기물 따위로 가득한 공간으로 연결됐었다. 수십 년간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5cm는 내려앉은 미닫이 창문도 하나 있었다. 전체적으로 황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오늘 계단참에서 담배를 피우다 올라가보니, 옥상창고는 5평도 되지 않는 공간으로 사방이 꽉 막혀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난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평생을 반지하에서만 살았다. 옥상창고 따위 갈 일도 없었다. 다른 건물과 혼동한 것이 아니다. 내 기억이 잘못됐단 말인가? 이젠 뭘 믿어야할 지도 모르겠다.

8월 29일.
 파(破)다. 파! 빌어먹을! 이 따위 논문은 도대체 무어하러 쓴단 말인가? 인간의 다면성을 전제한 개인이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의 일방성? 이 현학적은 타이틀은 도대체 뭐야? 나는 이걸 완성해서 누군가, 그러니까 독자나 평론가에게 기립박수라도 받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그건 끔찍하고 치졸한 일이다. 애당초 모든 화가는 닫아놓은 옷장 안에다가만 그림을 그려야 하고, 바이올리니스트들은 독방인 방음실에서 나오지 말아야한다. 인간들의 박수갈채는 한 인간을 완전히 못 쓰게 만들어버린다. 가엾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평가할 줄도 모르는 콧대 높은 왕으로 만드는 동시에 어깨가 좁은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이 병신 같은 수기는 또 뭐란 말인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면서, 문법과 표기를 딱딱 맞춰서 쓰고 있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그래, 난 내 추악한 속마음을 알고 있다. 내 비열하고 치졸한 마음을 알고 있단 말이다. 만약 언젠가 어떤 독자가 이 수기를 읽는다면, 나는 그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감명을 주려는 비겁한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나야말로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 혈안이 되어있는 노예다!
 나 스스로를 가둬야한다. 순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그렇다면 더욱 날 가둬야한다. 세상으로부터 날 가두고, 집으로부터도 날 가두고, 나 자신으로부터도 날 가둬서 차라리 길거리에 흩날리는 신문지 같은 존재가 되어야한다. 마침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이런 시기에 한강 굴다리 밑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다. 아니 보다 더운 계절이었던 것 같다. 침낭 한 장과 참치캔만 가지고 한 달을 살았었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인간애를 느낀 계절이었다. 굴다리에 스프레이 캔으로 낙서를 하러 오는 젊은이들이 푼돈을 주거나 여러 가지를 묻기도 했었다. 아마도 내가 적개심 없이 인간을 대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가진 게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 생존하려는 욕구조차 없었던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8월 30일.
 창문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아침 8시만 되면 프레디 머큐리 흉내를 내면서 노래를 부르는 미친 새끼가 있다. 프레디 특유의 창법을 구사하면서 더럽게 못 부르는데, 매일 아침 8시만 되면 그 지랄을 시작한다. 분명히 사람들의 아침 시간을 방해해야겠다는 숭고한 결심이라도 한 것일 터다. 오늘 난 안 그래도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친 상태였기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났다. 도대체 저 아파트의 관리인은 뭘 하는 것이란 말인가. 저 망할 새끼도 분명 에이즈로 죽고 말겠지.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내 치료비를 끊겠다는 것이다. 난 항의하고 싶었지만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그래서 이대로 병세가 악화되다가 병동으로 옮겨가면 좋겠냐는 말이나 간신히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굉장히 화를 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치료비가 많이 들어 가냐는 것이다. 나도 모른다! 내가 병에 걸리고 싶어서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일부러 치료비가 많이 들어가는 병에 걸린 것이냐는 말투였다. 나는 도무지 할 말이 없었지만, 어머니의 말투는 내 짜증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어머니의 부모로서의 의무와 감정을 툭툭 건드리는 단어만 사용해서 그녀를 비꼬았다. 그녀는 완전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그리고 덕분에 나도 정말로 죽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휙 사라지면 그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욕망은 우울증이 정신분열증으로 진화할 때 쯤 사라졌다. 죽고 싶다고 계속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사실 죽을 마음도 없다. 그냥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을 스스로에게 제시나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절망했을 때에나 상황이 나빠 보이는 것이지, 사실 상황은 단 한 번도 나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코미디의 법칙에 따르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웃음이 발생하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온 세상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들이 실소나 키득거리게 하는 코미디에 불과하다. 비극 같은 건 애당초 없다. 어머니가 치료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나는 더 이상 병원에 가지 못할 것이고, 그럼 나는 내 희극에 대한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없다. 아무 문제도 없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이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신보다 더 높이 받들고 있는 돈이라는 것도 한강 굴다리에서의 생활에 의하면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굶으면 되고 굶어 죽게 되면 죽으면 된다.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는데 내가 굶어 죽는 아침에 저 빌어먹을 가짜 프레디 머큐리가 또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면 그 새끼 목구멍에 칼집을 내고 죽을 것이다.

8월 31일.
 도무지 책을 못 읽겠다. 대략 일 년 전쯤부터 그렇다. 활자를 못 읽겠다는 건 아니다. 활자는 정확히 시각을 통해 내 뇌수에 새겨지고 있다. 문제는 내 인간혐오증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학술서나 논문 같은 건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소설과 시를 못 읽겠다. 소설에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작가의 의도야 어쨌건 간에,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참을 수 없이 증오스럽다. 나의 비대한 상상력도 한 몫 하는 것이다. 서술에 나오는 인물의 대사라던가 행동, 그들이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들을 읽게 되면 내 머릿속에서는 그 인물의 아주 정밀하고 지엽적인 부분까지 떠오른다. 그러면 어느 인물이고 상관없이 멍청하고, 추하고, 기만적인 것으로 보여서 날 분노케 한다. 그러면 몇 줄인가를 더 읽다가 그냥 책장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삶 따위 전혀 알고 싶지 않다. 그것이 현실에서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 보이는 수십 개의 마스크들이든,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가공의 인물이든, 난 인간의 삶 따위는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 같이 모순덩어리에다가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지도 못한다. 시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설령 화자가 <인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이 된다. 언제부턴가 지하철 플랫폼에 전업 작가부터 아마추어들까지 그들이 쓴 시가 중구난방으로 붙어있는데, 제발 좀 그만해줬으면 한다. 나는 그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고 싶을 뿐이지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찬미나 읽으려고 홈에 들어간 게 아니란 말이다.
 사실 내가 아직도 문제없이 읽을 수 있는 시인이 둘 있긴 하다. 그것은 랭보와 로트레아몽이다. 랭보가 10대 후반에 절필했다는 점이나 로트레아몽이 젊은 나이에 요절해버렸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글씨로 반란과 퇴폐와 증오를 노래한다는 것이다. 19살 때까지 쓰인 랭보의 시들은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을 사랑하고 싶었으나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발악이고 불경하게 악쓰는 구절들이다. 로트레아몽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아직도 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두고 이게 정말 시학에 들어맞기나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맥락 없는 저널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자면, 내가 로트레아몽에 몰입하게 된 건 첫 부분의 몇 소절이었다. <보름 동안 손톱이 자라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활짝 열린 눈을 가진, 윗입술의 위에 아직 아무것도 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침대에서 난폭하게 끌어내려, 그의 아름다운 머리털을 뒤로 쓸어주면서, 그의 이마에 그윽하게 손을 내미는 체하는 것, 아, 그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 다음, 그가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긴 손톱을 그의 부드러운 가슴에 박아 넣는다.>, <장밋빛 얼굴의 어린애를 껴안을 때면, 그는 면도날로 그 아이의 뺨을 떼어내고 싶어 했으며……>.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에서 구원을 얻을 때 나는 이 두 시인에게 구원을 얻었다. 그들이 쓰는 것은 아름다운 시였지만, 분명히 언어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특히 로트레아몽은 내게 <굳이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내 온 정신을 미라처럼 칭칭 감고 있던 죄책감과 도덕에의 강박이 일순간에 다 불타 없어졌다. 랭보가 데뷔한지 2년 만에 절필한 것도 굉장한 얘깃거리다. 그는 애초에 남들이 말하는 시인이 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미학을 찾지만 일단 그걸 찾아서 표현하고 나면 별로 할 일이 없다. 샐린저는 이제 글쓰기가 자신의 종교가 되었다고 한 뒤로 단 한 권의 책도 정식으로 출판하지 않았다. 랭보가 왜 아프리카로 갔을까? 그야 유럽대륙은 너무 춥고 공기도 씁쓸하니까. 그는 아마도 병에 걸려 태양에 타죽어 버리려고 인류의 고향으로 간 것일 터다.
 젠장,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이 수기에서 대체 내가 누구에게 뭘 가르치려는 거지? 나는 전두엽 절제술이 필요하다. 내 라면사리 같은 뇌 쪼가리에서 <독자>라는 개념을 완전히 삭제해야한다. 18살 때 시학선생님이 말하길 내 최대의 비극은 스스로 작가이며 독자이며 평론가인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끝나지를 않는 저주였다. 폐허가 된 건물 옥상에 버려진 다육식물이 되고 싶다. 그러면 난 누가 나에게 물이나 비료를 주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고, 수명이 다 할 때 까지 공기 중의 수증기나 빨아먹으면서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날 보러 오지 않을 것이다.
 쓰다 보니 생각났는데, 2년 전 즈음일 거다. 동두천의 바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다가 어떤 금발의 키 큰 흰둥이 미군이랑 시비가 붙어서 쫓겨났을 때,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로 들어갔는데 어디서 가져온 건지는 몰라도 웬 소주병이―아직도 내가 그 텅 빈 소주병을 왜 갖고 다녔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날 난 소주를 안 마셨다. 바랑 클럽에서 럼주만 오라지게 마셨다― 손에 들려 있기에, 스크린 도어에 붙은 어머니가 어쩌고 자신의 4살 먹은 딸의 웃음이 저쩌고 가을에는 코스모스인지 치매 걸린 하마 궁둥인지가 피어나네 하는 시민참여작 시에 냅다 집어던졌다. 그때야 그 멀대 같은 흰둥이한테 맞은 광대뼈가 시큰거려서 자지러지게 웃는데 달려온 공익요원들이 날 경찰서에 처넣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꼴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사적으로 해결하자며 빗자루와 청소도구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깨진 유리병들을 다 담아 치운 뒤에 그 과체중 요원들에게 넘겼다. 난 경찰 따위는 딱 질색이다. 경찰은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혐오하는 인종인데, 첫 번째로 혐오하는 건 시비만 털리면 바로 경찰 찾는 습관이 있는 겁쟁이 새끼들이다. 아무튼 그 과체중 요원들은 적당히 나태했고 적당히 사람 좋은 것들이었다. 내가 저지른 걸 내가 수습했으니 가 봐도 된다는 것이었다. 난 나보다 한참 어린, 스무 살이나 처먹었을까 싶은 복부비만청년들―평발이나 허리디스크였을 지도 모르지. 누가 알겠는가―에게 무슨 연극하듯이 과도한 감사를 전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집에 도착할 때 까지 지하철 안에서 <사노라면>을 열창했던 것 같다. 씨발.

9월 1일.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그리도 간단했다. 술을 마시면 되는 것이었다. 난 지금 5잔의 브랜디 덕분에 홀든 콜필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낱낱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나지도 않는다. 완전한 관조자의 입장으로 저 문제아의 뇌 속을 헤집어보고 있다. 써니! 써니라니! 어쩌면 그렇게도 창녀 같은 이름이란 말인가! 나는 내 시상하부에 알코올을 똑 떨어트리고 써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것이었다……. 알비노증이라도 걸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창백하고, 골격이 다 튀어나오는 뉴욕의 하층 창부. 눈에는 비웃음이 들어있다. 자신을 사는 남자들 모두를 비웃으면서 다리를 벌리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써니는 호텔 옥상에서 온갖 멜랑꼴리한 자기모순 투성이의 감정에 사로잡혀 몸을 투신하겠지. 천치 같으니라고. 사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자본주의가 적용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천치가 된다! 도도하게 외투를 입고 푼돈 5달러를 받아든 채 방을 나가는 써니. 써니. 나는 당신을 내 청춘의 어딘가에서 본 일이 있다.
 쁘로하르친 씨도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다. 아무와도 제대로 된 관계를 갖지 못하다가 왜소하게 죽어버린 노인을 나는 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할아버지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는 것이 떠오른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양반이었지만 더 술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겨울 빙판을 밟고 넘어져 골반 뼈가 부서졌었지. 그 뒤로 할아버지는 운신도 못하면서 점점 더 괴상한 인간이 되어갔다. 간호사들이 채혈을 하러 오면 이 마녀들이 자기 피를 갖다 팔려고 한다며 발악을 했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어떻게 됐었던 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건 오로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뿐이었는데, 오후 8시가 넘어가면 본래의 입을 꾹 다문 주철로 만든 인형처럼 되었다. 그러다가 당시 어렸던 내가 다가가면 입술이 납으로 되어있어 몹시 움직이기 어렵다는 듯이 힘겹게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죽은 뒤에 쁘로하르친 씨처럼 침대에서 거액의 돈이 나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 잠깐. 술에 취했더니 아무 관련도 없는 얘기가 계속 나오잖아. 제기랄, 난 분명히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술 따위를 처먹는데 돈을 썼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가 지독히 미워질 것이다. 담배야 생필품이라지만 술은 그렇지 않다. 책 따위 것, 안 읽으면 어떻단 말인가. 속이 부대낀다. 잠깐 구토를 좀 하고 와야겠다.
 알고 보니 오늘 먹은 것이 브랜디 다섯 잔 말고는 없는 모양이다. 구토를 한 변기물이 너무 깨끗해서 성수로 써도 될 정도다. 뱉거나 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침을 뱉든 담배연기를 토하든 구토를 하든 대소변을 배출하든 눈물을 토하든 땀이나 정액을 각 기관에서 토악질해버리든 내부에 있는 것을 바깥 세상에 내다버리는 것은 뭐든 간에 기분 좋은 일이다―한 가지 절대로 경험해볼 수 없는 예시가 있는데, 그건 출산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여성들이 출산 직후에 웃긴 하더라―. 몸이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난 단식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내장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다면 해봐도 좋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한 적 있다. 애당초 인간의 몸은 내부에서 뭔가를 너무 많이 만든다. 자체 생산도 정도가 있는데 심지어 음식물까지 아가리로 처넣으니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은 고물 태엽시계처럼 되는 것이다.
 그래, 체질상 쉽게 비만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알고 있다. 누구 말처럼 하루 한 끼만 먹는데도 뒤룩뒤룩 살이 찔 수도 있겠지. 세상은 신비로우니까. 그러나 나는 고도비만인 인간이 내 눈앞에 있으면 이성을 잃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이미 인간이 이 행성에 70억 명이 넘게 있는데 왜 각 개체까지 부피를 늘리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냐. 그렇게까지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은 것인가? 그래, 이 사막 한복판에 버려놔도 40일간 자가 지방연소로 살아남을 대단한 자식아. 다른 게 아니라 인간들이 그렇게 가시적으로 보일 정도로 생명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짜증을 돋운다. 당신들이 자궁 속에서 어머니 내장 걷어차면서 놀던 시기부터 니들 뒤통수에 붙어있던 게 바로 다름 아닌 죽음이다. 근데 그 오래된 친구와 만나기가 싫어서 고기 가는 기계마냥 연료를 아가리에 처 붓고 있단 말이냐. 아니 그래, 솔직히 내가 고도비만 인간들을 보기만 하면 짜증이 나서 말도 안 섞고 도망쳤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내 추리와는 달리 죽음을 외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숭고한 목적을 위해 세포 총량을 늘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글쎄, 뭔지는 모른다. 계속 체세포를 늘리다가 분열한다든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난 하루에 한 끼 먹는 것도 기껏 깨끗하게 만들어놓은 내장을 더럽혀야만 하냐고 쌍욕을 하면서 먹는 인간인데. 씨발! 모른다. 애당초 화만 지랄같이 나지 관련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내가 대통령이면 전 세계 사람들을 불임으로 만드는 무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할 텐데. 인류재생산이라니, 크로넌버그가 고안한 괴물들보다 더 추악하게 생긴 새끼들이 재생산은 무슨 얼어 죽을 재생산.
 취한 것 같다. 자야겠다.

9월 2일.
 전화 때문에 오후 2시에 깼다. 일어나자마자 끔찍한 기분이었다. 첫째는 숙취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망할 놈의 전화기 용도 때문이다. 난 전화가 올 때마다 심각한 불안감과 공포를 느낀다. 굳이 말하자면 어렸을 때 어머니 휴대전화로 포르노를 봤는데 통화료 고지서가 날아왔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다. 전화벨이 울리는 내내 그 기분이다. 아무튼 발신인은 병원의 간호사였다. 올 때가 지났는데 왜 오지 않냐는 것이었다. 내 대답이 걸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모르겠다’는 말이 튀어나간 것이었다. 이유야 많지.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치료비를 끊었으니 이제 병원에 가려면 내가 가진 돈에서 할애해야하는데, 애당초 이 돈은 하루 한 끼 먹고 물만 마셔도 한 달이면 없어질 돈이다. 그런 돈을 양주 먹는데 쓰다니, 내가 미친놈이지. 여하간 돈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생각해보니 없다. 이유가 많지 않고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이유였다. 빌어 처먹을 놈의 정부는 지난 정권 때 두 배로 올린 담뱃값을 내리겠다고 공약을 걸어두고서는 도무지 실현할 생각도 안 한다. 커피는 말이다, 이것에 대해선 내가 할 얘기가 좀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10년 전만해도 밥 먹고 숭늉이나 처마시던 인간들이 도대체 단체로 무슨 지랄병에 걸렸는지 케냐 100%가 어쩌고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어쩌고 에스프레소에서는 산미가 돌아야 한다는 둥, 아무래도 대한민국 전역에 뇌랑 관련된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돈이 썩어 넘쳐서 지 입으로 들어가는 게 사향고양이 똥인지 사향고양이 오줌인지도 모르면서 사치 부리고 있는 척 좀 해보고 싶다는 거야 내 알 바 아니다. 문제는 그 천치들 때문에 한 캔에 300원 하던 캔커피가 지금 1000원 대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당히 말하겠는데 난 커피에서 바닷물 맛이 나도 상관없다. 난 그저 300원으로 카페인 60mg을 사고 싶을 뿐이란 말이다. 브라질 본토에서 공수를 해왔건 옷장 안에 백열전등 매달아놓고 키웠건 쥐똥만큼도 상관 안하니까 내 작업을 좀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 카페인이 없으면 일이 안 된다. 하루에 18알 씩 집어삼키는 약들이 날 인간으로 붙잡아놓고 있다는 거야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들은 사람을 정말 멍청하게 만든다. 처음으로 투약을 시작했을 때는 3시간이나 꼼짝도 않고 빈 페이지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일도 있다. 머릿속에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입술이 바싹 말라서 하루에 도대체 몇 리터나 되는 물을 들이켰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수면시간을 하루에 20시간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쯤 되면 이미 치료목적이 아니라 사고나 치지 말라고 약으로 재워두는 격이다.
 물론 투약 초기의 얘기고, 지금은 내성도 어느 정도 생겨서 별 문제는 없지만…… 커피와 담배가 아니면 작업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난 커피와 담배를 이용해서 나름대로 약물치료와 작업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아무튼 돈이 없고, 간호사한테는 모르겠다고 말했고, 당연히 간호사는 되물었다. 모르다니 도대체 뭘 모르겠냐는 거냐고. 모르는 거야 모르는 거지 어떤 걸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그걸 어떻게 아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영원순환 같은 헛소리를 할 기분도 아니었고, 그저 당분간 병원에 못갈 것 같으니 담당의에게 메모나 전해달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끈질겼다……. 지속적인 치료가 이어지지 않으면 위험한 병이라는 걸 환자분도 알고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갑자기 투약을 끊으면 금단증상 때문에 ER에 실려 갈 수도 있다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돈이 없다니까 이 아가씨야.
 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슨 화가 나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달력을 보니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어제 전화를 하지 못한 거로군. 얼마 전에 쓰다가 내팽개친 논문이 마구 구겨진 채로 발치에서 뒹굴대고 있었다. 돈……. 애당초 이런 걸 쓰기 시작한 이유가 뭐더라? 살면서 한 번도 글 팔아서 돈 벌어본 일이 없는데. 아, 아니다. 두 번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작은 이모가 대학원생이었는데, 바쁘다고 논문 대신 써주면 오만 원을 주겠다기에 써준 적이 있다. 두 번째는 스무 살 때, 친구―그 때는 나도 친구가 있었다―가 어린이용 학습 애니메이션 감독 보조였는데, 스무 살이 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약에 쩔어 굴러다니기만 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시나리오 일감을 줬던 것이다. 3시간 만에 시나리오 세 편을 써서 15만원을 번 굉장한 일이었다. 나중에 방영이 됐을 테지만, 보진 않았다. 난 살면서 TV를 가져본 일이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 뭘 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아무것도 안했다. 오후 9시까지 그 자리 그대로 앉아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눈으로는 굴러다니는 원고 조각을 보고 있었다.
 달리 뭘 하겠는가. 그나마 지금 내가 이렇게 수기라도 쓰는 것이 살아있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9월 5일.
 집안이 난장판이다. 전자레인지는 앞 유리가 날아갔고, 냉장고는 충격으로 온통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내 주먹은 피멍투성이라서 원래 어떤 색깔이었는지 기억도 못 하겠다. 손뼈에 금이 간 것 같다. 타자를 칠 때 중지가 움직일 적마다 싸한 통증이 느껴진다.
 9월 3일에 어머니가 집에 왔었다. 예고도 하지 않고 갑자기 들이닥쳤다. 얼굴을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널 볼 때마다 짜증이 치민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애매하다. 머리에 피가 몰리면 항상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 분명하다. 정신이 들 때쯤엔 울부짖으면서 집안에 있는 것들을 전부 깨부수고 있었다. 집에는 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왔던 걸까? 그러고 언제 돌아간 걸까? 깨진 사금파리들 위에 엎어져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리조각을 밟은 채로 돌아다녔는지 방바닥은 핏자국 투성이였다. 그게 9월 3일 저녁이었다. 그 뒤에 나는 서랍을 뒤져 남은 수면제를 싸그리 모아 삼키고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 같은 방 안에 자빠졌다. 정신의 사지가 잘려나가는데 13분이 걸렸을 것이다. 빈속에 약을 처넣으면 항상 딱 13분이 걸린다. 그리고 관절염 걸린 개새끼처럼 사지를 뒤틀다가 헛소리를 한다. 뭐라고 했더라. 기억이 날 리가 없지. 다만 벽지에다가 피로 뭐라고 써놓았는데, ‘까마귀는 부자 위에만 난다’라고 의미도 알 수 없는 개소리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깨보니까 9월 5일 오후 3시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어차피 뭘 하든 패배자의 넋두리가 될 것이고, 내 삶이란 세상에게 민폐나 끼쳐대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천 년 정도 잠이나 잤으면 싶은데, 이미 이틀이나 자버려서 졸리지도 않다. 만일 정말로 천 년을 잘 수 있으면 깨어난 뒤 이름이라도 바꾸고 모든 걸 새로 시작할 텐데. 시야가 뿌옇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도 사물이 명확하게 보이질 않는다. 아마 수면제의 부작용일 것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나아지겠지.
 그래도 나는, 도대체 뭘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바닥에 난 자상에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고 주먹에 안티푸라민을 발랐다. 효과가 있을지 어떨지는 모른다. 그냥 하는 것이다. 내가 자살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그 이유라는 게 언제나 불명확하긴 하지만, 존재하긴 한다. 그리고 앉은 채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아주 개판이었다. 뭘 어떻게 손을 댈 의욕도 나지 않았다. 앞으로 전자레인지는 못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돌연 들었다. 그래, 아마 어머니는 이렇게 될 걸 원하고 내 집에 침입한 거겠지.
 절뚝거리며 계단참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나뭇잎들은 아직 초록색이었다. 그러나 곧 낙엽이 될 것이다. 담배를 다 피운 뒤 옥상창고로 올라가, 분명 철제문이 있었던 벽을 두들겨보았다. 그냥 벽이었다. 허탈한 기분과 짜증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손에는 기름때와 짙은 먼지가 묻었다.
 오늘은 잠을 자지도 못하겠지. 약도 없고, 이틀이나 죽은 듯이 기절해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기를 쓴다. 앞날은 언제나 불행 투성이다. 현재가 비참하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토요일에 약이 하루치 밖에 안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세상이 무너지고 자신이 인간으로 있을 수 없으리라는 극악한 공포에 휘말려버리는 인간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뭘 어쩔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어떻게 되어가든 손을 놓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기록이나마 해가면서.

9월 6일.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평소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엉겨있던 사고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아무튼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통상 인간의 길은 믿음으로서 시작된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거짓부렁이다. 인간의 길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당장 이 세계를 살고 있는 사람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발끝에서 땅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가능성을 불신함으로서 목적지까지 걸어갈 수 있다. 하늘에서 뜬금없이 벽돌이 떨어져 머리에 맞는 바람에 비명횡사할 가능성을 불신함으로서 거리에 나갈 수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사상과 신념을 갖는 게 아니라, 세계에 포화된 무수한 가능성을 불신하고 그 중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고르는 것으로 존재가 가능한 것이다. 누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 가능성이 0%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무의식에서부터 불신한다. 어느 날이랄 것도 없이 예고도 준비도 없이 죽음이 들이닥쳐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으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인간은 불신의 생물이다. 공포와 혼란을 피하는 방법으로 제딴에는 믿음과 사상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로지 불신뿐인 것이다. 세계는 마구잡이다. 세계는 다시 말할 것도 없이 하늘에서 창이 쏟아지고 수천만 명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지가 찢겨나가는 마구잡이인 곳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전부 받아들이기에 인간의 영혼은 너무도 좁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도 않고 ‘나는 믿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가능성을 신뢰하는 사람을 정신병질자 취급하기까지 한다!
 축약하여 하나의 상황에 천 개의 가능성이 있다면 인간은 999개의 가능성을 불신하고 한 개의 가능성을 신뢰함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신념이나 사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객관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이것은 불신의 법칙이다. 하하.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니 신념의 힘이니 지껄이는 것들이, 속을 들여다보면 불신만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생존의 기본이다.
 어떻게 하면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자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인간존재>가 아니라 <현상>이 되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인간의 모습으로 현세에 일렁거리는 현상. 그러면 그 스파크나 불똥 같은 존재는 자연히 세계에 귀속된다. 바로말해 혼돈에 귀속되는 것이다. 사상이나 신념을 가질 필요도, 욕망이나 의지를 가질 필요도 없다. 현상은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엔트로피 증가 법칙에 휘말려 다니며 더 많은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사망이 아니라 열적사라 불리어야할 것이다.
 여하간, 그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길거리의 벽돌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허연 대낮에 반바지를 입은 어떤 늙은이가 지나갔다. 나는 그 늙은이의 다리를 보자마자 구토할 뻔 했다. 백색으로 완전히 탈색되고 삐쩍 말라 혈관과 근육이 완전히 드러나 보이는, 털 하나 나지 않은 삐걱거리는 다리. 병든 다리. 늙은 다리. 저런 다리가 생몰하는 인간의 말로라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나왔다. 늙은이는 절뚝거리면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 나무토막 같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말이다. 나는 늙음에 대해서 화가 치솟았다. 늙음에 대해서 화가 나자 마찬가지로 젊은 것들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젊은 것들은 마치 자신의 탄탄하고 부서지지 않은 육체가 영원할 것처럼 과시하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러나 눈앞에 떡하니 놓인 증거를 보고서도 알아차리지 못한단 말인가? 얼마나 멍청하면 자신의 다리가 곧 가죽이 다 늘어지고 뼈밖에 남지 않은 괴물 같은 것이 되리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인가? 젊음이 영원하리라는 듯이 뽐내고 다니는 것들을 보면 분노가 내 시야를 하얗게 만든다. 차라리 내가 알려주고 싶다. 건물 철거용 해머로 그 살과 뼈를 전부 다져 손에 그러쥐고, 눈앞에 내밀면서 <봐라, 이게 네가 갖고 있는 전부다>라고 설교해주고 싶다.
 생명은 슬로우 모션으로 폭발하는 폭탄처럼 인간을 추악하게 만들어간다. 피부는 자글자글 주름이 생기고 독버섯처럼 반점이 피어오르며, 곧 숨조차 원활하게 쉴 수 없게 되고, 스스로 걷지 못해 장님처럼 지팡이를 휘둘러대야 한다. 그러면 이제 병이 코와 입으로 스며들어와 내장을 적시고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간다. 차마 눈뜨고 못 볼 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인간의 전부다! 바들대며 절벽 끄트머리에 들러붙은 버러지처럼 되는 것이 인간의 의무다. 생명의 풍성함을 믿는 것들에게 저주 있으라! 아니, 내가 저주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저주를 품고 태어났다. 어떻게든 추악하게 추락해 갈 것이다. 그 후에는 소멸뿐이다. ‘억’ 소리조차 못 내고 풀벌레들의 먹이가 되어, 곧이어 아무도 그런 것이 존재했다고는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가족과 함께 살 때 명절에 벌초를 하는 것이 정말이지 싫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잔디를 심고 잡초를 뽑은 그 봉분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있다 한들 흙과 박테리아에 분해되어가는 뼛조각뿐이다. 도대체 왜 이미 죽은 몸뚱어리에 신위神位를 주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죽은 자와의 추억에 술을 올리고 싶으면 방구석에 틀어 앉아 하면 될 뿐이다. 나는 지금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뻔한 얘기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은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와 아버지 몰래 무덤을 파 관을 들어내어, 저쪽 계곡 어딘가에 갖다버리고, 나중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텅 빈 흙더미에 절을 올리고 술을 따르는 꼴을 보며 비웃을 계획을 세우곤 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애당초 난 획책하는 것은 잘 하지만 무엇 하나 행동으로 옮긴 것이 없다. 나 역시 빌어먹을 쓰레기더미다. 남들의 비열을 비웃으면서 자신의 비겁 속에 파묻히기나 한다.
 9월 2일부터 음식을 먹지 않은 것 같다. 이대로 이어나가야겠다.

Posted by Li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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